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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20일 주일예배
✦ 제자의 삶 – 산상수훈 21 ✦
“보물을 어디에 쌓아 둘지 결정하라”
(마태복음 6장 19~24절)
[들어가는 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9년이 지났지만, 그때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 자녀를 잃은 부모들 다수는 여전히 큰 슬픔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그것이 어떻게 해결되겠습니까? 그때 배가 침몰하는데도 빨리 가서 구출하지 못하고, 다수가 그대로 배와 함께 물속에 빠져 죽게 했으니,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해경의 초동 대처가 부족한 것도 있고, 정부가 우왕좌왕하며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것도 화가 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선장을 비롯한 선원들이 그 많은 승객을 버려둔 채 자기들만 빠져나와 구조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정부의 안일한 대처나, 안전 장비의 부족이나, 그 어떤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보면, 그 중심에는 어김없이 인간의 탐욕이 있습니다. 오래 전인 1994년 서울 성수대교 붕괴 사고도 인재였습니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겁니다. 그다음 해인 1995년 서울 삼풍백화점이 붕괴할 때, 애초에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원래 건축한 것과 다르게 구조를 변경했고, 백화점 측은 균열이 일어나는 것을 알면서도 돈을 더 벌기 위해 손님들을 계속 받으면서 동시에 보수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옛날에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요즘도 한국 LH(한국토지주택공사)에서 지은 아파트 부실 공사가 문제가 되고 있고, 작년에도 광주에서 아파트가 붕괴하여 사람들이 죽는 일이 있었습니다. 버스 한 대가 지나가고 다음 버스가 떠나다 건물이 무너져 거기 깔려서 사람들이 죽은 일도 벌어졌습니다.
이처럼 대형 사고를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있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벌기 위한 탐욕이 있고, 그것을 눈감아 주며 뇌물을 받아 챙긴 탐욕이 있습니다. 특히 재물에 대한 탐욕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엄청난 재앙들을 일으키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솔직히 탐욕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렇게 부실 공사를 하고 자재를 빼돌리는 것만 탐욕이 아닙니다. 우리도 매일 탐욕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모세 목장에서 여행을 다녀왔는데, 하이웨이에서 운전할 때 대개는 한 방향 2차선입니다. 고속도로에는 대형 트레일러들이 많이 다니는데, 평지도 아니고 약간 언덕이 있는 곳을 올라가려고 하는데, 자기 앞의 대형 트럭이 느리게 간다고 추월하겠다고 추월선으로 들어오는 겁니다. 그런데 들어와서는 빨리 가지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뒤의 차들이 죽 밀립니다. 이번에 그런 것을 몇 번이나 겪었습니다.
물론 승용차 중에도 그런 차들이 있습니다. 모르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르고 그러는 경우 말고, 자기가 추월하려고 추월선으로 들어가는데 스피드를 내지 못해서 뒤의 차들을 밀리게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사실 거울을 보면 뒤에서 빠르게 오는 차들이 다 보이는데, 그런 차들이 다 지나간 다음에 자기가 추월선에 들어가면 됩니다. 그런데 자기가 더 빠르게 가겠다고 추월선으로 들어와서 뒤의 차들도 가지 못하게 막고 방해하는 겁니다. 이런 것도 탐욕입니다.
이런 것이 우리 삶에 아주 많이 있습니다. 운전만이겠습니까? 내가 조금 더 먼저 하겠다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는 탐욕과 이기심이 우리 삶 가운데에도 너무나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돈을 벌 때도 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돈을 벌려고 애를 씁니까? 혹시 탐욕이 아닌지 점검해야겠습니다. 필요한 것보다 큰 집을 사고 필요한 것보다 비싼 차를 사는 것도 탐욕이 아닌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좋은 학교를 가려고 했고 자녀를 좋은 학교 보내려고 노력합니까? 이것도 탐욕이 아닌지 점검해야 합니다. 사회에서 성공하여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는 것은 좋은데, 그것도 결국은 돈 많이 벌고 자기만 잘먹고 잘살려는 탐욕과 이기심이 아닌지 점검해야겠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바쁘게 일하고 정신없이 살아갑니까? 결국은 돈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의 중심에는 돈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김다고 하면서 사실은 돈을 섬기며 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큰일 나기 때문에,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의 인생관이 안 믿는 사람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지를 보여 주시며,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과 복이 무엇인지를 세 가지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이 여섯 절밖에 안 되지만, 이 가운데 세 가지 비유가 들어 있습니다.
1.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유대인들에게 자기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가장 든든한 힘은 뭐니뭐니 해도 머니(돈)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아니라 돈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19절)
예수님은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물을 땅에 쌓아 두면 좀이 먹거나 동록, 즉 녹이 슬어서 망가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화폐로 사용된 구리 동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녹이 슬면서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그것을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그뿐 아니라 보물을 많이 쌓아 둘수록 더욱 도둑들의 표적이 됩니다. 가끔 한국이나 중국 여행객들이 현금을 많이 들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도둑들이 아시안들을 타겟으로 삼는다는 소식을 종종 듣습니다.
돈을 보관해 두는 금고를 영어로 ‘safe’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그 안에 넣어 놓았다고 해서 정말 safe합니까? 아닙니다. 이처럼 땅에 있는 보물은 스스로도 변질되고 자연적으로 없어지게 되며, 외부의 침입에도 취약합니다. 땅의 보물은 유한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대안이 무엇입니까?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0절)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시는데, 땅에 쌓아 두는 것도 “너희를 위하여”라고 하시고, 하늘에 쌓아 두는 것도 “너희를 위하여”라고 하십니다. 즉, 진짜로 자기를 위한 것이 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땅에 쌓아놓으면서 자기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하늘에 쌓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위한 것입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다스리시는 곳이기 때문에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변질하거나 소멸하거나 도난당할 위험이 없고 내 곁에 보물이 영원히 함께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의 보물을 어떻게 하늘로 가져갈 수 있느냐는 겁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해서 예수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으라고 하십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리 많은 것을 성취하고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아 두어도 죽을 때 그중 한 푼도 들고 갈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시신에 수의를 입혔는데,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에 수의에는 주머니가 필요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치 이 땅의 보물을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십니까?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는 없지만, 살아 있을 때 하늘에 미리 송금해놓으라는 것입니다. 학생들이 여기서 일하여 돈을 버는 경우도 있지만, 유학생들은 대개 한국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지원을 받습니다. 송금을 해주십니다. 미리 넉넉하게 송금해놓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 어떻게 하늘에 미리 송금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나에게 주어진 물질과 시간과 재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우리는 태어날 때 다 벌거벗고 태어났다.”라고 말합니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명품을 걸치고 태어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다 벌거벗고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걸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물건들, 물질, 돈, 시간, 재능 같은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하늘에 미리 송금하는 방법입니다. 그것을 행하며 사는 것이 하늘에 송금하는 것이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 일입니다. 나의 보물이 하나님의 보물이 됩니다. 이 땅의 보물이 하늘의 보물이 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서 지금 사용할 때, 그 보물은 이 땅에서 나의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내 곁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탐욕을 부리고 이기심으로 가득하여 그저 내가 가진 시간과 물질과 재능과 성공 등 모든 것을 오직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오직 내가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 내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고 내 가족만을 위해서 사용하면 이 땅에서 다 끝납니다. 미리 보내놓은 게 없기 때문에 하늘에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습니다. 이 땅에서 내가 떠날 때 다 끝나는 겁니다. 그게 이 땅에 쌓아놓는 보물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해서 미리 하늘에 쌓아놓아야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엄청난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늘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을 사용해서 하늘에 보물이 쌓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은혜입니까? 이것을 좀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너무나 단순합니다. 개인적으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로 함께 모이며 힘을 모아서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고, 이렇게 살면 하늘에 보물이 쌓는 일이 됩니다. 그래서 그 보물은 영원히 하늘에 쌓이면서 우리와 함께합니다. 영원히 함께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에서 없어지는 것에만 우리는 목을 매며 산다는 겁니다. 거기에 목숨 걸고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 중에서 하늘에 쌓아놓는 것이 얼마나 됩니까? 다 이 땅에서 끝날 것만 하며 사는 건 아닙니까? 하늘에 하나도 쌓아놓지 않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노후대책은 잘하고 있는데 ‘사후대책’은 하나도 안 하고 있으면 빈털터리가 아니겠습니까? 하늘의 보물을 “너희를 위하여” 쌓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쌓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핵심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우리가 절대적인 가치를 두고 추구하는 목표가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하늘나라를 믿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기에 그것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 성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는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무리 지금 엄청난 보물이나 아무리 엄청난 명품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변질해서 낡은 것이 되고 가치가 없어지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됩니다. 그런 무가치한 것에 인생을 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땅에서 가지고 가지도 못할 것에 내 목숨을 걸고 거기에 내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됩니다. ‘세상의 것은 다 가치가 없으니까 하늘의 것만 구해라. 육적인 것은 필요 없고 영적인 것만 구해라. 미래를 위한 저축은 하면 안 되고 다 헌금으로 바쳐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것을 보물로 여기고 오직 그것만을 위해 산다면, 그 인생은 보물과 같이 좀 먹고 녹슬어 나중에는 인생 자체를 도둑맞게 되고 허무한 인생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돈이나 권력이나 성공을 위해 살면 그것이 녹슬고 도둑맞고 사라졌을 때 그 인생도 녹슬고 허무해지고 무가치해진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땅의 것을 위해 살다가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거나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여러분, 지금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들의 인벤토리를 해보십시오. 지금 내가 가진 것 중에서 하늘까지 같이 가서 영원히 나의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무엇이 있습니까? 특히 지금 내가 사용하고 있는 것 중에 저 하늘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이 땅에서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것이지, 때가 되면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무리 최고급 차라도 몇 년 지나면 중고차가 되고 자꾸 고장 나서 수리해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영원한 나의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지금 내 것이라도 내가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살 때는 내 것처럼 누리고 살지만, 죽을 때는 다 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도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억만장자도, 최고 권력자도 다 똑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늘에 쌓아 둘 보물이 무엇입니까? 나를 통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이 이루기를 원하시는 목적입니다. 다른 말로 그것을 ‘사명’이라고 합니다. 지금 나에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것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이것을 끊임없이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자꾸 잊어버립니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다시 사명을 점검하고 되새기고, 주중에도 기도하고 예배하며 그것을 되새기고, 목장에서도 그렇게 살도록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도해주고, 또 삶 공부를 통해서 이것이 바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주시고 누리게 하셨다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1절에서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상태가 어떤지를 체크할 수 있는 기준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1절)
그러니까 내 보물이 어디에 있는가, 내가 무엇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내가 요즘 무엇을 더 많이 생각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보물이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끝날 것인가, 아니면 하늘까지 갖고 갈 수 있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 보물은 이 땅의 보물인가, 아니면 하늘의 보물인가? 거기에 내 마음도 따라가고 몸도 따라갑니다.
오직 이 땅의 보물에만 관심이 있으면 거기에 온통 마음을 빼앗기고 그것만 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는 사이 하늘에는 아무것도 쌓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하늘의 보물을 쌓기 위해, 하나님의 뜻과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매일 조금씩 조금씩 애쓰며 나아간다면, 하늘에 보물이 조금씩 조금씩 쌓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땅의 보물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거기 밖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데, 하늘의 보물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은 하늘에 마음이 가 있다는 겁니다. 자기 보물이 거기 있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됩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 내 몸도 마음도 따라가고 내 돈이나 시간과 재능도 거기에 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어디에 시간을 주로 쓰고 있고 내 돈을 어디다 쓰고 있고 또 내 재능을 어디다 쓰고 있나를 살펴보면, 내 마음이 진짜로 어디에 있는지를 우리가 점검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소속을 알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요즘 돈 버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주식 투자 같은 것으로 굉장히 그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그것도 굉장한 기술입니다. 그런데 코인에 투자하신 분을 좀
아는데, 코인 시장은 24시간 돌아가기 때문에 24시간 동안 감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합니다. 잠도 못 잡니다.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합니다.
왜냐하면 밤에 자는 사이에도 코인 시장은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 코인이 올랐나 떨어졌나 신경이 쓰여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온통 거기에 그냥 집중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계속 오르면 그냥 행복하고 좋을 텐데, 이게 언제 또 떨어질지 모르고, 오르면 또 빨리 더 사야 하니까, 그런 데에 신경 쓰느라고 건강을 해치는 걸 보았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건강을 해칠 정도로 중요한 일이 있습니까? 그런데 건강을 해칠 정도로 거기에 몰입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또 스포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포츠에 완전히 몰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는 좀 덜하지만, 한국은 프로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습니다. 그래서 무슨 야구선수의 타율까지 다 외우고, 어디서 데뷔해서 어떻게 됐다 걸 다 외우는 극렬 팬들이 꽤 많은 것을 봅니다.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외우는데, 자기가 지금 어디 소속인지를 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동그란 것만 보면 다 야구공으로 보입니다. 골프 좋아하시는 분들은 또 작고 동그란 것을 보면 다 골프공으로 보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어디에 지금 몰입하고 있는지를 잘 점검해 보고, 즐기는 정도는 괜찮지만 이게 내 삶에 지장을 줄 정도가 아닌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신 데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고, 또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관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살며 그래서 거기에 하늘 보물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면 나의 시간도, 재능도, 물질도 사용할 수가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하늘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보면서 ‘뭐 하러 쓸데없이 저렇게 하냐? 너무 바보 같다.’라는 식으로 비판합니다. 그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관심이 이 땅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서 사역하고 봉사하고 섬기면 ‘너무 푹 빠지지는 마라. 지나치게 거기에 빠지지 말고 신앙생활은 적당히 해라.’라고 합니다.
사실 적당히 하라는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나의 관심은 오직 이 땅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관심이 하늘에 있지 않습니다. 하늘에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하늘에 관심이 있고 하늘에 보물을 쌓는다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뭘까?’ 하고 생각하며 살지 않겠습니까? 지금 내가 힘들고 안 힘든가, 나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는 중요한 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건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인가 하며 살 때 하늘의 보물을 자기를 위해서 쌓는 일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섬김은 결코 어리석은 일이 아닙니다.
유명한 순교자 짐 엘리엇(Jim Elliott)가 있습니다. 휘튼(Wheaton)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사람인데, 젊은 20대 나이에 에콰도르의 식인종 부족 아우카족을 전도하러 갔다가, 친구들과 같이 전도를 한 마디도 못하고 그냥 창에 찔려서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웬 낭비인가?” 하고 라이프 매거진(Life Magazine)에서 기사를 썼는데,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 엘리엇이 “남편의 죽음은 낭비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가 대학생 때 일기장에 이런 말을 적어 놓았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영원하지 않은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한 것을 버리는 사람은 바보다.’라는 말입니다. 그게 바로 이것입니다. 이 땅의 보물을 구하는 것과 하늘의 보물을 구하는 삶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에 더 심해졌는데,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취미생활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잠깐 나와서 이걸로 때우고, 그다음은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진정한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아닙니다. 정말 나의 관심이 하늘에 있어야 진짜 하나님 나라 백성인 것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은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정도 오는 것으로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이 공예배뿐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뭘 원하실까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2. 성한 눈으로 살아가라
두 번째는 두 눈 이야기입니다.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22-23절)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이고 세계관이며 인생관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가르쳐줍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올바른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살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 눈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보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눈이 나쁘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고 삶의 질도 떨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육체적인 시력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시력에 대한 것입니다. 영적인 시력이 성해야 한다는 것, 지금 영적인 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눈은 삶을 인도하는 등불입니다.
그런데 두 가지 눈을 말씀하십니다. 성한 눈 그리고 나쁜 눈입니다. 또는 눈이 성한 것과 눈이 나쁜 것을 말씀하십니다. 성한 눈은 하늘나라에 기초하여 하늘나라의 마음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눈이 나쁘다는 것 또는 나쁜 눈이라는 것은 세상 원리대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안 믿는 사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면 이것이 정말 성한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인지, 나쁜 눈을 가지고 사는 것인지, 우리가 정말 잘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가 굉장히 핍박을 많이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보는 눈이 세상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보는 눈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교묘하게 세상의 눈을 자꾸 교회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 눈으로 바라보도록 하는 것, 그런 눈으로 성경도 보고 하나님도 바라보도록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영적인 시력을 잃고 제대로 보지 못하며 잘못 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시력이 흔들리면 믿음도 흔들립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영적으로 굉장히 흔들리는 시대가 되었는데, 특히 코로나가 교회들과 신앙인들에게 미친 영향이 정말 큽니다. 그래서 이제는 코로나 사태를 지나면서 ‘뭐, 굳이 교회를 안 나가도 큰 지장이 없구나.’ 하고 느끼게 된 겁니다. 사실은 엄청난 지장이 있는 것인데 그걸 못 깨닫게 됐습니다. 자기가 지금 무너지고 있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죽하시면 2천 년 전에도 “인자(내)가 다시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고 한탄하셨습니다.
코로나 사태 때 우리가 교회에 모여서 예배할 수 없게 되니까 교회라는 그 자체가 흔들리게 됐고, 목장도 모이지 못하니까 교제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교회라는 것은 공동체인데 그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그냥 예배를 진짜로 ‘보는 것’, 즉 시청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런데도 그다지 지장이 없는 것 같으니까 계속 그런 수준에서 머무는, 아니면 그보다도 더 못한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코로나 사태 이전보다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가만히 있으면 신앙이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퇴보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강한 물결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물결에서 가만히 멈춰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물결이 흐르는 대로 떠내려갑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아니고 떠내려가 버립니다. 잘못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기 절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3. 두 주인을 섬기지 말라
이제 예수님은 구체적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하십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4절)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특히 예수님 당시 고대 사회에는 정말 당연한 얘기입니다. 한 종이 주인을 두 명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되면 두 주인 모두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일도 없었지만, 혹시라도 있으면 사기 친 것이 되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종은 오직 한 주인만 섬깁니다. 주인이 바뀐 경우에는 새 주인을 섬기지만,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능력이 많기 때문에 충분히 2명의 주인을 섬길 수 있어.’라고 두 주인을 모신다면 어떻게 됩니까? 한 주인이 종에게 이 일을 하라고 하고, 또 다른 주인이 그사이에 또 다른 일을 시킵니다. 그러면 이 종은 이 일을 하다가 금방 또 다른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다 보면, 두 주인 중 어느 누구에게도 만족이 안 되고 심한 매질을 당할 뿐이며 쫓겨날 뿐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는 정말 실력과 재주가 좋은 크리스천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기가 막힌(?) 실력을 가진 크리스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물’이라는 단어가 돈이라기보다는 헬라어 원어로 ‘맘몬’입니다. 이 맘몬이라는 것은 사실 신입니다. 악한 영입니다. 그러니까 재물의 신, 돈 신인데, 물론 돈 신이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그만큼 우상숭배를 지금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나를 움직이는 원리가 무엇인가를 점검하라고 하십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움직이는지 아니면 돈이 나를 움직이는지, 또는 이 세상에서 끝나고 마는 어떤 것이 나를 지금 움직이고 있는지, 내가 그것을 위해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라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도 섬기고 재물도 섬기는 게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면 직장을 선택할 때 A에서는 돈을 더 주고 B에서는 돈을 조금 덜 주는데, 덜 주는 데로 무조건 가라는 말입니까? 그런 뜻은 아닙니다. 돈을 더 주는 곳을 선택하면 맘몬을 섬기는 것이라고 하시는 게 아닙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A든 B든 돈이 얼마 차이든, 어느 일터에서 내가 더 개발이 잘될 수 있고 더 만족하며 일할 수 있는 곳인가를 생각하며 결정하면 괜찮습니다. 그런데 돈이 나를 움직이는 주된 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B가 돈을 조금 덜 줘도 여러 가지 조건을 볼 때 내 분야에는 더 좋은 곳인데, 돈을 더 준다는 것 때문에 일이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무조건 A로 간다면, 그 마음의 중심에는 오직 돈밖에 없다면, 그것을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크리스천은 복권을 사도 됩니까, 사면 안 됩니까? 복권을 사도 되냐, 안 되냐 할 때, 목사님들 중에 괜찮다고 하는 분도 있고, 안 된다고 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도 복권 사신 분들이 계시죠? 복권을 사도 되냐 안 되냐는 것이 사실은 복권 문제가 아닙니다. 이것도 역시 마음의 문제입니다. 왜 사느냐는 겁니다.
돈이 엄청나게 많은 분이 복권을 일부러 사는 경우도 있는데, 재미로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 마음에 돈에 대한 마음이 있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이거 재미로 하는 거야.’라고 하신다면, 재미있는 것은 다른 것도 많습니다. 다른 것을 하십시오. 꼭 그걸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의 운세’ 같은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로 보는 거야.’라고 한다면, 다른 것도 재밌는 것 많으니까 다른 걸 하십시오.
우리 마음의 중심이 어떤가를 점검하면 됩니다. ‘사야 한다’ 또는 사면 안 된다’, ‘사도 좋다’ 또는 ‘사면 안 된다’ 하며 자르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의 중심이 어때서 지금 사거나 안 사는지를 잘 보라는 겁니다.
저축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저축하면 이 땅의 보물을 쌓아 놓는 겁니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후에 내가 남의 큰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렵게 되지 않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차원에서야 누가 그걸 나쁘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아까도 말한 것처럼, 돈을 쌓아놓고 오직 돈 중심으로 내 삶을 살겠다고 하는 것이 된다면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을 하나도 모으지 않고 무조건 ‘나는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 주실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사실 무책임한 일입니다. 오히려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겉으로 ‘이것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이것을 왜 하느냐?’ 또는 ‘왜 하지 않느냐?’ 이것을 우리가 잘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결국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용하여 얼마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섬길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교회가 가진 것을 사용하여 영원 구원해서 제자 만드는 일에 집중하며 나가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럴 때 그러한 사람에게 영원한 천국의 보물이 주어지고, 또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자기만 위하여 많은 것을 움켜쥐고 남을 위하여 아무것도 섬기지 않는 그런 사람은, 이 땅에서 보물을 엄청나게 쌓았을지 몰라도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 그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니게 되고, 또 하나님 앞에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이 땅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써 하늘의 보물을 많이 쌓아놓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