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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M3AwubdRnEg?t=1638

 

 

202085일 수요예배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열두 사도 4

야고보: 열정적인 사도

(마가복음 119~20)

 

1.   야고보의 부르심과 가족 배경

 

야고보를 한마디로 묘사한다면 그는 열정적인 사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두 제자의 명단을 보면 두 집안의 형제가 들어 있는데, 그 중 한 집안은 이전에 살펴본 베드로와 안드레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형제는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복음서에는 야고보와 요한을 가리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아버지 이름은 세베대였고, 야고보가 항상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가 형이고 요한이 동생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마찬가지로 어부였습니다. 그들은 그저 물고기 몇 마리 잡는 낚시를 하던 어부가 아니라, 아버지 세베대가 운영하는 수산업 회사에 소속되어 어업을 크게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도 세베대의 회사에 소속된 어부들이었다고 봅니다. 오늘 본문은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 세베대가 상당한 재산가였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9-20)

 

성경은 아버지 세베대에 대해 어떻게 기록합니까? ‘품꾼들과 함께였다고 기록합니다. 이를 통해 아버지 세베대에게는 고용한 직원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아마 큰 배 여러 척과 여러 명의 어부들을 고용한 수산 회사 사장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가정이 부유했을 것이라는 또 하나의 암시를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한 사람이 예수를 따라갔다. 그 제자는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라서,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안뜰에까지 들어갔다.” (18:15, )

 

요한복음의 저자는 바로 야고보의 동생 사도 요한입니다.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록하면서 자기 이름을 밝히지 않고, 그 대신 자기에 대해 쓸 때는 주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아니면 또 다른 제자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제자가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이 사람이 바로 요한입니다.

 

요한이 대제사장과 아는 사이였다고 되어 있는데, 당시 대제사장은 종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아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주로 사두개인이었던 제사장들은 친 로마적인 사람들로, 로마를 등에 업고 상당한 권력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그러한 대제사장과 잘 아는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아버지 세베대를 통해서 알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수산업을 통해 부유했던 세베대가 제사장들에게 돈을 대며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입니다. 권력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사업가들과 늘 가깝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 집안은 대제사장과도 잘 아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16)

 

예수님은 베드로와 안드레를 먼저 부르신 다음, 이어서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를 따라갔다.” (19-20, )

 

야고보와 요한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결단입니다. 사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이야기인데, 부자 청년 관원이 예수님께 와서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그때 그는 근심하며 떠나갔습니다. 이처럼 가진 게 많은 사람은 주님을 따르기가 어렵습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주님을 의지하기보다 자기 소유를 의지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부유한 집안 자제들이었지만 귀한 결단을 보여줍니다. 주님이 부르실 때 즉시 아버지와 일꾼들을 다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던 것입니다. 바로 이 장면이 야고보가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됩니다.

 

 

2.   야고보의 성격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야고보와 요한 형제를 비교해보면 흥미롭습니다. 지난 두 주에 걸쳐 살펴본 것처럼, 베드로와 안드레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었습니다. 안드레는 조용하고 일대일로 접촉하며 친근한 대화와 교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반면에 베드로는 다혈질이고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기를 좋아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베드로와 안드레가 함께 행동하는 일이 별로 없는 것을 봅니다. 형제라 해도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따로 활동합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세트처럼 움직이고 늘 같이 행동합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성격이 비슷하거나 같은 성향을 가졌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를 보면 이 형제에게 같은 별명이 주어집니다.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3:17)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아너게’,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 별명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가진 성격의 단면을 보여 줍니다. 그러니까 야고보와 요한은, 좋게 말하면 굉장히 열정이 많고 뜨거웠던 사람들이고, 나쁘게 말하면 성격이 불같았다는 말입니다. 목소리도 크고 흥분도 잘하는 성격의 형제가 바로 야고보와 요한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길을 떠나서 예수를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 사람의 한 마을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도중이므로,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9:52-53, )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굳은 결심을 하지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중간에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잠시 들어가십니다. 거기 머물려고 하셨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이 자기 마을을 목적지로 오신 게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때문에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지냈기 때문에,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9:54, )

 

별명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자기들을 박대하니까 화가 나서 불이여, 하늘에서 내려와 저것들을 다 태워 버려라!’라고 명령해보겠다는 겁니다. 사실 그럴 능력도 없지만, 그들이 엄청나게 성질을 부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만큼 아주 열정적이고 불같은 기질을 가진 야고보와 요한이었습니다.

 

 

3.   야고보의 성숙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성숙은 자신의 기질과 성격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빨리 성숙해지고 어떤 사람은 정말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런데 감정을 잘 컨트롤하지 못하고 불같은 사람들은 영적 성장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감정적인 사람들은 열정이 있기 때문에 일을 열심히 잘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신앙이 성장하고 예수님을 닮는 인격으로 성숙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도 바로 그런 경향이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빨리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격정적인 성격과 감정적인 면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면서도 상당히 오랫동안 자신의 감정과 욕망의 포로가 되어 살아갔던 제자가 바로 야고보와 요한입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10:35-37, )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로마 정부를 물리치고 왕이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리시게 되면, 자기들 중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해 달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이와 똑같은 장면이 마태복음에도 있는데, 거기서는 야고보와 요한 형제의 어머니가 와서 요청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머니도 여기에 함께 끼어들어서 세 사람이 같이 요청한, 전형적인 모전자전 케이스입니다. 이러한 두 제자의 요청 앞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내 왼쪽에 앉는 그 일은, 내가 허락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정해 놓으신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10:38-40, )

 

어떤 세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고난의 잔, 십자가의 세례입니다. 그들은 이 잔과 세례가 뭔지도 모르면서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난과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야고보는 순교했고 요한은 끝까지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앞에 곧 다가올 고난은 격정적이고 감정적이던 이 두 사람을 성숙하게 하시려는 주님의 훈련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감정적인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사람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인생길에 고난을 허용하기도 하십니다. 모든 고난이 다 주님이 주시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 고난을 통해 훈련시키십니다. 고난의 불 속에서 단련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올 때 놀라지 말고, 오히려 훈련의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아야겠습니다.

 

 

4.   야고보의 사역과 죽음

 

야고보와 요한은 아주 적극적인 제자였기에, 제자들 가운데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아서 했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열두 명의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제자 중의 제자, 소위 중심 그룹(inner circle)인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입니다. 안드레는 베드로의 형제였지만 조용한 성향이었기에 거기서 빠지고, 야고보와 요한이 베드로와 함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항상 예수님과 함께 합니다.

 

예수님이 의도적으로 이 세 제자를 데리고 다니신 경우가 많습니다. 변화 산상에도 이 세 명만 함께 산 위로 올라갔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살리신 기적의 현장에도 이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나중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이 세 명을 더 깊이 데리고 들어가셔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이 저들을 편애하신다. 우리보다 저들을 더 사랑하신다.’라고 하며 기분이 나빴을 것 같은데 성경에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어머니까지 데려다 하나는 오른쪽에 다른 하나는 왼쪽에 앉혀 달라고 청탁을 할 때, 나머지 열 제자가 그것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들이 청탁을 했기 때문에 열 받은 겁니다. 자기들도 똑같은 것을 원하고 있는데 그들이 먼저 선수를 치니까 열 받았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이것을 생각해보면, 예수님이 평소에 그 세 사람을 따로 데라고 다니셨더라도 특혜를 주신 적이 없으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혜를 주셨다면 나머지 제자들이 거기에 대해 열 받았을 텐데, 그것 때문에 열 받았다는 기록이 없고 야고보와 요한이 청탁을 했을 때 나머지 열 명이 열 받았다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그 세 사람을 데리고 다니셨지만 결코 특별대우를 하신 적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이 세 사람이 얼마나 문제아였으면 그들만 데리고 다니셨겠습니까? 나머지 제자들도 그것을 다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만히 있었지, 특혜를 주시느라 데리고 다니셨다면 나머지 제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툭 하면 화를 내고 급하게 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세 명에 대해 특별히 더 훈련을 시키셔야 했기에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성경에는 야고보에 대해 더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야고보도 오순절에 성령을 받았는데,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요한이 같이 성전에 기도하러 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고보만 빠졌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야고보가 거기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입니다. 교회 전승에 보면, 실제로 야고보는 지중해 연안에 가서 많은 사람을 전도하다가, 심지어 스페인까지 갔다고 합니다.

 

요즘 스페인에 가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입니다. 한국 사람들도 많이 갑니다. 그런데 산티아고가 바로 야고보의 스페인식 이름입니다. 스페인의 가톨릭 교회가 야고보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만든 것입니다.

 

야고보는 어디를 가든지 해변으로 가서 자기의 옛날 어부를 하던 생각을 하면서 고기 잡는 어부들을 찾아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스페인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야고보는 다시 예루살렘 교회의 핵심 지도자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사도들 중 최초의 순교자가 됩니다. 그의 마지막 순교의 장면을 기록하고 있는 사도행전 12장을 보십시오.

 

그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12:1-2)

 

이 헤롯 왕은 헤롯 아그립바 1세로, 그는 로마의 임명을 받아 이스라엘을 왕으로 통치하면서도 유대인들이 혹시 반란을 일으키지는 않을지,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되지는 않을지 항상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굉장히 노력을 하던 중, 유대인들이 싫어하는 그리스도인들(나사렛 도당)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야고보를 죽인 것입니다.

 

역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목이 베여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이때 그를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시킨 아주 높은 관리가 있었는데, 그 관리가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사실 그도 그리스도인이요,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가 죽어 가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는 광경을 보고 그 마음을 돌이키게 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자기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야고보 사도여, 나를 용서하시오. 내가 당신을 팔았소. 그러나 나도 그리스도인이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이 함께 목 베임을 당하고 죽게 되는데, 죽기 직전 야고보가 이 관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주님이 당신의 마음에 평화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대는 나의 진정한 형제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얼싸안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 다음 나란히 목 베어져 순교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성격과 기질 같은 그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처음에는 많은 내적 욕망과의 싸움을 싸우며 살아야 했던 야고보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복음을 위해 자기 생명을 불꽃처럼 바치고 갔던 그가 바로 야고보였습니다.

 

 

5.   야고보의 교훈

 

마지막으로 그를 통해서 받아야 할 세 가지 교훈을 생각하고 싶습니다.

 

첫째, 성령으로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감정의 뜨거움과 예민한 변화를 가진 기질의 사람일수록 성령에 의해 계속해서 자기감정을 다루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불같고 어떤 사람은 아주 우울합니다. 그런 감정을 성령으로 다루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감정은 우리를 제자의 자리가 아닌 자기가 주인 된 욕망의 자리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인간적 야망을 비전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워야겠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인간적인 야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실 때 오른쪽과 왼쪽을 차지하고 싶은 야망이 있었습니다. 2인자, 3인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야망은 주님의 다루심과 만지심을 통해서 점차 세속적인 야망이 아닌 하늘나라와 복음의 영광을 사모하는 비전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셋째, 처음보다 마지막이 더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야고보는 인생의 젊은 날에 자기 속에서 일어나는 그 많은 감정과 욕망과 욕정 때문에 자신과의 심한 내적 싸움을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자기의 생명을 주 앞에 불꽃처럼 드려 아름다운 순교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들 중 순교자의 길을 처음으로 갔고, 그를 따라올 무수한 역사의 순교자들에게 주님이 주신 열정을 어떻게 자기감정이 아닌 주님을 향한 열정으로 바칠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본 야고보의 교훈을 통해, 우리도 그의 헌신과 충성을 본받아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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