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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qVkKlywd8S4?t=313

 

 

2022911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31

더러운 죄로 무너지는 다윗 집안

(사무엘하 131~22)

 

[들어가는 말]

 

<말씀의 삶> 공부를 할 때 성경 전체를 읽게 되는데, 90일에서 100일 정도에 성경 전체를 통독합니다. 그렇게 몇 번 하면서 느껴진 게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잘못했을 때 회개하면 하나님이 분명히 용서해주십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계속 죄를 지을 경우, 죄를 지은 그 자신에게 벌이 가해질 때가 있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계속 악을 행할 때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전부는 아닐지 몰라도, 많은 경우에 있어 자신의 죄가 자녀 대에 그 결과가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신실하게 사는 경우도 비슷합니다. 주님은 그렇게 사는 사람 본인에게 놀라운 복을 주실 때가 대부분이지만, 그 자녀 대에 가서 부모 덕분에 복을 누리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열왕기서를 읽으면 그런 것을 강하게 느낍니다.

 

물론 몇몇 예외는 있습니다. 아버지가 굉장히 악한 왕이었던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사람은, 자기 아버지는 악한 왕이었으나 자신은 다윗의 길을 걸었다라는 극찬을 들은 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가 죄를 지으면 그것이 꼭 자녀에게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끊어버린 본인들의 믿음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대개의 경우에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여기 부모이신 분들, 또 부모가 되실 분들, 부모로서 자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이 뭐겠습니까? 좋은 데 데려가고 좋은 음식 먹이는 거겠습니까? 물론 그것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지만 믿는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녀를 사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일부러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는 것 자체가 자녀에게는 최고의 사랑의 방법이 됩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는 그것을 보고 배우는데, 잠시 믿음을 떠나거나 방황하거나 의심할 때도 있습니다. 안 그런 자녀들도 있지만 그런 자녀들이 많고, 특히 목회자 자녀 중에 그런 자녀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정신을 차리고 바른 신앙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살게 되면, 그것은 보고 자란 자녀는 부모로서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자녀인데도 그 자녀의 마음에 불신앙의 씨를 뿌리는 것과도 같아서, 언젠가는 결국 그 불신앙의 썩은 열매를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합한) 사람, 믿음의 사람, 참된 예배자로서 늘 하나님께 순종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애쓴 사람입니다. 다윗보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우리 중에 다윗보다 내가 더 믿음이 좋다.’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넘어진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여자 문제였습니다. 다윗은 여러 아내들을 통해 많은 자녀들을 두었는데, 물론 당시 사회 관습으로는 특히 왕으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분명히 창조 질서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하나님이 결혼이라고 하시며 가정을 이루어주신 질서를 깨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에서 왕에게 많은 아내를 두지 말라고 하신 명령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렇게 불순종했을 때, 자녀들 안에 죄의 씨가 뿌려져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장자인 암논이 이복누이인 다말을 향해 병적인 사랑을 키우다가 결국은 성폭행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다윗 집안에 자녀끼리 성범죄가 일어나고 또 이것 때문에 나중에 살인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더 나아가 반역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사실 자식 문제에 대해 나는 100% 잘할 수 있다.’라고 자신할 수 있는 부모가 누가 있겠습니까? 자식 문제는 정말 부모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부모가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도 그 자녀가 따라올까 말까 한데, 만약 부모가 죄를 범하면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며 나갈 가능성이 아주 높아집니다.

 

다윗은 진실한 마음으로 죄를 회개하고 회복되었지만, 결국 그때부터 죄의 그림자가 다윗 집안을 덮치며 복잡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게 됩니다. 이제 다윗의 남은 인생 이야기는 그의 가정 문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데, 그 첫 번째 이야기가 바로 오늘 본문의 암논과 다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비극입니다. 이 사건은 두 사람만의 일로 끝나지 않고, 나중에 다윗의 왕권을 위협하는 압살롬 반역 사건이 터지게 하는 계기가 되고 맙니다.

 

 

1.   성범죄를 저지르는 암논 (1~14)

 

1)  암논의 악한 계획 (1-6)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다른 아들 암논이 그를 사랑하나” (1)

 

오늘 본문이 앞의 사건들과 연결되는 의미로 그 후에’(1)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라고 한 다음에 다윗의 딸 다말이라고 하지 않고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다말이라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니까 압살롬이 중심인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압살롬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을 여기서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간음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징계의 일환으로 일어난 일임을 그 후에라는 말이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것은 이미 나단의 예언을 통해서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다윗은 이웃집 여인에게 몰래 간음을 행했지만, 그 결과는 다 드러나게 그것도 같은 가족 내의 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의 피를 흘렸지만, 그 결과는 자기 아들 간의 피 흘리는 살인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죄를 지으면 무조건 자식의 대로 간다고 보아도 안 됩니다. 오래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라>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는데, 자동적으로 가계에 저주가 흐르는 게 아닙니다. 안 믿는 사람은 몰라도, 믿는 사람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무조건 벌하시고 본인이 아니면 그 다음 대로 무조건 벌하신다고 보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각 사람의 상태나 사정에 따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가장 적절하게 또 가장 선한 방법으로 다루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주셔도, 죄라는 것은 우리 삶에 언제나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 때문에 울화로 말미암아 병이 되니라” (2)

 

암논은 다윗이 광야 생활 중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의 사이에서 얻은 맏아들입니다. 가장 처음 낳은 아들이 바로 이 암논입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후계자였다는 겁니다(3:2).

 

암살롬은 다윗이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와의 사이에서 얻은 아들로 셋째였습니다(3:3). 중간에 둘째인 길르압이 있었는데, 별로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일찍 죽었거나 어떤 이유로 역사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암논과 압살롬은 처음부터 왕위를 놓고 대결을 벌이는 위치에 있었다는 겁니다. 친형제가 아니라 어머니가 다른 형제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암논이 압살롬의 여동생인 다말을 향해 음욕을 품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율법에 따르면 남매는 결혼할 수 없는 사이였다(18:9). 그런데 이 다말이 처녀라서 어찌할 수 없었다는 말은, 당시 처녀 공주들에게 군사를 세워 철저히 외부인으로부터 보호하며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외부인으로부터 차단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왕자인 암논이라도 함부로 갈 수 없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암논은 다말을 좋아하는데 볼 수가 없으니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음욕이었습니다.

 

비록 다윗의 죄는 이미 용서받았지만, 그 죄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데, 암논은 다윗의 간음을 보면서 무엇을 배웠겠습니까?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이, 자기 아버지의 악행을 보면서 따라 하는 다른 아들들이 있을 때 나는 저렇게 살면 안 되겠다. 나는 하나님을 전심으로 따라야겠다.’라고 나아가는 히스기야나 요시야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어머니의 역할이 큽니다. 그래서 열왕기를 읽어보시면 그들의 어머니가 누구인지가 나오는 겁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선해도 어머니가 믿음의 사람이 아닐 때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고, 아버지가 악한 왕이었더라도 어머니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자녀가 믿음의 사람이 되고 훌륭한 왕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암논은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도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윗의 밧세바 사건을 보면서 뭘 배운 겁니까? ‘저러면 안 되겠구나.’가 아니라 , 나도 저래도 되는구나.’를 배운 겁니다.

 

후에 다윗이 간절히 눈물로 회개하며 그것도 공개적으로 회개하고 시편 51편을 지어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부르도록 해서 자신의 수치를 다 드러냈습니다. 회개를 진실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습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을 데려와서 불륜을 저지른 모습이 더 강렬하게 암논의 마음에 남은 겁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것을 보고 배우도록 자녀에게 해주어도, 좋은 것 10개를 보여주는 것보다 나쁜 것 1개를 보여주는 것이 더 영향이 큽니다. 그게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좋은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은 참 힘든데, 나쁜 것은 금방 쉽게 따라 합니다. 참 이상하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암논도 다윗에게 좋은 믿음의 모습이 훨씬 많은데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은 닮지 않고 불륜을 저지른 죄의 모습만이 마음에 남아서 나도 저렇게 해도 된다. 아버지도 했는데 나는 왜 못하냐? 이제 나는 왕이 될 사람인데 왜 못하냐?’라고 나아간 겁니다.

 

우리가 가끔 보면 진짜 악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극악무도한 테러리스트나 살인범이나 엄청난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있습니다. ‘저런 사람들은 하늘에서 번개가 쳐서 불에 맞아 타 죽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갑자기 사고가 나서 확 죽으면 좋겠다. 저렇게 악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렇게 잘 사나?’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또 오래 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그런 게 아닙니다. 갑자기 번갯불이 떨어져서 타 죽거나 갑자기 사고가 나서 끔찍하게 죽는 것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죄의 결과로 말밈암아 그것이 다른 방향에서 죄의 모습이 드러나는 겁니다. 특히 그 자녀의 대에 그런 것이 드러나는 것이 참 무서운 일입니다.

 

우리 교회는 그렇지 않아서 참 감사한데, 이전에 제가 다른 데 있었을 때 보면, 청소년 사역과 영어권 사역을 할 때 자녀들이 부모들과 어른들 때문에 상처받는 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른들이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분열하게 되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어제까지 같이 잘 놀았는데 갑자기 , 오늘부터 쟤랑 놀지 마.”라고 하고 같이 교회도 못 다니니까 상처를 받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이 때도 그렇지만 특히 십대 청소년들이 상처받고 교회를 떠나고 신앙마저 저버리는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자기들이 믿음이 없어서 그렇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큰 상처를 입고 교회에 대한 신뢰가 깨진 겁니다.

 

이전에 제가 굉장히 슬픔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 아들을 만났는데, 2세였고 나중에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릴 때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나면서(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목사님이 엄청난 고통을 당하고 결국은 교회를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 아들이 막내였고 청소년 때였는데, 그 모습을 보고 목사 아들이지만 교회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결국 돌아와서 목사까지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신학교를 다닐 때인 전도사 시절에 제가 만났는데, 그때 저에게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곳이었고, 가장 악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자기는 그렇게 느꼈다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로 치유되고 결국 목회자까지 되었으니, 참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그렇지 못한 자녀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특히 어른들이 일부러라도 싸우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냥 사랑하면 이런 문제를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하고 섬기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렇게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4 그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냐 내게 말해 주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사랑함이니라 하니라” (3-4)

 

암논은 자신의 친구이자 사촌 형인 요나답에 의해 그의 음욕이 더 불붙여집니다. 이 모습은 마치 창세기 3장에서 간교한 뱀이 충동질해서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마는 인류 첫 조상 아담과 하와의 죄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요나답은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라고 나오는데, 시므아는 삼마라고도 하는 다윗의 셋째 형입니다.

 

요나답이 그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 체하다가 네 아버지가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그에게 말하기를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게 떡을 먹이되 내가 보는 데에서 떡을 차려 그의 손으로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하니” (5)

 

다윗의 형 시므아즉 삼마가 이새의 셋째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형들이 다 아주 걸출한 외모와 큰 키와 좋은 외형을 갖춘 것으로 나옵니다. 첫째 형이 그랬다고 나오고, 둘째와 셋째를 사무엘이 보았을 때도 저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다 그랬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형 중 하나인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상사병을 앓고 있는 사촌 암논 왕자에게 와서 아주 악한 조언을 합니다. 성경은 그를 간교한 자라고 묘사하는데, 뱀과 같은 자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간교의 가장 전형적인 수단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남을 속이는 것입니다.

 

요나답은 자신의 간계에 다윗을 끌어들입니다. 다말과 암논의 사건에 다윗이 개입하게 만드는 겁니다. 이것이 간교한 요나답의 의도입니다. 지금 딸이 다른 아들에게 성폭행당하는 사건에 그 아버지가 일정한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물론 요나답이 직접적으로 다말을 데려다 범하라고 조언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데리고 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다윗의 허락을 받고 하도록 합니다. 사실 다윗의 허락이 없이도 얼마든지 하려면 할 수 있었습니다. 장자가 아닙니까? 그런데 아버지를 끌어들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모르고 한 것이라고 해도, 이것 때문에 얼마나 고통이 되었겠습니까?

 

암논이 곧 누워 병든 체하다가 왕이 와서 그를 볼 때에 암논이 왕께 아뢰되 원하건대 내 누이 다말이 와서 내가 보는 데에서 과자 두어 개를 만들어 그의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니” (6)

 

암논은 자기가 장자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아프면 아버지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그랬을 것이고, 다른 아들들은 모르겠는데 자기는 장자이니까 자기가 아프면 아버지가 병문안을 온다는 것을 이용하는 겁니다. 그래서 실제로 아픈 것도 아니면서 아픈 체합니다. 그리하여 암논은 다윗에게 청하여 다말이 자신을 간호하고 음식을 만들어주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사실 이것이 다 사탄의 역사인데, 사탄은 이렇게 죄를 미끼로 세상의 모든 죄인에게 이러한 모습으로 다가갑니다. 요나답을 심히 간교한 자라고 묘사하지만, 사탄이야말로 가장 간교한 존재가 아닙니까? 예수님도 거짓의 아비라고 하셨습니다. 죄를 범하고 싶어도 양심에 거리껴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살살 만져주고 풀어주며, 그 죄를 저지를 수 있도록 기막힌 묘안을 슬그머니 던져주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믿는 사람들이 이런 사탄의 간교한 꼬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늘 방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기도합시다. 성경을 읽고 묵상합시다. 예배를 드립시다.’라고 하는 게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꼬임에 그냥 넘어가 버리는 겁니다. 그게 사탄의 꼬임인지도 모르고 넘어갑니다.

 

사탄은 결코 나빠 보이는 것으로 하지 않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으로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넘어가는 겁니다. 넘어가지 않으려면 평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우리를 보호해주는 것입니다.

 

 

2)  다말을 성폭행하는 암논 (7-14)

 

다윗이 사람을 그의 집으로 보내 다말에게 이르되 이제 네 오라버니 암논의 집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7)

 

다윗은 암논의 악한 계획을 알지 못한 채 다말을 보내서 그 오빠인 암논을 간호하게 하고 음식을 만들어주게 합니다. 다윗이 어떻게 보면 영적인 눈이 먼 겁니다. 어두워져 있습니다.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순순히 응합니다. 사실 다윗 같은 사람이 암논의 꾀병 부리는 것을 모른다는 것도 이상합니다.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데, 장자이고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니까 눈이 멀어 안 보이는 겁니다. 게다가 그가 부탁하니까 자기가 사랑하는 암논을 위해 예쁜 딸 다말이 가서 도와주면 좋겠다고 좋게 생각하는 겁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다윗의 영적인 상태가 이전에 비해서 어두워져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으로 죄를 지은 이후로 영적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분명히 그는 회개했습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하고 철저히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영향은 이렇게 무섭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범했을 때 다윗처럼 이렇게 철저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철저히 회개했더라도 죄의 영향이 이렇게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잘 안 보입니다. 암논의 간계를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이전 같으면 분명히 알았을 겁니다. 이전에는 항상 기도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 제가 이렇게 해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그렇게 해라.”라고 하시고 그는 나가 싸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기도했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께 철저히 회개해서 용서받았지만, 그 이후로 자기가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죄송스러워지고 이전처럼 전심으로 하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8 다말이 그 오라버니 암논의 집에 이르매 그가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가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9 그 냄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거절하고 암논이 이르되 모든 사람을 내게서 나가게 하라 하니 다 그를 떠나 나가니라” (8-9)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집은 거실과 부엌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은 실내의 벽난로나 화로 등에서 요리했습니다. 암논은 자신의 상태가 악화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과자를 먹지 않았습니다. 다말이 과자를 구워서 갖다주었는데, 병약한 환자들이 스스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처럼, 암논이 그런 모습을 연기한 겁니다. 혼자 힘으로 먹지도 못한다고 연기를 하면서, 그것을 핑계 삼아 다말만 남겨 놓고 방에서 사람들을 내보냅니다.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음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하니 다말이 자기가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의 오라버니 암논에게 이르러 11 그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 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이르되 나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하는지라” (10-11)

 

암논은 다말에게 하나님이 율법으로 엄격하게 금하신 간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암논이 자기의 누이에게 간음을 요구한 것은,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한 것보다 더 심각한 죄악입니다.

 

본문은 분명히 암논과 다말 사이가 오빠와 여동생 사이임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오라버니또는 누이동생이라고 7, 8, 10, 11, 12절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암논은 음욕 때문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다말을 강제로 성폭행하는 암논의 모습 속에서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게 됩니다. 다말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의 성결한 삶을 언급하면서 막으려고 했지만, 그녀의 말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합니다.

 

죄의 무서운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겁니다.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겁니다. 머리로는 압니다.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솔직히 모르고 죄를 짓는 게 얼마나 있습니까? 다 알면서 짓습니다. ‘, 이러면 안 되는데...’ 그러면서도 죄의 욕구가 이성보다 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머리로만 아는 것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죄의 소원이 이성을 압도합니다.

 

사실 이 세상의 문제는 사람들이 이성적 판단을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이성적인 판단을 못해서 문제가 되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하는 데 있습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자기도 모르게 해서는 안 될 일을 더 즐거워하고 행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는 교육으로만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제자훈련은 앉아서 성경 공부만 하는 게 아닙니다. 물론 말씀을 공부해야 합니다. 삶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목장으로 자꾸 모입니까? 거기서 실천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왜 모릅니까? 다 압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예배하고, 특히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형제자매와 같이 모여서 예배하며, 또 목장 등을 통해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실천해보는 겁니다. 말로만 사랑하고 머리로만 사랑하는 게 아니라,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연습하는 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머리로만 하는 교육이 아니라, 몸을 움직여서 해야만 합니다. 머리로만, 지식으로만 그것이 가능했다면 우리 인간은 벌써 이 세상에서 낙원을 이루고 살지 않겠습니까? 인간의 변화와 회복은 인간이 죄로 타락한 존재이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행할 때 변화가 일어납니다.

 

“12 그가 그에게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버니여 나를 욕되게 하지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하지 못할 것이니 이 어리석은 일을 행하지 말라 13 내가 이 수치를 지니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어리석은 자 중의 하나가 되리라 이제 청하건대 왕께 말하라 그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되” (12-13)

 

암논의 강요에 대해 다말은 완강하고 논리정연하게 대답합니다. 참 놀랍습니다. 그러니까 다말은 아주 뛰어난 여자였던 것 같습니다. 굉장히 바른 삶을 살던 사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서 보면, 다말의 논리는 이런 것입니다.

 

첫째로, “비록 어머니는 달라도 우리가 같은 아버지를 가지고 있는데, 오빠와 여동생 사이가 아닙니까? 이런 일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있을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분명히 율법에도 그렇게 하지 말라고 되어 있는, 반인륜적인 행위라는 것을 다말이 강조합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사회 분위기가 아직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나는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수모를 안고 살아야 하고, 당신은 두고두고 질이 아주 나쁜 사람으로 취급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강조합니다. 이것은 절대 해서는 안 될 관계라는 것입니다. 물론 당시 고대 근동에서는 이복형제간의 결혼을 허용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것은 죄악입니다.”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죄라는 것입니다. 특히 암논은 장자로서 앞으로 다윗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사람인데, 왕이 될 사람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호소합니다.

 

넷째로, “지금 오빠는 이성을 찾으시고 아버지께 저를 아내로 달라고 말씀해보십시오. 거절하지 않으실 겁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다윗이 그것을 허락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다말이 이 순간을 모면해보고자 간절히 말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다말의 논리적인 대답도 욕망에 눈이 뒤집힌 암논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그와 동침하니라” (14)

 

너무나 낯 뜨겁고 민망한 일이 다윗 집안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2.   계속되는 암논의 죄 (15~22)

 

1)  사라진 감정 (15-18)

 

그런데 다말을 성폭행한 암논의 죄가 더욱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커지는 것은, 그가 다말을 집으로 쫓아 보냈기 때문입니다.

 

“15 그리하고 암논이 그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전에 사랑하던 사랑보다 더한지라 암논이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하니 16 다말이 그에게 이르되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그를 듣지 아니하고 17 그가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18 암논의 하인이 그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15-18)

 

암논의 이런 행위는 그가 다말을 향해 가졌던 감정이 진정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지극히 육적인 욕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이처럼 죄라는 것은 단순히 비윤리적인 행동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세력입니다. 죄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속에서부터 되는 것이지, 결코 행동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교회를 안 다니는 분들에게 우리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면 왜 거부감을 가집니까? ‘나는 살인, 강도, 사기 같은 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남을 해코지한 것도 없고, 가끔은 남을 돕기도 했는데, 왜 내가 죄인인가?’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는 뭡니까? Crime(범죄)입니다. 자기는 범죄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는 죄(Sin)는 마음속에 있는 죄입니다. ,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왕 노릇을 하는 것이 죄의 근원입니다. ‘하나님 필요 없고, 내가 하나님이다. 내가 신이다. 내가 왕이다. 내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한다.’라고 할 때 그게 죄입니다. 그렇게 할 때 그 결과로 그런 끔찍한 일들이 나오는 겁니다.

 

지금 암논도 똑같습니다. 죄의 강력한 소원이 그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그것을 죄가 왕 노릇한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이 왕이 아니라 내가 왕이다.’라고 하며 마음대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게 죄악 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죄가 있기 때문에 죄악 된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암논의 이러한 감정은 다말을 향한 진실한 사랑이 없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나 왜 그는 금방 태도가 돌변합니까? 이것은 정상적인 게 아닌데,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우고 나니까 미워졌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몇 가지 생각해볼 게 있습니다.

 

암논이 자기 종에게 이 계집을 내게서 이제 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17) 하고 말하는데, 그 전에 다말은 옳지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성폭행한 것)보다 더하다”(16)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듣지 않는 겁니다.

 

이스라엘에서 이렇게 처녀를 범한 후에 쫓아내게 되면 그런 처녀는 평생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힘들고 비참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는 겁니다. 그 인생을 파괴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더 악하다는 겁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렇게 했을 경우 아내로 삼아야 하는데 쫓아냈습니다. , 그 인생을 파괴한 겁니다. ‘네 인생은 내 알 바가 아니다. 나는 내 욕구만 채웠으면 됐다. 그러니 너는 이제 꺼져라. 네 인생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완전히 돌변합니다. 이게 얼마나 큰 악이며 얼마나 엄청난 죄입니까?

 

우리 개역개정 성경은 17절에서 암논이 이 계집을 내보내라.”라고 한 것으로 번역했지만, 히브리어 원어에는 물건처럼 이것이라고 하며 이것을 내보내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문빗장을 걸어 잠그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지금 결혼할 마음도 없으면서 다말을 겁탈한 이유, 또 그 후에 어떤 보상 조치도 없이 쫓아내 버린 이유, 게다가 다말이 압살롬의 누이동생인 것을 잘 알면서도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압살롬과 자기는 무슨 관계입니까? 정적 관계입니다. 앞으로 왕위를 놓고 싸워야 할 관계입니다.

 

다말이 바로 앞에서 암논을 향해 어리석은 자가 될 것이라고 만류했는데(13), 어리석다는 것은 지능이 낮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권력에 도취된 그의 마음을 이야기합니다.

 

네 인생이 파괴되는 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나는 권력자로서 내 마음대로 하는 거지 무슨 상관이냐?’ 하는 말입니다. 완전히 권력에 도취된 죄악의 모습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취했을 때처럼 아버지도 왕으로서 저렇게 하는데, 내가 이제 왕이 될 사람으로 뭘 못하느냐?’라고 자기에게는 뭐든지 가능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심지어 아버지 다윗도 자기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몰래 속여서 병든 체하며 다말을 보내달라고 하니까 보내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도 자기 뜻대로 움직이니까 자기가 마치 최고가 된 것과 같은 교만입니다. 이 모든 것이 작동해서 일을 벌인 것입니다.

 

그리고 다말을 쫓아내고 문빗장을 걸었다는 것은 이제 좀 정신을 차린 겁니다. 자신의 욕정에 의해 다말을 범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압살롬이 두려운 겁니다. 그가 자기 동생 일로 와서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문을 잠그라고 합니다. 자기를 방어하는 겁니다.

 

 

2)  다윗 집안의 분열 (19-22)

 

다말이 재를 자기의 머리에 덮어쓰고 그의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가서 크게 울부짖으니라” (19)

 

암논에게 성폭행을 당했을 뿐 아니라 쫓겨 난 다말의 슬픔은 굉장한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처녀임을 상징하는 채색옷을 입었는데, 그것을 찢고 재를 머리에 쓰고 손을 그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면서 집으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뭔가 일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게 간 겁니다.

 

그렇다면 사실 이것은 위험한 일이 아닙니까? 몰래 조용히 가야 되는데 이렇게 드러내며 갔다는 것은 자기가 험한 일을 당했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암논으로부터 암살 등의 위험이 올 것을 감수하면서까지도 진실을 드러내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다말은 굉장히 똑똑하고 바른 여성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이 그에게 이르되 네 오라버니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그는 네 오라버니이니 누이야 지금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라 하니라 이에 다말이 그의 오라버니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20)

 

다말의 오라버니 압살롬은 그녀에게 다가가서 암논이 같이 있었느냐?”라고 합니다. ‘암논성실, 신실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아비논이 같이 있었느냐?”라고 살짝 이름을 틉니다. 요즘 우리식 말장난으로 바꾸면, 예를 들어 성실이라는 사람이 있을 때 네 오라버니 성실이 같이 있었느냐?”라고 해야 할 것을 네 오라버니 실성’(실성한 사람)이 같이 있었느냐?”라고 하며 비꼬는 겁니다.

 

그런데 네 오라버니이니 지금은 잠잠히 있어라.”라고 합니다. 그냥 보면 성폭행 후 2차 가해나 3차 가해처럼 보입니다. ‘네 잘못이다. 조용히 있어라.’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지금은 내가 힘이 없어서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조금 기다려라.’라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다말이 압살롬의 집에서 처량하게지내게 되는데, 평생 처녀로 압살롬 집에서 지내게 됐다는 겁니다.

 

다윗 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21)

 

이게 정말 문제입니다. 다윗은 암논의 이러한 죄악에 대해 어떻게 했어야 합니까? 벌을 내렸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습니다. 노하기만 합니다. 마땅히 암논을 공적으로 징계했어야 했고, 상처받은 다말을 치유하고 그 형제 압살롬의 마음도 돌보아주었어야 했습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압살롬이 암논을 죽이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압살롬의 반역도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이것이 근본적으로는 다윗의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지만, 다윗이 많은 아내들을 두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겁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아버지로서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올바르게 교육하지 못하고 오히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결과로 나온 것입니다.

 

압살롬은 암논이 그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그를 미워하여 암논에 대하여 잘잘못을 압살롬이 말하지 아니하니라” (22)

 

압살롬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성폭행한 암논에 대해 복수를 계획합니다. 그래서 암논에게 말로 따지지 않고 이제 때를 기다리게 됩니다.

 

 

[나가는 말]

 

이것을 보십시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의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보기에 얼마나 끔찍합니까? 너무나 놀랍고 비참한 일이 여기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밧세바와의 범죄로 인한 후유증으로 이런 것이 나타난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다윗의 죄를 용서해주셨는데, 다윗이 그 죄를 범하는 것을 보게 된 많은 주변 사람들과 모든 복잡한 일들이 꼬이면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가 무섭습니다.

 

왜 암논을 바로 징계하지 못했겠습니까? ‘아버지도 그랬으면서 나에게 왜 그래요?’라고 할 것이니 할 말이 없는 겁니다. 이렇게 죄가 무섭습니다. 회개했어도 그 영향이 이렇게 남는 겁니다. 그 영향권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이런 무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파괴할 뿐 아니라, 자기와 관계된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신하들과 또 모든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으면 당연히 우리가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지만, 이런 죄에 빠지지 않는 것이 최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하는 것이고, 기도하는 것이고, 말씀을 붙들며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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