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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HzhJhHz6asA?si=RK4bQr9ENvRfYdED&t=127

 

 

2024925일 수요예배

신구약 중간사의 세계 4

에스라, 느헤미야와 제2성전

(이사야 43:1~7)

 

바벨론하면 사람들은 무엇을 떠올립니까? 폭력적으로 다른 나라들을 정복했다고 해서 난폭한 야만 국가가 떠오른다면 완전한 오해입니다. 바벨론은 당대 최고의 문명국이었고, 고대의 문명을 하나로 통합했으며, 문화와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사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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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 이슈타르 게이트, 페르가몬 박물관(베를린) >>

 

독일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있는 <이슈타르 게이트>는 바벨론의 위용을 느끼게 합니다. 이 문은 1900년대 초기에 바벨론에서 발굴한 벽돌들을 독일로 가져와 세운 것으로, 거대한 바벨론 도시를 감싸는 성벽 중 일부였습니다.

 

이슈타르 문은 마르둑 신을 상징하는 용을 비롯하여 사자와 황소가 그려져 있고, 각종 조각과 무늬도 아름다워서 훌륭한 예술작품으로도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바벨론 성벽은 3층 구조였다고 하니, 포로로 잡혀 와서 그것을 보았을 유대인들이 얼마나 위축되었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보며 절망했을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1.   바벨론 유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2성전을 세운 것은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 볼 수도 있지만,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감격적이고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땅에서 포로로 지내야 했는데, 이것을 역사 용어로 바벨론 유수(Babylonian Captivity)’라고 합니다. 바벨론 포로 혹은 포로 귀환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순히 한 사건처럼 생각되지만,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당시 유다 사람들의 감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편 137편입니다.

 

“1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 곳곳에 앉아서, 시온을 생각하면서 울었다. 2 그 강변 버드나무 가지에 우리의 수금을 걸어 두었더니, 3 우리를 사로잡아 온 자들이 거기에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고, 우리를 짓밟아 끌고 온 자들이 저희들 흥을 돋우어 주기를 요구하며, 시온의 노래 한 가락을 저희들을 위해 불러 보라고 하는구나. 4 우리가 어찌 이방 땅에서 주님의 노래를 부를 수 있으랴. 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6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 7 주님,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그 날에, 에돔 사람이 하던 말, ‘헐어 버려라, 헐어 버려라. 그 기초가 드러나도록 헐어 버려라하던 그 말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8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9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137:1-9, 새번역)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정서입니다. 이 시편 137편을 소재로 하여 이탈리아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는 오페라 <나부코><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라는 곡을 넣었습니다. 20세기의 팝 그룹 보니 엠’(Boney M)은 이 시편 가사로 쓴 <By the Rivers of Babylon(바벨론 강가에서)>라는 히트곡을 남겼습니다. 똑같이 바벨론 강가를 노래했지만 시편 137편은 주전 6세기 유대인들의 상황을 반영하고, 베르디는 19세기 이탈리아 국민의 상황을 반영하며, 보니 엠은 20세기 흑인들의 상황을 반영합니다.

 

이렇듯 바벨론 유수는 2,600년 전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주인만 바뀌었을 뿐, 누군가는 군림하고 누군가는 압제당하는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벨론 유수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다면 회복의 의미도 새롭게 다가올 것입니다.

 

 

2.   페르시아 시대

 

그런데 그렇게 영원할 것처럼 강력했던 바벨론은 페르시아가 주전 539년에 무찌르면서 고대 세계 패권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페르시아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또 그로부터 200년이 지난 주전 333년에는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가 이수스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무너뜨리면서 패권을 잡고, 그에 따라 페르시아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집니다.

 

200년 기간 동안 세계에, 특히 유대인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페르시아 시대에 세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 페르시아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하나는 페르시아 고레스 왕과 관련된 고레스 칙령또는 키루스 원통(실린더)’이고, 다른 하나는 1802년에 이란에서 발견된 베히스툰 비문(Behistun Inscriptio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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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2: 베히스툰 비문, 이란 >>

 

고레스 칙령 31행과 32행을 보면, 바벨론에 붙잡혀 있던 포로들을 본국으로 되돌려 보낸다는 내용이 나오면서, ‘강 건너편 지역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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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1 지도 >>

 

페르시아가 장악한 지역을 보면, 고대 세계의 곡창 지대였던 이집트가 있고, 고대 문명의 근원지였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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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2: 비옥한 초승달 지역 >>

 

고대 그리스는 서쪽에 있고, 중간에 광활한 아라비아 사막이 있습니다. 이 풍요로운 지역을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여러 문명이 오가는 길목에 위치 있어서 교통과 군사의 요충지였고, 언제나 강대국이 서로 차지하려는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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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3-3: 강 건너 땅 >>

 

그래서 페르시아 입장에서는 바로 이 강 건너편 지역이 중요했던 것이고, 이 지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에스라서에서 강 건너편이라는 용어가 아주 많이 등장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배경 때문입니다. 그리고 <베히스툰 비문>의 해독을 통해 고레스 왕이 나온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역사성이 입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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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4: 페르시아의 왕들 >>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대제)가 메대와 바사를 통일하고 바벨론을 점령했습니다. 그를 이어 캄비세스(주전 530~522), 스메르디스(주전 522), 다리우스 1(주전 522~486), 그리고 아하수에로로 알려진 크세르크세스로 이어집니다. 그다음 아닥사스다로 알려진 아르타 크세르크세스로 이어지는 페르시아 왕들의 계보가 <베히스툰 비문>의 해독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이처럼 베히스툰 비문은 고레스에서 이어지는 왕들의 역사적 상황을 알려 주는 중요한 역사적 자료입니다. 원래 다리우스 1세가 현재의 이란 베히스툰 산에 새긴 것인데, 이 내용을 해독한 사람이 독일의 고고학자 프란츠 바이스바흐(Franz. H. Weissbach)입니다그는 이 비문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아케메네스 비문은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그로테펜트(G. F. Grotefend)1802년 당시까지 해독되지 않았던 페르세폴리스의 비문들에서 히스타페스, 다리우스, 크세르크세스, 이 세 왕의 이름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중략) 키루스 실린더와 다리우스의 베히스툰 비문은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아케메네스의 아들 테이스페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두 통치자의 계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다리우스 1세는 제국 곳곳의 반란을 장악하고 주전 522년에 왕위를 계승했습니다. 그는 모든 전쟁에서 다 승리했는데, 딱 한 번 졌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전 492년 그리스 군대와의 마라톤 전투였습니다.

 

베히스툰 비문의 핵심 내용은 다리우스 1세가 이집트와 바벨론을 중심으로 일어난 반란을 진압했다는 내용입니다. 바이스바흐가 해독한 것에 따르면, 다리우스 1세는 자기가 캄비세스 2세의 동생 스메르디스라고 사칭했던 가우마타(Gaumata)’라는 사람을 제거하고 왕권을 안정시켰습니다. 이 반란자 가우마타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는 마고스라는 이름으로 나옵니다.

 

정리해 보면, 주전 539년에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는 유다 포로들의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승인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세스바살은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포로들과 함께 귀환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은 멸망 후 사마리아에 편입되어 관할을 받던 땅에 불과했기에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입장으로 보면 종교의 중심지가 바뀌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10여 년간 중단된 성전 재건은 스룹바벨이 총독으로 임명되고,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의 독려 속에 재개되었습니다.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여호수아)가 파견되었을 때, 희생 제단은 있었지만(3:2), 성전은 없었습니다(3:6).

 

고레스가 하나님을 믿어서 그런 정책을 취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영적인 해석입니다. 페르시아가 제2성전 재건을 허락한 데에는 정치적인 의도도 있었습니다. 강 건너 지역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구심점으로 삼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런 정치적 의도마저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본국으로 귀환할 때 언급된 유다 왕가의 세스바살(1:8), 유다 지파이자 총독이었던 스룹바벨, 대제사장 예수아는 황무한 곳에 희생 제단을 쌓으며 성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주전 516년 성전이 완공된 후에는 이들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6:13~22). 왜 이들의 이름이 사라진 걸까요?

 

이것에 대한 실마리를 바로 베히스툰 비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비문에 따르면, 다리우스 1세는 페르시아 제국 내의 정치적인 여러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그것으로 볼 때, 2성전을 짓기 위해 스룹바벨이 파견되었지만, 강 건너 지방의 정치적 반란의 싹을 없애기 위해 성전이 완공될 무렵 관직에서 물러나게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2성전 재건 과정과 의미

 

페르시아는 스룹바벨을 총독으로 파견하고도, 나중에 닷드내(Tattenai)’를 강 건너 지방의 총독으로 다시 파견했습니다.

 

그 때에 유브라데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그들의 동관들이 다 나아와 그들에게 이르되 누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 성전을 건축하고 이 성곽을 마치게 하였느냐 하기로” (5:3)

 

이 지역의 민족주의가 일어나거나 정치적 반란의 빌미를 사전에 차단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페르시아는 오직 종교 분야에만 관용적이었으며 자치를 허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근거를 신구약 중간기에 쓰인 외경인 집회서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1 즈루빠벨을 어떻게 찬양해야 옳을까? 그는 주님 오른손의 인장반지와 같았으며, 12 요사닥의 아들 예수아도 그랬다. 그들은 자기 대에 하느님의 집을 재건하였고 그 성전을 주님께 봉헌하여, 주님의 영광을 영원히 드러내었다. 13 느헤미야에 대한 기억 또한 위대하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무너져 버린 우리 성벽을 다시 쌓았고 거기에 문과 빗장을 달아서, 우리가 살 집을 다시 세웠다.” (집회서 49:11~13, 공동번역)

 

성전 재건 과정에서 강 건너편 총독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와 동료 관리들이 누가 성전을 건축하게 했느냐고 따지면서 다리오(다리우스 1) 왕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한 것이 사실인지 문의합니다.

 

이제 왕께서 좋게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보물 전각에서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성전을 예루살렘에 다시 건축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 (5:17)

 

그러자 다리우스는 고레스 칙령의 진위를 조사했고, 그 결과 그것이 사실임이 증명됨에 따라 중단되었던 예루살렘 성전 공사를 재개하도록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6). 닷드내와 스달보스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오히려 성전 공사가 계속 멈춰 있었을지 모르는데, 괜히 시비를 걸면서 사실이냐고 따지는 바람에 그것이 증명되었고, 오히려 다리우스 왕은 그들에게 성전 공사를 도우라고 엄명을 내립니다. 이것도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고레스 칙령과 베히스툰 비문을 살펴보면, 이러한 에스라 기록의 역사성이 증명됩니다.

 

분명 바벨론에 잡혀가지 않고 유대 땅에 그대로 남아 있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전 재건 이후 대제사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모두 포로기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저번에 제사장 사독 계열에 대해 언급했는데, 대제사장은 아론 혈통의 사독 계열 제사장 가문이 정통성을 갖고 있었으며, 귀환 후에도 그들이 대제사장 직분을 차지했습니다. 스룹바벨, 에스라, 느헤미야도 모두 귀환한 사람들이 공동체 리더십을 가진 경우입니다.

 

그렇게 된 것은 포로로 잡혀갔다 돌아온 사람들의 수가 많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정통성이라는 측면에서 포로 귀환자들이 사회의 구심점이 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는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재건된 제2성전은 귀환 공동체의 중심이었고, 심지어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에게도 구속력을 가졌습니다. 지난번에 주전 408년 이집트 엘레판틴의 유대인들이 그곳에 성전을 만들려고 했지만, 예루살렘 대제사장의 허가를 받지 못했던 상황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영적인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 관점이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주전 5세기에 제2성전이라는 틀(하드웨어)이 형성되고, 율법이라는 내용(소프트웨어)이 유대인들의 삶을 결속하면서 유대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기에 우리가 아는 유대교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이 시기에는 오랜 포로 생활로 히브리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거의 남지 않게 되어서 율법을 보존하는 계급인 서기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유대 사회는 포로기 이후에 독특한 구조를 형성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이 당시 문명으로부터 동화된 흔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흡수되어 사라진 게 아니라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켜냈습니다. 이것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실제로 학개나 말라기를 읽어보면, 페르시아 시대를 살아가던 유대인들의 현실은 암울했고 미래는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과연 하나님이 존재하시는지, 자기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맞는지, 참된 회복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그들은 학개 선지자와 스룹바벨에 의해서 제2성전을 건립했고, 유대교를 통해서 율법을 확립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더라도 성전과 회당과 율법을 토대로 예배드릴 수 있는 표준이 마련된 것입니다. 페르시아 지배 200년 동안, 그리고 그 후 수백 년 동안 나라와 언어를 잃어버린 백성들이었는데도, 어느 곳에 있든지 예배하는 공동체로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은 정말로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이사야서는 40장 이후가 포로기 이후에 쓰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사야 40장 이후를 소위 2 이사야라고 말합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흩어져서 뿔뿔이 살아가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제2 이사야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41:9-10)

 

이런 말씀을 그 시대 유다 백성들에게 주셨다는 것은 그들이 던진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응답이고 회복입니다. 그렇지만 주전 516년 세워진 제2성전, 즉 스룹바벨 성전은 아주 볼품없는 모습이었습니다. 과거 솔로몬 성전의 화려함을 기억하던 세대들에게 스룹바벨 성전은 참 보잘것없이 보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3 너희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 중에서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없지 아니하냐 4 그러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9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 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2:3-4, 9)

 

성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우리를 당신의 성전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제2성전처럼 초라하고 보잘것없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가치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외아들의 생명을 내어주실 만한 가치가 있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페르시아 시대를 살았던 유대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제2성전을 만드셨습니다. 이 물질문명 시대, 인공지능 시대, 전쟁의 시대, 혼란한 시대에 마치 하나님이 존재하시지 않는 것 같고,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페르시아 시대를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우리도 듣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말씀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3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1-3a)

 

이 말씀을 들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안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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