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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3 수요예배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8

처음부터 끝까지 악만 행한 아하스

(역대하 28 1~27)

1.   아하스의 악행과 하나님의 징계

 

1)  철저히 악을 행한 아하스

 

유다의 12 아하스(BC 736-720) 그의 손자 므낫세와 함께 유다의 최악의 왕으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유다의 이전 왕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와중에 선행도 가끔 행하곤 했는데, 아하스는 통치하던 16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악만 행한 왕입니다(1). 그는 20세의 나이에 왕이 되었는데, 4년은 아버지 요담과 공동통치를 합니다.

 

지난번에 살펴보지 않고 넘어갔지만, 27장을 보면 그의 아버지 요담은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걸으며 나라를 강하게 만든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성전 문도 건축하고 국방도 강하게 함으로 나라를 다스린 요담에게서 아하스 같은 아주 악한 왕이 나왔다는 사실은 기이하고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아하스의 많은 악한 일들 중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2)

 

여기에 보면, 아하스의 우상 숭배가 얼마나 심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그를 이스라엘 왕들과 동급으로 놓았습니다. 우상은 금과 은이나 보석을 집어넣어 만들기 때문에, 많은 돈과 수고가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미 있던 우상도 모자라서 새로운 우상까지 국고를 털어 만들었으니, 아하스가 얼마나 극렬한 우상 숭배자였는지를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방 종교 제사의 장소였던 힌놈의 골짜기에서 자기 자식을 불에 태워 몰렉에게 희생 제사를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3)

 

암몬 사람들이 숭배하던 몰렉은 밀곰이라고도 하는데, , 번개, 전쟁, 역병을 가져오는 파괴의 신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파괴의 고통에서 보호를 받기 위해 자신의 자녀들을 바치는 끔찍한 인신 제사를 행했습니다.

 

저번에 열왕기하 3장에서 북이스라엘의 여호람이 유다의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을 공격한 것을 다루었습니다. 그때 모압 왕이 자신의 맏아들을 위에서 번제로 바쳤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왕하 3:27). 그런데 끔찍한 몰렉 숭배를 이스라엘과 유다의 패역한 몇몇 왕들이 그대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특히 유다의 아하스와 므낫세 시대에는 몰렉 제사를 위해 거대한 화장용 제단인 도벳이 힌놈의 골짜기에 세워져서 나라가 인정한 공식 인신 제사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닙니다.

 

산당과 작은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4)

 

아하스는 “푸른 나무 아래”, 울창한 나무숲에서도 우상에게 제사를 행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수백 이상 나무에는 신비한 정령이 있다고 해서 앞에 물을 놓고 소원을 비는 미신이 많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도 오래 나무에는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은 가나안 정복 이전에 지역 사람들이 가졌던 미신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대로 본받은 것입니다.

 

 

2)  주변의 대적들을 통한 징계

 

이처럼 아하스의 우상숭배는 종류가 다양했으며 정도도 아주 극심했습니다. 아하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전쟁으로 나타났습니다. 열왕기서나 역대기서에서 나타나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리더십에 대한 상은 평화이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리더십에 대한 징계는 계속되는 전쟁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거역하여 악만 행하던 아하스는 죽을 때까지 무서운 대적들의 침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륙하였으니” (5)

 

오늘 본문을 보면 아람과 북이스라엘이 각각 따로 유다를 침략한 같지만, 열왕기하 16장과 비교해서 보면 앗수르 동맹을 맺은 나라가 유다를 동시에 공격한 것으로 보입니다. 항상 이스라엘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던 아람(시리아) 이번에는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고 유다를 공격하여 수많은 포로들을 수도 다메섹으로 끌어갑니다.

 

그와 동시에 베가 왕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도 유다의 대군과 전면전을 벌여 하루에 12 명을 죽이는 놀라운 전과를 올립니다(6). 전사자들 중에 누가 포함되어 있는지 보십시오.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7)

 

이것을 보면 유다의 왕자와 궁내대신과 총리대신을 포함한 최고 관료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 총리대신은 조선시대의 영의정과 동급이며, 궁내대신은 왕궁의 모든 일을 맡아 관리하는 수석관리였습니다. 이런 최고위급 인사들이 왕자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은 당시 유다가 얼마나 위기에 몰렸는가를 말해줍니다. 게다가 이스라엘 군대는 엄청난 노략물과 함께 20만이 넘는 유다의 포로들을 자신들의 수도 사마리아로 잡아갑니다(8).

 

 

2.   오뎃을 통한 하나님의 책망

 

이렇게 산더미 같은 전리품과 함께 포로들을 끌고 당당히 개선하는 이스라엘 군대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 오뎃입니다. 비록 북이스라엘이 영적으로 타락해 있었지만, 그래도 엘리야나 엘리사를 비롯해서 간간히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있었는데, 오뎃도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오뎃은 기세등등하여 돌아오는 이스라엘군에게 벼락 같은 소리로 외칩니다.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육하고, 이제 너희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그런즉 너희는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9-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유다를 이기게 해주신 것은 결코 이스라엘이 유다보다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패역한 아하스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의 도구로 이스라엘과 아람을 사용하신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노기가 충천하여” ‘살기가 등등하여’ 유다 백성들을 무참히 살육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20만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유다 사람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포로로 끌고 오기까지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뎃을 통해 이스라엘의 교만한 횡포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뎃이 포로로 잡혀 유다 백성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보십시오. “너희의 형제들”(11)이라고 부릅니다. 이미 8절에서도 역대하 기자는 “그들의 형제 중에서”라고 유다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들을 노예로 삼기 위해 사로잡은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심각한 죄이기에, 무서운 심판을 받게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너희 곁에 사는 동족 가운데서, 누군가가 가난하게 되어서 너희에게 종으로 팔려 왔어도, 너희는 그를 부리듯 해서는 된다. 너희는 그를, 품꾼이나 임시 거주자처럼, 너희의 곁에서 살도록 하여야 한다. 너희는 희년이 때까지만 그에게 일을 시키다가, 희년이 되면, 그가 자식들과 함께 너희를 떠나, 자기 가족이 있는 조상에게서 받은 유산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하여야 한다. 그들은 내가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나의 품꾼이므로, 너희가 그들을 종으로 없다. 너희는 그를 고되게 부려서도 된다. 모름지기 너희는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아야 한다.” ( 25:39-43, )

 

같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유다와 이스라엘은 정치적인 이유로 나라가 갈라지기는 했어도, 항상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형제였습니다. 그래서 아람은 유다의 포로들을 잡아갈 있었어도 이스라엘은 그러면 되는 거였습니다.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자신들도 유다보다 나을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10).

 

오뎃은 같은 죄인인 그들이 현재 군사력에서 우세하다고 해서 함부로 형제를 노예로 삼겠다는 생각 자체가 무서운 죄라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임박했음을 경고합니다(11). 실제로 외세와 연합하여 형제인 유다를 살육한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유다보다 136년이나 먼저 멸망하게 됩니다.

 

이때 오뎃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호된 꾸지람을 듣고, 개선해서 돌아온 원정군이나 이들을 맞이하러 나온 사마리아 환영 인파 모두 얼마나 분위기가 얼어붙었겠습니까? 그때 이스라엘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에브라임의 지도자 사람이 일어나 말합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13)

 

그들은 끌려오는 포로들을 사마리아 안으로 들이지 못하게 합니다. 오뎃의 말대로 동족을 노예로 삼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즉시 그들은 포로들과 전리품의 처분을 전적으로 포기하게 됩니다(14). 포로로 잡혀온 유다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합니까?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15)

 

고대 전쟁에서는 포로들에게 최대한의 수치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발가벗기는 일이 있었는데, 여기서 이스라엘도 유다 포로들 상당수에게 그렇게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벗은 포로들에게 옷을 입히고, 신을 신겨주고, 먹고 마시게 하고, 기름을 발라 치료해주고, 여리고 성에서 어느 정도 쉬게 다음 전원 유다로 돌려보냅니다.

 

이것을 보면, 북이스라엘이 비록 영적으로 타락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을 존중하는 마음이 리더들 사이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아직도 살아 있었습니다. 남북으로 갈라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는 약간이라도 형제애가 남아 있었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부딪칠 서로 전쟁을 하며 싸우긴 했지만, 그래도 핏줄이라는 것을 부인할 없었던 것입니다.

 

유다가 아하스라는 악한 왕을 만나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래도 유다를 향한 자비를 베푸셔서 포로들을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셨습니다. 숫자가 적은 것도 아니고 무려 20 명이나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그들의 가족 친척들이 기뻐하며 감격해 했을지 짐작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활동하던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아람과 이스라엘의 동맹군이 쳐들어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이 65 안에 망할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7:8). 그리고 아하스에게 말하여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차갑게 말을 거절합니다. 내용이 바로 유명한 예언입니다.

 

너는 하나님 여호와께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7:11-14)

 

하나님은 악한 아하스에게도 돌이킬 기회를 주시며 보호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아하스는 전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3.   앗수르를 통한 심판

 

이스라엘에 잡혀갔던 포로들이 돌아온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이때 당한 패배는 앞으로 닥칠 재앙에 비하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이미 아람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국방력이 쇠하여진 차에, 에돔과 블레셋이 쳐들어온 것입니다(17-18).

 

오래 전부터 유다를 괴롭혀오던 나라는 사실 유다의 국력이 강했을 때는 유다의 속국이 되어 꼼짝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유다가 전쟁에서 패하여 국방력이 약해지니까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온 것입니다.

 

이처럼 리더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의 영광이 그곳에서 떠납니다. 그렇게 되면 전에는 상대도 되는 세력들로부터도 공격을 당하게 됩니다. 특히 이때 블레셋이 빼앗은 유다의 성읍들은(18) 모두 쉐펠라(Shephelah)라는 유다 평지에 있던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곡창지대를 모두 잃었으니 유다는 식량 공급에 치명타를 맞은 셈이 되었습니다.

 

정도로 괴로움을 당하게 되면 아무리 악한 아하스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올 만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오히려 다급한 마음에 앗수르의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도움을 청합니다(16). 그러나 이것은 마치 늑대를 몰아내려고 호랑이를 끌어들인 것과 같습니다.

 

어려움이 계속될 경우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필요합니다. 이렇게 계속적인 고통이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 전심으로 나아가는 기회가 됩니다. 그런데 그럴 오히려 반대로 나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혀 기도하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방법을 찾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줄 사람에게 가서 부탁을 하든지 나름대로 똑똑한 방법을 써보는데, 사실은 그것이 결정적인 패착이 되어 이제는 아예 회복 불능의 상태로 가기도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앞으로도 자주 나오는 디글랏빌레셀 3세는, 바벨론의 왕권을 차지한 다음, 유프라테스 너머의 여러 나라들로 영토 확장을 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야심 많은 정복자였습니다. 그런데 마침 아하스가 어리석게도 도와달라고 요청을 하니까, 기회는 이때다 하고 기뻐하며 유다로 내려옵니다. 그렇잖아도 남쪽의 비옥한 팔레스타인 지역을 눈독 들이고 있었지만 그리로 진출할 명분이 없었는데, 아하스가 도와달라고 하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즉시 앗수르의 대군을 진군시키는데, 단순히 지원군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동원됩니다. 앗수르의 목적은 다른 있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0)

 

질풍같이 달려온 앗수르 군대는 유다를 돕기는커녕 오히려 포위하고 압박하며 들어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아하스는 돈으로 앗수르 왕의 마음을 누그러뜨리려 시도합니다.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21)

 

수차례에 걸친 전쟁과 패배로 당시 유다의 재정은 바닥이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없는 돈이라도 만들어 급한 불을 꺼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에 있는 재물들을 모으고, 심지어 신하들의 재산까지 몰수하여 앗수르 왕에 뇌물로 바쳤습니다.

 

그런데 사실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 바친 재물들은 하나님께 바쳐진 성전의 헌물과 백성들이 세금입니다. 그러니까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아하스는 하나님을 따르기는커녕, 도리어 하나님의 것을 인간에게 바쳐가면서까지 그저 살아남으려고 하는 비굴한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아무리 그렇게 많은 뇌물을 앗수르 왕에게 바쳤지만 결과는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21)입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실제로 앗수르가 뇌물만 받고 아무것도 것은 아닙니다. 앗수르 왕은 아하스의 뇌물을 받고 아람을 공격하여 르신 왕을 죽이고, 아람을 멸망시킨 다음에는 수도 다메섹을 앗수르의 도시로 편입시킵니다(왕하 16:9).

 

그러나 앗수르가 아람을 공격하여 이긴 것은 유다를 정말로 도와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나라의 영토 확장을 위해서였습니다. 과정에서 아하스는 바보처럼 앗수르에게 팔레스타인 지역을 침공할 있는 구실만 제공해준 꼴이 되었습니다. 중간에서 완충 역할을 해주는 아람이 없어지면서, 아람보다 강력하고 무서운 앗수르의 본격적인 유다 압박이 가속화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을 의지하며 술수를 쓰면, 아무리 그것이 자기 생각에 똑똑한 같아도 이렇게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모든 상황에 대한 주된 책임은 아하스에게 있습니다. 사방의 대적들이 이처럼 유다를 때린 것은 결코 그들이 유다보다 강해서도 아니고 유다가 그들보다 못해서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이는 이스라엘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19)

 

하나님께 크게 범죄한 것은 우상숭배를 말합니다. 얼마나 우상숭배가 심했던지, 성경은 유다 왕인 아하스를 유다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이라고까지 칭합니다(19). 우상숭배로 잘못된 통치의 기초를 놓았던 여로보암과 후대 이스라엘 왕들과 아하스의 죄가 비슷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윗의 자손인 유다 왕이라기보다는, 우상숭배를 가득 이스라엘 왕들과 비슷했다는 지적입니다. 얼마나 수치스럽고 비참한 평가입니까? 그런데 더욱 놀랄 만한 일은, 상황이 힘들어질수록 아하스의 우상숭배가 심해졌다는 것입니다.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2)

 

사람이 힘들면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붙잡는 보통인데, 아하스는 힘들수록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으니, 정말 구제 불능입니다. 가장 기막힌 일은 아하스가 자신을 다메섹의 신들에게도 제사를 드렸다는 사실입니다.

 

자기를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신이 아하스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23)

 

열왕기하의 기록을 보면, 아하스는 당시 아람을 멸망시키고 아람의 수도 다메섹에 주둔하던 앗수르 왕을 보러 갔습니다. 거기서 그는 앗수르 왕이 숭배하던 우상의 제단을 보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즉시 제단과 동일한 형태의 제단을 만들어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것은 당연히 정복자의 환심을 사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성전 기구들은 곳에 모아 방치해 두고, 아예 성전 본관의 문들을 닫아 버림으로써 사람들이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여호와의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유다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24-25)

 

이렇게 함으로 성전과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중단되어 버렸으니, 얼마나 무서운 죄악입니까?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아하스의 배교 행위를 막아야 제사장 우리야가 오히려 앞장서서 왕의 죄를 도왔다는 사실입니다.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디글랏 빌레셀을 만나러 다메섹에 갔다가 거기 있는 제단을 보고 아하스 왕이 제단의 모든 구조와 제도의 양식을 그려 제사장 우리야에게 보냈더니,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돌아오기 전에 제사장 우리야가 아하스 왕이 다메섹에서 보낸 대로 모두 행하여 제사장 우리야가 제단을 만든지라” (왕하 16:10-11)

 

아하스 왕의 지시대로 제사장 우리야는 다메섹 우상 제단과 똑같은 제단을 왕이 돌아오기 전에 부랴부랴 만들었습니다. 신속한 처리로 왕에게 아부하려는 의도가 다분했습니다. 그래도 이전에 아하스의 할아버지인 웃시야 제사장 아사랴는 교만해진 웃시야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고 , 그것은 제사장이 일이라고 하며 목숨을 걸고 왕의 앞을 막아 섰습니다. 아무리 절대 권력자라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넘어서는 선을 넘을 때는 목숨을 걸고라도 막아서는 영적 리더로서의 용기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야는 타락한 왕을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앞장서서 그의 잘못된 행동에 동참을 했습니다. 이사야 8:2 보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증인”이라고 칭찬받기도 했던 우리야가 어떻게 이렇게 변질되었는지 수는 없습니다. 다만, 권력의 단맛에 도취되어 서서히 타락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세상의 왕은 타락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인 제사장이 제대로 영적인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여 잘못 가고 있는 왕에게 영적 조언을 하지 못한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망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세상의 왕이 심판받게 반드시 곁에 있던 하나님의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아,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때에, 네가 악인을 깨우쳐 주지 않거나, 악인에게 말로 타일러서 그가 악한 길을 버리고 떠나 생명이 구원 받도록 경고해 주지 않으면, 악인은 자신의 악한 행실 때문에 죽을 것이지만 사람이 죽은 책임은 내가 너에게 묻겠다. 그러나 네가 악인을 깨우쳐 주었는데도, 악인이 그의 악한 행실과 그릇된 길을 버리고 돌아서지 않았다면, 그는 자신의 악행 때문에 죽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 18:17-19, )

 

이것은 단지 옛날 제사장들이나 에스겔 같은 예언자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닙니다.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우리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기 때문입니다. ‘악인’이 누구를 말합니까? 실제 악을 행하는 사람뿐 아니라, 하나님을 거부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을 성경은 악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우리는 ‘의인’인데, 의인으로서 악인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주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바로 그것이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황이 쉽든 어렵든, 끊임없이 이것을 위해 애쓰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여 주님 앞에 서는 잘했다 칭찬 받는 주님의 신실한 종들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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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엘리사의 마지막 예언 사역 (왕하13:1-2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4 (6/01/16) kpccoh 2016.06.02 2658
51 극적으로 등장했지만 안타깝게 끝난 요아스 (대하22:10-24: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3 (5/25/16) kpccoh 2016.05.25 2051
50 예후를 통해 이루어진 아합 가문에 대한 심판 (왕하 9장-10장)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2 (5/18/16) kpccoh 2016.05.18 3668
49 하나님의 절묘한 타이밍 (왕하 8:1-1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1 (5/11/16) kpccoh 2016.05.11 4801
48 불가능한 상황을 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왕하 6:24-7: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30 (5/04/16) kpccoh 2016.05.05 2824
47 하나님의 사람, 능력의 사람 (왕하 6:1-23)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9 (4/27/16) kpccoh 2016.04.27 4446
46 나아만의 치유 (왕하 5:1-19)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4/20/16) kpccoh 2016.04.20 5096
45 모압과의 전쟁에서 거둔 절반의 승리 (왕하 3:1-2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7 (4/13/16) kpccoh 2016.04.13 5372
44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마 6장 9-13절) - 이기환 장로 kpccoh 2016.04.06 665
43 엘리야와 엘리사가 보여준 리더십 승계의 모범 (왕하 2:1-25)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6 (3/30/16) kpccoh 2016.03.31 4616
42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주는 의미 (요 12:20-33) - 성금요예배 (3/25/16) 이준원 2016.03.26 2605
41 불신앙과 불순종의 비참한 결말 (왕하 1:1-18)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5 (3/16/16) kpccoh 2016.03.16 3841
40 의로운 왕에게서 나온 악한 아들의 실패 (대하 21:1-20)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4 (3/09/16) kpccoh 2016.03.10 2002
39 찬양으로 거둔 승리 (대하 20:1-37)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3 (3/02/16) kpccoh 2016.03.03 3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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