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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18yQaudnULo?t=2033

 

 

2022112일 수요예배

인생의 목적이신 하나님 4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로마서 321~26)

 

1.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잃어버린 영광

 

이 세상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성경은 인간을 세 가지 상태로 구분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후에 아직 죄가 들어오지 않은 타락하기 전의 인간입니다. 그때 인간은 하나님 앞에 올바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시기 위해 부여하신 모든 좋은 특질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올바로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하나님 사랑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었고, 다른 피조물들과도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하여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동물과는 다른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 이 세상을 통치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타락 이후의 인간입니다. 이들이 바로 죄 아래 있는 인간입니다. 죄를 범한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단절되었습니다. 그럼으로써 이들은 타락 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모든 아름다운 지위를 상실하였고, 죄를 떠나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고통과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구원해주신 인간입니다. 이 사람들은 은혜 아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기 때문에 죄의 영향에서는 벗어날 수 없지만, 그 죄의 비참함을 극복하고 살 수 있는 은혜를 하늘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사랑과 충만한 생명을 공급받으면서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진실로 구원 얻은 사람들이고, 그게 바로 우리들입니다.

 

로마서 1장부터 320절까지는 우울하게 전개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멀리 떠났기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어서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오늘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3)

 

우리는 이 구절을 대할 때면 이런 그림을 마음속에 그립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저기에 멀리 있는데, 인간이 그 영광에 부지런히 다가가려고 하지만 자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도중에 탈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르지 못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스테레오모자라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하나님의 영광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영광을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어차피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는 말의 의미는 인간이 영광의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지위와 상태를 상실했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타락함으로써 전에 부여받은 탁월함, 올바름, 순전함, 사랑, 거룩함 등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히 공급받는 거룩한 사랑과 영적 생명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잃어버린 이 영광을 회복시켜주시려고 이 세상에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2.   나타난 하나님의 의

 

우리가 인생을 사는 동안 문제는 끝이 없습니다. 재물이 부족할 때도 있고, 능력이 모자랄 때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긋나서 괴로운 날을 보내야 할 때도 있고, 지혜가 부족해서 어떻게 할지 모를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현실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그것들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에너지인데, 그 에너지가 바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과 사랑의 공급도 자연히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생명과 사랑이 없음으로 비참하게 살아가는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고,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습니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1-22)

 

이제는 율법 외에 한 의가 나타났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모든 믿는 사람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차별 없는 의인데, 그 의는 차별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의로 오신 이유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4)

 

이 의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셨던 그 영광입니다. 인간은 이것을 잃어버림으로써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셔서 이 의를 다시 회복시키셨습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25-26)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죄로 인해 망가뜨린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그러한 인간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구원받을 모든 인류를 당신의 품에 안으시고, 그들의 죄를 당신이 담당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죄에 대한 합당한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죽임당하시고, 당신의 품에 있던 자들의 죄 값을 치러 주신 것을 속죄라고 합니다. 이 속죄의 결과로 우리는 구속(redemption)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속 또는 속량(贖良)은 몸값을 다른 사람이 대신 지불하고 그 사람을 풀어 주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로마 시대의 노예제도를 배경으로 합니다.

 

로마 시대의 노예시장을 상상해보십시오. 노예시장에 노예들이 나와 있는데, 그 중 노예 한 가족이 매물로 나왔습니다. 노예 소유주는 더 이상 노예가 필요 없어서, 혹은 돈이 급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노예 가족 전체를 팔려고 내놓은 겁니다. 아빠, 엄마, 세 아이들까지 모두 다섯 명의 노예가 경매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노예를 사갈 사람이 이 가족 다섯 명을 한꺼번에 사간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한 사람이 다섯 명의 가족을 다 사가면 좋겠지만, 거의 대부분 아빠는 아빠대로 사가고, 엄마는 엄마대로 사가고, 아이들도 각자 따로 사갑니다. 가족을 다 데려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그 동안 사랑하며 살던 가족은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로마시대 때 노예는 원래부터 비천한 신분이었던 노예들도 있었지만, 많은 경우 어떤 나라에서 귀족이었다가 로마와의 전쟁에 져서 노예가 된 경우가 아주 많았습니다. 자기 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가 전쟁에 져서 노예가 되어 노예시장에도 나와 가족이 다 뿔뿔이 흩어지면 이게 얼마나 비극입니까?

 

게다가 노예시장에서 노예 주인이 때로는 일부러 노예를 채찍질해가면서 이 노예가 얼마나 튼튼한 물건인지를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제 언제 뿔뿔이 흩어질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에 엄마는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은 두려워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한 자비로운 부자가 이 노예 가족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그 노예 가족 전체를 한꺼번에 사서 자기 집으로 데려옵니다.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자기들은 뿔뿔이 흩어질까 봐 불안에 떨며 울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분이 오셔서 너희가 가족이지? 내가 너희를 다 데려가겠다. 가자.’라고 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것만 해도 엄청난 은혜입니다. 그래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하며 충성을 다짐합니다.

 

다음 날이 되었는데, 한 집에서 온 가족이 살게 된 것만 해도 너무 감사한데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인이 어제 사온 노예들을 모두 부르더니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사실 나는 더 이상 노예가 필요 없어. 그래서 이제 내 권한으로 자유인이 되게 하겠다는 증서를 당신들에게 써주겠다. 너희들 다 나가서 이제 자유롭게 살아라.”

 

이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내가 그 노예였다고 생각해보십시오. 도대체 감사하고 또 감사해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속량(구속)입니다. 그 주인은 자기에게 아무 이익도 없는데, 단지 자비의 마음 하나로 자기가 여력이 되니까 가족들을 한꺼번에 돈을 지불하고 사서 노예를 자유인이 되게 해주었습니다. 주인의 이러한 행위가 속량이며, 주인이 지불한 돈이 바로 속전(贖錢) 또는 대속물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10:45)

 

예수님께서 바로 그 대속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습니다.

 

 

3.   십자가로 이루신 구원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인간이 범한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셔야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입니다. 만약 인간이 죄를 지었는데도 죄에 대한 합당한 심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모순이 되는 일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2:16-17)

 

죄에 대한 대가는 죽음입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죄를 지은 인간을 모두 벌을 받아 죽게 하셨다면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하자마자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3:15)

 

그리고 제사 제도를 허락하셔서, 믿음으로 제사를 드릴 때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제물에게 전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물은 죽었지만 제사를 드린 사람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일시적으로나마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또 다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열렸던 하나님과의 교제의 통로는 다시 막혔습니다. 그 길을 다시 뚫어주시려고 창세기에서 약속하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습니다. 사실 구약의 제사에서 수없이 죽어 간 제물들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였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심으로써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자주 사용되는 부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번에영원히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10:10, 12, 14)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어 자신을 제물로 바친 제사의 효과는 단번에 이루신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십자가의 제사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한 번이면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담당하도록 하여 벌을 내리심으로써 당신의 공의를 만족시키셨고, 그 대가로 인간들을 속량해 주심으로써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도 확고히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리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1:23-24)

 

이것이 기독교에서 십자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 구원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하나님의 복음의 진수를 맛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십자가는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 것입니까?

 

1)  율법으로부터의 구원

 

율법은 우리에게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죄에 대한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를 선언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누구도 완벽하게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습니다(3:10).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율법의 요구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 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3-4, 새번역)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그분의 의를 덧입어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고, 그래서 이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에 따르면 죄인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려면 제사 의식이 필요했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영원히, 단번에 죽으심으로써 제사 의식이 그림자 역할을 하였던 것의 실체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누구든지 이러한 희생의 제사 없이, 짐승을 죽이지 않고도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자비를 받고 은혜를 입어서, 제때에 주시는 도움을 받도록 합시다.” (4:15-16, 새번역)

 

이 은혜의 보좌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하게 찢어진 휘장 사이로 난 보혈의 길을 걸어 주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용납해주십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써 우리의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오직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주님의 보좌 앞에 이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2)  죄로부터의 구원

 

죄로부터의 구원은 두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먼저는, 신분의 자유입니다.

예전의 우리는 죄의 자녀요, 마귀의 자식이요,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어서 영원한 형벌에 처해질 사람들이었습니다(2:3).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인의 신분에서 벗어나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자녀, 그의 소유가 된 백성으로 불러 주셨습니다(벧전 2:9).

 

다음으로는, 마음과 영혼의 상태의 자유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법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원하지 않으면서도 죄의 길에 속박되어 그 길을 걸어가는 비참한 상태에 있었고, 마음과 영혼의 상태가 그렇게 얽매여 있었기에 스스로 거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생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를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1-2)

 

 

3)  죄의 결과로부터의 구원

 

죄는 원인이고 그 원인은 항상 결과를 가져옵니다. 독감에 걸리면 목이 붓고 기침이 납니다. 머리가 아프고 열이 납니다. 그리고 온 몸이 아프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독감 바이러스 균이 일으키는 증상들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바이러스 자체를 퇴치하는 것입니다. 그럼 잠시 후 증상도 가라앉습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은 죄이지만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죄로 말미암는 비참함과 비극입니다.

 

예수님은 죄의 비참한 결과로부터도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죄의 결과인 질병과 결핍으로부터 고통 받는 육체를 완전히 부활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을 믿으며 올바른 정신으로 살 때 세상에서도 잘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나서 가난하던 사람들의 형편이 나아지기도 하고, 병들었다가 고침을 받기도 하며, 깨어졌던 인간관계가 다시 회복되기도 합니다. 또 자신의 악한 성향이 올바르게 되기도 합니다.

 

인간은 십자가의 은혜에 보탤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십자가를 믿는 이 믿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결국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만을 의존하며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나가는 말: 생명과 사랑을 공급받으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왜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힘들고 괴로운 날들이 왜 없겠습니까? 그때 우리의 인생이 예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믿으며 감사함으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 마음속에 부어졌기 때문에 맨 정신으로 이길 수 없는 역경과 시련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용납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죄와 불순종으로 끊어진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저절로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연합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거듭남과 의롭게 하심을 통해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영적으로 접붙여지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로 인하여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 세상 창조에 비견될 만큼 놀라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하나님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우리에게 충만히 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유와 기쁨 가운데 믿음으로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자기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의 역사로 충만한 생명과 능력을 하나님께 공급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신 창조 목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생명과 사랑이 충만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목적대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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