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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동영상: https://youtu.be/81pWfPAwGFU?t=2064

 

 

20201213일 주일예배

하나님의 위로와 소망 38

아무리 애써도 여전히 불안할 때

(창세기 3213~21)

 

[들어가는 말]

 

오래 전부터 청년들과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단어들을 줄여서 만든 소위 인터넷 신조어들이 나왔습니다. 요즘은 가장 인기 있는 매체가 유튜브이기 때문에 유튜부 신조어도 나온 것을 보았습니다. 언뜻 보면 어른들은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말들이 많습니다. 심지어 청년들도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것들은 그래도 조금 이해가 갑니다. ‘인싸인사이더’, ‘아싸아웃사이더’, ‘핵인싸최고의 인사이더입니다.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는 것이고, ‘띵작은 온라인의 명작을 가리키는 말이며, ‘혼바비언혼자 밥 먹는 사람입니다. ‘ㅇㅈ은 인정, ‘ㅋㅋㅋ는 아실 것이고, ‘ㅇㄱㄹㅇ이거 레알이랍니다. ‘럴루리얼리?’, ‘정말?’이라는 뜻으로, ‘럴루 맛있다.’라는 식입니다. 도덕책은 우리가 아는 도덕책이 아닙니다. ‘도대체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당신은 도덕책(도대체)’이라고 하는 식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신조어는 무슨 말인지 정말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2020년 신조어 만반잘부를 아십니까? ‘만나서 반갑고 잘 부탁한다.’입니다. 슬세권은 슬리퍼의 세권의 합성어로, 잠옷이나 슬리퍼 같이 편한 복장으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편리한 주거 권역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심지어 국어사전에도 나온다고 합니다. ‘갑통알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를 하고 싶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삼귀다사귀다의 전 단계로서, 사귀는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니고 애매하며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단계를 의미합니다. ‘사바사사람 by 사람’,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사람마다 다르고 케이스마다 다르다는 뜻입니다.

 

옛날 말은 그래도 친숙합니다. ‘킹왕짱이라든지, ‘지못미’, 막장’(‘끝장의 변형으로 갈 데까지 갔다는 뜻)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흠좀무, 좀 무서운데이고, 옛날 말입니다. 역시 옛날 말들이 친숙한 것 같습니다. 오늘 야곱이 바로 흠좀무’(, 좀 무서운데)를 넘어서 정말 막장까지 간 상황입니다. 갈 데까지 갔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습니다. 아주 극도로 불안하고 두려운 상황입니다.

 

 

1.   불안한 마음으로 이리저리 애쓰는 야곱

 

야곱은 라반의 집을 떠나 아버지 이삭의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그것은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려 하는 형 에서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야곱은 에서와 화해하기를 원하여 에서에게 미리 사람을 보내어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는데, 돌아온 소식은 뜻밖에도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지금 자기를 치러 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야곱은 부랴부랴 자기 재산과 무리를 두 떼로 나누어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를 합니다. 그리고 극심한 두려움 가운데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늘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전까지 하나님과 교제가 별로 없었고, 특히 라반의 집에서는 거의 없었고,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다급한 상황이 되자 그는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오히려 급박하고 어려운 상황이 그로 하여금 기도하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이 하나님을 찾는 시작이 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그래도 안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삶에 문제가 발생할 때 그것은 우리에게 절망의 순간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으로 발전하는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라, 어려움이 왔을 때 간절히 기도하며 나아갈 때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번성하게 해주겠다고 하신 약속을 상기시켜드리며 기도했습니다(12). 그러나 그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주님의 위로와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며 두려워합니다.

 

야곱이 거기서 밤을 지내고 그 소유 중에서 형 에서를 위하여 예물을 택하니” (13)

 

야곱은 기도하면서 그곳에서 밤을 보내게 되고, 다음날 자기의 재산 중에서 많은 부분을 떼어 형 에서에게 선물로 보냅니다. 야곱은 물질을 사용해서 에서의 마음을 녹여보려고 시도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그의 모습을 봅니다.

 

암염소가 이백이요 숫염소가 이십이요 암양이 이백이요 숫양이 이십이요, 젖 나는 낙타 삼십과 그 새끼요 암소가 사십이요 황소가 열이요 암나귀가 이십이요 그 새끼 나귀가 열이라” (14-15)

 

야곱이 에서에게 보내는 짐승들의 목록을 보면 대단합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암낙타 30마리,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 새끼 나귀 10마리 등, 모두 합쳐 무려 550마리입니다. 게다가 암낙타에게 새끼가 있다고 했으니 그보다 더 많습니다. 이렇게 많은 짐승을 선물로 보냈다는 것은, 야곱이 불안함이 그 정도로 컸다는 말입니다. 동시에 형 에서와 그만큼 화해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보여줍니다.

 

같이 지낼 관계가 아니라면 크게 갈등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전에 테러리스트 하면 오사마 빈라덴이 미국의 적이었는데, 여러분 가운데 오사마 빈라덴과 갈등 관계에 있던 분이 계십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그 사람은 비록 나라의 적이지만 나와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멀리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서로 떨어질 수 없고 항상 함께 있을 수밖에 없는 관계일 때 갈등이 생깁니다. 부부 관계가 그렇고,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그렇습니다. 성도 간에도 그렇습니다. 가깝게 신앙생활을 같이 할수록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 멀리 있는 사람,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는 갈등이 생길 이유가 없습니다. 갈등은 항상 잘 아는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과 생기게 마련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아끼는 짐승들을 주고서라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관계인 쌍둥이 형 에서와의 갈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합니다.

 

그것을 각각 떼로 나누어 종들의 손에 맡기고 그의 종에게 이르되 나보다 앞서 건너가서 각 떼로 거리를 두게 하라 하고” (16)

 

야곱은 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짐승들을 보내면서도 한꺼번에 다 보내지 않습니다. 여러 떼로 나누어서 보내고, 한 떼와 그 다음 떼가 움직일 때 거리를 두게 합니다. 그것은, 에서가 여러 번에 걸쳐서 선물을 받으면 마음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하면 혹시 에서가 공격을 하더라도 도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야곱은 화해를 청하고 용서받기를 원하여 많은 선물을 보내면서도, 동시에 자기가 빠져나갈 곳을 마련하는, 항상 잔머리를 굴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은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우며 에서에게 나아가고 있지만, 오히려 이러한 그의 행동은 그가 얼마나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불안하고 두렵지 않았으면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만 그렇습니까? 사실 우리 인생도 불안하고 두려운 것 아니겠습니까?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잡고, 또는 미국에 오래 전 이민 와서 열심히 일하고, 어느 정도 자리 잡고, 돈을 벌고, 먹고 살만해지고, 원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지게 되고.... 그 정도면 감사할 조건은 차고 넘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여전히 불안해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은 괜찮은데,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들도 돈이 그렇게 많아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하는 것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미래의 삶 속에 어떤 불행이나 어려운 일들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을 때, 지금의 삶에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특히 지금 같은 코로나 사태가 이렇게 장기화될 줄 누가 알았습니까?

 

제가 주보를 찾아보니까, 지난 3월 코로나 사태가 막 터질 때 모든 삶 공부를 잠시 중단한다고 광고하면서 3주 후 다시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보면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3주면 끝날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3주가 아니라, 3개월도 아니라, 9개월이 지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지금이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때와 비교해도 10, 20배가 커졌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야곱은 형 에서가 어떻게 나올지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아주 불안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야곱은 가축을 이끌고 가는 종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줍니다.

 

그가 또 앞선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 형 에서가 너를 만나 묻기를 네가 누구의 사람이며 어디로 가느냐 네 앞의 것은 누구의 것이냐 하거든, 대답하기를 주의 종 야곱의 것이요 자기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오며 야곱도 우리 뒤에 있나이다 하라 하고” (17-18)

 

야곱은 종들에게 자기 형 에서를 만나거든 그를 라고 부르고 야곱 자신은 주의 종이라고 부르게 합니다. 그렇게 예를 갖추면서 주의 종 야곱이 주 에서에게로 보내는 예물이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곱이 뒤에 오고 있다는 말도 빼놓지 말고 하라고 말합니다.

 

그 둘째와 셋째와 각 떼를 따라가는 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도 에서를 만나거든 곧 이같이 그에게 말하고, 또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종 야곱이 우리 뒤에 있다 하라 하니 이는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내 앞에 보내는 예물로 형의 감정을 푼 후에 대면하면 형이 혹시 나를 받아 주리라 함이었더라” (19-20)

 

여기도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 떼를 이끌고 가는 종들에게도 똑같은 명령을 내립니다. 이렇게 종들에게 거듭 당부하고 명령하는 야곱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얼마나 불안하고 초조하고 두려웠으면 이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정말 애쓰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든 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그런데 야곱은 왜 그토록 열심히 준비하면서 종들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있습니까?

 

“‘그리고 주인의 종 야곱은 우리 뒤에 옵니다하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여라.’ 야곱이 이렇게 지시한 데는, 자기가 미리 여러 차례 보낸 선물들이 그 형 에서의 분노를 서서히 풀어 주고, 마침내 서로 만날 때에는, 형이 자기를 반가이 맞아 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20, 새번역)

 

이것이 야곱의 심정입니다. 형 에서와 정말 화해하고 싶은 것입니다. 도망갈 수도 있었지만 정면으로 만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가나안 땅에 정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화해하고 싶고 용서받고 싶습니다. 여러 선물들을 계속 보내는 가운데, 에서의 분노가 타오르더라도 선물을 만나고 또 만나고 또 만나면서 서서히 풀리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자기를 정말 받아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화해와 용서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이런 갈등의 관계가 있을 때, 무슨 철천지 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때, 특별히 가족이나 잘 아는 사람과 그렇게 되면, 그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부부싸움도 심각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화해와 용서는 아주 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들다고 해서 화해하고 용서하는 또는 용서받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어렵고 불편하기 때문에 그냥 덮어두고 살면 어떻게 됩니까? 평안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대강절의 주제 중 하나가 바로 평화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평화의 왕을 섬기는 평화의 종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결해야 합니다. Peacemaker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화해와 용서는 너무나 어렵지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던 벽이 무너지고, 또 우리와 다른 사람 사이에 있던 벽이 무너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도 바로 이 용서와 화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자기를 죽이는 사람들도 용서하셨습니다.

 

지금 혹시 불편한 관계가 있습니까? 먼저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먼저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할 일입니다. 불편한 관계가 생겼을 때 그 사람에게 가서 대화로 풀어보려 하는 게 첫 번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어떤 말재주로 풀리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서 먼저는 기도해야 합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풀리도록, 또 내 마음이 풀리도록, 상대방과 내 마음이 풀리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나는 그 사람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안 풀려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위해서도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만히만 있어서는 안 되고 뭔가를 해야 하는데, 물론 인간적인 방법을 쓰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관계를 풀기 위해 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를 찾아서 실행해야 합니다.

 

막힌 관계를 풀기 위해서라면, 야곱 정도는 아니더라도, 뭔가 내가 가진 것을 희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물질도 사용하고, 시간도 투자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화해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지 않고서는 관계가 풀리지 않습니다.

 

관계가 풀리기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까? 관계가 풀리기 위해 또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것을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전혀 방법이 안 보이더라도 일단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방법을 보여주실 때가 많습니다. 기도하면서 최선을 다해 행동해야겠습니다.

 

 

2.   홀로 남은 야곱

 

그 예물은 그에 앞서 보내고 그는 무리 가운데서 밤을 지내다가” (21)

 

야곱은 아주 치밀하게 에서가 오는 것에 대해 대처를 했지만, 그렇게 하고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야곱은 예물을 먼저 보내고 그날 밤을 무리 중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22(다음 본문)을 보면, “밤에 일어나즉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것을 봅니다. 그는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아예 잠자리를 거두어 버리고 일어나 한밤중에 아내들과 아들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합니다(22).

 

이것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서 준비했지만,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 가족까지도 자기 목적을 위해서 이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며 심지어 자기 가족까지 이용해도, 여전히 불안함을 떨칠 수 없는 것입니다.

 

위기와 갈등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으십니까? 그런데 저의 경험으로 볼 때, 할 일들이 쌓여 있고 바쁘면 더 졸립니다. 반면, 할 일이 별로 없고 한가해지면 오히려 정신이 말짱해서 잠이 잘 안 옵니다. 그러나 위기상황이 오고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면 잠이 잘 안 오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상한 것은, 아무리 인간적으로 대처하고 방법을 강구하고 열심히 준비를 하더라도, 불안이 더 커진다는 사실입니다. 불안함을 없애보려고 이 방법 저 방법 다 동원하고 시도해보지만, 이상하게 그럴수록 더 불안해지기만 합니다. 돈을 많이 가지면 불안함이 없어질 것 같아서 돈을 열심히 벌어보지만,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더 불안합니다.

 

최근에 코로나 사태 때문에 미국 정부에서 각 사람마다 지원금을 보내주었습니다. 일인당 $1,200씩 줬는데, 개인은 $1200, 부부는 $2400, 자녀당 $500이었습니다. 그런데 십여 년 전(2008년경)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도 그런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십니까? 아마 많은 분들이 잊어버리셨을 겁니다. 그때 정부에서 리베이트 체크(rebate check)를 보내주었는데, 싱글은 $600, 부부는 $1,200, 자녀 한 명당 $300을 주었습니다.

 

그때 받았을 때 얼마나 좋았습니까? ‘, 공돈이 생겼구나, 좋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때보다 두 배로 액수가 뛰었습니다. 그럼 두 배로 좋아졌습니까? 오히려 왜 이것 밖에 안 주나? 좀 더 주지.’라는 마음이 들었을 겁니다. 받기 전에는 , 좋다, 공돈이 생기는구나.’라고 했는데, 받고 나서는 얼마 안 되네.’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받기 전에는 생길 것을 생각하지만, 받고 나면 없어질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많은 사람들이 잘못 생각합니다. 교회를 다녀도 그렇습니다. 재산이 많아지고 좋은 집에 살고 큰 집에 살고 좋은 것을 사면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불안이 있고, 돈이 많으면 많은 대로 불안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항상 불안한 요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진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불안이 뒤따라옵니다. 자기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더 불안해집니다. 주변에 사람이 많이 있어도 고독이 깊어지고 불안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바로 야곱이 그런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빈털터리인 몸으로 와서 엄청난 재산도 얻고 가족들도 많아졌지만, 그렇게 얻은 가족들을 어떻게 했습니까? 아내와 자식들까지 다 앞세워서 자기 방패로 삼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불안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야곱은 모든 종들과 가축과 가족들까지 다 먼저 보내고서 깊은 고독을 경험합니다. 불안과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와서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너무 불안하고 너무 떨리고 너무 긴장됩니다. 지금 이 순간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재산이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종들도 많았습니다. 가족도 어떤 조상보다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세상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깊은 고독과 절망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고독과 절망의 끝에 이르면, 그 터널을 통과하면, 거기에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야곱은 이 고독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진짜로 만나게 됩니다.

 

사람은 이처럼 고독과 절망을 경험할 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적당한 어려움은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해주지 못합니다. 적당한 어려움은 하나님을 적당히 만나게 해줍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위기는 결정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해줍니다. 진짜 어려움은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해줍니다. 그래서 큰 어려움이 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전에 주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으로서, 또는 다른 종교를 가져서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던 사람이, 어떤 계기로 주님을 만나게 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분들을 볼 때 얼마나 기쁩니까? 우리가 함께 기도하고 사랑을 나누고 말씀을 전하다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기쁜 일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을 알고 있고, 평소에 교회에도 다니고, 예배도 드리고, 봉사와 기도와 말씀 생활도 하고, 믿음의 가정 출신이고, 직분도 있고, 누가 봐도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 순간 내가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어 왔던 신앙이 가짜였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았는데, 엄청난 어려움에 부딪히니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되는데, 놀랍게도 거기에서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물론 알기는 알았지만 진짜로 제대로 믿지 않았는데, 이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되는 겁니다.

 

바로 야곱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뭐라고 했습니까?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불렀지만,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는 못했습니다(9). 그러니까 자기의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할아버지의 하나님이고 아버지의 하나님입니다. 모태 신앙인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할아버지의 하나님, 할머니의 하나님, 아버지의 하나님, 어머니의 하나님은 있는데 나의 하나님은 아직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위기의 순간에서 야곱은 홀로 남아 고독과 외로움에 직면합니다. 사실 이 위기는 단순히 형 에서가 치러 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상의 문제로 그는 인생의 고독과 두려움이라는 문제에 직면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때 그는 드디어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전에도 에서를 피해 도망가다가 벧엘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습니다. 라반의 집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서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아직 제대로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때까지도 그저 하나님은 내가 필요하면 와서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의 순간에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또는 천사와 씨름한 사건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가 지금까지 믿어 오고 있는 하나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진짜입니까? 진짜 믿음입니까? 혹시라도 가짜로 믿어 온 것은 아닙니까? 교회에 왔다 갔다 하고, 예배에 참석하고, 헌금도 하고, 찬송도 하고, 기도도 하고, 말씀도 보고, 삶 공부도 하고, 목장도 가고 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났는가? 이것을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정말로 나의 하나님이신가?

 

지금 이 코로나 사태가 터진 이후에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극과 극이 되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며 나아와 예배하고, 삶 공부도 하고, 말씀도 읽고, 기도도 하고, 더 열심히 하거나 최소한 하던 정도로는 계속 열심히 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누가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으니까 아예 안 해버리는, 극과 극으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지금 거의 중간이 없습니다. 계속 잘하든지 아예 안 하든지로 나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놀랍게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말세의 현상입니다. 가진 자는 더 많아지고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기는 말세의 현상이 양극화 아닙니까? 나는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혹시 지금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내 인생의 결정적 위기 앞에서 아무 능력도 없는 그런 하나님은 아닌지? 야곱이 그랬습니다. 그는 위기의 순간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할아버지의 하나님이나 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고통의 순간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22:44)

 

인생에서 너무나 큰 위기였기 때문에 기도하실 때 땀이 피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예수님처럼 땀이 핏방울 같이 되는 기도를 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것이 바로 바울이 육체의 가시를 떠나게 해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는 기도입니다. 땀이 피처럼 되는 기도, 생명을 건 기도입니다.

 

그런 기도를 해본 적이 없다면,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엄청난 위기 앞에서 아무 능력도 없는 하나님을 혼자 믿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믿는다고 하며 교회에 다니는 분들 중에서 이전에 아주 안타까운 분들을 가끔 보았습니다. 인생의 위기가 왔는데 전혀 기도를 안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리지를 않습니다. 전혀 매달리지 않는 사람도 있고, 한두 번 해보다가 아무 일도 안 일어나니까 관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땀이 피처럼 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다 떠나보내고, 혼자 남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겁니다. 단둘이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진짜로 만날 때 진짜 능력이 주어집니다. 그분 앞에 내 모든 것을, 내 모든 존재를 다 던지는 기도를 드리는 겁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열심히 세게 기도하기만 하면 다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을 찾고 매달리게 되면, 내 기도가 세기 때문에 뭔가가 되는 게 아니라, 그렇게 기도할 때 내 눈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도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나가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능력이시고, 피난처이시고, 바위이십니다. 야곱은 이제야 진짜로 하나님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끝난 게 아니라 이제 만나기 시작한 겁니다.

 

다음 장면에서 야곱은 새벽까지 천사와 씨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드디어 하나님을 만나 응답을 받습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야곱은 고독과 절망과 위기에서 나오게 되고, 가장 형편없었던 야곱이 이스라엘로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인생도 야곱처럼 되기를 원합니다. 자신의 고독과 위기를 견디고 승리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진짜로 만나 새롭게 되는 역사가 우리 모두의 삶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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