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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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724일 수요예배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27(최종)

약속의 성취 3

(히브리서 91~12)

 

[질문 4]  예수님의 초림 때 뿌려진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어떻게 추수되는지 아는가?

 

신천지는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이 신천지라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예레미야 말씀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 2,600년 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릴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난번 간단히 살펴봤는데, 오늘은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31:27)

 

이 예언은 초림 때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사람의 씨는 인자(人子), 곧 예수님이 뿌리신 좋은 씨로서 하나님의 씨이고, 이 씨는 곧 말씀이라고 설명합니다(8:11). 그리고 짐승의 씨는 가라지 곧 마귀의 씨라는 것입니다(13).

 

이 두 가지 씨는 한 밭, 곧 예수교회에서 함께 자라다가,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불사르기 위해 단으로 묶이게 되고, 알곡 곧 하나님의 씨로 난 자는 추수되어 곳간으로 가게 된다고 설명합니다(13:24-30). 그러면서 이 곳간은 계시록 14장의 시온산이며, 이곳이 예수님의 재림 때 창조되는 하나님의 새 나라, 즉 신천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곡식 신앙인들의 실체는 시온산의 계시 말씀, 즉 이만희 총회장의 가르침으로 인을 맞은 144천 명이라고 합니다. 자기 목자, 곧 신천지의 말을 안 듣고 신천지를 주의하라는 말에 묶여 추수되지 않고 자기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은 가라지이며, 결국 불에 던져지는 심판에 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에 기초해서 신천지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말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예수님 초림 때 뿌려졌고, 주 재림의 때에 알곡과 가라지로 추수된다고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아는가?”

 

이들의 주장은 과연 성경적이며, 신천지는 정말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 곳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 이렇게 반박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레미야 말씀에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리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씨도 뿌리시지만, 짐승의 씨도 뿌리십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씨는 사탄의 씨가 아닙니다.

 

둘째, 마태복음 13장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이고, 사탄의 씨인 가라지를 뿌리는 이는 원수 즉 사탄이라고 하셨으므로, 예레미야 3127절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가라지 비유에서 씨를 뿌리는 주체는 둘(인자와 원수)인 반면, 예레미야 말씀에서 씨를 뿌리는 것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셋째, 예수님은 씨가 떨어지는 ’(13:38)세상이라고 해석해 주십니다. 성경에서 세상은 온 세계 또는 세상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중 몇 개만 예를 들어보면 이렇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24: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6)

 

“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요일 2:15-16)

 

이처럼 성경은 세상을 일관되게 이 세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신천지에서 이 밭이 예수님의 밭이기 때문에 밭을 종교 세상, 즉 예수교회라고 해석하는 것은 자기네만의 엉터리 해석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지만, 동시에 온 세상의 주님이기도 하십니다(2:9-11).

 

넷째, 예레미야와 마태복음에 나오는 의 의미는 서로 다릅니다. 예레미야에서 하나님이 뿌리시는 씨는 말씀이 아니라 후손(offspring)을 말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씨라는 것은 동물의 새끼를 가리키는 것이지, 사탄의 씨가 아닙니다. ,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후손과 짐승의 새끼들을 불어나고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씨는 종종 후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이 나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9:7)

 

다섯째, 마태복음 13장의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 예수님은 좋은 씨를 천국의 아들들이라고 하십니다.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13:37-39)

 

이와는 달리 신천지는 누가복음 811절을 가져와 씨는 말씀을 뜻한다는 논리를 펼칩니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8:11)

 

하지만 누가복음 811절은 가라지 비유가 아니라 네 가지 땅에 떨어진 씨 비유’(8:4-15)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131-9절에도 나오며, 그에 대한 해석도 나옵니다. 이 비유에서는 예수님이 씨를 천국 말씀’(13:19)이라고 해석해 주십니다.

 

이렇게 가까운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한 해석이 있음에도 신천지가 굳이 누가복음 본문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의 눈을 가려 이 비유의 문맥을 읽지 못하게 하고, ‘씨는 곧 말씀이라는 해석을 기계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죽 살펴보면, 신천지의 수법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신약 주에서도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에서 같은 말을 뽑아서 뒤섞어 그것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현혹합니다. 전혀 문맥과 상관없고 역사적 배경과도 상관없이 단어만 갖다 붙이니 처음 듣는 사람은 미혹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수법을 아니까 구분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씨의 의미는 비유마다, 문맥마다 각기 다릅니다. 로마서에서 씨는 후손을 의미하는 반면, ‘곡식과 가라지 비유에서의 씨는 천국의 아들들을 뜻하고, ‘네 가지 땅에 뿌려진 씨 비유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신천지는 다른 두 경우를 무시해 버리고, 모든 비유의 해석에 있어 씨는 곧 말씀이라고 풀이하며, 그렇게 자의적으로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해서 그릇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신천지는 예언의 말씀을 이룬 곳이 절대 아니며, 그럴듯하게 성경을 자의적으로 왜곡해서 자기네 단체야말로 이 땅에 있는 지상낙원이며 천국이라는 그릇된 환상을 심어주기 위해 잘못된 열심을 다하는 이단일 뿐입니다.

 

 

[질문 5]  모세 때의 장막이 모형과 그림자라고 했는데, 오늘날 그 실체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는가?

 

이것도 수법이 같습니다. 구약에서 뽑고 신약에서 뽑아 그 내용을 마음대로 연결해서 자기네 주장을 펼칩니다.

 

신천지는 자기들이 성경의 예언대로 이루어진 곳임을 주장하기 위해 구약의 성막이 모형과 그림자이고, 그 실체가 오늘날 성취된 것이 신천지라고 주장합니다. 신천지는 히브리서를 인용하면서, 모세 때 만든 장막(25:1-40)은 하늘의 모형과 그림자이고(8:5), 또한 현재까지의 비유라고 말합니다(9:1-9).

 

“2 예비한 첫 장막이 있고 그 안에 등잔대와 상과 진설병이 있으니 이는 성소라 일컫고 3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2-3)

 

신천지는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성소를 첫 장막 또는 예비 장막이라 하고(2), 지성소를 증거 장막 또는 둘째 장막이라고 부릅니다(3). 모세의 첫 장막에 있는 일곱 순금 등대는 성막 안을 환하게 비추는 일곱 금 촛대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켜서 비취는 등불’(5:35)이라고 하셨기에, 일곱 금 촛대는 세례 요한이라는 인물을 가리킴과 동시에 세례 요한의 장막, 곧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첫 장막에 있던 일곱 등불을 비유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동시에 이것은 유재열이 세운 첫 장막의 일곱 사자를 비유한 것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소의 일곱 금 촛대 맞은편에 있는 떡상 위에는 12개의 진설병이 있는데, 이것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를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4)

 

신천지는 둘째 장막 곧 지성소에는 언약궤가 있는데, 그 안에는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이 있다고 하면서, 만나는 말씀을 비유한 것이고, 항아리 그릇은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감추었던 말씀을 열어주시는 예수님을 상징하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 역시 이새의 줄기에서 난 싹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11:1). 또한 돌판은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이요,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예수님을 비유한다고 합니다(21:42).

 

이런 말씀들을 종합하면, 초림 때는 세례 요한과 예수님과 열두 제자를 상징하는 장막의 실체가 나타났고, 오늘날 주 재림의 때에는 유재열의 첫 장막에 이어 이만희 총회장이 새롭게 연 둘째 장막과 12지파장을 통해 나타났다고 주장합니다.

 

신천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첫째, 모세의 장막이 모형과 그림자인 것은 모세의 장막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모세의 장막은 성막의 본질적 기능인 죄 사함의 역사가 온전하게 일어나지 못하는 장막이었습니다.

 

이 장막은 현 시대를 상징합니다. 그 장막 제의를 따라 예물과 제사를 드리지만, 그것이 의식 집례자의 양심을 완전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9, 새번역)

 

모세 장막에서의 제사로는 사람을 죄로부터 온전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송아지나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이 사람의 죄를 완전히 대속할 수 있는 흠 없는 제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해마다 다른 짐승의 피로써 반복해서 제사드려야 했습니다(9:25).

 

그 첫 번째 언약에 결함이 없었더라면, 두 번째 언약이 생길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 (8:7, 새번역)

 

첫 번째 언약인 모세 율법에 따른 제사 제도에 결함이 없었다면, 두 번째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가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모세의 장막이 갖는 가장 핵심 기능은 만나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는 언약궤를 보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장막의 핵심은 언약궤를 덮고 있는 속죄소 또는 시은좌(Mercy Seat)의 속죄기능에 있습니다(25:10). 속죄소는 대제사장이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짐승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 그 위에 뿌려서 온 백성의 죄를 사함받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만나 주시는 자리였습니다.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30:6)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7)

 

속죄소에는 이런 임재의 상징으로 영광의 그룹(천사)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습니다(4). 언약궤 안의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증거 돌판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보여주는 증거물들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속죄해 주시는 근거가 될 뿐입니다.

 

셋째, 예수님이 오신 것은 불완전한 그림자에 불과한 첫 장막을 대체하는 더 크고 완전한 성전을 짓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셔야 하는 핵심적인 이유는 장막 성전의 속죄 기능, 곧 속죄소의 기능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성전은 염소와 송아지와 같은 불완전한 짐승의 피가 아닌, 예수님 자신의 피로 단번에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성전입니다.

 

“11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미 일어난 좋은 일을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으로 오셔서 손으로 만들지 않은 장막, 다시 말하면, 이 피조물에 속하지 않은 더 크고 더 완전한 장막을 통과하여 12 단 한 번에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로써가 아니라, 자기의 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11-12, 새번역)

 

넷째,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은 시기를 달리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장막 안에 있는 별도의 두 공간입니다. 신천지는 첫째 장막이 유재열의 장막성전이고, 둘째 장막은 이만희의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 성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되면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은 존재했던 시기가 다른 별도의 장막들이 됩니다.

 

그러나 구약의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은 같은 시기에 같은 공간에 존재한 별도의 장막으로서, 한 장막 안에 있는 성소와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신천지는 그냥 봐도 알 수 있는 내용을 왜곡해서 가르칩니다. 그게 아니라 성소로 들어갈 때의 휘장을 첫째 휘장,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갈 때의 휘장을 둘째 휘장(3)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예수님이 오셔서 하신 일은 첫째 장막과 둘째 장막 사이에 놓인 휘장을 찢고 하나님의 보좌로 직접 들어가신 일입니다. 다시 말해, 십자가 죽음을 통해 휘장을 찢으시고 두 공간을 하나로 합치신 것입니다.

 

“19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10:19-20, 새번역)

 

이렇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몸이 찢겨 피 흘리고 돌아가시는 사건이 곧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이며, 이것은 복음서에도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15:37-38)

 

여섯째, 예수의 피로 이루신 속죄는 영원합니다. 또한 그분이 드리신 제사는 영원하고 완전하기에 더 이상 장막 성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12)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0:12-14)

 

그리스도가 이루신 영원한 속죄 제사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멸망시키고 짓밟을 때까지 영원히 유효합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10:18)

 

이 효력이 영원하기에, 더 이상 어떤 제사나 또 다른 장막성전 같은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곱째, 모세의 장막이 현재까지의 비유라는 것은 제사 제도의 온전한 성취인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와 대조되는 예시 또는 상징이란 뜻입니다. 비유에는 상징의 기능도 있지만 대조의 기능도 있습니다.

 

여덟째, 만약 신천지의 주장대로라면, 세례 요한이 첫 장막의 일곱 금 촛대 등잔이 되는데, 그렇다면 예수님이 켜서 비추는 등불이라고 하신 세례 요한 말고도 여섯 명의 인물이 더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홉째, 게다가 신천지의 해석대로라면, 첫 장막에 12개의 진설병이 있다는 사실은 더더욱 당황스럽습니다. 신천지는 진설병이 예수님의 제자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데, 만일 첫 장막이 세례 요한의 장막이라면 12개의 진설병은 세례 요한의 촛대와 함께 있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상징하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항아리, 돌판 등이 담긴 언약궤와 함께 지성소에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재림 때, 신천지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적용됩니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신천지 12지파는 유재열의 장막성전에 속해 있어야만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히브리서는 구약의 장막이 모형과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합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치셨고, 두 번째로는 죄와는 상관없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9:28,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만이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고(10:4), 온 세상의 주가 되셨습니다(2:11). 또한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거가 되십니다(5:9).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마음껏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앞에 늘 감사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배가 워낙 많습니다. 큰 교회는 주일예배가 8부까지 있는 데도 있습니다. 게다가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구역예배 등 예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까 한두 번 빠져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예수님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집에서도 혼자 개인 예배를 드립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 자체가 개인 예배입니다. 그것이 가능해진 것도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돌아가셔서 휘장을 찢으심으로 하나님께 갈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에 마음껏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인 예배도 귀찮거나 하기 싫어할 게 아닙니다. 원래는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예수님 덕분에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공 예배를 드릴 때도 우리는 원래 마음껏 이렇게 나올 수 없는 존재였는데 예수님이 우리 각자를 제사장으로 만들어주셔서 마음껏 하나님께 나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며 감사하면서 예배해야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참된 예배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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