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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94일 수요예배

바울에게서 배우는 성화의 기도 9

담대한 전도와 선교를 위한 기도

(에베소서 610~20)

 

[들어가는 말]

 

오늘 본문에서 담대히라는 단어가 두 번 나옵니다(19, 20). 헬라어로 파레시아’(parrhesia)라는 단어인데,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상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고자 할 때 사용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복음 증거의 기회가 점점 더 제한되고 위협받는 상황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미 20여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돌아가신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목사님은 기독교의 복음전도자이기 때문에 어느 주립 대학교에서 집회를 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마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는 사람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강연을 했습니다. 그는 라마불교의 수장이기는 해도 철학자이며 선생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해준 것입니다.

 

그렇듯 이미 오래 전부터 기독교는 안 되고 불교는 된다는 식으로 차별이 있어 왔습니다. 혹시 공공장소에서 크리스천 리더가 강연하는 것이 허락되더라도, ‘하나님이나 예수님같이 종교적인 말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조건이 붙는 것이 지금 미국의 현실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어느 나라나 경제, 과학, 기술, 스포츠, 문화, 직업교육, 의술 등의 분야에서는 도움을 받고 교류하는 일에는 활짝 열려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한다고 하면 어서 오십쇼!’입니다. 그러나 복음에 관해서는 점점 더 폐쇄적인 세계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담대한 전도와 선교가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는 사실 우리 시대보다 훨씬 더 복음에 대해 닫혀 있던 세상이었고, 로마의 황제 숭배가 점점 본격화되어 가던 시대였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내가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19-20)

 

무엇보다 그는 자신이 담대한 복음의 증언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감옥의 고난 중에서도 더욱 담대하게 복음을 증언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부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일부러 힘들게 하고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제자들을 전도여행에 보내실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0:16)

 

얼마 전 영어예배 때 이 구절을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말씀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냥 들으면 이상합니다. 사실 성경적으로 은 별로 좋지 않은 건데, 왜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하십니까?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는 것은 이해가 되는데, 뱀 같이 지혜로워라?

 

이것은 복음에 있어 타협하거나 수를 쓰면서 전하면 안 되며 순수하고 정직하게 진리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동시에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계획을 세우고 전략을 세우며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이 시대의 전도와 선교의 과제는, 어떻게 하면 순수함을 지키는 동시에 담대하면서도 지혜롭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순수하면서도 지혜롭고 담대한 전도와 선교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크게 세 가지로 가능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0-11)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온 몸을 덮는 갑옷)로 무장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악한 영들을 상대로 싸워 승리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2-13)

 

16절에서 사도 바울은 복음의 원수인 마귀와 그가 부리는 악한 영들이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불화살을 쏘고 있다고 말합니다(16). 이러한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지키고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4:27).

 

“2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30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31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32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4:25-32)

 

이 말씀을 보십시오.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며 주로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전부 다 이웃과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 거짓말이 아니라 참된 말을 하라는 것

-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는 데까지 이르지 않게 하고 해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는 것

- 도둑질하지 말고 자기 손으로 일하여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는 것

-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 필요한 선한 말을 하라는 것

- 악독, 노함, 분냄, 떠드는 것, 비방하는 것을 악한 의도와 함께 버리라는 것

- 서로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일들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이웃과의 관계를 제대로 하지 못할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까? 성령님을 근심하게 해드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겁니다(30). 그러므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이웃과의 관계가 올바로 세워져야 가능합니다.

 

자기는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고 하고 이웃과의 관계는 엉망이라면, 그것은 결코 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별개가 아니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데, 영적전쟁에 승리하려면 성령 충만하고 예배와 기도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이웃과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영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기도는 되게 열심히 하는데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안 좋다. 그래도 괜찮다.’라고 할지 몰라도, 괜찮은 게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패배는 항상 깨어진 관계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사항입니다.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세워지지 않으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가 어떻게 세워집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게 될 때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이웃과의 관계가 깨지고 무너져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려고 시도하는 것이 마귀의 간계입니다. <새로운 삶>에 나오는 내용인데, 누구에게 내가 화를 내고 악독한 말을 하고 노함과 분냄으로 나아간다면, 저쪽 어두운 데서 씩 웃고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게 누구이겠습니까? 주님이겠습니까? 마귀가 웃고 있습니다.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라고 합니다. 지금 마귀가 좋아하는 일을 내가 하며 거기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전신을 무장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11). 그렇게 될 때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로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4-17)

 

위에서부터 아래로 보면, 머리에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17), 가슴에는 의의 호심경(가슴막이)을 붙이고(14), 허리에는 진리의 허리띠를 띠고(14), 발에는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15), 한 손에는 믿음의 방패를 들고(16), 또 다른 손에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들라고 합니다(16). 그런데 등에는 아무런 무장이 없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새로운 삶> 교재에 바로 이 질문이 나옵니다. 왜 등에는 아무 무장이 없는가? 답이 무엇입니까? 다섯 가지 보기가 주어져 있습니다.

 

(1)  사탄은 절대 우리의 뒤에서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다.

(2)  우리는 사탄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의 싸움을 이기셨기 때문이다.

(4)  위의 보기가 모두 맞다.

(5)  위의 보기 중 하나는 틀리다.

 

뭐겠습니까? 정답은 (2)번입니다. 우리는 사탄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에게 등을 보이며 도망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등을 보이며 도망하지 말고 앞으로만 전진해야 합니다. 등을 돌려 도망가면 불화살에 맞습니다. “뒤돌아서지 않겠네라는 찬송가 가사처럼 선포하며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천로역정>에서 순례길 중에 주인공 크리스천이 들어가는 아름다운 집이 있습니다. 이 집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여기서 쉼을 얻고 평안을 회복합니다. 그리고 영적 독서를 하며 영적 지식을 얻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집을 떠나기 전에 무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집을 나가면 겸손의 계곡’(Valley of Humiliation)에서 사탄과의 전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장하지 않은 크리스천은 이 골짜기에서 승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지 않고는 담대한 전진도, 담대한 전도와 선교도 불가능합니다.

 

 

2.   기도로 사탄을 대적하라

 

또한 우리는 가능한 모든 기도로 사탄을 대적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18)

 

개역개정에는 모든이라는 단어가 한 번 나오지만, 사실은 다섯 번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기도’, ‘모든 간구’, ‘모든 때’(항상) 2, ‘모든 성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적을 향한 우리의 공격 무기입니다.

 

농구 경기를 보면, 경기에서 뒤지고 있거나 불리한 입장에 있는 팀의 감독이 위급한 순간이나 경기가 끝날 때가 가까워질 때 시도하는 수비 작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올 코트 프레싱’(All court pressing, 전방위 압박) 작전입니다. 바짝 달라붙어 최대한 압박을 가하는 이 수비 작전을 펼치면, 상대 팀이 당황해서 실수를 하거나 공을 빼앗기게 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그 공을 빨리 잡아 곧장 공격으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올 코트 프레싱은 강력한 수비 전략이지만, 사실은 공격 전략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가능한 모든 기도를 총동원하여 중보기도를 하면서 사탄에 맞서야 합니다. 총동원 기도라는 강력한 수비 전략을 통해 곧장 공격으로 전환하여 승리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시대에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최후의 전도와 선교 전략은 기도입니다.

 

마귀는 성공적인 전도와 선교를 위한 우리의 토론이나 회의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총동원 전도집회나 전도대회나 선교 이벤트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선교골프대회나 바자회 등 선교비를 모금하기 위한 활동들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회의하고 토론하고 준비하고 이리저리 뛰면서 일하는 것을 마귀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하라고 부추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면 서로 감정이 상할 일이 생기고 안 좋은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아주 두려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특히 중보기도를 시작하면 두려워 떱니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기도의 삶>을 들어야 하고 중보기도 사역에 헌신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제 곧 있을 가정교회 간증집회도 있으니까 그냥 참여하는 정도가 아니라 기도로 준비해야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특히 전도와 선교와 VIP를 섬기는 일에 있어서, 열심히 섬기고 토의하고 계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기도입니다. 물론 기도만 하고 다른 것은 안 해도 문제이지만, 먼저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사탄이 떨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담대한 전도와 선교, 놀라운 생명의 역사는 기도의 무릎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더욱 중보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선포하라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담대한 전도와 선교’(Bold evangelism and mission)입니다. 바울의 중보기도제목을 다시 보십시오.

 

또 나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내가 입을 열 때에,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서 담대하게 복음의 비밀을 알릴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십시오. 나는 사슬에 매여 있으나, 이 복음을 전하는 사신입니다. 이런 형편에서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말할 수 있게 기도하여 주십시오.” (19-20, )

 

바울은 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 로마의 감옥에 갇혀 쇠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쇠사슬에 매인 것까지도 담대한 복음 증거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감옥에 갇힌 바울을 통해 그를 가두고 감시하던 로마 시위대 안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같은 옥중서신인 빌립보서에서 바울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게 일어난 일이 도리어 복음을 전파하는 데에 도움을 준 사실을, 여러분이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이 온 친위대와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습니다.” (1:12-13, )

 

친위대’(Praetorian)는 로마 황제도 나오던 군대입니다. 거기서 나온 군인들이 바울과 함께 하며 지키는데 하루 3교대로 돌아갑니다. 심지어 시저의 황실 사람들도 바울을 통해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증거들도 보게 됩니다.

 

모든 성도가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특히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4:22, )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황제의 집안에 속한 사람들’, 즉 황제의 가족들까지도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과 함께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문안에 동참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로마의 감옥과 쇠사슬이 바울의 몸은 가두어놓았을지 몰라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두어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침내 로마는 복음화 됩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우리가 복음 전파를 포기할 수 없는 사명으로 확신하고 나아간다면,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복음은 제한되지 않고 퍼져나가게 됩니다.

 

그런데 때로 현지의 법이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제한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그 나라의 공권력이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제한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선교를 하려는 그 나라의 종교가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제한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 현지의 문화가 우리의 전도와 선교를 제한하려 할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감옥에 가둘 수도 있고, 추방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추방당한 선교사님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법이나 공권력이나 종교 세력이나 문화도 제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그들이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막겠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어떤 세력도, 우리의 기도를 제한하지 못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전도할 수 있을만한 상황에서만 전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뭐라고 합니까?

 

그대는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힘쓰십시오.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책망하고 경계하고 권면하십시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딤후 4:2-5, )

 

그렇습니다. 점점 더 사람들은 주님의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고, 그저 자기 귀를 즐겁게 해주는 말만 들으려고 하면서 진리를 외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다만 지금 이 시대만의 현상이 아니라 2천 년 전에도 똑같았습니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도 1세기 크리스천들은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했고, 그 결과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가 계속 일어났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복음은 선포되고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 한, 복음은 계속 세상에 전해지고 생명의 역사는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그 역사에 쓰임 받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담대한 전도와 선교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해야 할 이유입니다. 다시 한 번 전도와 선교를 향한 주님의 명령 앞에 담대하게 서서 기도와 말씀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결단의 기도

1)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도록 기도

2)  우리의 가능한 모든 기도로 사탄을 대적하도록 기도 (특히 VIP들을 위해)

3)  우리와 복음의 일꾼들이 어떤 상황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도록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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