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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714일 수요예배

성막에서 배우는 예배 5

분향단: 하나님께 드리는 향기로운 기도

(출애굽기 301~10)

 

[들어가는 말]

 

우리는 지금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신앙생활이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나서 교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신앙생활의 정도를 묻는 두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첫째는, ‘거듭났는가?’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중생의 체험이 있느냐는 것으로, 영적 신분에 대한 질문입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가?’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영적 상태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둘은 서로 통하며 따로 떼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인격적으로 고백하고 영접하는 것으로, 그렇게 되면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면서 매일 함께 인격적으로 만나고 교제할 수 있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우리가 어떻게 감히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만 기억해도 우리는 함부로 살 수가 없습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며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이 나를 아들로, 딸로 삼아주셨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은혜입니다.

 

이처럼 이 두 가지는 사실 같은 것이고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어려운 신학적 용어로 하면 첫 번째는 칭의이고 두 번째는 성화입니다. 그리고 <생명의 삶><새로운 삶>의 용어로 말하면 각각 받은 구원받는 구원입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계속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살게 되는데, 그러한 인격적 교제의 삶에 있어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 바로 기도 생활입니다. 왜냐하면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인격적인 교제의 가장 핵심적인 것이 대화입니다.

 

기도는 영적인 동시에 다분히 인격적인 작업입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과 영으로 교제하고 인간이 영적인 존재인 것도 맞지만, 기도는 우리의 인격이 영적 통로를 통해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분향단’(분향할 제단)을 지성소가 아닌 성소에 위치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인격을 통해 영이신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하는 것이 기도라는 것을 알려주시는 의미가 있습니다.

 

 

1.   휘장을 지나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라

 

기도는 우리의 인격()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분향 제단을 성소에 두게 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분향단을 성소에 두게 하셨지만, 하나님은 그 위치에 대해 아주 분명하고 강력하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제단을 증거궤 위 속죄소 맞은편 곧 증거궤 앞에 있는 휘장 밖에 두라 그 속죄소는 내가 너와 만날 곳이며” (6)

 

분향단은 성소에 있지만, 그 위치는 바로 지성소의 증거궤 위에 있어서 그것을 덮는 뚜껑인 속죄소의 맞은편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휘장이 있어 구분은 되지만, 분향단은 언제나 속죄소의 맞은편에 위치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도에 대한 기가 막힌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비록 우리의 기도가 때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과 언어로 이루어진 우리 자신의 행동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것은 결코 혼자만의 넋두리나 독백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분께 부르짖는 한,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인 속죄소 앞에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언제 어디서 기도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의 자리가 교회이든, 자신의 가정이든, 일터이든, 운전하고 가는 차 안이든, 삶의 어떤 자리든, 또는 편안한 상황이든 힘든 상황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기도하는 순간 그 앞에는 속죄소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속죄소 앞에 있는 것이 우리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이 있는데, 그것은 지성소와 성소를 가르고 있는 휘장입니다. 분향단과 속죄소 사이에 휘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막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혼적인 모든 간구와 고백이 지성소에까지 다다를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성소와 성소 사이의 휘장을 둘로 갈라 찢어지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것은 문학적 표현이나 상징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벌어진 사실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있는 성소와 기도를 받으시는 지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휘장을 쭉 갈라서 찢고 열어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27:50-51)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10:19-20, )

 

바로 이것이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늘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자기 힘으로는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지만 예수님을 통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만 하면,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그 몸이 찢기시며 열어 놓으신 그 휘장을 지나 지성소 안 속죄소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찮게 여깁니다. 생일 케이크에 꽂힌 촛불을 끄며 소원을 비는 것처럼 가볍게 여깁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단순한 우리의 희망 사항이 아니라, 영적인 사건이며 영적인 역사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순간, 휘장이 찢어지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속죄소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의 중요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2.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드리라

 

분향단 위에 향을 피워 올리는 것을 기도라고 한다면, 여기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기도에 대한 아주 중요한 몇 가지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첫째, 기도는 단지 우리의 필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기도가 가벼워지고 왜곡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도가 단지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이라고만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는 아무리 그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것이라고 해도 샤머니즘적인 성격기복주의를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에게 부르짖는다 해도 그 기도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고, 단지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이기적인 것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오래 전인 2007년에 출간된 <래리 크랩의 파파 기도>(IVP 역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함정을 파악해서 보여주는 신선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래리 크랩(Larry Crabb)은 여러 책을 저술한 크리스천 작가이자 유명한 상담심리학자인데, 기도에 대해서는 처음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늘 뭔가를 요구하기만 하는 간청형 기도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누리는 관계형 기도로 가야 한다고 말하면서, 바로 그 관계형 기도를 일명 파파기도(PAPA Prayer)’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PAPA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동시에 네 단어의 앞 글자이기도 합니다.

 

   P: 자신을 꾸밈없이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라(Present).

   A: 자신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예의주시하라(Attend).

   P: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쏟아놓으라(Purge).

   A: 하나님을 자기 인생의 ‘1순위로 여기며 그분께 다가가라(Approach).

 

파파기도는 참된 기도의 기본입니다. 기도하는 내가 기도의 중심이 아니라,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중심이 되신다는 면에서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성소에 분향단을 두고 거기서 분향을 하도록 하신 명령 속에 담겨 있는 기도에 대한 너무나도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아론이 아침마다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또 저녁 때 등불을 켤 때에 사를지니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7-8)

 

이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기도의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가 필요할 때 얼마든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지만,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명령하셨기 때문에 기도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향을 사르도록 명령하셨다는 것은,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향을 살라 드리는 것이 곧 우리의 기도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에게 영광 돌리며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면,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곧 하나님께 분향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하나님께 말할 수 없는 영광을 올려 드리는 것이 됩니다.

 

아침과 저녁에 향을 피워 올린다는 것을 문자적으로 적용해 보십시오. 이미 그 이상으로 기도하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두 번은 기도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영적으로 밝아지고 깨끗해지며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까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3.   향기로운 기도를 드리라

 

기도에 관한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아론은 그 분향단 위에다가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하는데, 매일 아침 그가 등을 손질할 때마다 향을 피워야 하고” (7, )

 

여기서 특별히 강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향기로운 향, 즉 향기가 있는 향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되려면, 그 기도 가운데 인격에서 나오는 향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많은 책을 썼고 크리스천 심리학자인 헨리 클라우드(Henry Cloud)가 쓴 <향기 나는 인격 만들기>(순출판사 간)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Changes That Heal>(치유하는 변화들)입니다.

 

한국어로 옮겨진 제목이 원래의 제목이나 의도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게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책의 내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제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인격이 아름답게 변화되면, 그것은 바로 향기 나는 인격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형상대로의 인격은 향기 나는 인격이라는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은 다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동하실 때 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기도하는 사람의 인격에서 나오는 향기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인격에서 향기가 날 때 그것이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그럴 때 그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향기가 나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분향단에 분향할 향품을 만들도록 하신 말씀 속에 그대로 들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을 가져다가 그 향품을 유향에 섞되 각기 같은 분량으로 하고, 그것으로 향을 만들되 향 만드는 법대로 만들고 그것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고” (30:34-35)

 

분향하는 향품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향품을 섞어서 만듭니다. 그것은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어떤 향품인지 그리고 왜 꼭 이 향품이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각각의 향이 가진 의미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그 인격의 향기를 말해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1)  소합향(나타프): 물방울, 배어나옴

 

향기 나는 인격은 바로 배어나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겉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부터 배어나서 맺히는 것입니다.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언어로는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나오는 언어로 드리는 고백이 향기로운 기도입니다. 대충 아무렇게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처절한 고백과 간절한 소망을 하나님께 아뢰며 나아가는 것이 향기로운 기도입니다.

 

 

2)  나감향(쉐헬레트): 껍질, 깨어짐

 

나감향은 조개껍질 같은 것을 부술 때 나오는 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말 자체는 부서지고 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아와 고집, 생각, 편견들이 깨어져야 함을 알려줍니다. 깨어져야 하는 것이 깨어지지 않은 인격은 향기로운 인격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깨어질 것이 깨어질 때, 바로 거기에서 향기가 납니다.

 

하나님이 받으실 향기로운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스스로 깨어지고 부서지는 바로 그런 기도입니다. 솔직하게 드리는 회개와 참회의 기도가 그런 것입니다. 깨달음과 변화의 기도라고 해도 좋습니다. 바로 그런 것이 향기 나는 인격으로 드리는 기도입니다.

 

 

3)  풍자향(헬베나): 기름지다

 

이것은 나무의 뿌리에서 나오는 수지나 송진 같은 것에 배어 있는 향으로, 이 향의 가장 큰 특징은 기름지다는 것입니다. 향기로운 인격은 기름지고 윤택한 것입니다. 여유로움과 윤택함으로 믿고 신뢰하고 기다리는 가운데 드리는 기도가 향기로운 기도입니다.

 

조급하거나 안달하지 않는 모습으로 기도하며, 건조하지 않고 풍성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온유함이나 넉넉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기에 기다릴 수 있고 맡길 수 있는 것이 바로 향기 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에서는 바로 이런 인격의 향기가 나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향품을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유향에 섞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 탄생 때 동방박사들이 가져온 세 가지 예물 중 하나가 바로 유향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세 가지 예물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이신 메시아 예수님에게 드린 예물인데, 그 중 황금이 왕을 의미하고, 몰약이 선지자를 의미하며, 유향은 바로 제사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을 유향에 섞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 마음의 중심에서 나오는 고백과, 깨어짐에서 나오는 회개, 그리고 신뢰함에서 오는 풍성함과 여유로움의 향기는 그 자체로 완성된 기도가 아니라, 반드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게 온전히 삶을 올려 드리는 헌신 가운데 담겨야 진짜 기도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성품이 훌륭하고 향기롭다 해서 곧 향기로운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인격으로 온전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려 할 때,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이루고자 할 때, 그것이 정말 감당 못할 향기로움으로 나와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이 향품에는 반드시 소금을 더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오는 소금은 언제나 언약을 의미합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2: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성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 (18:19)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가능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은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렇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는 근거는, 간구하는 자에게 응답하고 용서하고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분향단에 분향하는 향은 제일 마지막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인격의 향기가 온전히 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언약을 붙들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입니까? 나의 기도에는 나 자신의 욕심이나 주장이나 자기 의나 교만이나 분노의 향이 아닌, 우리 하나님이 감동하실 만한 인격의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성소에, 그것도 속죄소 맞은편에 분향단을 두게 하시고 거기에 아침저녁으로 향을 사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에게 그런 향기 나는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날마다 이런 향기로운 인격으로 하나님과 기도의 교제를 누리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람으로 아름답고 풍성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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