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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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페이스북(Facebook)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우리 교회에서는 예배를 어떻게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재개하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등을 나누었습니다.
그 중 특히 우리 교회가 소속된 Scioto Valley 노회에서 보내준 권면사항을 나누었는데 그 주된 내용은 이렇습니다.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다시 시작하는 데 있어 성경 말씀을 기준으로 하라. 즉,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가장 약한 사람들(노년층, 환자 등)의 처지를 먼저 배려하면서 교회를 오픈하는 것을 결정하라.’
우리 미국장로교는 전통적으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돌보며 사역하는 교단으로 유명합니다. 그에 걸맞게, 교회당에서 모이는 예배와 집회를 재개할 때 몸이 약한 분들의 입장을 고려하여 시기와 내용을 조절하라고 노회에서 권면사항을 보내준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 내용을 제 페이스북에서 나누었습니다.
이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좋아요’를 눌러주셨는데, 그 중 제가 아는 목사님 한 분이 흥미로운 댓글을 달아주셨습니다. “목사님, 좋은 토론 주제가 되겠네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인데 약자를 고려하라는 관점이 좀 인간적이지 않은가?’내지는 ‘교인을 배려하는 것이 결국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다.’라는 것!”
그 목사님이 써주신 글을 보며, 충분히 그런 식으로 다른 방향에서 생각하는 분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저는 우리 신앙생활의 기초가 무엇보다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인데, 형편이 어려울 때는 예배에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인간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는 것은 크리스천으로서 아주 중요하지만, ‘경건의 삶’의 교재인 <영적 훈련과 성장>에서 저자인 리처드 포스터(Richard Foster)는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면서 사역만 하는 것을 가리켜 ‘우상숭배’라고까지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그런 관점이 아니라 다른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우리가 예배당에 모이지 않고 라이브영상으로 예배하는 것과, 다시 모이게 될 때 최대한 몸이 약한 분들을 배려해서 결정하려는 것은 모두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차원입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마태복음 22:37~40), 구약성경 전체의 핵심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정확히 깨달은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모든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는 말씀에 요약되어 있습니다.”(롬 13:9)라고 썼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결국 ‘이웃 사랑’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도 요한도 요한일서에서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요일 4:20-21)라고 강조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주로 집안에만 머무는 상황이 지속되지만, 이것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핵심임을 깨닫습니다.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관점에서 결정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