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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8일 수요예배
✦ 삶의 문제를 기도로 헤쳐나간 사람들 1 ✦
솔로몬: 경청의 기도 - “듣는 마음을 주소서”
(열왕기상 3장 1~14절)
오늘부터 새로운 말씀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원래 수요예배 때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한 권 정해서 그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설교자이자 저의 선배로서 위임예배 때 오셔서 말씀을 전해주셨던 유진소 목사님이 최근에 쓰신 <기도는 거룩한 고민입니다>라는 책을 중심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유 목사님은 LA 지역에서 ANC온누리교회를 개척하여 20년 동안 사역하시다가 지난 2016년부터 부산 호산나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이 책에는 인생의 고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무릎으로 나아갔던 선지자들의 모습을 통해, 그들이 드린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거룩한 열매로 맺힐 수 있었는지 알려줍니다. 그들은 결코 편안한 환경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한 것이 아니라, 무거운 현실 속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고민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정말로 기도할 때임을 절감하면서 이번 수요예배 말씀 시리즈를 통해 귀한 은혜를 체험하고 영적 결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안타까운 삶의 모델이었던 솔로몬
세상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복 받고 성공적인 삶을 산 성경의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솔로몬이라고 할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29)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풍족한 삶을 산 사람으로 솔로몬을 꼽을 만큼,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히 알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렇게 화려했던 솔로몬의 삶의 결론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원하는 아름다운 결론이 아니라 오히려 안타까운 결론을 낸 사람이 바로 솔로몬입니다. 전도서를 보면 ‘헛되고 헛되니 헛되고 헛되다’라고 합니다.
솔로몬의 인생 말년에는 사람들이 다 그를 떠났습니다. 가까이 있던 사람이 그에게 대적이 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북 이스라엘을 세운 여로보암이었는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나라가 분열되었고, 성경은 그 분열의 원인을 솔로몬의 우상숭배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결국 그의 이름은 말년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이름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게 됐습니까?
“이와 같이,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으므로, 주님께서 솔로몬에게 진노하셨다. 주님께서는 두 번씩이나 솔로몬에게 나타나셔서, 다른 신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솔로몬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왕상 11:9-10, 새)
결국 솔로몬이 말년에 영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나라가 갈라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문제는 솔로몬만의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거나 유명해지면 교만해져서 타락하고 망가지는 것을 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것은 피할 수 없는 문제입니까? 인간은 다 그런 것입니까?
사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풍요롭고 아름답고 건강하고 명예롭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기면,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복을 부어주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복을 받은 결과 타락하게 된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는 것이므로 영적 딜레마가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열심히 믿었는데,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고 풍족함을 누리고 나니까 오히려 영적으로 해이해지는 경우를 종종 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렵고 힘들 때는 환경이 어떻든지 밤이고 낮이고 달려가 하나님에게 기도합니다. 하지만 상황이 나아지면 자꾸 꾀를 부리고 게을러지면서 변명이 많아집니다. ‘멀어서 못 가겠다... 피곤해서 못 가겠다... 바빠서 못 가겠다... 급한 일이 있어서 못 가겠다...’라는 식으로 이런저런 핑계를 댑니다.
그러니까 영적 상태를 점검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지금 환경이 어떻든지 나는 무조건 기도와 말씀과 예배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자꾸 안 하려는 핑계거리가 생기고 변명을 하는가?’
그렇다면 기도에 응답해주시니까 신앙의 길과 멀어지게 되는 것이 과연 축복입니까 아니면 저주입니까? 하지만 여기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타락하지 않고 끝까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을 가진 사람은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감사하고, 높아졌기 때문에 더 겸손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신앙입니다.
2. 기브온 영성을 붙잡으라
솔로몬이 선지자는 아니었지만, 솔로몬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삶이 주는 메시지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열심히 믿으면 이렇게 놀라운 복을 받는다.’라는 것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솔로몬의 삶이 주는 메시지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복을 끝까지 진정한 복이 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솔로몬은 긍정적 샘플이 아니라 부정적 샘플입니다.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실패 이야기, 곧 솔로몬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끝까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고 풍족하고 귀한 삶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까요? 그 대답은 솔로몬의 믿음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는 ‘광야의 영성’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평생 광야의 영성을 놓고 씨름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중간에 실족하고 죄를 범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 광야의 영성을 내려놓고 왕궁에서 편안하게 낮잠을 즐겼기 때문입니다. 편안함은 광야의 영성과 정반대의 방향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기브온 영성’입니다. 기브온은 어떤 곳입니까? 솔로몬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며 일천번제를 드렸던 장소입니다. 만약 그가 그러한 기브온 영성을 끝까지 지킬 수 있었다면,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엄청난 복과 은혜와 풍요로움을 유지하면서 마지막까지 아름다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정말 원하셨던 모습이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구하기 위해 이른 아침, 곧 오전 6시에 나가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일꾼이 부족했는지 오전 9시에 다시 나가 사람들을 또 여럿 데리고 옵니다. 낮 12시에도, 오후 3시에도, 그리고 오후 5시에도 나가서 사람들을 데리고 옵니다.
일을 마치고 품삯을 정산하는데 맨 나중인 오후 5시에 온 사람부터 아침 6시에 온 사람까지 모두에게 한 데나리온씩이 주어집니다. 그러자 자기는 더 받을 것을 기대했던 오전 6시에 온 사람이 자기도 똑같이 받으니까 그것에 대해 원망하다가 결국 주인에게 꾸중을 듣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결정적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입니까? 이 비유는 절대로 ‘오후 5시에 온 사람의 횡재’가 아닙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것은 결코 맨 나중에 믿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먼저 된 자로서 끝까지 먼저 되라’는 것입니다. 이 먼저 되는 축복을 놓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솔로몬이 끝까지 기브온의 영성을 지켰다면 그의 삶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의 샘플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의 삶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메시지는 그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바로 기브온의 영성입니다. 그렇다면 기브온의 영성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것은 바로 ‘기도의 영성’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하는 영성을 말합니다.
기도는 절대로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 못합니다. 기도는 기본적으로 무릎 꿇는 것이며 간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사람은 교만해질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교만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이 됩니다. 기도는 계속해서 하나님을 구하는 것이며, 그로 인해 능력의 생수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썩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늘 새로운 생수를 공급받는데 어떻게 썩고 부패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는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끝없이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빗나갈 수 없습니다.
결국 무슨 말입니까? 진정한 기도의 영성을 갖고 있다면, 복이 저주가 되는 일은 없으며,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복이 썩어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3. 기브온의 영성이 담긴 기도의 특징
그렇다면 기브온의 영성은 구체적으로 기도의 어떤 특징이 강조된 영성입니까?
1) 하나님의 치유의 통로가 되는 기도
먼저는, 하나님이 치유하고 만지시는 통로가 되는 기도입니다.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주께서 택하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7-8절)
솔로몬이 왕이 되자마자 기브온으로 달려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열등감과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가진 열등감과 두려움은 그의 출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다윗은 범죄하여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불법적으로 취했고, 그들 사이에서 죄악의 씨가 된 아이가 태어났지만 금방 죽고 맙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죽은 후에 다윗이 회개함으로 하나님에게 용서를 받고 밧세바를 위로하는 가운데 잉태되어 태어난 아이가 바로 솔로몬입니다.
이 과정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진심으로 회개했고, 하나님은 다윗을 용서하셨으며, 하나님의 위로가 밧세바에게 임하여 솔로몬이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솔로몬을 사랑하셔서 이름까지 주셨습니다.
“그 뒤에 다윗이 자기의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동침하니, 그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 다윗이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고 하였다. 주님께서도 그 아이를 사랑해 주셔서, 예언자 나단을 보내셔서,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뜻으로, 그의 이름을 여디디야라고 부르게 하셨다.” (삼상 12:24-25, 새)
하지만 세상의 눈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잊지 않고 수군거렸습니다. 그로 인해 솔로몬은 내내 열등감에 둘러싸여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열등감으로 인해 솔로몬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마다 용기를 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그러한 그가 왕이 되었기에 그 자체가 이변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솔직히 정상적으로 왕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출생 자체도 그렇지만 순서로 봐도 그랬습니다. 그의 앞에는 형 아도니아가 있었고, 누가 봐도 아도니아가 왕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도니아의 교만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인해 솔로몬이 왕이 된 것입니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솔로몬의 마음속에는 온갖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가지고 그는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어린 아이라며 자기가 가진 열등감을 그대로 다 드러냈습니다. 자신의 두려움을 모두 고백하고, 자신의 상처를 모두 드러낸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브온의 영성입니다. 바로 이것이 기브온의 기도입니다. 우리 믿는 신앙인들은 이 기도를 붙들어야 합니다. 이 기도만 놓치지 않는다면 절대로 타락하거나 빗나가거나 망가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이 기도를 붙잡아야 합니다.
상처는 한 번에 아무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는 우리 안에 끝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기도는 죽을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되는 기도입니다. 자신 안에 있는 상처를 발견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아가 기도로 아뢸 수 있다면, 아주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훌륭한 인격과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보십시오. 그들이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 안에 상처나 아픔, 또는 열등감이나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서 꿇어 엎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이러한 영성이 필요합니다.
2) 방향을 잡는 기도
기브온의 영성이 담긴 기도의 두 번째 특징은,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에게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삶과 신앙의 방향을 잡는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 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1절)
이러한 정략결혼은 당시 고대 근동사회에서는 매우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왕들이 워낙 못되거나 성적으로 문란해서가 아니라, 당시 문화적 전통으로서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강대국인 애굽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솔로몬은 정략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바로의 딸과 결혼을 했습니다. 사실 그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방향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똑바로 가고 있는지 빗나가고 있는지, 중심이 잡혀 있는지 흔들리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정말 안타까운 사람은 쓰러지고 있으면서도 쓰러지는 줄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쓰러지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쓰러지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납니다.
솔로몬은 쓰러지려는 것을 먼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것,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 이대로 가면 큰일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의 딸과 결혼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솔로몬이 기브온의 영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원인이 이집트 바로의 딸로 인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만큼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위기의식을 느끼고 기브온 산당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혼란스럽고 헷갈리며 방향이 불분명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에,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려고 달려간 것입니다.
신앙인들에게 이런 기도의 영성이 계속 필요합니다. 삶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우리 삶의 방향을 흔들어 넘어지게 하려 할 때마다 그것을 그냥 방치하거나 그 안에서 헤매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바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엎드릴 수 있는 영성, 그래서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춤으로 올바른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바로 그 영성이 있어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거나 달라진 것은 없지만 자신 안에서 영적으로 빨간 불이 들어오고 방향이 틀어진 것이 느껴지면, 그 순간 곧바로 하나님께 달려 나아가 기도함으로 영적 초점을 맞춰 나가는 영성이 바로 기브온 영성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성이 바로 이러한 영성입니다. 그러면 절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3) 사명을 위한 기도
기브온 영성이 담긴 기도의 세 번째 특징은, 자기 사명을 위한 기도라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이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드리는 기도입니다. 개인적인 필요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분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나누는 하나님과의 대화, 곧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이 기브온 영성입니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든지라” (9-10절)
솔로몬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을 때 ‘듣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듣는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왕들은 전시에는 전쟁을 하고, 평시에는 재판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의 간구는 선악을 분별해서 재판을 잘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왕으로 세우셨으니 왕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개인적인 필요나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간구가 하나님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은 절대로 빗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을 사명자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언제 망가집니까? 받은 사명을 잊어버릴 때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를 보십시오. 하나님 뜻에 맞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정확하게 맞는 기도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지혜가 있기를 구하기보다 듣는 마음을 달라고 구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한다고 간구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기 원한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얼마나 기쁘셨겠습니까? 바로 이것이 기브온 영성이며 기브온 기도입니다.
우리 또한 이런 기도를 드릴 수 있기 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이 끝까지 복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움이 끝까지 아름다움이 되는 그런 기가 막힌 삶을 끝까지 살 수 있어야겠습니다. 기브온의 영성, 기브온의 기도를 놓치지 않고 항상 드리며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도구로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고귀한 인생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