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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329일 수요예배

예수신경 9

예수신경의 이야기 (3)

마리아와 소명

(누가복음 146~55)

 

1.   우리 모두를 위한 소명

 

우리 각자는 모두 소명이 있습니다. ‘소명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vocation인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일반적인 의미의 소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신경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바로 일반적 소명입니다반면, 구체적인 의미에서의 소명은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임무를 말합니다. 자기 자녀를 양육하는 것, 영적 은사를 계발하는 것, 직장에서 일하는 것, 사업체를 운영하는 것 등이 특별한 소명입니다.

 

소명이란,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기 위해 살아가는 어떤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인생이 바로 그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소명입니다. 그래서 소명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의 능력을 최고로 발휘하는 것, 즉 그가 영적, 정신적, 육체적 만족을 발견하는 어떤 것, 그리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수단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은 세상에서의 소명이 그 자체로 거룩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꼭 명심해야 하는 사실이 있는데, 모든 생산자와 노동자는 자신의 생업 밖에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며 살도록 부르심을 받았든지, 그것은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거룩한 소명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요셉이나 다윗이나 다니엘이나 에스더나 베드로나 바울이나 성 프란시스나 테레사 수녀를 닮았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분은 우리에게 너는 내가 지금 만들어 가는 자신이냐?”라고 물으십니다.

 

나중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는 왜 빌 게이츠처럼 부자가 되지 못했니? 너는 왜 앨버트 아인슈타인처럼 천재가 못 되었니? 너는 왜 펠레처럼 위대한 운동선수가 되지 못했니? 너는 왜 한경직 목사처럼 위대한 목회자가 되지 못했니?”라는 식으로 절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너는 왜 내가 원하는 너 자신이 되지 못했니?”라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셔서 우리를 이 땅에 놓으셨는데 우리가 그것을 제대로 몰랐거나 알아도 내가 원하는 것을 했다면 그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세계적인 변증가인 오스 기니스(Os Guinness)는 베스트셀러였던 자신의 <소명(The Call)>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은사에 어울리는 자리를 찾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선택하신 자리를 위해 그분이 우리의 은사와 우리를 창조하셨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마침내 그곳에 도달할 때에만 우리는 참된 우리가 될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냐를 보시고 거기에 맞는 것을 찾아봐주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대로 거기에 맞는 은사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로 그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2.   마리아의 소명

 

이 교훈을 잘 배운 사람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1)  안 좋은 꼬리표를 달게 된 마리아

 

하나님의 특별한 사역은 힘든 과거를 사명으로 바꾸시는 것이라고 마리아는 말합니다. 마리아는 아주 힘든 일을 겪었습니다. 그것도 어린 십대 소녀의 나이에 그랬습니다.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찾아와서 초자연적인 임신에 대하여 알려줍니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0-33)

 

마리아는 즉시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았습니다. 그것이 사실로 이루어진다면 이제 자기가 속한 공동체 사람들은 자기에게 간음한 여자라는 꼬리표를 붙일 것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실과 다른 오해이지만, 한 번 붙으면 쉽게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한 번 인식이 박히면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즘 한국이나 미국이나 전세계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이 가짜 뉴스입니다. 가짜 뉴스를 몇 번 접하면 진실을 말해줘도 오히려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섭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잘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겠습니다


천사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말이기 때문에 마리아는 천사에게 묻습니다.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4)

 

십대 처녀이기 때문에 남자와 관계함이 없이 어떻게 아이를 낳겠느냐고 묻습니다. 남편 요셉은 꿈을 통해 계시를 받았는데, 마리아는 천사가 와서 이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틀림없이 이루어질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꿈을 꾸었으면 긴가 민가 할 수도 있지만, 천사가 와서 말해주었으니 틀림없는 겁니다. 그러나 음녀라는 꼬리표는 십대 소녀였던 마리아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확신을 주는 말을 해줍니다.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5-37)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메시아의 어머니가 되는 소명을 주셨고, 마침내 마리아는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38)

 

그 후 마리아는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하고, 거기서 영광스러운 기쁨의 노래를 부르며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믿음의 응답을 보여줍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데, 그것을 마리아의 노래또는 마리아의 찬가라고 부릅니다. 라틴어 제목으로는 마크니피카트(Magnificat)’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노래는 아주 최악이 될 수 있는 꼬리표를 메시아적 소명으로 바꿔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표현입니다.

 

 

2)   가난하지만 해방을 소망하는 마리아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차디크즉 토라(율법)를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아나빔(Anawim)’이었습니다. 아나빔은 경건한 빈자라는 뜻으로, 가난하면서도 경건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마리아의 친족 아나빔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그들은 가난 때문에 고난을 당했습니다. 둘째, 그러나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모여 자신들의 소망을 표현했습니다. 셋째, 그들은 그곳에서 정의가 실현되고 압제가 끝나며 메시아가 오실 것에 대한 자신들의 열망을 하나님 앞에 표현했습니다. 이러한 아나빔의 특징은 마리아의 삶, 특히 마리아의 노래를 통해 잘 표현됩니다.

 

먼저, 마리아는 가난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모세의 법을 따라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을 때 그들이 한 일을 보십시오.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ㄷ)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22~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집 태에서 처음 난 아들과 가축의 수컷 첫 새끼를 다 구별하여 하나님께 바치도록 되었습니다(13:12). 그렇게 함에 있어 그들은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새 두 마리를 봉헌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왜 새 두 마리를 바칩니까? 사실 이에 대해 더 좋은 질문은, “왜 그들은 양을 드리지 않았는가?”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은 존재하지 않는 신에게 아기를 제물로 드렸던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양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들을 낳았든지 딸을 낳았든지, 몸이 정결하여지는 기간이 끝나면, 산모는 번제로 바칠 일 년 된 어린 양 한 마리와, 속죄제로 바칠 집비둘기 새끼 한 마리나 산비둘기 한 마리를, 회막 어귀로 가져 가서 제사장에게 바쳐야 한다. 그 여자가 양 한 마리를 바칠 형편이 못 되면,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져다가, 한 마리는 번제물로, 한 마리는 속죄제물로 바쳐도 된다. 그리하여 제사장이 그 산모의 죄를 속하여 주면, 그 여자는 정결하게 될 것이다.” (12:6, 8, )

 

마리아와 요셉이 드린 것은 새 두 마리였습니다. 그것은 양을 드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율법이 규정한 제물입니다. 그러니까 요셉과 마리아 가족이 바친 예물은 가난한 가족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마리아는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소망을 잃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아나빔의 또 다른 특징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노래를 보면, 마리아는 경험을 통해 깨달은 대로, 불의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염원을 표현합니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도다” (51-53)

 

그런데 이 마리아의 노래는 사실상 사회 혁명을 선언한 것과도 같습니다.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는 헤롯 대왕이었는데, 그는 권력을 남용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인 독재자였습니다. 그는 심지어 권력을 넘본다고 생각되면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가차 없이 죽이는 아주 악한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노래에서 마리아는 헤롯 대왕이 자기가 행한 일에 대해 보응을 받을 것이며, 그의 권력은 바람에 날아 갈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그녀가 친히 낳은 아들을 왕으로 세우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그는 헤롯과 달라서 자비와 공의로 다스리실 것입니다.

 

마리아의 명예는 추락했고 또 그녀는 가난했지만, 하나님은 그녀의 삶을 새롭게 만드셔서, 메시아가 곧 나타날 것이라는 복음을 선포하는 소명을 그녀에게 주셨습니다.

 

예수신경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할 때 우리의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신앙인데,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우리 과거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가 아주 형편없는 것이든, 무모한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상관없이, 그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마리아처럼 우리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모습 그대로를 주님께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포함한 모든 것을 받아주십니다.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고, 내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오직 나 자신의 경험과 고난의 다양함과 깊이에 대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으로 바라보실 수 있으며, 나의 진정한 모습을 알고 계신 분이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은 아무리 정확하다고 해도 어느 정도 왜곡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나를 보는 눈도 완전히 정확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100% 정확하게 나를 아시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우리의 소명이 우리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든지, 그것은 우리의 모든 과거를 깨끗이 쓸어 없애줍니다. 소명대로 살 때 과거의 상처가 치유됩니다. 상처의 치유는 치유집회에 가서 되는 게 아니라, 소명대로 살 때 치유가 됩니다. 소명이 과거를 새롭게 해줍니다.

 

우리는 깨끗한 사람이 되어서 소명을 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의 상처들을 가진 채 있는 모습 그대로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에 대한 증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상처가 무엇인지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소명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주실 것도 알았습니다.

 

 

3)  아이들을 양육할 소명

 

아기 예수가 출생한 이후, 요셉과 마리아의 부부관계에 대하여 다양한 전승이 교회 역사에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부부관계를 전혀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부부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의 형제들이 예수의 사촌들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마리아와 결혼하기 전에 요셉이 낳은 자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마리아가 실제로 그들을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예수님을 낳은 다음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부부관계를 통해 다른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견해를 택하든지 간에 마리아가 그 자녀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요셉은 예수님이 아주 어렸을 때 죽었기 때문에, 마리아의 책임이 더욱 무거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과부로 많은 아이들을 키워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래도 아들들이 있었으니 조금 나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장남으로서 30세까지 목수 일을 하며 집안을 돌본 것입니다.

 

마리아에게는 소명이 생겼습니다. 자기 자녀들의 신앙이 성장하도록 보살피는 것입니다. 예수 외에도 마리아에게는 남자아이가 4명이 있었고, 여자아이는 최소 2명이 있었습니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13:54-56)

 

남자아이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은 야곱과 그 가족들이 이집트로 가서 번성했는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들어오면서 노예가 되어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바로 그 애굽에서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2:13-15).

 

거기 있는 동안 그들이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과거에 일어났던 이스라엘의 노예생활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야곱과 요셉이 자기 유골을 가나안으로 가져가라고 하며 가나안을 소망한 것처럼, 자신들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날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들의 이름은 전부 다 이스라엘 족장 야곱(야고보)과 그의 아들들인 요셉, 시몬(시므온), 유다입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아(여호수아)인 예수와 그의 형제들은 이스라엘이 노예생활에서 해방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름을 가진 다섯 명의 유대 소년이 됩니다.

 

마리아는 이 아이들을 양육했고, 그들의 이름은 그녀에게 하나님 나라를 향한 아나빔의 소망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주신 소명의 일부였습니다. 또한 그녀의 아들 예수가 메시아가 될 것이라는 비밀도 그 소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4)   아이들을 교육할 소명

 

그 비밀에는 마리아가 예수에게 얼마나 많은 교육을 시킬 것인지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우리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성경에서 읽으면서도 예수님을 그 어머니 마리아와 연관시키는 일에는 실패합니다. 그래서 48절을 읽을 때 이렇게 읽는다는 농담도 있습니다.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개신교인을 제외하고.”

 

로마 가톨릭처럼 마리아를 다소 지나치게 숭배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개신교인들은 마리아를 너무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가 예수에게 끼친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복음서들이 마리아가 예수의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마그니피카트(마리아의 노래)’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명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주요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고(46, 49) 하나님께 굶주림을 채워주실 것을 요청한 것처럼(53), 예수님도 주기도문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시며, 굶주린 자들을 축복하셨습니다(5 팔복).

 

둘째, 마리아가 가난한 아나빔 출신인 것처럼, 예수님도 가난한 자들을 축복하고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푸셨습니다. 특히, 마리아가 과부인 것처럼, 예수님도 과부들에게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나인 성 과부의 아들이 죽었는데 살려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거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7:13). 과부를 보시고 마음이 뜨거워지셔서 그 아들을 살려주신 것입니다.

 

셋째, 마리아가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불의한 권력을 박탈당하도록 기도한 것처럼(51-52), 예수님도 불의한 권력과 싸우셨습니다.

 

넷째, 마리아의 기도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강조하는 것처럼(50, 53-55), 예수님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다섯째, 마리아가 기도하던 이스라엘의 구원에 대한 관심은(54-55)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안타까워하시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3:34-35)

 

 

3.   소명을 이루는 삶

 

마리아와 예수님 사이의 모든 유사점들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비전과 소명을 메시아인 자신의 아들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우리 각자의 소명은 자신의 특별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 대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전해주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 각자가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전해줄 수 있는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으로서, 분명히 요셉과 마리아가 받아들였던 전통입니다. 그것은 경건한 유대인의 근본적인 고백인 쉐마입니다. 쉐마는 유대교 신앙의 핵심이며, 예수님도 그것을 자신의 신앙고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집안에서 쉐마를 먼저 들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를 신앙으로 훈련시키는 원리인 쉐마의 비밀은 간단합니다. 그것은 세대를 서로 연결시켜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며, 우리 자녀를 우리의 신앙과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을 우리의 삶 가운데로 끌어들이고 우리 자신을 그들의 삶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러한 가정이 거룩한 가정입니다.

 

또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계속해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소명에 대한 이야기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것은, 세대 간의 관계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이 마리아의 삶을 받아들이시고, 그것을 소명 이야기로 변화시켜주신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과거를 하나님께 드릴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소명으로 바꾸어주십니다.

 

마리아의 이웃들은 마리아를 소문대로만 판단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주신 말씀이 너무 커서 다른 사람들의 험담은 그녀의 귀에 거의 들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사람들 틈에 앉아 예수님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면, 그녀는 애굽에 피난 갔을 때와 나사렛에서의 날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약 30년 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자신에게 약속한 것을 하나님께서 지금 자신의 아들 예수를 통해 이루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이전에 마리아가 노래하고 간절히 염원했던 것이 이제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들려지며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 앞에 길게 늘어선 믿음의 무리는, 마리아가 친히 낳은 아들 예수를 단순히 그 시대의 또 하나의 선생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만들어줄 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그 풍성함으로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그 소명을 이룬 마리아는 만세에 걸쳐 복 받은 여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의 소명을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가 남았든지 상관없이, 지금 하나님께서 내 삶을 통해 이루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바로 그것을 이루어드리는 삶이 소명자의 삶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도 마리아처럼 복 받은 사람이라 불릴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살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매일매일 소명을 따라 신실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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