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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7일 수요예배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6 ✦
“기도의 영을 부어주소서”
(스가랴 12장 10절)
1. 은총과 간구의 성령
기도라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인간적인 힘으로 하려고 하면 기도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힘으로 기도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영원히 함께해주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기도의 영이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에게 온전히 붙들리게 되면,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에 힘을 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이끌어주십니다. 스가랴 12:10을 다시 보십시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여기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고 보면 됩니다. 하나님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이라는 단어는 ‘성령’이라고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고 또 기도를 부어주십니다. 은혜를 체험하고 나면 기도가 하고 싶어지고, 특히 회개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부어준다’라는 단어는 ‘쏟아 부어준다’는 뜻으로, 폭포수처럼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오순절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을 예언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어떤 기도를 드리게 됩니까?
1) 십자가의 기도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예언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라 믿음을 가지고 우러러 본다는 뜻입니다. 그 다음에 있는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라는 말씀은,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성령님은 항상 우리가 우리의 죄를 회개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가 씻길 때, 기도를 막는 장애물이 사라지고 진정한 기쁨과 자유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회복될 때 진정한 성령의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성령님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기도를 도와주시는 일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의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십자가의 능력을 채워주시며, 십자가의 힘으로 기도하게 해주십니다. 우리의 열심이나 노력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기도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게 해주십니다. 십자가를 사랑하게 하시고, 우리의 죄를 십자가 앞에 가지고 나아가 해결 받게 하십니다. 그래야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죄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막힘없이 기도할 길이 뚫립니다.
올바른 기도는 성령으로 하는 기도이고, 성령으로 하는 기도는 반드시 십자가를 통해서 하는 기도입니다. 나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힘이 없고 하기 어렵다면, 어린양의 보혈로 기도를 덮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가 우리의 기도를 기도 되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휘장을 뚫고 우리에게 새로운 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은 곧 그의 육체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집을 다스리시는 위대한 제사장이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우리는 마음에다 예수의 피를 뿌려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맑은 물로 몸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히 10:19-22, 새)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은 기도의 길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서 담대하게 지성소, 즉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도를 드리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령님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0~12)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다 아십니다. 기도는 세상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 즉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영적 분별력을 가지게 하여 세상적인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기도를 하도록 인도해주십니다.
3) 가난한 심령의 기도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질 때 우리는 또한 가난한 심령의 기도를 드리게 되는데, 그것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며 자신의 무력함을 철저히 인정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간절하고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다 시도해보고 나서도 안 되어 이젠 끝이라고 생각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하나님 앞에 기도로 나아옵니다. 사실 다른 것을 시도하기 전에 먼저 기도하면 가장 좋지만, 그렇게 다 실패하고 나서 무력한 마음으로 나오는 것도 아주 귀한 일입니다.
갓난아기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웁니다. 그런데 엄마는 아기가 울 때 왜 우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우리가 무력함을 느끼며 하나님께 간절히 울부짖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향하여 울부짖는 갓난아기의 울음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즉각 반응하십니다. 우리가 약할수록 하나님이 빨리 오십니다.
금식기도의 능력도 그러한 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금식은 음식을 먹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육체에 힘이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안 먹는 것뿐 아니라,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안 하는 것도 금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니엘 금식기도’를 하면서 미디어 금식을 합니다. 자기가 평소에 의지하고 즐기던 것들을 중단하면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그 무력함을 통해 하나님께 집중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기도의 문제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는 하는데 집중력이 너무 부족합니다. 마음과 생각을 주고 있는 다른 것들이 너무 많아서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끊고 금식하면 우리는 무력해지는데, 그때 하나님께 집중하게 되면 우리의 무력함이 만들어낸 절박함과 집중력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제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무력함의 기도를 드릴 때 놀랍게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게 해주십니다.
어떤 때는 너무 무기력하고 힘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말을 할 힘조차 없어 그냥 눈물만 흘리고 앉아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냥 침묵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있기만 해도 됩니다. 그것도 좋은 기도입니다. 바로 그때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대신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유창하게 기도하고 달달달 기도해야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철저한 무기력함 앞에 하나님이 마음을 움직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력함을 느끼는 대로 매일 하나님 앞에 말씀드려야 합니다. 크고 중요한 일뿐 아니라 작고 상세한 일도 다 말씀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큰일일 수도 있고, 우리가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작은 일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런 기준을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그냥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겸손하고 낮은 마음이 바로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무력함이 믿음과 합쳐질 때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믿음이 없는 무력함은 헛된 부르짖음에 불과합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의 부르짖음과 부모가 있는 아이의 부르짖음은 다릅니다. 부모가 옆에 있는 아이에게는 정확한 믿음의 대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면서 그 기도에 응답해주실 것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 됩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자신은 믿음이 없다고 부끄러워하는데,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의 본질은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든 죄와 괴로움을 가지고 딴 데로 가지 않고 주님 앞에 먼저 나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가 알아서 해보겠다고 하며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무력함을 느끼며 주님 앞에 나올 수 있다면, 그것이 은혜이고 믿음의 표시가 됩니다.
사실 믿음의 크기와 주님께 나오는 속도는 반비례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앞에 빠르게 즉시 나옵니다. 빨리 나오고, 사고가 나기 전에 옵니다. 자주 나오고, 항상 나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한 사람은 아주 가끔 나옵니다. 느리게 오고, 다 망가져서야 옵니다.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 17:20)
주님께 나아와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먼저 그분께 아뢸 수 있다면, 우리는 이미 겨자씨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께서 그러한 믿음에 응답해주십니다.
2. 우리의 기도 중에 성령께서 하시는 일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성령께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주십니까?
1) 기도를 바로잡아주심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큰 스승이 되십니다. 스포츠 팀도 훌륭한 감독을 만나야 우승하고, 학교 공부도 위대한 스승을 만나야 잘되는데, 기도에도 역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잘못 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스승이 되셔서 우리의 기도가 잘못될 때 고쳐주십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도 기도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제자인 야고보와 요한이 이것을 보고 말하였다. ‘주님,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버리라고 우리가 명령하면 어떻겠습니까?’ 예수께서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다.” (눅 9:54-55, 새)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서 자기들을 영접하지 않는다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다 멸망시키게 해달라고 한 기도는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도 욱하는 성격을 억누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자신들의 불편한 심기를 푸는 도구로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시던 예수님은 마음이 무거우셨는데, 그때 다시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자기들을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며 자기 야심을 이루는 방편으로 기도를 잘못 사용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와서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주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선생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선생님의 왼쪽에 앉게 하여 주십시오.’” (막 10:35-37, 새)
이들의 말을 보십시오. 얼마나 당돌합니까? 이런 기도는 당연히 응답이 안 됩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정말 문제아들이었습니다. 또 이들과 비슷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잘 나갈 때는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하여 칭찬을 받았지만, 바로 다음 순간에 예수님이 고난당하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시니까 안 된다고 하다가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는 꾸중을 들으셨습니다.
다른 제자들 중 이런 말을 들은 사람이 없습니다. 열두 제자들 중 유독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따로 데리고 가신 적이 많습니다.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이 세 명을 데리고 가셨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때도 열한 명의 제자들 중 이 세 명을 조금 더 깊이 데리고 가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세 명을 편애하셨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이들이 엄청난 문제아로 ‘공포의 삼인방’이었기 때문에 특별 교육이 필요해서 그러셨던 것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3)
우리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기도들을 성령님이 바로잡아주십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면 구해도 받지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구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구해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된 기도는 고쳐주시는 것이지, 아예 폐기해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서툴고 실수해도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잘못 기도해서 하나님께 야단맞는 게 겁나서 아예 기도도 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도는 실제로 기도를 하면서 늡니다.
어느 축구팀에 최고의 감독이 새로 부임했는데, 선수들이 그 감독 앞에서 실수하여 야단맞는 게 두려워 몸을 사리고 조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그 감독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최대로 보여주며 시도해야 합니다. 실수를 하더라도 그게 낫습니다. 그래야 감독은 그것들을 다 보고서 잘못된 부분은 고쳐주고 다듬어주며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게 만족시켜야 하는 심사위원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실수하는 것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면 됩니다. 완벽한 기도를 하고 완벽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들지 말고, 자유롭게 기도하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하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성령님이 우리가 잘못된 부분을 고쳐주실 것이고 거친 부분은 부드럽게 다듬어주실 것입니다.
외국어는 처음 배울 때 수도 없이 실수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자기가 실수해서 외국인들이 자기를 보고 웃을까봐 그것이 두려워 시도도 안 한다면 평생 못 배웁니다. 영어를 빨리 배우는 사람은 뻔뻔한 사람입니다. 얼굴에 철판을 깐 사람입니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냥 할 수 있는 대로 마구 말을 해나가는 사람이 빨리 배웁니다.
기도도 그렇습니다. 서툴고 실수를 하더라도 계속 기도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잘못 기도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보다 더 나쁜 것은 아예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은 우리가 틀리더라도 계속 주님 앞에 나와 엎드리도록 인도하십니다.
2) 응답의 때와 방법까지도 하나님께 맡기게 하심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면서도 염려를 내려놓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너무 ‘자상’하고 ‘친절’해서 하나님을 걱정해드립니다. 기도로 문제를 말씀드린 다음에는 맡겨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하시겠어요?’ 하며 하나님을 걱정해드리면서 하나님 대신 자기가 그 문제를 해결해드리려고 시도합니다.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걱정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쓸 데 없는 것이 하나님 걱정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도저히 수가 없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기도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에는 빠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실지는 하나님이 하실 일이고, 우리가 할 일은 믿고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해법이 있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알 필요도 없고 주님을 위해 걱정해드릴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로 나의 문제를 말씀드렸다면, 알아서 하실 것을 믿고 기대하며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할 일까지 하고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으며 잠잠히 기다리게 해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님이 이끄시는 기도를 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립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말씀을 이해해보십시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6-7)
무슨 말씀입니까? 염려와 기도를 동시에 붙잡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와 기도는 공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염려하면 기도가 제대로 안 된 것이고, 기도했으면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것뿐입니다. That’s it! 그게 끝입니다. 문제를 말씀드려놓고는 계속 붙어 서서 ‘이러셔야 해요. 저러셔야 해요.’라고 잔소리하고 하나님께 이걸 하실 수 있으시겠느냐고, 어떻게 하실 거냐고 계속 물어보며 걱정하는 것은 제대로 된 기도를 한 것이 아닙니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심
성령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도와주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많이 했는데 전혀 기도의 응답이 없다면, 그래도 안 들으시는 게 아닙니다. 진실하고 겸손하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며 기도한다면,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듣기 시작하셨고, 그때부터 이미 그 일에 손을 쓰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주려고 하실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이 주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은을 구할 때 오히려 금을 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전에 거의 두 살쯤 된 아이가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데 돈은 알아서 1불짜리 지폐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와서 설날이라 10불짜리를 주겠다고 하는데도 1불짜리를 절대 안 바꾸겠다고 버틴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똑같이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주려고 지금 가진 것을 달라고 하시는데 절대 안 내놓는다고 버팁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시겠습니까?
그러나 응답을 주시는 때와 방법을 결정하시는 권한은 오직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즉시 응답해주시기를 원하며 하나님을 재촉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성급함 때문에 흔들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조용히 주님이 방법을 밀고 나가십니다.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하시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데, 베드로가 자기 발을 씻겨주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니까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7절)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이해할 때가 분명히 올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했는데도 불안해지고 염려가 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사실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될까봐 그런 겁니다. 하나님께서 내 뜻대로 응답을 안 해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해주실까봐 그런 것입니다. 말로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원합니다.’라고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유명한 찬송가 중에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가 있는데, 아주 위험한 찬송인 것을 알고 부르시기 바랍니다.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찬송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전혀 죽기를 원치 않고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지 마시고 살게 하소서.’ 합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응답을 해주셨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기도 응답을 못 받았다고 느끼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주님께서 응답해주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응답해주셨다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나의 뜻과 다르더라도 응답은 응답이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해를 못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그때 그 응답이 내가 원했던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의 뜻이 있어도 빨리 접습니다. 포기가 빠를수록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서 충만하게 이루어집니다. 내 뜻과 다르다고 해도 하나님의 뜻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종하면, 삶에 평안이 오고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결국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가 설득당하는 것입니다. 내 뜻이 이뤄지도록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가 잘 안 된다고, 기도가 힘들다고 낙심하지 말고 힘을 내어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잘되는 최고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대화를 보면 별로 힘들지 않습니다.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서로 말을 안 해도 마음이 통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에 빠진 사람은 기도를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기도가 힘들고 기도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기도가 자연스럽고, 즐겁고, 그래서 틈만 나면 기도합니다.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우리의 기도생활을 그렇게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따라가면 됩니다. 그럴 때 기도의 길이 뚫리고 우리 삶에 평안과 기쁨과 자유를 누리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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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 시간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주여, 우리에게 기도의 영을 뜨겁게 부어 주시옵소서! 성령을 뜨겁게 부어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령께서 내 기도를 바로잡아주시고, 모든 때와 방법까지 하나님께 맡기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도록 저를 인도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