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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17일 수요예배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3

다니엘 1: 결단의 기도 - “사자굴에 던져져도 감사하나이다

(다니엘 61~10)

 

[들어가는 말]

 

솔로몬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초대 왕이 되고, 남유다는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 후 북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초강대국인 앗시리아에 의해 멸망하고, 유다는 조금 더 버티다가 바벨론의 세 번의 침공 후에 결국 BC 586년에 멸망했습니다.

 

그때 1, 2, 3차에 걸쳐 유다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는데, 그들의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포로로 잡혀간 자라고 낙담하거나, 멸망당한 민족의 후손이라고 낙심하거나, 거대한 제국 속의 이름 없는 노예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성경은 그때 그냥 이야기가 끝나고 말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저 실패하고 망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수많은 고난이 닥쳐오고 신앙의 뿌리가 흔들릴 때마다 그 모든 것들을 이겨내면서 스스로에 대해 확실한 민족 정체성을 정립해 나갔습니다. 그것이 바로 남은 자’(The Remnant) 사상입니다.

 

그들이 자신을 남은 자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두 가지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 계시기 때문에, 나라가 망하고 민족이 망해도 하나님의 언약과 구원의 역사는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그러한 남은 자의 영성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다니엘은 포로지 한복판에서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본을 보여준 사람입니다. 성경은 여러 사건들을 통하여 그가 남은 자의 영성을 끝까지 지키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놀랍게도 그 모든 이야기들의 결론은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다니엘의 기도 이야기를 두 가지 사건을 통해 살펴보려 합니다.

 

 

1.   멈추지 않는 기도

 

다니엘은 십대 소년의 나이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습니다. 그 후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누르고 패권을 잡았습니다. 페르시아는 영토가 아주 광대한 제국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즉 지금의 중동 지역 전체를 포함하는 지역이 바로 그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였고, 그러다 보니 다리오 왕은 방대한 제국을 직접 통치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 다리오라는 이름이 몇 명 나오고 역사에도 다리오(다리우스)가 여러 명 나오는데, 여기 다리오는 메대 사람 다리오입니다. 쿠르드 족이 메대의 후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메대가 멸망한 이후 지금까지 그들은 나라가 없는 민족으로서 가장 큰 민족입니다.

 

페르시아가 제국이 되고 초대 황제가 고레스(역사에는 키루스 대제)인데, 그의 외삼촌이 바로 메대 사람 다리오입니다. 고레스 왕의 어머니가 다리오 왕의 여동생이고, 외할아버지의 나라인 메대를 고레스가 접수했습니다. 그 나라와 주변 나라들을 통일해서 영토가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을 물리치고 일종의 허수아비(?) 왕 격으로 자기 외삼촌 다리오를 세웠습니다. 고레스가 메대를 흡수한 이후에도 사이가 나쁘지 않았고 또 친척이었기 때문에, 다리오를 먼저 왕으로 세워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토가 너무 컸기 때문에 다리오는 직접 다스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1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2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1-2)

 

다리오는 전국을 120개로 나누어 각 지역을 통치할 고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120명의 위에 세 명의 총리를 두어 그들을 통치하게 했습니다. 아마도 각각 40명씩 맡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 명의 총리는 역사상 웬만한 왕보다도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로서, 굉장히 출세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사람이 다니엘이었다는 것입니다.

 

참 신앙은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더 아름답고 분명하게 지켜 나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였던 다니엘은 바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페르시아 제국 120개 지역의 수장인 120명의 고관들을 통치하는 세 명의 총리 중 한 명이 될 수 있었고, 그것도 그들 중 가장 뛰어난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3)

 

문제가 생겼습니다. 뛰어난 건 좋은데, 뛰어나니까 시기와 질투를 받은 겁니다. 특히 다른 두 총리로부터 얼마나 시기를 받았겠습니까? 다른 분야에 있는 사람이 잘하면 박수쳐주고 축하해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분야에 있는 사람이 훨씬 뛰어나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게 인간입니다. 그들은 다니엘을 모함할 거리를 찾기 위해 그를 주시하기 시작합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4)

 

다른 두 총리들과 120명의 고관들 중 상당수가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밑의 사람들도 다니엘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흠을 잡으려 해도 잡을 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합니까?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5)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 세상은 결코 우리를 가만두지 않습니다. 우리는 말씀대로 살면 공격을 받고 모함을 당하게 됩니다. 참 신앙은 핍박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조롱이나 비난을 당하는 것이 곧 참 신앙인 것은 아닙니다.

 

요즘 한국에서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이 굉장한 비난을 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진짜 믿음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면 아주 훌륭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대개는 잘못한 것 때문에 조롱을 받고 비난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신앙은 핍박받는 것이어야지, 조롱이나 비난이나 고발을 당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신앙 때문에 저 사람은 예수쟁이야.’라고 우리가 공격받는 것은 괜찮지만, 우리의 말과 행동이 잘못되어서 예수쟁이가 왜 저래?’ 하고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비난이 아니라 핍박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업무나 삶에 있어서는 비난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대적들이 결국 그의 신앙으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고, 특히 다니엘의 기도를 가지고 공격했습니다. 그들은 그의 삶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에게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 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7-9)

 

그들은 다리오 왕의 교만과 어리석음을 이용해서 다니엘을 죽일 간계를 꾸몄고, 다리오 왕은 이것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절대로 바꿀 수 없는 명령으로 다니엘 앞에 덫을 놓은 것입니다. 하지만 다니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음에도 그들이 펼쳐 놓은 덫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10)

 

왜 다니엘은 자신을 죽이기 위한 술책임을 알면서도 거기에 일부러 그렇게 빠진 것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것을 잘못 생각해서 다니엘이 왕의 명령을 거역한 게 아니냐고, 그래서 잘못된 게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니엘이 잘못하고 법을 어겨서 그런 게 아니라, 그들이 잘못된 책략을 써서 악하게 다니엘을 죽이려는 간계였습니다. 왕의 명령이 정당하고 합법적인 것이었다면 다니엘이 따랐겠지만, 이것은 악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니엘은 그것을 알고도 계속 기도했습니다.

 

언뜻 볼 때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너무나 중요한 영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어떤 경우에도 영적으로 지지 말라

 

고관들 뒤에서 그들을 조종하는 마귀가 노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이 현실적이고 상황적이고 세상적인 이유로 타협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타협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안에 패배감이 자리 잡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공격이 올 때 기억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이나 환경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6장에도 나오지만, 잘못된 어떤 공격이 올 때 그 뒤 있는 사탄의 세력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은 우리를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무너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영적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또 영적으로 아름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마귀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계속 기도할 경우 결국에는 다리오 왕의 노여움을 사서 총리 자리는 물론이고 목숨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기도를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마귀가 노리는 것이 바로 기도를 멈추는 것임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변함없이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2)  어떤 경우에도 기도를 멈추지 말라

 

지금 이 상황이 함정인 줄 알면서도 다니엘은 평소에 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분명히 이때 하나님, 사자 굴에 던져져도 감사합니다. 제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진다니, 이것이 얼마나 영광입니까!’ 하고 기도했을지 모릅니다.

 

상황에 따라서 멈춘다면 참된 기도가 아닐 것입니다. 정말 아프다면 기도하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누운 자리에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피곤하다고, 바쁘다고, 급하다고 기도를 멈춘다면, 더 이상 그것은 참된 기도가 아닌 겁니다.

 

특별히 기도할 일이 없어도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실제로 수많은 신자들이 기도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뭔가 하면, 별로 기도할 게 없어서입니다. 삶이 너무 평안하고 평탄하게 잘 살고 있는데 무슨 기도할 게 있느냐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를 뭐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간구라고 보는 겁니다. 그러나 기도는 간구만이 아닙니다. 간구도 있지만, 찬양과 감사와 회개와 중보도 있습니다.

 

그런데 평탄할수록 더욱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내게 평탄함을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나를 위해서는 별로 기도할 게 없으면 남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겁니다. 나를 위해 기도할 게 없을 때, 그 시간에 남들을 위해 더 기도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 평탄한 삶이 계속 이어지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보다 영적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에서 신앙의 아름다움을 지키길 원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도 영적으로 지지 마십시오. 그리고 절대로 기도를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두 가지는 하나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기도를 멈추지 않으면 영적으로 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다니엘의 이야기가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2.   응답이 올 때까지 드리는 기도

 

진짜 기도는 어떤 것입니까? 다시 말해, 어떤 기도가 올바른 기도입니까? 진짜 기도, 올바른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짜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응답받는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기도의 형식들이 다 갖춰지고 기도하는 자세가 성경적으로 바르다고 해도, 또 아무리 뜨겁고 간절하고 크게 기도한다 해도, 그 기도에 대한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짜 기도, 올바른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꼭 기억할 것은, 기도의 유형과 응답의 범위가 아주 넓고 다양하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기도가 나의 원하는 것을 얻는다든가 뭔가가 이루어지는 응답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그분의 뜻을 알아감으로 받는 응답이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만이 응답이 아니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응답입니다.

 

또한 기도의 목적이 하나님 앞에 상한 마음을 쏟아 내는 것이라면, 우리 마음이 물처럼 쏟아지면서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혜가 응답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응답은 결코 애매하지 않고 분명합니다. 응답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제대로 기도했으면 확실한 응답을 받습니다. 아직 받지 못한 것은 있어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면 나의 기도를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진짜 기도는 응답받는 기도이며, 응답받는 기도가 진짜 기도입니다.

 

1)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를 했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짜 기도가 되지 못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은 두 가지 이유를 알려줍니다.

 

첫째는,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잘못 구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이 되어도 유익하지 않고 오히려 해로울 수 있는 기도는 응답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기도가 응답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물론 즉각 응답해주실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많지 않고 대개의 경우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렇기에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림에 실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기다리지 못해서 응답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경우(잘못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용이 조금 잘못되었어도 순수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잘못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잘못 기도하고 있을 때, 기도의 방향과 내용을 바꾸도록 성령님이 인도해주십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경우는 조금 다릅니다. 물론 하나님의 때가 나의 기대와 달라서 기다리고 있을 때는 잘못 구할 때와 똑같이 깨닫게 하시고 알려주십니다. ‘얘야, 아직은 아니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아직 때가 아니다.’

 

그런데 영적전쟁 때문에 기다려야 하는 경우는 다릅니다. 다시 말해,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오지 않는 이유가 우리의 기도를 방해해서 우리를 낙담하게 만들려는 사탄의 공격 때문이라면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영적전쟁이 가져오는 기다림

 

바로 다니엘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그러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제 삼년에, 일명 벨드사살이라고 하는 다니엘이 계시로 말씀을 받았다. 그 말씀은 참된 것이었는데, 환상을 보는 가운데, 심한 고생 끝에 겨우 그 뜻을 깨달았다.” (10:1, 새번역)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 국제적으로 엄청난 정세의 변화가 오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 다니엘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걱정으로 그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 나 다니엘은 세 이레 동안 고행하였다. 세 이레 내내 좋은 음식을 삼가고, 고기와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몸에 기름을 전혀 바르지 않았다.” (10:2-3, )

 

다니엘은 유다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금식하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 이레(3), 21일이 다 되도록 응답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하며 부르짖고 있는데도 응답이 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은 그가 기도하는 순간 이미 응답해주셨습니다.

 

그가 내게 이르되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깨달으려 하여 네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부터 네 말이 응답받았으므로 내가 네 말로 말미암아 왔느니라” (10:12)

 

스스로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던 첫날’, 즉 그가 기도하기 시작한 첫날에 이미 하나님은 그에게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 때문에 이렇게 지체되었다고 합니까?

 

그런데 바사 왕국의 군주가 이십일 일 동안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더니 가장 높은 군주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10:13)

 

바사 왕국의 군주란 페르시아 왕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땅의 공중 권세를 잡은 마귀를 뜻합니다. 마귀가 다니엘에게 기도 응답이 전해지지 않도록 막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막힌 천사가 누구인지 이름이 안 나오지만, 문맥상으로 볼 때 가브리엘로 생각됩니다. 그가 그렇게 막혀 있다가 전쟁하는 천사장 미가엘의 도움으로 겨우 뚫고 세 이레 만에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지고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신화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적으로 분명한 사실이며,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기 위해 치열한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우리의 기다림입니다.

 

바사 왕국의 군주인 사탄은 왜 가브리엘을 막은 겁니까? 사탄은 무엇을 노리는 겁니까? 사탄은 자기가 결국에는 가브리엘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미가엘이 오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브리엘을 막은 것은 기도 응답이 지체되도록 한 것입니다. 응답이 되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 아니라, 응답이 지연되도록 방해한 겁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최대한 늦게 가도록 방해한 게 사탄이 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마귀는 무엇을 노리고 응답을 지연시킵니까? 답은 간단합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지치게 하여 기다리는 일에 실패하고 응답을 경험하지 못하게 만드는 겁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응답을 지연시키는 동안 우리가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면 끝내면 응답을 받아 누리지 못하기 때문에, 응답을 막고 최대한 지체되도록 방해공작을 펴는 겁니다. 우리가 기다리지 못하고 실패하도록 하는 것이 사탄의 노림수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우리의 기도 가운데 벌어지고 있는 영적 전쟁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합니다. 중보기도실에서도 어려운 상황에 꾸준히 기도하시는 분들 계시고, 기도제목을 가지고 하는 중보기도 헌신자들이 계십니다. 우리도 각자 다 기도합니다. 자신을 위해 또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런데 응답이 금방 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때가 안 되어 기다리게 하시는 것도 있지만, 사탄이 방해공작을 펴서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욕심으로 구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되지 않는다면, 특히 선교사님을 위해 기도하는데도 길이 막힌 채 열리지 않는다면, 지금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그것을 잘 기억해야겠습니다.

 

 

3)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하라

 

다시 말씀드리지만, 응답이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받는 게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나 때가 아니라, 무엇이든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게 응답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다니엘이 보여 줬던 것처럼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이때 굉장히 기진맥진하고 지쳤습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응답이 올 때까지 버티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았는데 내가 먼저 포기하고 일어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여기서 넘어질 때가 많아서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열심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응답이 오지 않는다고 하면서 기도를 멈추고 먼저 일어나서 나갑니다. 그러면 그 순간 마귀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기도는 진짜 기도가 아니라 실패한 기도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기도가 그렇게 되도록 놓아두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진짜 기도가 되려면, 마귀가 가로막으면서 지연시키고 있는 시간들을 버티면서 응답된 기도가 될 때까지 계속 기도하는 겁니다. 응답받는 진짜 기도가 되게 하려면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의 기도를 놓고 치열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내가 하는 기도의 능력이 얼마나 굉장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는데,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과 보혈의 능력으로 기도할 때 엄청난 파워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영적인 사건이 시작되고,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순간, 기도는 더 이상 인간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 겁니다. 하나님께로 올라가니까 영적인 역사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영적 전쟁이 벌어집니다.

 

마귀는 응답을 막으려고 몸부림칠 것이고, 우리가 응답을 받지 못하게 공격하면서 응답이 올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어제 <새로운 삶> 내용에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에서 저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할 때 중간에 전쟁터가 있습니다. 사탄이 다스리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 그곳을 뚫고 하늘의 하나님께 상달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파워를 가졌는데, 그렇게 끝까지 기도할 때 우리는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의 진정한 기도의 용사를 찾고 계십니다. 어떤 시대보다도 기도가 많이 언급되지만 어떤 시대보다도 기도가 부족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기도의 사람들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전보다 재미있는 게 많기 때문에 기도의 시간에도 방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우리의 기도로 인해 엄청난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미 우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중간에 어떤 방해가 있어도 하나님의 응답은 반드시 전달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그때까지 버티며 계속 기도하는 겁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막 기뻐하며 우리를 응원하십니다. 성령님이 바로 그 역할을 하십니다. ‘잘한다. 계속 기도하라!’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어도 엎드린 자리에서 금방 일어나지 마십시오. 아무리 답답하고 막막해도 부르짖는 음성을 멈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다른 상황들이 보이고 응답이 없는 것 같으며 헛된 것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시작한 기도가 응답되기 전까지는 스스로 끝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응답은 반드시 옵니다. 그때까지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기도하는 기도의 사람, 이 시대의 남은 자를 찾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 모두가 기도를 통한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는 주님의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응답받고 영광 돌릴 수 있는 이 시대의 기도의 용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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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 그 사랑 때문에 (눅 23:32-38) - 성금요일예배 (04/02/2021) admin_p 2021.04.03 956
294 오바댜(맡김의 기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갚아 주소서" (옵 1:1-21) -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8 (3/24/21) admin_p 2021.03.25 1288
293 아모스(긍휼의 기도): "사하소서 그치소서 야곱이 미약하나이다" (암 7:1-6) -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7 (3/17/21) admin_p 2021.03.18 968
292 요엘(구원의 기도):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욜 2:28-32) -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6 admin_p 2021.03.11 1601
291 호세아(회복의 기도):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호 6:1-3) -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5 (3/3/21) admin_p 2021.03.04 2414
290 다니엘 2(동역의 기도):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비추소서 (단 9:1-19)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4 (2/24/21) admin_p 2021.02.25 574
» 다니엘 1: 결단의 기도 - "사자 굴에 던져져도 감사하나이다" (단 6:1-10)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3 (2/17/21) admin_p 2021.02.18 833
288 에스겔: 고민의 기도 -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나이다" (겔 1:1-3)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2 (2/10/21) admin_p 2021.02.11 1621
287 에스더: 도전의 기도 -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 4:9-17)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1 (2/3/21) admin_p 2021.02.04 2464
286 에스라 2: 회개의 기도 -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스 9:1-6)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0 (1/27/21) admin_p 2021.01.28 1415
285 에스라 1: 돌파의 기도 -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게 하소서" (스 8:15-23)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9 (1/20/21) admin_p 2021.01.21 1594
284 느헤미야: 인내의 기도 - "종이 형통하여 은혜를 입게 하소서" (느 1:1-11)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8 (1/13/21) admin_p 2021.01.14 2177
283 야베스: 삶의 기도 “나를 도우사 내게 근심이 없게 하소서” (역대상 4:9-10)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7(1/06/21) kpccoh 2021.01.07 1651
282 "광야를 기억하며 옥토로 나아가라" (신 8:1-20) 새해맞이 감사에배 (12/31/20) kpccoh 2021.01.01 916
281 크리스마스이브 축제 (12/24/20) kpccoh 2020.12.27 201
280 히스기야: 관계의 기도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사 38:1-8)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6(12/16/20) kpccoh 2020.12.17 1009
279 "느부갓네살이 만난 하나님” (다 4:28-37) 조준오 목사 (12/02/20) kpccoh 2020.12.03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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