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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STFZXDdAJOc?t=145

 

 

20221120일 추수감사주일예배

추수감사절 메시지

최악의 상황에서 드리는 최고의 감사

(시편 571~11)

 

0.   감사의 중요성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주일이 되면 오늘만 감사하자는 게 아니고, 평소에도 감사해야 하지만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이런 기회를 통하여 다시 한 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리며 나아가자는 의미입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가 있는데, 거기에 존경받는 랍비였던 아키바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러분도 들어보거나 읽어보셨을지 모릅니다. 하루는 그가 먼 길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책을 보기 위한 등잔과 유대인 경전인 토라(모세오경)를 가지고 갔고, 또한 시간을 알려줄 수탉과 먼 길을 타고 갈 수 있는 나귀를 데리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 도중 날이 저물어 한 마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날 밤 머물 수 있는 집을 찾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감사하는 사람이었던 그는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더 유익하게 해주시려고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결국 그는 마을 변두리 한구석에 천막을 치고 잠을 자야 하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길에서 잠을 자려니까 잠이 오지 않아서 토라를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등불을 켰습니다. 그러나 하필 그때 바람이 불어와서 등불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또다시 하나님이 분명히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시 잠을 청하며 누웠는데 이번에는 가까이서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고, 거기에 나귀가 놀라서 그대로 도망쳐 버렸습니다. 먼 길을 가기 위해 꼭 필요한 나귀가 도망갔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불평이 나올 만한 상황인데도 그는 하나님이 이것도 분명히 더 유익하게 하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나귀가 도망칠 때 덩달아 놀랐던 수탉도 멀리 달아나버렸고,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토라(성경)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이 분명 더 유익하게 해주실 거야.’라고 생각하며 또다시 감사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찍 일어난 그는 짐을 챙겨서 마을 안으로 들어갔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전날 밤에 도둑 떼가 습격해서 마을은 초토화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다 죽임을 당한 아주 끔찍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만일 랍비 아키바의 천막에 등불이 그대로 켜져 있었더라면, 또는 나귀와 수탉이 그와 함께 있어서 울어댔다면, 그 역시 죽음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하는 아키바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셨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전해집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힘든 상황에도 감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우리가 감사할 일이 있어서 감사하는 게 아니라 감사하며 살면 삶이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감사하며 사십니까? 좋은 일이 벌어져서 감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괴로운 일이 벌어져도 감사하십니까? 우리가 감사하며 살지 못하는 이유가 많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지금 당장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전에도 계속 강조했지만, 굉장히 좋은 일이 내게 벌어졌거나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무엇을 물어야 한다고 했습니까? ‘과연 그럴까?’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 과연 이것이 나에게 좋은 일일까?’를 묻고, 나쁜 일이 벌어졌을 때 과연 이것이 나에게 나쁜 일일까?’를 물어야 합니다. 나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 내 눈으로 해석하려 하니까, 좋은 일이 오면 좋아하고 나쁜 일이 오면 괴로워하며, 그래서 감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거절당해서 간신히 천막을 치고 자는데 등불이 꺼지고, 또한 기껏 데려온 나귀와 수탉이 짐승 울음소리에 놀라 도망가버리는 것을 볼 때, 그런 상황에 어떻게 감사하겠습니까? 그게 어떻게 좋은 상황입니까? 당연히 그런 일들은 나쁜 상황이고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실까?’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판단하니까 감사보다 원망과 불평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러한 일들이 사실은 주님께 감사할 제목이라는 것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을 잘 알지 못합니다. 불과 몇 시간 후의 일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름대로 판단하는데,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는 나에게 좋은 일이 나쁜 일일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사실은 좋은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에 일어나는 어떤 일이라도 우연히 일어나거나 우리에게 해가 되도록 허락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것을 깨닫고 살아가는 사람은 어떤 일이 벌어질 때, 특히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때 이것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하려고 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고 물으며 감사하게 되고, 그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삶 자체가 달라집니다.

 

 

1.   세 가지 차원의 감사

 

오래전 읽은 책에서 사랑에는 세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것을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만약에’(if)의 사랑, ‘때문에’(because)의 사랑,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읽었습니다.

 

첫째로, ‘만약에’(if)의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이 충족되면 내가 사랑하겠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을 바라보면서 네가 더 예뻐지면/잘생겨지면 내가 사랑하겠다.’ ‘네가 돈을 많이 벌면 사랑하겠다.’ ‘네가 내 말을 잘 들으면 사랑하겠다.’ ‘네가 나에게 잘해주면 사랑하겠다.’ 이것이 사랑은 사랑인데, 가장 낮은 단계의 사랑입니다.

 

둘째로, ‘때문에’(because)의 사랑은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예쁘니까/잘생겼으니까 사랑한다.’ ‘네가 돈이 많고 부자라서 사랑한다.’ ‘네가 내 말을 잘 들으니까 사랑한다.’ ‘네가 나에게 잘해주니까 사랑한다.’ If의 사랑보다는 약간 낫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사랑은 아닙니다.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의 사랑은 어떤 조건이든 상관없이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못생겨도 사랑한다.’ ‘네가 가난해도 사랑한다.’ ‘네가 내 말을 잘 안 들어도 사랑한다.’ ‘네가 나에게 잘해주지 않아도 사랑한다.’ 이렇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 이 세 번째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사랑이 가장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소위 아가페’)이 바로 그런 사랑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형편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우리에게 아무런 가망이 없는데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말을 안 듣는데도 불구하고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잘하면 사랑하시고 죄를 지으면 사랑하지 않으시는 게 아닙니다. 항상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사랑과 마찬가지로, 감사에도 똑같이 세 가지 차원이 있다는 겁니다.

 

첫 번째는, ‘만약에(if)’라는 조건부 감사입니다. ‘만약에 내가 하는 일이 남들보다 더 잘되면 감사하겠다.’ ‘만약에 남들보다 돈을 더 많이 벌게 되면 감사하겠다.’ ‘남들보다 더 성공하면 감사하겠다.’ 이것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기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는 어린아이 수준의 감사입니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을 받았기 때문에(because)’ 받은 것 중에 일부를 드리는 감사입니다. 상대방과 비교하되,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여 자신이 받은 것을 감사하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감사를 주로 합니다.

 

가끔 티브이를 보면, 아프리카에서 바짝 마르고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영상이 나오면서 우리가 함께 마음을 모아 돕자는 광고가 나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안 되었다고 느끼며 종종 돕기도 하지만, ‘나는 저렇게 못 먹어서 굶어 죽어가는 저런 사람들 같지 않고 먹을 것을 풍성하게 주시니 감사하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그렇게 감사해야 하고, 또 실제로 그런 감사를 합니다.

 

또 우크라이나의 경우 전쟁으로 얼마나 힘듭니까? ‘저들은 전쟁으로 10개월 가까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평안하게 사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런 감사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처지의 남들과 비교해서 감사하는 것이 최고 수준의 감사는 아닙니다.

 

세 번째는, 어려움을 당하거나 불행이 찾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in spite of) 감사하는 차원입니다. 이것은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믿고 그분만 신뢰하면서 신실하게 인도해주실 것을 미리감사하는 최고 수준의 감사입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겨서 감사하는 게 아니고, 아무 일도 안 생기거나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도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없는 것,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만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살게 되면 그 인생은 정말 불행해집니다. 자기보다 못한 사람, 자기보다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감사하다고 하는 경우는 만약에의 조건부 감사보다는 낫습니다.

 

하나님은 받은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해주셔서 감사하는 거기서 머물지 말고 한 차원 더 나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비록 힘들고 불행한 환경 가운데 있더라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인생이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다윗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계속 다윗을 살펴보고 있는데, 다윗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은 날이나 궂은날이나,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그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다윗을 생각할 때 어쩌면 그가 위대한 왕이었기 때문에 물질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가운데 감사 찬송을 많이 불렀으니 당연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다윗처럼 극심한 고난과 시련의 세월을 많이 보낸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당한 어떤 고난을 다 합쳐도 다윗이 당한 고난만큼 되지 않습니다.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던 다윗은 여러 형들 밑에서 기를 펴지 못하고 그저 아버지의 양을 치면서 살았습니다. 집안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천덕꾸러기 아들이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이사 사사인 사무엘이 찾아와서 기름을 부어 자기를 왕으로 세웠는데, 그때까지는 집안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어린 막내였고 양치기 목동에 불과했습니다. 사무엘이 찾아왔을 때 아들들을 다 부르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를 부르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제껴놓은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어린 나이와 여러 불리한 조건들에도 불구하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누가 보지 않아도 항상 성실하게 아버지의 양을 치는 가운데 거기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기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맹수로부터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그분의 손길과 보호하심을 생생히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단련하며 준비하고 있던 다윗이 마침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래서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면서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앞으로 왕이 될 것이라고 확정되기는 했지만, 그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화려한 왕궁이나 높은 권력의 자리나 부귀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온전히 왕위에 오르기까지 10년도 넘는 세월을 도망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20대 황금기에 그랬습니다. 20대에 도망만 다녔으니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우리 중 20대 때 누군가가 나를 죽이러 와서 20대의 10년 내내 도망만 다닌 사림이 우리 중 누가 있습니까?

 

다윗은 자기 민족의 대적인 블레셋의 엄청난 용사 골리앗을 쳐 죽임으로 민족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울 왕의 질투 때문에 자기를 죽이려 하는 그를 피해 도망자로 살아야 했던 것입니다. 그것도 사울은 자기의 장인이었는데, 자기 장인이 자기를 죽이러 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입니까? 우리 중 장인이 자기를 죽이러 쫓아오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보통 사람이면 그럴 때 어떻게 하겠습니까? 20대 초반부터 도망다녔는데, 20대는 얼마나 혈기가 왕성할 때입니까? 20대의 혈기로 펄펄 뛰면서 아니, 내가 세운 공은 전혀 기억하지 않고 어떻게 나를 죽이려 드는가? 어디 두고 보자. 네가 죽나, 내가 죽나, 한 번 붙어보자.’ 하고 독기를 뿜어대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향해 주님, 이러려고 저에게 기름 부으 세우셨습니까? 기름을 부어 세우지나 말지, 이게 무슨 꼴입니까? 하나님, 정말 이러실 겁니까?’라고 원망하며 대들지 않겠습니까?

 

다윗이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정말 놀라울 뿐입니다.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또 감사도 선택입니다. 나의 결정입니다. 그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감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사울을 향해 독기와 원한을 품거나, 그를 죽이려고 시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의 노래를 지어 부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런 극심한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 속에서 말씀으로 자기를 다스리며 날마다 기도와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그분만을 의지했습니다.

 

성경에 다윗 이야기가 사무엘상하에 나오고 다윗이 쓴 시들이 시편에 많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엄청난 죄도 지은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극심한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고 찬양하여 감사하기로 결정하며 나아갔던 그의 믿음을 본받으라는 겁니다.

 

 

2.   최악의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다윗

 

다윗이 도망자 시절의 초기에 사울의 추격을 피해 아둘람이라는 동굴 속에 숨어 지냈는데, 그때 지은 시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다윗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최고의 감사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시가 바로 오늘 본문인 시편 57편입니다. 이것을 읽을 때 단순히 감사와 기쁨의 찬송으로 생각할 게 아니고, 앞에 달린 부제를 잘 읽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 비를 피해서 동굴에 있었다는 차원이 아니라,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을 피해 두려움 가운데 굴에 숨어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런 가운데 나온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놀랍습니다.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이런 노래를 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1-2)

 

그런 상황에서 간절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여기에 무슨 원망이나 불평이 느껴집니까? 전혀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그분을 향해 간절히 부르짖습니다.

 

참으로 하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내 영혼이 주님께로 피합니다. 이 재난이 지나가기까지, 내가 주님의 날개 그늘 아래로 피합니다.” (1, )

 

다윗은 엄청난 용사였고 음악가였으며 시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람입니다. 다윗은 여기서 하나님을 지존하신(지극히 높으신) 하나님”(2)이라고 부르면서 그분께 부르짖습니다. 그가 왜 그렇게 합니까?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기가 왜 이렇게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왜 이렇게 도망다니며 살아야 하는지, 왜 하나님이 자기를 이렇게 죽음의 위기에 몰아넣으시는지, 도저히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에 분명히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그것을 반드시 이루실 날이 올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려움을 당할 때 우리가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어렵다고 원망하며 불평할 게 아닙니다. 여러분, 내가 어려움을 당하면 보통 어떻게 반응합니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희생양을 찾습니다. 뭔가 비난할 상대를 찾습니다. ‘내가 이렇게 어렵게 된 것은 저 사람 때문이다.’ 또는 환경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조금 더 나아가면 부모 탓이 되고 조상 탓이 됩니다.

 

그러나 어렵다고 원망하며 불평만 하고 있을 게 아닙니다. 괴롭다고 낙심하며 좌절할 게 아닙니다. 그럴 때 할 일은 오직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간절히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 바로 그것이 고통 중에 우리가 할 일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하도 기도를 안 하니까 그런 걸 통해서 기도를 좀 하라고 이야기하시는 게 됩니다. 사실 고통스러운 상황은 하나님이 우리 귀에 대고 메가폰으로 !’라고 외치시는 것과 같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도 이야기해도 안 들으니까, 엄청나게 큰소리로 !’ 하시고 그제야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도록 하시는 게 고통의 상황이라는 겁니다.

 

이 시편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다윗이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고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에 대해 아뢴 다음에 그가 어떤 결론을 내리는가 하는 점입니다.

 

“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3-5)

 

시편을 읽다 보면 셀라’(3, 6)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노래의 박자를 맞추어주는 추임새로 생각되기 때문에, 읽을 때는 읽지 않고 그냥 넘어가셔도 됩니다.

 

다윗은 지금 상황에 대해 별다른 것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 들어 쓰셨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다윗이 지금 편안한 가운데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뭐라고 노래합니까?

 

“6 그들이 내 걸음을 막으려고 그물을 준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그들이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자기들이 그중에 빠졌도다 (셀라)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6-8)

 

오래 된 찬양곡 중에 <오 주여 나의 마음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아주 신나게 손뼉 치며 부르는 곡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 시편에서 가사를 따서 지었습니다. “오 주여, 나의 마음이 주께로 정해졌으니, 나는 주 찬양하리라. 깨어라 나의 영혼아, 비파와 수금 들어라, 이 새벽에 내가 찬양하리라.”

 

그리고 이제는 눈치채셨을 것 같은데, 조금 전 우리가 불렀던 찬양곡 두 곡도 모두 오늘 이 시편 57편에서 가사를 따온 게 아닙니까. <모든 상황 속에서>의 후렴 부분이 특히 그렇습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바로 이 구절에서 따서 지은 곡입니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9-11)

 

5절과 11절이 같은 내용입니다. 조금 전 불렀던 두 번째 곡 <내가 만민 중에>는 가사의 대부분을 여기서 가져왔습니다. “내가 만민 중에 오 주께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하리 열방 중에서 / 주의 인자는 커서,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넓은 궁창에 이르나니 /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 하늘 위에 주는 높이 들리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든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먼저는 마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마음이 확정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정하지 않기 때문에 더 어렵습니다. 마음을 주님께로 확실히 정하면 괜찮아집니다. 자꾸 다른 데로 눈을 돌리면서 저기가 더 나을까? 아냐, 저기가 더 나을까?’ 하면서 마음을 고정하지 못하고 다른 데로 마음을 두는 게 아니라, 하나님 편에 서겠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드리기로 마음을 확정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에는 마음만 확정하는 게 아니고 확정한 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실제로 나아가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하고 찬양하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기도하는 데까지는 그래도 나아가는데, 어떤 경우에는 기도만 합니다. 기도만 하고 행동이 없습니다. 그냥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도와주십시오.’라고 기도만 합니다. 그다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행동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기도만 하고 그걸 못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하나님, 미움이 없어지고 사랑을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그럼 그다음에는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가서 용서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 계속 기도만 합니다. ‘실천하게 해주십시오.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사랑은 안 합니다. 그러니 별 소용이 없습니다. 마음을 확정했으면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어떻게 보면 불평하고 원망할 만한 일들로 가득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번에 오랜만에 한국에 다녀왔더니 한국이 그렇게 발전했고 살기가 정말 좋아졌습니다. 너무 편안해졌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불평불만에 가득하고 만족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인터넷 댓글 같은 것을 보십시오. 끔찍한 수준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마음에 평안이 없는지 모릅니다.

 

마음을 하나님께로 정하고 살지 않으면 그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렇게 살면 그것이 어떻게 제대로 믿는 것이 되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제목이 한두 개가 아닙니다. 우리 삶을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감사할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잘 보십시오.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정도나 뛴다고 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또 우리 몸속의 피는 하루에 약 16천만 마일 이상을 달린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볍게 숨을 쉬는데, 하루에 숨을 쉬는 횟수가 무려 23천 번 정도라는 겁니다. 참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 각자가 열심히 노력해서 심장이 뛰고 있습니까? 우리가 열심히 노력해서 피가 16천만 마일을 흐릅니까? 결코 아닙니다. 폐도 멈추지 않고 자기가 알아서 호흡을 계속합니다.

 

이 모든 것들에 약간의 문제만 생겨도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거나 수고하지 않아도 심장이 뛰고 폐가 호흡해주는 것이 당연한 일 같아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게 안 되어서 병원에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 심장이 뛰는 것만으로도, 폐가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한 달에 전기 요금을 얼마나 내십니까? 큰 집에 사시는 분들은 여름에는 전기료 때문에 에어컨을 마음껏 틀지 못하고, 겨울에는 난방비 때문에 히터를 마음껏 틀지 못한다고 합니다. 작은 집이나 아파트에 살아도 한 달에 전기와 개스가 $100 이상 나올 겁니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서 그 이상 나올 텐데, 단순하게 한 달에 전기 및 가스비를 $100 정도 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렇게 잡아도 1년이면 $1,200입니다. 10년이면 $12,000입니다.

 

그런데 365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사용하는 햇빛 값을 하나님이 요금으로 계산해서 청구하시면 매달 그 값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태양 빛은 열도 있어서 사람과 동물과 식물이 잘 살도록 해주십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은 모두 공짜입니다. 우리에게 요금을 청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들이마시며 사는 공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부러 산소 호흡기를 사용하는 환자들이 병원에 내는 돈이 엄청납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산소 호흡기가 없어서 사망자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협력하던 선교사님도 인도에서 코로나 때문에 순교하지 않으셨습니까? 산소 호흡기만 있었어도 사는 건데, 그게 부족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다 공짜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할 제목이 없습니까? 그런데도 매일 똑같습니까? 그런데도 나는 별로 감사할 일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것을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데도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평불만과 원망 속에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진짜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는 욕심을 계속 부리면 결국은 부족한 것만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감사의 눈으로 보면 내 삶에 감사 제목이 아닌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 우리가 할 일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같이 주님을 향해 찬양하며 경배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9-11)

 

죽음의 위협을 당하면서 이런 노래를 했다는 것, 그것도 20대 때 그랬다는 것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우리도 이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나가는 말]

 

그래도 감사할 이유가 아직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래도 지금 삶이 너무 힘들기 때문에 감사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전부 다 감사의 제목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좋은 책이 오래전 나온 <평생 감사>라는 책인데, 거기에 나오는 내용을 읽어드리며 마칠까 합니다.

 

*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서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의 집에 식수 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하루에 천 원 이상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다면, 천 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하루 한 끼라도 따듯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8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하게 될 100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한 번도 전쟁의 위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을 걸치고 있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75%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에 있는 작은 통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세계 상위 8%의 사람들 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다.

 

* 당신의 두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얼마나 감사할 일이 많습니까? 그런데도 감사할 게 없다면 참 불쌍한 인생일 것입니다. 이렇게 감사의 비결을 깨닫고 어떤 상황에도 감사할 줄 알았던 다윗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감사를 드릴 줄 아는 믿음의 사람에게 주어지는 놀라운 복을 누리고 또 그것을 나누어주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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