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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8월 31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5 ✦
“악함의 극치를 보여준 므낫세와 악을 본받은 아몬”
(역대하 33장 1~25절)
1. 엄청난 죄악을 행하는 므낫세
위대했던 왕 히스기야가 죽고 그의 아들 므낫세가 유다의 14대 왕이 됩니다. 12세의 나이에 왕이 된 므낫세는, 무려 55년이나 되는 긴 기간 동안 왕으로 다스립니다(1). 그런데 다윗 이래 가장 위대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아버지 히스기야와는 정반대로, 다윗 이래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맙니다. 열왕기하와 역대기하에서는 므낫세가 저지른 악행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온갖 악을 저지른 그의 악행의 핵심은 바로 우상숭배였습니다(2).
솔로몬 때부터 마구 수입해 들여온 이방 종교들의 영향이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타락시켜 왔는데, 이제는 아예 백성의 리더인 왕이 나서서 대놓고 우상숭배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권력자가 노골적으로 밀어주니까 우상숭배는 산불이 삽시간에 번져 산을 다 태워버리듯 유다 전역으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습니다.
므낫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최선을 다해 헐어 버린 전국의 산당들을 다시 재건하여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3). 그 후 므낫세가 통치할 때 벌어진 유다의 각종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오래 전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절대로 행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것들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신 18:9-14)
이것을 보면 므낫세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것들을 빠짐없이 다했습니다. 므낫세의 우상숭배는 그 뿌리와 다양함의 측면에서 우상숭배 때문에 망한 북이스라엘과 너무나 비슷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4-6절)
힌놈의 골짜기에서 아들들을 불에 태워 제사 지내는 몰렉 종교의 인신제사 의식을 행했고, 잔에 물이나 녹인 납 등을 넣어 점을 치고 미래를 예언하는 복술도 하게 했습니다(6). 노래나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부적 같은 것을 사용하여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요술도 행해졌고, 주문을 외우며 마법을 행하거나 반지를 가지고 요술을 부리는 진언도 있었습니다. 또 시체에 뜨거운 물을 붓거나 죽은 자의 머리를 이용해서 혼을 불러내어 미래의 일을 묻는 초혼도 행해졌고,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길흉을 점치는 일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엄격히 금지하는 것이었습니다.
“점을 치지 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며...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 19:26, 31)
특히 므낫세는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한 단들을 자기가 만든 아세라 목상과 함께 하나님의 성전 마당에 세우는 일까지 자행했습니다(7). 아세라는 이방신들 가운데서도 음란한 여신입니다. 그런 아세라 목상을 성전 안에 세웠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을 모독하는 끔찍한 신성모독 행위였습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에 불과한 해와 달과 별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묻겠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매일 전국으로부터 하나님을 예배하러 오는 백성들로 늘 가득한 곳인데, 그 성전 뜰에다가 왕이 직접 우상을 세워놓는다는 것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버리고 혼합 종교를 믿으라고 장려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아무리 왕이라고 해도 이처럼 성전을 함부로 모독하며 백성들의 신앙을 병들게 하는 가증스러운 행위를 하는 그를 하나님은 결코 그냥 두실 수 없었습니다.
특히 6절을 보면 므낫세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서 그들의 자문을 받아가면서 했다는 것입니다. “신접한 자”(mediums)는 주술로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자이고, “박수”(spiritists)는 신들린 사람, 즉 무당으로서 마술에 능통한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문자 그대로 ‘신접’ 즉 귀신과 교제하는 자, 귀신의 하수인들입니다. 때로는 한 사람이 이 두 가지 역할을 다 감당하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은 이런 이들과 접촉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악한 왕 므낫세가 이런 무당들이 활개를 치도록 공식적으로 자리를 깔아주었고 나라를 이끄는 일을 위해 자문까지 받았으니 나라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므낫세 통치 아래 유다 백성들의 우상숭배와 죄악은 처음 이들에게 우상숭배를 전해준 이방 민족들, 그래서 하나님이 진멸하셨던 이방 민족들보다 더 악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9). 그뿐 아니라 므낫세는 무죄한 사람들의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왕하 21:16)
옛날이나 지금이나 악한 통치자가 권력을 잡으면 억울하게 피 흘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여기서는 므낫세가 의롭고 죄 없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수없이 죽였다는 말입니다. 므낫세의 악행이 그처럼 너무나 심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므낫세를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10). 그러나 므낫세는 회개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들을 잔인하게 핍박하고 죽였습니다. 유다 전승에 따르면, 그 중 이사야는 톱으로 켜서 처형되는 비참한 죽임을 당했습니다. 므낫세의 이런 공포 정치로 인하여 예루살렘이 피바다가 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것을 전한 하나님의 종들을 죽이는 것은 우상숭배와 함께 가장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드는 죄입니다. 아무리 절대 권력자인 왕이라고 해도 이 두 가지 일을 범하면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인 므낫세의 죄를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므낫세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내가 사마리아를 잰 줄과 아합의 집을 다림 보던 추를 예루살렘에 베풀고 또 사람이 그릇을 씻어 엎음 같이 예루살렘을 씻어 버릴지라” (왕하 21:13)
하나님은 멸망당한 북이스라엘을 재었던 줄과 추를 사용하여 남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도 재겠다고 하십니다. 이 “다림 보던 추”는 원래 건축자들이 가지고 다는 수평 추로서, 단위를 잴 때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인생을 공의로 달아 보시는 하나님의 법을 가리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북이스라엘의 죄악과 부패를 측정하는 기준이 되었던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이제 남 유다의 죄악과 부패를 특정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봤지만 배우지 못한 유다에게도 심판이 코앞에 닥쳤다는 경고입니다.
모든 리더는 자신의 리더십이 항상 왕의 왕이신 하나님에게서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자기 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도 그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그 어떤 위대한 지도자도 당신의 저울로 정확히 달아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무게가 되지 않으면 그 리더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악독한 왕 므낫세의 죄에 대해 심판을 하실 때, 단순히 므낫세 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는 게 아니라 예루살렘 전체를 “씻어 버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설거지를 할 때 그릇 속의 더러운 찌끼를 다 버리고 그릇을 깨끗이 씻는 것처럼, 예루살렘과 그 백성들을 모두 쓸어버리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강력한 이방 군대의 손에 넘겨서 잔인한 고통과 죽음을 당하게 하시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이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유다를 심판하시는 것을 표현할 때 ‘씻어 버린다’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파괴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정결을 의미합니다. 완전히 없애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 깨끗하게 만드시겠다는 뜻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죽을죄를 지었다고 해도 결코 죽도록 매질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매는 자식을 바로잡는 매인 것처럼,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유다의 죄를 씻어내고 새롭게 만들고자 하시는, 어쩔 수 없는 눈물의 회초리였습니다.
둘째, 비록 므낫세가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유다에 대한 심판은 갑자기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라, 그들의 조상들이 모세의 인도 하에 애굽을 나오던 그 오랜 옛날부터 하나님께 저지른 죄들이 쌓여 온 결과입니다.
“내가 나의 기업에서 남은 자들을 버려 그들의 원수의 손에 넘긴즉 그들이 모든 원수에게 노략거리와 겁탈거리가 되리니, 이는 애굽에서 나온 그의 조상 때부터 오늘까지 내가 보기에 악을 행하여 나의 진노를 일으켰음이니라 하셨더라” (왕하 21:14-15)
결국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그 누구도 책임을 피해갈 수가 없습니다. 누가 완전한 의인이겠습니까? 뇌물이라는 것은 사실은 준 사람이 있으니까 받은 사람이 있다기보다는, 뇌물을 받는 사람이 있으니까 주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심판이 떨어지는 데에 원인 제공을 했습니다. 지금도 나라가 잘못되어 가는 것에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왜 해결이 안 되는가 하면, 자기 잘못은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잘못만을 지적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저절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간절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회개함으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대충 덮어놓게 되면 죄는 계속 나타나게 됩니다.
2. 죄의 대가를 치르고 회개하는 므낫세
이에 하나님은 앗수르를 사용하셔서 므낫세에게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앗수르의 비문을 보면 앗수르가 유다를 공격한 때는 BC 648년이었고, 당시 앗수르의 왕은 앗술바니팔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군사력으로는 강대국인 앗수르의 대군을 도저히 막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보호막이 완전히 걷어진 상황에서 유다의 군대는 앗수르에게 패하고, 므낫세 또한 포로로 잡혀 갑니다. 그것도 쇠사슬에 묶인 채 끌려가는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11).
앗수르는 포로들을 아주 잔혹하게 다루었기 때문에, 끌려가는 포로들은 지옥 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갈고리로 입이나 이마를 꿰어서 줄줄이 끌고 갔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말로만 듣던 앗수르의 잔인함으로 인하여 자신의 몸에 고통이 가해지고 엄청난 치욕이 임했을 때, 므낫세는 비로소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2절)
아버지에게 재산을 받아 집을 떠나서 타국에 갔던 탕자가 그 많은 돈을 다 탕진하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어서야 정신을 차린 것처럼, 므낫세도 그런 비참한 지경에 처하게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원수의 나라 앗수르로 끌려간 므낫세는 쇠사슬로 결박당한 채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기고만장하여 교만했던 옛날의 위세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눈물로 기도했는데, 이때까지 그렇게 악한 죄만 골라서 수없이 짓던 그가 이처럼 겸손히 주님께 기도로 나아온 것은 정말 놀랍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참 좋으신 아버지이십니다. 그토록 괘씸한 죄를 수도 없이 지은 므낫세였지만, 그래도 이방 땅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서 비참한 처지 가운데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저 같았으면 므낫세를 조금 더 뺑뺑이 돌리면서 고통스럽게 다루다가 적당한 때에 풀어주었을 텐데,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십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13절)
하나님은 므낫세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왕위에 앉게까지 해주셨습니다. 므낫세는 이 일을 통해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는데, 그는 정말 너무나 먼 길을 삥 돌아서 온 셈입니다. 처음부터 이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부모들이 자녀에게 잘 쓰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이왕이면 안 맞고 그냥 하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맞고라도 바뀌면 감사한 일입니다. 맞으면서도 계속 자기 고집대로 사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므낫세처럼 맞고 나서 돌아오는 것도 안 돌아오는 것보다는 낫지만, 처참하게 무너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며 그 은혜와 축복을 누리며 사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어쨌든 이때부터 므낫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뒤 6년 밖에 더 살지는 못했지만, 그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므낫세는 아주 훌륭하게 살았습니다.
먼저는 국방력을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습니다(14). 다윗 성 밖에 외성을 쌓았는데, 이것은 아버지 히스기야가 쌓았던 것을 더 높이 쌓고, 동서로 더 길게 연장하는 공사였습니다. 그런 후에는 국경 지역에서 중요한 성들에 확실한 장군들을 배치하여 더욱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했습니다. 앗수르 군대에게 침략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가보고 나서야, 국방을 튼튼히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은 것입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왕이 되어 첫 49년 동안 그토록 엄청난 열정으로 우상숭배에 힘쓰던 므낫세가, 이제는 180도로 바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15-16절)
므낫세는 예루살렘에서 모든 우상들을 제거하라고 명령했고(15), 황폐해져 있던 하나님의 제단을 보수하여 다시 잘 세우게 했습니다(16). 또한 모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성심껏 섬기라는 명령도 동시에 내렸습니다.
백성의 입장에서는 왕의 태도가 완전히 바뀌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왕의 명령이라 순종하기는 했지만, 워낙 우상숭배의 습관에 오래 젖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고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므낫세가 죽고 그의 아들 아몬이 왕이 되어 다시 악행과 우상숭배를 하는 정책을 펼치니까, 나라가 순식간에 다시 타락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중간에 회개하고 바뀌는 것보다, 처음부터 바른 길을 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므낫세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 21:18)
이 말씀을 보면, 어쨌든 므낫세 자신은 회개하고 겸손해진 자세를 끝까지 잘 유지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므낫세가 묻힌 이 “궁궐 동산 곧 웃사의 동산”은 왕들이 죽으면 묻히는 화려한 묘실이 아닙니다. 므낫세는 스스로를 낮추어 웅장한 왕의 묘지가 아닌, 자신의 별궁에 있던 정원의 일부인 동산에 묻히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므낫세 개인은 이렇게 회개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삶을 잘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회개하고 변화되기 전 유다를 다스리면서 저질렀던 그 엄청난 죄의 영향력은 너무나 컸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갈대아의 부대와 아람의 부대와 모압의 부대와 암몬 자손의 부대를 여호야김에게로 보내 유다를 쳐 멸하려 하시니, 이 일이 유다에 임함은 곧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자기 앞에서 물리치고자 하심이니 이는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 때문이며, 또 그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려 그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였음이라 여호와께서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시니라 ” (왕하 24:2-4)
3. 므낫세의 악행을 본받은 아몬
므낫세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 아몬이 유다의 제 15대 왕이 됩니다. 아버지 므낫세의 통치 기간이 무려 55년이나 되었으니까, 아몬은 상당히 긴 시간을 왕세자로 보낸 겁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아몬은 회개한 이후의 므낫세를 본받지 않고, 회개하기 전의 악한 모습만을 그대로 따랐다는 사실입니다. 왕이 되자마자 아몬은 아버지가 악행을 할 때의 방식으로 통치하여, 므낫세가 회개하기 전에 만들어놓은 모든 우상들을 다시 복구시켜 우상숭배를 했습니다(22).
이처럼 죄는 그 전염성과 파급 효과가 엄청나고 무섭습니다. 므낫세는 통치 말년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포로로 끌려갔다가 그때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여 변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달라진 모습으로 6년 동안 더 유다를 다스리다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앗수르에게 곤욕을 치르기 전에 하나님께 거역하고 우상숭배를 하며 죄만 짓던 시간이 무려 49년이나 됩니다. 그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때 온갖 악행이란 악행은 다 저지르면서 나라를 망쳐 놓았으니, 자신이 회개한 뒤 나라를 다스린 6년 동안 그 엄청난 잘못을 다 돌려놓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파괴하고 부수기는 쉬워도, 다시 쌓아 올리고 복구하기는 몇 배로 힘든 일입니다. 무엇보다 장차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아들 아몬이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의 대부분은 회개하기 전 아버지의 악한 리더십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몬은 아버지 므낫세보다 더 악하게 행했습니다.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3절)
말년에 앗수르 때문에 당한 고통을 통해서라도 마음을 돌이키고 겸손히 회개하며 하나님을 섬겼던 아버지 므낫세와는 달리, 아몬은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게 더욱 무서운 겁니다. 죄를 지을 뿐 아니라 회개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 아몬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폭발시켰습니다.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24-25).
악을 행하며 우상을 숭배하던 아몬은 왕이 된 지 2년 만에 신하들의 반란으로 암살을 당합니다. 왜 하나님은 그토록 악을 행하던 므낫세는 55년이나 다스리게 하시고, 아들 아몬은 2년 만에 죽게 두셨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모든 인생을 다른 방법으로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을 믿을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몬을 죽인 신하들이 권력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아몬을 죽인 반역자들을 즉시 잡아 죽였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다음 왕으로 세움으로 다시 다윗의 혈통으로 하여금 왕위를 유지하게 합니다.
우리가 전에 살펴보았듯이, 북이스라엘은 툭하면 신하가 왕을 죽이고 왕이 되어 새로운 왕조를 시작했는데, 남 유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몬의 신하들이 왜 아몬에게 반역하여 죽였는지 그 이유를 성경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이 어떤 이유였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 반역을 인정하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예후가 아합의 아들 요람을 배신하고 그를 쳐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악한 아합의 집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그를 사용하신 것입니다(왕하 9). 그러나 아몬의 죽음은 결코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맘대로 저지른 일입니다.
북이스라엘에서는 그토록 자주 일어났던 내부 반란이나 왕의 암살이, 유다에서는 단 2번, 즉 9대 왕 아마샤와 이 아몬에게만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이 반란의 주모자들은 아몬 왕을 죽이는 데에만 성공했고, 백성들의 손에 의해 바로 즉결심판을 받아 처형당했습니다. 그리고 왕위가 계속해서 다윗의 후손들에게 이어집니다.
이 세상의 역사가 악한 자들에 의해 움직여지는 것 같아도, 결국 신실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인간의 악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바꾸어 사용하십니다. 그 과정 속에서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로서, 우리도 늘 신실하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주님께 쓰임 받는 고귀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