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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1일 수요예배
✦ 치유기도 16 ✦
“평안의 기도와 승리의 기도”
(요한복음 20장 19~23절)
1. 평안을 구하는 숨기도
1) 숨기도란 무엇인가
이 세상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로 가득합니다. 끔찍한 총기 사건, 갑작스런 교통사고, 고치기 힘든 질병, 허리케인이나 지진 등의 자연재해, 급변하는 국제 정세 등, 우리는 늘 불안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면서 마음의 평안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도 평안을 잃은 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도 믿지도 못한 채 두려움과 공포로 떨면서 함께 모여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는데,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19절)
떨고 있는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가장 먼저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였습니다. “평강”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샬롬’, 헬라어로 ‘에이레네’인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으로 얻을 수 있는 것, 또는 그 결과로 나타나는 안식과 만족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참 평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얻어지는 것이며, 세상에서의 성취나 성공을 통해 잠시 맛보는 일시적 만족과 기쁨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성공하고 돈을 많이 벌고 잘 나가더라도, 관계가 삐끗하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일이 잘 풀리고 있어도,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할 때 평안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진정한 마음의 평강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순례자의 길(The Way of a Pilgrim)>이라는 책이 있는데, 러시아 영성의 고전입니다. 러시아어 제목을 직역하면, ‘어느 순례자가 영적 아버지에게 털어놓은 숨김없는 이야기’입니다. 19세기 중엽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순례자가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러시아와 시베리아의 성지들을 찾아 순례하면서 경험한 일들이 이 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의 한 청년이 기도에 대해 강한 열망을 갖게 되는데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말씀에 사로잡히면서, 어떻게 하면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지 그 답을 얻기 위해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오랜 방황 끝에 만난 한 스승에게서 “주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Lord Jesus Christ, Son of God, have mercy on me!)” 하고 숨을 내쉬면서 반복하여 기도하라는 조언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차츰 이 기도를 통하여 놀라운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고 내면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없이 기도드리면서 나의 영혼은 완전한 평화를 느꼈습니다. 나의 모든 생각은 고요해지기 시작했고, 내 마음은 저절로 따뜻하고 즐거워졌으며, 배가 고플 때나 병들었을 때 그리고 심지어 누가 나를 괴롭힐 때라도 예수기도의 달콤함을 생각하면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었으며 분노를 사라졌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게 되었고, 나의 마음은 주님의 사랑으로 가득 찼으며, 내가 사는 오두막은 화려한 궁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청년은 ‘숨기도’를 통해 24시간 주님을 바라보는 영적 집중력을 얻게 되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마음속에 생명의 강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를 괴롭혔던 두려움과 불안, 걱정과 근심, 그리고 혈기와 분노 같은 내면의 어두움이 걷히며, 주님의 빛 가운데 임하는 풍성한 기쁨과 평안이 그를 강건하게 해준 것입니다.
2) 숨기도, 이렇게 하라
기도는 신앙생활에서 영적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호흡과도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생가를 불어넣으셨을 때 비로소 인간이 된 것처럼, 우리의 생명은 호흡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창 2:7)
사람이 죽는 것도 호흡이 끊어질 때 죽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병들지만, 반대로 마음에 평강과 희망과 기쁨이 가득하고 육신도 건강할 때 호흡 역시 활기차게 됩니다. 이렇듯 호흡은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만나는 접촉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를 지으신 하나님, 당신의 영을 불어넣으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의미 있는 호흡을 하는 것은 기도생활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을 찾아오셨을 때 제자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반응이 일어났겠습니까?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던 예수님을 저버리고 도망간 그들 안에 수치심과 죄책감과 당혹감이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3일째 되는 날 저녁에 모여 있는 자기들에게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때 제자들의 반응은 기쁨이었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0절)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는 제자들을 향해 예수님은 평강을 기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또 평강과 함께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 (21-22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성령을 받는 것이라는 말이며, 우리가 사명을 이룰 수 있으려면 평강을 누리며 살아야 하고, 그것은 성령을 받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도 숨을 사용하셨습니다.
이처럼 숨을 사용하여 실제적인 기도를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숨기도’라고 합니다. 이 숨기도는 많은 영성가들을 통해 ‘심장기도’ 또는 ‘예수기도’라고도 불려왔습니다. 숨기도는 자신의 필요를 구하는 기도나 간구가 아닙니다. 이 기도는 침묵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산만함에서 벗어나,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그분을 구하며 내적인 평안을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분주하고 피곤한 21세기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한 기도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기도는 대상이 중요합니다. ‘숨기도’는 세상에 떠돌아다니는 영들을 대상으로 하는 단전호흡이나 기체조나 뉴에이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며 어두움과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의식하며, 영혼의 호흡을 통해 성령님을 받아들이는 기도입니다.
‘들이마심’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고, ‘내쉼’은 내 안에 있는 죄와 악, 탁한 기운과 삶 속에서 일어나는 근심, 걱정, 염려, 두려움, 분노와 같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내보냄으로써 나를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교인들 중에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도 불구하고 끊임없는 두려움과 불안과 근심과 염려로 시달리고, 또 절제가 안 되는 분노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보통 우리가 충격적이고 힘든 일을 만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음이 눌리지 않습니까? 과로로 몸이 피곤하고 지치게 되면,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어두워집니다. 감정도 우울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귀찮아지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마저도 흔들리게 됩니다.
사람끼리도 안 보면 마음이 멀어진다고 합니다. 예배 한 번 빠지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내 영적 생활에 큰 타격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두세 번 지속되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흔들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해지면 정신적 또는 육체적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종종 도시 사람들이 공기가 좋은 산이나 바닷가로 여행을 가서 심호흡을 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숨을 통해 내 안의 근심, 걱정, 두려움,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들을 내보내는 마음으로 ‘주님, 이런 것들을 가져가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들이마실 때는 ‘성령님, 충만하게 임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덧 마음의 눌림이 사라지고 생각과 감정의 묶임에서 자유로워지면서 영적 집중력이 생겨 제대로 기도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혼자 기도하실 때 가만히 침묵기도를 하지 마시고(그러면 꿈의 세계로 가게 되니까),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숨을 내뱉을 때는 ‘내 안의 더러운 것들을 다 가져가주십시오.’라고 기도하며 하고, 들이마실 때는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해주십시오.’ 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숨기도를 하면 영이 맑아지고 호흡도 강해집니다. 또한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도 단순 명료해지며, 영적 분별력과 집중력이 생기고 성령 충만함을 경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회복된 강한 호흡은 우리의 영혼과 몸을 모두 건강하게 해줍니다.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 스치거나 부정적인 말을 받아들이면,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안에 두려움과 불안이 자리 잡게 됩니다. 또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그 사람 안에 슬픔이나 불만이나 원망이나 분노가 많을 경우, 그 사람의 감정과 생각이 나에게도 전이되면서 답답함과 함께 호흡도 약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장에서 교회나 제3자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개인적으로 만날 때에는 더더욱 남의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제3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긍정적이고 칭찬하는 말보다는 남에 대한 험담으로 흐르거나 부정적인 말을 주로 하게 됩니다. 칭찬하고 격려하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남의 말을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단순히 거기 없는 사람에 대한 말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런 말을 한 상대방과 자신의 에너지가 약해지고 호흡도 약해져서 본인에게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인 비난과 호통과 꾸중은 사람의 기를 죽이고 에너지를 빼앗으며 결과적으로 호흡을 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주로 문제를 다루고 비판이나 부정적인 말이 많이 나오는 모임을 하고 나면 기분이 별로 안 좋아집니다. 그런데 동시에 실제로 몸도 약해지고 호흡도 약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의를 할 때도 문제 제기와 비판에서 그치지 말고, 반드시 대안을 마련하며 밝은 분위기 가운데 마치는 것이 모두의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합니다.
호흡이 약한 사람은 마음과 몸이 연약한 상태가 되어 예민해지기 때문에, 기분이 조금만 나빠져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지며 쉽게 탈진합니다. 그래서 깊은 호흡을 통해 안정과 평안을 유지하며 재충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반면 칭찬과 격려의 말이나 사랑의 나눔은 호흡을 여유롭게 만들어줍니다. 그런 말을 한 사람도 들은 사람도 모두 몸과 마음이 밝고 건강해지며, 호흡과 기운이 자유로워져서 매사에 당당하고 자존감도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목장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그렇게 감사의 제목을 나누고 사랑의 고백과 믿음의 간증을 나누는 분들의 얼굴이 밝고 행복해 보이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서적,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라도 좋은 말을 많이 하고 좋은 말만 들을 수 있는 가정과 목장과 교회의 분위기를 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만남을 할 때도 항상 감사와 칭찬과 격려의 말만 하고 들을 수 있는 관계가 되도록 애를 써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 자신을 악한 것으로부터 지키며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됩니다.
2. 모든 것을 이기는 감사기도
1) 감사의 중요성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고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고급스러운 자동차와 넓은 집, 놀라운 품질의 물건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은, 그렇게 환경이 좋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점점 낮아지고 있고, 한국 사람들의 자살률은 2016년까지 12년 동안 OECD 가입 35개국 중 1위였다는 것입니다. 역사상 최고 수준의 편리함과 엄청난 과학기술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역사상 최고 수준의 불행을 느끼고 있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결국 생활의 편리함과 물질의 풍성함이 우리에게 행복을 잘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감사에 대한 과학적 연구의 권위자인 캘리포니아 데이비스 대학교(UC Davis) 심리학과 로버트 에먼스(Robert A. Emmons) 교수가 지난 2003년 마이애미 대학교(U. of Miami) 심리학과 마이클 맥컬러(Michael E. McCullough) 교수와 함께 실험을 진행하여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했습니다. 그 연구는 감사가 사람에게 육체적,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아내는 실험이었습니다(제목: “Counting Blessings Versus Burdens: An Experimental Investigation of Gratitude and Subjective Well-Being in Daily Life”).
그들은 자원봉사자들을 모아서 세 그룹으로 나누어 일주일 동안 실험을 진행했는데, A그룹은 기분 나쁜 말과 행동에 집중하면서 일주일을 지내게 했고, B그룹은 감사를 드러내는 말과 행동에 집중하게 했으며, C그룹은 일상적인 말과 행동에 집중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당연히 B그룹의 사람들이 행복감을 가장 많이 느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으며, 가족관계도 좋아지고 신앙심도 깊어졌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두통이나 감기를 앓은 사람도 없었고, 활동지수도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감사하는 태도는 ‘매일’ 연습할 때 더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얻었습니다.
사람의 몸은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감사를 하면 맥박이 고르게 되고 위장의 활동도 좋아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화력도 높아지며, 면역력 역시 향상시켜서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 건강해진다는 것이 그 연구의 결과였습니다. 2003년에 이미 그런 연구 결과가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매일 감사의 습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감사하지 않는 사람보다 평균적으로 10년을 더 장수한다고 합니다. 그와는 반대로 원망과 불평을 쏟아내며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과 몸은 병들기 쉽고 불행해집니다. 감사는 건강과 직결되는데, 유난히 잔병치레가 많은 사람은 혹시 자신의 삶에서 감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어단어 ‘thank’는 고대 영어인 ‘pancian’에서 유래되었고, 그 뿌리가 되는 단어인 ‘panc’는 ‘생각하다’라는 뜻인 ‘think’의 어원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딱 떨어지거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의식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끊임없이 훈련해야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탈무드’에는 “혓바닥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길들이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라.”라는 가르침이 있을 정도입니다.
2) 감사를 방해하는 것들
(1) 욕심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 1:15)
죄와 죽음의 근원은 모두 욕심입니다. 욕심과 감사는 공존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사탄의 속성이고, 감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를 한순간에 불평으로 바꾸어놓는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욕심을 품으면 불평하게 되어 있고, 불평하면 불행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불평의 입을 가지게 되면 맨 날 불평을 쏟아놓게 되는데, 문제는 본인만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감사의 습관에 길들여지면 보는 것마다 감사의 조건이 되고, 입을 열면 감사가 샘솟듯 터져 나와서 행복 바이러스를 사방에 퍼뜨리게 됩니다.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부정적인 말만 계속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내 마음도 스트레스를 받고 너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계속 감사의 말, 좋은 말, 격려하는 말만 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연습인 반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은 불행해지는 연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썩고, 진리를 잃어서, 경건을 이득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 사이에 끊임없는 알력이 생깁니다. 자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경건은 큰 이득을 줍니다.” (딤전 6:5-6, 새)
자족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경건의 훈련, 신앙훈련, 제자훈련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욕심부터 버려야 신앙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했습니다. 사실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는 불과 11일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대다수는 약속의 땅을 밟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는데, 그 주된 이유는 불평불만과 원망의 태도 때문이었습니다.
불평은 자기가 가진 축복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불평하다’에 해당되는 영어 단어인 ‘complain’의 어원은 ‘머물다’입니다. 이처럼 불평은 자신의 인생을 가둘 뿐 아니라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전진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저 그 자리에 머물게 만들어서 도태되게 만듭니다.
나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내 안에 불평, 불만, 원망, 짜증, 분노가 많습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광야생활이 길어질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황과 문제에 관계없이 자신의 입에서 감사가 나오기 시작할 때, 아니 엄청난 비극이나 해결될 수 없을 정도로 큰 문제에 닥쳤을 때에도 감사가 나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된 것입니다.
(2) 비교의식
비교의식은 어떤 의미에서 욕심의 또 다른 얼굴이기도 합니다. 상대방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우월감으로 교만해지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자기비하의 늪에 푹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비교의식은 우리를 늘 상대적 빈곤감에 빠져서 허덕이게 만듭니다.
어떤 사람이 한국어와 일본어와 영어 속담을 비교해보았더니, 나라마다 표현은 조금씩 달라도 내용이 비슷한 속담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만 있고 일본과 영어권에는 없는 속담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입니다. 시기와 질투란 비교의식에서 나오며, 지금 이것 때문에 한국 사람들이 병들고 있습니다. 댓글 다는 것을 보면, 어느 나라나 악하게 다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국이 유독 심합니다. 정말 이상할 정도입니다. 시기와 질투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교의식에 사로잡힐 때마다 천국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정말 사랑하시는 자녀인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매일 들으며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이 말씀입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습 3:17)
다른 사람이 어떻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나를 이렇게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겠습니다.
(3) 염려
사실 우리가 염려하는 문제들 중 현실에 나타난 것은 약 10%도 안 되고, 나머지 90% 이상은 이미 다 끝난 과거의 일이거나 일어날 가능성도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근심, 걱정, 두려움, 염려가 많은 사람들은 사탄의 표적이 되기가 쉽습니다.
“여러분의 걱정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돌보고 계십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믿음에 굳게 서서, 악마를 맞서 싸우십시오.” (벧전 5:7-9a, 새)
우리를 삼키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악마를 맞서 싸워 이기려면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에 굳게 서는 것이 무엇입니까? 무슨 엄청나고 거창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 자신 안의 영적 습관을 점검하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감사도 영적인 습관이고, 염려와 불평도 영적인 습관이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며 살면 마귀와 맞서 우리가 승리하게 되고, 불평과 염려로 살면 패배하게 됩니다.
말이라는 것은 우리 마음의 태도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마음에 감사가 없다면 그 영혼은 병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불평이나 원망보다,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소리 내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도 속으로만 하지 말고 소리 내어 말로 해야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무조건적인 감사에서 시작됨을 기억해야 합니다. 잘될 때도 감사하지만, 환경이 좋아서만 감사하는 게 아니라 환경과 관계없이 무조건 감사하는 것이 바른 영적 태도입니다.
여러분, 건강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그럼 감사하십시오.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으십니까? 그럼 감사하십시오. 감사의 습관이 들 때까지 매일 모든 일에 감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기로 결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감사할 수도 있고 불평하며 원망할 수도 있는 선택권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기로 결정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감사의 삶을 살아갈 때 하늘 문이 열리며 치유와 회복이 우리 안에, 또 우리 가정과 교회 안에 일어날 것입니다.
감사하는 삶이 모든 것을 이기게 해줍니다. 물을 마실 때도 감사하는 겁니다. 스스로 물을 넘길 수 없는 사람들이 세상에 아주 많습니다. 걸으면서도 감사하는 겁니다. 자기 발로 걷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숨을 쉬면서도 감사하는 겁니다. 자기 힘으로 호흡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병원에 가보십시오. 호흡기를 달고 간신히 유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결국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행복이 우리에게 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기뻐하는 것’과 ‘기도’도 ‘감사’로 바꾸어서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항상 감사하라! 쉬지 말고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