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특별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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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7일 수요예배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4 ✦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나아가기”(2)
(고린도전서 2장 9~16절)
1. 영적 분별력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들
지난주에는 영적 분별력의 중요성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잘 분별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1) 거짓된 영을 분별하기
2) 사람을 분별하기
3) 자신의 영적 상태를 분별하기
4) 시대와 사건을 분별하기
5) 개인적 사건을 분별하기
2. 영적 분별력을 얻는 방법
오늘은 어떻게 해야 영적 분별력을 가질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분별력과 지혜를 만드는 것이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그 말도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인생 경험이 많은 분들의 경륜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상처만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따라서 경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영적 해석입니다. 영적으로 경험을 잘 걸러낼 때(filtering) 그 경험이 지혜와 영적 분별력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3-14절)
육에 속한 사람, 즉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많은 일을 경험하고도 그 경험에서 영적인 진리를 제대로 깨닫지 못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3장으로 넘어가면 사도 바울은 바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해 ‘너희는 육에 속한 사람이다. 영적 어린아이다.’라고 합니다.
1장에서는 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굉장히 칭찬합니다. 고린도전서는 아주 다이내믹하고 내용이 화려한 편지입니다. 소위 ‘은사 장’(12장), ‘사랑 장’(13장), ‘부활 장’(15장) 같은 내용들이 다 포함되어 있는 대단한 편지입니다.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아주 대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은사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났고, 체험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들을 향해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이며 ‘영적 어린아이’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그들 가운데 분열과 다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은사와 체험이 아주 많았고 열심도 대단했지만, 파가 갈라져 분열되고 싸웠습니다. 그렇게 갈라져 싸우는 것은 결코 주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자기들의 마음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육에 속한 사람이고 어린아이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육에 속한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니까 늘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게 됩니다. 특히 하나님이 내 삶 속에서 하신 일들을 인간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면 큰 잘못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우리가 읽는 모든 책들과 듣는 모든 말들은 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입니다.
아무리 나쁜 일이 일어나고 불편한 상황이 벌어지고 관계가 나빠지는 경우가 되더라도, 우리가 이 질문을 하면 해결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혹시 어려움이 닥치거나 불편한 일이 생길 때 이 질문을 꼭 해보십시오. ‘이것의 좋은 점은 무엇인가?’ 이 말은 바로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지금 이 상황에서 주님이 원하시는 게 뭔지, 주님이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를 보자는 것입니다.
물론 마귀가 이용하는 것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경험들은 영적으로 걸러지고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경험을 나쁘게 이용해서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원망을 심으려는 마귀의 노력이 다 씻겨나가고,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와 성숙함이 우리 안에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잘 분별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15-16절)
우리가 삶 속에서 경험하는 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올바른 영적 분별력을 얻게 해주는 도구로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얻도록 해주는 첫 번째 도구는 말씀입니다.
➀ 말씀을 묵상하라
먼저 우리는 그냥 바라보거나 읽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적극적인 말씀 묵상이 필요합니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시 119:99)
‘주의 증거들을 늘 읊조린다’는 말은 지속적인 말씀 묵상을 의미합니다. 성경책을 잠시 읽다가 탁 덮은 뒤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걸어 다니든지 밥을 먹든지 항상 말씀을 묵상하며 다닌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온갖 지식을 가졌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전혀 모르는 스승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지식은 그냥 들으면 그럴듯하지만 결정적일 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결정적인 돌파를 할 수 있는 힘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렇게 인생의 위기 상황에서 말씀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지속적으로 꾸준히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냥 생각만 하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기록을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기록하지 않으면 뭘 했는지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록해야 합니다. 나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있습니까? 요즘 고린도전서를 묵상하면서 많은 것들을 깨닫습니다. 나는 매일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인가를 늘 물으며 살아야 합니다.
➁ 말씀에 순종하라
지속적으로 말씀을 묵상한다면 그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주의 법도들을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시 119:100)
노인(어르신)들은 인생의 많은 경험을 한 분들이기 때문에 젊은이들보다 뛰어난 노련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들의 긴 세월의 경험도 영원하신 하나님의 경륜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경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단계에서 더 나아가 말씀을 순종하고 실천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르신들보다 더 뛰어난 명철함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순종하는 데서 파워가 나옵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약 1:22, 25)
말씀은 듣고 읽기만 해도 유익이 있지만, 그것은 금방 효력이 떨어집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할 때 복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영적 분별력입니다. 영적 분별력이란 그냥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말씀을 묵상하다가 그 말씀대로 살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순종할 때 영적 분별력이 생기고 인생이 변화됩니다.
순종 없는 묵상은 공허할 뿐입니다. 아무 힘이 없습니다. 아무리 ‘사랑’에 대해 말씀을 묵상하고 사랑에 관하여 온갖 신앙서적을 다 읽어도, 정작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생각만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몸을 움직여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그렇게 말씀대로 사는 순종과 실천과 행동이 있을 때 주어집니다.
➂ 말씀을 분별하라
그런데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말씀 자체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마귀도 말씀을 가지고 장난을 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시편 말씀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마 4:6, 새)
“그가 천사들에게 명하셔서 네가 가는 길마다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니, 너의 발이 돌부리에 부딪히지 않게 천사들이 그들의 손으로 너를 붙들어 줄 것이다.” (시 91:11-12, 새)
사탄이 교묘하게 바꾸어 인용한 시편 91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디를 가든지 지켜주시며 걸어갈 때 돌에 걸리지 않게 천사들이 붙들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탄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하면서 그 말씀을 비틀어서 사용했습니다. 이것은 완전히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은 또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마 4:7)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단들도 말씀을 교묘하게 편집해서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올바르게 분별해야만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지식적으로 많이 아는 것보다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딤후 2:15)
에베소의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주어진 일은 성도들이 말씀을 옳게 분별할 수 있도록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말씀을 왜곡시켜서 성도들을 미혹하지 않도록 올바르게 가르쳐야 했습니다.
말씀을 옳게 분별한다는 것은 구절들 사이에 담긴 뜻을 읽어낸다는 것입니다.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정확한 의도를 읽고, 그 안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읽으면 지식적으로 성경을 보는 데에 그치고 맙니다. 예수님도 항상 비유를 말씀하신 다음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➃ 성령 충만하라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0-11절)
하나님은 영이시며, 영은 영으로 통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영(성령)으로 쓰인 말씀이기 때문에 성령으로만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인 성령으로만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눈으로 말씀을 보아야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 보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설교할 때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설교자들이 늘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설교를 듣는 사람도 성령 충만한 귀로 들어야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성경 말씀을 하나님께서 ‘드러내 보여주시는 계시(revelation)’라고 부릅니다. 계시를 주시거나 안 주시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똑똑한 사람이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고서는 결코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씀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고 묵상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 분별력을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2) 기도
영적 분별력을 얻는 두 번째 도구는 기도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영적 분별력과 지혜가 계속해서 주어집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약 1:5)
이 말씀이 ‘지혜가 부족한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되고 나에게는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지혜가 부족합니다. 누가 지혜로 가득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지혜가 부족한데, 스스로 지혜가 부족하다고 인정할 만큼 겸손하다면 기도하라. 그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주실 것이다.’
기도함으로 지혜를 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너무나 위대했던 아버지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그는, 큰 왕국인 이스라엘을 다스리기에 너무나 부족한 자신을 잘 알고서 두려움 가운데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에게 지혜로운 마음을 주셔서, 주님의 백성을 재판하고,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많은 주님의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겠습니까?” (왕상 3:9, 새)
하나님은 이 기도를 기뻐하시며 솔로몬에게 이 세상 그 누구도 갖지 못했던 하늘의 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이랬던 그가 나중으로 가면서 타락하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도의 비밀을 알았던 다니엘 역시 그 바쁜 공직생활 가운데서도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따로 내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 시간은 다니엘이 바쁜 와중에 의무감에서 억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했던 것입니다.
솔직히 자신을 한 번 돌아보십시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다니엘만큼 바쁘겠습니까? 당시 바벨론은 지금의 미국과 중국을 합친 정도의 대제국이었습니다. 그런 엄청난 제국의 실무책임자인 총리대신이었으니 아침부터 밤까지 다니엘의 일정이 얼마나 꽉 찼겠습니까? 하루 종일 복잡하고 힘든 업무를 끊임없이 처리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 바쁜 일정 속에서 다니엘은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들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하는 말 중에 “Too busy to pray”(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없다)라고 하는데, 그게 아니라 어느 책 제목처럼 “Too Busy Not to Pray”(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가 된 겁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일이 바빠질수록 더 기도했다고 합니다. 너무 바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고는 이 많은 일들을 감당할 수 없다고 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와 너무 다릅니다. 우리는 바쁘고 시간이 없으니까 기도를 안 하는데, 바쁠수록 더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그랬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난 하나님의 지혜를 그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랬기에 다니엘의 리더십이 남들보다 열 배는 더 탁월했던 것입니다.
영적 분별력을 받기 원하고 하늘의 지혜를 받기 원한다면,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특별히 세상이 복잡하고 삶이 힘들수록 시도 때도 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부어주시고 영적 분별력을 주실 것입니다. 특히 실수하거나 실패했을 때 그것을 잘 수습하고 회복할 수 있는 비결을 찾기 원한다면 기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도 이새의 아들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새 왕을 선택할 때 처음에는 제대로 못 보고 잘못 판단하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가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여 장남 엘리압에게 기름을 부을 뻔했을 때, 하나님께서 곧바로 말씀하시며 그의 생각을 고쳐주신 것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늘 기도하고만 있으면 혹시 순간적으로 잘못 판단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할 때가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영적 분별력을 부어주셔서 고쳐주실 것입니다.
3)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영적 분별력을 얻는 세 번째 도구는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즉 교회입니다. 영적 분별력은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생활을 통해 끊임없이 점검을 받습니다. 어느 누구도 완전한 인간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사람들입니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남의 일에는 정확하게 훈수를 두는 사람이라도, 자기 문제일 경우에는 객관성과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감정적으로 반응하기가 쉽습니다. 그럴 때 공동체 안에서 형제자매들이 분별력을 계속해서 점검해주어야 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없는 사람은 강퍅하고 완고하며 자기 고집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주어도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영적 분별력이 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서로를 보완해주고 도전해주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로 부르신 것입니다. 교회가 하는 일이 바로 그겁니다. 서로 사랑하고 섬기며 믿음으로 도전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목장이기 때문에 우리는 목장으로 모이는 겁니다. 성경적인 신앙생활은 언제나 공동체 안에서 하는 것이지, 혼자서 열심히 잘 믿어보겠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이 아니라 자기 확신일 뿐입니다.
인생 가운데 무슨 일이 생겼는데 객관적으로 영적으로 잘 분별이 안 될 때, 목회자나 믿음이 성숙한 지체들에게 가서 의논하고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쉬쉬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비밀이 많은 사람일수록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남들에게 숨길 정도로 철저히 비밀로 할 만한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비밀로 해야 하는 것은 다른 지체들에게 해가 될 때이지, 자기 문제를 쉬쉬 하며 비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목장에서 서로 기도를 부탁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중보기도실에도 기도제목을 내서 같이 기도하는 겁니다. 주보에도 내서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사랑 안에서 간절히 서로를 위해 합심해서 기도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세겹줄 기도, 짝기도, 합심 기도를 열심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많이 경험한 것처럼, 그렇게 합심해서 하는 기도에 얼마나 응답을 잘해주셨습니까?
“내가 진정으로 거듭 너희에게 말한다. 땅에서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합심하여 무슨 일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자리, 거기에 내가 그들 가운데 있다.” (마 18:19-20, 새)
우리 모두에게는 자신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또 성경적으로 보면서 사랑의 마음으로 지혜롭게 조언해줄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혼자서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목장은 억지로 가는 귀찮은 모임이 아니라, 나 자신을 영적으로 온전히 지키기 위하여 꼭 필요하고 유익한 모임입니다.
그런데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를 통한 영적 분별력이라고 해서 반드시 현재 속한 교회 공동체에만 제한할 필요는 없습니다. 훌륭한 믿음의 선배들과의 교제나, 깊이 있는 영성을 가진 신앙인들이 쓴 경건 서적들을 읽음으로써, 혹은 좋은 설교를 들음으로써 영적 분별력을 계속 발전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특히 영적인 지혜와 분별력이 가득 담긴 기독교 고전들을 읽으면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요즘 나오는 훌륭한 신앙서적들도 너무 많은데, 그런 책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분별력을 단단하고 날카롭게 다듬어주시는 도구가 됩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 정화되고 해석된 경험들이, 건강한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나누는 교제를 통해 다시 한 번 다듬어지면서, 우리는 더욱 깊어지고 성숙해져 갑니다. 영적 분별력을 얻을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주어진 영적 분별력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가 마귀의 공격을 이겨내려면 교회의 리더들이 영적으로 성숙해야 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대부분은 교회의 리더들입니다. 목회자인 저를 비롯해서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들의 영적 분별력이 더욱 깊어지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교회는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교회는 성장에서 성숙으로 가야 하는데, 이것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게 영적 분별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크고 놀라운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는데, 이것 또한 영적 분별력이 없이는 볼 수가 없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하나님의 길을 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나침반이라면, 영적 분별력은 그 나침반을 볼 수 있는 능력입니다.
영적 리더가 성경 지식도 많고 훈련도 많이 받았지만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시험에 들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리더일수록 늘 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며 영적 분별력을 키워야 합니다. 말씀을 늘 묵상하며 실천하고, 늘 깨어 기도하며,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 안에서 귀한 교제의 모범을 보이며 영적 분별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만드는 길은 화려하고 크고 넓어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고 싫어합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만 사탄이 만들어 놓은 길의 위험을 알고 피할 수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내시는 길 위에 있는 복을 볼 수 있게 되어 그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런 영적 분별력으로 가득하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이 세상에 유익을 끼치는 귀한 인생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