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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1일 수요예배

예수신경 5

거룩한 사랑의 신경

(누가복음 736~50)

 

 

예수신경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1.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예수신경을 통해 자신의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는 단어는 다하고/다하여입니다. 영어로는 ‘all’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본질은 거룩한 사랑, 즉 세상과 구별된 사랑입니다.

 

사랑이 거룩하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전부(everything)’전무(nothing)’를 요구합니다. 사랑은 정말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난 당신을 가장 사랑해. 그리고 그 다음은 미스 김이고 그 다음은 미스 박이야.’라고 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으로 사랑해야 진짜 사랑입니다. 사랑은 나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상대방에게 나의 모든 것을 주는 것인 반면, 나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갖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는 전부이고, 나를 위해서는 전무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자유와 개성을 포기할 때 가능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참된 사랑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요일 3:16, )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분명하게 보여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모든 것을 끝까지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게 사랑하는 대상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랑이 거룩한 사랑, 참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은 거룩한 사랑,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끝까지 가지 못하는 때가 대부분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끝까지 사랑하지 못하게 되면, 사실 사랑하는 대상에게 해가 되기보다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가 됩니다. 끝까지 하지 않는 사랑은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삶을 어둡게 하며 신뢰의 끈을 놓게 만듭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의 비밀

 

1)  연인으로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분을 믿는 우리의 사랑도 거룩합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 중 한 사람이 주전 8세기에 하나님의 사랑에 관하여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고 그것을 선포했는데, 그의 이름은 호세아입니다. 호세아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갖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다시 새롭게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비밀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호세아 이전에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나는 너의 하나님이며, 너는 내 백성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호세아 이후에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이렇게 변했습니다. “나는 너의 애인이며, 진심으로 너를 원한다.” 호세아 이전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을 연인으로 표현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듯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이스라엘은 그와 동일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 가지 충격적인 것은, 호세아가 대담하게도 이스라엘의 사랑을 묘사하면서 스스로 가정을 버리고 나가 창녀가 된 아내의 사랑과 비교한다는 사실입니다.

 

호세아에 의하면, 너무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신실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아프셔서 이스라엘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애원하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에게 버림받은 연인이신 하나님은 마치 방송국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 내용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내가 그를 꾀어서, 빈들로 데리고 가겠다. 거기에서 내가 그를 다정한 말로 달래 주겠다. 그런 다음에, 내가 거기에서 포도원을 그에게 되돌려 주고, 아골 평원이 희망의 문이 되게 하면, 그는 젊을 때처럼, 이집트 땅에서 올라올 때처럼, 거기에서 나를 기쁘게 대할 것이다.” (2:14-15, )

 

호세아는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유배지에서, 광야에서 신혼여행을 즐기실 것이라고 합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은 자신을 되돌아보며, 처음에 그랬던 것처럼 주님에게 응답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호세아는 이스라엘이 주님께 다시 내 남편이시여라고 하며 결혼서약을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2:16)

 

이 사실,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연인이시라는 것이 호세아가 밝힌 비밀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으로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며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랑 역시 거룩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신경에서 우리에게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 온전하게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맺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2)  아바로서 사랑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에 의하면, 호세아는 하나님이 우리의 연인이시라는 비밀을 충분히 밝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하나님은 아바라는 거룩한 이름을 가지신 우리의 연인이심을 알기 원하십니다. 인간이 애인이나 아버지를 사랑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예수님의 비밀은, 제자들이 사랑의 아바와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맺게 해줍니다.

 

세 번째 주에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비밀을 드러내셨다고 해서, 다시 말해 하나님을 아바라고 부르셨다고 해서, 하나님께 불경하거나 지나치게 허물없이 또 버릇없이 대하신 것은 아닙니다. 사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아바가 되심을 독특하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한 분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23:9)

 

바로 이것이 아바라는 이름 가운데 들어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부르실 때 아바를 선택하신 것은, 예수신경에서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보여줍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사랑하시는 아바에 대한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때, 우리도 그분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신경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 사랑이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사랑할 때에만 참으로 거룩한 사랑이 됩니다.

 

 

3.   거룩한 사랑의 삶

 

미국의 초창기 퀘이커 교도였던 존 울먼(John Woolman)은 거룩한 사랑을 품고 예수신경으로 사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었습니다. 리처드 포스터도 그의 책 <생수의 강>에서 그에 대하여 성경을 제외하고 내게 존 울먼의 일기보다 더 큰 영향을 준 것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젊은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의 길을 걷게 된 울먼의 신앙고백이 바로 예수신경이었습니다. 울먼의 사랑을 거룩하게 만든 것은 이 예수신경이 그의 삶 전체를 만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울먼의 삶은 모든 사람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바의 거룩한 사랑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울먼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1722년 영국으로 건너갔는데, 거기서 그는 노예제도가 모든 사랑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어긋나는 것이며, 복음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명령한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영국으로 떠나던 날, 그는 사랑하는 아내가 걱정할까 봐 날이 채 밝기도 전에 침대를 슬그머니 빠져나와 인사도 하지 않고 집을 나섰습니다. 배에서도 좋은 선실에 머물기보다는, 질척거리고 흙투성이인 배 뒤편의 비좁은 공간에서 선원들과 함께 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는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노예무역의 비열함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에 도착한 후 울먼은 마차 사업이 동물을 학대하고 마부를 혹사시킨다고 하면서, 말을 타지 않고 런던에서 영국 북부까지의 먼 거리를 걸어갔습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울먼의 건강은 급격히 나빠졌고, 안타깝게도 그는 영국 요크에서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마지막 장례식에 참석한 그의 가족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사실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바의 거룩한 사랑에 온전히 복종하며 자신도 그 사랑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예수님이 기대하시는 일들을 울먼의 삶에서 발견합니다. 울먼을 변화시킨 이 거룩한 사랑의 신경은 우리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예수신경을 따라 살 때 우리의 삶도 변화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온 마음과, 온 목숨과, 온 뜻과, 온 힘을 다해 진정으로 사랑할 때에만, 그 거룩한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크게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납니다.

 

 

1)  거룩한 사랑이 가져오는 언어의 변화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극도로 자제했습니다. 사실 그것은 십계명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주는 자기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자를 죄 없다고 하지 않는다.” (20:7, )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발음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함부로 부를 일도 절대 없을 것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비슷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자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14:62)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대신 권능자라는 높임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쳐주실 때도 유대인들의 관습대로 높임말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6:9)

 

이 시대의 유대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특히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는 동시에 유대교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유대인들을 가리켜 메시아적 유대인(Messianic Jews)’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유대교의 이런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기록할 때 God 대신 ‘G-d’라고 기록함으로써 God란 발음을 못하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할 필요가 없지만, 약간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이 자기 말을 안 들으면 죽음의 번개로 위협하는 제우스와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무서워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한 사랑을 바탕으로 살아갈 때, 그리고 전심을 다해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게 됩니다.

 

 

2)  거룩한 사랑이 가져오는 행동의 변화

 

거룩한 사랑은 언어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행동에도 즉시 영향을 미칩니다. 예수신경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핵심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그분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그분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란 무엇입니까? 바로 그 사랑에서 벗어난 모든 행동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아바와의 거룩한 사랑의 관계를 깨뜨렸음을 깨닫고 우리의 헌신을 새롭게 하려고 할 때, 회개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회개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이 진정으로 어떤 것인지 바라보면서 느끼는 철저한 경외심입니다. 아바 아버지는 우리를 향한 사랑에 있어 아무 흠도 없이 정결하시며, 더할 나위 없이 장엄하시며, 정말 놀라울 정도로 신실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 선한 의미의 당혹스러움을 느낄 때, 그것은 우리 마음에 회개를 불러일으키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이 죄라는 것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이야기를 보면, 그는 매우 키가 작은 사람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여리고에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였고 그것도 세리장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로마 제국에 요구한 금액 이상을 거두어들이면, 그 부분은 자신의 몫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세리들의 일반적인 관행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세리들은 그런 횡령으로 악명이 높았고,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죄인들의 명단에 세리를 포함시켰습니다. 세리 삭개오는 일정한 세금을 횡령함으로써, 사랑의 하나님을 위해 사랑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는 거룩한 삶을 파괴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웃과 그들의 재산을 착취하고 빼앗음으로써, 그들을 향한 올바른 사랑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아니, 사랑을 베풀기는커녕, 해를 끼치고 분노와 증오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일단 거룩한 사랑을 배우게 되면, 죄의 행동이 사랑의 행동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은 나무에 올라가 있는 삭개오를 발견하시고 자청해서 그의 집에 머물겠다고 제안하십니다. 통상적으로 유대인들은 세리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 그것은 세리의 집이 정결한 곳(kosher)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삭개오의 마음으로부터 거룩한 사랑과 회개를 이끌어내셨고, 그래서 합당하지 못한 집에서 식사를 하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 사랑을 깨달은 삭개오는 자발적으로 일어나서 이웃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새롭게 하는 가운데, 자기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속인 것은 네 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19:8)

 

실제로 그렇게 하면 자기 재산은 다 없어집니다. 그런데 거룩한 사랑을 맛보고 그 사랑을 가지게 되니까, 돈만 알던 사람이 돈이 아닌 사랑에 가치를 두는 사람으로 변화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삶에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사랑이 들어오도록 오픈을 할 때 이런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3)  거룩한 사랑이 가져오는 예배의 변화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은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십니다(36, 40). 이처럼 예수님은 세리이든 바리새인이든, 차별하지 않고 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대개 한쪽으로 쏠리게 마련인데, 예수님은 누구든지 똑같이 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 죄인인 여자 하나가 나타납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37-38)

 

이 여자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닦습니다. 그런 다음 비싼 향유를 그분의 발에 붓습니다. 이에 토라를 지키고 전통을 중시하는 바리새인이었던 집주인은 아주 불편해집니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39)

 

시몬은 이 여자를 죄인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창녀를 가리키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그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지만 예수님은 그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이야기를 하십니다.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41-43)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이 여자는 자신이 큰 죄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예수님께로 나와 자신의 사랑을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자기를 아바의 거룩한 사랑과 용서로 인도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정적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47)

 

이 여자가 좋은 일을 해서 죄 사함을 받은 게 아니라, 자신이 죄 사함을 받은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배입니다. 이 여자의 이야기는 믿는 자의 참된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 잘 보여줍니다. 어떤 때에 참된 예배가 가능합니까?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인지, 즉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뜨린 죄인임을 깨달을 때 일어납니다.

 

둘째, 참된 예배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그 거룩한 사랑이 얼마나 변함없이 신실한가, 그리고 은혜로운가를 깨달을 때 일어납니다.

 

셋째, 참된 예배는 나를 향한 그 사랑의 문을 여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라울 정도로 선하신 분인가를 깨달을 때 일어납니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는 그분 앞에 참된 예배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 점검해보기 원합니다. ‘내가 드리는 예배는 참된 예배인가?’

 

나는 하나님의 거룩한 사랑을 깨뜨린 죄인임을 깨닫습니까?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없이 신실하며 은혜로운지를 깨닫습니까? 나는 그런 사랑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선하신 분임을 깨닫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깨달은 사람은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그분의 은혜의 발을 깨끗이 닦아드리게 됩니다. 그분께 향유를 붓고 그분의 발을 닦는다는 것이 내 삶에 어떻게 표현이 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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