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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317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7

아모스(긍휼의 기도): “사하소서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나이다

(아모스 71~6)

 

1.   놀라운 믿음의 소유자 아모스

 

아모스는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전파한 선지자로 유명합니다. 그는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강력한 심판을 예언하면서 정의를 행하라고 외친 사람입니다. 아모스가 외친 메시지는 다른 선지자들과 달랐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이 대개 이스라엘과 유다의 우상 숭배와 영적 타락 때문에 심판을 선포하고 예언했다면, 그는 거기에 더해서 사회 정의에 관하여 아주 강력하게 외쳤기 때문입니다.

 

아모스는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사실 그때는 북 이스라엘이 가장 풍요롭게 살았고 강력한 군사력으로 영토를 가장 넓게 확장했던 시기였습니다. 한마디로 나라 안팎으로 평화와 풍요로움을 누리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랬기 때문에 사치와 향락 또한 대단했고, 빈부의 격차도 극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진 자들의 횡포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학대가 굉장히 심했고, 바로 그러한 것들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심판의 메시지를 선포한 사람이 아모스입니다.

 

아모스는 그렇게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한 동시에 믿음의 사람으로서 아주 귀하고 아름다운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만 살펴보면, 먼저 그는 북 이스라엘이 아니라 남 유다 출신입니다.

 

아모스의 고향은 드고아라는 곳인데, 드고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했습니다. 그러니까 남 유다의 한복판에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거기 살던 그를 부르시고 멀리 북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곳에 가서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 사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그에게는 선지자의 영성이 있었습니다. 선지자의 영성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종의 선교사 영성으로서, 자신과 직접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때문에 그 영혼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같은 민족도 아니고 언어와 문화도 다릅니다. 심지어 나를 거부하고 핍박하며 대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가서 그들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교사 영성, 선지자 영성은 정말 아름다운 영성입니다.

 

아모스에게는 또한 자비량 사역자, 즉 평신도 사역자의 영성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역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직업이 있으면서 사역에 뛰어든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돈을 받고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영적으로 타협하거나 타락하지 않습니다.

 

사실 목회자는 사례비를 받으며 사역하는 전문사역자이고, 대부분의 선교사도 교회들과 개인들의 후원을 받아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데, 자비량 사역자들의 헌신도는 대가나 돈을 받고 사역하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들이 사역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래서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유다 왕 웃시야의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 지진 전 이년에 드고아 목자 중 아모스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상으로 받은 말씀이라” (1:1)

 

아모스는 자신을 가리켜 드고아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목자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보케르인데, 이 말은 많은 소 떼를 돌볼 정도의 아주 큰 기업형 목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아모스는 양 몇 마리 정도를 기르던 목자가 아니라, 꽤 괜찮은 형편에서 아주 큰 목장을 소유하고 있던 부유한 목자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뒤에 있는 내용을 보면, 아모스가 북이스라엘에 와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 귀에 거슬렸던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유다로 가서 거기서나 예언하며 밥벌이를 하라고 거친 말로 위협합니다. 그때 아모스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모스가 아마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 하셨나니” (7:14-15)

 

아모스의 고향인 드고아는 약간 고지대에 위치해 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크게 목축을 하는 동시에 뽕나무(돌무화과 나무) 과수원을 운영할 정도로 굉장히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그를 예언자로 부르시자 아모스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뒤로 하고 북 이스라엘로 가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합니다.

 

이처럼 아모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인 아모스 7장은 그가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을 막아서는 중보기도자

 

아모스서의 구조를 보면, 1~2장은 열방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고, 3~6장에는 강력한 세 편의 설교가 나옵니다. 그러고 나서 7~8장에 네 개의 환상이 나오고, 마지막 설교와 마지막 환상이 8장 뒷부분부터 9장까지 이어집니다. 이 중에서 정말 중요한 내용이 바로 환상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 이 환상은 설교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입니다.

 

1)  메뚜기 재앙의 환상

 

오늘 본문인 7장은 1절부터 환상을 보는 가운데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첫 번째 환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메뚜기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메뚜기를 지으시매” (1)

 

여기서 왕이 풀을 벤 후라는 것은 처음 나온 곡식을 왕이 몽땅 세금으로 가져간 후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농사를 지어 처음 나온 곡식들은 모두 세금으로 거두어 갔습니다. 그 후 그 자리에 새로운 움이 돋으면 그때부터는 그것이 백성의 먹을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움이 돋기 시작하려는 바로 그때 메뚜기가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메뚜기가 나오면 그것은 대개 완전한 재앙을 뜻합니다. 메뚜기 떼가 덮치고 지나가면 남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큰 재앙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에게 다시 움이 돋기 시작하는 때에 메뚜기 떼가 와서 다 먹어치우는 심판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모스가 선지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행동을 합니다. 감히 자신의 의견을 하나님께 말씀드리는 겁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선지자에게는 자기 의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 심지어 말씀을 전하다가 그것 때문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손해를 본다 할지라도,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하는 사람이 바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아모스가 여기서 이건 아니라며 자신의 의견을 말한 겁니다.

 

메뚜기가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사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2)

 

심판의 그림을 보는 순간 아모스는 선지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중보자가 됩니다. 그가 하나님께 매달리며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주 하나님, 용서하여주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 어립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으므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3)

 

하나님께서 아모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켜 메뚜기를 보내지 않으십니다.

 

 

2)  불로 징벌하시는 환상

 

그 후 하나님은 두 번째로 불로 징벌하시는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령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 (4)

 

큰 바다(또는 깊이 흐르는 지하수)까지 삼킬 정도니까, 어마어마한 불이 와서 다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모스는 이번에도 선지자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에게 다시 매달립니다.

 

이에 내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오니 어떻게 서리이까 하매” (5)

 

주 하나님, 그쳐 주십시오! 야곱이 어떻게 견디어낼 수 있겠습니까? 그는 너무 어립니다.” 하나님께 멈춰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러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참 놀랍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를 그대로 선포해야 할 책임이 있는 예언자가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멈추실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아모스의 이런 태도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원래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서 제대로 전하지 않으면 바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또 다시 벌어집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에 대하여 뜻을 돌이켜 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것도 이루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6)

 

하나님께서 또 다시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며 나오는 아모스를 오히려 기뻐하셨다는 말입니다. 왜 기뻐하십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바로 그것이 진짜로 찾으시는 믿음의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기도 가운데 반드시 이런 중보기도가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는 타락하고 부패한 영혼일지라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할 수 있어야 진짜 기도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오래 전부터 탐욕과 교만과 세속주의에 물들어 추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할 때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용서와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도 기도 가운데 나라를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특히 내가 어떤 지도자들을 지지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특히 내가 반대하거나 지지하지 않는 지도자일수록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벌어진 일련이 일들을 보면 참 이상한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동시에 마음을 슬프게 합니다. 지난 1월에 알려진 정인이 사건은 양부모가 아이를 학대하고 구타하여 16개월 여아가 죽은 사건입니다. 어제인가 전문가가 부검을 해보니 붙잡아 놓고 밟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들이 발견되었고, 이제까지 자기가 본 것 중 가장 참혹했다고 합니다.

 

또 지난주 구미에서 3세 여아가 죽어서 미라로 발견된 사건이 있습니다. 6개월 동안 방치해놓아서 죽고 시체가 부패해버렸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22세이고 외할머니는 48세인데, DNA 검사를 해보았더니 외할머니가 사실은 친모였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본인은 여자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계속 부인하고 있으니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나고 또 슬픕니다.

 

게다가 요즘은 학교 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폭로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 중 사실인 것도 있지만 악의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 안타깝고 슬픈 일입니다. 또 공기업 직원들이 내부 정부를 이용해서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드러나 모든 사람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사건들이 정상입니까?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가 병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일들을 일으킨 사람들을 보며 분노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분노에 그치지 말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편을 드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그들을 위해 안타까움과 긍휼의 마음으로 기도해야겠습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나, 악한 자들에게 분노하는 것은 아무나 합니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인 우리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만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누가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악한 자들을 위해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겠습니까? 바로 이런 것이 중보기도자의 마음입니다.

 

 

3.   중보기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마음

 

이러한 중보기도에는 정말 중요한 두 가지 영적인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중보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마음입니다.

 

1)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모스는 바로 그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가 본 것은 심판의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타락하고 죄를 범한 이스라엘을 다 쓸어버리실 것이라는, 아주 끔찍하고 엄청난 심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아모스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습니다.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마음에 또한 사랑이신 그분의 눈물이 담겨 있음을 아모스는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본심을 가지고 기도한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가운데 반드시 하나님의 본심을 그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의 본심이 깨달아질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기도가 응답되는 순간입니다.

 

기도 응답은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정도의 차원이 아닙니다. 진짜 기도 응답은 하나님의 심장이, 그분의 마음이 나에게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기도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2)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아모스의 간구에는 이스라엘 백성, 특히 가난하고 무지한 백성에 대한 막을 수 없는 사랑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는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기 위해 선지자로서 해서는 안 될 시도들을 감행했습니다. “청하건대 사하소서. 청하건대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나이다.”

 

왜 아모스는 감히 하나님께 그런 기도를 드렸습니까? 그에게는 진실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중보기도의 핵심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중보기도의 핵심입니다.

 

참된 믿음의 사람, 참된 기도의 사람은 사랑으로 기도합니다. 이 사랑은 특히 긍휼과 자비이며, ‘측은히 여기는 마음,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기도하는 대상을 향하여 이러한 긍휼과 사랑이 없이는 진실하게 기도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마음이 중동의 한낮 땡볕에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복잡하고 더러운 삶을 살며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저 여자 또 왔네?’ ‘어떻게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웠어? 대단해.’ 뒤에서 이상한 눈빛으로 보면서 수군거립니다. 사실 뒤에서 그러는 게 더 잘 들립니다. 그러면 달려가서 독한 말을 쏟아내며 다른 여자들과 싸웠을 겁니다. 눈에 독기를 품고 소위 센 언니처럼 살던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 가운데 남몰래 울면서 매일 밤 침상을 눈물로 적시며 살아가던 잃어버린 영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녀를 예수님이 일부러 찾아가셨습니다. 남들은 더러운 여자라고 욕하며 수군거렸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하나님의 잃어버린 딸로 보셨습니다.

 

솔직히 유대인으로 사마리아를 지나가지 않는 게 당연한데, 그것도 아주 더러운 삶을 살고 있던 사마리아 여자를 거기서 뭐 하러 만납니까? 그런 여자의 인생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사회적으로도 패배자 아닙니까? 그녀를 만나면 예수님께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아무 유익도 없습니다. 힘들고 귀찮고, 오히려 바리새인들에게 오해 받고 꼬투리를 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 영혼을 만나기 위해서 가십니다. 아까 부른 노래 가사처럼 그 누구도 찾지 않았던 네게 내가 간다!’ 하며 기쁜 마음으로 가시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녀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십니다. 그 형편없고 복잡한 인생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딸이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에게도 영원한 생명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바로 이렇게 영혼을 향한 막을 수 없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중보기도가 가능하고 섬김이 가능합니다. 그러한 마음이 있어야 진짜 기도가 되고 진짜 섬김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간절함에 달려 있다면, 그 간절함은 바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타락하고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이었지만, 아모스에게는 그들을 향해 바로 그런 마음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오늘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아모스의 영성입니다. 우리도 아모스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의 보좌를 흔들고 그분의 뜻을 돌이킬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영혼을 구원하고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냅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 아모스처럼 기도하는 사람들이 되어,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놀랍게 쓰임 받는 우리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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