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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3일 수요예배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14

소망을 위한 기도

(로마서 157~13)

 

[들어가는 말]

 

지난해인 20187월 태국의 한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과 코치 등 13명이 17일간 동굴에 갇혀 있다가 전원 구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훈련을 마친 후 태국에서 가장 긴 동굴인 탐 루엉 동굴 관광을 위해 동굴로 들어갔는데, 그때 갑자기 내린 폭우로 물이 불어나 입구가 잠기게 되어 동굴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차오르는 물을 피해 더욱 깊은 곳으로 계속 들어갔고, 결국 동굴 안 5킬로미터 지점에서 고립되었습니다. 결국 실종 열흘 만에 그들의 위치가 확인됐고, 마침내 17일 만에 전원 구조되었습니다.

 

이 구조 작전의 극적인 성공에는 여러 요인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당시 25세였던 젊은 코치의 리더십이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코치는 소년들에게 움직임을 최소화해서 에너지를 아끼도록 하는 동시에, 병균의 위험이 있는 동굴바닥의 물 대신 천장에 맺힌 물을 마시도록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그들은 동굴에서 생일 파티를 하기 위해 간식을 챙겨갔었는데, 구조대가 자기들을 발견해서 음식을 가져다주기 직전까지 열흘 동안 가져간 간식으로 버텼다고 합니다. 그러나 코치는 간식을 전혀 먹지 않고 소년들만 먹게 하면서 자기는 오직 물만 마시며 버티는 정신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겨우 25세에 불과한 어린 코치였지만, 그들의 생존 방법을 보면 코치가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그 상황에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구조를 기다린 것으로 보입니다. 코치는 소년들의 패닉을 막기 위해 명상이나 잠을 권유했고, 축구팀 구호를 외치게 하여 기운을 북돋아 주기도 했습니다. 또한 아이들의 순번을 정해서 새로 땅을 파도록 하여, 최대 5m까지 팠다고 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절박함에서 나온 행동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자체도 생존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탈출할 수 있다는 희망을 살릴 수 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코치는 동굴 안에서 불안해하는 소년들에게 우리는 모두 살아서 나갈 것이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계속 주입시켰습니다. 덕분에 아이들 모두 포기하지 않고 구조를 기다릴 수 있었고 마침내 구조되었습니다. 구조 후 인터뷰에서 아이들은 코치의 말을 믿고 우리는 반드시 살아나간다라는 믿음을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들을 살린 두 가지 요인은 희망과 믿음이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어려움을 이겨내는 데에도 희망과 믿음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특히 희망과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의 희망은 단순히 살아 나갈 수 있다는 희망 정도가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하며 로마 교회가 성도들을 잘 세워 세계 복음화의 과제를 이룰 수 있도록 축복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13)

 

바울은 로마 성도들이 하나님을 무엇보다 소망의 하나님으로 알기를 기도합니다. 당시 박해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박해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렇게 그들이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때 로마의 복음화가 가능할 것을 믿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그들이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면, 그것은 어떤 언어보다도 강력한 믿음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소망의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을 통해서 그들의 삶을 소망으로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소망이 넘치는 삶, 소망으로 충만한 삶을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기쁨으로 충만한 삶

 

사도 바울은 소망이 넘치는 삶의 특징으로 기쁨과 평강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바울이 이미 로마서 14장에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로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4:17, )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본질로서 기쁨이 강조됩니다. 하나님 나라는 기쁨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기쁨의 백성입니다. 왜 기쁨이 가득합니까? 소망을 갖고 살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없다면 우리는 슬픔의 백성, 우울함의 백성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없어지지 않을 소망을 가졌다면 어떻게 기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바로 앞에서 뭐라고 선언합니까?

 

또 이르되 열방들아 주의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라 하였으며, 또 모든 열방들아 주를 찬양하며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하라 하였으며” (10-11)

 

우리가 즐거워하는 이유, 또 우리가 찬송하는 이유는 소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어서 바울이 또 뭐라고 합니까?

 

또 이사야가 이르되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있으리니 열방이 그에게 소망을 두리라 하였느니라” (12)

 

이새의 뿌리 곧 열방을 다스리기 위하여 일어나시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모든 열방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찬송의 원인이 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기쁨으로 충만했기 때문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자기를 사랑했던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담대히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 다시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4:4, )

 

결코 감옥이 가둘 수 없는 기쁨, 쇠사슬이 결박할 수 없는 기쁨이 바울 안에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소망이 그를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고백을 보십시오.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아무 일에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온전히 담대해져서, 살든지 죽든지, 전과 같이 지금도, 내 몸에서 그리스도께서 존귀함을 받으시리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시니,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1:20-21, )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소망으로 인하여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또 어디서든지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될 것이고, 계속 살게 되면 소망이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인생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감옥 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옥 밖의 성도들에게도 항상 기뻐하라고 권면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가지 된 우리가 온전히 연합되었을 때 삶의 열매가 나오는데, 그것이 바로 기쁨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게 하고, 또 너희의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5:11, )

 

 

2.   평강으로 충만한 삶

 

우리의 삶이 소망으로 채워지면 기쁨과 함께 평강으로 충만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고 바울은 선포합니다(13). 평강(평화, 평안)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불안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우리의 미래는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평강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는 평강의 나라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평강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평안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삶 속에는 아무 걱정거리나 어려움이 없고 모두 다 만사형통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도 삶 속에서 끊임없이 위기와 불안을 경험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평안할 수 있습니까? 시편 말씀을 보십시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42:5)

 

불안한 상황이 닥치는 순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때 그분의 도우심을 신뢰하게 되면서 우리는 불안해하는 대신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 영혼은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어떤 그림이 있었는데 크리스천의 평화가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화라고 하면 잔잔한 바다 위에 요트가 떠다니고,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고, 햇빛이 따사롭게 비치고, 사람들이 수영하거나 모래성을 쌓고 있는 그림을 그리며 평화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어떤 크리스천이 그린 그림 중에 엄청난 비바람과 폭풍이 불고 배경도 새카맣게 그렸습니다. 거기 작은 바위틈이 있어 거기서 어미 새가 아기 새를 품고 있는 장면을 그린 다음 이것이 평화라고 했습니다.

 

우리 크리스천의 평화는 잔잔한 바다 같은 것이 아니라 두 번째 그림 같은 평화입니다. 엄청난 폭풍이 불고 있는데 그 가운데 어미 새가 아기 새를 잘 지켜줘서 아무 걱정이 없는 것처럼, 비록 엄청난 폭풍이 치는 세상이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괜찮은 것이 평화입니다.

 

독일 출신으로 20세기 초반의 위대한 신학자였던 폴 틸리히(Paul Tillich)가 있습니다. 그가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 존재의 불안은 근본적으로 비존재에 대한 불안, 곧 죽음으로 우리가 없어질 것에 대한 불안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맞는 말입니다. 인간이 왜 불안해합니까? 파고 들어 보면, 근본적으로 죽음에 대한 불안, 죽어서 자기가 없어질 것에 대한 불안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고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죽음이 다가오면 다들 불안해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게 됩니다. 그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소망입니다. 이 소망을 가질 때 우리 존재의 불안은 극복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의 죽음으로 없어질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우리가 스스로 자기확신을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 안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죽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불안은 그렇다고 해도, 삶의 염려와 걱정들은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그에 대한 처방이 바로 기도라고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4:6-7, )

 

염려할 것들이 생기면 그 모든 것을 기도제목으로 바꾸라는 것입니다. ‘, 어떡하지?’ 하고 걱정하며 불안해하지 말고, 그런 일이 생기면 주님하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할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기서 지키다라는 단어는 원래 군대 용어입니다. 염려할 만한 모든 일에 대해서 염려하는 대신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게 되면, 그것도 기도할 수 있는 대상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가지고 아뢰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든든히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염려하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두 가지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하나는 마음이고 다른 하나는 찢다입니다. 그러니까 염려란, 마음이 여러 가지 일로 나뉘고 찢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걱정거리가 있을 때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기도하고 간구하면, 우리 마음은 오직 하나님의 임재로만 가득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으로 충만하게 되는데, 그렇게 소망의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바로 평화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고 간구하라고 했습니다. ‘간구는 간절히 구하는 것인데 왜 기도라고 또 나와 있습니까? 기도는 대화입니다. 기도에는 구하는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뭐든지 다 대화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고, 특히 내가 원하는 것을 감사함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주시는 것이 평화입니다.

 

 

3.   믿음 안에서 사는 삶

 

소망이 넘칠 때 우리는 기쁨의 삶과 평강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에 더하여 바울은 소망이 넘칠 때 우리가 믿음 안에서 살게 된다고 말합니다. 소망은 우리를 믿음 안에 있게 하고,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13절에 믿음 안에서라는 말은 한두 번 믿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믿으며 신뢰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소망은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믿고 신뢰하는 사람이 되게 해줍니다. 그렇게 계속 믿고 신뢰할 때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를 소망으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소망도 있습니다. 믿음이 현재에 관한 일이라면, 소망은 미래에 관한 일입니다. 현재의 믿음이 내일의 소망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게 많은데, 사실 미래는 오늘의 삶의 총합입니다. 오늘 한 순간, 한 순간이 합쳐져서 미래가 되는 것이지, 갑자기 미래가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걱정될 때는 기도하는 가운데 지금 현재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미래가 만들어집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선조들은 이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증언되었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나 있는 것에서 된 것이 아닙니다.” (11:1-3, )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야말로 우리가 소망으로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기초가 되며, 비록 당장 눈앞의 답답하고 힘든 현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야말로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보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살아 있는 믿음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가 됩니다. 우리가 믿고 나아갈 때 성령님은 우리를 기쁨과 평강으로 채우시고, 소망으로 채워주십니다.

 

유대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 <아니 마민>(Ani ma’amin)이라는 슬프고 아름다운 노래가 있습니다. ‘아니 마민나는 믿는다’(I believe)라는 뜻입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은 가스실로 끌려가면서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이 노래는 원래 12세기 유대인 랍비 모세 마이모니데스(Moses Maimonides)가 만든 시였는데, 2차 대전 때 포로수용소에서 다시 태어난 노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소망이 사라진 절망 속에서 태어난 노래이며, 절망 속에서 부른 소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나는 확실히 믿네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나는 믿네 나는 메시아의 오심을 믿네

그가 오신다는 것을 믿네

나는 메시아의 오심을 믿네

그가 오신다는 것을 믿네

그의 오심이 늦을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기다린다네

그의 오심이 늦을지라도

그럼에도 나는 기다린다네

그의 오심을 날마다 기다린다네

 

이 노래는 후에 유대인 시인 레이빅(Leivick)이란 사람에 의해 약간 개사되어 불리게 됩니다.

 

벙커에서도 우리 유대인들은 아니 마민을 부른다네

메시아의 오심을 믿는다고

그의 오심이 늦을 지라도 나는 믿네

그는 저기에서 여기에서 오실 것이라고

캠프(수용소)에서도 우리는 노래를 부른다네

나는 믿네 나는 믿네

그의 오심이 늦을 지라도

나는 믿네 믿는 자처럼 나는 믿네

우리 모두 노래를 부르세, 나는 믿는다고

우리가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노래는 스스로 불릴 것이네

저녁에도 새벽에도 나는 믿네

그의 오심이 늦을지라도

그는 오실 것이네, 확실히 오실 것이네

언제 어떻게 오실 것인지 묻지 말게나

유대인의 노래처럼 나는 믿네 나는 믿네

보라 그는 오시고 있지 않은가

보라 그는 여기에 계시다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된 한 유대인 의사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빅토르 프랑클(Viktor Frankl)이었습니다. 그는 가스실로 보내질 유대인 포로들을 매일 뽑아서 데려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일하다가 몰래 주머니에 숨겨온 유리 조각으로 매일 아침이면 면도를 하고 기도를 드린 후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믿네 나는 믿네 메시아의 오심을

그의 오심이 늦을지라도 나는 믿네

보라 그는 오시고 있지 않은가

보라 그는 여기에 계시다네

 

수용소 독일군 간수들이 가스실로 보낼 사람을 뽑을 때마다 그의 반짝거리는 눈빛과 면도로 깨끗해진 얼굴을 보고 이 사람은 안 되겠네하면서 그를 비껴갔고, 눈이 흐리멍텅한 사람들, 딱 봐도 절망으로만 가득한 사람들을 데리고 갔다는 것입니다. 마침내 독일이 항복한 뒤 수용소에서 살아나오면서 프랑클은 다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나는 믿네 나는 믿네 메시아의 오심을

그의 오심이 늦을 지라도 나는 믿네

 


극한 상황 속에서도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며 소망 가운데 살아난 유대인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이미 오셨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시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우리야말로 믿고 신뢰할 이유가 얼마나 많습니까? 혹시 지금 절망적인 상황이나 극심한 어려움이나 불안한 상황 속에 있다 할지라도, 넘치는 소망으로 하나님을 향해 고백하기 원합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님, 제가 믿습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는 사람들에게 성령님께서 반드시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소망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 믿고 신뢰하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쁨과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정말로 이 소망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지금 자신의 삶에 충실합니다. 그래서 기도로 나아가며 평화를 얻습니다.

 

바로 이 소망을 가진 사람들로서, 지금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의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소망의 복음을 나누어주는 우리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결단의 기도

1)  소망의 증거인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소서.

2)  소망의 증거인 평화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소서.

3)  소망의 증거인 믿음으로 계속해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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