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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8 24 수요예배

포기할 없는 영적 리더십 44

이사야와 미가의 활동

(이사야 6 1~13)


 

[들어가는 ]


히스기야가 다스리던 상황은 세계 패권의 판도가 바뀌는 격동의 시대였습니다. BC 8세기에 신흥 강대국이자 최초의 초강대국 앗수르가 근동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잔혹하고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앗수르는 점령한 나라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습니다. 앗수르는 따뜻하고 기름진 땅이 있는 남쪽으로 끊임없이 세력 확장을 시도했기 때문에, 중동의 노른자위에 위치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BC 722년에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고, 여세를 몰아 유다까지 침공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왕인 히스기야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로 앗수르는 패배를 당하고 유다 정복에 실패하고 맙니다.


한편, 남쪽에서는 전통적 강국인 이집트가 북쪽으로 세력 확장을 시도하여 앗수르와 날카롭게 다투고 있었습니다. 와중에 다른 신흥 강대국 바벨론의 기세가 무섭게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가운데에 유다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외교적으로 아주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활동하던 대표적인 선지자가 이사야와 미가입니다. 오늘은 선지자들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이사야


이사야서의 기록 연대에 대해 학자들은 대략 BC 700-680년경으로 추정합니다(1:1). 이사야는 유다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4대에 걸쳐 50 년간의 세월 동안 활동했던 선지자(예언자)입니다. 기간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다섯 왕들이 다스리던 때이기도 했는데, 이사야는 앗수르 사르곤 2세에게 이스라엘이 멸망당할 당시에도 살고 있었습니다(BC 722).


웃시야의 통치 기간에 있었던 다른 사건들은, 초기의 것에서부터 후대의 것에 이르기까지, 아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가 기록하여 두었다.” (대하 26:22, )


이사야는 그냥 예언만 하던 선지자가 아니라 왕들의 행적을 기록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왕들의 통치와 인생을 기록하는 것은 아무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을 보면, 이사야가 왕족이었거나 적어도 비슷한 신분이었다는 뜻입니다. BC 760년경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이사야는 사실 유다의 10 웃시야의 사촌이었습니다.


왕족이었으니까 우쭐거리며 있는 신분이었고, 상류사회에 인맥도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사야서는 다른 구약성경의 책들보다 화려하고 수준 높은 히브리어 문체를 사용합니다. 그것을 보면 그가 상당한 고급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사야는 당시의 정치와 경제와 국제 간계의 핵심을 꿰뚫고 있었으며, 박해를 무릅쓰고 그에 대해 정확히 비판하는 동시에 대안을 제시합니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종교 전통과 율법에 대해서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 문화, 교육, 외교 모든 분야에 정통했던 인물이라고 있습니다. 그렇게 남부러울 없는 엘리트였던 이사야가 하나님의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그의 배경 세력이던 웃시야 왕이 세상을 떠난 BC 740년경 성전 안에서였습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1)


5장에 보면 아주 아름답고도 슬픈 노래가 나오는데, 소위포도원의 노래라고 불립니다. 거기 이사야는 하나님을 가리켜 “나의 사랑하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노래의 시작은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에게 아름다운 포도원이 있는데, 그게 이스라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포도원을 가꾸어주십니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게 출발한 노래의 결론은 아주 비참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포도원을 만들고, 돌을 없애고, 흙을 고르고, 울타리를 세워서 짐승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고, 거름을 주고 망대를 세우고, 좋은 조건을 만들어놓고 게다가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으셨는데, 좋은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론은 뭡니까?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중에 망대를 세웠고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5:2)


이사야는 죄에 대하여, 지은 인간들에 대하여 분노하면서, 하나님이 그토록 아름답게 심으셨는데도 그러니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라고 하며 죄에 대해 고발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투기꾼들아, 부자들아, 거짓 영적 지도자들아, 거짓된 가치관을 말하는 자들아, 지적 교만에 빠진 자들아, 뇌물과 향락에 빠진 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이사야는 그들을 향해 독설을 마구 퍼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갈등으로 가슴이 터질 같은 바로 순간에 웃시야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상 견딜 없어 성전으로 뛰어 들어온 것입니다. 와서 밤새 몸부림 겁니다. “하나님, 죄가 뭡니까? 이렇게 죄로 끝날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까? 인간들은 밖에 없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이렇게 지은 인간들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십니까?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까? 지은 자들의 인생에 대해 그렇게 침묵하시는 것이 맞습니까? 이렇게 몸부림치며 밤을 새우고 있는데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고민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없습니다. 삶을 그저 쉽게 살겠다고, 쉽게 가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절대 하나님을 만날 없습니다. 삶의 기준을 낮추어서 그저 먹고 살기에 급급하고, 닥치는 대로 살고, 조금만 힘들어도 도망가고, 어떻게든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오면 계산하고, 피하고, 진리를 묻어버리고 사는 그런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는 처절히 고통하고 몸부림을 치니까 하나님을 만난 겁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는데 하나님의 궁전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옷자락이 성전을 덮고 있습니다(1). 그때 무엇을 봅니까?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둘로는 날며” (2)


스랍 천사들은 찬양하는 천사들입니다. 날개가 여섯 개인데,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면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스랍 천사들이 보좌 주변을 날면서 찬양을 하는데 찬양의 내용이 너무나 뚜렷하게 들렸습니다.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3)


거기에는 이야기도 없고, 슬픔 이야기도 없고, 분노 이야기도 없고, 오직 내용은 거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거룩의 선포로 성전 문지방 터가 요동하기 시작합니다.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4)


엄청난 위엄과 찬양과 임재와 진동 가운데 이사야가 떨기 시작했습니다. 엄청난 앞에 자신의 초라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특별히 입술을 가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금 전까지 입술이 얼마나 정죄를 많이 했습니까? 있다고 외치고, 하나님은 살아 계시냐고 외치고, 정말 죄가 이런 것이냐고 외치고, 하나님은 하고 계시냐고 외치고, 입술로 정죄하고 정죄하고 외치던 순간들이 너무 부끄럽고 두려워서 입술을 가리게 되었습니다.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5)


그는 자신의 입술의 부정함 때문에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주하고 원망했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자신은 깨끗한 것처럼 남들의 죄를 고발하고, 자신은 있는데 남들은 하는 것처럼 정죄했던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역설입니다. 자신의 부정함을 깨달을 하나님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인간적 배경이 사라질 옵니다.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같았던 어떤 것이나 함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어떤 사람이 이상 함께 있지 못할 , 바로 순간 하나님이 내게 찾아오십니다. 그렇게 두려워하던 이사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때에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입에 닿았으니 악이 제하여졌고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내가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6-8)


하나님의 거룩한 숯불이 이사야의 입술을 태우고 그의 언어를 정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초청을 하시고,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그의 사역에서 그가 많은 어려움을 겪게 것을 경고해주십니다(9-10). 그러나 그와 동시에 회개하는 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용서와 약속에 대해서도 확신을 주십니다(13).


앗수르에게 자신들의 나라가 공격을 받을 , 이사야는 유대의 왕들에게 자존심을 죽이고 최대한 중립을 지키며 앗수르에 대항하지 말고 조공을 바치라고 권유했습니다.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앗수르를 대적하는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유대가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 하여 공격해왔을 때에도, 이사야는 유대 히스기야에게 결코 반란군에 합류하여 앗수르를 자극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사야는 탁월한 외교 감각을 발휘하여 유대 왕들에게 조언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영적 판단력을 잃어버린 대부분의 왕들은 이사야의 조언을 귀담아 듣지 않다가 멸망을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이사야의 조언이 단순한 외교적 안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영감이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면 어떤 불가능한 상황도 뚫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BC 701년에 앗수르의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유다가 멸망 일보 직전까지 이르렀을 ,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예루살렘을 구원하신다고 히스기야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말씀대로 앗수르의 18 대군은 하룻밤 사이에 전멸했고, 간신히 목숨을 건져 자기 나라로 돌아간 앗수르 산헤립도 내부 쿠데타로 인하여 아들들에게 살해당하고 맙니다.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를 가진 자신의 이름과 같이, 이사야는 심판을 예언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 예언의 분량이나 내용이나 언어 등을 보면, 모든 면에서 이사야서는 다른 어떤 예언서보다 스케일이 크고 능동적입니다. 뛰어난 문학적 표현을 통해 이사야서를 기록한 그는 천재적인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앞으로 오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직설적이고 자세하여, 신약에 나오는 예수님의 삶과 비교해볼 정확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사야서는 66장이나 되는 길고 방대한 책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66장이 성경 66권의 전체 구조와 틀이 아주 비슷합니다. 소위 ‘제1 이사야’라고도 불리는 1-39장은 구약 39권처럼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흥망성쇠를 기록했습니다. 주변 정세가 그토록 불안한데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에는 불의가 판을 치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는 형식에 치우쳤으며, 우상숭배도 만연했습니다. 그러니까 외부의 어려움보다 내부의 타락이 문제였던 겁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하나님을 버린 백성이 얼마나 비참하게 열방들에게 유린당하고 망할 것인가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1-39장은 너무나 무서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제2 이사야’로 불리는 40-66장은 신약성경 27권과 같이 위로와 소망을 말해줍니다. 나라가 망하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 백성들에게는 모든 소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절망의 순간에서부터 하나님의 회복이 시작될 것이라고 이사야는 예언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무엇보다 이사야를 사로잡았던 주제는 하나님의 거룩함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며 만유의 주님이셨습니다. 우주를 다스리시고, 땅의 왕들을 우습게 여기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땅의 어떤 화려함도 감히 따라갈 없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거룩함과 아름다운 위엄을 이사야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분은 치의 오차도 없이 공의를 집행하는 분이시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들에게 무한한 용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우리 눈에 혼란하고 어둡게 보이는 역사 속에서도 반드시 당신의 선한 뜻과 계획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땅의 역사 속에 이루어내는 것은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이사야서에는 개의 ‘종의 노래(Servant Song)’들이 나옵니다(42:1-4; 49:1-6; 50:4-9; 52:13-53:12). 대표적인 내용이 번째 ‘종의 노래’에 있는 내용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53:5-6)


노래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종인 이스라엘의 사명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종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 받은 존재로서, 죄로 물든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고 많은 아픔과 핍박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은 ‘고통 받는 (Suffering Servant)’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고통 받는 종’은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었습니까? 먼저는 나라의 대부분이 하나님을 버린 어둡고 암울한 시대에도 변함없이 하나님께 순종하던 소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700 후에 오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7:14)


나아가 ‘고통 받는 종’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며, 그리스도께서 주신 사명을 다해 실천해 교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이사야는 단지 자신의 시대만을 위한 예언자가 아니었습니다.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예루살렘의 슬픈 운명을 예언하는 동시에, 이사야는 세상의 모든 악을 멸하실 하나님의 궁극적인 심판도 예언했습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의 예배는 장차 세계 모든 교회 안에 일어나게 신앙과 예배의 타락의 징조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에 대한 심판도 똑같은 형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심판이 끝나고 나면 영원하신 , 만왕의 왕이 다스리시는 완전한 평화와 정의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새 하늘과 땅”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자신도 ‘고통 받는 종’에 맞는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훗날 이사야는 악한 므낫세가 왕이 초기에 처형됩니다. 악한 제사장이 이사야에게 심판에 대한 예언을 취소하라고 요구했지만, 이사야는 단호히 제안을 거절했고, 결과 그는 므낫세 왕의 명령으로 톱으로 썰어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격동의 세월을 살면서 자신의 조국과 왕들에게 두려움 없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포했던 위대한 대선지자는 그렇게 하나님 품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아 있을 줄 믿습니다.

 


2.   미가


BC 8세기경에 활동한 선지자 미가는 북이스라엘의 아모스와 호세아, 그리고 유다의 이사야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미가서는 아하스와 히스기야 재위 기간에 기록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다 남서부 작은 마을 출신인 미가는,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향해 예언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미가의 활동 당시 근동을 지배하던 앗수르 제국은 왕이 들어설 때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속국들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앗수르 등의 외국 군대가 통과할 때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래도 유다의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은 모두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안에 살면서 약한 자들을 착취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먹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작은 마을에 흩어져 사는 하층계급 사람들에게는 지옥처럼 고통스런 나날들이 되풀이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에게는 외국의 침략군이나 같은 동족의 지도자들이나 똑같이 무서운 적이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 속에서 미가는 생명을 걸고 압제자들을 꾸짖었습니다. 미가는 유다가 북이스라엘을 타락하게 죄에 똑같이 물들었음을 한탄했는데, 특히 통치자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책임을 무섭게 질책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자의 돈을 착취하는 행위, 부패한 상도덕, 껍질만 남은 신앙 등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특히 약한 자들의 편에 서서 강한 자들의 부패와 불의를 강하게 책망했습니다.


지파에 속한 작은 촌락인 모레셋이라는 출신인 미가는, 수도 예루살렘에 사는 귀족들의 부패와 탐욕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미가는 유다와 이스라엘 지도층의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덮쳐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의 부패와 탐욕이 언젠가는 반드시 앗수르의 침공을 가져올 것임을 미리 내다본 것입니다.


삶은 죄로 가득 찼으면서도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종교의식을 계속하면서 자기들이 의롭다고 자부하던 당시 유대인들에게, 미가는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통렬히 선포합니다.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갈 때에, 높으신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에,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 번제물로 바칠 송아지를 가지고 가면 됩니까? 수천 마리의 양이나, 수만의 강줄기를 채울 올리브기름을 드리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허물을 벗겨 주시기를 빌면서, 맏아들이라도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내가 지은 죄를 용서하여 주시기를 빌면서, 몸의 열매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까?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인지를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도 이미 말씀하셨다. 오로지 공의를 실천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6:6-8, )


죄악 삶과 종교적 위선으로 멸망당할 조국과 민족을 바라보면서, 미가의 심장은 슬픔으로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 절절한 안타까움이 미가서 곳곳에서 느껴집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가는 예루살렘이 세계 모든 나라들의 주목을 받게 영광스러운 미래도 내다봅니다. 무엇보다 메시야의 탄생을 미가 역시 예언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 5:2)


미가는,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 위대한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가 태어나서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라는 놀라운 비전을 약속해줍니다. 부패한 인간 왕들 때문에 인간의 제국은 멸망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정의와 사랑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다시 살아나게 것입니다. 미가는 그러한 소망의 메시지로 자신의 책을 마무리합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 7:18-20)


 

[나가는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불의한 상황을 보며 분노하고 정의를 외치는 것입니까? 물론 그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세상을 보시며 안타까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 정의를 외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없이 정의를 외칠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분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미가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외쳤습니다. 우리도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야만 합니다. 무엇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품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며 하늘의 소망과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기 원합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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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덤으로 주어진 15년 동안 벌어진 일 (왕하 20장 1~2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3 (8/17/16) kpccoh 2016.08.18 5044
62 최악의 위기에 주어진 기적의 승리 (왕하 19장 1~37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2 (8/10/16) kpccoh 2016.08.10 3846
61 히스기야의 영적 개혁 (대하 29장 1~36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1 (8/03/16) kpccoh 2016.08.03 2859
60 마침내 임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왕하 17장 1~4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40 (7/27/16) kpccoh 2016.07.28 4740
59 멸망 직전 북이스라엘의 대혼란 (왕하 15장 8~31절)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9 (7/20/16) kpccoh 2016.07.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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