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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4일 주일예배

예수님의 비유 4

겨자씨 한 알과 누룩 같은 천국

(마태복음 1331~33)

 

[들어가는 말]

 

한국 사람이라면, 특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잊지 못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침 아시안컵 축구대회가 지금 진행되고 있고 한국 팀이 4강에 진출해 있습니다. 여기 우리 중에 대학생들은 2002년 월드컵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던 청년들도 있습니다.

 

그때까지 월드컵 축구대회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했던 한국 팀을 이끌 지도자로 네덜란드 출신의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감독이 월드컵 시작을 1년 반 앞두고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팀을 맡고 나서 평가전을 할 때 강팀들에게 계속 패하고 그것도 50으로 몇 번 져서 별명이 오대영이라고 붙기도 했습니다. 그때 경기 내용도 좋지 않아 엄청난 비난을 받았고, 심지어 더 늦기 전에 감독을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한국 대표 팀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점점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월드컵 개막을 한 달 앞둔 시점에 히딩크 감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월드컵에서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는 팀이 어떻게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는 것인지 의아해했습니다.

 

마침내 대회가 시작되어 폴란드와 첫 경기를 벌였는데, 놀랍게도 거기서 20으로 완승하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고 세계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미국과 2차전에서 무승부를 이루고, 3차전 경기에서는 당시 우승 후보 중 하나였던 포르투갈마저 물리치고 승리하여, 당당히 조 1위로 16강전에 나갔습니다. 그때부터 정말로 세계는 한국 팀에 대해 다시 보며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16강전에서는 또 다른 우승 후보 이탈리아를 연장전 끝에 이겼고, 8강전에서는 역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과 승부차기 끝에 이겨서 세계 4강에 오르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세계 축구의 변방이었고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한국 대표 팀을 이끌고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던 히딩크 감독의 말은 결코 허언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는 정말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고, 지금까지도 한국 국민의 기억 속에는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청년들은 그때 어렸거나 태어나지 않아서 잘 모를 수 있는데, 그때 비디오를 찾아서 보십시오. 정말 대단했습니다. 광화문과 시청앞이 빨간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점이 오늘 본문의 겨자씨 한 알, 그리고 누룩과 비슷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던 작은 것이 아주 엄청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할 것이라고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가르쳐줍니다. 2002년에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한국 축구팀을 경험했다면, 오늘은 모든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천국을 알아볼 시간입니다.

 

 

1.   겨자씨 비유가 주는 교훈

 

오늘 본문은 세 절밖에 안 되지만,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입니다. 먼저, 겨자씨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겨자씨가 어떤 것인지,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겨자씨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로 겨자씨를 본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는데, 저는 본 적이 있고 정말로 겨자씨는 정말 작습니다. 그런데 겨자는 다 자라면 나무의 크기가 보통 10~12피트(feet)로 자랍니다. 하지만 겨자씨는 색깔이 까맣고, 당시 이스라엘에서 가장 작은 씨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는 겨자씨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한국말로 적은 양을 표현할 때 새 발의 피라는 표현을 쓰는 것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농부가 겨자씨 한 알을 심기 위해 손에 집으면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 겨자씨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겨자씨를 가리켜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1)

 

이 말씀은 그냥 보면 천국은 곧 겨자씨 한 알과 같다.’라고 표현하신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천국 전체가 비유 속의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비유는 천국 전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어느 한 면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2)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던 대로 겨자씨가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다음, 그렇지만 그것이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인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은 먹을 수 있는 식물, 즉 채소를 말합니다. 겨자씨는 가장 작은 씨이지만, 일단 자라고 나면 채소와는 비교가 안 되게 큰 나무가 될 뿐 아니라,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크게 자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나무 중 가장 큰 나무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정원 식물 중 가장 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 겨자씨 비유를 통해 예수님이 알려주기를 원하셨던 교훈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예수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의 마음이 어땠는지를 헤아려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항상 성경을 바로 보려면 그냥 말이 참 좋거나 마음에 와닿으니까 그대로 받는 게 아니라, 그 당시 이 말씀을 하셨을 때의 뜻이 뭔가를 파악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인 면과 당시 환경 같은 것을 성경학자들이 조사해 보면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질병이나 어려운 상황 때문에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가운데 와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 이스라엘이 로마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예수님이 그들을 물리쳐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왔습니다.

 

예수님에게 나아온 동기는 각자 달랐지만, 그들 모두가 똑같이 원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 막 몰려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에 있어 동기와 원하는 모습은 약간 달랐지만 핵심은 같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겠습니까? ‘내가 이 나사렛 예수를 따르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예수를 따르면 나에게 어떤 유익이 있는가?’

 

우리도 똑같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바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왜 일요일 아침 황금시간에 여기 나오셨습니? 혹시라도 그런 생각을 하고 나왔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일에 예배에 가고 그러면 뭔가 유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 뭔가 좋은 게 있지 않을까? 뭔가 복을 받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왔을지 모릅니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닌데, 만약 그게 핵심이라면 빗나가 있는 겁니다.

 

내가 예수를 믿으면 무슨 이익을 얻겠는가? 교회 다니는 게 나에게 무슨 이익을 주는가?’ 그런데 오늘 겨자씨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그런 질문에 대답하십니다. 어떤 대답입니까? ‘아무것도 없다.’ 이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따르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아무것도 없다.’

 

물론 처음에 그렇다는 겁니다. 진짜 유익이 없는 게 아니고,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겁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믿고 따르고 신앙생활을 할 때 아무 유익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엄청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분명히 하나님 나라의 시작은 아주 미미하고 약해 보일 수 있습니다.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을 때 아주 초라하게 오셨습니다. 왕으로 오셨으니까 엄청나고 화려하게 오신 것이 아닙니다. 왕궁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말구유에서, 그것도 시골(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니까 시골의 더러운 말 밥통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천국의 메시아로 공적인 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그분은 젊은 목수의 모습이셨습니다. 또 예수님 주변으로 모여들어 그분을 따른 제자들도 왕족이나 귀족 출신이 아니라 어부, 세리, 열심당원 등, 낮은 계층이거나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죄인들도 많이 따랐습니다.

 

상류층에 속한 지식인들과 정치인들과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무시하거나 배척했고, 수도인 예루살렘은 예수가 있든 없든 상관없이 잘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은 스파이들을 보내어 갈릴리에서 일어나는 예수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어서 잘 알고 있었지만, 크게 위험하지 않아 보이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 메시아의 삶은 화려하고 높은 VIP의 삶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둥지가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메시아는 고위층과 교류하는 높은 인물이 아니라, 세리와 창기와 죄인들처럼 낮은 사람들,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분이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왕이 되는 화려한 대관식이 아니라 참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이처럼 천국의 시작은 겨자씨 한 알처럼 작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너무 미약해서 세례 요한 같이 훌륭한 사람도 예수님을 오해했습니다(11). 처음에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라고 했고, 자기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했으며 나는 그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왔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서 혼란스러워하며 제자들을 통해 질문했습니다. “당신이 그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자기가 기대하던 메시아의 모습이 아니니까 그렇게 질문한 것입니다. 메시아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까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서 따르던 제자들도 예수님과 하나님 나라를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크냐고 다투며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이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권력 다툼을 했습니다. 끝까지 자기들 안에서 권력 투쟁을 했습니다.

 

사람들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로마를 물리치고 왕이 되어 자기들을 로마에게서 해방하고 위대한 유대인의 나라를 세워 자기들을 높여줄 것이라고 잘못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자기들의 기대와는 달리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너무나 무기력하게 체포되시는 것을 보며 실망해서 에이, 저 사람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하며 아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마지막은 결코 그런 모습이 아닙니다. 엄청난 모습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장엄한 천국의 모습이 잘 나와 있습니다. 바다에서 나온 짐승, 땅에서 나온 짐승, 그리고 마귀가 모두 불 못에 던져지고 멸망한 후(19-20) 만물이 새롭게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새 예루살렘으로 천국이 나타나게 된다고 알려줍니다(21-22).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셀 수 없을 정도로 큰 무리가 천국 백성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천국은 처음에는 겨자씨처럼 작지만 나중에는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큰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은 어떤 뛰어난 사람들의 삶 속에서가 아니라, 가난한 어부들과 낮고 천하고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자라기 시작했고, 마침내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한 알의 작은 씨앗이 담벼락 틈에 떨어질 때 거기서 씨가 자라 뿌리를 내리고 마침내 나무가 자라며 막고 있던 돌을 깨고 나오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묻어두신 말씀의 작은 씨앗이 그와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 나라, 즉 로마가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세계에서 넘버원이 되는 하나님 나라가 화려하고 영광스럽게 임할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잘못 생각한 겁니다. 시작은 미약하지만 점점 자라다가 나중에 영광스럽게 끝날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겨자씨 속에 이미 겨자 나무가 들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겨자씨 안에 큰 겨자 나무가 들어 있는 것을 보라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아주 작아서 잘 보이지도 않지만, 그 속에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 나무의 생명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천국의 비밀입니다.

 

 

2.   하나님 나라의 확장

 

사도행전을 읽어보거나 교회 역사를 보면, 정말 이 겨자씨 비유대로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목수였던 예수가 죄수로 처형되는, 아주 미미하다 못해 비참한 시작으로부터 예수님의 부활과 하늘로 올라가신 승천, 그리고 성령께서 오시는 것으로 연결되는 겨자씨의 성장 과정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의 내용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겨자씨 비유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제자들을 생각해 보면, 열두 제자 중 가룟 유다는 배신하고 나서 죽었고, 나머지 11명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니까 자기들도 잡힐까 봐 무서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벌벌 떨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또 하늘로 올라가신 후 그 제자들을 중심으로 120명이 함께 모여서 기도했고, 그들이 합심해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날을 가리켜 오순절’, ‘성령강림절이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성령을 받고 나가 천국 복음을 선포한 그들을 통해 한꺼번에 3천 명이 믿게 되었고, 얼마 후 또 다른 5천 명이 믿고 들어오면서 교회가 엄청나게 성장했습니다. 처음에 120명이었다가 갑자기 3천 명이 들어오고, 또 얼마 후 5천 명이 들어오면서 엄청난 메가처치로 성장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당시 로마 제국의 심장부인 로마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놀라운 속도로 빠르고 넓게 퍼져 나갔습니다. 그렇게 나아가다가 마침내 천국은 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11:15) 데까지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미약하고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마침내 거대하고 엄청난 하나님 나라로 완성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까?

 

당시 이스라엘 독립을 위해 일하는 열심당원과 민족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 급진적인 자들은 높은 로마 사람들이나 로마에 붙어서 일하는 유대인들이나 로마 군인들을 암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칼과 몽둥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하는 것처럼 율법주의적으로 산다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 권력을 잡는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뿌리고, 뿌려진 씨앗들이 원수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뿌리를 내리며 결실하는 과정처럼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내용이 바로 지난주 살펴본 곡식과 쭉정이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렸는데 원수가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갑니다. 그래서 곡식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며 서로 뿌리가 땅 속에서 엉킵니다. 그때 종들이 보고 우리가 다 뽑아 버릴까요?’라고 하니까 주인은 종들에게 가라지를 뽑지 말고 추수 때까지 자라게 두어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추수 때 추수꾼들에게 가라지를 거두어서 불에 태우고 곡식은 모아서 곳간에 넣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비유 다음에 오늘 본문의 겨자씨 비유가 나오면서, 처음에는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님이 오심으로 인하여 예수가 바로 부활하신 주님이라는 하나님 나라 운동으로 힘차게 나아가게 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하고 또 때로는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너희들의 눈에 하나님 나라가 미약하기 짝이 없는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겨자씨 한 알처럼 천국이 아주 작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망하기에는 너무 이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 나무가 되는 것처럼, 천국은 확실히 성장하여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은 그 시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겨자씨 비유를 처음 들었을 때 천국의 시작이 자기들의 평소 생각처럼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게 아니라 아주 작고 미약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유대인 중 어느 누구도 하나님 나라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다른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메시아(그리스도/구원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유대인들을 위한 최고의 나라를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 천국의 시작이 미약해도 마침내 겨자 나무처럼 크게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며 인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겨자씨가 겨자 나무로 확실히 성장하는 것처럼, 그보다 더욱 확실한 천국의 성장이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더라도, 아주 작아 보이더라도, 그것을 확실히 믿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도 제자들과 비슷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지금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를 열심히 하고 예배를 열심히 드리면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립니까?

 

가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평소에는 교회에 안 나가다가 뭔가 중요한 일이 생기면 교회에 와서 간절히 기도하는 겁니다. ‘하나님, 이것만 되게 해 주시면 제가 OOO를 하겠습니다.’ 그래서 잘 풀리면 그 하겠다고 한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런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믿는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열심히 믿는다고 그것 때문에 잘되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안 믿는 사람들을 보니까 세상에서 잘되고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리는 겁니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부자인 사람들을 찾아보십시오. 그들 중에 신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들 중에는 무신론자도 있고, 신은 없다고 하며 대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잘나갑니까?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도 잘 안 풀리고 어려움을 당하는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대충 하는 것도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드리고, 성경도 열심히 읽고 묵상하며, 기도도 열심히 하면서 새벽 기도와 철야기도도 열심히 하고, 주중에 예배도 나오고, 헌금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잘 안 풀리는 겁니다. 실패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열심히 해봤는데 안 됐다고 실망해서 말하게 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정말 열심히 하는데 잘 안 풀리면 옆에서 그런 분을 보면서 뭐라고 합니까? “, 믿어 봐야 소용없네.” 열심히 기도하는데도 안 되는 것을 보면 , 기도해 봤자 소용없네. 기도하나 안 하나 똑같은데 무엇 하러 기도하나? 열심히 저렇게 섬기고 신앙생활을 잘해도 쓸데없다. 저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쓸데없다. 해 봤자 뭐가 있냐?”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꽤 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묻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과연 그럴까요? 정말 믿어도 소용이 없을까요? 정말 기도했는데 소용이 없을까요? 열심히 봉사했는데 쓸데 없을까요? 그렇게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하십니까? “그게 아니다. 네가 보는 게 다가 아니다.”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지금도 세상을 보면 죄악이 넘치고 악한 일들도 너무 가득하고 악한 일들도 가득하고 또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더 악해지는 것 같습니다. 흉악 범죄도 많고, 뉴스를 보면 매일 나쁜 소식들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가끔 누가 누구를 살렸다거나 도왔다는 얘기가 나오면 사람들이 다 감동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그런 일이 없으니까 그렇습니다. 평소에 너무 악한 일들과 나쁜 뉴스들로 가득한데, 가끔 좋은 소식이 나오니까 거기에 감동을 받습니다.

 

이 세상에 악한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도 악한 사람들은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악하게 살아도 오히려 더 잘된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우리는 그냥 내 눈에 지금 보이는 것만 가지고 판단하는데, 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지금 겨자씨가 작은 것만 보고 있지, 이 겨자씨에 엄청난 겨자 나무가 들어 있다는 것을 못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아이고, 이렇게 조그만 것을 갖고 뭘 하나?’라고 생각하고 함부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항상 어떤 일이 벌어질 때 그런 생각이 들면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그냥 보기에는 하나님을 잘 믿어도 잘 안 풀리고 하나님을 안 믿는 사람, 심지어 대적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주 잘 풀리는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는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너무 약해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니, 악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다.”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성장하며 마침내 창대해진다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것을 못 보고 있을 뿐이다. 나는 다 보고 있다. 그러니까 내 말을 믿어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이것을 확신하면서, 실망과 절망 대신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언젠가 과학자들이 쥐를 가지고 한 가지 실험을 했는데, 아주 깜깜한 방에 항아리를 놓고 그 안에 물을 채운 후 쥐들을 넣었다고 합니다. 방을 몇 개로 분리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때 어떤 방에는 전혀 빛을 비추지 않은 채 계속 깜깜한 상태에 놓아두고, 어떤 방에는 깜깜한 상태에서 빛을 가끔씩 아주 짧게 살짝 비추었다 끊고 또 비추었다 끊는 식으로 했다고 합니다.

 

빛을 전혀 비추지 않아서 깜깜한 상태에 계속 있었던 쥐들은 아무 희망이 없는 항아리 속의 물에서 3분 정도 만에 다 빠져 죽었습니다. 그러나 쥐에게 빛을 가끔 비춰주었던 방의 항아리 물 속에 빠져 있던 쥐들은 놀랍게도 36시간을 헤엄치며 버텼다는 겁니다. 빠져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쥐도 그런데 사람은 얼마나 더하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소망이 없으면 망합니다. 내가 지금 힘들지만 소망이 있다면 버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 소망이 안 보이면 우리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이 말씀 속에 약속이 가득합니다. 우리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된 희망이 아니라, 근거가 있는 희망입니다. 말씀에 근거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현실을 보면 어렵고 깜깜하고 답답할 수 있지만, 분명히 말씀에 근거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현재의 모습을 보면 실망을 넘어 절망스러울 때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아니, 천국이라는 것,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이 이렇게 초라하고 약한 것인가?’ 하나님을 정말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고, 열심히 순종해서 나아가지만, 삶이 별로 잘 안 풀리면 아니, 하나님을 믿어도 이렇게밖에 안 되나?’ 하고 갈등하거나 실망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완성된 천국에 대한 소망,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소망이 좌절을 극복하게 해 줍니다. 여러분, 자꾸 다른 데 가서 해결책을 찾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려울수록 말씀을 들어야 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혼자 읽고 묵상할 힘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 해 주는 말을 듣기라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소망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3.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

 

겨자씨 비유의 교훈을 더 잘 이해하려면 쌍둥이 비유라고 불리는 누룩 비유와 비교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33)

 

예수님은 천국을 가리켜, 어떤 여자가 빵을 굽기 위해서 누룩을 밀가루 속에 넣어 밀가루 전체를 부풀게 한 것, 발효시킨 것으로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예수님 자신도 어린 시절에 어머니인 마리아가 밀가루에 물과 누룩과 소금을 섞어서 빵을 굽는 것을 분명히 보셨을 것입니다. 밀가루에 누룩을 섞어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면 밀가루 전체가 부풀어 오릅니다. 이런 발효 과정이 끝나고 나서 그것을 화덕에 넣어 빵을 굽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한 면을 누룩으로 밀가루를 발효시키는 일상적인 요리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누룩을 많은 양의 밀가루 속에 넣었는데 그 많은 밀가루가 그 속에 들어서 보이지 않는 누룩에 의해 발효되는 것과 같다는 것이 누룩 비유의 초점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누룩이 밀가루 안에서 일하여 발효해서 크게 만드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시작은 미미하지만 마침내 큰 결과를 얻을 것이며 그 사이에 엄청난 성장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비유 사이에 차이점도 있습니다.

 

겨자씨 비유는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로 자라는 외적 성장에 초점이 있고, 누룩 비유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밀가루 속에 들어가 있는 누룩이 빵을 부풀어 오르게 만드는 내적 변화에 초점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자라서 커지는 것이고, 누룩은 스며들어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겨자씨 비유는 외적 성장을 보여주고, 누룩 비유는 내적 변화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겨자씨 비유는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만들라하신 복음 전파와 직결되고, 누룩 비유는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너희 착한 행실로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삶의 변화와 연결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국의 시작은 미미해 보이지만, 외부적으로 또 내부적으로, 양적으로 또 질적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커다란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그와 같이 마귀의 방해 공작이 있다면 과연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고 의문을 품었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에게 자기 인생을 걸고 따르던 사람들도 천국이 과연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질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바로 오늘의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입니다. 아주 짧지만 그런 질문에 대해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미약하게 시작하지만, 조용한 성장 과정을 거쳐 마침내 엄청난 나라로 드러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또 천국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속에서 엄청난 변화를 일으켜 크게 될 것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오래전(19세기 초중반) 스코틀랜드 어느 작은 마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집회였는데, 그럼에도 사람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강사 목사님은 예수를 영접하고 헌신할 사람을 계속해서 초청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제 일주일이 다 지나고 부흥회 마지막 날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분은 앞으로 나오십시오.”라고 초청했습니다. 강사 목사님은 일주일 동안 아무도 안 나왔으니까 맥이 빠진 채 나오려면 나오고 안 나오려면 마라는 식으로 별 기대 없이 초청한 것인데, 놀랍게도 작은 소년 하나가 앞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강사 목사님은 부흥회 기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헌신한 사람이 겨우 이 아이 한 명밖에 없다는 사실에 굉장히 실망했습니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며 실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사람, 예수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삶을 그분께 헌신하기 위해서 앞으로 나온 이 소년의 눈에는 뜨거운 불꽃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을 목사님이 보았는데, 그 소년이 기도하기를 , 하나님! 저의 생명을 주님께 드립니다. 저에게 아프리카를 주십시오!”라고 놀라운 기도를 했습니다.

 

이 소년이 누구입니까? 그가 바로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입니다. 한 작은 소년의 눈에 일어났던 불꽃이 어두운 아프리카 대륙에 빛을 비춰주었습니다. 그 작은 소년 한 사람의 헌신을 통해 아프리카 대륙이 변화되는 놀라운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영국 정부의 인정을 받고 훈장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작은 소년 하나의 헌신이 아프리카를 뒤집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큰 것에 있지 않습니다.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데 있지 않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서부터 하나님 나라는 소리 없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작은 처녀의 태를 통해 태어나실 정도로 낮아지시고 작아지셔서 이 땅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지극히 작은 것 하나를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한 명의 헌신을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어린애들이 막 뛰어다니면서 장난치고 그럴 때 아이가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십시오. 이 아이가 어떻게 될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가끔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제대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 꼭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하나 정직하게 산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 하나 잘한다고 뭐가 바뀌겠습니까?’ , 나 하나 잘하면 바뀝니다. 나 한 명이 잘하면 분명히 바뀝니다. 뭔가가 이루어집니다. 내가 지금 못 보고 있을 뿐이지,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고, 믿어봐야 소용없네. 아이고, 기도해 봐야 소용없네.’라는 말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를 믿는다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짜 믿는다면 우리가 기도할 때 화려한 기도나 대단한 믿음의 기도가 아니라도, 그냥 하나님 앞에서 짧지만 진실한 기도를 드릴 때, 놀랍게도 그것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도 마찬가지입니다. ‘, 나 하나가 열심히 한다고 뭐가 되나?’ 됩니다. 예수님은 된다고 하십니다. 내가 작은 겨자씨를 뿌릴 때 하나님 나라의 역사가 겨자 나무처럼 엄청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작은 겨자씨 한 알과 같고 또 눈에 보이지 않는 누룩과도 같습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나 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 내 가정에서, 내 일터에서, 시장에서, 길거리에서, 또 교회에서, 작은 사랑 한 가지를 실천할 때, 바로 거기에서부터 거대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것은 정말 작습니다. 내가 해 봤자 진짜 뭐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내가 이것을 한다고 뭐가 되나?’라고 하는 바로 그것을 통해서 놀랍고 엄청난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천국이 바로 우리와 같이 연약한 사람들을 통하여 이 땅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기에 쓰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얼마나 영광입니까? 우리 모두 바로 그렇게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쓰임 받는 고귀한 인생을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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