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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523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4

찬양으로 승리를 선포하라

(역대하 2013~30)

 

1.   찬양 가운데 깊은 임재로 들어가기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고전 14:15)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하는 자문자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영과 마음이 합해서 전인격적으로 기도하고 찬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와 찬양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기도는 하는데 찬양은 안 한다거나, 찬양은 하는데 기도는 안 한다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찬양과 기도는 서로 끌어주고 열어주는 신비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으로 기도를 준비하고, 기도로 찬양에 불을 붙입니다.

 

찬양은 우리로 하여금 성령님의 임재 가운데로 깊이 들어가게 해줍니다. 기도할 때도 성령님이 임재하시지만, 특히 찬양 가운데 충만하게 임재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찬양 가운데 얼마나 강력하게 나타나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 시편입니다. 시편은 기분 좋을 때 읊은 단순한 시이거나, 기분 나쁘다고 한탄하는 시가 아닙니다. 인생의 고난 속에서 하나님만을 붙잡고 나아간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합쳐진 찬양이며 기도입니다.

 

찬양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주님과의 깊은 대화가 이루어집니다. 주님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주님께서 나를 통해 하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성령의 임재 가운데 자신을 온전히 맡겨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님만 보이시는 상태, 주님과 나만의 조용한 만남으로 들어가는 상태가 바로 경배입니다. 그래서 찬양과 경배는 연결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찬양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칭찬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을 찬양하라하고 제 3자가 찬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경배또는 예배는 바로 그렇게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완전히 나 자신을 드리면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전에 왔다 가는 것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전에 들어와 백성들이 기도하고 찬양하다가, 대제사장이 물두멍에서 손을 씻고 성소 안으로 들어가고 또 1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지성소에 들어가 섬깁니다. 점점 더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것이 예배입니다. 찬양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높여드리고(거룩하신 하나님, 위대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그분께 나 자신을 완전히 드리며 나아가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구원받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찬양입니다. 성령을 받은 증거 중 하나는 찬양이 터지는 것인데,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입술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많은 분들이 찬양이라고 하면 노래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물론 노래는 찬양의 가장 주된 방법인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찬송은 찬양의 여러 가지 방법들 중 하나입니다. 말로 찬양할 수 있고, 연주로 찬양할 수 있고, 몸짓으로 찬양할 수 있습니다(body worship).

 

그런데 찬송은 간증에 음악을 입힌 것으로, 구원받고 은혜 받은 사람,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들만이 부를 수 있는 하늘의 노래입니다. 찬양은 목소리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부릅니다. 감사와 감격의 눈물 없이는 진정한 찬양을 부를 수 없습니다. 결국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의 척도는 찬양에 있습니다. 마음에서부터 힘 있고 따뜻한 찬양이 흘러나오는 사람의 신앙은 건강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항상 찬양이 입에서 흘러나옵니다.

 

구원받은 백성이 부르는 찬양은 마귀의 권세를 이기고 승리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찬양이 나오는 본문들을 보면 영적인 승리가 나옵니다. 출애굽기에서도 하나님의 기적으로 갈라진 홍해 바닷길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장 먼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승리의 찬양을 했던 것입니다.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15:1-2)

 

그런데 홍해를 건너면서 승리의 찬양을 불렀던 그들이 광야의 시련을 만나자마자 그 입술에서 찬양이 사라지고 불평과 원망만을 일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승리가 아닌 패배에, 능력이 아니라 무기력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말이 입 안에 있으면 내가 그 말의 주인입니다. 그러나 말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그 말이 나를 끌고 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내뱉는 순간부터 패배감과 무기력함이 우리를 끌고 가게 됩니다. 마귀가 그러한 불평과 원망을 연료로 사용하여 우리의 인생을 침체로 끌고 갈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불평과 원망이 우리 입에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어제 <말씀의 삶>에서 공부한 것인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1세대가 광야에서 모두 죽은 원인이 바로 불평과 원망이었습니다. 1세대 군대의 숫자가 모두 603,550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딱 두 명, 갈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나머지 603548명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했기 때문입니다.

 

힘들수록 찬양하면서 불평과 원망을 떠나보내면, 우리의 입으로 했던 그 찬양의 언어를 하나님이 연료로 사용하셔서 우리의 인생을 건져주십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면 찬양할 수 없고, 찬양하면 불평과 원망을 할 수 없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어떠한 힘든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찬양하고 있으면 환경을 이기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안 힘든 게 아닙니다. 힘든데 불평과 원망 대신 찬양하고 있으면 환경을 이길 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하면 환경의 지배를 받고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마귀가 그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찬양으로 환경을 이길 수 있다는 비밀을 안 믿음의 선배들은 항상 찬양과 기도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2.   강력한 영적 무기인 찬양

 

찬양은 기도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영적 무기이자 사탄의 역사를 막는 영적 보호막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인 찬양, 예수의 이름을 높이는 찬양,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는 찬양이 불리게 되면 악한 영들이 떠나가고 묶인 자가 놓임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탄은 찬양으로 충만한 사람과 가정과 교회와 목장을 결코 해치지 못합니다.

 

혹시 가정에 문제가 있습니까? 찬양 곡을 틀어놓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십시오. 교회에 문제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뜨겁게 찬양하면 됩니다. 찬양은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사람들을 지켜주는 방패가 되는 동시에, 마귀를 공격하여 무찌르는 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인 역대하 20장을 보면, 경건한 유다 왕 여호사밧이 무기가 아닌 찬양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숫자로는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모압과 암몬의 대군이 연합군으로 공격해오는데, 마온 사람들(또는 세일 사람들, 즉 에돔)과 같이 옵니다. 그때 여호사밧은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며 기도할 것을 선포합니다(3). 이에 유다 사람들은 모든 성읍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와서 함께 성전에서 기도합니다.

 

유다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아내와 자녀와 어린이와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13)

 

여기에 보면 남자 어른들뿐만 아니라 아내들과 자녀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도 다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서서 기도합니다. 그렇게 모든 백성들이 여호사밧 왕과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는 중에 회중 가운데 있던 야하시엘이라는 레위인에게 성령이 임하시면서 그가 말씀을 선포합니다.

 

야하시엘이 이르되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과 여호사밧 왕이여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내일 너희는 그들에게로 내려가라 그들이 시스 고개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골짜기 어귀 여루엘 들 앞에서 그들을 만나려니와,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매” (15-17)

 

이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이 전쟁은 너희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나 하나님이 맡아 하는 것이다.”라고 하시고(15), “이 전쟁에서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다.”(17)라고 하십니다. 이에 온 유다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고 경배를 드리며 큰소리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하고, 그핫 자손과 고라 자손에게 속한 레위 사람들은 서서 심히 큰 소리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니라” (18-19)

 

그리고 다음 날 아침에 백성들은 모두 일찍 일어납니다. 이때 여호사밧이 뭐라고 합니까?

 

이에 백성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드고아 들로 나가니라 나갈 때에 여호사밧이 서서 이르되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의 선지자들을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하고” (20)

 

이 여호사밧의 선포를 보십시오. ‘주님을 믿어야만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신뢰하면 반드시 이긴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백성들과 함께 전쟁에 나가는데, 놀랍게도 최선봉에 전투부대가 아니라 찬양대를 세우고 나아갑니다.

 

백성과 더불어 의논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21)

 

이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맨 앞에 백성들과 더불어 의논하고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결코 이것은 여호사밧 개인이 왕의 체면 때문에 혼자 객기를 부리는 것이 아닙니다. 백성과 함께 의논한 다음 그렇게 했습니다. 뭘 의논했습니까? 어떻게 할까를 의논했겠지만, 다 함께 기도하니까 마음이 하나가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야하시엘을 통해 이미 주신 말씀대로 너희는 싸울 것도 없다. 내가 하는 것을 봐라.”라고 하신 것을 어떻게 볼지 의논한 겁니다.

 

그래서 찬양대를 앞세우기로 함께 결정한 것입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을 뽑아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진하게 하는데,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드리며 행진하게 합니다. 군대도 싸우러 나간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승리를 주실지 보러 나간 겁니다. 하나님께서 이길 거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쟁사에 전무후무한 진형입니다. 그런데 찬양만 하고 나가면 다 이긴다는 게 아닙니다. 다른 전쟁에서는 이렇게 하지 않고 나가서 싸웠습니다. 그런데 이때만큼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을 직접 이기게 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보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냥 나가서 본 겁니다. 그런데 그 찬송이 시작될 때 하나님께서 복병을 시키셔서 적들을 치게 하십니다.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과 모압과 세일 산 주민들을 치게 하시므로 그들이 패하였으니, 곧 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 산 주민들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주민들을 멸한 후에는 그들이 서로 쳐죽였더라” (22-23)

 

분명히 모압과 암몬의 연합군이 유다를 공격하러 왔는데, 그들이 먼저 세일 산 즉 에돔 사람들을 쳐 죽이더니 그 다음에는 암몬과 모압이 서로를 쳐 죽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적군은 결국 자멸하고 말았습니다. 믿기 어려운 승리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대로, 유다 백성은 싸울 필요도 없었고 승리를 주시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순종한 백성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을 다시 보면, 찬양을 시작할 때 하나님께서 적을 무너뜨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결국 찬양은 영적 전쟁의 결정적인 무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할 때부터 마귀는 두려워 떠나게 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하나님이 아직 움직이지 않으셨더라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칭찬해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내 마음을 합치는 것입니다. 상황을 보고 절망하거나 낙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 신뢰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어려움이 생겼을 때 그 상황에 집중하는데, 그렇게 되면 낙심하며 절망하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눈을 들어 하나님께 집중하면서 찬양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하늘의 군대를 풀어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적군의 숫자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적이 얼마나 강한가, 얼마나 엄청난 무기가 갖고 있는가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찬양 가운데 주님께서 역사하시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사밧과 그의 백성이 가서 적군의 물건을 탈취할새 본즉 그 가운데에 재물과 의복과 보물이 많이 있으므로 각기 탈취하는데 그 물건이 너무 많아 능히 가져갈 수 없을 만큼 많으므로 사흘 동안에 거두어들이고, 넷째 날에 무리가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곳을 브라가 골짜기라 일컫더라” (25-26)

 

여호사밧과 유다 백성들은 3일 동안 엄청난 양의 전리품을 거두어들입니다. 그리고 4일째 되는 날 브라가 골짜기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집회를 가진 다음, 예루살렘 성전까지 개선 행진을 합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다시 여호사밧을 선두로 하여 즐겁게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이 그 적군을 이김으로써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그들이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 (27-28)

 

이 놀라운 기적의 승리에 대한 소문은 사방 모든 나라들로 순식간에 퍼지게 되고, 주변 나라들은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29)

 

모든 나라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감히 유다를 향해 군사적 도발을 할 생각을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남은 통치기간 동안 국방을 걱정하지 않게 됩니다.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30)

 

 

3.   찬양의 능력

 

1)  찬양할 때 마귀가 도망간다

 

찬양은 우리의 시선을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로 향하게 하며, 현실의 상황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해줍니다. 그때 우리는 모든 짐을 주님께 맡기게 됩니다. 찬양은 우리가 두려워하던 마귀의 세력이 주님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며,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로 얼마나 철저히 패배했는지를 다시 상기시켜줍니다. 찬양은 우리가 과소평가했던 십자가의 능력을 제대로 보게 해주고, 우리가 과대평가했던 마귀의 능력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악한 세력이 얼마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도 느끼게 해줍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을 견디게 해주는 반면, 찬양은 영적 전쟁을 끝내게 해줍니다. 영적 싸움이 끝날 것 같지 않고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바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순간입니다. 찬양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마귀를 꾸짖으며 승리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면 수많은 귀신들이 무너지고 쫓겨 갑니다.

 

성경에 기도하라는 말이 많이 나오지만, 찬양하라는 말은 더 많이 나옵니다. 예배드릴 때 하나님을 찬양하지만, 마귀를 대적할 때 더욱 찬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그 이름을 높이는 찬양을 부를 때 그 찬양은 영적 전쟁에서 핵폭탄보다 더 강력하게 판세를 확 바꾸어버립니다.

 

사탄은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의 입으로부터 불평과 원망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한 마디라도 불평과 원망이 나오면 그것을 가지고 우리를 영적으로 무너뜨리는 도구로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 때 우리가 사탄의 기대와 전혀 다르게 주님을 찬양하게 되면 사탄은 비명을 지르며 쫓겨 가게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불평하고 원망하면 내 삶에 사탄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내가 찬양하며 경배하면 사탄을 쫓아내게 됩니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특히 힘든 상황일 때는, 고백적인 노래나 한탄조나 간증적인 노래가 아니라 주님을 높여드리는 진정한 찬양곡을 불러야 합니다. 그럴 때 힘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보혈을 노래하고(“주의 보혈 능력 있도다”, “보혈을 지나”),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찬양을 할 때 더러운 영들이 쫓겨납니다.

 

크리스천 노래라고, 찬송가라고 다 찬양이 아닙니다. 간증적인 곡들도 많습니다. 그런 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 그런 고백조의 노래를 부르면 자꾸 자기감정에 초점이 맞추어지면서 슬퍼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보혈에 초점을 맞추고 십자가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면 주님을 높여드리게 되어 주님께 초점이 맞추어지기 때문에 능력이 임합니다. 주님을 높이는 찬양은 악한 영들을 두렵게 하고 도망가게 만듭니다.

 

 

2)  찬양은 기도에 새로운 활력을 준다

 

찬양은 우리의 눈을 전쟁의 상황이 아니라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로 돌리게 해줍니다. 신실한 기도의 용사들도 종종영적인 메마름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영적으로 탈진해서 맥이 빠지고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찬양은 새로운 영적 활력을 불어넣어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기도가 정체 상태에 빠질 때 우리에게 찬양의 생수를 마시게 하십니다. 침체된 상태에서 계속 기도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16세기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할 수 없을 때 나는 항상 찬송한다.” 기도가 침체 되고 막혔을 때 그것을 뚫어주는 찬양의 능력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이 상황을 변화시켜주신다고 하는데, 때로는 상황을 변화시켜주시는 통로가 찬양일 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힘들게 기도해왔지만 별 응답이 없을 경우 찬양을 시작했더니 하나님의 응답이 금방 오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가출해서 행방을 알 수 없는 딸 때문에 3년 동안 매일 울면서 기도하며 하나님, 왜 응답해주지 않으십니까?” 하고 원망 섞인 마음으로 부르짖었습니다. 그때 그것을 들은 선교사 한 분이 조언을 했습니다. “어머님의 답답한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부터는 원망하지 마시고 찬양하며 기도해보십시오.” 그러자 그 어머니는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찬양할 게 있어야 찬양하죠?” “찬양하면서 기도하십시오.”

 

그 어머니는 그날 밤 몇 시간 동안 몸부림을 치다가 마침내 밤 10시부터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딸을 살리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확히 사흘 후에 그 딸이 돌아왔습니다. 너무 기쁘면서도 놀라워서 딸에게 어떻게 돌아오게 되었느냐고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딸이 대답하기를, 사흘 전 밤 10시에 자기가 술집에서 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갑자기 들어오더니 너의 어머니의 하나님이 너를 기다리신다.”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때 자기가 술에 밤쯤 취한 상태였는데도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눈물이 흘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민하다 결국 3일 만에 돌아온 것입니다.

 

물론 이런 일이 항상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찬양 가운데 상황을 역전시키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찬양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찬양이 우리의 영안을 맑게 한다

 

마귀가 노리는 것 중 하나가 우리의 영안을 흐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상황을 믿음으로 보는 게 아니라, 자꾸 의심의 마음으로 보게 만듭니다. 우리의 시야를 어둡게 만들고, 단지 약간 어려운 상황인데도 아예 불가능하게 보이도록 하며, 함께 일하는 형제자매를 불신하며 미워하게 만듭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별로 관심이 없으시거나 화가 나 계시다고 오해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영안이 흐려지면 두려움과 불안으로 가득 차게 되고 영적으로 무기력해집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해보십시오. 그러면 더러운 유리창을 닦을 때 선명하게 보이듯이, 성령께서 찬양과 함께 우리의 흐려진 시각을 깨끗하게 닦아주실 것입니다. 그때부터 마귀가 주는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하늘의 관점으로 나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고, 세상을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마귀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를 둘러싸고 지키는 하나님이 군대를 보게 되며,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신지를 깊이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최후 승리를 주실 것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찬양하면서 영안이 맑아지면 관심의 초점이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복잡한 현실에 머물렀는데, 주님께로 초점이 이동합니다. 어떤 사건이 일어나서 힘든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때문에 힘이 든 겁니다. 우리의 눈이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면, 우리의 삶을 제대로 해석하게 됩니다. 특히 과거에 해주신 일들을 주님의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되고, 그렇게 되면 미래에도 그렇게 행하실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며 믿음이 성장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찬양하면 할수록, 우리 앞에 닥친 고통의 산은 하나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점점 더 작아 보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믿음은 새로운 차원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안이 맑아지면 고통 속에서도 근심 걱정이 달아나버립니다. 빌립보에서 심하게 매를 맞고 차꼬를 차고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일하다가 이런 꼴까지 당해야 하나?’라고 얼마든지 불평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그때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한밤쯤 되어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죄수들이 듣고 있었다. 그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서, 감옥의 터전이 흔들렸다. 그리고 곧 문이 모두 열리고, 모든 죄수의 수갑이며 차꼬가 풀렸다.” (16:25-26, )

 

그들이 찬양할 때 지진이 일어나면서 차꼬가 풀어지고 감옥 문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간수가 뛰어와 두려움에 떨며 결국 그날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고통 가운데서 부르는 찬양은 과절과 근심을 물러가게 합니다. 마귀가 불어넣은 의심과 비난과 초조함을 거두어가고 우리를 새롭게 해줍니다. 어두움을 몰아내고 우리 영혼에 하나님의 빛이 비치게 합니다.

 

 

[나가는 말]

 

우리는 마음으로 찬양할 수도 있고, 말로 찬양할 수 있고, 노래나 악기로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찬양할뿐 아니라, 주중에 일할 때 사무실에 조금 일찍 출근해서 하루를 찬양과 기도로 시작해보십시오. 운전하는 동안에도 찬양 곡을 들으면서 차 안에서 마음껏 하나님을 찬양해보십시오. 아이를 재우면서도 찬양하고, 산모들도 찬양을 해야 합니다.

 

특히 마음이 분하고 억울하고 힘들 때,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일을 당하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찬양하십시오. 상황이 너무 힘들 때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주님께서 그 자리에 임하실 것입니다. 또한 두렵고 떨리는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주님을 찬양하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마음에 평안을 주시며 갈 길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찬송하며 기도함으로써 새로운 능력을 체험하며,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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