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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youtu.be/aeWXnY1B1OQ?t=1169

 

 

2021718일 주일예배

회복하시는 은혜 22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

(요한복음 121~8)

 

[들어가는 말]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 학창시절에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절약정신이 투철해서 항상 돈을 아껴 썼습니다. 친구들이 같이 밥을 먹을 때도 되도록 안 낼 수 있으면 안 내고 끝까지 버텼고, 친구들에게 얻어먹는 것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친구가 좋아하는 여학생이 생겼습니다. 그러더니 같이 다니고 놀다가 밥을 먹게 되면 그 친구가 놀랍게도 돈을 쓰기 시작하는 겁니다. 사랑에 빠지니까 자기 것을 아끼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친구를 위해 돈을 막 쓰는 것을 보고 다들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기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인간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 놀랍게도 이타적인 존재가 됩니다. 사랑하는 순간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사랑에 빠지면 자신의 것과 사랑하는 사람의 것을 구분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가진 것을 다 퍼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사랑을 하면 상대가 웃을 때 자기도 웃고, 상대가 울 때 자기도 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은 자기의 행복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은 곧 자기의 불행이 됩니다. 이처럼 사랑을 하면 자기를 잊고 온전히 상대방을 위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행위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면 자기 것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하는 연인끼리 또 부부끼리 체험하게 되는데, 심지어 부모가 자녀를 사랑할 때도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할 때 그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장 아끼시는 것, 가장 귀한 자신의 외아들을 우리를 위해 내어주심으로 우리도 그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고 서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1.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면 최선의 것을 드리게 된다 (1~3)

 

오늘 본문에 보면 진짜 사랑을 실천한 여인 한 명이 나옵니다. 베다니의 마리아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으로 설교를 여러 번 했었는데, 오늘도 요한복음을 죽 살펴보는 가운데 본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즉 자신이 돌아가시기 6일 전에 베다니로 가십니다. 그때 나사로와 그의 자매들이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베풉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 새 마르다는 일을 하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 (1-2)

 

생각해보십시오. 바로 얼마 전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려주셨습니다. 죽었다 살아난 것은 사람들에게 전무후무한 일이었고, 나사로 자신에게도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얼마나 감사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위해 잔치를 벌입니다(2).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나사로를 보기 위해 집안 가득 모였습니다. 아주 큰 잔치였습니다. 누가복음 10장과 비슷하게 마르다는 분주히 일을 하고 있고,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리아가 들어와서 예수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습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3)

 

나드라는 것은 네팔 지역의 히말라야 산에서만 서식하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귀한 향료였습니다. 그 지방에만 희귀하게 나는 식물이니까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여러 상인들을 거쳐 이곳 유대 땅까지 수입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값이 얼마나 비쌌겠습니까? 수입품이니까 엄청나게 비싼 향유였습니다.

 

5절에 보면, 이 향유는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시 일반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한 데나리온이었는데, 안식일과 절기를 다 지키면 꼬박 1년 동안 일하고 한 푼도 쓰지 않으면서 모을 때의 액수가 300데나리온입니다.

 

그 당시 이처럼 값비싼 향유는 여자들이 화장을 위해 아주 조금씩만 뿌려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이처럼 엄청나게 비싸고 귀한 향유인 나드 한 근(1 pint)을 그대로 부어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이렇게 비싼 것을 왜 한꺼번에 예수님께 부어버립니까? 이에 대한 답은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마리아가 주님을 정말로 사랑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그토록 귀한 향유보다 예수님을 훨씬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향유를 귀하지 않게 여겼다는 게 아닙니다. 향유는 자기에게 가장 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보다 더 귀하십니다. 그러니 그보다 덜 귀한 것을 드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결단하고 실행합니다.

 

이 정도의 향유라면 오랫동안 한 방울, 한 방울씩 돈이 생길 때마다 구입해서 모으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물로 씻어드릴 수도 있었습니다. 손님의 발을 물로 씻어주는 것은 그 당시 유대의 풍습이었기에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대접함에 있어서, 자기가 가진 가장 귀한 것, 가장 값진 것, 최선의 것을 드린 것입니다.

 

게다가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을 닦는데, 그것도 자기의 머리털로 닦았습니다(3). 예수님이 앉아서 식사를 하시는데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식사할 때 왼쪽으로 팔을 대고 비스듬히 누워서 음식을 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식사를 하시는데 마리아가 발쪽으로 와서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으니까, 마리아가 완전히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된 겸손이고, 진짜 사랑이며, 주님을 섬기는 바른 헌신과 예배의 자세입니다.

 

<생명의 삶>에서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많은 분들이 예배, 전도, 교제 등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한 단어로 이야기하면 바로 관계입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이웃과의 사랑의 관계입니다.

 

마태복음 22장에 보면 한 율법교사(서기관)가 와서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이냐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그것을 직접 말씀해주셨습니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며 둘째도 그와 같은데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22:37-40).

 

이것이 성경 전체의 핵심입니다. 십계명도 열 개의 계명에서 1~4계명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것이고, 5~10계명은 이웃 사랑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고 둘째는 이웃 사랑인데, ‘둘째도 이것과 같다고 하신 것은 첫째와 둘째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순서는 있지만 똑같이 중요하며 별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잘 설명해 놓았습니다.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심지어 형제를 미워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사랑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진짜입니다. 하나님만 정말 사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삶의 문제가 풀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는 시간을 드리는 것입니다. 사랑에 빠져 연애하는 한 쌍의 젊은 남녀를 생각해보십시오. 서로 바빠도 어떻게든 시간을 내서 서로 만납니다. 또 만나고 헤어지자마자 전화를 합니다. 쉬지 않고 문자를 보냅니다. 별로 할 이야기도 없고 옆에서 들어보면 별 내용도 없는데 그런 것을 둘이서 계속 떠들고 있습니다. 수시로 만나고 수시로 문자 보내고 수시로 전화합니다. 별로 중요한 내용도 아닌데 그냥 합니다. 괜히 합니다. 별로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매일 만납니다. 이런 것이 사랑의 증거입니다.

 

만약에 사랑한다고 하면서 상대방과 같이 있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하는 관계일 수가 없습니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너무나 당연합니다. 사랑하면 그냥 같이 있는 것이 좋은 겁니다. 부모와 자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이것이 제일 중요한 계명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그분과 얼마나 시간을 함께 보내고 계십니까? 그분을 사랑해서 괜히 조금 더 기도하고 싶어지고, 괜히 조금 더 말씀을 읽고 싶고, 그냥 교회에 나가서 예배하고 싶어지고, 드리고 또 드려도 더 드리고 싶은 그런 마음이십니까? 그런 것은 참 은혜가 충만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열심을 다할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서 예배하더라도 그 시간을 꼭 기억해서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 이렇게 나와서 하는 예배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시가 됩니다. 사실 예배야말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가장 큰 표시입니다.

 

작년 3월부터 미국에서 코로나 사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벌써 14개월이 되었는데, 오늘이 한국어예배와 영어예배를 나눠서 드리게 된 지 꼭 1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코로나 사태가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좋은 테스트가 되었습니다. 이 기회로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가짜였는가가 어느 정도 테스트가 된 겁니다.

 

물론 예배에 참석만 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신앙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면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행동했다고 꼭 사랑한다는 증명이 될 수는 없지만, 사랑하면 행동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시간이 없어서 성경을 읽지 못하고 기도를 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시간 핑계를 댄다면 진짜 사랑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남녀가 서로 사랑하면서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못 갔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못 갔다고 하며 자꾸 핑계를 대면서 만나지 않는다면 정말 사랑하는 것인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내는 것이 아깝지 않고 오히려 더 만나고 싶어지는 것처럼,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면 하나님과 따로 시간을 내어 만나는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굉장히 기다리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랍게도 그 반대가 진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만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기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온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 온 천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뭐가 아쉬우셔서 나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겁니까? 이 세상에서 조금만 높은 사람을 만나려고 시도해보십시오. 못 만납니다. 조금만 유명한 사람이라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나를 그토록 만나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 도대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우리가 깨달아야 합니다.

 

두 번째로, 정말 사랑한다면 물질을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기를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사서 주는데 조금 더 싼 것을 살 걸 괜히 비싼 걸 샀네.’ 하고 후회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을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정말 사랑하면 오히려 더 좋은 것을 못 줘서, 더 많이 못 줘서 마음이 안타깝고 미안하지, 싼 걸로 살 걸 하며 후회하지 않습니다. 줄수록 아깝고 후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주고 또 줘도 더 주고 싶은 마음, 줄수록 더 기뻐지는 마음이 사랑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금 더 고급 음식을 먹고, 조금 더 좋은 차를 타고, 조금 더 큰 집에 살고, 조금 더 날씬해지고, 조금 더 건강해지고, 조금 더 좋은 학교 가고,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돈을 투자하고 노력을 하며 살아갑니다.

 

이 모든 것들은 나쁜 것들이 아닙니다. 다 좋은 것들인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삶이 이러한 것들에만 집중된다면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의 헌신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누구에게 헌신하는가, 무엇에게 헌신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헌신이 아니라 중독이라고 말합니다. 마약을 좋아해서 시간과 물질을 쓴다면 그것은 마약에의 헌신이 아니라 마약 중독입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면 술에의 헌신이 아니라 알코올 중독입니다. 도박도 마찬가지로 도박 중독이고, 게임만 하고 있으면 게임 중독입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나에게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에 지나친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푹 빠지는 것도 중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운동을 하는 것은 건강을 위해 좋은 것이고 골프 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나의 생업이 따로 있는데 골프 선수처럼 집중한다면 그런 게 중독입니다. 드라마, 영화, 인터넷 중독도 있습니다. 그 자체로 나쁜 건 아니지만 거기에 너무 빠져서 다른 일을 못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헌신해야 할 대상이 누구이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모셔 들인 사람인데, 그렇게 한 것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곧 예수님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내가 가진 어떤 것, 심지어 내 생명보다도 더 귀한 분이십니다.’라고 하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주님이 정말로 나의 삶에서 가장 귀한 분이시라면, 남는 것으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마리아처럼 가장 좋은 것, 최선의 것으로 드리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를 점검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 중 하나가 바로 헌금생활입니다. 예배 때마다 헌금을 하는데, 우리 교회는 헌금함을 놓고 미리 준비한 헌금을 거기 넣습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에 내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뜻대로 그것을 잘 집행하는 것입니다. 헌금은 교회에서 돈을 긁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헌금은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리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으신 것이 헌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중독에 빠져서 인생을 망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는데, 그 중 하나가 구약에서 추수할 때 첫 열매를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농부가 열심히 일해서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피땀 흘려 거둔 곡식은 마치 자기 자녀와 같이 귀한 곡식인데, 그렇다면 꽉 움켜쥐고 싶지 않겠습니까? 누군가에게 나누어주고 싶지 않습니다. 집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거둔 피와 같은 곡식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모두 드릴 때, 놀랍게도 집착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사람은 누구나 돈에 대한 욕심이 있습니다. 지난번 Vax-A-Million에 아무도 안 되셔서 아쉽습니다(?). 사실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복권도 삽니다. 심심풀이로 한다고 하지만 거기에 빠지면 돈의 노예가 됩니다. 자신이 돈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돈이 자기를 지배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가 헌금을 하지만 하나님 입장에서 보실 때는 얼마나 푼돈입니까? 우리가 드리는 헌금이 하나님이 보실 때 무슨 거액이겠습니까? 온 우주만물의 주인으로 모든 것을 다 갖고 계신 분인데 우리의 도움이 뭐가 필요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돈이 전혀 필요가 없으십니다.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드리는 봉사가 전혀 필요 없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십일조를 비롯하여 헌금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구약에 나오지만, 원래 정신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삶을 살지 말고 이웃을 돌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기를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그게 헌금이고 십일조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무슨 율법의 조항이 아닙니다. 억지로 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는 또 사랑한다는 믿음과 사랑의 표현이 그렇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들어오실 때 미리 준비하신 헌금봉투를 가지고 헌금을 내실 텐데, 그때 하나님, 이게 저의 사랑입니다.’ 하며 넣으시기 바랍니다. 돈을 쓱 집어넣는 게 아니라 여기에 내 사랑을 담아서 드리는 겁니다.

 

내가 가진 것이 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헌금과 십일조를 드릴 수 있겠습니까? 내 삶의 주인이 나이기 때문에 내가 다 책임을 져야 하고,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 같은 것을 덥석 내면 내 삶에 위기가 닥칠 때 힘들 수 있으니까 그 두려움 때문에 내지 못합니다.

 

사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아주 엄청나게는 아니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잘 안 되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두려움을 잘 생각해보면 하나님에 대한 불신입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고 내가 알아서 결정하며 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관해주시면 안심하고 평안하게 살 수 있으며 믿음으로 드릴 수 있지만, 내가 다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지금 십일조와 헌금을 많이 하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인으로 올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사실은 복 받는 길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을 알려드릴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신약성경에는 십일조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일조를 합니다. 다들 간증이 있으시겠지만 저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드린 것에 비하면 너무나 엄청난 것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 경험이 혹시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드립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가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을 방지해주는 안전장치이며 하나님이 마련해주신 길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에서 알려주는 것을 전해야 하니까 말씀드리는데,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서실 때 목사가 알려주지 않아서 못했다고 하시면 절대 안 되겠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다시 말씀드리지만,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무엇이든 할 수 있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시간이나 물질이 전혀 필요가 없으십니다. 하나님이 그런 게 뭐가 필요하시겠습니까? 헌금은 우리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가상의 시나리오를 생각해보십시오. 이번 202191일부터 미국에서 더 이상 달러화를 쓰지 않고 중국의 위안화로 다 바꾸기로 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세계 화폐시장에서 중국 위안화를 쓰고 미국도 그렇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렇다면 지금부터 91일 사이에 무엇을 해야 합니까? 달러를 빨리 다 처분하고 위안화를 사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날이 분명히 옵니다. 위안화로 바뀐다는 말이 아니라, 91은 아니겠지만 지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며 모아 놓은 모든 것이 더 이상 아무 가치나 없는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겁니다. 오직 천국에 쌓아놓은 보화만이 가치가 있게 될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것이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무엇을 해야겠습니까? 바로 하늘의 가치를 가진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겁니다. 하늘에 쌓아놓을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 겁니다. 이 땅에서 다 끝나고 무가치해지는 것에 집중하면 낭패를 봅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다하는 우리의 봉사와 헌신,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와 같은 것들이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보물을 하늘에 쌓아 놓는 것이 됩니다. 유한한 땅의 가치를 지닌 것을 영원한 하늘나라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바꾸는 작업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해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말 우리의 돈에 관심이 있으셔서 악착같이 받아내려고 하신 것이라면 겨우 10%만 내라고 하시겠습니까? 지금 미국의 세금도 몇 %인데 10%만 내라고 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진짜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돈이 아닙니다. 지금 돈이 없어서 돈을 내라고 하시겠습니까? 우리의 마음, 우리의 헌신, 우리의 믿음, 우리의 사랑을 원하십니다. 그 마음이 사랑의 행동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께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일은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봉사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위에 역사하셔서 일이 되게끔 하시는 것입니다. 솔직히 우리의 돈이나 봉사가 하나님께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이 영원한 가치를 가진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셔서 하늘나라에 상급을 쌓아놓을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주고 싶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이 아깝고 노력이 아깝고 헌금이 아깝고 그래서 내지 않고 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기꺼이 하나님께 드리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교회들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일을 감당하실 것입니다.

 

물질만 아니라 말씀묵상과 기도도 할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하지 마시고, 하루 중 가장 귀한 시간에 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주일예배도 그렇습니다. 할 일이 있으면 빠지고 할 일이 없으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할 일이 있어도 우선적으로 나와서 예배드리는 마음, 중요한 일이 있지만 예배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나와서 드리는 마음, 바로 그것이 사랑이며 헌신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것에 보상을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일이 없을 때만 나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나오는 것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 자녀에게 중요한 행사나 할 일이 있어서 꼭 가야 합니다. 나는 지금 굉장히 바쁩니다. 그러나 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녀를 사랑하니까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던 일을 멈추고 주일에는 먼저 주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 또한, 그 어떤 다른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확인하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2.   가룟 유다의 비난과 예수님의 응답 (4~8)

 

마리아는 예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헌신으로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헌신이 어떤 평가를 받습니까?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4-5)

 

당시 일반 노동자가 하루에 1데나리온을 벌었으니까 300데나리온은 1년 치에 해당되는데, 요즘으로 대충 환산해도 4~5만 불이나 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 재산이었을 이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그대로 다 쏟아 부었습니다. 4~5만 불 어치를 그냥 쏟아 부었습니다. 발에 쏟아부었으니까 땅에 다 떨어져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습니다.

 

만약 마리아가 여러분의 딸이나 아내나 여동생이나 누나라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렇게 했을 때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미쳤냐? 제 정신이냐? 이게 도대체 얼마짜리인데 그런 짓을 해! 아이고, 아이고, 이 바보야. 결혼하려고 지금껏 모아온 것을 한 번에 다 쏟아버려? 이제 시집은 다 갔다.’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을 것이 분명합니다.

 

가룟 유다가 5절에서 한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얼마나 헛되고 무모한 낭비인가? 왜 이렇게 낭비를 하는가?’라고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섬기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섬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발을 딱 한 번 씻겨드리는 일에 이 비싼 향유를 그것도 한꺼번에 다 쏟아 부을 이유가 뭡니까?

 

이것을 팔아서 일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나머지로 예수님께 좋은 선물을 사드리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섬겨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도둑의 마음을 숨긴 채 가난한 자들을 돕자고 하는 얄팍한 가면을 쓴 가룟 유다의 중심을 꿰뚫고 계십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6)

 

유다는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예수님 일행의 재정담당자였기 때문에 이 돈이 들어왔으면 거기서 살짝 횡령할 수 있었지만 돈이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화가 나서 이런 말을 한 겁니다.

 

오래 전에 어떤 리더십 책을 읽다가 효율’(efficiency)효과’(effectiveness)에 대한 내용을 읽은 것이 기억납니다. 둘이 같은 게 아니라는 겁니다. 효율을 생각하면 결과를 따지게 됩니다. 그러나 당장의 결과만 보는 게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는 것이 효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단기선교를 가기 쉽지 않은데, 그것에 대해 가끔 이런 말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일리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선교지까지 가려면 얼마나 힘듭니까? 훈련도 해야 되고, 바쁜 중에 휴가까지 내야 되고, 시간을 내야 되고, 비행기 값도 아주 비싼데, 차라리 그런 돈을 쓰지 말고 다 모아서 선교사님들에게 보내면 그게 훨씬 더 낫지 않습니까?”

 

상당히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바로 효율 위주의 생각입니다. 정말 선교지에 가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신 분들은 그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실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이 돈으로 선교사님들을 정말 돕고 싶은 마음이 더 큽니까, 아니면 나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아.’라는 마음이 더 큽니까? 후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직접 가는 것과 돈만 보내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직접 가보면 다릅니다. 설명이 안 되는데, 가보면 압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유익인 것을 압니다. 그래서 사실은 가본 사람이 계속 갑니다. 놀랍게도 새로운 사람들이 안 가고 가본 사람들이 계속 갑니다.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사실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인류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셨을 때, 사탄이 조롱했을지 모릅니다. ‘이 얼마나 쓸 데 없는 낭비인가? 뭐 하러 저런 것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려고 가는가? , 쓸 데 없다.’라고 하지 않았겠습니까?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외아들을 십자가에 죽도록 보내시는 일보다 더 헛되고 쓸모없는 낭비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헛된 낭비였습니까? 우리 자신만 보아도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를 가만 두어 나의 장례할 날을 위하여 그것을 간직하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7-8)

 

예수님은 마리아의 그러한 행위가 낭비가 아니라 너무 귀한 사랑과 믿음과 헌신의 행위라고 선포하십니다. 8절에서 주님이 하신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보다 우선순위가 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되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해나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이 되어 버리고 그렇게 하다 보면 지치게 되고 그만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가룟 유다가 가난한 자들을 얼마나 도왔다고 이런 말을 하겠습니까? 사실은 별로 도운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꿰뚫고 계십니다.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싶다면 하라!’ 그런데 사실 유다는 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말로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 우리가 하는 것들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게 많습니까? 시간을 내서 이렇게 옵니다. 그것도 코로나 사태가 끝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나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 내서 성경 읽고, 기도하고, 심지어 돈까지 바칩니다. 얼마나 바보 같습니까? 그래서 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헌신은 결코 낭비가 아닌 것을 해본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아름다운 일이라고 주님이 인정해주십니다. 주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뭡니까? 가룟 유다의 말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뭐라고 하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나,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주님이 뭐라고 하시는가가 중요한 겁니다. 우리가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평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분명히 오는데 이것은 100%입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누구나 다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옵니다. 그때 사람들의 말이 우리에게 중요하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는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이다.’라는 것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나가는 말]

 

오래 전 돌아가신 유명한 테레사 수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에게 필요 없는 것으로 드리는 것은 드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쉽게 저지르는 잘못이 바로 이겁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분명히 드립니다. 아무 것도 안 드리는 게 아닙니다. 우리도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정성을 드리고 다 드립니다. 그리고 우리가 나쁜 것을 드리는 것도 아닙니다. 좋은 것을 드립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우리의 문제입니다. 좋은 것을 드리는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 좋은 것을 드리는데, 최고의 것은 숨겨 놓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드리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좋은 것을 드리고 있다는 것에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이 정도면 됐다. 이 정도로 시간 내고 물질과 정성을 들여 노력하고 봉사면 됐다.’라고 스스로 만족해하면서 실제로는 가장 최고의 것을 뒤에 감추어 놓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저는 사실 목사로 이렇게 나와서 말씀을 전할 때마다 부담이기도 하지만 기쁨이기도 하고 정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매일 저를 만나시는 게 아니라 저를 잘 모르시지만 제가 저를 아는데,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이렇게 써주시다니, 정말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이 저의 도움이 뭐가 필요하시겠습니까? 그런데도 써주신다는 것이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인간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세워주기를 원하신다는 이것이 정말 엄청난 은혜입니까. 여기에 감격하고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계속해서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들자하고 애쓰며 나아가고 있지만, 솔직히 우리가 해봤자 얼마나 하겠습니까? 평생 몇 명을 전도하겠습니까? 우리가 몇 만 명, 몇 천 명을 하겠습니까? 몇 백 명을 하겠습니까? 사실 몇 십 명도 못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렇게 우리를 들어 쓰기를 기뻐해주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정말 놀랍습니다. 이걸 깨달은 분들이 선교하고 계신 겁니다. 선교사님들이 무슨 특별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 감격을 깨달은 분들입니다.

 

이것이 엄청난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더욱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나아가려는 사람, 그런 사람을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시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를 보시면서 너는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다.’라고 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시며 기도한 것보다 더 주실 것입니다.

 

결국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어떤 것이겠습니까? 무슨 완벽한 삶을 바라시겠습니까? 엄청나게 성공해서 돈을 많이 내는 것을 원하시겠습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사랑! 사랑을 원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과의 관계를 세워나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또 그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이웃을 향해, 특히 어려움을 당하는 이웃을 향해 눈을 돌리게 되어 있고 사랑을 실천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다 보면 영혼 구원하여 제자를 만드는 역사가 우리를 통해 일어나는 특권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주님과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최선의 것을 드려 주님을 섬긴 마리아처럼,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 최선을 드리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헌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헌신하면 아름다운 향기가 나게 됩니다. 우리 삶 속에 바로 이러한 아름다운 향기로 가득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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