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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20I2UMYpDxk?t=2011

 

 

20201111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3

엘리사: 약속의 기도 - “성령의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열왕기하 21~14)

 

1.   영적 계보를 이어가라

 

지금까지 제 삶을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준비시키시기 위해 귀한 기회들을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국에서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 복음주의 계통에서 유명한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을 통해 바른 목회자 상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당시 강해설교를 하셨는데, 그래서 저도 지금까지 본문 중심의 강해설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또 미국에 이민 와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원을 갔을 때 한국에 교환학생을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갔을 때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파트타임이지만 인턴 전도사를 했던 경험을 통해 많이 배울 수 있었고, 특히 그때 수석부목사를 하시던 김제은 목사님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인연으로 첫 전임사역지인 시애틀 온누리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 그곳에서 풀타임으로 섬기면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을 뿐 아니라, 참된 교회에 대한 그림과 목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배울 수 있었던 정말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목회 경험을 통해 이후의 사역에서 어디를 가든 말씀 훈련 중심의 목회를 하게 되었고, 그것을 위한 기초를 잘 닦는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영적 계보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라인에 바르게 서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하며, 성경의 표현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산에 올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런 영적 계보를 잘 이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엘리사입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이어지는 영적 라인에 선 사람입니다. 그는 엘리야와 같은 역사를 감당했고, 어떻게 보면 더 많은 역사를 감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엘리사처럼 올바른 영적 라인에 서서 영적 계보를 이어가야 합니다. 이것이 올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는 아주 복되고 중요한 방법입니다. 이 시대에 영적 계보를 잇는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1)  영적 공동체에 속하는 것

 

영적 공동체에 속하는 것은 영적 라인과 계보를 잇는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좋은 교회에 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때로는 하나님의 허락하심으로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지키고 버티며 섬겨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사역때문입니다. 저도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역을 제외하고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는 공동체에 속해 있어야 합니다.

 

 

2)  영적 교제 가운데 들어가는 것

 

영적인 사람들과 아름답게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영적 라인에 서는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피곤할 수 있고, 어떤 경우에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라도 우리는 귀한 사람들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어야만 영적 라인에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 영적으로 귀한 사람이 있다면 그와 교제하기 위해 일부러 찾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우리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3)  영적 훈련을 함께하는 것

 

성도는 끝없이 훈련받아야 하며, 훈련이야말로 영적 라인에 서는 아주 중요한 도구입니다. 정말 좋은 영적 훈련이 있다면 반드시 함께하십시오. 그러한 훈련을 통해서 영적 라인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삶 공부가 그런 것입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야 합니다. 나중에 하겠다고 하면 그 나중이 없을지 모릅니다. 훈련은 물론 피곤합니다. 때로는 안 해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훈련받지 않으면 그야말로 몸과 마음이 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 나태함이며, 나태함은 우리로 영적 라인에 서지 못하게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이기고 영적 훈련에 참여해야 합니다.

 

 

4)  영적 사역에 동참하는 것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사역을 함께하는 것이 바로 영적 라인과 계보를 잇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영적인 사람들 부르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라인을 만든다는 것은 그 사명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사역입니다.

 

 

2.   엘리사처럼 기도하라

 

그렇다면 이런 영적 라인에 서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적 라인에 선다는 것은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앙적 결단과 헌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엘리사의 소명 이야기를 보면, 그것은 곧 그의 기도 이야기라는 것을 봅니다. 영적인 역사는 기도 외에 다른 방법으로는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론 영적인 역사가 예배를 드리다가 일어나는 것이든, 말씀을 읽다가 일어나는 것이든, 생각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든, 또는 사람들과의 교제 중에 일어나는 것이든 상관없이, 그 모든 것은 기도라는 영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은 기도밖에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 아니고는 일어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엘리사의 이야기는 곧 그의 기도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엘리사와 같이 영적 라인에 서서 영적 계보를 잇기 위해서는 엘리사가 했던 것과 같은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엘리사의 기도는 어떤 기도입니까? 그는 영적 라인에 서서 영적 계보를 이어가기 위해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1)  결단하는 기도

 

첫째로, 그는 영적인 결단을 내렸습니다. 결단이 없이는 결코 영적 라인에 설 수 없습니다. 혹시 아무런 결단 없이 영적 라인에 섰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면 그 계보를 끝까지 아름답게 지켜 나갈 수가 없습니다. 결단해야 그 자리에 서는 것이고, 결단해야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이세벨의 위협에 두려워하며 도망했던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회복된 후 다시 길을 떠나 엘리사를 부르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그가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릿소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그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하건대 나를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왕상 19:19-20)

 

엘리사는 부르심을 받을 때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소 열두 겨리에 쟁기를 달아서 밭을 갈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농사를 굉장히 잘 짓고 있었다는 말이고, 사는 형편이 괜찮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가 아주 열심히 일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엘리야가 겉옷을 던지는데, 그것은 나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그때 엘리사는 순간 갈등했습니다. 그를 따라가려면 일상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모님께 인사하고 오겠다는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타협점을 내주지 않습니다. 부모님께 인사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자기가 익숙했던 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상적인 일을 내려놔야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이 되어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되었든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게 바로 그가 받은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결단했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떠나 돌아가서, 겨릿소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불살라서 그 고기를 삶고, 그것을 백성에게 주어서 먹게 하였다. 그런 다음에, 엘리사는 곧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왕상 19:21, )

 

엘리사는 바로 돌아서서 소 열두 겨리 중에서 한 겨리를 잡고 소가 메던 멍에를 부숴서 불을 피워 소를 삶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다시는 소를 끌고 밭을 가는 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그의 결단을 보여줍니다. 이제까지 자신이 살아왔던 모든 삶을 포기하고 새롭게 결단하며 따른 것입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인생을 보냅니다.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갈등하고 고민만 하다가 결단을 하지 못함으로 영적 라인에 서지 못하고 영적 계보를 잇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진 생각과 감정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가운데서는 이런 결단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단이 일어날 때, 그때 우리는 영적 라인에 설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십시오. 계속해서 결단하십시오. 이것이 중요합니다.

 

 

2)  기다리는 기도

 

둘째로, 그는 영적인 기다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우리도 엘리사처럼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역사의 때를 끈질기게 기다릴 때 영적 라인에 서고 영적 계보를 이어갈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고자 하실 때에 엘리야가 엘리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나가더니” (1)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하늘로 올리려고 하실 때 길갈에서 벧엘로(2), 여리고로(4), 또 요단으로(6) 계속 이동시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번 엘리야가 똑같은 말로 엘리사에게 그냥 머물라고 하고, 엘리사도 똑같은 말로 엘리야를 떠나지 않겠다고 대답합니다.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2)

 

엘리사야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여리고로 보내시느니라” (4)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요단으로 보내시느니라” (6)

 

그때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역사가 자기에게 오는 그 순간을 집중하며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역사와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서두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개념이 중요합니다.

 

엘리야가 이곳저곳으로 움직일 때마다 엘리사에게 너는 여기 머물라라고 말합니다. 자기를 따라오지 말고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2, 4, 6)

 

기도하는 사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는 부모를 보십시오. 자녀를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포기하지 않는 것과 동시에 또한 서두르지 않습니다. 보십시오. 엘리야가 말을 할 때까지 먼저 말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일에 있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조급함으로 서두르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에 필요한 요소는 포기하지 않음과 서두르지 않음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기다림이 완성되는데, 그것이 바로 기다림의 기도입니다.

 

 

3)  약속을 붙잡는 기도

 

셋째로, 엘리사는 영적 목표와 방향을 놓치지 않고 확실하게 붙들었습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변하는 상황과 감정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영적 목표와 방향을 놓치지 않아야 영적 라인에 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정말 중요합니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 (9)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처음 겉옷을 던졌을 때의 이야기와 9절 말씀은 서로 일맥상통합니다. 둘 다 영적인 장자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장자에게는 다른 형제들보다 두 배의 분깃이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장자의 상징으로 옷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채색 옷을 받았을 때 나머지 형들이 그렇게 분노한 것입니다. 11번째 아들을 아버지가 장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실제로 장자가 되어서 두 몫을 받았습니다(므낫세, 에브라임 지파).

 

이러한 의미로 볼 때, 엘리야가 처음 엘리사를 부르면서 겉옷을 던져준 것은, 그에게 영적 장자권을 주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때부터 엘리사의 마음속에는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목표로 자리 잡게 되었고,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 엘리야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한 질문에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9)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전에 겉옷을 던지며 약속했던 그 영적 장자권을 이제 달라고 요청하며, 장자이니까 두 배를 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사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잊지 않고 붙잡은 것입니다.

 

사실 우리 대부분은 준비가 잘 안 되어 있습니다. 오늘 당장 하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소원을 말해 보라고 하신다면, 그것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또한 자기가 무엇을 하기 위해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는지, 어떻게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인지에 대해 분명한 그림을 가지고 사는 사람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렇게 정신없이 엘리야를 쫓아다니면서도 받은 약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잊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바로 그것을 가지고 늘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항상 그것을 기도하고 있으니까 결정적으로 그 순간이 올 때 즉시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기도하고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습니다.

 

 

4)  행동하는 기도

 

넷째로, 그의 기도는 영적인 실행에 옮기는 기도였습니다. 영적 능력을 가지고 실제로 행동하며 나아가는 것이 곧 올바른 영적 라인에 서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기도의 결론은 행동입니다.

 

이르되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어지려니와 그렇지 아니하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하고” (10)

 

이전에는 계속 따라오지 말고 있으라고 했는데, 이제는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따라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행동을 해야 합니다. 엘리야를 따라가서 그가 승천하는 것을 보면 기도한 것이 이루어지고, 그렇지 않으면 기도한 것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엘리사가 엘리야를 따라가는 도중에 갑자기 엘리야가 승천하게 됩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엘리사가 보고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더니 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엘리사가 자기의 옷을 잡아 둘로 찢고” (11-12)

 

신앙생활을 하다가 안 들으면 더 좋은 말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기도나 해주세요.”입니다. 이 말은 기도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 말 속에는 기도가 행동의 반대말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결코 행동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행동하지 않으니 기도나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니까 행동하는 것입니다. 행동해야 기도가 결론이 납니다. 그러니까, 기도했으면 기도한 대로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도하고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은 잘못된 기도라는 말입니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서서,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13-14)

 

엘리야가 올라가면서 그의 겉옷이 떨어졌습니다. 말씀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영적 계보가 이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진짜 영적 라인에 선 것은 아닙니다. 거기까지 기도하면서 왔지만, 중요한 것은 엘리야의 겉옷을 받아서 엘리야가 했던 것처럼 그것을 가지고 요단강을 치면서 똑같이 외쳐야 했습니다.

 

그는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 계시니이까하며 외쳤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가 바라보며 생각하고 훈련받았던 영적인 이야기들을 삶 가운데 실제로 기도하면서 행동해 봐야 진짜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그가 외치며 물을 치자 물이 갈라졌습니다. 그가 그 길을 건너는 순간 그는 진짜로 영적 계보에, 영적 라인에 온전히 서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진 신앙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기도는 많이 하지만 기도한 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기도는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맙니다. 정말 기도가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영적인 역사라면, 기도한 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가 완성됩니다. 특별히 영적 라인에 서서 영적 계보를 잇기 위해서는 기도한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병든 사람이 있습니까? 손을 얹어 기도해보십시오. 어떤 문제가 생겼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대로 금식하면서 엎드려 기도해보십시오. 어떤 악한 세력과 더러운 것을 보게 되면, 두려워하지 말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담대히 선포해보십시오. “악하고 더러운 귀신아, 예수 이름으로 명한다. 떠나라!” 의심하지 말고 행하여 보십시오. 역사는 기도한 후 믿음의 행함을 통해 일어납니다.

 

엘리사의 부르심의 이야기는 그의 행함에서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우리 삶의 클라이맥스 또한 기도 후 행함에 있습니다. 기도했다면 행동하는 겁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기도한 대로 행함으로 올바른 영적 라인에 서서 영적 계보를 이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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