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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7NW0OxYsk-I?t=1867

 

 

2020107일 수요예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13

가룟 유다: 끝까지 안 믿다가 결국 배신한 제자

(요한복음 1321~30)

 

1.   가룟 유다의 이름

 

가룟 유다라는 이름은 가룟이라는 지역 출신 유다라는 말입니다.

 

유다 자손의 지파의 남쪽 끝 에돔 경계에 접근한 성읍들은 갑스엘과 에델과 야굴과, 기나와 디모나와 아다다와, 게데스와 하솔과 잇난과, 십과 델렘과 브알롯과, 하솔 하닷다와 그리욧 헤스론 곧 하솔과” (15:21-25)

 

여기 보면 여호수아가 이끄는 가나안 정복전쟁 이후 유다 지파가 받은 땅이 나오는데, 그 중 그리욧 헤스론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가룟입니다. 그의 이름이 유다이고 그리욧도 유다 지파의 땅인 것을 보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과 같은 유다 지파 출신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열두 제자 중 대부분은 북쪽 지방인 갈릴리 지역 출신이었던 반면, 유다는 출신 지방부터 달라서 시작부터 다른 제자들과는 차별화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인 유다는 원래 아주 좋은 뜻입니다. ‘유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예후다인데,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실지라라는 뜻입니다. 또는 그냥 찬양함입니다. 그러고 보면 유다는 대표적으로 이름값을 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는 불행하게도 찬양의 사람이 아니라 저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2.   가룟 유다의 인물 됨

 

이름값을 하지 못한 불명예스러운 제자 가룟 유다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1)  신뢰받던 사람

 

놀랍게도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에게 신뢰를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활동하면서 재정적인 수입과 지출이 있었는데, 그때 회계 관리를 가룟 유다가 맡은 걸 보면, 다른 제자들로부터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겁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21-22)

 

평소에 가룟 유다가 의심을 받고 있었다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다에게로 몰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것이 누구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인지 몰라 서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평소에 가룟 유다는 신뢰성에 있어서 의심받지 않던 사람입니다.

 

 

2)  재물 욕심이 있었던 사람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이며 장차 예수를 넘겨줄 가룟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사람을 생각해서가 아니다. 그는 도둑이어서 돈 자루를 맡아 가지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것을 훔쳐내곤 하였기 때문이다.)” (12:4-6, 새번역)

 

유다는 신뢰성을 의심받지 않으면서도 사실은 교묘하게 돈을 횡령하던 도둑이었습니다. 딱 봐도 사기꾼처럼 생긴 사람은 하수입니다. 진짜 고수는 아주 선량하게 생기고 착하게 행동하다가 결정적일 때 남들의 뒤통수를 치는 사람입니다. 유다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극복하지 못했고, 결국 이 욕심 때문에 은 30에 사랑하는 스승을 팔고 배신한 것입니다. 그는 물욕의 지배를 받던 사람이었습니다.

 

 

3)  위선적인 사람

 

위선적이라는 것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입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전혀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가 한 말을 배신하는 위선자였습니다. 그는 겉으로 공의로움을 가장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요한복음 12장에서 아주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 바치는 마리아의 헌신을 보고, 유다는 왜 이 비싼 향유를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얼마나 맞는 말입니까? 얼마나 우리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의로운 목소리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을 가리기 위한 소리에 불과했습니다. 사실은 자기가 슬쩍슬쩍 돈을 횡령했는데, 더 많이 횡령할 수 있었던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하여 실망한 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위선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하실 때에 한 무리가 오는데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 하는 자가 그들을 앞장서 와서, 예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하시니” (22:47-48)

 

가룟 유다가 예수님에게 입을 맞춘 것은, 사랑의 입맞춤이 아니라 예수님을 팔아넘기기 위한 역겨운 행동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영어에 배반의 키스라는 표현이 생겼습니다.

 

 

3.   가룟 유다의 배신

 

왜 그는 자신의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했을까요? 성경에 나타난 그의 모습에서 적어도 세 가지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돈에 대한 욕심과 사랑

 

성경은 결코 돈 자체를 정죄하지 않습니다. 돈은 엄격하게 말하면 중립적인 가치입니다. 돈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돈 자체를 정죄하지 않는 동시에, 돈을 사랑하는 것은 정죄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딤전 6:10)

 

이 땅의 삶에서 돈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돈을 정직하게 벌고, 지혜롭게 저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돈을 모으고 저축하되, 결코 돈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기꺼이 내놓을 수 있을 때, 그것이 돈을 사랑하지 않는 증거입니다.

 

유다는 이미 돈에 의해서 지배되는 행동을 하는데,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그가 예수님을 판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한 행동이 아닙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그것은 지극히 계획적인 행동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 하는 자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말하되,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 그가 그 때부터 예수를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26:14-16)

 

이것은 아주 의도적이고 계획된 행동입니다. 결코 충동적인 행동이 아닙니다.

 

유다는 떠나가서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더불어 어떻게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줄지를 의논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여,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조하였다. 유다는 동의하고, 무리가 없을 때에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22:4-6, )

 

유다는 무리가 없을 때 예수님을 넘겨주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닙니다. 의로웠던 사람이 갑자기 바뀐 게 아닙니다. 유다에 대한 동정적인 소설도 있고 영화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2) 자기 의를 가장한 위선

 

자기 의를 가장한 위선이 결국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바른 말을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옳은 것을 강조하는 배경 속에 혹시라도 옳지 못한 자기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동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속을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64:6)

 

성경은 우리가 붙들고 자랑하는 인간의 의라는 것이 모두 더러운 옷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더러운 옷이라는 말은 더러운 걸레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의로워보아야 얼마나 의롭겠습니까? 사람이 선해보아야 얼마나 선하겠습니까?

 

만약 가룟 유다가 자기 내면에 존재하는 이런 부패의 본질을 보고 하나님 앞에 겸손할 수 있었다면 그의 삶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필요하게 자기 의를 앞세우면서 정의를 외쳐 댄 유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것은 자신의 위선을 커버하려는 연극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극의 최종적인 결과는 바로 예수님에 대한 배신이었습니다.

 

 

3)  사탄의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 연약함

 

성경에서 사탄이 유다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도록 미혹하는 모습을 보면 단계를 거칩니다. 사탄은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6:11)

 

여기서 간계는 영어로 ‘schemes’ 또는 ‘strategies’이니까, ‘계획들또는 전략들이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사탄은 탁월한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가 있어서 단계적으로 접근합니다. 사탄이 유다를 미끼로 삼는 그 유혹의 계획과 전략을 주목해 보십시오.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13:2, )

 

가장 먼저 사탄은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생각을 집어넣습니다. ‘예수를 한번 팔아 볼까?’ 이것을 보면,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생각이나 아주 불건전한 생각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가진 생각들 가운데 사탄의 전략이 있을 수 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만한 생각이라면 틀림없습니다. 생각을 집어넣은 다음에는 어떻게 합니까?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27)

 

사탄은 먼저 유다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아넘기려는 생각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사탄이 아예 그의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빵조각을 그에게 주시니까 들어간 게 아니라, 자기가 예수님을 팔 것을 예수님이 아신다는 것을 눈치 채고도 회개하지 않고 계속 그 방향으로 나아가며 예수님이 기회를 주시는 것을 거부하니까 사탄이 그런 불순종의 마음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건강하지 않은 생각들, 부정적인 생각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생각에서부터 사탄에게 끌려 다녀서는 안 되겠습니다. 물론 생각이 날 수는 있지만, 생각날 때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며 쫓아버려야 합니다.

 

불행하게도 이 생각을 거절할 수 없었던 유다는 결국 마귀의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이 유다를 향해서 마귀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비극의 날이 드디어 그에게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4.   가룟 유다의 죽음

 

가룟 유다는 자기가 예수님을 이렇게 팔아도 괜찮을 거라고 판단했지만, 예수님을 팔자마자 그의 마음속에 양심의 정죄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27:3-4)

 

그는 분명히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후회는 회개가 아닙니다. 후회는 회개의 단계로서 필요하지만, 후회 그 자체가 회개는 아닙니다. ‘회개, ‘후회를 하면서 마음을 돌이키고 개선즉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후회만 했습니다. 그리고 양심에 정죄가 일어나니까 어떻게 합니까?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27:5-8)

 

그런데 사도행전을 보면 유다는 목매어 죽은 것이 아니라, 배가 터져 죽었다고 나옵니다.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1:18-19)

 

가룟 유다는 목매달아 죽었습니까, 아니면 배가 터져 죽었습니까? 학자들은 둘 다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유다는 먼저 바위 위의 나무에 목을 매달아서 죽었는데, 그 후 나뭇가지가 부러졌거나 줄이 끊어져 바위에 떨어지면서 배가 터져 창자가 흘러나왔다고 생각됩니다. 이것이 가룟 유다의 비참한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는 불의한 돈으로 밭을 사고 거기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돈을 땅을 샀습니까? 요한복음 12장에서 요한이 증언한 것처럼, 평소에 예수님 일행의 재정담당자로 있으면서 슬쩍슬쩍 돈을 빼돌려서 그 돈으로 땅을 산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룟 유다는 공금횡령에 부동산 투기를 했던 겁니다.

 

유다에게 후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회개 없이 죽고 말았습니다. 유다에게 회개의 기회가 적어도 세 번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요한복음 13장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이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21) 하고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그때 그가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누가복음 22장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네가 입맞춤으로 나를 배반하려고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그때 맞습니다. 선생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마지막 기회는 마태복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27:3)

 

그가 뉘우쳤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뉘우쳤다는 말밖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뉘우침에서 한 걸음을 더 나아가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하지를 못했습니다. 유다는 후회했고 또 자신이 죄를 범한 것도 인정했지만, 용서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회개는 용서를 구하는 자리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피로 죄 씻음을 받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는 것이 회개입니다.

 

어떤 면으로 보면 가룟 유다보다 베드로가 더 무서운 죄를 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며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베드로는 통곡하며 눈물로 회개했지만, 유다에게는 회개가 없었습니다. 후회는 했지만, 주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는 겸손함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 없는 마지막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은 후에 어디로 갔을까요? 지옥에 갔습니까, 아니면 천국에 갔습니까? 가끔 어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가룟 유다가 구원받지 못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제자들 속에 있었지만, 그가 구원받은 흔적은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암시를 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13:10-11, )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실 때 베드로 차례가 왔고 베드로는 자기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발을 씻는 것만 의미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씻김이라는 것은 요한복음에서 죄 문제의 해결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러 오셨는데 그를 통해 죄 문제의 해결을 받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미 목욕했다는 것은 중생했다, 거듭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다는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를 가리키신 것입니까?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들 속에 있었지만,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거듭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교인들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교회에는 나오지만, 심지어 교회에서 직분도 가졌지만, 목사이지만, 정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경우입니다.

 

 

5.   가룟 유다가 남긴 교훈

 

그의 인생이 남긴 교훈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특권은 언제나 남용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

 

유다에게는 주님과 가까이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습니다. 또 돈주머니를 관리하면서 주님과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에게 가까이 있다는 특권이 그의 신앙을 보장하지는 못했습니다.

 

 

2)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은 비극이다

 

유다는 한 번도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오픈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속에 있는 검은 야심과 고민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성화(받는 구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자신을 오픈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사는지를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런 것이 목장에서 하는 나눔이 아닙니까?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슬프면 슬프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거기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드러내는 나눔이 필요합니다. 쉬쉬 하며 숨기다가는 곪아서 터집니다.

 

 

3)  이 시대에도 가룟 유다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유다의 배신을 아시고도 그를 제자로 선택하신 이유는 아마도 나중에 생기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교회를 향한 교훈일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유다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사람의 어떤 악함도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다

 

가룟 유다는 악하게 행동했지만, 그의 악함이 하나님의 섭리를 방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마침내 하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얼마 전부터인가 자꾸 가룟 유다를 동정하고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유다의 행위는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유다의 그 악한 행위까지 사용하셔서, 마침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셨습니다. 사람의 악함이 하나님의 뜻을 결코 막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뜻은 이루어지고야 맙니다.

 

유다는 주님의 뜻 가운데서 쓰임 받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불행한 제자였습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를 반면교사로 삼고, 나도 언제 실족할지 모르는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나아감으로써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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