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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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2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59 ✦
“겐그레아와 에베소를 거쳐 안디옥으로”
(사도행전 18장 18~23절)
[들어가는 말]
오늘은 말씀을 나눌 때 사진을 몇 장 보여드리며 말씀을 시작하기 원합니다. 4년 전 안식월을 얻어 이곳저곳을 갔을 때, 아테네도 갔고 고린도도 갔습니다. 그때 고린도 투어(tour)를 받았는데, 그때 아테네에서 고린도로 가 관광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관광 가이드가 버스에서 내리지는 않고 어느 한 곳을 잠시 돌아보고만 오겠다고 했습니다. 거기가 어디인가 했더니, 그곳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겐그레아였습니다. 그 겐그레아 사진을 먼저 보겠습니다.
1) 제가 차 안에서 찍었기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습니다. 저기 바다에 돌무더기 터만 약간 남아 있습니다.
2) 저렇게 남아 있는 곳이 포세이돈 신전 유적이라고도 하고, 바고 그 근처에서 교회 터 유적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진으로 인해서 지금은 물에 잠긴 상태입니다.
3) 지금은 돌밖에 남아 있지 않은 저곳이, 2천 년 전에는 굉장히 왕성했던 고린도의 동쪽 외항 겐그레아 항구였습니다. 바로 저곳과 북쪽에 있는 레키움(Lechaeum) 사이에서 배를 땅으로 올려서 수레에 싣고 옮김으로 뱃길을 아주 단축할 수 있었습니다.
4) 그 후 저희가 로마의 바티칸을 방문했습니다. 바로 저곳이 성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lica)의 외부 모습입니다. 저렇게 사람들이 항상 들끓고 발 디딜 틈이 없습니다.
5) 밖에서 보면 저렇게 되어 있고, 교황이 미사를 진행하거나 무슨 행사가 있을 때 나와서 진행하는 곳입니다.
6) 앞에서 사람들이 앉는 곳을 바라본 장면인데, 저렇게 의자가 많습니다.
7) 내부로 들어가면 굉장한 세계적인 명화들과 보물들과 조각들로 가득한 곳이 성베드로 대성당 내부입니다.
8) 꼭대기도 돔(dome)으로 되어 있어서 아름답고, 천정과 벽들에도 다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9) 내부가 이렇게 아름답고, 사람들이 많이 서서 사진을 찍는 곳입니다.
10) 이것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Pieta)’ 조각상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시신이 내려진 후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있는 그 장면을 조각한 이 ‘피에타’가 여기에 있습니다.
11) 이곳은 바울이 죽어서 시체가 묻힌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 위에 세운 성바울성당입니다.
12) 내부로 들어가 보면 바울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이 있어서, 그 위에 건물을 지은 겁니다.
13) 이것은 바울이 묶였던 체인이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14) 저 앞에 바울의 무덤이 있고, 내부는 저렇게 크고 굉장히 아름답게 되어 있으며, 그 위에는 저렇게 금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곳이 성바울성당입니다.
바티칸도 그렇고 이곳도 그렇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베드로와 바울 같은 분들의 귀한 헌신을 기리며 아름다운 건물들을 지어놓고 지금도 그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으니까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지난번 여행을 통하여 저에게 가장 인상 깊게 남았던 딱 한 군데를 꼽는다면 바로 이곳입니다.
15) 그 화려한 바티칸도 아니고, 그 화려한 성바울성당도 아니고, 지금 아무도 찾지 않으며 관광객이 전혀 없는 겐그레아의 쓸쓸한 바닷가, 바로 이곳입니다.
16) 굳이 찾아가야만 갈 수 있는 저곳, 아무 관광객도 찾지 않는 바로 저곳이 지금까지도 저의 뇌리에 아주 강하게 박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울의 헌신이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본문을 보면, 바로 이 겐그레아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 겐그레아에서 이행한 서원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아가야 총독 갈리오가 사도 바울에 대한 유대인들의 고소를 기각했기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얼마 후에 바울은 고린도의 형제자매들과 작별하고 배로 수리아의 안디옥을 향해 떠나갑니다.
“바울은 더 여러 날 머물다가 형제들과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8절)
바울은 일행과 함께 배를 타기 위해 고린도의 외항 중 하나인 겐그레아로 갑니다.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남동쪽에 있어서, 거기서 배를 타면 아시아 쪽으로 가는 겁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곳에서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머리를 깎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그냥 보면 바울이 겐그레아에서 어떤 서원을 하고 머리를 깎은 것처럼 보입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무슨 서약을 하거나 결심을 할 때 삭발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물론 여기서도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이전에 서약했던 것을 마무리하면서 머리를 깎았다는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이제 새로운 서약을 하면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머리를 깎은 것으로 볼 때, 이것은 ‘나실인의 서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실인의 서약’을 할 때, 몇 달 동안 할 수도 있고, 몇 년을 할 수도 있고, 평생을 할 수도 있는데, 바울이 그 서약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지금 이때 겐그레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하고서 떠난다기보다는, 이전에 나실인의 서약을 했는데 이제 때가 되어 그 기간이 다 되어서 그것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나실인의 서약을 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서 머리를 깎은 것도 원래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게 되어 있었는데, 나중에 보면 바울이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면서 예루살렘을 잠깐 들릅니다. 성경에는 안 나오지만, 그때 이 깎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성전에 가서 불태워 드림으로써 나실인의 서약을 마무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다’(18)는 것은, 바울이 지금 서원을 한 게 아니라 이미 서약을 했는데, 고린도에 있으면서 ‘나실인의 서약’을 했었다는 뜻이 됩니다. 물론 이 나실인의 서약을 고린도에 오자마자 했는지, 갈리오 재판 이전에 했는지 후에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나실인의 서약’은 남자든 여자든 일정 기간 동안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서약으로서, 구약 민수기 6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들이 지킬 사항들이 나와 있습니다.
첫째로, 독주는 말할 것도 없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습니다. ‘독주’라고 되어 있지만, 성경에 ‘소주’가 나오는 것을 아십니까? 옛날 성경에는 소주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나실인은 포도주도 마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요즘 술을 마시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 당시 대부분의 물이 석회수입니다. 지금도 유럽에 가보면 대부분 물에 석회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스라엘 땅에서는 석회가 많이 섞인 물 때문에 포도주가 물의 대용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그들의 주식인 납작한 빵으로 식사하며 포도주를 같이 마시는 것은, 한국 사람이 술을 주로 마시며 안주를 곁다리로 먹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것은 반드시 있어야 하는 우리의 물과 같은 개념으로 그들은 포도주를 마신 겁니다.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은 서약 기간 동안에 그런 포도주를 못 마시고 허연 석회수만 마셔야 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일반인과 구별하여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둘째로, 나실인은 머리에 칼을 대어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에게 머리는 심장과 함께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이 풍성하다’는 표현은 아주 인물이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아들로 반역을 한 압살롬을 가리켜 ‘머리카락이 풍성했다’고 하는데, 인물이 아주 좋았다는 말입니다. ‘나실인의 서약’을 한 사람이 머리에 칼을 대지 않는 것 역시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나실인의 서약은 남자만 아니라 여자도 할 수 있었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서약 기간 동안에는 머리를 자르지 못하니까,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머리가 장발이 될 수밖에 없었고 서약 기간이 끝난 다음에야 칼로 머리를 단정하게 자를 수 있었습니다.
‘바울이 일찍이 서원이 있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다’는 것은 고린도에서 바로 그 ‘나실인의 서약’을 해서 머리에 칼을 댈 수 없었고 자르지 못했는데, 서약 기간이 끝나 고린도를 떠나면서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기 직전에 길게는 1년 6개월에서 1년 정도 동안 장발로 자란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한 것은 혼자 찾아간 타락의 도시, 문란한 도시 고린도에 주님께서 자신을 위해 놀랍게도 이미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그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주님께 자신을 더욱더 드리기 위함이었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나실인은 부정한 것을 만지면 안 됩니다. 특히 시체를 만지면 안 됩니다.
이렇게 크게 세 가지 규정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바울은 두 차례에 걸친 전도여행으로 아시아에서 유럽 대륙의 고린도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의 온갖 박해와 모함과 죽음의 위협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런 바울이라면 새삼스럽게 고린도에 와서 ‘나실인의 서약’을 한다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고린도에 체류하면서 ‘나실인’으로 1년 6개월 또는 1년 조금 못 되는 기간 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았고, 포도주를 입에 대지도 않았습니다. 무려 1년 또는 1년 이상 하루 세끼 밥을 먹을 때 물로만 먹은 것입니다.
우리가 기름기 많은 햄버거를 먹을 때 물만 마시는 분이 계십니까? 사실 기름진 음식에 찬물을 마시면 체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그렇게 1년 이상 햄버거를 먹을 때 물만 마신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바울이 마셨던 물은 깨끗한 청정수(filtered water)가 아니라 아주 희뿌연 석회수를 마신 것입니다.
그런 석회수가 위장에 좋을 리가 있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나중에 디모데에게 ‘물만 마시지 말고 포도주도 쓰라.’고 한 말은 ‘야, 은혜 받았다. 포도주를 마셔도 되네.’라고 하는 차원이 아니라, 나실인의 서약을 하면서 디모데도 좋지 않은 석회수만 마시다가 위장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그렇게만 하지 말고 포도주도 마시라고 권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해주시고 놀라운 은혜로 함께해주신 주님께 자신을 더 온전히 드리기 위해, 고린도에서 나실인의 서약을 하고 항상 허연 석회수만 마신 것입니다.
2. 에베소 방문
이제 고린도를 찾아간 지 1년 6개월이 되어 고린도 교회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보이니까, 바울은 자신의 2차 전도여행을 마무리 짓고 자신의 파송교회가 있는 수리아(시리아)의 안디옥으로 귀환하기 위해 뱃길에 오릅니다. 이때 혼자 고린도를 찾은 바울이 고린도에 정착할 수 있도록 크게 도움을 주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도 바울의 동역자로 바울을 따라갑니다.
바울 일행은 배를 타기 위해 고린도의 동쪽 외항 겐그레아로 갔고, 나실인의 서약 기간이 끝난 바울은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기 전에 서약 기간 동안 장발로 자란 자신의 머리를 단정하게 자릅니다. 그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19절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에 와서 그들을 거기 머물게 하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19절)
고린도의 외항인 겐그레아에서 지금의 터키 동남쪽에 있는 수리아 안디옥까지는 600마일이 넘는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옛날에 그처럼 먼 거리를 직행하는 배는 없었습니다. 그 정도의 먼 거리를 가려면 여러 도시에 정박하면서 여러 번 배를 갈아타야 했습니다. 그 당시 지중해에는 우리가 요즘 버스를 갈아타는 것처럼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바울 일행이 겐그레아에서 동쪽으로 출항하는 배 가운데 가장 먼저 탈 수 있었던 배가 바로 에베소로 가는 배였습니다. 오늘날 터키의 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는 지금 셀축이라고 하는 도시입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행정구역인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고, 아시아 주의 수도였습니다. 규모로는 제국의 수도인 로마,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바울을 파송한 교회가 있는 수리아의 안디옥과 함께 로마제국 4대 도시에 드는 도시가 바로 이 에베소였습니다.
동서남북으로 교통의 요충지였던 에베소에는 무역과 상업의 발달로 없는 것이 없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방문했던 시기에 에베소에는, AD 263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될 때까지 고대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하던 아데미 신전이 있었습니다. 아데미는 당시 아시아 사람들이 숭상하던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데, 아데미 신전은 엄청나게 컸습니다. 길이 130미터에 폭 67미터로 신전을 떠받드는 기둥만도 127개였습니다.
제가 가보았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있는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은 길이 약 70미터에 폭 31미터이고 기둥은 46개밖에 안 됩니다. 그러므로 아데미 신전은 길이와 폭이 그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의 두 배였고, 크기는 무려 네 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고대 세계의 불가사의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고대에 어떻게 그런 건물을 지었습니까?
그 불가사의한 아데미 신전에는 여사제들이 수천 명에 달했고, 신전 노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날이면 날마다 아데미 신전에서 참배하려고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에베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는 매일 북적북적했고, 사람들로 항상 넘쳐났으며, 사람들이 모인 곳마다 있는 밤 문화가 있는 술로 흥청거리는 도시였습니다. 에베소도 고린도 못지않았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십시오. 그러한 에베소 사람들이 정말 행복했겠습니까? 그들의 마음속에 평안이 있었겠습니까? 그 반대였습니다. 에베소가 로마제국의 4대 도시였다는 것은, 그만큼 그곳의 보통 사람들의 삶은 굉장히 각박하고 힘들었다는 말입니다. 지금의 대도시 사람들처럼, 2천 년 전 에베소 사람들 역시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생과 수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고 슬픈 인생이었습니다.
그 에베소에 바울 일행이 첫발을 디딘 것입니다. 대도시 에베소의 세련된 사람들 사이에서 바울이 사실 얼마나 볼품없는 모습으로 도착했겠습니까? 화려한 제복을 두르고 종교 권력을 휘두르고 있던, 불가사의한 아데미 신전 사제들에 비하면, 바울의 행색은 정말 초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함과 동시에, 사실은 그 동안 불쌍하게 살아가던 에베소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죽음을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바울과 함께하셨기 때문에 에베소에도 소망의 빛이 비치게 된 것입니다. 그 엄청난 아데미 여신과 신전도 주지 못했던 소망과 생명을, 바울을 통해 주님께서 주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바울은 방문하는 곳마다 그랬던 것처럼, 에베소에서도 먼저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합니다(19). 이것은 바울이 자신을 변호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변론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가 ‘강론하다’, ‘설교하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전에도 살펴보았듯이, 바울의 설교의 핵심은 언제나 ‘죄와 죽음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하신 부활의 주님’이었습니다. 여기는 자세히 나와 있지 않지만, 여기서도 그런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의 설교에 대해 에베소 유대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20절)
바울의 설교를 듣고 바울에게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했습니다. 놀랍게도 이 사람들은 회당 안에 있는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은 데살로니가나 비시디아 안디옥 유대인들과는 달리 호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머물러 달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여러 사람’이라고 되어 있는데,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얼마나 감격했으면 그들이 모두 바울에게 자신들과 함께 지내면서 좀 더 오래도록 복음을 전해 주기를 요청했겠습니까?
19절에서 ‘그들’은 바울과 함께 고린도에서 이곳 에베소로 온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18절에서 이 부부를 표현할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라고 하고 있습니다. 원래는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인데, 남편이 아굴라이고 아내가 브리스길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이름의 순서가 서열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브리스길라가 더 적극적으로 주도하는 역할을 감당했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영적으로 브리스길라가 남편 아굴라보다 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사실 남편을 먼저 쓰고 아내를 먼저 쓰는 경우는 별로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아굴라는 그 당시 문화에도 불구하고 자기 아내가 먼저 앞에 가도록 뒤에서 밀어주었습니다. 굉장히 귀한 부부입니다.
그들이 여기 머물렀다는 것을 그냥 보면, 바울이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에베소 항구나 시내의 모텔 같은 곳에 머물게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18장을 끝까지 다 읽어 보면, ‘그들을 거기 머물게’ 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작별하여 이르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1절)
바울로부터 복음을 전해들은 에베소 사람들은 바울에게 ‘여기 좀 더 머물면서 복음을 전해주십시오.’ 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일단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하기로 한 바울은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들과 작별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오고, 허락하지 않으시면 안 오겠다.’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으로 하여금 반드시 이곳 에베소로 다시 오게 해주실 것이라는 확신의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원래 계획대로 수리아 안디옥을 향해 에베소를 혼자 떠나면서, 자신을 대신하여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로 하여금 이곳 에베소에 남아 있게 한 겁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기도만 하면서 ‘주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순종하면서 나아간 사람이지만 동시에 자신이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아주 치밀하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이주시켜 놓고 그곳에 살도록 한 다음에, 나중에 바울이 에베소에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이 부부가 바울로부터 복음을 들은 에베소 사람들, 특히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을 돌보면서 계속 에베소에서 사역하도록 한 것이었습니다. 아주 뛰어난 선교 전략입니다.
잠시 에베소에 방문한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에베소 사람들이 나왔는데, 이들이 바로 에베소 최초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바울 대신 에베소에 남게 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 최초의 교회의 핵심 리더가 된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는 천막제조업자였습니다. 바울과 업이 같았던, 천막을 만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 군인들의 진은 모두 천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 일반인들도 천막을 많이 찾았습니다. 그래서 천막제조업이 그 당시 아주 유망한 직종이었습니다.
만약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들의 인생의 목표 역시 그냥 돈 많이 벌고 성공하는 그 정도가 아니었겠습니까? 돈 많이 벌어서 자기가 사고 싶은 것을 다 사고 소비하는 그런 삶, 다시 말해 스스로 자기 인생의 하나님이 되어서 자기 욕망대로 사는 그런 삶 밖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2천 년 전에 아무 이름도 전해지지 않고 그냥 끝나버린 인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이미 예수님을 믿고 로마에서 고린도로 와서 바울을 만난 것인지, 아니면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이든 상관없이, 이들은 바울을 만났기 때문에 주님 안에서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사명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그것은 확실합니다. 그들의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이들이 왜 이 고린도까지 왔습니까? 그 당시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추방당할 때, 이스미안 제전(Isthmian Games)이 고린도에서 곧 벌어지기 때문에, 그 운동경기로 인해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천막이 많이 필요해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벌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곳을 다 놓아두고 일부러 고린도로 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사실 돈을 따라 온 것인데, 바울을 거기서 만남으로써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따라 사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정말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복음에 헌신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돈을 좇아 왔던 고린도를 떠나서 에베소로 옮기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돈을 따라 사는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었기 때문에, 바울의 제안에 기꺼이 순종하며 따라갔습니다. 에베소에 남았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역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남겨두고 수리아 안디옥으로 간 바울은 곧 3차 전도여행을 다시 시작하게 되는데, 그때 이 에베소를 재방문해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가 터를 닦아 놓은 에베소에서 3년 동안이나 머물며 에베소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3년이란 기간은 사실 바울의 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통틀어서 한 곳에 가장 오래 머문 기간입니다. 그곳이 복음 전파의 기지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와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헌신 때문에 이루어진 일입니다. 그 결과 19장에 보면, 유대인들뿐 아니라 수많은 헬라인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고 죄와 죽음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놀라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3. 안디옥 귀환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22절)
에베소에서 다시 배를 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서쪽 해안가에 있는 외항이라고 할 수 있는 가이사랴, 로마의 유대 총독이 살던 그 가이사랴에 도착을 합니다. 그와 동시에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안디옥에 도착함으로 끝나게 됩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곧장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여기는 그냥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히 어디인지 나와 있지 않지만 그 뒤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올라갔다가 내려간 겁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을 두고 쓰는 말입니다.
구약성경에도 보면 예루살렘은 항상 올라가는 데고, 예루살렘에서 떠나면 내려가는 겁니다. 안디옥은 예루살렘에서 훨씬 북쪽에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하면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써야 하는데, 북쪽으로 ‘내려간다’는 말을 씁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갔다가 안디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즉,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안부를 물었다는 것은 거기에 가서 선교 보고를 한 것입니다. 예루살렘 모(母) 교회의 사도들과 성도들을 만나, 지금 막 끝난 자신의 2차 전도여행 동안의 놀라운 역사에 대해서 그들에게 보고를 했습니다. 바울이 굉장히 중요시한 것이 예루살렘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그의 편지를 보아도 그렇고, 특히 자신이 전도해서 세운 이방인 교회들과 예루살렘 교회가 연결되도록 굉장히 애를 씁니다. 그래서 이때도 일부러 올라가서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을 파송했으며 목회 본거지인 수리아의 안디옥으로 내려갑니다. 바울이 자신을 선교사로 파송했던 시리아 안디옥 교인들과도 또 다시 만나며 얼마나 기쁨을 나누었겠습니까? 자신의 2차 전도여행을 통해 하나님이 놀랍게 역사하셨다는 것, 특히 소아시아(터키)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데 성령이 막으시고 환상 가운데 마게도냐로 와서 도와달라고 한 것, 그래서 마게도냐로 가서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고 하며 흥분해서 전하는 바울, 그리고 그의 말을 경청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안디옥 교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은 AD 49년부터 52년까지 약 3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그가 여행한 총 여행 거리가 3천 마일이 넘는 대장정이었습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에게 예루살렘 그리고 수리아 안디옥 교인들과 나눌 믿음의 스토리가 사실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또 이러한 놀라운 역사에 대해 들은 예루살렘과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큰 은혜와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특히 예수님의 열두 제자였던 사도들과 예수님의 동생이었던 야고보 같은 사람은 바울의 말을 들으면서 시기와 질투를 할 만합니다. ‘아니, 왜 저 사람은 저러고 왜 나는 여기서 이러나?’ 하면서 시기할 수 있었는데, 그들은 너무 성숙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간 것입니다. 서로 격려한 것입니다. 축복하며 기도해주었습니다.
바로 이런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우리 인생에도 이런 스토리가 있습니까? 요즘 젊은이들이 스펙(spec)을 쌓으려고 굉장히 애를 쓰는데, 한국에서 괜찮은 집안 고등학생들은 아프리카 봉사활동도 다니고 해외로 다닌다고 합니다. 물론 그 중에 진짜 봉사를 하러 가는 학생들이 없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스펙을 쌓기 위해서, 대학 입학을 위해 좋은 내용을 써넣기 위해서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진짜 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낸,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정말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무엇입니까? 심지어 요즘 세속적인 대학교들도 ‘내가 이렇게 희생을 했다. 나의 시간과 나의 돈과 나의 재능을 사용해가면서 남들을 살리기 위해 애를 썼다.’라는 것을 굉장히 높게 평가해줍니다. ‘이런 사람이 정말 리더다.’라고 평가해줍니다.
그러니까 단지 스펙을 글로 몇 자 적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짜 스토리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대학생, 청년들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 인생은 다 스토리가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고, 다 인생의 스토리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인은, 사도 바울처럼 주님 안에서 믿음의 스토리를 써내려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나는 지난 한 주 동안 뭘 했나 생각해보십시오. 지난 한 달 동안, 2019년이 되어 지난 5개월 동안, 또 지난 1년 동안 나는 뭘 하며 살았나? 나에게 어떤 스토리가 있나? 어떤 스토리를 만들며 살아 왔는가 생각해보십시오. 그저 돈을 벌고, 출세하고, 성공하고, 공부 열심히 해서 잘되려 하고, 욕망을 성취하고, 쾌락을 따르고 하는 데는 전문가가 되어서 많은 스토리가 있는데, 정작 주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 주님 안에서 정말 의미가 있는 믿음의 스토리가 혹시 몇 줄도 안 되는 건 아닌지, 아니 하나도 없는 건 아닌지, 잘 돌아보아야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하고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다 사라질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쓸 데 없으니까 하지 말라는 차원이 아니라, 그런 것들이 영원한 가치를 이루는 일을 위해서 쓰임 받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없어지면서 다 없어질 것들, 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다 없어질 것들이 내 목적이 되면 안 되고, 그것들은 저 영원한 가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산 사람들 중 하나가 바로 바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죽음과 동시에 다 없어질 것들만 붙들고 살아가는 스토리 밖에 없지 않은가, 영원히 나와 함께 남을 것에 대해서는 신경을 못 쓰고 산 것은 아닌가, 꼭 돌아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랫동안 부귀영화와 쾌락의 스토리에만 빠져 있었던 대표적인 인물이 누군가 하면 바로 구약의 솔로몬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돈이 많았던 사람, 가장 최고의 부자, 가장 지혜가 많았던 솔로몬이었는데, 그가 점점 흐려졌습니다. 그래도 전도서를 읽어보면 마지막에 그가 하나님을 붙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 해보니까 결론이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입니다. 이게 그의 결론입니다. 다 가져봤고 다 해봤고 지혜도 가장 뛰어났던 그의 결론은 ‘다 헛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스토리가 아닌 스토리는 아무리 화려하고 아무리 엄청나게 보여도, 사실은 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물거품처럼 헛된 것임을 솔로몬은 알았습니다. 우리도 그것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4. 제3차 전도여행의 시작
이처럼 자신을 파송한 수리아 안디옥으로 귀환한 바울이,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안디옥을 떠납니다. 앞으로 약 6년에 걸친 3차 전도여행을 시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 있다가 떠나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다니며 모든 제자를 굳건하게 하니라” (23절)
수리아 안디옥을 떠나 3차 전도여행길에 오른 바울은, 먼저 갈라디아와 브루기아 지역을 다니며 1차, 2차 전도여행을 통해 자신으로부터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한 주님의 제자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굳건하게” 해주었습니다. 바울이 무엇으로 그들의 삶을 이처럼 굳건하게 세워 주었겠습니까? 돈으로? 권력으로? 그런 것은 있지도 않았고, 오직 복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당시 지중해 세계는 모두 로마제국에게 속한 땅과 바다였습니다. 로마제국은 외적 성장과 확장을 추구했습니다. 그들이 추구하는 성장과 확장에는 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나온 말이 “팍스 로마나 Pax Romana”(로마의 평화)입니다. 그런데 진짜 평화가 아니라 무력으로 정복해서 강제로 평화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의 로마에서 시작된 로마제국은 그들의 야망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유럽과 북아프리카와 이집트와 중동과 유대 땅 그리고 페르시아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영토를 정복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 결과 로마제국은 지중해 세계에 역사상 최고의 제국이자 최대의 제국을 이루었고, 부유함은 날로 커졌고, 로마 황제는 이 세상 어느 지배자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황제 숭배까지 했습니다.
그와 같은 로마제국의 영토 확장과 경제적 성장과 절대 권력이 그 당시 로마 사람들이 직면하고 있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주었습니까? 그들에게 정말 생명을 주었습니까? 결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영토가 확장될수록, 그들의 경제가 성장할수록, 물질주의에 빠진 로마 사람들의 내면세계는 더 고갈되었습니다.
지금도 로마 유적이 발굴된 것을 보면 얼마나 화려한지 모릅니다. 화산 폭발로 멸망당한 폼페이 같은 데는 너무 살기 좋은 데였습니다. 물이 2층으로 올라가고, 상수도와 하수도가 갖추어졌고, LA의 로데오(Rodeo) 거리 못지않은 샤핑몰이 있고, 엄청나게 화려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대로 멸망했습니다.
심지어 화장실이 아니라 토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파티를 벌이면서 음식을 막 먹고 가서 토하고, 와서 또 먹고 가서 또 토하고, 와서 또 먹고 가서 또 토하는 것이 로마 귀족들의 삶이었습니다. 정말 만족이 있었으면 그렇게 살았겠습니까? 거기에 정말 무슨 행복이 있었겠습니까? 내면세계는 더 고갈되어 갔던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이 원형경기장에서 왜 그렇게 열광했습니까? 맹수와 인간이 대결하고, 검투사들이 찔러 죽이고, 어떤 때는 맹수가 사람을 잡아먹고, 또 검투사들끼리 피비린내 나는 결투를 벌이고, 거기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관중들은 환호했습니다. 속이 비어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겁니다. 채워지지 않으니까 그런 걸로 채워보려 하고 만족을 찾아본 것인데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자신들을 붙들 수 있는 어떤 도덕이나 윤리적인 힘이 있었겠습니까?
결국 그렇게 외적인 성장과 확장을 추구하던 로마제국은 AD 395년에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으로 분리됐고, 서로마제국은 AD 476년 게르만 민족의 군대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외부의 침입 이전에 내부적으로 먼저 붕괴되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외부에서 툭 치니까 그냥 무너진 겁니다.
오늘 본문 이후 3차 전도여행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두고 떠났던 그 에베소를 다시 찾은 바울은 거기에 3년 동안 머물면서, 그 전에 떠나온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에게 고린도전서를 썼습니다. 거기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고전 2:1-2)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관심은 언제나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에만 있었습니다. 인간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한 제물로 돌아가셨다가 죽음을 깨뜨리고 영원히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그 십자가의 복음만이 인간을 파괴하는 이 물질만능의 세계에서 죽음을 뛰어넘어 우리를 영원히 굳건하게 세워주는 유일한 답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가는 말]
미국의 세계적인 기업인 제너럴일렉트릭(General Electric = GE)이 있습니다. 거기서 만든 것을 안 쓰는 분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2017년에 은퇴한 회장이 제프리 이멜트(Jeffrey Immelt)인데, 그가 2000년에 회장이 된 이후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가 방문할 때마다 강연에서 강조한 공통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멜트 회장은 21세기 기업이 직면한 문제로 날로 깊어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격차,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 공정한 시장경제 구축과 같은 것을 말하면서, 이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바로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시대에 기업이 직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에 대해 오직 ‘성장’만이 해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조그마한 중소기업의 사장이 아닙니다. 그는 세계적인 제너럴일렉트릭의 최고경영자입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이 1878년에 설립한 제너럴일렉트릭은, 세계에서 당시 여덟 번째로 큰 거대한 기업이었습니다. 그러한 거대 기업의 회장 이멜트가 오늘날 기업이 직면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내적 성찰과 반성을 통한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가 아니라, 오직 외적인 ‘성장’이 해답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시 말해,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은 수입을 올리기만 하면 정말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정말 그렇습니까? 오늘 복잡하게 얽혀 있는 모든 문제들은 경제 성장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입니까? 우리 각 사람이 정말로 돈을 더 많이 벌기만 하면 모든 가정 문제와 사회 문제가 저절로 해결이 되겠습니까?
30년 전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가정의 소득을 생각해보면, 그때와 지금을 비교할 때 사실 소득이 얼마나 늘었습니까? 국가 재정이 또 얼마나 커졌습니까? 이전에 비해 우리가 사는 환경이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지금은 전화기 하나를 들고 다니면서 세계를 다닐 수가 있습니다. 그럼 그 결과로 30년, 40년 전에 비해서 더 좋아졌어야 하는데, 사회문제가 해결되거나 줄어들었습니까? 더 많아졌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가득 차 있는 부정부패, 심각한 빈부 격차, 인간성 상실, 가정 붕괴, 계층 간의 갈등, 지역 간의 대립, 도덕 윤리의 실종의 원인이 다 무엇입니까? 사실은 우리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올바른 성장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고 성장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이 서로 부딪칠 때,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부딪칠 때, 어리석게도 인간은 전쟁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둘이 부딪치면 무력을 통해 해결하려고 했는데, 개인끼리도, 나라끼리도 역사를 보면 그랬습니다.
인간의 내적 성찰과 성숙을 빼놓고 경제 성장만 추구하게 되면 그게 답이 될 수가 없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버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삶은 오히려 우리 자신을 파괴하고 우리의 인간관계를 더 황폐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사회를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사회를 굳게 세워 주는 것, 가정을 굳게 세워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면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따라 살아가면 정말 행복한 인생이 됩니다.
그런데 참 안타깝게도, 교회들도 외적인 성장을 굉장히 추구해왔습니다. 외적인 성장이 곧 부흥이 아닙니다. 진정한 부흥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주님의 제자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사명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사진을 보려고 합니다. 아까 봤던 사진들입니다.
17) 그런데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이런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인류의 귀한 문화유산입니다.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이 얼마나 귀한 인류의 문화유산입니까? 항상 관광객들로 들끓습니다.
18) 그 내부도 역시 화려하고, 온갖 보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저 하나하나가 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입니다. 얼마나 귀합니까?
19) 성바울성당도 바울이 죽은 무덤이라고 생각되는 그 위에 지어놓은, 아주 화려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20) 그런데 여기는 얼마나 황량합니까? 아무도 찾지 않습니다. 아무 관광객도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 영원히 기억되는 곳이 이곳입니다.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천국에서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서로 혀를 끌끌 차면서 ‘우리가 저런 것 때문에 그렇게 산 것이 아닌데, 인간들이 우리 이름을 빌려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구나.’ 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21) 바로 이곳입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저 황량한 곳, 그러나 천국에 영원히 기억될 곳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사는 삶은 이처럼 아름답습니다. 혹시 인간은 비록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알아주시는 아름다운 인생입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진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이런 아름다운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