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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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0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64 ✦
“복음을 위하여 끝까지 전진하는 인생”
(사도행전 20장 1~6절)
[들어가는 말]
여행을 좋아하는 분도 있고 안 좋아하는 분도 있을 텐데, 저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특히 한국 같은 곳을 가려면 여기서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고, 한국까지 가는 비행기는 대개 12~14시간 정도 걸립니다. 어떤 분들은 장거리 비행을 힘들어하는데, 저는 오히려 비행기를 오래 타면 굉장히 즐겁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평소에 시간이 없다고 못 읽던 책도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 평소에 못 보던 영화를 실컷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공짜로. 요즘은 좌석마다 모두 개인 스크린이 달려 있어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을 골라서 다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도 이번에 유럽에 다녀온 가정들이 있는데, 저도 한국에 갔을 때나 유럽에 갔을 때나 모두 좋았습니다. 그런데 안식월 기간에 이곳저곳을 여행할 때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몽골과 키르기즈스탄의 선교지를 방문할 때는 그 마음 자세가 아주 달랐습니다.
몽골은 전문 사진작가들이 많이 가는 곳입니다. 광활한 초원의 광경이 아주 대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몽골에 가보니까 놀랍게도 한국 식당들이 꽤 많았습니다. 북한 식당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국 식당이 많아서 장사가 되겠나 했지만 의외로 비즈니스가 잘되고 있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했더니, 한국에서 여행객들이 많이 와서 한국 식당에 많이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관광객들로 인해 장사가 잘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몽골에 살면서 현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님들과, 그곳에 사진을 찍으러 또는 광활한 초원을 구경하러 간 여행자들의 마음이 똑같겠습니까? 심지어 며칠 동안 선교사님들을 방문하러 갔던 제 마음도 보통 여행자와는 달랐습니다. 여행자가 보는 것과 단기선교를 간 사람이 보는 것이 다릅니다. 키르기즈스탄도 마찬가지이고, 이전에 갔던 니카라과나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갔느냐에 따라 현지를 방문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출장 간 사람이 여행객처럼 놀다 올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출장을 갔으면 출장 간 목적을 이루고 와야지, 좋은 데 구경만 하다 와서는 곤란합니다. 또 반대로, 여행을 목적으로 관광을 간 사람이 가서 자기 일만 하다가 오면 목적을 따라 간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일을 해야지, 왜 여행지까지 가서 일을 합니까?
사도 바울은 그 당시 기준으로는 세계의 반 이상을 여행한 사람입니다. 정말 많은 곳들을 다니면서 그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당시에도 많은 여행자들이 있었고 사업 때문에 방문하거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처럼 사업의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아무리 많은 곳을 다녔다고 해도, 결코 그는 좋은 곳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그 위대하고 찬란한 아테네를 가서 파르테논 신전을 보았을 때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고린도의 여러 문명의 모습들을 본 것도 구경하러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에베소의 아데미 신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신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녔던 것입니다.
1. 에베소에서 마게도냐로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1절)
은 세공장이 데메드리오의 선동으로 시작된 에베소의 엄청난 소요 사태가 끝나자, 바울은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에서의 사역을 마무리합니다. 아데미 여신과 신전이 아무리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에베소였다고 해도, 에베소의 행정관이 에베소 사람들의 폭동을 불법집회라고 판정했기 때문에, 바울은 이제 안심하고 그 다음 목적지로 향해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보면 바울이 “제자들”을 불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의 크리스천들을 불러서 권합니다. ‘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위로하다’, ‘격려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또 ‘가르치다’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자기가 떠난 뒤에도 에베소의 크리스천들이 흔들림 없이 주님을 따라 신실하게 믿음 안에서 살도록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말씀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로 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쓴 에베소서를 보면, 특히 바로 이러한 폭동 사건과 아데미 여신을 중심으로 하여 악한 영적 세력의 존재를 잘 알고 있는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영적 전쟁에 대해서 다른 편지들과는 달리 상세하게 썼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들과 ‘작별하고’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냐(그리스 북부)로 갑니다. 그곳에는 자신이 2차 전도여행 중에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빌립보 교회가 있고,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고, 베뢰아 교회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을 보면, 이때 바울은 지금의 터키 서북쪽 해안에 있는 드로아에서 에게 해를 건너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런데 2차 전도여행 때와 똑같은 코스로 지금 3차 전도여행 때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때 바울은 3년 동안 깊이 정든 에베소의 신자들과 일일이 포옹하며 작별하고 그들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가 바울과 에베소 성도들의 마지막 이별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나오지만, 바울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즉 그리스 북부와 남부를 방문한 다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베소를 들르지 않고 훨씬 남쪽에 있는 밀레도라는 곳에 가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만 요청하여 오게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1절에 나오는 작별이 바로 이 땅에서 에베소 크리스천들과의 마지막 순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만남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겠습니다. 지금 앞뒤좌우에 있는 형제자매가 나에게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서, 바로 이 시대에 이 장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도록 허락하신 형제자매입니다. 아주 소중한 존재입니다.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대충 만나거나, 매주 보니까 또 나중에 보면 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다시 만날 기회가 내 생각과는 달리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전에 ‘내가 건강해지면 꼭 다시 예배에 나오겠다.’라고 했다가 결국 못 나온 분도 계십니다. ‘내가 VIP 분을 만나서 잘 섬기고 주님께로 인도해야지.’라고 했는데 그 기회를 얻지 못한 채 이사를 간 경우도 있고 돌아가신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내 눈앞에 다른 분이 있을 때 지금 사랑을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내일이 아니라 지금 해야 합니다. 지금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지금 용납하고 지금 용서하며 지금 주님의 사랑으로 덮어줄 줄도 알아야 합니다. ‘나중에 해야지. 언젠가 되겠지.’라고 할지 몰라도, 그 ‘언젠가’가 안 올지도 모릅니다. 주님께서 기회를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지금 기회를 주고 계십니다. 기회를 주고 계실 때 해야 합니다.
에베소를 떠난 바울이 향하여 나아간 곳은 마게도냐, 즉 그리스 북부였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쓴 고린도후서 2장을 보면 그 당시 상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때 에베소를 떠난 바울은 먼저 드로아로 갔습니다. 드로아는 마게도냐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한 항구인 동시에, 바울이 환상을 보고 건너간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그의 동역자 디도를 미리 에베소에서 고린도로 보내놓고 나중에 드로아에서 만나자고 약속한 곳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기 전, 자신이 2차 전도여행 중에 세웠던 고린도 교회에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대주의자들도 있고 거짓 선지자들도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나는 바울파다’, ‘나는 아볼로파다’, ‘나는 게파(베드로)파다’,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파다’라고 하며 파가 갈려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를 썼고, 이제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친다는 소식을 듣고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고린도전서가 첫 번째 편지이고 후서가 두 번째 편지라고 보통 생각하는데, 사실은 고린도후서가 두 개의 편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전에 하나의 편지가 또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전서 다음에 소위 ‘눈물의 편지’라고 하는 것이 있었고, 고린도후서도 두 개로서 세 번째와 네 번째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총 네 번의 편지를 썼습니다.
그런데 ‘눈물의 편지’라고 하는 것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눈물로 편지를 썼다고 하며 그 편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고후 2:4). 그런데 바로 그 편지를 에베소에서 디도 편에 고린도로 보낸 것입니다. 터키 지역의 에베소에서 그리스 남부의 고린도 교회를 향해 디도를 통해서 ‘눈물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디도가 그것을 고린도에 전하고 그 후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가지고 드로아로 와서 만나자고 한 상황이었습니다.
고린도후서 2장 12절을 보면, 바울이 드로아에 먼저 도착해서 디도를 기다리다가 거기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약 6년 전 2차 전도여행 때는 환상을 보고 바로 마게도냐로 건너갔기 때문에 드로아에서는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주 안에서 그에게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고후 2:12). 그러나 그때 바울이 그 기회를 활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얼마 전 고린도 상황을 알아보라는 사명을 받고 파견된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바울이 드로아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디도가 고린도에서 돌아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연락이 끊겨서 디도가 언제 도착할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해를 당했거나, 고린도에서 드로아로 오는 먼 길 중간에 혹시 강도를 당했거나 안 좋은 일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알 수 없는 불안한 상황이었습니다. 자기가 보낸 사람이 도중에 자기가 보낸 일 때문에 해를 당했다면 마음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바로 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활짝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를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편하지 못해서, 더 이상 드로아에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못하고, 고린도에서 돌아오는 디도를 마게도냐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혼자 에게 해를 건너 마게도냐로 간 것입니다.
그 후 마게도냐의 첫 성이자 가장 먼저 도착하게 되는 빌립보에서 그토록 고대하던 디도와의 만남이 드디어 이루어집니다. 디도가 그리로 무사히 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 근심이 기쁨으로 변했다.’(고후 7:6)라고 말합니다. 이때 디도가 가지고 온 좋은 소식과 다른 소식들로 인해서 바울은 마게도냐(아마도 빌립보)에서 고린도후서를 썼습니다. 그리고 다시 고린도 교회에 보냈습니다.
그런데 드로아에서 마게도냐로 간 것은 2차 전도여행 때와 똑같은 코스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처음으로 유럽 대륙의 마게도냐를 찾아갔을 때에도 바로 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갔습니다. 그리고 약 6년이 지나서 바울은 3차 전도여행 중에 2차 전도여행 때와 똑같은 코스로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러나 코스는 똑같았지만, 바울의 마음은 2차 전도여행 때와는 많이 달랐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마게도냐를 처음으로 찾아간 것은 자기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 보았듯이,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한 바울이 자신의 동역자인 실라와 또 루스드라에서 만난 디모데와 함께 지금의 터키 서부 지역인 아시아에서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그것을 성령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북쪽 무시아로 올라가서 동쪽 비두니아로 가려고 했는데, 그것 또한 성령님께서 막으셨습니다.
그 후 바울 일행은 어쩔 수 없이 무시아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드로아로 가게 되었고, 그날 밤 바울은 도움을 요청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바로 이 드로아에서 보았습니다. 왜 드로아입니까? ‘드루와, 드루와’(?)라고 해서 드로아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이것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환상 중에 나타나 ‘마게도냐로 드루와(들어와)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한 것을 보고 그 환상을 주님의 부르심으로 해석한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 그리고 드로아에서 합류한 의사 누가(수리아 안디옥 출신)와 함께 처음으로 유럽 대륙의 마게도냐로 배를 타고 갔습니다.
아시아 대륙 출신인 바울은 그때 자기가 유럽까지 가리라는 생각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시아 특히 갈라디아(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서만 빙빙 돌며, 1차 때 갔고 2차 때도 갔던 그 지역에서만 복음을 전하고 이미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들을 돌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그의 눈을 넓혀주셨습니다. ‘왜 그렇게 좁게만 보느냐? 눈을 넓혀봐라.’ 하시며 유럽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의 의미는 복음이 유대인에게서부터 이방인에게로 갔다는 것입니다. 2차 전도여행의 특징은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3차 전도여행의 특징은, 이미 갔던 곳에 다시 가서 복음을 다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3차 때 바울은 드로아에 복음의 문이 열렸지만 마게도냐로 다시 갔다가 거기서 디도를 만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마게도냐로 갔을 때는 비록 세 명의 동역자들이 함께 갔지만, 처음 유럽의 마게도냐를 향하여 에게 해를 건너는 바울의 심정은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불안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불안하면서도 흥분되고 흥분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 3차 전도여행 중 오늘 본문에서 다시 마게도냐를 찾아 에게 해를 건너는 바울의 마음은, 6년 전 2차 전도여행 때와 같을 수가 없었습니다. 6년 전 2차 전도여행 때는 사실 마게도냐에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나오고 교회도 세워졌지만, 아주 험한 일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빌립보에서는 루디아 같은 사람도 만났지만, 귀신 들린 한 여종으로부터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억울하게 잡혀서 심한 매질을 당하고, 감옥에까지 갇혀서 두 발이 차꼬에 채워지는 엄천난 고난을 당했습니다. 또 데살로니가에서는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이 시장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바울을 해치려 했기 때문에, 그 근처인 베뢰아로 피신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베뢰아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데살로니가의 유대인들이 그곳까지 달려와 바울을 다시 해하려 했기 때문에, 바울은 저 멀리 동쪽 해안으로 나가서 아테네로 향하는 배를 타고 마게도냐의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처음 찾아갔던 마게도냐는 바울에게 온갖 위험과 고난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게도냐를 6년 만에 다시 찾아가는 바울의 이번 심정은 아주 기대감으로 들뜨고 설렜을 것입니다. 그것은 ‘멋진 곳을 다시 오겠다’는 설렘이 아니라, 자신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믿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6년 만에 다시 만난다는 반가움과 설렘이었습니다.
2. 마게도냐에서 아가야로
마게도냐를 다시 찾은 바울은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2절)
마게도냐에 도착한 바울이 “그 지방”으로 다녀갔다고 아주 간단히 나와 있습니다. “그 지방”이 어디입니까? 일단은 마게도냐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북부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입니다. 그곳들을 다시 방문해서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만나 그들을 격려하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상황이 처음 방문했을 때보다 나아졌던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 5절을 통해 그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밝혀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에도, 우리의 육체는 조금도 쉬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로 환난을 겪었습니다. 밖으로는 싸움이 있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고후 7:5, 새)
6년 만에 3차 전도여행 때 마게도냐를 다시 찾았을 때에도, 그곳은 여전히 환난과 두려움의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2차 때 당했던 고난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닙니다. 같은 사람들이 거기 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밖으로는 해치려는 위협이 있고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도전도 주님 안에서 사람을 복음으로 섬기려는 바울의 간절한 복음에 대한 열정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바울은 지속적인 마게도냐의 시련과 위험 속에서도, 계속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그들의 교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믿음을 격려하고 말씀으로 세워주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 말씀드린 것처럼 고린도후서 7장 6절에 의하면, 바울은 그가 고대하던 대로 고린도에서 돌아오는 디도와 마게도냐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도로부터 고린도 교회의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고린도후서를 써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다시 보냈습니다. 바울의 몸은 마게도냐에 있었지만, 그의 사랑과 섬김은 공간을 뛰어넘어서 그리스 저 남쪽에 위치한 아가야 땅의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까지 미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정말 귀한 사도였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바울은 드디어 마게도냐를 떠나 헬라로 갑니다(2b). 당시 그리스 북부는 로마의 주로 ‘마케도니야’(마게도냐)였고, 남부는 ‘아카이아’(아가야)였습니다. 헬라는 그리스 남부인 아가야 땅의 고린도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마게도냐에서 고린도의 형제자매들에게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을 뿐 아니라, 바울은 직접 고린도를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는 안 나오지만, 이 기간에 바울은 이전에 갔던 것보다 더 멀리 간 것으로 학자들이 말합니다. 빌립보 근처에서 시작되어 로마에서 아드리아 해 건너편에 있는 해안까지 이어진 에그나티아 대로를 따라 죽 가서, 마게도냐 서쪽의 아드리아 해안에 있는 일루리곤(Illyricum)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하면, 로마서에서 바울이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루살렘에서 일루리곤에 이르기까지 두루 다니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남김없이 전파하였습니다.” (롬 15:19, 새)
일루리곤은 지금의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등의 지역을 말합니다. 거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요즘 한국 분들이 많이 가는 크로아티아가 있습니다. 바울은 이때 서쪽의 일루리곤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후에 빙 돌아서 헬라, 즉 아가야의 고린도에 도착한 것으로 보입니다(2).
3절 앞부분을 보면,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그곳에서 석 달 동안 머뭅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쉰 것이 아닙니다. 그때는 겨울로 추정되는데, 겨울이라 배들이 항해하지 않기 때문에 3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문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앉아 휴식한 게 아니라 3개월 동안 바울은 그곳에 있는 형제자매들의 믿음을 격려하면서 말씀으로 그들을 섬겼다는 말입니다.
석 달에 걸친 바울의 섬김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조금 전에 일루리곤을 언급한 편지가 로마서인데, 놀랍게도 복음의 진수가 담긴 로마서를 바로 이 3개월 사이에 고린도에서 썼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앞으로 섬기게 될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위해서도 그 짧은 기간 동안 로마서를 써서 고린도의 남동쪽에 위치한 외항인 겐그레아에 있는 교회의 여집사 뵈뵈(Phoebe) 편에 로마서를 보냈습니다. 로마서 16장(1-2절)에 보면 이 뵈뵈를 잘 영접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바로 그것입니다.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기록하여 그것을 겐그레아 교회의 뵈뵈에게 주어 그녀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로마로 가서 로마 교회에 전달했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가 이전에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고린도에도 바울을 배척하는 유대교인들이 있었을 뿐 아니라, 당시 고린도는 로마제국 내에서 성적으로 가장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그런 타락의 도시 고린도에서 바울은 복음의 진수를 담은 로마서를 기록했습니다. 고린도가 바울의 사역에 있어 아주 중요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의 아주 심한 성적 타락도, 유대인들의 위협도, 주님 안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복음을 들고 성도들을 섬기는 바울의 사랑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를 섬기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께서, 주님을 본받아 최선을 다해 섬기며 복음을 전했던 이 바울을 통해 주님께서 이 세상을 이토록 변화시키신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3. 유대인들의 음모를 피해 다시 마게도냐로
그런데 오늘의 본문 3절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에서 석 달 동안 체류한 바울이 고린도를 떠날 때의 정황을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3절)
바울은 2차 전도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3차 전도여행 역시 고린도에서 마무리하고 자신의 파송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으로 일단 돌아가려 했습니다. 수리아 안디옥은 지금의 터키 대륙 남동쪽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 남쪽에 자리 잡은 고린도에서 수리아 안디옥에 가는 가장 빠르고 편한 길은, 고린도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가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바울도 그렇게 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배를 타려는 것을 알게 된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공모”합니다. 어떤 유대인들인지 정확하지 않은데, 이들은 이전에 가이오 총독을 통해 바울을 해치려던 계획이 무산되었던 고린도의 그 유대인들이었고, 또 유대에서 유대인 암살단이 왔다고 추정합니다.
그 자객단을 자기들 말로 ‘시카리(Sicarii)’라고 부릅니다. 왜 ‘시카리’라고 부르는가 하면 식칼(?)을 품고 다녀서 ‘시카리’입니다. 진짜입니다. 식칼(?)인지는 몰라도 칼을 품고 다니는 암살단이었고, 그들이 암살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로마 군인을 비롯하여, 칼을 품고 다니다가 갑자기 칼을 꺼내 많은 요인들을 암살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가 있는데, ‘가룟’이 어디인지를 모릅니다. 영어로는 ‘이스캐리엇(Iscariot)’인데, 그것이 ‘시카리’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가 원래는 그쪽에 가담했던 사람이 아닌가 추정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시카리’ 유대인 암살단이 왔는데, 바울이 배에만 타면 얼마나 처치하기가 좋습니까? 푹 찔러서 바다로 집어넣으면 깜쪽 같이 없어지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밀어서 떨어뜨리면 됩니다. 그들은 바로 그런 계획을 모의했습니다.
6년 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처음으로 고린도를 방문했을 때,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바울을 회당에서 쫓아냈고, 또 일제히 법정으로 끌고 가서 갈리오 총독에게 고소했는데 그때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 유대인들은 6년 만에 고린도를 다시 찾은 바울을 유대인 암살단과 같이 해치려고 공모한 것이었습니다. 마침 배에 탄다는 것을 알고 배에 타면 죽여버리려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알고서 어쩔 수 없이 빠르고 편한 배편을 포기하고, 걸어서 다시 남부에서 그리스 북부인 마게도냐로 다시 갑니다. 그곳에서 에게 해를 건너 아시아의 서쪽 항구인 드로아로 되돌아가, 거기에서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배 타고 가려고 계획을 바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끼리 몰래 공모한 것을 드러내놓고 ‘우리가 바울이 배를 타면 죽일 거다’ 하고 떠들었겠습니까? 그러지 않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놀라운 주님의 섭리이고 역사하심입니다. 어떻게 바울이 이것을 알게 되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로로든 이 음모가 바울에게 알려졌고, 그래서 바울은 계획을 수정하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그것이 알려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배 위에서 바울을 암살하고 해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가 바울에게 그대로 알려졌고, 바울은 배를 타고 가려던 애초의 계획을 바꾸어 고린도에서 육로를 따라 그리스 북부 마게도냐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바울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굉장히 힘든 길입니다. 당시 바울은 50대 초중반 정도로 생각되는데, 지금 그 나이는 건강하지만 당시는 수명이 짧았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거의 노년에 해당됩니다. 게다가 바울은 수없이 고난을 당하고 고문당하고 매도 맞고 배도 파선당하고 육체의 가시라고 불리는 병도 있었기 때문에, 그 먼 길을 걸어서 간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나?’ 하는 원망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사실 이것은 누구라도 원망할 만한 상황이 아닙니까? ‘내가 편한 길을 두고 왜 이렇게 돌아가야 하나?’ 하고 원망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4. 동역자들과 함께 가는 길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4절)
바울은 흉년을 당한 예루살렘 교인들을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각 지역의 교인들로 하여금 구제헌금을 하게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나오는 명단은, 2차 전도여행부터 바울과 동행한 디모데를 제외하고는, 예루살렘 교회에 바로 그 구제헌금을 전달할 각 지역 교회 대표들의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로의 아들 소바더는 마게도냐의 베뢰아 교회 대표이고, 아리스다고와 세군도는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교회 대표이고, 가이오는 갈라디아의 더베 교회 대표이고, 디모데는 갈라디아의 루스드라 교회 대표이고, 두기고와 드로비모는 아시아 즉 에베소 교회의 대표입니다. 이들은 구제헌금을 모아서 예루살렘으로 가져가는 팀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5-6절)
이렇게 구제헌금을 전달할 각 지역 교회 대표들이 먼저 에게 해 너머 드로아로 가서 바울 일행을 기다립니다. 바울은 혼자 육로로 북쪽 마게도냐를 향해 걸어서 올라가고, 이들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드로아까지 먼저 가서 바울을 기다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은 빌립보에서 무교절을 지낸 뒤에 드로아로 가서 그들과 합류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도 그것을 보지 않았습니까?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단어가 “우리”라고 바뀌었습니다. ‘우리’라는 인칭대명사는, 그 속에 말하는 사람 자신이 포함되어 있을 때에만 쓸 수 있는 단어 아닙니까?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입니다. 누가가 본문을 기록하면서 5절에서 “우리를”, 그리고 6절에서 “우리는”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자기도 거기에 있다는 말입니다. 바울이 전도여행을 시작한 후에 바울 일행이 사도행전에서 ‘우리’라고 묘사된 것은 사도행전 16장 10절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드로아에 도착한 날 밤에 도움을 요청하는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보았고, 그 환상을 주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여 일행과 함께 처음으로 유럽 대륙 마게도냐의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때부터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인칭대명사가 ‘우리’로 기록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드로아에서 바울과 합류한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자신을 포함하여 수리아 안디옥에서부터 같이 온 실라, 중간에 갈라디아의 루스드라에서 만난 디모데, 그리고 이제 드로아에서 누가 자신도 합류하여 바울까지 총 4명을 가리켜 ‘우리’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 대륙의 마게도냐로 건너간 바울 일행이 첫 번째 방문지인 빌립보를 떠나면서 ‘우리’라는 표현이 사라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누가는 빌립보에 남았다는 말입니다. 그는 남고 바울과 나머지 사람들만 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로 하여금 빌립보에 계속 머물면서 이제 금방 복음을 듣고 믿은 빌립보의 초신자 크리스천들을 지속적으로 돌보며 양육해달라고 부탁하고 떠난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빌립보에 남고, 바울과 다른 형제들은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기 20장 5절에서 다시 바울 일행을 가리키는 표현이 ‘우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마게도냐로 돌아서 가던 바울이 누가를 빌립보에서 다시 만났고, 이제는 누가도 빌립보 사역을 마무리하고 이때부터 바울과 다시 동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이후 사도행전이 끝날 때까지 바울 일행은 계속해서 ‘우리’라고 불립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바울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지켰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작년에 나온 영화 <Paul, the Apostle of Christ(바울, 그리스도의 사도)>가 있습니다. 거기서도 누가가 끝까지 바울의 곁을 지킨 것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맞습니다.
만약 바울이 고린도에서 아무 일 없이 선박으로 지중해를 건넜더라면, 누가는 바울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그의 마지막 시기를 바울과 함께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3절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하려고 했는데, 바울은 먼저 들린 예루살렘에서 그를 죽이려는 유대인들 때문에 난동과 고발이 일어나면서 다시 감옥에 갇힙니다. 거기서 로마의 유대 총독이 있던 가이사랴의 감옥으로 이송되어서 2년 동안 갇혀 있다가 황제에게 상소하여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가게 됩니다. 그래서 자신을 파송했던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가는 것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고린도에서 배를 이용하여 예루살렘으로 직접 갔다면, 마게도냐의 빌립보에 있던 누가가 바울을 다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중에는 만났을지 몰라도 그때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의 뒷부분을 기록할 때 간접 정보를 통해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뜻하지 않게 유대인들의 음모 때문에 고린도에서 배를 타지 않고 육로를 따라 마게도냐로 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시 빌립보에서 누가를 만났고, 거기서부터 누가는 바울과 다시 동행했고 바울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며 어떻게 되는지를 아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20장 5절부터 사도행전 28장(마지막 장)까지 모두 다 누가가 그때부터 바울과 동행하며 본 것을 생생히 기록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아주 많은 분량입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사도였는지, 그가 자신의 삶을 주님 안에서 어떻게 마무리했는지,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믿음의 자세는 또 어떠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습니까? 이렇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도 아닙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면서 자기 의지로 한 것도 아닙니다. 바울이 자기 의지로 한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유대인들이 자객단까지 불러서 바울을 배에서 죽이려고 했던 그 음모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마게도냐로 돌아가게 되었고, 거기서 누가가 다시 합류하게 되었고, 그래서 누가는 바울과 끝까지 동행하며 모든 것을 생생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가는 의사입니다. 병약한 바울을 그가 죽을 때까지 옆에서 함께 하며 의사로서 의학적으로 도왔던 것입니다. 참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러한 섭리와 역사는 항상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바울과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도 함께 하고 계십니다. 오래 전부터 주님은 그 말씀으로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혹시 우리가 살면서 누군가의 어떤 악한 계획으로 좋은 길을 빼앗기고 고난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지금 어떤 힘든 길을 걷고 계십니까? 아니면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길을 걷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시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잘 안 보이는 그 길이라도, 나중에 꼭 다시 한 번 돌아보십시오. 틀림없습니다.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알려주실 때가 분명히 옵니다. 그리고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길이 됩니다.
지금 길이 막히고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저 사람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나봐.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나봐. 신앙생활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일이 안 풀리지?’ 하며 함부로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금 밖에 못 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지금만 보면서 ‘이게 안 되나 보다’라고 하거나 일이 잘 풀리면 잘된다고 교만해지지만,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눈을 우리가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혹시 어떤 고난과 괴로움의 길처럼 보이더라도, 사실은 그 길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축복으로 이어지는 최고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인도하고 계시는지 영적 민감성을 가지고 잘 살피며, 그래서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믿음으로 끝까지 걸어감으로 하나님 앞에 잘했다 칭찬받는 주님의 종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