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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30일 수요예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24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

(요한이서 11~13)

 

요한이서는 "어떤 장로가 어떤 선택받은 여주인과 그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로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이 없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을 진리와 사랑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요한이서의 첫 부분을 읽으면 여러 질문이 나오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발신인과 수신인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에서 호기심을 느끼게 됩니다.

 

"장로인 나는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 편지하노니" (1a)

 

상당히 권위 있는 어르신으로 추정되는 장로’(프레스뷔테로스)가 편지를 보내면서 수신인을 가리켜 부녀(여주인, 퀴리아)와 그의 자녀들이라고 깍듯이 예우하는 것을 보면 이들이 누구이며 어떤 관계인지 궁금해집니다. 게다가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를 언급하면서 그 진리 때문에 사랑하게 된다는데, 과연 그런 진리와 사랑이 무엇이며 그 둘은 어떤 관계인지를 알고 싶어집니다.

 

먼저 편지를 보낸 장로에 대해 생각해보면, 장로를 일컫는 그리스어 프레스뷔테로스는 나이가 많은 연장자라는 뜻일 수도 있고 교회 직분을 가리키는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직분을 가리키는 말이더라도 나이가 적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편지를 보면 장로는 부녀와 자녀들에게 교훈을 일깨워주고 권면하는 지도자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장로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거나 자기가 누군지 장황하게 소개하지 않습니다. 아마도 여주인과 자녀들이 이미 잘 알고 따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굳이 자신을 소개할 필요가 없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 교회 전통은 그 장로가 바로 사도 요한이라고 합니다. 내용을 보면 요한일서와 얼마나 비슷합니까? 게다가 어조도 상당히 비슷합니다.

 

저자가 사도 요한이라면, 그는 당시 교회에서 최고로 존경과 신뢰를 받는 예수님의 증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다고 기록된 세 제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인데, 요한이서를 쓸 당시 야고보와 베드로는 이미 순교한 지 오래고 사도 요한만 생존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아그립바 1세 때 순교했고(12:2), 형의 순교 후에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다니며 동역했습니다(3:1-11; 4:13, 19; 8:14). 그런데 베드로마저 네로 황제 때 순교합니다. 바울도 비슷한 때인 주후 64~65년경에 순교합니다. 하지만 사도 요한은 제자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습니다.

 

형제가 나란히 예수님의 열두 제자에 포함된 경우는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신 세 제자에는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들어가고 안드레가 빠집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핵심 그룹에 포함된 유일한 형제였습니다. 이것만 보더라도 요한의 집안과 예수님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지어 주시면서 친근함을 드러내셨습니다(3:17).

 

이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베드로와 안드레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침묵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에 관해서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녀의 이름은 살로메인데, 예수님께 나아가 자신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여 달라"고 간청한 여인입니다(20:21).

 

또한 그녀는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 곁을 지키다가 십자가 처형장까지 동행했고, 안식 후 첫날에는 다른 두 여인과 함께 향품을 가지고 주님의 무덤에 갔다가 주님의 부활을 처음으로 목격하는 증인이 됩니다(27:56; 15:40-41, 16:1). 복음서 구절들을 자세히 비교해 보면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55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56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 (27:55-56)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15:40)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19:25)

 

이처럼 성경은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인 살로메를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여성 수제자인 막달라 마리아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나란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살로메가 예수님의 최측근 여제자 그룹에 속해 있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야고보와 요한의 아버지에 관해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지만 두 형제를 "세베대의 아들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고 그의 생업이 어부였음을 확인해줍니다.

 

사도 요한은 위대한 어머니와 형제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혹독한 박해를 이겨내고 살아남아 초대 교회 특히 소아시아 교회들을 정비하고 확장하며 성경을 기록하는 위대한 삶을 살았습니다. 요한은 당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주님의 가장 사랑받는 제자이자 요한복음과 서신들 및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사도로 널리 알려졌고, 그 결과 큰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권위 있는 사도 요한이 요한이서를 보낸 이 장로라면, 그런 분이 택하심을 받은 부녀선택받은 여주인님’(헬라어로 에클렉테 퀴리아’)이라고 깍듯이 부른 여성은 대체 누구일까요?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그 호칭이 편지를 쓸 때 예우를 갖추어 사용하는 경애하는 OOO 여사님과 같은 표현일 것이라는 해석이 있고, 또는 이 여성의 이름이 엘렉타내지 퀴리아였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택하심을 받은 부녀(여주인)’라는 뜻의 에클렉테 퀴리아라는 호칭이 일반 교회나 지역 교회에 대한 표현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여성이며 철자나 발음상으로도 에클렉테 퀴리아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여성형 형용사 에클렉테를 살펴보면, ‘에클렉테불러 구별한또는 선택한이라는 뜻이고, 그것의 남성형은 에클렉토스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뜻하는 에클레시아는 원래 부르심을 받은 여자라는 뜻으로, 세상에서 하나님이 불러 구별하신 성도들에 대한 총칭입니다. , 선택한이라는 뜻의 형용사 에클렉토스와 교회라는 뜻의 명사 에클레시아는 모두 부르다라는 뜻의 동사(칼레인)와 친척 관계에 있는 단어입니다.

 

더구나 에클렉토스자체는 매우 특별하고 고귀한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서 오신다는 메시아 그리스도, 하나님의 성도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 신자 개인을 뜻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이사야 말씀을 보십시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42:1)

 

내가 택한 사람이 헬라어로 에클렉토스입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라고 할 때 일반 교회 전체를 그렇게 부릅니다(8:33). 또한 바울은 교회 전체뿐 아니라 개인 성도 역시 에클렉토스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면, 동역자 루포를 "선택받은 에클렉토스 루포"라고 부릅니다.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16:13)

 

여기서 바울이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한 것은 요한이서에서 장로가 택하심을 받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에게문안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퀴리아에 대해 살펴보면, 여자 주인을 뜻하는 퀴리아는 남자 주인인 퀴리오스에 상응하는 높은 호칭입니다. 이런 특별한 뜻을 가진 단어 퀴리아는 신약성경에서 딱 두 번 나오는데, 특이하게도 둘 다 여기 요한이서에만 나옵니다. 반면 남성형인 퀴리오스는 신약성경에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신약성경에서 퀴리오스는 종종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종이며, 예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요한이서에 나오는 여주인 퀴리아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비견되는 높은 표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치 요한계시록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고귀하게 표현하듯이(19:7; 21:2, 9; 22:17), 요한이서는 우리 주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를 여주인 퀴리아라고 표현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요한이서에는 남자 주인을 뜻하는 퀴리오스는 나오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70인역도 퀴리아라는 호칭을 아무 데나 붙이지 않고 극히 엄선된 소수에게만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에서 여종 하갈에게 여주인 사라는 퀴리아입니다. 열왕기상에서는 사르밧의 집주인 과부를, 열왕기하에서는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아내에게 퀴리아라는 표현을 씁니다(왕상 17:10; 왕하 5:2). 이 둘은 각각 엘리야와 엘리사 전통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는 여성들입니다.

 

또한 잠언은 여종이 자기 여주인을 내치고 여주인의 자리를 차지하는 일을 가리켜 세상을 격동시켜 견딜 수 없게 만드는 몇 가지 일들 중 하나라고 지적함으로써, 여종과 여주인 사이의 현격한 신분 차이를 알려줍니다.

 

“21 세상을 뒤흔들 만한 일이 셋,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넷이 있으니, 22 곧 종이 임금이 되는 것과, 어리석은 자가 배불리 먹는 것과, 23 꺼림을 받는 여자가 시집을 가는 것과, 여종이 그 안주인의 자리를 이어받는 것이다.” (30:21-23, 새번역)

 

이처럼 퀴리아에클렉테는 모두 고귀한 표현으로서, 또 다른 고결한 표현인 부르심을 받은 교회 에클레시아와 비교했을 때 철자와 발음 및 그 의미가 비슷하다는 점에 있어 서로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만약에 에클렉테 퀴리아가 개인이 아닌 교회를 뜻한다면 이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지구상의 모든 교회를 가리키는 일반 교회입니까, 아니면 특정 지역 교회를 의미합니까?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것은 특정 지역 교회를 뜻할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한이서 마지막 절에 나오는 말 때문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네 자매의 자녀들이 네게 문안하느니라” (13)

 

이 말씀은 1절의 택하심을 받은 부녀(여주인)’에게 자매가 있다는 뜻이고, 그 자매 역시 부녀처럼 선택받았으며, 그 부녀에게 자녀들이 있듯이 그녀의 자매에게도 자녀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13절의 네 자매의 자녀들은 요한이서를 보낸 장로가 있는 특정 지역의 교회와 성도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특정 지역 교회 성도들이 여주인과 그 자녀들이라고 표현된 특정 지역 교회 성도님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것 같습니다.

 

편지의 내용을 살펴보면, 장로는 먼저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인지를 밝히고, 이 편지를 받는 부녀(여주인)와 그 자녀들이 절대 혼자가 아님을 강조합니다. 장로 자신과 진리를 아는 모든 이들이 그 여주인과 자녀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로 말미암음이로다” (1-2)

 

그러니까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진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3)

 

그런데 이 진리와 사랑은 인간이 하나님께 닿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리 안에서 사랑을 실천할 때 비로소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은혜와 자비와 평화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의 자녀들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4)

 

현재 부녀와 그 자녀들은 은혜와 자비와 평화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를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습을 발견한 요한 장로는 기뻐합니다.

 

이어서 장로는 여주인과 자녀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을 상기시킵니다. 이 계명은 새로 개정된 최신 계명이 아니라 창세 전 태초부터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영원한 진리로서, 그 계명을 몸소 행하는 것이야말로 사랑입니다.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따라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5-6)

 

이것도 요한일서와 얼마나 비슷합니까.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 계명을 가리켜 새 계명이라고 하시는데(13:34), 왜 요한이서는 새 계명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는 계명이라고 합니까? 사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계명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로 알려주신 새 계명이 맞지만, 새로 변경된 계명이 아니라 창세 전 태초부터 진리인 계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 우리가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받으라” (8)

 

여기서 장로는 자신을 포함해서 여주인과 그 자녀들을 우리라고 표현하면서 권면합니다. 장로는 여주인과 그 자녀들을 지도하는 사람이자 함께 일하는 동역자로서 그들이 일한 것에 대해 온전히 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지나쳐 그리스도의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는 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그 사람은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9)

 

이 상이 물질적 대가인지 영적 대가인지, 아니면 두 가지를 모두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는일을 포함하는 것이 분명합니다(9). 그보다 더 큰 상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창조하신 영원한 주인 퀴리오스이신데, 이분들을 모시게 된다는 것은 세상 모두를 가지는 일 이상이 됩니다. 그런데 그처럼 엄청난 상을 소홀히 여기고 부녀의 교회를 혼란스럽게 한 자들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7)

 

이것도 요한일서와 비슷한데, 그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시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들과 달리 신자들은 요한복음의 증언처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며(1:14), 그분이 재림 때도 육체로 오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미혹하는 자 적그리스도그리스도의 교훈을 변질시키는 엄청난 죄를 저질렀습니다(9-10). 그리스도의 교훈이 왜 중요하냐면, 그것은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신 유일한 영생의 방법이며, 이것 때문에 예수님이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 (10-11)

 

조금 지나친 말 같지만 1세기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주님의 교훈을 변질시킴으로써 스스로 망가졌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그것을 들고 다른 이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기 위해 부녀의 교회에 나와 사람들을 현혹했습니다(10).

 

당시 초대 교회는 예수님의 살아 있는 교훈과 전통을 후세에 고스란히 전해야 할 중요한 사명을 갖고 있었으며, 변질된 교훈을 접하는 성도 개인과 교회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영생에서 끊어질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장로는 신자들에게 적그리스도와 인사조차 하지 말라고 단단히 경고한 것입니다(10-11).

 

이런 자들은 요한일서에도 적그리스도’'이자 거짓말쟁이로 등장합니다. 이들은 종말에 나타날 것으로 예고되었다가 마침내 나타난 자들로서, 그 수가 상당히 많았었던 것 같습니다(요일 2:18, 22; 4:3). 하지만 이들은 요한일서가 기록될 당시에 교회를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요일 2:19).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대면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장로는 여주인과 그 자녀들을 매우 사랑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을 직접 방문하겠다고 말하면서 이 편지가 왜 이렇게 짧은지도 설명합니다. 그는 나눌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종이나 먹으로쓰기보다 직접 찾아가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고 싶다고 합니다. 장로는 그런 만남과 나눔을 통해 서로에게 기쁨이 가득하기를 기대합니다(12).

 

또한 앞서 본 바와 같이, 장로는 편지 끝부분에 부녀 교회의 자매 교회에 문안을 전함으로써 교회가 연합하여 그리스도의 일을 성취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13). 장로가 부녀와 자녀들로 인해 기뻐한 것처럼(4), 이제 곧 그들도 장로를 만나 이야기 나누며 기뻐할 것입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에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일도 큰 정성인데, 편지만 써서 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방문하려는 것은 엄청난 섬김이자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엄청난 정성이고 헌신이며 희생입니다.

 

우리도 정성과 섬김과 희생이 있는 진정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함께 사랑을 나누며 섬기는 아름다운 공동체로서 더욱 힘차게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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