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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4일 수요예배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1

마태가 전한 복음: 인생의 통치자 예수

(마태복음 11~21)

 

지난주에 끝난 <치유기도> 시리즈에 이어서 그 다음에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가, 여러 가지 할 것들이 있었지만 성경을 죽 살펴보는 시리즈를 하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래는 말씀의 삶에서 자세히 전부 다 다루지 못하니까 그런 내용들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마침 신약성경 27권의 핵심만을 간추려 잘 정리해놓은 책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이동원 목사님이 쓰신 <다시 들어야 할 처음 복음>이라는 책입니다. 전에도 이 책을 하려다가 나중에 하려고 두고 다른 것을 먼저 했는데, 신약성경 각 권에서 하나씩 뽑아 복음의 핵심을 살펴보는 책입니다. 이 책을 중심으로 해서 수요예배 말씀을 앞으로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들어가는 말]

 

한국 어느 가정에서 남편이 직장에서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오늘 당신에게 들려줄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아내가 묻습니다.

무슨 소식인데요?”

, 먼저 기쁜 소식부터. 나 오늘 15천만 원이 생겼어.”

, 정말요? 신난다! 어디서 난 돈인데? 그럼 나쁜 소식은 또 뭐에요?”

남편이 한숨을 푹 쉬면서 대답합니다.

오늘 직장에서 잘렸어. 15천만 원은 퇴직금이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온갖 소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아 흘러 넘칩니다. 다양한 방송매체들이 그런 소식들을 뉴스라는 이름으로 앞 다투어 보도합니다. 그런데 그런 소식들은 대부분 나쁜 소식으로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내용입니다. 조금 전 이야기 속에서 남편의 말처럼, 갑자기 큰 돈이 생겨서 좋은 소식인 것 같지만 사실은 해고를 당해서 직장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이 실제로는 나쁜 소식인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오래 전부터 인기스타나 유명 정치인 또는 기업인의 자살, 테러 공격, 총기난사사건, 살인 사건, 또 여러 자연재해 등,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소식들로 넘쳐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기쁨을 주는 소식이 과연 존재하겠습니까? 놀랍게도 성경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단순한 철학이나 사상이나 교훈이나 도덕이나 윤리가 아니라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은 헬라어로 유앙겔리온(euangelion)’입니다. ‘‘good’이고 앙겔리온‘message’라는 뜻으로, ‘유앙겔리온은 곧 ‘good message’ 또는 ‘good news’입니다.

 

신약성경은 네 개의 복음서로 시작하는데,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의 증언을 빌리면 그분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십니다(1). 하나님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도록 네 명의 증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네 명이 말한 같은 하나의 참 기쁜 소식,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물론 그 네 명의 증인들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입니다. 한국말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등으로 부르지만 영어로 더 잘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라는 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복음은 하나이지만, 이 네 명의 증인들이 각자 개성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 것이 4복음서입니다. 네 개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들을 다룰 때 약간의 차이가 보입니다. 같은 사건인데도 다르게 썼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공관복음이라고 해서 관점도 같고 자료도 같으며 내용도 비슷한데, 요한복음은 90%가 다른 내용입니다.

 

심지어 네 복음서에 다 등장하는 기적 사건이 오병이어사건입니다. 마태, 마가, 누가는 비슷하게 그것을 묘사하지만, 요한복음은 같은 사건이라도 굉장히 다른 각도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정보를 보여줍니다. 그렇게 다른 것은 사건이 불확실하거나 쓴 사람들의 기억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 네 증인들의 관점의 차이 때문입니다. 관점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요즘 미북 관계나 남북관계가 아주 뜨거운 이슈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사건에 대해 보도를 하면서도 소위 한국의 전통적인 세 신문인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에서 나오는 기사와,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의 기사는 큰 차이를 보입니다. 미국 역시 똑같은 사건을 놓고도 CNNFox News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그렇게 매체마다 다른 관점으로 보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어난 사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보도를 하는데 관점이 달라서 다르게 쓰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한쪽으로 몰리기보다는 각각 다른 관점의 기사를 읽으며 조금 더 통합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순서는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초대교회가 성경을 배열한 순서에 따른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 순서에 따라 마태복음부터 시작하여 요한계시록까지 나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마태가 증언한 복음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가 증언한 복음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1.   복음은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성취하는 복이다

 

마태복음 1장은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그 족보의 시작이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지금 읽으면서 다들 느끼셨겠지만 낳고... 낳고... 낳고가 반복되니까 읽기도 힘들고 지루해서 그냥 넘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

 

예수님의 족보의 시작은 아브라함입니다. 마태복음서가 왜 이렇게 시작하겠습니까? 마태복음은 원래 유대인들을 일차적인 대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많은 부분에 있어 구약의 역사적 증언들을 인용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통해 그 예언들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특히 왜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시작하는가 하면,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 가운데 나온다고 구약에 예언되어 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예수가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고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 족보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갈릴리 나사렛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유대 땅 베들레헴 출신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메시야가 될 수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그냥 인간적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탄생 사건을 마태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정확히 보여주어야 유대인들에게 , 예수가 정말 메시야가 맞구나.’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1:22-23 = 이사야 7:14의 성취)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애굽으로부터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2:15 = 11:1의 성취)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2:17-18 = 31:15의 성취)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2:23 = 11:1의 성취)

 

이렇게 1, 2장만 해도 구약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성취될 예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의 언약입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지시하시면서 약속을 주시는데, 그 약속이 바로 아브라함과의 언약입니다. 중요한 언약이 아브라함 언약, 모세 언약, 다윗 언약인데, 여기서는 아브라함 언약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베풀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다. 땅에 사는 모든 민족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12:2-3, )

 

어떻게 아브라함 한 사람이 땅에 사는 모든 민족에게 복을 얻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행하실 온 인류의 구원 계획을 미리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아브라함 언약이 성취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온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순간, 우리는 복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 우리의 복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사람은 누구나 아브라함처럼 이웃에게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창세기 12:2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개역개정: “너는 복이 될지라”)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갈망을 담아서 만들어진 노래도 있습니다.

 

<축복의 통로>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

 

마태가 전한 복음이 이 노래의 가사에 정확히 담겨 있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예수를 구주로 믿고 구원의 복을 누리며, 이제 그 복을 가까운 이웃뿐 아니라, 저 멀리 있는 열방(모든 민족들)에 이르기까지 전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마태복음 마지막 부분(28:19-20)에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대 사명(지상 대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복된 삶을 위해 우리는 떠날 것을 떠나고 버릴 것을 버리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옛 고향, 옛 친척을 떠남으로써 새 고향, 새 인생을 얻은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담대히 떠나는 사람들을 위해 진정으로 복된 인생을 준비해줍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으로 담대히 나아갈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뭐라 해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 혹시 그렇게 살면 바보가 된다고 해도 우직하게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만이 복의 근원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2.   복음은 다윗 왕을 통해 바라본 왕국이 임한 것이다

 

마태가 복음서를 쓸 때 일차적인 대상이 유대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태를 복음서의 기자로 선택하신 이유도 그가 누구보다 유대인의 속성을 잘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 중에도 세리였습니다. 그는 날마다 세관에서 유대인들을 상대하며 세금 걷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가장 자기 속마음이 드러날 때가 돈이 왔다 갔다 할 때입니다. 평소에는 굉장히 좋아 보이는 사람도 돈 문제가 걸리면 바뀌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바뀌는 게 아니고 진짜 모습이 나오는 겁니다. 굉장히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돈 문제가 걸리니까 돌변합니다. 아니면 별로인 줄 알았던 사람이 돈 문제가 걸렸는데도 너무 너그럽게 행동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진짜 모습이 나오는 것입니다.

 

마태는 사람들에게 돈을 걷는 일을 했기 때문에 사람의 속성을 너무 잘 알았습니다. 그의 본명은 레위인데, 마태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으로, 그가 예수님을 믿고 얻은 새 이름입니다. 과거 유대인들에게 세금을 착취하여 로마를 기쁘게 하고 자신의 주머니를 두둑이 채우던 레위가, 이제는 유대인의 진정한 갈망을 대신해서 희망의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로마제국에 눌려 살던 그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들이 최고의 왕이라고 존경하는 다윗 왕의 시대를 다시 한 번 맞이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바람을 이어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은 국기에 다윗의 별을 사용합니다. 이스라엘의 국기를 보면 그려져 있는 별이 다윗의 별입니다. 그들은 그와 같은 다윗 왕의 시대가 메시야를 통해 실현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 엄청난 말씀과 기적을 보고서 다윗의 시대를 이루어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아브라함과 다윗 왕의 후손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이 진짜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메시야가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치적인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치적인 메시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메시야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찾아와 가장 먼저 누구를 찾아왔습니까? 2장에 보면 헤롯 왕 때 예루살렘으로 와서 궁으로 옵니다. 그때 헤롯(대왕)은 깜짝 놀랍니다. 당연히 그 박사들은 왕이니까 왕궁에서 태어난 줄 알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정으로 유대인들이 소망하며 기다리던 바로 그 왕, 메시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대하던 정치적인 메시야는 아니셨습니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13장을 통해 그분이 가져오실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십니다.

 

왕의 주된 책임이 무엇입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일입니다. 인생을 살며 우리가 가진 가장 큰 고민은 누가 나를 다스리는가? 누가 나의 왕인가?’입니다. 물론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은 내가 나를 다스린다.’라고 할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의 주인으로 왕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잘되고 있습니까? 이 세상에 자기가 왕으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 문제로 넘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독일이 프러시아 제국으로 불리던 시절, 한 왕이 평민 복장을 하고 민정시찰에 나섰다고 합니다. 시장을 거쳐 한 공원에 들렀는데 거기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뭘 하는 분이십니까?” “나요? 나는 왕이요.” 그러자 왕이 조금 놀라면서 다시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 그러시군요. 실례지만 어느 나라를 다스리십니까?” 그때 이 노인이 의미심장한 대답을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왕국의 왕이요.” 그래서 왕이 다시 묻습니다. “잘 다스려지십니까?” 그때 노인은 갑자기 풀이 죽은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그저 그렇죠, .” 그 말을 들은 왕은 갑자기 반색하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더니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와 같은 처지이시군요.’'

 

그런데 본문의 마태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가 바로 우리의 왕이시다!” 마태의 복음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낙심하고 절망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만이 왕이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때 삶이 질서를 찾고 의미가 있어지며 행복하게 됩니다.

 

이것이 너무 단순한 진리인데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다른 데 가서 자꾸 헤매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조차 실제로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살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기가 자기의 왕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살면 삶이 굉장히 피곤합니다. 늘 지치게 됩니다. 아주 복잡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인생이 되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행복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며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도와주소서!”라고 외칩니다. 그리고 그들은 병에서 놓임을 받고 귀신의 통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바로 이것이 마태의 복음입니다. 마태가 전한 복음의 본질은 예수가 하늘나라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으로서 우리 인생의 통치자가 되신다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 산상설교가 나옵니다. 5, 6, 7장에서 산상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확실히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   복음은 죄인들을 사용하시는 은혜의 통로다

 

마태복음 1징에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의 중요한 특성 하나는 예수님의 육체적 조상들 중에 말도 안 되는 부류의 부끄러운 조상들까지도 과감하게 노출시킨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마태복음을 기록한 마태의 열등감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세리 마태는 유대인들이 증오하는 로마 정부를 위해 일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민족의 반역자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늘 따라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메시야라고 불리는 예수가 자기를 제자로 받아주셨으니까, 그에게는 정말 놀랍고 파격적인 은혜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자기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가 보다 하지만 세리를 제자로 받아주는 랍비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찾아오셔서 나를 따르라하셨고 그래서 제자가 되었습니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파격적인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는 세금 장부를 기록하던 손으로 예수의 생애를 증언하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지금까지 어떤 유대인 역사가도 시도하지 않았던 아주 파격적인 일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파격적인 은혜를 받으니까 파격적인 일을 합니다. 그것은 메시아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면서 마땅히 숨겨야 할 인물들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쓰실 때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나 편견을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첫 번째 파격은, 마태가 당시로는 족보에 전혀 들어갈 수 없었던 여성들을 포함시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네 명이나 되는 여성들을 등장시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나 이삭의 이내 리브가 같은 여인들이 아니었습니다. 다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부정하다고 여길 수 있는 여인들이었습니다.

 

먼저, 다말은 자기 시아버지 유다를 성적으로 유혹해서 시아버지의 아이들을 낳은 비윤리적인 여인이었습니다(3). 라합은 기생 혹은 창녀 출신으로, 더러운 가나안(여리고) 여자입니다(5).

 

우리야의 아내는 이름이 안 나오는데, 그 밧세바는 다윗 왕의 생애에 유일한 스캔들을 안긴 다윗의 간음의 대상이었습니다(6).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쓴 마태복음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 왕에게 해가 될 만한 것은 최대한 자제했기에 밧세바의 이름이 안 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룻이 있는데, 그나마 룻은 아름답고 훌륭한 여인이었지만(5),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기에는 결격사항인 이방인 모압 출신이었습니다. 이어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마리아와 연결됩니다. 그런데 마태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의 천사를 등장시켜 요셉에게 예수 탄생의 의미를 전합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1)

 

죄인의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친히 죄인들의 혈통을 타고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일본의 소설가이기도 하고 신앙인이었던 엔도 슈사쿠는 내가 성경을 사랑하는 이유는, 말도 안 되는 좋은 이야기로만 가득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추잡하고 더러운 이야기들이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성경을 더 사랑하고 믿을 수 있다는 겁니다. 꾸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결정적인 역사적 사실을 통해 마태는 그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시기 위해 세상이 버린 죄인들을 시용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과거와 상관없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므로 마태의 복음은 죄인들을 사용하시는 은혜의 통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은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입니다.

 

19세기 중엽 영국에 한 노예상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부 아프리카를 오가며 노예무역을 하다가 어느 날 배가 난파하고 맙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부르짖었고, 구조를 받은 후에 그는 성경을 읽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통해 자신이 죄의 노예임을 깨달은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구원받는 복음의 진리를 깨우치고 복음전도자의 길에 헌신하게 됩니다. 영국 올리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다음과 같은 고백이 새겨져 있습니다.

 

한때는 이교도였으며 탕자요 아프리카 노예 상인이었던 존 뉴턴은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은혜로 되살아났고 용서 받아 새 삶을 살게 되었으며 그가 오랫동안 없애려고 했던 믿음을 전파하는 자가 되었다.”

 

그가 작사한 유명한 찬양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찬송가 305)

 

마태도 존 뉴턴과 동일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은 죄인들을 사용하시는 은혜의 통로라는 사실을 부르짖었습니다. 고상한 사람, 잘나가는 사람, 높은 사람, 성공한 사람, 착한 사람, 나와 맞는 사람만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것만 선호한다면 우리가 반쪽짜리 복음을 믿고 있는 겁니다. 복음은 오히려 형편없는 사람, 어울릴 수 없는 사람, 정말 말도 안 되는 부류의 사람들까지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게 복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흠이 없거나 완전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 형편없어서 지옥을 향해 가고 있던 죄인들이었는데, 주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셔서 생명의 길로 인도해주신 것입니다. 그 은혜를 누구보다 깊이 깨달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에 여러분은 허물과 죄 가운데서, 이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식들 가운데서 작용하는 영을 따라 살았습니다.

우리도 모두 전에는, 그들 가운데에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했으며, 나머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크신 사랑으로 말미암아,

범죄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살리시고, 하늘에 함께 앉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2:1-10, )

 

여기서의 선한 일은 그저 불쌍한 사람을 조금 도와주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 은혜로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았는데, 도저히 갚을 수 없는 그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도 역시 그 은혜의 통로가 되어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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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 >>

 

여러분, 우리가 이 시간 기도할 때,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지 생각해야겠습니다.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구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이 은혜를 제대로 기억을 못할 때 자기가 자기 마음대로 왕이 되어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정말 주님의 은혜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원래는 나도 저 다말이나 라합이나 밧세바와 별로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오히려 더 악한 죄인이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나를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은혜로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것이 얼마나 갚을 수 없는 은혜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기나 질투나 어떤 쓸 데 없는 일에 낭비할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 동안 정말 축복의 통로, 복의 근원이 되어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사의 기도와 결단의 기도를 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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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누가가 다시 전한 복음: 성령의 권능으로 펼쳐질 드라마" (행 1:1-8)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5 (12/12/18) kpccoh 2018.12.13 648
177 "요한이 전한 복음: 예수를 통해 누리는 영원한 삶" (요 20:30-31)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4 (12/05/18) kpccoh 2018.12.06 1176
176 "누가가 전한 복음: 은혜를 누리는 새로운 삶" (눅 1:1-4, 2:8-14)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3 (11/28/18) kpccoh 2018.11.29 987
175 "마가가 전한 복음: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맡기라" (막 1:1-15)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2 (11/21/18) kpccoh 2018.11.22 1697
» "마태가 전한 복음: 인생의 통치자 예수" (마 1:1-21)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1 (11/14/18) kpccoh 2018.11.15 1915
173 "심령을 강건하게 해주는 부르짖는 기도" (시편 3편) - 치유기도 17/최종 (11/07/18) kpccoh 2018.11.08 2097
172 "평안의 기도와 승리의 기도" (요 20:19-23) - 치유기도 16 (10/31/18) kpccoh 2018.11.01 895
171 "올바른 경계선을 세우는 삶" (막 3:31-35) - 치유기도 16 (10/24/18) kpccoh 2018.10.25 757
170 "묶임의 치유" (창 44:18-34) - 치유기도 14 (10/17/18) kpccoh 2018.10.18 1186
169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모든 것을 제거하라" (삼상 15:10-23) - 치유기도 13 (10/10/18) kpccoh 2018.10.11 836
168 "영적 분별을 통하여 승리하라" (사 61:1-3) - 치유기도 12 (9/26/18) kpccoh 2018.09.27 1413
167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라" (고후 10:3-6) - 치유기도 11 (9/19/18) kpccoh 2018.09.20 2188
166 "성경적 결혼과 교회” (창 1:1-31) - 홍영락 전도사 (Steve Hong)(9/12/18) kpccoh 2018.09.13 324
165 "용서함으로 고통의 터널을 통과하라" (창 45:1-8) - 치유기도 10 (9/05/18) kpccoh 2018.09.06 1085
164 "용서할 때 일어나는 회복의 역사" (마 18:23-35) - 치유기도 9 (8/29/18) kpccoh 2018.08.30 876
163 "억압된 기억의 치유" (렘 31:31-34) - 치유기도 8 (8/22/18) kpccoh 2018.08.23 1031
162 단기선교 간증 및 보고 (마 16:13-19) - 이금주 교우 (8/15/18) kpccoh 2018.08.16 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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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내면의 갈등을 치유하기" (롬 7:15-25) - 치유기도 6 (8/01/18) kpccoh 2018.08.02 1459
159 "성인자아와 내면아이의 갈등과 치유" (마 11:28-30) - 치유기도 5 (7/25/18) kpccoh 2018.07.2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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