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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72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14

예 하거나 아니오 하라

(마태복음 533~37)

 

[들어가는 말]

 

독일의 대문호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가 쓴 희곡인 <파우스트>(Faust)가 있습니다. 1부에서는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에게 영혼을 팔아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 과정들이 나오고, 2부에서는 서구 문명의 헬라적 관점에서 인간의 구원 문제를 폭넓게 탐구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그 작품에 보면, 하루는 파우스트가 서재에 앉아 성경을 폈는데 거기에 마침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는 요한복음 11절 첫 문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것이 거슬렸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벌써부터 막히는구나! 어찌 해결할꼬? 말씀을 이리 높이 평가할 수는 없으니, 내가 다르게 번역하는 수밖에 없구나.”

 

결국 파우스트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태초에 행위가 계시니라.”로 바꿔버립니다.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마음을 잘 대표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파우스트의 말처럼 말씀을 이리 높이 평가할 수는 없으니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파우스트가 바꾸어버린 요한복음 말씀을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에서 알려주는 말씀(로고스)과 우리가 말하는 행위가 사실은 전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빈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말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시는 게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으면 행동으로 옮기십니다. 그분이 말씀하시니까 온 우주가 그대로 되어 견고히 섰습니다(33:9). 하나님을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이 곧 행동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맹세에 대해 이야기하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말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정직한 말과 거짓된 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말은 최후 심판의 날 판단을 받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파우스트가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그렇게 바꾼 것인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행동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말했으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심판 날에 우리는 자기가 했던 온갖 쓸데없는 말을 해명해야 할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2:36).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말은 그대로 없어지지만, 이전에 녹음기로 녹음할 때가 있었고 지금은 영상을 녹화합니다. 100년 이상 된 것도 녹음하거나 녹화해서 지금까지 전해오는데, 하나님이 그런 것을 못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말은 다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1.   맹세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사실 우리는 아무 자격도 공로도 없는데,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의롭다 하심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보다 더 나은 의를 갖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도 일반적인 종교인보다 더 나은 의를 갖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입니다. 우리가 듣고 믿는 진리가 하나뿐인 생명의 진리이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무슨 자격이 있거나 뭔가를 잘해서 구원받은 것은 아니지만, 참 하나님을 만나 생명을 얻으면 세상의 지혜자나 종교가 말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의가 우리 안에 생깁니다.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말에 대한 이야기는 크리스천, 믿는 사람, 교회, 기독교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육신적으로 예수님의 동생이었으며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담임목사 격이었던 야고보가 야고보서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1:26)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무리 열심히 하고, ‘, 믿음이 이렇게 좋다.’라고 하고, 봉사도 많이 하고, 엄청난 기도와 말씀으로 다 하더라도, 혀를 잘못 놀리고 말을 잘못하면 그 믿음은 헛것이라는 겁니다. 진짜 믿음이 아니라는 겁니다. 정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말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1970년대에는 부흥회를 할 때 대단했습니다. 그럴 때 부흥사 목사님들 중에 설교하다가 욕을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그렇게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상황에서 그냥 넘어갔지만, 말씀을 전하며 욕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언어를 써야 합니다. 속은 더러우면서 겉으로만 아름다운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속도 아름답고 그 아름다운 것이 언어와 행동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믿음 생활을 잘한다고 해도, ‘내가 이렇게 잘 믿는다.’라고 해도, 그것은 가짜라는 것입니다. ‘헛것이라고 분명히 성경에서 가르쳐줍니다.

 

자기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함부로 믿음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 기준이 바로 언어입니다. 행동도 그렇지만 특히 어떤 말을 하는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주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막말하는 경우가 있겠습니까? 있을 수가 없다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야고보서의 가르침입니다.

 

성경에는 말에 대해 교훈이 굉장히 많습니다. 특히 잠언에 많습니다. 오늘 본문 역시 말에 대한 권면인데, 신앙의 진정성을 담은 말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3)

 

당시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헛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라고 가르쳤다고 예수님이 여기서 지적하십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즉 유대인들의 종교 전통에서 이렇게 전해져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그런데 사실은 구약성경에 이대로 나오는 말씀은 없습니다. 구약성경의 어느 구절에서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이 아니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대로 인용하여 뽑은 게 아니고, 구약의 여기저기서 뽑아 종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계명의 세 번째 계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20:7)

 

그런데 영어로 “Oh, my God!”을 굉장히 많이 말합니다. 툭 하면 그 말을 합니다. 저는 처음에 미국에 와서 미국 사람들은 참 신앙심이 좋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말 끝마다 “God”, “God” 하는 겁니다. 심지어 무슨 일만 있으면 “Jesus Christ!”라고 하는데 ,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예수님을 찾나?’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욕설을 그렇게 한 거였습니다. 화가 나니까 한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했으니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많이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그 이상입니다. 레위기와 신명기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19:12)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23:21)

 

하나님께 서원하면 반드시 갚으라는 겁니다. 당장 손해가 오는 것 같아도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은 꼭 지키라는 겁니다. 여기만 아니라 성경 여러 군데에서 말씀과 맹세에 대한 교훈을 주는 말씀들을 종합해서 유대인 종교 지도자들이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것은 꼭 지키라하고 사람들을 가르친 것입니다.

 

율법에서 맹세에 대해 무겁게 교훈하는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거짓말을 통제하기 위해서, 거짓말하지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며 말을 배우는데,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아이가 말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거짓말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친 적이 없는데 너 왜 이랬어?”라고 하면 아니라고 하며 거짓말을 합니다. 신기하면서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아담이 하나님께 거짓말을 하고, 창세기 4장에서는 그의 아들 가인이 거짓말을 합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온 후 사람들은 너무 쉽게 거짓말을 합니다. 지난번 <생명 언어의 삶> 진실 언어를 다루었는데, ‘새까만 거짓말도 있고 새빨간 거짓말도 있다고 합니다. ‘새하얀 거짓말도 있어서 악의 없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샛노란 거짓말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남을 해코지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제 거짓말하는 것을 심한 죄로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거짓말을 많이 하다 보니까 우리 삶에는 많은 혼란과 불행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특히 정치인들이 하는 말은 누가 믿습니까? 앞에서는 박수치고 환호하다가도 뒤로 돌면 저것 다 거짓말이야.’라고 하며 믿지를 않습니다.

 

자기가 정직하지 않으니 남들도 정직하지 않다고 전제하면서 서로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이처럼 불신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돈을 빌리더라도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세워야 합니다. 한국에서 보증 섰다가 망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한국 사회도 거짓말을 많이 합니다. 신용이 없는 말을 많이 하고, 가벼운 말도 많이 하고, 거짓말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거짓말을 하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뭐 어떠냐?’ 하는 것이 더 문제입니다. 거짓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낮습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속성을 통제하기 위해서 이러한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아주 선하고 존경받는 사람들 역시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슬쩍 할 때가 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너무나 훌륭한데 집에서 자기 아내나 남편에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도록, 거짓을 말하기를 좋아하는 우리 본성을 묶어 통제하기 위해서 말이나 맹세에 대한 권면이 성경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 생에서 꼭 지켜야 하는 일들이 있고 이 같은 서약과 맹세를 통해 삶이 얼마나 무겁고 신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삶을 살아도 피상적인 삶이 되지 않고 맹세와 다짐을 통해 삶의 무거운 부분과 신중한 부분을 잘 다룰 수 있도록 맹세와 말에 대한 명령이 주어져 있습니다.

 

 

2.   맹세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문제가 무엇인가 하면, 조상 때부터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율법의 교훈을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명을 주시면서 원래 의도하셨던 것을 자기들 방식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는 본문을 맹세는 하되 헛맹세가 아니면 된다.”라고 아주 교묘하게 강조점을 비튼 것입니다. 헛맹세에 계명의 초점이 있는 것처럼 해놓은 겁니다.

 

하나님이 맹세나 말에 대해서 교훈을 주실 때의 강조점은 사실 거짓말을 하지 말고 정직하게 또 진실하게 살라고 하신 것인데, 헛맹세만 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으로 바꿨습니다. 그것만 면하면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뒤에서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고 살짝 바꿔버린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예수님 당시의 유대 사회는 많은 종류의 맹세가 난무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으면 헛맹세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에, 맹세는 마구 했지만 당시 유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하늘, , 성전, 자기 머리로 맹세한 겁니다. 그러니까 헛맹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고 안 지키는 맹세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는 안 되고 다른 것으로는 맹세해도 된다고 한 겁니다. 그래서 가리키며 맹세한 것이 하늘, , 성전, 자기 머리였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통렬하게 화를 선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화 있을진저!”라고 저주를 퍼부으시는데, 일곱 가지 화를 선포하십니다. 거기서 맹세와 관련하여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16 화 있을진저 눈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7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18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19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23:16-19)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두고 맹세하는데...”라고 하며 성전으로 맹세하면 안 지켜도 되고, “내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는데...”라고 하면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내가 제단을 두고 맹세하는데...”라고 하면 안 지켜도 되고, “제단 위에 바치는 소 제물을 두고 맹세하는데...”라고 하면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성전을 두고 맹세하고 안 지켜도 성전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성전의 금을 두고 맹세하고 안 지키면 금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단을 놓고 맹세한 것도 제단을 뜯어가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제단의 제물을 두고 맹세하면 그것을 내놓으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지켜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변질 된 겁니다.

 

이처럼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라는 본문을 약간 비틀어 마음대로 맹세했고, 결국은 하나님 앞에서 다 같은 맹세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하며 요리조리 피하면서 여러 종류의 맹세를 개발했습니다. 맹세에 대한 문서까지 만들어서 맹세할 때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무엇이 중요한지 분별이 안 되고 결국 자기중심적으로 하게 된 겁니다. 성전의 금이나 성전, 제단이나 제단 위에 있는 제물 등 각각 중요도를 구별하여 이건 지켜야 되고 저건 안 지켜도 된다는 식으로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어버린 겁니다.

 

여기서 핵심은 맹세를 하고 안 하고가 아니라, 맹세를 왜 하는지, 그리고 진심이 담긴 맹세인지입니다. 마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내가 올바른 일을 하겠습니다.’ 하고 결단과 헌신의 차원으로 맹세하는 것인지, 아니면 자기중심적으로 하고 싶은 건 하고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식으로 맹세하는 것인지를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3.   맹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4-36)

 

유대인들은 나는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라고 맹세했는데, 하나님 앞에서 한 게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며 맹세한 겁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했다 안 지키면 큰일 나니까 하나님을 언급할 수는 없고, 대신 하늘을 두고 맹세하면서 이건 안 지켜도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맹세한 겁니다. 그러니까 안 지켜도 괜찮을 거라는 마음이 있으면서 한 맹세입니다. 우리도 어떤 사역에 헌신할 때 안 해도 괜찮겠지.’ 하고 생각하며 한다면 그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앉아 계신 보좌입니다. 그러니까 하늘로 맹세했다고 괜찮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여기서 하늘은 sky가 아니라 heaven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하늘로 맹세한 것이 하나님과 무관한 게 아니라는 겁니다.

 

땅으로 맹세하는 것도 땅이니까 괜찮겠지.’라고 할 게 아니라, 땅은 하나님이 발을 딛고 계신 발등상이기 때문에 땅으로도 맹세하면 안 됩니다. 땅으로 맹세하는 것도 하나님에게 맹세하는 것과 같다는 겁니다.

 

또 예루살렘으로 맹세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예루살렘은 온 세상과 만물을 움직이는 큰 임금이신 하나님의 성입니다. 그곳도 하나님과 관련된 곳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맹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머리로 맹세하는 것도 내 머리이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자기 힘으로 머리를 희거나 검게 할 수 없습니다. 자기 머리라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나는 머리를 까맣게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할지 모르지만, 염색은 머리를 진짜 까맣게 만드는 게 아니라 색을 칠하는 것뿐입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하늘로, 땅으로, 예루살렘으로, 자기 머리로 맹세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한 게 아니니까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안 지켜도 괜찮다.’라고 생각하면서 큰소리를 친 겁니다.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맹세를 한 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해서 괜찮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항상 요리조리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놓고 뭔가를 합니다. 거짓말을 합리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37)

 

예수님은 34절에서 분명히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라고 하십니다. 예 할 일에는 예 하고, 아니오 할 일에는 아니오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맹세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아예 맹세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맹세라는 게 뭡니까? ‘내가 이것을 하겠습니다.’ 하고 결단하며 헌신하는 것입니다. 서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맹세하지 말라는 말씀은 헌신하지 말고 결단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겠습니다.’ 하고 결단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진실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맹세한 게 아니니까 좀 안 지켜도 괜찮겠지.’라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진실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키지도 않을 맹세를 겉으로 큰소리치면서 하지 말고, 진심으로 맹세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하던 방식으로 하지 말고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라고 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경은 구약성경이었는데, 구약에 보면 맹세하는 예가 여러 군데에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위해 신붓감을 구해오라고 종을 고향으로 보내면서, 그는 종이 자기 허벅지 아래 손을 넣어 맹세하도록 합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결코 맹세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아브라함에게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22: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맹세를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결단하며 어떻게 말을 하느냐에 있다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이것은 복잡한 게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 성경적 신앙은 무슨 뜬구름을 잡거나, 엄청난 것이나 대단한 것, 고차원적인 것,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도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그런 게 아닙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생각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말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손과 발을 사용하여 행동하라는 겁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핵심이고, 그것이 산상수훈의 핵심입니다. 말씀대로 행하라!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방향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단순합니다. 전체 성경 내용이 그런 것이고, 특히 산상수훈의 핵심입니다. 특히 그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겉으로 나오는 행동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며, 뒤에서는 험담하고 욕하고 마음속으로 미워해도 괜찮다는 말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산상수훈에서 그게 아니라고 계속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행동만 적당히 했으면 뒤로는 어떻게 해도 상관없다고 하며 살았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율법을 제대로 해석해주시는 것입니다.

 

 

4.   나의 서약 점검하기

 

1)  결혼 서약

우리가 살아가면서 맹세 또는 서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결혼 서약입니다. 싱글들은 앞으로 결혼할 때 서약하고 결혼하실 것이고, 결혼하신 분들은 다 서약하고 결혼하셨을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결혼예배를 드릴 때 이렇게 서약하도록 합니다.

 

(신랑) OOO는 당신을 나의 아내로 맞이하여, 풍족할 때나 부족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이 땅에 사는 동안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신실한 남편이 될 것을,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신부) OOO, 당신을 나의 남편으로 맞이하여, 풍족할 때나 부족할 때나,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아플 때나, 이 땅에 사는 동안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신실한 아내가 될 것을, 하나님과 여러 증인들 앞에서 약속합니다.

 

잘 지키고 계십니까? 뜨끔합니다. 사실은 풍족할 때, 기쁠 때, 건강할 때만 사랑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사랑이 식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2)  교인 서약

 

놀랍게도 예수님을 믿고 우리 교회의 활동교인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서약하고 활동교인이 됩니다. <새가족반>을 통해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리고 앞에 나와서 활동교인 영입식을 합니다. 세례받는 분들은 세례받으면서 동시에 활동교인이 되는 서약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서약과 활동교인 되는 서약을 동시에 합니다. 세례를 받고 하든, 다른 데서 믿음생활을 하다가 오셔서 재고백을 하든, 우리 교회에서는 다섯 가지 질문을 합니다.

 

여기 교인 되신 분들, 또 앞으로 교인 되실 분들은 잘 들어보십시오. 특히 이미 교인이신 분들은 잘 지키고 있는지 보십시오. 여러분이 서약하신 겁니다.

 

질문 (새 교인에게)

1.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당신을 구원하신 구주이자 당신의 인생을 인도하시는 주인이 되심을 믿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즉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믿습니까?

 

2. 당신은 다른 성도들을 사랑으로 대하고, 험담을 거부하고, 지도자들을 따름으로써, 본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기로 약속합니까?

 

3. 당신은 교회의 성장을 위해 기도하고, 비신자들이 주님을 만날 수 있도록 초청하고, 방문자들을 따뜻하게 환영함으로써, 본 교회의 책임을 함께 지기로 약속합니까?

 

4. 당신은 자신의 영적 은사와 재능을 발견하고, 목회자로부터 섬김을 위한 훈련을 받아 자신을 준비시키고, 종의 심정을 품고 섬김으로써, 본 교회 사역을 함께 담당하여 섬기기로 약속합니까?

 

5. 당신은 예배에 신실하게 참석하고, 경건한 생활을 하고,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가정교회에 참여함으로써, 본 교회의 세상을 향한 증거 사역을 돕기로 약속합니까?

 

이런 내용 중에 내가 혹시라도 잘 안 지키는 게 있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분명히 내가 서약한 것인데 안 지키면 별것 아닌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 서약을 하기 전에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물론 겉으로만 아니라 마음을 다해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활동교인이 될 때 교인이 되시는 분들뿐 아니라 이미 교인인 분들이 이분들을 받아들이겠다고 동시에 서약을 합니다.

 

질문 (교인들에게)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은,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을 고백함으로 세례를 받는(또는 재고백하는) OOO 교우가 우리 교회의 활동교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계속해서 자라가도록, 서로 돕고 격려하며, 주님 안에서 함께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십니까?

 

모두 하셔서 다들 활동교인이 되신 겁니다. 그렇게 분명히 서약을 하셨는데 그 후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

 

 

3)  서리집사 서약

 

서리집사이신 분들이나 앞으로 되기를 원하는 분들은 생각해보십시오. 서리집사는 안수직이 아니라 앞에 나와 서약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서약서를 드리면 거기 사인을 해서 내게 되어 있습니다. 거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1. 주일예배를 비롯하여 교회 공식 예배와 모임(제직회,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기타 집회, 목장 모임 등)에 열심히 참석하여, 제직으로서 모범을 보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비롯하여 성실한 헌금 생활을 통해서 청지기의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하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3.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한 가지 이상 교회 사역을 맡아 섬김으로써 훈련과 섬김의 본을 보이기 위하여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을 위하여 아래 위원회에 소속되어 섬기기를 원합니다.

 

본인은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의 신임 서리집사로서 위 내용대로 실행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런 것을 안 지키면 벌을 내리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잘 보십시오. 모두 노력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집사님들, ‘내가 서약한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노력하고 있는가?’ 이것을 스스로 물어보셔야 합니다. 아니면 공수표를 남발한 게 됩니다. 지키지도 않을 것을 집사가 되려고 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4)  권사 서약

 

제가 오기 전에 권사가 되신 분들은 이것을 안 했지만, 몇 년 전부터 권사가 되시는 분들게 서약을 받습니다. 권사도 안수직이 아니기 때문에 서약서로 대체합니다.

 

당신은....

1. 매일 성도의 가정과 교회를 위한 기도제목을 놓고 기도하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십니까?

 

2.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매 주일 아침에 모이는 중보기도모임에 참석하고 중보기도 헌신자로 자원해서, 예배를 위하여, 목회자들을 위하여, 또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십니까?

 

3. 주일예배를 비롯하여 수요예배와 새벽기도회 등, 교회의 공 예배에 최대한 참석하여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예배자의 모범을 보이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십니까?

 

4. 제직회 및 교회의 모든 공식 집회와 모임에 성실히 참석함으로, 교우들과 자녀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교회 생활을 하기로 약속하십니까?

 

5.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십일조를 본 교회에 바치며 모범적인 헌금 생활을 함으로써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약속하십니까?

 

6. 교회의 택함을 받은 권사로서, 당회를 도와 궁핍한 자와 환난 당한 교우를 심방하고 위로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하십니까?

 

내가 권사로서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을 아십니다. 내가 하고 싶어도 건강이 좋지 않고 움직이기 힘들어서 하지 못한다면 다 아십니다. 그런데 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냥 안 하는 건 없는지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5)  장로, 안수집사 안수 및 위임 서약

 

장로님들과 안수집사님들은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다 하겠다고 서약한 위에 헌법 문답을 합니다. 약간 길지만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장로나 안수집사가 되었어도 미국장로교에서는 한 시무 기간이 3년이고, 그 후 다시 공천되어 공동의회에서 선출되면 두 번째 시무 기간을 더해서 6년 연속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반드시 1년을 쉬어야 하고 다시 선출되어 시무하실 때 이 질문을 합니다. 맹세하지 말라고 했을 때의 맹세나 서약이라기보다, 헌신과 결단의 차원으로 하는 겁니다.

 

헌법 문답: 임직자들에게

a.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구주로 믿으며, 그가 만유의 주님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심을 시인하며, 그를 통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b. 당신은 구약과 신약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고, 전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유일하고도 권위 있는 증거이며, 또 당신 자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인정합니까?

 

c. 당신은 우리 교단의 신앙고백서에 표현된 개혁 신앙의 기본 교리가, 우리로 믿고 행하게 하는 성경의 확실하고 믿을 만한 해설서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채택하며, 아울러 당신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할 때 이들 신앙고백서에 의해 가르침을 받고 인도함을 따르겠습니까?

 

d. 당신은 성경의 권위하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함으로 당신에게 주어진 사역을 완수하며, 우리 신앙고백서에 의해 계속 지도받겠습니까?

 

e. 당신은 우리 교단의 정치에 순응하고 그 권징을 따르며, 목회 동역자들과 친구가 되어 함께 일하면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명령에 순종하겠습니까?

 

f. 당신은 자신의 생활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며, 이웃을 사랑하고, 세계의 화해를 위해 힘쓰겠습니까?

 

g. 당신은 교회의 평화와 연합과 순결을 더욱 증진시키기로 약속합니까?

 

h. 당신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온 정성과 지혜와 상상력과 사랑으로 섬기기를 힘쓰겠습니까?

 

i.  (1) (사역장로에게) 당신은 사람들을 돌보고, 예배와 양육과 봉사에 헌신함으로 충성된 사역장로가 되며, 교회의 공의회에서 봉사하는 가운데 정치와 권징에 동참하고, 또 당신의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나타내도록 힘쓰겠습니까?

   (2) (집사에게) 당신은 나눔의 정신을 가르치고, 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고, 친구가 없는 자들과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사람들이 돕도록 인도함으로써 충성된 집사가 되며, 또 당신의 사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정의를 나타내도록 힘쓰겠습니까?

 

여기에 다 하시고 장로가 되고 안수집사가 되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 교회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교회가 분열되고 갈라지고 어려움을 당할 때는 분명히 여기서 교회의 평화와 연합과 순결을 더욱 증진시키기로 약속하며 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수직분자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기가 했던 서약을 깬 겁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분들이 장로, 안수집사가 되실 때 교인들도 같이 서약을 합니다.

 

헌법 문답: 교인들에게

a. 본 교회의 교인인 우리는 OOO 교우들을, 본 교회 교인들의 음성을 통해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인도하도록 하나님이 선택하신 사역 장로와 안수집사로 믿고 받아들이겠습니까?

 

b. 우리는 홀로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결정을 존중하며, 그들이 우리를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기로 동의합니까?

 

이런 서약을 하고도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서로 잘 대화하고 토의하고 결정을 내리며 나아가면 좋은데, 반대하며 싸우는 경우도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6)  목자 목녀 서약

 

우리 교회에서 중요한 사역이 목자, 목녀입니다. 목자님들과 목녀님들, 자신의 서약을 갱신하시고, 앞으로 목자 목녀가 되겠다는 분들이 많이 나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나는 저런 건 되지 말아야겠다. 너무 힘들다.’라고 한다면 축복을 걷어차는 겁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옭아매는 게 아닙니다. 성실하게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이 얼마나 복을 쏟아부어 주시겠습니까?

 

목자 서약

나는 다음 사항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을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서약합니다.

 

1. 목장의 책임자로 목장식구들의 영적 성장과 가정교회의 전반적 운영을 책임지겠습니다.

 

2. 목자부부 합동모임(매월 1), 목자가족수련회(매년 1), 그리고 조별 모임(3개월에 1)에 참석하겠습니다.

 

3. 일주일에 4일 이상 매일 20분 이상씩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목장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하겠습니다.

 

4. 일주일에 4일 이상, 매일 성경 3장을 읽거나 정규 QT를 하겠습니다.

 

5. 매주 1회 이상 기도 짝과 만나서 기도하겠습니다.

 

6. 매주 목회일기를 기록하겠습니다.

 

7. 십일조를 본 교회에 바쳐 청지기로서 본을 보이겠습니다.

 

8. 1년에 1명 이상 예수님 영접하고 세례받을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목녀 서약

나는 다음 사항을 지키도록 노력할 것을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서약합니다.

 

1. 목자인 남편을 도와 목장 식구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영적 성장을 돕겠습니다.

 

2. 여성 목장 식구가 필요로 할 때에 상담에 응하고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3. 목자부부 합동모임(매월 1), 목자가족수련회(매년 1), 그리고 조별 모임(4달마다 1)에 참석하겠습니다.

 

4. 일주일에 3일 이상 매일 20분 이상씩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목장 식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기도하겠습니다.

 

5. 일주일에 1회 이상 기도 짝과 대면해서(부득이한 경우에는 전화로) 기도하겠습니다.

 

6. 일주일에 3일 이상, 매일 성경 3장을 읽든지 정규 QT를 하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괴롭고 힘든 일일까요? 이렇게 하면 누가 제일 좋을까요? 자기에게 가장 좋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해집니다.

 

 

7)  중보기도 헌신자 서약

 

중보기도 헌신자들이 일주일에 한 시간씩 시간을 내어 와서 중보기도실에서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시는지 모릅니다. 중보기도 헌신자들은 다시 한번 서약을 갱신하시고, 앞으로도 하실 분들이 많이 나오면 좋겠습니다.

 

1. 저는 콜럼버스한인장로교회의 활동교인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가운데 이웃을 위한 기도의 책임을 다할 것과 기도의 삶인 중보기도 사역에 헌신할 것을 약속합니다.

 

2. 중보기도 헌신자로서 헌신 기간 중 자신에게 주어진 기도 시간을 철저히 지키고, 기도의 책임을 충실히 감당할 것을 약속합니다.

 

3. 개인과 교회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만 기도하고, 모든 기도제목에 대하여 비밀을 지킬 것을 하나님과 모든 성도 앞에서 서약합니다.

 

4. 부득이한 사정으로 인하여 약속된 시간을 지킬 수 없게 될 때는 중보기도 팀에게 미리 연락해서 시간을 조정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하면 자신에게 좋습니다. 잘하고 계십니까?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가 될 때 장로, 안수집사 서약과 비슷한 내용의 서약을 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지금 내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부끄러울 때가 많습니다. 잘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겄을 보면서 아니, 서약을 하는 것이 뭐 이리도 많은가? 나는 안 해야겠다. 나는 서리집사도 안 하고, 아무 직분도 안 맡고, 그냥 조용히 교회 생활을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 결국 나 중심으로 하겠다는 게 아닙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나를 부르시는데도 나는 안 하겠다. 나는 내가 알아서 신앙생활을 하겠다. 나 중심으로, 내가 알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라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서리집사, 권사, 안수집사, 장로 등 어떤 직분으로 부르실 때, 또는 목자 목녀 사역이나 어린이 또는 청소년 교사나 예배 사역이나 어떤 사역으로 부르실 때, ‘나는 서약하면 곤란하고 복잡하니까, 그냥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야겠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옳겠습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그것을 잘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뭔가보다, 내가 편한 게 뭔가를 찾아서 신앙생활을 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안 믿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해야 하는데 아니오라고 하고, ‘아니오라고 해야 할 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옳은 일을 그렇게 회피하고 주님이 부르셔도 저는 너무 힘들어서 안 하겠습니다.’라고 하며 안 하는 게 아니라, ‘제가 해보겠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올바르게 한 번 살아보겠습니다.’라고 결단하고 헌신하며 그대로 살려고 애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 삶에 복을 부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평소에 언어도 조심하며 무엇보다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해야겠습니다. 동시에 내가 헌신한 내용, 결단한 내용에 대해서는 가볍게 여기지 않으며 안 해도 상관없지.’라고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사람 앞에서는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가?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라고 물으며 하나님이 원하신다면 내가 힘들어도 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면 나는 좋아해도 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올바른 결단과 헌신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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