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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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PtoKtfiA_wI?si=4eDINjT63hJBe4pX&t=181

 

 

 

2023123일 주일예배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 1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이사야 401~11)

 

[들어가는 말]

 

오늘은 교회력에서 대강절 첫 주일입니다. 이제 올해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2023년을 돌아볼 때 여러 가지 우울한 소식들이 많았습니다. 여전히 경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오래전에 써놓은 글을 보면 경제가 안 좋다고 썼습니다. 그 몇 년 후에 쓴 글을 보니까 또 경제가 안 좋다고 썼습니다. 경제는 좋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가 안 좋고 살기가 힘든데 주가는 아주 높으니 이상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희망적인 소식도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Black Friday에 엄청나게 물건들이 팔렸다고 합니다. 또 여행객이 기록적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TSA 검색대를 통과한 사람의 숫자가 Thanksgiving Day 며칠 전부터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 경제가 회복된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가진 자는 더 부해지고 못 가진 자는 더 가난해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또한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는 전투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대강절에 주님이 다스리시는 샬롬, 즉 평화를 기다립니다.

 

사실상 인류의 모든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왕과 주인으로 모시지 않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다 자기가 왕이 되고 주인이 되어 사니까, 왕과 왕끼리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모든 아픔과 악한 일들은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다 보니까 일어나는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을 맞이합니다.

 

대강절은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기간인 동시에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대강절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기간인 동시에, 종말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미 오셨기 때문에, 사실은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기간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이번 대강절 말씀 주제를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으로 잡았습니다. 당장에 급급한 인생이 아니라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으로서, 예수님이 언제 오셔도 괜찮은 인생으로 준비해보자는 의미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   대강절은 온 세상에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는 계절이다

 

오늘 이사야 40장의 배경은 오래전 포로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그들과 또 오늘 우리에게 오늘 본문 말씀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1)

 

지금 하나님의 백성 유다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이스라엘이 솔로몬 이후에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졌는데,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했고, 남유다도 앗시리아를 물리치고 패권을 잡은 바벨론에게 점령당하고 포로로 끌려간 상황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도 역시 위로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지금 코로나 기간이 공식적으로는 끝났는데 그 여파가 대단합니다. 우리 교회도 그렇지만, 코로나 이전으로 아직 회복이 안 된 교회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코로나 때보다 더 많아졌다는 교회는 거의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 이전에 비해서 70% 정도만 나오면 많이 나오는 것이라고 서부 LA 쪽에서 이야기합니다.

 

코로나 이후에 교회를 안 나오기 시작하더니, 처음에는 온라인으로 예배했는데 그 후 온라인 예배도 거의 하지 않으면서 안 나오다가, 이제는 코로나가 끝났지만 여전히 안 나오는 교인들이 최소 30% 이상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이 미국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그런 현상입니다. 출석만 영향이 있는 게 아니라 영적인 상태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계속 어려운 상황이고 위로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강퍅한 마음으로 살다가 얻어맞고 징계를 받았습니다. 원하지 않는 심판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가서 지칠 대로 지쳤으며, 그래서 하나님께 울부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살아남기는 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위로보다는 심판과 징계를 경험한 그들에게 하나님은 이제 때가 되었다고 하십니다. 진노의 때가 아니라 위로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시대가 어떻게 바뀐 겁니까?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2)

 

위로의 때에 무엇이 일어났는지 여기서 세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노역의 때가 끝났다고 합니다. 노예나 전쟁 포로로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던 노역이 끝났습니다. 둘째, 죄악이 사함 받았습니다. , 용서를 받았습니다. 시간만 지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셋째, 벌을 받을 만큼 받았습니다. ‘배를 받았다는 것이 벌을 받을 만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노의 때가 지나고 벌을 받을 만큼 받고 하나님의 용서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위로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런데 백성은 그 말을 듣지 못합니다. ‘설마 포로기가 끝났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예언자들도 자기가 전하는 말씀도 믿지 못합니다. ‘설마 포로기가 끝날까? 설마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까?’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6)

 

무엇을 외치라고 하시는 말씀입니까?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7-8)

 

갑자기 풀과 꽃은 무슨 말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서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이사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66권인데, 구약은 39권이고 신약은 27권입니다. 그런데 학자들에 의하면, 이사야서 전체가 66장인데 1~39장을 제1 이사야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40~66장은 제2 이사야라고 부릅니다. 성경의 구약과 신약 장수와도 똑같은 것이 참 신기합니다.

 

이사야서는 40장부터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2 이사야라고 하느냐 하면, 1~39장에 나오는 경고와 저주와 무서운 말씀과는 다른 회복의 메시지가 선포되기 때문입니다. 1~39장을 보면 하나님은 죄를 지은 백성을 심판하시지만 때가 되면 그들을 회복시키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이사야의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과연 그 말이 이루어질지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 바벨론은 여전히 너무나 강력해 보였고, 유다 백성은 자기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무슨 회복이 이루어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가 만으로 35년인데, 그것도 얼마나 깁니까? 하지만 유다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70년 후에 돌아온다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70년이면 우리의 두 배인데, 이것은 3세대에 해당하는 그렇게 긴 기간 동안 포로로 있는데 어떻게 회복되느냐고 이해가 안 되어 말하는 것입니다.

 

회복을 외치라는 명령이 이해되지 않기에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외칠 말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외쳐보았자 무슨 변화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70년 동안 지내왔는데 바벨론이 무너질 리가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결코 회복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러한 불신에 맞서서 말씀하십니다. 때가 되면 용서하시고 반드시 회복을 이루시겠다고 하십니다. 이사야를 통해 오래전 주신 말씀은, 때가 되면 회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예상하지 못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그때, 회복이 오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심판의 때가 지나갔다. 이제 하나님의 위로만이 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제 모든 백성은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지금 이 대강절이 바로 우리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기간입니다. 대강절이 교회력의 새해로서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주님의 백성에게는 11일도 세상에 사는 일반 시민으로서 새롭게 시작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날이 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대강절 첫째 주일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시작하는 힘을 주는 시간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 착한 일을 하도록 가르쳐도 잘 안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나쁜 짓은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가 막히게 잘해서 신기할 정도입니다. 성경으로 보고 우리 경험을 봐도, 악한 일을 가르치지 않아도 악한 것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인간은 악한 성향을 가지고 때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간만 보면 소망이 없습니다. 바다에서는 상어가 위험하고, 산에서는 호랑이나 산사자, 곰 등 맹수들이 위험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인간이 제일 위험합니다. 동물들은 배신이라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배신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역사를 보아도 배신으로 이루어진 역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 주제로 쓰인 책도 있습니다. 배신으로 이루어진 사건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 유명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만 해도 자기가 믿던 부하에게 암살당하지 않았습니까?

 

인간은 정말 무서운 존재입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벌일지 알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정말 악을 쏟아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사람은 실망을 주고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소망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없을 때 복잡하고 괴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니까 복잡하고 괴롭습니다. 예수님이 계시기에 우리에게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면 우리는 다 신하이고 종이니까 왕의 말씀을 다 같이 따르면 됩니다. 그런데 각자 예수님 없이 다 왕이 되면 왕끼리 싸워야 하니까 다툼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인하여 심판 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대신 죄악을 담당하셨기에, 그분 때문에 우리가 용서받았습니다. 주님의 용서와 화해의 사역으로 인해 우리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너는 안 돼. 너는 소망이 없어.’라는 식입니다. 혹시라도 사시다가 뭔가가 잘 안 되어서 넌 안 돼. 네 인생은 틀렸어.’라는 메시지가 자꾸 마음에 들어온다면, 그것은 절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탄의 음성입니다. 그럴 때 예수 이름으로 물러가라.’ 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우리를 비판하고 침울하게 만드는 사탄의 세력에 맞서 인간의 편에 서서 죗값을 치러주시며 새 출발을 하도록 해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예수님을 붙들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을 통해 죄악에 갇히고 다시는 소망이 없다고 생각하던 인간에게 용서가 선포되고 위로의 메시지가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사망 권세가 힘을 발하지 못하고 사망에 대한 사망 선고가 선포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대강절에 우리는 주님이 통치하시는 세상에서 새로운 회복의 시대가 왔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2.   대강절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3-4)

 

이것은 하나님의 사자가 선지자들에게 명령하는 것입니다. 대강절에 우리가 결국 기대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5)

 

대강절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목격하는 때입니다. 구약에서 사람들의 가장 큰 소망은, 바로 하나님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싶어 했습니다.

 

성전 또는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이 영광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광야에서는 성막을 세웠는데,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구름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사실 구름이 그렇게 낮게 내려오지 않는데 하나님이 영광으로 오신 것입니다. 성막에 구름 기둥으로 임하셨습니다.

 

이사야가 그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6장에서 우리가 누구를 보낼까?”라고 하셨을 때, “제가 여기 있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라며 나아갔습니다.

 

원래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중보자라든지, 대제사장이 1년에 딱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섬길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뵙고 싶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고 싶었지만, 1년에 딱 한 번, 그것도 딱 한 명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성전의 지성소에 1년에 한 번만 들어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음껏 나와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만난다고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포로기 동안 성전이 파괴되고 바벨론에 끌려가버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나님을 만날 방법이 없어진 겁니다. 1년에 한 번이라도 대제사장이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을 할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러다 70년이 지난 후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선포하십니다.

 

1년에 딱 한 번 한 명 제사장만 그러는 게 아니라, 그런 특정인만 아니라, 모든 백성에게 당신을 드러내신다고 하십니다. 그 백성만 아니라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모든 사람에게 모습을 드러내 주십니다. 포로 기간에 만날 수 없었던 하나님이 이제 나타나신다고 약속해 주시니, 포로 생활을 하던 백성이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우리도 갑작스럽게 코로나 상황이 벌어지면서, 평소에 예배가 많았지만 그냥 왔다 갔다 하다가 막상 교회당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니까 반응이 극과 극이었습니다. ‘, 이럴 수가 있는가? 우리가 같이 모여서 예배했는데 어떻게 예배를 못 드리게 될 수 있는가?’ 하는 분들도 계셨고, 어떤 분들은 , 정말 편하게 잘됐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이셨습니까?

 

하나님을 못 만나다가 이제 만난다고 하니까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목격하기 위해서 백성들이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백성의 모든 죄악을 제거하는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자기를 정결하게 해야 하나님을 뵐 수 있습니다. 피를 뿌리며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의 모든 죄악이 사라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백성은 하나님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님을 만나는 곳이 어디입니까? 광야입니다. 사막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만난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나오는 것을 모세 때 출애굽의 이미지로 해석하려는 의도가 있는 겁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광야를 지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를 40년 걸려 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새로운 출애굽인 바벨론에서의 탈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시고 마침내 다시금 재건된 성전에서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분의 임재를 기다리는 백성이라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광야에서 하나님을 뵐 준비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광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광야라고 하면 시적으로 낭만적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광야에서 하루만 있어 보면 살려달라고 할 정도로 힘든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광야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광야에서, 사막에서 길을 준비하라는 것은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 전에 장애물들을 제거하라는 말입니다. 그런 장애물들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골짜기는 깊이 패였으니까 돋우어야 합니다. 산과 언덕은 낮아져야 합니다. 고르지 않으면 평탄하게 되어야 합니다. 험한 곳은 허물어서 평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높은 곳은 낮아지고 낮은 곳은 높아져서 탄탄한 평지가 되어야 하나님이 지나가실 수 있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까 험하다고 못 가시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렇게 표현을 해주신 것입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예비하라는 명령은 세례 요한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금욕생활을 하고 절제하면서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자기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하며 오실 메시아(구원자)를 준비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이사야 말씀처럼 자기가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라고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회개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이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그냥 세례만 받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게 아니라, 자기가 회개하고 그 죄 사함을 받았다는 의미로 세례를 받는 것을 선포했습니다.

 

우리가 대강절에 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겁니다. 세례 요한처럼 주님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주님 오신 날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내 삶에 어떤 것이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지금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매주 오셔서 예배를 드리실 때마다 정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십니까? 하나님이 정말 함께하시며 내 마음을 만져주심을 경험하며 예배하십니까? 아니면 왜 이렇게 설교가 길지?’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매주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예배 때 하나님을 못 만난다면 도대체 언제 하나님을 만나겠습니까? 예배 때도 못 만난다면 다른 때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 때 반드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모처럼 정말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예배하려고 하는데, 앉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흐뜨러진 게 보이면서 거슬리고 예배가 잘 안 됩니다. 그날따라 찬양대에서 삑 소리가 납니다. 예배를 잘 드리려고 하는데 설교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또 대표기도도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또 예배당 장식도 마음에 안 들고 걸립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드려야 하는데 못 드리게 하는 장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장애물들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늦어서 허겁지겁 예배당에 도착해서는 제대로 될 수가 없습니다. 일주일의 6일 동안은 자기 맘대로 살다가 주일예배 시간이 되어 허겁지겁 와서는 참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매일 매순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살다가 와야 합니다.

 

우리는 들어올 때 준비해 온 헌금 봉투를 헌금함에 넣는데, 헌금을 넣을 때 돈만 넣는 게 아닙니다. 설교 말씀 중 한 가지만 잡아서 일주일 동안 그것을 실천해 보고자 애쓰며 사는 겁니다. 더 믿음이 성숙한 분들은 매일 말씀 묵상, 큐티, 또는 성경 통독을 하면서 하루에 하나씩 말씀을 뽑아서 그대로 해보고자 열심히 살며 실천을 해보고, 그 실천한 것을 헌금 안에 넣어서 가져오는 겁니다. 돈만 드리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그 안에 넣는 겁니다.

 

그래서 헌금함에 넣을 때 하나님, 제가 일주일 동안 이렇게 주님의 뜻대로 살아보고자 열심히 살았습니다. 이 삶을 드립니다.’ 하며 헌금함에 넣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서 너무 오래 있으면 뒤의 분이 기다리니까 미리 그 생각을 하고 오셔서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 제 삶을 드립니다.’ 하며 넣으시면 됩니다.

 

헌금은 돈만 넣는 게 아닙니다. 일주일 동안 살아온 삶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 마음을 모아서 봉헌 시간에 다 같이 그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돈만 드리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을 드리는 시간이 봉헌 시간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왜 우리가 이렇게 같이 모여서 공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혼자 집에서 해도 되는데 왜 굳이 같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예배당에 도착해서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앞뒤 좌우를 살펴보고, 혹시라도 나의 도움이 필요한 지체는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돌아보니까 저분은 오늘 뭔가 좀 슬퍼 보인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뭔지는 몰라도 주님, 저분의 마음을 위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면서 예배를 시작하는 겁니다.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가정에서도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어야 합니다. 직장이나 사업체에서도 예수님이 그곳의 주인이 되시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갈등이 있는 곳에 내가 평화의 도구로 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지금 주님이 오신다면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성령님이 강력하게 임하시도록 장애물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욕심을 내려놓고, 자아를 내려놓고,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욕심인지 어떻게 압니까? 어떤 것이 있을 때 아예 처음부터 이건 아니라고 포기한다면 괜찮지만, 할지 말지 끝까지 놓지 못하고 고민이 된다면 그것이 욕심 때문이고 그런 것이 우상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있으십니까? 그런 장애물들을 제거할 때 주님을 만나게 되고 풍성함과 평안이 주어지게 됩니다.

 

 

3.   대강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주인임을 선포하는 때이다

 

이제 회복의 장벽이었던 죄악은 용서받았습니다. 길을 예비하라는 명령이 전달되었습니다. 회복되리라는 명령에 대한 저항도 해결되었습니다.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이제 회복을 말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사명을 받은 자에게 무엇을 외치라고 말합니까?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0-11)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집트 바로 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키시고 열 가지 재앙을 통해 애굽의 신들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 열 가지 재앙은 모두 이집트 신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홍해를 갈라 광야로 인도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악한 세력은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을 목자라고 하고 인간을 양으로 비유합니다. 시편 23편에서 우리는 양을 돌보는 목자의 마음을 봅니다. 양들을 위해 헌신적이고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자신이 선한 목자라고 하십니다. 양 떼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주는 참 목자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양 떼를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목자의 모습을 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리워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거짓 목자에게 속아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이상적인 왕이라고 하는 사람이 다윗인데, 그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늘 찾던 그가 사라진 후 그런 왕이 다시 나오지 않았습니다.

 

열왕기서나 역대기서를 읽어보십시오. 그들은 왕에게 속고 왕 때문에 실망하고 왕 때문에 눈물 흘리면서 이상적인 왕인 메시아(구원자)를 고대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세상 지도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지만, 하나님은 이 땅의 진정한 샬롬(평화)을 위해서 다스리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실망한 적이 있으십니까? 당연히 있으실 겁니다. 사실 사람에게는 실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잘 살펴보면 몇 가지라도 실망할 만한 부분들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신뢰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에스겔 34장을 보면 실패한 왕들이 나오는데, 자기 욕심만 채우는 목자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믿고 보내셨던 왕들이 실패했을 때 하나님은 슬퍼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친히 이 백성의 왕이 되겠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제 진정한 목자로 오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분이 보내실 목자는 우리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우리를 위로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셔서 샬롬의 세계로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대강절은 우리의 왕 되시며 진정한 목자이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꿈꾸는 시간입니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가짜 목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선한 목자가 아니라 삯꾼이라고 예수님도 요한복음 10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고 양도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나 맹수가 오면 양을 버리고 도망가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목자이십니다. 거짓 목자는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오지만, 주님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10:10). 양에게 생명을 주실 뿐 아니라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길만을 따라가면 됩니다.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리고 우리가 더 풍성히 얻도록 하려고 오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생명을 살리는 일을 감당하고, 다른 사람들이 풍성한 삶을 살도록 이웃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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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절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하여 지연되고 상실된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시간입니다. 회복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반문하던 선지자를 일으키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마침내 당신의 영광을 드러냄으로써 온 인류의 빛이 되신 주님께서 이 대강절에 바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십니다.

 

목마른 영혼들, 위로가 필요한 영혼들, 삶의 길을 잃은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님으로 인해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전해주기를 원합니다. 매 순간의 삶에서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주님의 길을 준비함으로써, 주님이 다스리시는 샬롬, 진정한 평화의 나라를 누리는 복된 우리의 삶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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