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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8일 수요예배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6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민수기 1118~23, 31~35)

 

 

1.   하나님의 능력을 믿느냐는 질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시고 우리가 답해야만 하는 여섯 번째 영적 질문은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23)입니다. 우리가 믿는다고 고백하는 하나님, 우리가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무엇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하시며, 우리 삶을 책임져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점입니다. ‘전능하다는 말은, 능력에 한계가 없으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렇게 전능하셨고, 오늘도 여전히 전능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해방되기까지, 하나님의 전능하심으로 일어난 놀라운 기적들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특히 홍해가 가로막혀 있었던 것을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갈라주셔서 마른 땅으로 걸어 건너는 전무후무한 기적을 체험하자, 이스라엘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

 

주님, 신들 가운데서 주님과 같은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주님과 같이 거룩하시며, 영광스러우시며, 찬양받을 만한 위엄이 있으시며,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는, 그런 분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15:11, )

 

그런데 광야에 들어와서 마라라는 곳에 왔을 때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게 되니까 금방 불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쓴 물이 단 물로 변하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림에 이르게 하셨는데, 거기는 샘이 많아서 물이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엘림을 떠나 신 광야에 이르렀을 때 금방 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항의하였다. ‘차라리 우리가 이집트 땅 거기 고기 가마 곁에 앉아 배불리 음식을 먹던 그 때에, 누가 우리를 주님의 손에 넘겨 주어서 죽게 했더라면 더 좋을 뻔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신들은 지금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나와서, 이 모든 회중을 다 굶어 죽게 하고 있습니다.’” (16:3, )

 

놀랍게도 하나님은 반역하는 그들은 진멸하지 않으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사실 광야에서 물이 나는 것이나, 하늘에서 먹을 것이 내려오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런데 아스라엘 백성은 만나 밖에 먹을 게 없다고 또 불평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 섞여 살던 무리들이 먹을 것 때문에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들도 또다시 울며 불평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먹여 줄까?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던 것이 기억에 생생한데, 그 밖에도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이 눈에 선한데, 이제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이 만나밖에 없으니, 입맛마저 떨어졌다.’” (11:4-6, )

 

이들이 이집트에서 생선을 공짜로 먹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들은 노예로 힘들게 고생하고 일하면서 간신히 살았는데, 그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전능하시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필요를 모르십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며 그들의 필요를 아시고 채워줄 수 있으신 분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불평하며 원망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어서 기도하니까 하나님께서 채워주십니다. 그러면 조금 후에 다른 문제를 만날 때 금방 이전 것을 잊어버리고 또 불평합니다. 하나님이 또 채워주시면 기뻐하고 감사하는데, 그때뿐이고 다시 금방 잊어버린 다음 또다시 다른 문제로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좋았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스무 날만 먹을 뿐 아니라,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한 달 동안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 하라” (18-20)

 

여기 보면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 또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모세가 어떻게 반응합니까?

 

모세가 이르되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 주의 말씀이 한 달 동안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다 하시오니, 그들을 위하여 양 떼와 소 떼를 잡은들 족하오며 바다의 모든 고기를 모은들 족하오리이까” (21-22)

 

여기서 보행자라는 말은 정확하게 말해서 보병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싸울 수 있는 장정이 60만 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 포함해서 생각할 때 전체 인구가 150만내지 200만 명 정도는 되었을 것으로 학자들이 추정합니다.

 

한마디로 모세는 이때, ‘주님,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고기를 어떻게 계속 먹이시겠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모세는 그 동안 수많은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보아도 이 많은 백성들에게 고기를 한 달 동안이나 계속 먹이신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에게 결정적인 질문을 던지십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 네가 이제 내 말이 네게 응하는 여부를 보리라” (23)

 

여호와의 손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능력이 줄어들기라도 했다는 말이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오늘은 역사하지 않으십니까? 과거에 전능하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전능하지 않으십니까?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놀라운 기적을 베푸셨던 하나님이, 지금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삶에는 역사할 수 없으실 뿐더러, 기적을 베풀지 못할 정도로 힘이 약해지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을 불신하지 말라는 의미로 여호와의 손이 짧으냐?”라고 하신 것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정말 그렇게 역사하셨습니다.

 

바람이 여호와에게서 나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를 몰아 진영 곁 이쪽 저쪽 곧 진영 사방으로 각기 하룻길 되는 지면 위 두 규빗 쯤에 내리게 한지라” (31)

 

하나님은 바다에서부터 메추라기 떼를 몰아서 보내셨습니다. 엄청난 메추라기 떼가 하룻길 되는 지면에 쌓였습니다. ‘하룻길은 하루에 걸어갈 수 있는 길로서, 15~20마일 정도의 거리를 말합니다. 15마일이라고 한다면, 15마일 거리에 메추라기 떼가 쌓이는 장면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엄청납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메추라기 떼가 쌓인 높이가 2규빗 정도 되었습니다. 1규빗은 팔꿈치에서부터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의 팔 길이로 생각할 때 약 45센티미터(18인치) 정도 됩니다. 그러면 2규빗은 약 90cm(36인치) 정도가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장면입니까? 15마일 거리에 1미터 가까운 높이로 메추라기 떼가 쌓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우리 교회에서 콜럼버스 다운타운까지가 약 15마일 정도 됩니다. 여기서 다운타운까지 가는 고속도로에 1미터 높이로 눈이 와서 쌓여 있어도 대단한 장면인데, 그렇게 메추라기들이 쌓여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광경입니까?

 

백성이 일어나 그 날 종일 종야와 그 이튿날 종일토록 메추라기를 모으니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진영 사면에 펴 두었더라” (32)

 

여기 보면, 메추라기를 적게 모은 자도 열 호멜이라고 했습니다. ‘호멜은 성경의 부피 단위 중 최대 단위인데, 1호멜이 220리터 정도나 됩니다. 그러니까 10호멜은 2,200리터 정도 되는 많은 양입니다.

 

예를 들어, 요즘의 2리터짜리 콜라병으로 계산하면, 1인당 그것도 적게 모은 사람이 무려 2리터짜리 콜라병으로 1,100개나 거둔 것입니다. 20명이 모여서 피자를 먹을 때 2리터짜리 3-4병 정도를 마시지 않습니까? 그런 크기로 천 개가 넘게 거두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것도 전체나 지파별로 천 개가 아니라, 1인당 천 개입니다. 옮겨 오는 것도 어렵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그토록 원했던 고기를 삶아서 먹고, 구워서 먹고, 질리도록 먹고, 냄새가 싫어지기까지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시면 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2.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간다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삶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으신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지도자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20절을 다시 보십시오. 하나님이 책망하신 이유는 너희가 너희 중에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가 함이라라고 하셨습니다. , 그들이 자기들 중에 계시는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 백성 중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문제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깨닫고 있는가, 잊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모세의 반응을 보십시오. 조금 전에 살펴보았지만, 바로 이어지는 21절에서 모세는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의 보행자가 육십만 명이온데라고 답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육십만 명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지만, 여기서는 나와 함께 있는 이 백성이라는 표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와 함께하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자기와 함께하시지 않는 것 같이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따졌습니다.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역사하시지 않는 것 같이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으시니까 마치 하나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기도해도 별 응답이 안 보이니까 하나님이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내 느낌일 뿐입니다. 내 느낌이 옳습니까, 성경이 옳습니까? 비록 하나님이 안 보이셔도 우리와 항상 함께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은혜 위에 서 있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에 붙잡힌바 되어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 그 놀라운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미 애굽에서 10가지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말씀의 삶> 때 이 열 가지 재앙을 피개이파 온독우메 흑장으로 외웠습니다. 피 재장, 개구리 재앙, 이 재앙, 파리 재앙, 온역 재앙, 독종 재앙, 우박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 재앙, 장자 죽음의 재앙입니다. 그뿐입니까? 이스라엘은 홍해가 갈라지는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어느 누가 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도 잊어버렸습니다.

 

출애굽 한 후 광야를 통과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마치 우리 삶과도 같습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은, 죄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고, 광야 같은 세상에 살면서 본향인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삶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의 삶을 살면서 육신의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불평불만과 원망을 쏟아놓으며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들보다 낫습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강한 햇볕 앞에서 타죽을 우리를 구름기둥으로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그 사실을 자꾸 잊으며 산다는 데 있습니다. 그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장치가 바로 주일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 목장, 삶 공부 등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의 은혜 위에 서 있으며 매일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해주셨고, 우리의 인생을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생명과 건강과 사랑하는 가족을 주셨고, 게다가 구원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아름다운 것과 풍요로운 것을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처럼 그러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빨리 돌이켜 하나님께로 향해야 합니다. 어디서 부족한지를 빨리 찾아서 메워야 합니다. 예배가 부족한지, 삶 공부가 부족한지, 목장생활이 부족한지, 사역이 부족한지, 전도가 부족한지, 잘 살펴서 그 부분을 메워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라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데, 도대체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우셔서 나 같은 사람과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까?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나님께 뭐가 이득이 되겠습니까? 그런데도 나와 함께 하시기를 기뻐하시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와 늘 함께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해주시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십니다. 왜 사랑하시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불평불만을 내뱉고 원망을 해도 하나님이 괘씸히 여겨 매일 주는 만나를 거두시거나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치워버리셨다는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게 불순종을 해도 계속 은혜를 베푸시며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계속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들의 불순종과 반역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나타났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을 엉터리로 하고, 하나님을 제대로 믿지도 않고, 교회를 제대로 안 나오고, 자기 마음대로 살고 그러면, 벼락을 내려서 벌하시면 좋겠는데, 전혀 그러지 않으시고 계속 은혜를 주십니다. 공급해주시고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럴 때 빨리 깨닫고 돌아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오해를 해서 , 이래도 괜찮은가 보다라고 하며 계속 잘못된 방향으로 나갑니다. 그러다 아예 잘못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오래 참으셨지만 끝까지 참지는 않으셨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징계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은혜가 있을 때 빨리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하룻길이나 되는 땅 위에 메추라기 떼가 1미터 높이로 가득히 15마일 정도 쌓인 광경을 보면서 ,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구나하는 것을 깨닫기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만 먹으시면 뭐든지 하실 수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또 한 가지, 이스라엘 백성은 냄새도 싫어하기까지 질리도록 고기를 먹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뭔가를 얻었어도, 또 그것으로 인해 싫증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해 인간은 싫증이 날 수 있습니다. 만약 새로 나온 차를 사고 싶다면, 지나가는 차만 봐도 그 차로 보입니다. 그러다 그 차를 결국 샀다면, 꿈이 이뤄졌다고 좋아하고 처음에는 어느 정도 좋은데, 한 달, 두 달, 1, 2년 지나면 싫증이 납니다. 다른 차에 눈길을 돌리게 됩니다. 엄청나게 큰 다이아몬드 반지를 껴도, 가지기 전에 좋은 것이지 막상 가지게 되면 별 것이 아닙니다. 또 다른 데로 눈이 돌아갑니다. 모두 다 지나가는 것이고, 썩어지는 것이고,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장난감을 가지고 신 나게 노는 세 살짜리 어린아이에게서 장난감을 빼앗아 보십시오. 울고불고 뒤집어지며 난리가 납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서 아이가 성장하여 십대가 되었을 때 그 장난감을 트럭으로 사다 줘보십시오. 전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맞는 것을 때에 맞춰 공급해주고, 책임져주고, 돌봐줍니다. 그러므로 자녀는 염려하거나 불평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릴 때는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 이제 그만 놀라고 빼앗으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난리를 치는데, 조금 지나면 거기에 싫증을 냅니다. 커 가면서 계속 다른 것으로 바꿔가는 것처럼, 우리의 필요는 계속 바뀝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거기에 맞도록 공급해주십니다. 중간에 가져가시더라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더 좋게 해주려고 그러시는 것입니다. 자녀가 할 일은 부모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신뢰하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치셨다는 점입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 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불렀으니 욕심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33-34)

 

이 부분에 대해서 시편 78편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껏 먹고 배불렀다. 하나님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넉넉히 주셨다. 그러나 먹을 것이 아직도 입 속에 있는데도, 그들은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셨다. 살진 사람들을 죽게 하시며,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을 거꾸러뜨리셨다.” (78:29-31, )

 

하나님이 누구에게 진노하셨습니까? 모든 백성이 아닙니다. “욕심을 낸 백성”(34)입니다. 시편 78편에 의하면, 그들은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살진 사람들,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15~20마일 되는 거리에 1미터 가량 쌓일 정도로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쏟아부어주셔서 1인당 2리터짜리 페트병으로 천 개가 넘게 가져갈 수 있는 양이었지만, 그런 중에도 또 욕심을 부리는 자들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 정도면 너무 엄청나서 엄두가 나지 않는 그런 양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욕심을 내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먹을 것이 입 속에 있는데도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단순히 식욕이 엄청나서 더 먹겠다고 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더 먹으려는 욕망을 버리지 않은 자들이라고 표현했지만, 배가 부르면 사람이 먹는 데 한계가 있지, 어떻게 계속 먹겠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먹는 게 부족해서 더 먹겠다고 욕심을 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입니까? 나중에 먹을 것을 많이 쌓아두겠다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가져가겠다고 욕심을 부린 것입니다.

 

결국 핵심이 무엇입니까? 사랑입니다. 그들은 이웃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1인당 적게 모은 사람도 2리터짜리 병으로 천 개 이상을 모을 수 있는 엄청난 양의 고기를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는 천 개가 아니라 이천 개, 삼천 개를 가져가겠다고 욕심을 부리면서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들이 가져가지 못하게 방해를 한 것입니다.

 

왜 그렇게 욕심을 부렸습니까? 자원이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 언제 이런 메추라기가 내릴지, 언제 이런 고기가 또 있을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있을 때 쌓아놓아야 한다는, 남들보다 더 확보해야 한다는 이기심과 탐욕 때문입니다. 그것은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언제든지 줄 수 있는 분이신데, 지금 어떻게든 자기가 많이 가져가야 한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결국 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고 그 능력을 의심하게 되면, 그분의 사랑까지도 의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남들은 어떻게 되든지 오직 내 것만 챙기겠다고 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되고 맙니다. 그러면 결말은 비참한 재앙입니다.

 

 

[나가는 말]

 

전능하신 하나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며 나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신뢰해야겠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만나면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사람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기적으로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손이 짧은 분이 아니십니다. 능력에 한이 없으십니다. 전능하실 뿐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외아들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삶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이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셨고, 나를 구원하셨고, 또 지금도 나를 눈동자같이 지켜주시고, 산과 같이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 곁에 계십니다.

 

바로 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운데, 광야 같은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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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약 4:13-17)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2 (11/20/19) kpccoh 2019.11.21 1907
226 "사랑이 모든 것이다" (롬 13장 8~10절) - 금요찬양집회 (11-15-19) kpccoh 2019.11.16 584
225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1-15) - <하나님의 질문에 답하라> 1 (11/06/19) kpccoh 2019.11.07 3196
224 "인생 결산을 위한 기도" (딤후 4:6-1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5 (10/30/19) kpccoh 2019.10.31 1382
223 "소망을 위한 기도" (롬 15:7-13)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4 (10/23/19) kpccoh 2019.10.24 1532
222 "가치 있는 인생을 향한 기도" (골 1:3-12)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3 (10/09/19) kpccoh 2019.10.10 865
221 "거룩을 위한 기도" (살전 5:23-2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2 (10/02/19) kpccoh 2019.10.03 2039
220 "평화를 위한 기도" (데후 3:6-18)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1 (9/25/19) kpccoh 2019.09.26 508
219 "큰 환난 중에서의 기도" (고후 1:3-11) -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0 (9/18/19) kpccoh 2019.09.19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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