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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11일 주일예배
✦ 예수님의 비유 5 ✦
“최고의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마태복음 13장 44~46절)
1. 비유의 배경과 내용
여러분이 가진 것 가운데 가장 값비싼 보물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자동차나 집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보다 손으로 가질 수 있는 것 중 가장 비싼 보물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은 그런 게 없다고 실망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이아몬드 반지일 수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금일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돈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귀중품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여러분은 그 가장 귀한 것을 어디에 보관하고 계십니까?
만일 어느 집에 갔더니 그 귀한 보물을 거실에 아무렇게나 팽개쳐 놓고 귀한 줄 모르거나, 안전한 곳에 보관하고 있지 않다면, 참 이상하고 어리석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시대에 그런 사람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아주 귀한 보물을 아무 데나 내팽개치고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귀한 줄도 알지 못합니다. 심지어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도 세 절밖에 안 되는데, 여기에도 두 개의 비유가 나옵니다. ‘보화 비유’와 ‘진주 비유’입니다. 지난주에 살펴본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처럼, 오늘 본문에 나오는 보화 비유와 진주 비유 역시 ‘쌍둥이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교훈을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비유들과 마찬가지로 예수님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보화나 진주는 예수님 당시 중동 지역에서 흔한 이야기 주제였습니다. 보화를 가지고 랍비들이 가르치거나 진주 이야기로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흔히 떠도는 이야깃거리를 예로 들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며 잘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택하여 하나님 나라의 한 측면을 보여주려고 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4절)
천국은 마치 밭에 숨겨진 보화와 같은데, 어떤 사람이 그것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그 보화가 있는 밭을 샀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 아닙니까? 아주 상식적입니다. 그런데 고대 중동 지역에서는 보물이 그런 식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한국과 이스라엘은 비슷한 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도 특히 한반도는 일본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끼어서 여러 번 강한 나라들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것처럼 이스라엘 지역도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사이에 끼어서 항상 외부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역사를 보면 초강대국인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침략을 받고 그들의 압제 밑에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전쟁이 나서 적군이 침략해 오거나 갑자기 강도가 들이닥칠 때 자기들의 보물을 지키기 위하여 보물을 항아리에 넣어서 땅속에 숨기는 일이 많았습니다. 집에 두면 적군이나 강도가 왔을 때 빼앗길 수 있지만, 밭에 숨겨 두면 숨겨 둔 사람만 알기 때문에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숨겨 둔 주인이 죽으면 아무도 그 위치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밭의 일꾼이나 소작농이 일하다가 삽이나 쟁기 끝에 쨍그랑하면서 뭔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니까 바위인가 하고 파보니 거기에 항아리가 있습니다. 깜짝 놀라면서 이게 뭔가 하고 속을 들여다보니까 거기 엄청난 보물이 들어 있는 겁니다. 그것을 발견하고는 너무너무 기쁘지만, 일단 그것을 제자리에 다시 숨겨 둡니다.
이 밭은 남의 땅이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서 그 밭을 사야 합니다. 사게 되면 그 밭이 합법적으로 자기 재산이 되기 때문에, 일단 그것을 그 자리에 안전하게 숨겨 두고 빨리 달려가서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그 밭을 삽니다. 이것이 보화 비유입니다.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5-46절)
이 진주 비유에서 ‘장사’ 즉 상인은 당시 도매상이거나 크게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당시 진주는 주로 사해나 페르시아만이나 인도양에서 잠수부들이 건져 올렸습니다. 사해의 진주는 품질이 낮았습니다. 사해는 아주 짠 소금 바다이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의 진주는 품질이 꽤 좋았습니다. 진주는 당시 부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수요가 많았고, 그래서 진주 상인들은 값진 진주를 구하기 위해 이곳저곳으로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유명한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가지고 있던 진주 하나의 가격이 지금 가치로 따지면 4백만 달러가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상인이 바로 그런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한 것입니다(46).
이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마어마하게 비싼 진주를 발견했습니다. 지금 이것을 사지 못하면 다시는 살 수 없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사이 다른 사람이 와서 이것을 보고 사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재빨리 가서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그 진주를 삽니다. 이런 진주를 살 수 있을 정도라면 굉장히 돈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전 재산을 팔아 진주를 사는데, 이것이 진주 비유입니다.
2. 보화와 진주를 발견했을 때
오늘 보화 비유와 진주 비유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보물을 발견했고, 다 팔았고, 샀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값진 보화 또는 진주를 발견합니다. 그래서 전 재산을 다 팝니다. 그다음에 와서 그 보물을 삽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은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살 정도로 지극히 값진 보화나 진주와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값진 것이라서, 그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말씀을 예수님이 하고 계십니다.
먼저 어떤 사람이 밭에 숨겨진 보화를 발견합니다. 또 어떤 상인이 진주를 발견합니다. 둘 다 엄청나게 비싼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보물은 아무나 발견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 보물이 눈앞에 있어도 이것이 얼마인지는 아는 사람이나 알지, 모르는 사람은 보물을 봐도 이것이 그렇게 값비싼 것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가끔 뉴스에 그런 것이 나오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졌는데 자기 딴에는 꽤 돈을 많이 받는다고 생각하며 5천 불에 팔았습니다. 그래서 기분 좋다고 하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값어치가 500만 불짜리였다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봅니다. 골동품이나 그림 같은 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뉴스가 가끔 나옵니다.
우리가 사는 오하이오 주 북부 클리블랜드 근처에 19세기 말 테일러라는 부자 농장주가 살았습니다. 하루는 그에게 제이미라는 청년이 찾아와 일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테일러는 그에게 일자리를 주고 비록 창고였지만 숙소도 제공해 주었습니다. 몇 주가 지나면서 그를 살펴보니까 꽤 괜찮고 성실한 젊은이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테일러는 그에게 다른 일들도 더 맡겼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이미는 농장주 테일러에게 와서 자기가 고백할 게 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그의 딸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하면서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테일러는 화가 나서 호통을 쳤습니다. “내가 너에게 잘해주었는데 그 결과가 겨우 이거냐? 너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자격이 없어. 당장 짐을 싸서 나가!” 하고 쫓아냈습니다. 그날로 제이미는 그 집을 떠나야 했고, 그 후로 테일러는 그의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몇 년이 흐른 후 테일러는 제이미가 잠을 자던 창고를 청소하다가 그가 자기 이름을 새겨놓은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테일러는 제이미가 써놓은 이름을 보고 너무 놀라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제이미의 본명은 제임스 A. 가필드(James A. Garfield)였던 것입니다. 그는 당시에 이미 오하이오 상원의원을 거쳐 30세의 나이로 미국 연방하원의원으로 선출된 사람입니다. 그 이후 무려 9선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훗날인 1881년 미국의 20대 대통령이 된 사람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암살당해서 죽고 말았습니다.
테일러가 제이미와 자기 딸의 결혼을 허락했더라면, 자기 딸은 미국 하원의원 부인이 되었을 뿐 아니라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가필드는 나중에 다른 농부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테일러는 제이미라는 젊은이에게서 미국 대통령감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이 보물을 발견하지 못한 채, 무시하고 쫓아냈던 것입니다.
물론 암살당했으니까 선견지명이 있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핵심이 아니라 이 테일러라는 사람에게는 제이미라는 사람의 귀한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보물과 같은 인물을 알아보지 못할 때가 참 많습니다. 인재를 알아보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사람이 아니라 저 사람을 썼으면 훨씬 더 좋았을 텐데 겉모습만 보고 잘못 판단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도 까불고, 말 안 듣고, 뛰어다니고, 장난치는 아이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되겠습니다. 그 아이가 장차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귀하게 여기면서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어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천국은 지극히 값진 보화와 진주와도 같습니다.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다스리는 영역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신 것은 천국이 온 것이고, 예수님이 계신 곳은 천국이 임한 곳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중심으로 살고 있다면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천국이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바리새인들 속에(inside) 천국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among) 있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니까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키신 표현입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그들 중에 계신 것이 곧 하나님 나라가 그들 중에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자신이 곧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이처럼 지극히 값진 보화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곧 지극히 값진 보화이십니다. 천국을 발견하는 것은 곧 예수님의 발견하는 것이고, 천국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곧 예수님 가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예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역사를 보면 항상 그래왔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귀한 보물로 본 것이 아니라 걸림돌로 봐서 그를 박해하고 죽는 데로 몰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들과 창기들과 세리들과 죄인들은 예수님을 보화와 진주로 발견했습니다.
실제로 어떤 사람들이 30여 년 전 뉴저지 근해에서 수백 년 전에 침몰한 보물선을 발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배의 파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최신식 장비로 탐사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작은 동전들과 금속 파편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이 기대하던 금덩어리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장비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들이 찾던 보물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 날 잠수부가 그 지점으로 내려가서 숨겨진 보물을 발견했습니다. 보물 상자의 뚜껑이 물의 압력으로 인해서 다 벗겨져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기계가 그냥 지나가며 그것을 보물 상자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이 잠수부는 그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물을 찾던 그 보물 사냥꾼들처럼 겉모습만 보기 때문에 보화이시고 진주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예수?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다. 훌륭한 분이다. 좋은 분이다.’라는 정도로 생각하지만, 이분이 정말 천국의 보화이며 진주이신 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슬픔과 고난의 종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초라하고 무기력한 예수가, 모든 사람이 그토록 찾고 있는 보물이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가치 있는 분이심을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자기들을 최고의 민족으로 일으켜 줄 강력한 메시아를 원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보물이신 예수님을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가진 편견 때문입니다. 요즘 말로는 ‘확증 편향’입니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입니다. 그런 편견 때문에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리들과 창기들과 죄인들은 참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기뻐합니다(44). 이처럼 천국 보화를 발견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기쁨입니다. 단순히 감정적인 기쁨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으실 때 이런 기쁨을 경험하셨습니까? 가장 귀한 예수님을 믿었을 때 기쁘셨습니까?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이렇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없다면, 아직 천국 보화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드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천국은 잔치이고 기쁨입니다. 세상이 알지도 못하고 세상이 줄 수도 없는 기쁨입니다.
지난번 세례받으신 형제님이 간증 때 언급하신 것과 같이, 세상이 주는 행복과 즐거움과 기쁨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쁨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길어야 몇 주 정도이고, 짧으면 불과 몇 시간도 못 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남으로 누리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로마 감옥의 바울이 그랬습니다. 천국 보화를 발견한 자로서, 감옥에서 기쁨을 경험하며 빌립보서에 보면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감옥에 갇혔는데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까? 정말 기쁨이 충만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도 보십시오. 베드로전서를 보면, 여러 가지 시련들 중에서 큰 기쁨이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천국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엄청난 기쁨을 맛봅니다.
3. 보물을 발견한 사람이 하는 일
1) 다 판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가서 먼저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팝니다. 본문에서 지극히 값진 보화나 진주를 발견한 사람은 즉시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너무나 값진 보화나 진주를 발견한 기쁨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 팔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정말 다 팔라는 것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얻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은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마 19:22)
그때 그 부자 청년의 반응은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마 19:23)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는 많은 재물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준다는 말씀을 순종할 수 없어서 근심했습니다.
그의 경우에는 실제로 재산을 팔 것을 예수님이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다 해당하는 말씀입니까? 사실 예수님께서 그 부자 청년에게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신 것은, 그에게는 재물이 예수님보다 더 귀하여 재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돈이 우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산을 다 팔고 가난한 자들에게 주면 어떻게 된다고 하셨습니까?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이 “보화”가 바로 예수님이고 영생이고 천국입니다. 재물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 그 청년에게는 천국에 들어가는 데 돈이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장애물을, 우상을 제거하고 예수님을 최우선 가치로 믿고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모든 사람에게 재물을 다 팔고 따르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에 보면, 유대인의 지도자이며 공회원(요즘으로 하면 국회의원)이었던 니고데모에게 재물을 팔고 따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리고의 세리장으로 부자였던 삭개오도 자기가 잘못한 것을 갚겠다고 했지, 예수님이 다 팔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눅 19).
그런데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전 재산을 다 팔라고 하신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양자택일의 선택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가족이냐, 예수냐? 재산이냐, 예수냐? 사업이냐, 예수냐?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자체가, 가정과 재산과 안락한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중국이라든지, 특히 중동 이슬람권이나 북한 같은 데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아주 힘든 일입니다. 북한에서는 크리스천들이 잡혀서 총살당하는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렇게 편안하고 자유롭게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합니다. 목장에서 감사 제목을 나누자고 하면 “아무것도 없어요. 맨 날 똑같아요.”라고 할 게 아닙니다. 사실 이렇게 편안하게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게다가 졸면서 예배드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존다고 누가 총을 쏩니까?
그런데 반대로, 만일 지금 누가 총을 들고 들어와서 예수 믿으면 다 죽일 것이고 지금이라도 나가면 살려주겠다고 하면, 계속해서 믿으시겠습니까? 저도 밖으로 도망갈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참혹한 최후를 맞는 것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있는 사람으로서 예수를 따른다고 할 때는 그저 대충 ‘나도 따르겠다’라는 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희생할 각오를 해야만 했습니다.
예수님은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눅 9:62)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할 때는 모든것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어놓아야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 16:24)
2) 산다
두 번째는, 전 재산을 판 것을 가지고 가서 보물을 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기 때문에 이렇게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런데 이것이 과연 손해입니까? 과연 천국을 위해 전 재산을 팔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까?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다는 말입니까? 예,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극히 값진 보화나 진주를 발견한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았다고 해서 손해 본 것입니까? 사실 손해 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이익입니다. 다 판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그 밭 또는 진주를 사서 그것이 자기 소유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판다는 것은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것과 같은 모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값진 보화를 발견한 기쁨 때문에 자발적으로 한 행동입니다. 혹시 덕을 볼지도 모르니 다 팔아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최고의 가치를 발견한 기쁨 때문에 다 판 것입니다.
1달러짜리 1,000장을 모아 놓으면 부피가 꽤 될 겁니다. 1달러짜리 천 장을 모아서 박스에 넣어 놓으면 아주 가득 차고 무게도 꽤 될 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10억 달러(1 billion)짜리 수표를 한 장 써서 작은 봉투에 넣어두고, 이쪽은 무거운 1달러짜리 1,000장이 들어 있는 박스를 놓아둡니다. 와서 보니까 이쪽은 묵직하고, 저쪽은 봉투 한 장으로 얇고 별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쪽의 1,000달러가 들어 있는 박스를 선택합니다. 물론 1,000달러도 꽤 괜찮습니다. 그런데 10억 달러에 비하면 비교도 안 되게 적은 액수 아닙니까?
그런데 10억 달러짜리가 든 아주 가벼워 보이는 봉투 한 장을 선택하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어 보일 수가 있습니다. ‘저 묵직한 것을 고르지, 왜 저 얇은 것을 고르나?’ 하고 조롱하고 비난하며 ‘저 사람, 참 어리석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어리석습니까? 누가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그것을 가지는 것은 먹지로 하는 게 아니라, 이것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너무 기뻐서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그 관점을 통해 다른 모든 것을 볼 때, 지금 여기서 천국 메시아(구원자)이신 예수님의 다스리심을 이 땅에서 구체적으로 받으며 천국의 약속된 복을 지금 여기서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우리가 이 땅에서 생명, 즉 구원 얻고 천국에 가는 것을 보장해 주실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풍성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고생, 고생만 하다가 그냥 천국만 쓱 가는 게 아닙니다. 이 땅에서도 주님 때문에 풍성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천국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어서 죽으면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도 천국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천국의 가치가 아니라 다른 것을 따라가게 되면 약속하신 그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로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3)
이것이 이 땅에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하고 나아가면 모든 것이 주어진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안에 들어 있는 것을 10억이라고 해보십시오. 예수님 한 분만 붙들면 10억 가지가 다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한 분만 붙들고 가면 됩니다. 그러면 10억이 다 나에게 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을 붙들지 않고 자기가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따라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1번을 따라가다가 간신히 이루게 되면 뿌듯해하고, 그다음 2번을 따라가다가 또 간신히 이루면 또 뿌듯해합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1, 2, 3, 4, 5, 6... 해서 10억까지 언제 가겠습니까? 그렇게 사니까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래서 우리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예수님을 붙들면 다 있는데, 다른 데서 하나, 하나 각개 전투를 하고 있으니 얼마나 피곤합니까? 그렇게 살면 삶이 굉장히 피곤합니다. 자기가 다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해도, 평생 염려와 불안에서 벗어나지를 못합니다.
예수님을 분명히 믿는데, 분명히 구원받았는데, 항상 염려, 항상 불안, 항상 걱정에서 헤어나질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풍성한 삶은 알지도 못한 채 평생 걱정과 불안과 염려와 괴로움 속에 살게 됩니다. 이게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왜 풍성한 삶이 주어져 있는데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워하셨고, 그것을 잘 이해한 사도 바울이 쓴 에베소서 같은 데를 보십시오. 너무 안타깝게 외칩니다, 왜 이걸 모르느냐고. 하나님 나라의 보화를 발견하고 모든 것을 희생한 사람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 비밀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그는 자기가 과거에 유익하다고 여겼던 것들, 요즘 말로 하면 아이비리그 학교를 서너 군데 나왔고, 일곱 자리 숫자 연봉을 받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오히려 그런 것은 다 해가 된다고 여기고, 심지어 그런 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여겨서 다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그가 정말 그것을 다 잃어버렸습니까? 다 버렸습니까? 우선순위를 바꿨다는 겁니다. 진짜로 다 버린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니까 원래 갖고 있던 그 좋은 것들이 예수님을 섬기고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는 도구로 사용이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것들을 잘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 시민권 같은 것을 아주 잘 사용했습니다.
우리가 각 목장에서 선교사님과 협력하는데, 선교사님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분은 왜 저기 가서 저렇게 고생을 하나?’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 협력하는 선교사님들 중에 그냥 살았으면 굉장히 돈 잘 벌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굳이 저 힘든 데 가서 저렇게 고생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선교사님들이 오시면 뭐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선교사님,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라고 하는데, 그분들은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여러분, 미국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 우리에게 고생한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최고의 보물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선교지는 힘듭니다. 환경이 힘들고 어렵고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보화를 발견한 기쁨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무엇을 먹고사나, 뭘 해야 하나, 직장은 어떻게 하나, 사업은 어떻게 하나,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나 등으로 고민하고 고생하고 염려하는 것을 보시면서 ‘여기서 왜 이렇게 고생하세요?’라고 하며 선교사님들이 우리에게 도전하시는 것입니다.
봉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를 열심히 하는 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뭐 저렇게 고생하면서 하나? 그냥 좀 적당히 하세요, 적당히.’ 이런 마음이 드십니까?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억지로 하면 힘들겠지만,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격하고 기뻐서 자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모르니까 ‘왜 저렇게 고생하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30여 년 전 플로리다(Florida) 주 근해에서 어떤 잠수부가 17세기에 침몰한 스페인 보물 상선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또 영국 서포크(Suffolk)의 한 밭에서 쟁기질을 하던 농부가 로마 시대의 아름다운 은쟁반들을 담은 그릇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보물을 발견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겠습니까? ‘어? 보물이네.’라고 하며 그대로 놓아두고 가서 똑같은 삶을 살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보물을 발견한 사람은 이전과 똑같은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보화와 진주를 발견하셨습니까? 혹시 아직 발견하지 못하셨다면, 이 보화이며 진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금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며 마음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열어 드리면 됩니다. 문을 부수고 들어오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자발적으로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러분 중에 이 보화와 진주를 발견한 분이 많이 계실 것입니다. 이미 믿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가진 것을 다 파셨습니까?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팔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왜 주저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주저하십니까? 다 파는 것이 절대 손해가 아닙니다.
그것을 팔아서 보화와 진주를 사십시오. 살 때까지는 내 것이 아닙니다. 발견만 했다고, 교회에 나온다고, 성경의 내용을 안다고, 이 보화가, 이 진주가, 내 것이 아닙니다. 사야 합니다. 즉, 즉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이 보화를, 또 진주를 발견하고, 그래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팔고, 이 보물을 샀다고 고백하는 아름다운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