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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월 10일 수요예배
✦ 이단 돌발 질문에 대한 답변 3 ✦
창조에 관한 질문 (3)
(창세기 3장 1~14절)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서 창조에 관한 ‘신천지 돌발 질문’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함께 이단의 잘못된 점을 확인하고 올바른 답을 찾아 나가기를 원합니다.
[질문 6] 에덴동산에서 뱀이 정말 말을 했을까? 이 뱀은 진짜 뱀일까?
신천지는 창세기 3장에 등장하는 뱀이 말을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뱀이 말을 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뱀이 문자 그대로의 뱀이 아니라 사탄의 영이 들어간 사람, 특히 어떤 목자임을 주장하기 위함입니다.
신천지는 ‘들짐승’이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지 않은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1절)
여기 보면, 성경은 분명 뱀을 ‘하나님이 지은 들짐승 중 하나’라고 알려줍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냥 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탄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났든지 뱀이 진짜로 말한 것이든지, 뱀은 뱀입니다. 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런 들짐승이 모두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창 7:14-15)
뱀은 분명 짐승입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이외의 성경에도 짐승이 말하는 사례가 있습니까? 바로 민수기에 거짓 선지자 발람의 나귀가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8 여호와께서 나귀 입을 여시니 발람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30 나귀가 발람에게 이르되 나는 당신이 오늘까지 당신의 일생 동안 탄 나귀가 아니냐 내가 언제 당신에게 이같이 하는 버릇이 있었더냐 그가 말하되 없었느니라” (민 22:28, 30)
하나님이 나귀의 입을 여셨고 나귀는 실제로 말을 했습니다. 나귀가 발람에게 하는 말을 보면 나귀에게 다른 영이 들어와 그 영이 나귀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귀가 자의식을 가지고 발람에게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내용으로부터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타락 이후 동물의 언어사용 능력이 제한되고 동물은 언어를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타락 이전에 아담은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었고, 그것이 바로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창 2:19). 이는 동물과 아담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인간의 언어가 아니었다고 해도, 뭔가 아담과 동물 간에 소통이 가능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실 수도 있고, 그 입을 닫아 말하지 못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짐승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것이라도 들어 쓸 수 있으십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10가지 재앙만 보아도, 하나님은 하늘의 우박을 사용하시고, 개구리나 메뚜기를 사용하기도 하시며, 심지어 뱀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결코 제한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질문 7] 뱀이 어떻게 흙을 먹을 수 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14절)
신천지는 뱀이 문자적으로 흙을 먹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뱀은 비유이고 ‘흙’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육체의 사람을 비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뱀이 종신토록 흙을 먹는다는 것은, 땅에 거하는 육체의 사람들이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미혹한다는 뜻이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예수님 초림 시대의 뱀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마 23:33)”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의 뱀이 문자 그대로의 뱀이 아니라 사탄의 영이 들어간 거짓 목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떻게 그런 식으로 연결된다는 말입니까? 이들의 주장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반증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흙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에서 ‘흙(티끌)을 핥는다’는 표현으로도 사용되며, 이것은 인격적인 수치와 굴욕에 대한 비유적 표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광야에 사는 자는 그 앞에 굽히며 그의 원수들은 티끌을 핥을 것이며” (시 72:9)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사 49:23)
“그들이 뱀처럼 티끌을 핥으며 땅에 기는 벌레처럼 떨며 그 좁은 구멍에서 나와서 두려워하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리이다” (미 7:17)
이렇게 볼 때 뱀이 흙을 먹는다는 것은 창조된 당시의 지혜롭고 간교했던 모습에서 몰락하여 굴욕과 수치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에 대한 선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뱀이 신천지의 주장과 같이 사탄이라면, 장차 있을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더욱 곤란한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을 양식으로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사 65:25)
신천지는 이사야 65장에 등장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땅의 신천지에서 이루어진다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따르면, 오히려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이사야 말씀에 의하면 분명히 새 하늘 새 땅에 뱀도 있어서 흙을 먹는다고 되어 있는데, 뱀이 사탄이라면 흙을 먹으며 사람들을 미혹하는 역사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여전히 일어나게 된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하나님 나라에 뱀, 즉 사탄이 있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거기서 사탄이 여전히 사람들을 미혹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도 정말 말이 안 됩니다. 사탄이 천국에 있습니까? 그게 무슨 천국입니까?
셋째, 예수님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들 속에 사탄의 영이 들어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실제 귀신이 들어가면 거라사의 귀신 들린 사람(막 5:2-7)이나, 가버나움 회당의 귀신 들린 사람(막 1:23-26)처럼 자의식이 사라지고 이성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귀신 들렸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그들이 뱀과 같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할을 하기에 예수님이 책망하신 것입니까?
우리는 여기에 대한 답을 베드로의 사례를 통해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겠다는 스승을 붙들고 항변하는 베드로를 향해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마 16:23)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라고 하셨으니 베드로에게 사탄의 영이 들어갔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히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향해 “사탄아”라고 외치신 것은, 베드로가 말하고 행하는 일이 사탄이 원하는 대로 예수님의 사역을 가로막고 대적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막아섰지만, 사실 그것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사역을 방해하며, 예수님을 시기하고 미워해서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사탄의 뜻을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 곧 사탄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넷째, 흙을 가리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는 육체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성경 구절을 볼 때 잘못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창 2:19)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각종 새를 지으신 후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이것을 신천지의 주장에 따라서 보면, 하나님의 영이 그분의 영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 곧 들짐승과 각종 새(영)를 지어서 아담에게 이끌어 오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신천지 자기들의 해석대로라면, 아담과 짐승은 서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담은 각 생물의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들의 주권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군림하라는 게 아니라 관리하고 돌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것은 그들의 주권자가 되어 돌보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담이 처음부터 선민과 배교자들 모두의 목자였다는 말이 되는데, 스스로 모순이 되는 해석입니다. 이처럼 창조사건을 신천지 식으로 해석하다 보면 모순이 발생합니다.
[질문 8]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정체가 무엇인가?
신천지는 에덴동산 중앙에 있었던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비유 풀이로 해석합니다. 이들 나무에 대한 신천지의 비유 풀이는 이런 식입니다.
나무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 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사람이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사탄의 말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과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사탄의 교리를 듣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신천지는 선악과가 말 그대로 선과 악이 섞여 있는 교리라고 봅니다. 그래서 지각이 없는 사람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에 나오는 ‘가라지 비유’(마 13:24)와 예레미야의 예언(렘 31:27)을 근거로 하면 에덴동산의 생명 나무는 하나님이 심으셨지만, 선악 나무는 하나님께서 심으신 것이 아니라 사탄이 심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너무 황당한 주장입니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합니까?
첫째,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으셨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2:9)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나무를 가리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라고 합니다. 그중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모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나무를 가리켜 사탄이 심었다고 하는 주장은 창세기는 물론이고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저 신천지 식의 억지 해석일 뿐입니다.
둘째, 성경은 선악과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임을 밝힙니다.
선악과는 매우 놀라운 능력을 사람에게 선물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눈을 밝게 하여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선악이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너무나 분명하고 밝게 분별할 수 있게 해 주는 열매인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분별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래서 뱀도 아담과 하와를 미혹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4-5절)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비진리를 먹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일에 대해 눈을 뜨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지식을 사람이 감당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성경은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 뭐라고 알려줍니까?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6-7절)
죄를 지은 후 아담과 하와는 자기들이 이전에 허물이라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이 생겨났습니다. 자신들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흠이 아닌 줄 알았는데 흠이었고, 수치가 아닌 줄 알았는데 수치였습니다. 하나님의 밝은 시선으로 자신들을 보니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뻔뻔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에, 아담과 하와는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모습을 못 견디고 몸을 나뭇잎으로 가립니다.
셋째, 신천지의 해석대로라면 아담이 생명 나무 열매를 먹는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됩니다.
신천지는 생명 나무가 진리의 목자, 즉 아담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생명 나무 열매를 먹는 경우 그것은 아담이 자기 자신을 먹는 게 되니,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해석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마음껏 먹으라고 허락하신 각종 나무의 열매는 무엇인가를 보면 됩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6-17)
생명 나무 열매가 진리라면, 다른 나무의 열매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를 말합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각종 비진리의 열매를 마음껏 먹으라고 허락하신 것이 되는데, 이것 역시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다섯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선악의 기준을 정하거나 선악을 판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최종적인 선악의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선악의 기준이 될 만큼 완전하지 않습니다. 흠도 많고 연약합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는 피조물인 사람의 수준에서 감당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요즘 보면 자기만 옳고 상대방(특히 다른 편)은 틀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여섯째,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향하여 뭐라고 하셨는지 보십시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 3:22)
신천지는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라는 부분을 사람이 영계의 타락한 천사와 같이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냥 읽어도 타락한 천사를 표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 중 하나 같이’라는 말을 ‘타락한 천사와 같다’라는 말로 볼 수 있습니까?
‘우리’라는 말은 고대 근동에서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장엄의 복수(magnificent plural)’입니다. 즉, 아담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알게 되었다는 뜻일 뿐입니다.
일곱째,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책망하신 것은 비진리를 먹은 것에 대한 책망이 아닙니다.
여기서 핵심은 불순종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속한 판단과 지식을 넘본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 (11절)
선악과에 대한 핵심적인 설명 중 하나는, 선악과가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나무의 열매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을 아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고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불순종이고, 죄의 핵심이 바로 불순종입니다. 로마서에서는 아담이 저지른 범죄의 핵심이 비진리를 먹은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순종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9)
앞의 ‘한 사람’은 아담이고, 뒤의 ‘한 사람’은 예수님이십니다. 따라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가 사탄의 교리이며 비진리라는 말은 전혀 근거 없는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이 열매가 비진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선악에 대한 최종적인 기준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일에 있어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따라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순종이 핵심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두 단어로 표현하면 순종과 섬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에 순종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직접 뵙고 계시를 받겠습니까? 그래서 주신 것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며 여기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따라 모든 일을 판단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떤 기준으로 그 사건을 바라보며 해석합니까?
신천지는 당연히 자기네 신천지 교리의 눈으로 해석할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렌즈로 세상의 사건들을 해석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기준의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 하지 않는 것이 순종입니다. 사실 너무나 단순합니다. 하라고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안 하는 겁니다. 바로 이러한 순종의 사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의 사람으로 우리 모두가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