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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9

에스라 1: 돌파의 기도 -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게 하소서

(에스라 815~23)

 

1.   믿음의 모험을 강행한 에스라

 

신앙생활을 수식하는 여러 가지 표현들이 있는데, 그 중 신앙생활은 장애물 달리기와 같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즉 육상의 허들 경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평평한 곳에서 빨리 달리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이 나올 때마다 뛰어넘고 달리기를 반복하면서 경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장애물이 없는 인생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진짜 신앙은 달릴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 나타납니다. 장애물을 뛰어넘을 때에야 비로소 그 신앙의 진가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영적인 본이 되고 귀한 메시지를 주는 사람이 바로 에스라입니다. 에스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말씀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학사 즉 학자였고 제사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말씀으로 백성을 영적으로 깨우치고 가르치고 세워주는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신앙으로 삶의 장애물을 잘 뛰어넘은 아름다운 신앙인으로도 유명합니다.

 

에스라는 대제사장 아론의 16대손 장손입니다(7:5). 아주 뼈대 있는 집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족보를 가진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포로로 잡혀간 자들의 후손으로 바벨론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서는 뼈대 있는 집안이라는 것도, 대제사장이라는 위치도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이스라엘의 제사장으로서의 자기 사명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신앙인이란 모든 상황을 신앙으로 바꾸어 나가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상황적으로 볼 때 에스라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꿈을 꿀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사장으로서 받은 거룩한 사명, 곧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온전한 예배를 드리게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시대가 어둡다고 비전과 사명을 버리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상황이 힘들다고 아름다움의 꿈을 버린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이루어질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으로 주신 그 꿈을 그 자리에서 계속 꾸면서 붙들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에스라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면서 기도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주 중요한 결심을 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이때로부터 60여년 전 스룹바벨을 통해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재건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건물만 재건되었을 뿐, 제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에스라는 재건된 성전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겠다고 결심합니다.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 때 에스라가 몇 살이었는지 그 나이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가 이미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서 잘 살고 있었는데, 그곳을 떠나는 것이 그에게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비록 유다가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땅입니다. 더구나 안정되게 잘 살고 있는 현재의 위치로부터, 앞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땅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소명을 받아 사명을 받은 사람이기에 결단을 내리고 길을 떠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신앙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2.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영적 비밀

 

그는 당시 페르시아 왕인 아닥사스다에게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을 요청하고 왕의 허락을 받아 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준비가 끝난 것입니다. 그 후 같이 갈 사람들을 모집하여 출발하려고 아하와 강가에 모였는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15)

 

이들은 단순히 고향을 방문하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을 영적으로 재건하고 예배를 살리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를 섬길 수 있는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들이 장애물을 만난 것입니다. 난관에 봉착한 것입니다. 불가능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에스라에게는 이 어려운 상황과 난관을 풀어 낼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변수, 영적 비밀이 하나 있었습니다.

 

“18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19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20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18-20)

 

여기서 에스라가 언급하는 특별한 변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늘 의지하는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입니다. 이것은 에스라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들의 변수입니다. 객관적으로는 정말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이지만,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 있을 때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바로 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힘입어 함께 유다로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레위 자손 38명과 그들을 수종하는 220명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은 우리가 살면서 어떤 위기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뚫고 나갈 수 있는 영적 비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또한 교회사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삶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하나님은 당신의 그 선한 손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선한 손을 펼쳐서 우리 삶에 역사하십니다. 신앙생활은 바로 이러한 역사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냥 종교생활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역사하십니다.

 

 

3.   하나님의 선한 손을 붙들라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을 크게 네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도우시는 손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도우십니다. 그런데 돕는다는 것은 무엇을 전제합니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다 해 줄게.’와 같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람들을 도와주십니다.

 

 

2)  잡아주시는 손

 

신앙인이 삶 가운데 어떤 난관에 부딪히게 되면 중심이 흔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쓰러지게 됩니다. 바로 그럴 때 잡아주시는 손이 바로 하나님의 선한 손입니다. 우리 믿음의 중심이 흔들릴 때, 흔들려서 쓰러질 때, 잡아서 일으켜주시는 손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람들, 바로 우리들을 굳게 잡아 주십니다.

 

 

3) 만져주시는 손

 

이것은 내적 위로를 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가 마음이 상했을 때, 상처받았을 때, 마음에 두려움과 분노와 열등감과 죄책감이 가득할 때, 그때마다 만져주시는 손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를 통해 힘을 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치 쓰러진 엘리야를 만져 주시며 먹이신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람들의 상한 마음, 우리의 상한 마음을 만져주십니다.

 

 

4) 인도하시는 손

 

신앙의 난관에 부딪히면 방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당황하다가 헤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의 선한 손이 우리를 잡아서 인도해주십니다. ‘생명의 삶공부의 주제가가 <주님여 이 손을>인데, 그 가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폭풍우 흑암 속 헤치사 빛으로 손잡고 날 인도하소서.”

 

이것이 바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사람들을 인도하십니다. 이처럼 신앙인의 삶 가운데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것을 이길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선한 손을 체험하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은 어떻게 체험할 수 있습니까? 대답은 오직 하나입니다. 기도해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은 결코 홀로 역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영적 자존심을 지키며 기도로 승부를 걸라

 

에스라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으로 레위 자손을 모읍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풀어야 할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유다 땅까지 안전하게 돌아갈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바벨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약 1,000마일이 넘는데, 지금 차로 달려도 20시간이 넘게 걸리는 거리입니다. 게다가 중간 중간 살고 있는 종족들은 유목민들인데, 그들의 주업은 유목이지만 부업은 강도질이었습니다. 그들은 재물을 빼앗고 여자들과 아이들과 사로잡아서 팔아넘기면서도 죄책감이 하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5개월 정도 걸리는 먼 길을 1,754,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6~7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데리고 군대도 없이 이동해야 합니다. 게다가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보물들을 다 가지고 이동하고 있으니, 예루살렘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이 상황적으로 볼 때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닥사스다 왕에게 귀향길을 지켜줄 군대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요청하면 아닥사스다 왕은 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왕 자신이 가라고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아닥사스다 왕에게 한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하나님이 잘 되도록 보살펴 주시지만, 하나님을 저버리는 자는 하나님의 큰 노여움을 피하지 못한다고 말한 바가 있어서, 우리가, 돌아가는 길에 원수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 보병과 기병을 내어 달라는 말은 부끄러워서 차마 할 수 없었다.” (22, 새번역)

 

에스라는 영적으로 아주 철저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적 자존심이 강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이미 말해 놓고는, 상황이 급하다고 눈앞의 현실적인 것을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에스라가 훌륭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점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보셨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인이 바로 에스라와 같은 사람입니다. 말로만 좋은 신앙은 실제로 어려움이 닥칠 때 현실적인 것만 붙잡고 의지하는 연약하고 위선적인 신앙으로 추락해버리게 됩니다. 하지만 진정한 신앙은 그 신앙 때문에 어떤 물질적인 손해나 사람들 앞에서의 수치 또는 어려움을 겪어도, 심지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해도, 믿음으로 고백한 것을 반드시 지키며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신앙입니다.

 

에스라의 고백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은 그가 부끄러워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이처럼 자기가 믿음으로 한 말을 지키지 못하게 될지 모를 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상황이 힘들어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얼버무리며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는 완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면서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신앙이고, 이것이 바로 영적 자존심입니다. 쓸 데 없는 데에 자존심을 부리는 것은 안 되지만, 자기가 믿음으로 말한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될 때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말을 지키기 위해 더욱 믿음으로 나아가는 영적 자존심이 필요합니다.

 

결국 이때 에스라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본인이 말한 대로 하나님께 매달리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도와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아하와 강가에서 금식 기도를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를 위하여 금식하며 우리 하나님께 간구하였더니 그의 응낙하심을 입었느니라” (23)

 

며칠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히 그들은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확신이 들자 출발했고, 기적적으로 5개월 만에 아무 어려움도 당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지켜주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는 방법은 기도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을 모두 내려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나의 생각이나 확신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비록 상황을 보면 좋은 결과를 확신할 수 없더라도, 믿기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기다리는 가운데, 결국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기대하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려면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의 결과로 응답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단지 눈앞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그것이 곧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인 것은 아닙니다. 만약 문제 해결이 결론이라면 그것으로 이야기는 그냥 끝나 버리지 않습니까? 문제가 해결되는 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쳐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경험하고자 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언가를 얻었기 때문에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내가 하나님의 사람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이 모든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길 때 당연히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자신의 기도제목을 내어놓고 기도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나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라고 중보기도실에도 카드를 써서 내고, 목장식구들에게도 알리고, 다른 교우들에게도 부탁해서 같이 기도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기도해야 할 것은 단지 그 문제의 해결이 아닙니다. 이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만약 문제는 해결 받았는데, 문제가 해결되고 삶이 자유로워져서 하나님을 떠나버리고 신앙의 길로부터 멀리 가버리면, 그것이 어찌 축복이겠습니까? 그것은 축복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는 것이 정말 축복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통해 그 관계가 세워지지 않았다면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다른 데 눈을 돌리거나 다른 방법을 찾지 말고 영적으로 승부를 걸어보십시오. 이것은 현실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상식을 무시하고 몰상식하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아픈데 기도만 하라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아플 때는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렇게 현실적인 문제는 현실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상황이 영적인 것이라면 영적인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손이 역사하시도록 영적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하나님의 그 선한 손이 우리를 도우시고, 붙잡아주시고, 만져주시고, 인도해주시는 것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두로와 시돈 지역에 가신 적이 있습니다. 거기서 수로보니게 여인을 만나시는데, 다른 복음서에는 가나안 여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이방인이 확실한 그 여자가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자기 딸이 귀신 들려 고통을 받고 있는데 고쳐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이 굉장히 냉정하게 말씀합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에게 주는 것이 옳지 않다.’라고 하십니다. 얼마나 모욕적입니까? ‘너는 개다.’라는 말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 여인이 주님의 뜻을 캐치했습니다. ‘, 이게 나를 멸시하시는 게 아니구나.’ 여기서 라는 단어도 더러운 개가 아니라 애완견 같이 귀여운 개에게 쓰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여인이 대답을 잘합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거라도 좋습니다.’라고 했을 때 네 믿음이 크다. 네 딸이 나았다.’라고 선포해주셨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이 여자가 예수님께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했는데 고쳐주셨다면 그게 끝입니다. 그 다음에 예수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또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네가 병 고침만 받고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네가 원하는 것만 받고 돌아가서 삶이 이전과 똑같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는 것입니다. ‘나와의 관계를 세워라.’ 하고 초청해주신 겁니다. 그것을 그 여자가 캐치하고 대답을 했기 때문에 믿음이 크다고 해주셨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몰상식하게 나아가는 것도 아니지만, 현실을 뛰어넘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기도하며 나아갈 때, 기도 응답을 받고 문제만 해결받고 끝나고 하나님을 떠나버리는 게 아니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세워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체험하는 사람의 신앙생활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체험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이루어드릴 뿐 아니라 이런 기도 응답의 체험, 선한 손의 도우심의 체험을 통해 더욱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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