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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Q7BMM-tlDWk?t=2109

 

 

20211013일 수요예배

분노의 시대에 자신을 지키는 길 7

에브라임의 분노: 분노는 자기 대에서 끊어라

(사사기 121~6)

 

1.   대물림되는 분노

 

이스라엘이 열두 지파를 이루며 커다란 민족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요셉입니다.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갔다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총리의 자리에까지 올랐고, 기근 때 이집트 사람들과 주변 민족들을 구했을 뿐 아니라 자기 아버지 야곱과 가족들을 모두 이주시켜 흉년을 피하게 함으로써 이스라엘 민족이 유지되고 또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센 땅에서 오랫동안 큰 민족을 이루며 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 중 열한 번째였는데, 실질적으로는 그가 장자 역할을 했습니다.

요셉의 아들이 두 명이었는데 장자는 므낫세이고 차자는 에브라임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니라 그의 아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열두 지파에 들어가게 됩니다. 야곱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하며 자기 아들들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후에 요셉의 둘째 아들인 에브라임은 장자인 므낫세 지파보다 강성해졌습니다. 야곱은 그들을 축복하면서 이미 그것을 예고한바 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하면서 왼손과 오른손을 엇갈리면서까지 므낫세 대신 에브라임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준 것입니다.

 

에브라임은 장자의 축복을 받고 나서 교만해졌습니다. 형보다 더 잘나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더니, 나중에는 열두 지파 중에 가장 불평이 많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 말은 가장 분노가 많은 지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 한민족에게는 이라는 것이 있는데, 우리 민족의 한은 당하고 또 당하고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다가 생긴 것입니다. 반면, 에브라임 지파의 분노는 교만해서 생긴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왜 나를 이렇게밖에 대접하지 않느냐고 하며 분노합니다.

 

대개 교만할 때 분노하는데, 욕심이 많고 탐욕을 부릴 때도 분노합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갖고 싶으니까 화가 나는 겁니다. 그렇게 분노가 쌓이고 쌓이다 보면 자녀에게 물려주지 말아야 할 그 분노를 유산으로 물려주게 됩니다.

 

나쁜 버릇이나 습관은 더 빨리 전염됩니다. 아이들이 예쁜 말보다 욕을 더 빨리 배우는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나의 나쁜 버릇과 습관이 내 자녀에게뿐 아니라, 일터나 교회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각자는 절대 혼자 사는 게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삶을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음 세대에 뭔가를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질문들을 해보십시오.

- 나는 부모님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 나는 내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 나는 내 손자 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싶은가?

 

때로는 말 한마디에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성도들이 있는데, 그들의 내면에는 비신자들의 분노와는 질이 다른 분노가 쌓이게 됩니다. 사실 그것은 더 큰 교만과 탐욕에서 자라난 분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위 세대에서 교만과 탐욕을 물려받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했을 때 유일하게 요셉 지파(에브라임과 므낫세)만 땅이 좁다고 불평을 했습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요셉 자손이 이르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하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주하는 모든 가나안 족속에게는 벧 스안과 그 마을들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주하는 자이든지 다 철 병거가 있나이다 하니” (17:14-16)

 

에브라임은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한 하나님의 방법을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가 스스로 개척하라고 하니까 또 불평하고 핑계를 댑니다.

 

 

2.   분노가 초래한 비극

 

이처럼 조상에게 물려받은 불평의 유전자를 지녔던 에브라임 지파는 기드온 시대에도 불평하며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미디안이 아말렉과 동방 민족들과 함께 연합군을 이루어 이스라엘에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기드온은 자기 지파인 므낫세와 더불어 자기들 가까이에 위치한 납달리와 아셀 지파에게 연락하여 병력을 차출해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우두머리들이 전쟁에 패한 후 도망간 곳이 에브라임 지파의 땅이었습니다. 그때 내려와서 미디안 연합군을 치라는 기드온의 말을 전해들은 에브라임 지파가 출정하여 미디안의 두 장군인 오렙과 스엡을 죽이고 기드온에게 그들의 머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에브라임은 전쟁이 시작되는 시점에 기드온이 자신들을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비를 겁니다. 자기들과 의논하지 않고 전쟁을 시작한 것부터 괘씸하게 여긴 것입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 (8:1)

 

일이 잘되면 그 일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서운함을 느낍니다. 잘된 일에 대한 포상에서 자기가 차지할 몫이 없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이 딱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했으니 전리품이 있을 텐데, 처음부터 참전하지 않았으니까 자기 몫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일으켜 자기들에게 돌아올 몫을 더 챙겨볼 의도로 문제를 일으킨 겁니다.

 

다시 한 번 주목할 것은 기드온이 므낫세 지파 출신이라는 점입니다. 므낫세는 원래 장자였지만 그것을 에브라임에게 넘겨주고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에브라임과 서쪽 므낫세 반 지파가 땅을 분배할 때 여호수아 앞에 와서 불평하며 더 많은 땅을 요구했었는데, 200년 이상 세월이 지난 후 므낫세는 불평과 분노를 자기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은 반면, 에브라임은 그것을 물려주었다는 겁니다.

 

비록 내가 분노해야 할 만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자손에게까지 분노를 물려주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왜 자녀에게 걸핏하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버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살면서 이웃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큰 자산입니다. 그런데 분노하는 버릇은 그 자본을 빚으로 만들어버리는 악습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버릇이 무엇이겠습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이든 감사하는 태도로 인해 남다른 기초 자산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서도 나눔을 할 때 감사제목을 먼저 나누는 겁니다. 만약 불평하거나 남을 비난하는 버릇이 있다면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고쳐야 하겠습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불평하고 화를 냈지만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은 맞서 싸우지 않습니다. 그도 역시 쌓인 분노가 많았겠지만 폭발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좋은 말로 타이릅니다.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 행한 일이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나님이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으니 내가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가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하니라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풀리니라” (8:2-3)

 

에브라임에게 정말 큰일을 해 줘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잘했습니다.”라고 칭찬해준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에브라임 지파에게 어느 지파보다도 많은 전리품을 안겨줬을 겁니다.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은 말 한마디로 모든 불평을 무마시켰습니다. 만일 기드온이 에브라임 지파의 억지 주장과 요구에 분노해서 맞서 싸웠다면 동족끼리, 그것도 형제 지파끼리 전쟁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렇듯 남의 분노를 자극하지 않는 말 한마디가 몇 만 명의 군사보다 더 큰 힘이 있습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5:1)

 

그리스도인은 유순한 말, 온유한 말, 부드러운 말로 사람들의 화를 가라앉히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을 주셨고 화평케 해야 할 역할을 맡기셨습니다. 분노에 휩싸인 이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의 말 한마디가 지니는 권세야말로 하나님이 자녀들에게 주신 가장 놀라운 선물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불평하고 분노하는 습관대로 살다가 나중에 결국 혼이 나게 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반드시 그 버릇을 손봐주는 임자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인 사사기 12장에서 에브라임 지파는 똑같은 문제로 입다에게 와서 불평하는데, 입다가 에브라임에게 그 임자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1)

 

에브라임 지파의 나쁜 버릇이 또 나왔습니다. 하지만 입다는 기드온이 아닙니다. 입다는 유순한 기드온과 달리 거친 사람이어서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나는 너희가 도와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2-4)

 

결국 두 지파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고(4), 이 내전으로 에브라임 사람 42,000명이 죽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동족이다 보니 누가 어느 지파 사람인지 가리기 힘들기 때문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발음하지 못하는 쉽볼렛이라는 단어로 에브라임 사람을 가려냅니다.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5-6)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쉽볼렛을 말하게 해서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그들을 죽입니다. 에브라임 지파는 평소에 늘 불평하며 쉽게 분노하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나섰다가 이처럼 어이없는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분노에는 의로운 분노가 있습니다. 사회적인 약자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우리는 분노해야 합니다. 의로운 분노는 사회에 정의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자기 자존심 때문에 분노한다면 그것은 나쁜 습관이 되고, 그래서 툭 하면 불평하며 분노하다가 언젠가 자기를 손봐주는 임자를 만나게 됩니다.

 

요즘 SNS 시대가 가져온 분노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익명을 이용한 댓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화나게 하는지 모릅니다. 누군가 한마디 욕을 하면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이 그 비난에 동조합니다. 이런 문화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이겠습니까? 어느 누구라도 바르게 깨어있지 않으면 이 분노의 물결에 휩쓸리고 말 것입니다.

 

 

3.   분노의 대물림을 끊어라

 

선거 때가 되면 많은 후보들이 나와서 자기를 뽑아달라고 호소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 후보에게 투표하는데, 이전에 보면 한국에서는 크리스천 후보라고 무조건 뽑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다니거나 직분이 있다고 해서 진짜 크리스천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누구를 뽑을지는 고민을 해보아야 하지만, 우리가 뽑지 말아야 할 사람들은 확실합니다. 그들은 바로 분노를 조장하는 사람들입니다. 특히 특정 그룹의 사람들을 지적하며 그들을 향해 사람들이 분노하도록 조장하는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사회가 갈라지고 무너지게 됩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이념과 사상을 가지고 분노를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이 희생당했습니다. 독일 나치 정권의 히틀러가 독일 사람들을 부추겨서 유대인들에 대한 분노를 일으켰고 그 결과 600만 명이 학살당했습니다. 정치지도자들이 사람들을 격동하고 흥분시키면서 분노를 일으켜 서로 죽이고 죽게 만든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비록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지도자는 공동체 안에 화해를 가져오는 사람, 분쟁하여 갈라진 사람들을 화합시키는 사람, 싸움을 중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의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기편을 만들거나 특정한 사람들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가 되게 하는 일에 힘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하나가 되지 않고서는 주님께서 주신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사명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타깝지만 스스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일으킨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적어도 65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판단을 잘못하면 이념이나 사상이나 종교가 걷잡을 수 없는 광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광기에 휩쓸리지 않을 방법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2:3-4)

 

광기에 휩쓸리지 않을 방도는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낫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기쁨이 충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으셨음에도 결코 집단적인 분노를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집단적인 광기를 가라앉히셨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의 광기를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라는 말 한마디로 가라앉히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군중의 광기와 집단적인 분노에도 침묵으로 대응하심으로써 BCAD를 나누는 새 역사, 구원의 역사를 쓰셨습니다.

 

지난 1-2년 사이에 Facebook을 보면 정치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첨예하게 갈려서 싸우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정말 답답할 때가 많고 때로는 정말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어떻게 그렇게 생각이 다르고 주장이 다른지 놀랄 정도입니다. 특히 상대방을 향한 조롱과 비아냥거림과 비난과 공격은 정말 읽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들 중 크리스천들, 특히 목사들이 있다는 겁니다.

 

어떤 사건이 터져서 사람마다 자기 의견을 표현하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을 향한 분노나 조롱으로 나타날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무엇이겠습니까? 나와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동조하면서 상대편을 조롱하는 것이겠습니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 반대하면서 분노하고 공격하는 것이겠습니까?

 

그럴 때는 예수님처럼 침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할 말이 없으셔서 침묵하신 게 아닙니다. 빌라도에게 넘겨지셨을 때 얼마나 할 말이 많으셨겠습니까? 그러나 침묵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이 시대의 광기와 분노에 침묵으로 맞설 때, 곳곳에 들불처럼 번지는 분노의 불길이 가라앉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기적을 경험하도록 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꿈입니다.

 

*********************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국경에 위치한 해발 3832m의 우스파야타 고개에는 예수님 동상이 하나 있습니다. ‘안데스의 예수상이라고 불리는 이 청동상은 양국의 국경 분쟁이 평화롭게 해결된 것을 기념하여 1904년에 제작되었는데, 지형과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감안하다 보니 동상이 자연스럽게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칠레 사람들 사이에서 불만의 소리가 나왔습니다. “저 동상이 왜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가?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만 예수님의 축복이 임하라는 것인가?” 칠레의 정치인들도 나서서 사람들의 불만을 부추겼고, 이것 때문에 분노하며 불평하도록 조장했습니다. 그렇게 칠레 사람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양국 간 화해의 분위기에도 차츰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때 칠레의 어느 신문사 편집국장이 사설을 썼는데, 그 글로 인하여 이 소동이 곧바로 잠잠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예수님 상이 칠레에 등을 돌리고 아르헨티나 쪽을 바라보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예수님 상이 아르헨티나 쪽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우리보다 더 많이 돌봐줘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놓고 칠레의 진정한 지도자 역할을 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온 국민을 분노로 들끓게 부추긴 정치인들입니까, 아니면 재치로 들끓는 분노를 잠재운 편집국장입니까?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편집국장 같은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직장에서, 교회에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분노에 불을 지르는 사람이 아니라, 깊은 통찰력과 지혜로 분노를 가라앉히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먼저, 우리 안에도 에브라임의 교만과 탐욕이 있음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교만과 탐욕에서 불평과 불만이 나오고, 불평과 불만이 분노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렇게 분노를 표현하다가 언젠가 임자를 만나게 되면 엄청난 상처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 전에 회개하고 감사를 회복해야만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들끓는 분노를 잠재우고 하나님의 사랑과 평화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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