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HOME > 설교와칼럼 > 수요예배/특별예배
설교 동영상: https://youtu.be/5FMWU3KMfQY?t=2084
2022년 9월 28일 수요예배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17 ✦
“영생 상속자의 삶”
(디도서 2장 14절~3장 8절)
1. 디도서의 중심 주제: ‘선한 일’
디도서는 바울이 그레데 섬의 목회자인 디도에게 보낸 편지로서, 전체가 세 장인 짧은 서신서입니다. 디도서의 중심 주제는 ‘선한 일’입니다. 이 짧은 편지에는 초기 교회가 전한 복음의 핵심이 요약의 형태로 두 번씩이나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2:14)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3:8)
복음의 본질을 압축해 놓은 이 두 구절에는 ‘선한 일’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중요한 것은 두 문장에서 그 ‘선한 일’은 모두 구원의 목적을 설명하는 맥락 안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이 구절들을 근거로 한다면, 앞서 바울이 전했고 디도도 이제 그레데에서 선포해야 하는 복음의 목적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성령으로 새롭게 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도록 하신 것이다.’ 디도서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주신 목적은 구원받은 이들이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일’에 대한 디도서의 강조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도에게 교회를 섬길 사람을 세우거나 성도를 권면할 때 무엇을 바탕으로 해야 할지에 관한 권면을 주는데, 여기에도 ‘선한 일’이 등장합니다.
"7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8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 (1:7-8)
이 말씀을 보면, 감독(교회 지도자)이 되기 위해서는 "선행을 좋아"해야 합니다.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2:3)
교회 내에서 나이가 많은 여성들은 "선한 것을 가르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또한 디도 역시 젊은 남자들을 가르칠 때 자신이 먼저 ‘선한 일’의 본을 보여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6 너는 이와 같이 젊은 남자들을 신중하도록 권면하되 7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8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 (2:6-8)
이 말은 젊은 남자 성도들이 디도의 선한 일을 보고 그들도 그렇게 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은 교회 지도자로 선출될 수 있는 자격 조건임과 동시에 존경과 영향력을 가진 성도의 삶의 모습이어야 하며, 디도 자신의 목회 철학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선한 일’의 중요성은 교회 내부적인 일에만 머무르지 않고 거기서 더 나아갑니다.
"너는 그들로 하여금 통치자들과 권세 잡은 자들에게 복종하며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 행하기를 준비하게 하며" (3:1)
바울은 성도들이 세상 통치자들에게 복종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목회자의 일이라고 말한 후, 이와 더불어 성도들이 ‘선한 일’을 행할 수 있게 늘 준비시키라고 디도에게 권면합니다. 통치자들에 대해 복종하라는 맥락에서 선한 일을 하라는 가르침을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선한 일이 통치자들의 권세가 미치는 일반 사회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주는 것입니다.
일반 사회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사탄)의 지배와 영향을 받아 악한 통치자들도 있지만,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건전하고 공의롭게 잘 다스리는 통치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수동적으로, 억지로 복종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능동적으로 선한 일을 찾아서 행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교회의 이런 태도는 디도가 사역했던 그레데 사회의 모습과 뚜렷한 대조를 이룹니다.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1:13)
또 바울은 그레데에 들어와 허탄한 이야기나 잘못된 인간적 교훈을 진리라고 잘못 가르치는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1:16)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그들과 달리 통치자에게 순종하고 선한 일을 행하기에 늘 준비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로 보아 디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선한 일’은 당시 그레데의 일반 문화나 유대적 가르침으로부터 디도가 전해야 했던 ‘영생’의 말씀(1:2; 3:7)을 차별화하는 기준이었습니다.
그레데 섬에서 사역하고 있는 디도를 향한 바울의 권면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함이므로, 교회 지도자는 그 일에 본을 보여야 하고, 연장자인 성도가 교회에서 가르칠 때도 이를 따라야 하며, 무엇보다 디도 자신이 먼저 본을 보여 젊은이들이 따라오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복음이 당시 그곳의 문화나 유대인의 가르침과는 달리 ‘아름답고 사람들에게 유익’(3:8)하다는 것을 그레데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이토록 ‘선한 일’을 강조합니까? 기독교는 당시 문화나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는 달리 윤리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점을 말하려고 하는 겁니까? 디도의 목회 대상이었던 그레데 사람들의 비도덕적인 모습(1:12-13)을 고려하면 그런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바울의 관심은 교회를 윤리적인 곳이나 ‘복지센터’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의 진정한 관심사가 무엇이었는지를 알려면 디도서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큰 그림을 봐야 합니다. ‘선한 일’이 사용된 맥락을 살펴봄으로써 이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습니다.
2. ‘선한 일’이란 어떤 것인가
먼저 3장 4~8절을 다시 보십시오.
"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6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8 이 말이 미쁘도다 원하건대 너는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3:4-8)
이 단락은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하심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선한 일’(8)로 끝납니다. 더 자세히 보면 4~7절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알려주고, 8절은 사람의 반응을 말합니다. 4~7절은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이 우리가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는 것이고(미래의 소망), 8절은 그 결과로 시작된 신자의 삶의 목적이 "선한 일을 힘쓰"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현재 삶의 방식). 그러니까 이 단락에서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목적과 구원받은 교회의 목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사람들을 영생의 상속자로 삼으심으로써 이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처럼 ‘선한 일’은 미래의 영생을 약속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이곳에서 살아내야 하는 삶이라는 말씀입니다. 영생은 미래의 약속이고, 선한 삶은 현재의 책임입니다.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영생의 상속자가 된 사람은 분명히 영생을 상속받을 것인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하고 그런 사람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영생과 선한 삶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 디도서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사실 영생은 ‘선한 삶’과 마찬가지로 디도서의 서론(1:2-3)과 결론(3:8)에 각각 나타나 편지 전체를 붙드는 받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디도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 열쇠입니다.
<서론>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1:1-3)
<결론>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3:7)
영생을 키워드로 삼아 본다면, 디도서 전체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하나님은 창조 전부터 인간에게 영생을 주려는 뜻을 갖고 계셨고, 이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드디어 당신의 때에 우리를 구원하셔서 영생의 상속자로 삼으셨다. 바울과 디도와 신자들은 이 하나님의 약속을 전하도록 부름을 입었다.’
그렇다면 구원받아 이미 영생의 상속자가 된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행해야 할 선한 일(3:8)은 영생의 삶과 무관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현재 행하는 선한 삶이야말로 미래의 영생을 맛보고 그 맛을 보여주는 일이 됩니다. 물론 영생을 상속받는 일은 예수님의 재림 때(2:13) 완성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는 이미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초림)이 가져온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미 영생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은 의심할 수 없는 구원의 현실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성화’ 또는 ‘받는 구원’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의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11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12 그 은혜는 우리를 교육하여,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게 합니다." (2:11-12, 새번역)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건져내시고, 깨끗하게 하셔서,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것입니다." (2장 14절, 새번역)
무슨 말씀입니까? 현재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경건함과 선한 삶은 미래에 상속받을 영생을 미리 표현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 영생의 상속자는 그 삶에서 선한 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3. 사람에게 유익한 ‘선한 일’
그렇다면 바울은 ‘선한 일’을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생각했겠습니까? 그는 3장 8절 앞부분에서 믿는 자들이 해야 하는 일이 선한 일이라고 말한 후, 뒷부분에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를 덧붙여 설명합니다.
"a 이 말은 참됩니다. 나는 그대가, 이러한 것을 힘있게 주장해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한 일에 전념하게 하기 바랍니다. b 선한 일은 아름다우며, 사람에게 유익합니다." (3:8, 새번역)
이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이 하는 선한 일은 사람들에게 ‘아름답고’ 또 ‘유익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는 선한 일의 의미에 단순히 도덕적 차원만 포함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3:4)
여기서 “나타날 때”는 미래에 나타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이미 ‘나타나셨던 때’를 말합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을 사랑하심’의 절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시는 분으로서, 그 사랑하심의 절정은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 가운데 나타나신 것을 통해 드러났습니다. 따라서 사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신자의 삶 역시 이와 다를 바 없습니다. 아버지로부터 영생의 약속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행함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과 선함을 드러내도록 부름을 받은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교회의 소명은 도덕적 선행의 실천 그 이상입니다.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맛보여줄 책임이 있습니다. 교회 밖의 사람들은 지금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세상(영생)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언제 알 수 있겠습니까? 바로 믿는 사람들 즉 교회가 선한 일 곧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하심을 실천할 때입니다. 교회가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고 즐거워하고 잔치를 벌이는 것을 넘어,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디도서에 제시된 장로와 감독 선출 기준 및 교회의 여러 구성원(늙은 남자, 늙은 여자, 젊은 남자, 종)에게 주는 구체적인 권면도 선한 삶과 영생의 상속이라는 주제 아래서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장로와 감독과 성도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삶의 지침을 가지고 있어야 했습니다.
* 주위 사람들에게 원성을 듣지 않도록 일을 공정하게 할 것 (1:6a)
* 아내에게는 끝까지 신실할 것 (1:6b)
* 자녀들에게는 그들이 방탕과 불순종의 길을 걷지 않도록 삶의 본이 될 것 (1:6c)
* 자기주장(고집)을 꺾을 줄 알 것 (1:7a)
* 분을 급하게 내지 않을 것 (1:7b)
* 술을 절제할 것 (1:7c; 2:3)
* 신체 및 언어적 폭력을 행하지 않을 것 (1:7d)
* 행한 것 이상의 칭찬과 소득은 멀리할 것 (1:7c)
* 낯선 사람을 잘 대접할 것 (1:8a)
* 일을 신중히 할 것 (1:8b; 2:2, 5, 6, 12)
* 행동을 올곧게 할 것 (1:8c)
* 몸의 욕구를 통제하는 생활 태도를 유지할 것 (1:8d)
* 믿고 사랑하고 인내하는 것을 삶의 기본 태도로 삼을 것 (2:2)
* 곁에 있는 남편과 자녀를 사랑으로 대할 것 (2:4)
* 해도 잘 보이지 않는 집안일에도 한결같이 성실로 임할 것 (2:5a)
* 배우자에게 복종할 것 (2:5b)
* 누구에게서라도 비난받을 것이 없는 건전한 말을 할 것 (2:8)
* 윗사람을 공손히 받들어 섬길 것 (2:9)
*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는 손대지 말 것 (2:10)
성도들, 특히 교회에서 섬기는 사역자들이 이런 선한 삶을 살 때 무엇이 드러나게 됩니까? 바로 영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생을 상속받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목록은 교회의 선한 일이라는 것이 특별한 일이나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경우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오히려 반복되는 일상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 그들에게 사용하는 우리의 언어, 매 순간 내리는 나의 결정과 반응, 자기 욕망에 대한 절제, 가까이 있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 등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삶의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생을 맛보고 맛보여주는 통로가 바로 소소한 일상생활임을 가르쳐줍니다. 영생을 맛보는 일이 지극히 일상적 삶과 연결된 것은 교회의 소명 때문입니다. 교회는 천지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당신이 지으신 세상과 사람이 그릇된 길을 갈 때 그것을 버리기보다 새롭게 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내 보여야 하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나가는 말]
바울은 디도를 그레데 섬에 남겨두고 지금까지 자기가 해왔던 것처럼 디도 역시 세상 한복판에서 교회를 세워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위해 디도에게 몇 가지를 권면해줍니다.
첫째, 디도는 바울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전도’를 통해 다가오는 세상을 위한 생명(영생)의 상속자를 세워야 합니다. 우리도 주님을 모르는 VIP 분들을 계속해서 찾고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둘째, 목회자 디도는 전도로 교회를 세워 영생의 상속자가 된 이들이 더불어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교회의 장로와 감독을 세우고 성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도 믿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믿은 후에 계속 제자로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에 있어 예배, 목장 생활의 섬김과 사랑 나눔, 그리고 삶 공부가 필수입니다.
셋째, 디도의 목회는 특히 ‘선한 일’을 행하는 데 집중되었습니다. 그가 목회했던 그레데 섬의 사회적 분위기는 매우 험악했고, 심지어 복음에 적대적인 ‘허탄한 이야기’와 ‘사람들의 명령’을 진리로 여기는 유대인들의 가르침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디도는 교회의 미래적 소망 곧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영생을 상속받을 것이라는 사실만 가르칠 수가 없었고, 그것과 함께 지금 이곳에서 영생을 맛보는 것을 보여주고 그것을 세상 사람들이 맛볼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디도에게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유입니다.
우리도 세상에 복음을 전하려면 선한 일을 행해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지탄을 받으면서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모범이 되는 삶을 살 때 그들의 마음이 열리게 됩니다.
넷째, 영생의 삶이자 선한 삶은 일상적이고 소소하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주변의 안 믿는 사람들을 보면 먼저 사랑으로 친절을 베푸는 것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가식적으로 하거나 오직 전도의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상대방에게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사회적 책임이 있고, 그것을 감당해야 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사회적 책임은 사회가 현재 그대로 별 탈 없이 잘 유지되도록 돕는 역할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통해 드러내야 하는 것은 천지의 주재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당신이 지으신 세상이 부패했다고 그것을 버리시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새롭게 하시는 분이며, 창세 전에 가지셨던 뜻인 영생을 사람들에게 주시려는 뜻을 결국 이루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 속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며 살 때, 주님의 사랑이 전달되어 사람들의 마음이 열리고 마침내 그들이 주님 앞에 나아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며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자라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사람으로 이웃에게 아름답고 유익한 일을 행하는 삶을 매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