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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18일 수요예배

치유기도 4

거절의 상처를 싸매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라

(누가복음 1038~42)

 

1.   거절의 상처의 심각성

 

1)  삶에서 거절을 경험할 때

 

누구나 살아가면서 거절을 당한 경험이 있을 줄로 압니다. 거절당한 경험 중에는 별 것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것들은 우리 삶을 완전히 뒤흔들고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고 연락을 완전히 끊어버렸을 때, 몇 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며 준비했지만 지원한 학교나 직장에 불합격했을 때, 가난이나 신체적 결함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과 따돌림을 당했을 때, 거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 시댁에서 며느리라는 이유로 소외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인데 직장에서 갑자기 해고되었을 때, 믿었던 배우자의 외도나 다른 이유로 이혼할 때, 지금까지 희생을 해가며 키운 자식이 아빠 엄마가 날 위해 해준 게 뭐가 있어?”라고 말하며 부모를 거부할 때도 거절의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거절의 경험은 아버지에게 한 번도 따뜻한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거나, 어머니가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자기를 낳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일 것입니다. 부모의 존재가 절대적인 어린 시절에 갑자기 아버지나 어머니가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곁을 떠난다면 거절의 깊은 고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거절의 상처와 애정 결핍은 낮은 자존감을 갖게 만들고, 그로 인해 패배의식과 감정적인 속박 속에서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게 만듭니다.

 

 

2)  거절의 상처가 남긴 중독

 

특히 거절의 상처로 인한 중독이 큰 문제가 됩니다. 거절의 상처는 마음과 기억보다 더 깊은 곳에 남아 있다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서 자신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괴롭힙니다. 거절의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젊을 때는 세상 명예와 권력을 추구하거나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에 집착하며 인정받으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에 집착하면 할수록 그 영혼은 더욱 고갈되고, 성취를 이루더라도 공허한 마음의 공백을 메울 수가 없어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토록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을 이룬 다음 마음이 공허해지면서 중독에 빠지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많은 중독자들을 만나 상담한 치유 전문 사역자에 의하면, 그들에게 나타나는 중독 증상은 그들의 인생이라는 나무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가지들 중 큰 가지에서 싹튼 작은 가지와 같다는 사실입니다. 중독이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그것은 문제가 드러나는 현상이라는 말입니다. 중독이라는 작은 가지를 지탱하고 있는 큰 가지는 대개 인생에서 경험했던 어떤 종류의 큰 좌절이었고, 큰 줄기를 따라 내려갈 때 만나게 되는 근원이 바로 거절의 경험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아서 힘들면 위로받을 곳을 찾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속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쇼핑이나 영화나 취미생활을 하며 기분 전환을 하기도 합니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 기도의 자리에 나와 주님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모든 것을 아뢰고 그분의 위로와 사랑을 통해서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모르는 사람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도 주님을 바라보지 않게 되면 반드시 다른 것으로 눈을 돌리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 시선을 집중하지 않게 되면 TV, 쇼핑, 게임, 운동, , 마약, 담배, 성 등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리고 일단 그것이 습관이 되면 중독의 문제가 생깁니다.

 

중독이 처음에는 사람에게 쾌락과 위로를 주면서 다가오지만, 일단 그 사람 안에 자리를 잡고 나면 자기가 주인이 되어 그 사람을 지배하기 시작하는데, 그때부터 인생의 더 큰 고통이 시작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자기 마음대로 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 자유라고 술을 마음껏 마시면 알코올 중독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가 오히려 노예가 되어 버리고, 더 큰 고통이 옵니다.

 

 

2.   거절의 상처의 치유

 

1)  상처의 근원을 파악하라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6)

 

거절의 반대 개념은 용납과 수용인데, 이것을 잘 나타내는 구절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가 바로 용납의 은혜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외아들 예수님을 인정하시고 높여주신 것처럼,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받아주시고 용납하신다는 뜻입니다.

 

바로 그것이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이며 복음입니다. 이전에 어떠한 죄를 범했더라도, 또 지금 어떠한 연약함이 있더라도, 내 모습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 구원과 치유입니다. 이렇게 치유되고 회복된 사람은 자신의 배우자, 부모, 자녀, 주변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이 치유의 놀라운 효과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신앙생활을 해도 여전히 이기적이며 인격이 변화되지 않는 주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상처의 문제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의 능력을 체험한 성도라고 해도, 여전히 아픔과 상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거절의 상처는 예배, 기도, 말씀, 봉사와 같은 영적 행위를 하더라도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단지 상처에 붕대를 감아놓는다고 금방 낫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붕대를 감아도 그 안에 상처를 곪게 하는 거절과 좌절의 상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의 상처의 근원을 보여 달라고 기도해야 하며, 또 그것을 제거해 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거절의 상처를 극복하는 첫걸음은 내 삶에 있었던 거절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2)  거절의 쓴 뿌리를 찾으라

 

인생에서 가장 큰 상처를 받을 때가 언제입니까? 어린 나이에 당연히 자기를 사랑하고 보살펴주어야 할 부모가 자기를 거절한다고 느낄 때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가 혼외관계를 통해 아이를 가졌을 경우나, 어떤 다른 이유로 인해 임신을 후회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한 마음을 오랜 시간 동안 품고 있을 때, 그 아이는 거절의 상처와 쓴 뿌리(bitterness)를 가지고 태어나게 됩니다. 이런 아이들이 십대가 되면 자신의 외모나 몸을 혐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게 있는데, 임신 했을 때 나는 이 아이가 아들()이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거나 그것을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어리석고 위험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성으로 차별함으로써 태아에게 거절감을 심어주기 때문입니다. 또한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녀에게 사랑을 고루 베풀지 못하고 차별하는 편애도 거절의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성경에도 이삭의 편애로 인하여 에서와 야곱이 상처를 받은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세 자녀를 둔 어느 가정이 있습니다. 첫째는 대부분 그 가정의 기대와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태어납니다. 맏아들 또는 맏딸로서 자연스럽게 우선권을 누리며 부모의 애정과 관심을 많이 받습니다. 둘째는 비교적 평범한데, 연이어 태어난 막내인 셋째는 조금은 성숙해진 부모의 넉넉한 마음과 내리사랑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만약 막내가 영리하고 총명하기까지 하다면, 자연스럽게 둘째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거절의 감정을 갖게 되는데, 그 결과 인정받기 위해 처절한 노력을 하거나 열등감을 안고 살게 됩니다.

 

부모가 이혼한 가정의 자녀들도 거절의 상처가 있습니다. 만약 엄마가 아이를 맡게 되었다면, 아이는 사랑했던 아빠가 자기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같이 떠나버린 현실 앞에서 깊은 상실감을 경험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과 그 다른 여자에 대한 미움을 품게 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아빠가 나를 버렸어. 이제 나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을 거야.’

 

아버지에게서 받은 거절의 상처가 불신과 증오와 분노의 영이 들어오도록 마음 문을 열어놓습니다. 아빠가 아이를 맡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엄마가 나를 버렸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내면의 쓴 뿌리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잘 맺지 못하게 방해하며, 작은 일에도 실망하고 미워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돌보라고 하며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또 쓴 뿌리가 돋아나서 괴롭게 하고, 그것으로 많은 사람이 더러워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십시오.” (12:15, )

 

자기가 떨어져 나가는 것도 조심해야 하지만, 특히 주변 형제자매들이 쓴 뿌리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서로 돌봐주라는 뜻입니다. 거절의 경험은 그 자체로도 해롭지만, 그 상처는 어두움의 세력에게 문을 열어줌으로써 한 사람의 삶 속에 수많은 악이 자라게 만듭니다. 또한 그뿐 아니라 부정적인 태도와 감정을 키우는 쓴 뿌리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배경을 가진 여자아이가 자라서 아내가 될 때, 남편이 조금만 늦게 귀가하거나 술에 취한 모습을 보게 되면 의심과 불안이 가득 차는 것을 경험합니다. 남편의 모습은 아버지의 외도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고, 그 일로 어머니와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되살아납니다.

 

그런 두려움을 억제하지 못하고 분노의 감정에 휩싸인 상태에서 남편이 내뱉은 무심한 말 한마디는 폭탄의 뇌관처럼 아내의 감정을 터뜨리게 만듭니다. 휴화산 같이 아내의 마음속에 숨어 있던 분노의 마그마가 분출되면서 가정을 치열한 전쟁터로 만들어버리게 되는데,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 발단이 되어 부부싸움이 일어나고, 그것이 반복되면 부부관계에 금이 가며, 심할 경우 이혼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면 또 그 상처는 고스란히 그들의 자녀에게로 내려가는 불행한 일이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안의 불안과 두려움, 미움과 불신의 쓴 뿌리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반드시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두려움과 방황의 시간이 길어지며, 본인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3.   여성에게 더 많은 거절의 상처

 

1)  여자라는 이유로 받은 상처

 

보통 여성이 남성에 비해 거절의 상처가 더 많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자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경험들이 많고, 학업의 기회에서 소외되거나 승진과 급여 등에서 차별대우를 받는 현상은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가정마다 차이는 있지만, 여성의 모든 세대가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바로 거절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 것도 불과 몇 년 안 됩니다.

 

과학기술이 첨단을 달리는 시대인데도 여전히 아시아나 중동 지역의 여성들은 종교적 교리와 연결되어 잔인한 차별과 냉대의 그늘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불과 지난 64일부터 여성이 운전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이란에서는 축구 경기를 할 때 여성은 경기장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인도 역시 여전히 심한 여성 차별과 강간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국도 OECD 국가 중에서 여성인권지수가 하위권인데, 성희롱, 성범죄, 여성혐오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페미니스트를 넘어 극단적 남성혐오집단인 워마드라는 단체도 나왔습니다.

 

교회에서도 보면, 남성에 비해 여성이 시험에 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고, 마음의 고통도 여성이 훨씬 많이 받습니다. 그 주된 원인이 바로 거절의 상처입니다. 억울한 일들이 반복되면 화병이나 우울증이 생기는데, 화병은 두려움,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증오를 해소하지 못할 때 생기는 울화증으로, 한국인의 고질병입니다. 화병이 나는 확률 역시 남성보다 여성이 1.5~2.5배 더 높고 노년층에서는 더 큰 격차를 보이는데, 그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이 치유받지 못한 채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의 인구는 남자 140명당 여자 100명꼴로 여자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수많은 여자아이들이 태어난 순간 버려져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로물루스 법에 따르면, 아버지들은 건강한 사내아이는 모두 길러야 했지만, 여자아이는 첫째만 기르면 되었습니다. 나머지 여자아이들은 합법적으로 버려져 죽었고, 남자아이들 중 장애가 있는 아이들도 버려져 죽임을 당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유대 땅에서 토라(율법서)를 여자에게 가르치느니 차라리 불태우는 게 낫다.”라고 말한 랍비들의 극단적인 발언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랍비들이 자기를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여자로 만들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고대 아테네에서 여자는 교육을 거의 혹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여자는 아무리 나이가 많고 지능지수(IQ)가 높아도 법적으로 아이로 분류되었습니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옛날이든 지금이든, 심지어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한 남성이 아들 없이 딸만 있으면 그가 죽은 다음에 재산은 가장 가까운 남자 친척들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여자가 성추행을 당하면 배상금을 본인이 아니라 남편이나 아버지에게 갔습니다. 이런 현상은 지금도 이슬람, 힌두, 불교 사회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구약은 여성에 대해 너무나 놀라운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민수기 27장에 보면, 슬로브핫이라는 사람의 딸들이 아버지가 죽은 후 모세에게 와서 호소합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없기 때문에 자기들에게 유산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답을 주십니다.

 

슬로브핫의 딸들이 한 말이 옳다. 그 아버지의 남자 친족들이 유산을 물려받을 때에, 너는 그들에게도 반드시 땅을 유산으로 주어라. 너는 그들의 아버지가 받을 유산이 그 딸들에게 돌아가게 하여라.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두어라. 어떤 사람이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 유산을 딸에게 상속시켜라.” (27:7-8, )

 

 

2)  배반과 수치심을 안겨주는 거절의 상처

 

거절의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흔한 현상은 배신감과 수치심입니다. 어렸을 때 부모나 다른 양육자에게 받은 거절의 상처도 문제가 되지만, 배우자의 외도와 이혼 때문에 거절의 상처를 입게 된 경우, 그 고통은 한층 더 심해집니다. 남편만 믿고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며 살아왔는데, 어느 날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고 심지어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리면 아내는 심한 배신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 역시 남자로서 실패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그 수치심이 더 클 수가 있습니다.

 

수치심은 사람의 마음과 인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공개적으로 창피나 망신을 당했던 경험이 있을 경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느라 그 삶은 아주 피곤해지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강박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성적 학대를 한 가해자가 자기보다 나이 많은 가족이나 친척인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피해 여성은 가해자에 대해 불신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는 동시에, 공경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더 큰 갈등을 겪게 됩니다. 이 애증의 응어리가 해소되지 않을 때 우울증이 시작됩니다. 우울증은 보통 자신의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할 때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복잡한 갈등과 애증의 감정을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거절의 상처 때문에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지도 베풀지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베풀지도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모 품에 안긴 아기는 절대적인 안정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전쟁이 일어나 포탄이 날아다니는 상황에서도 아빠 엄마가 안아주며 사랑을 표현해주면, 그 아이는 평안과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육신의 부모를 통해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원리입니다.

 

그러나 많은 부모가 자녀를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들은 거절의 아픔을 가지고 자라게 되며, 치유되지 못한 자녀들은 또 다시 자신의 배우자와 아이들에게 배신감과 수치심을 안겨줌으로써 거절의 고통을 대물림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집니다. 치유되지 않은 내면의 문제는 애정결핍과 내면의 쓴 뿌리를 통해 한 세대에서 그 다음 세대로 대물림됩니다. 자동으로 대물림된다는 게 아니라, 치유되지 못할 때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3)  여성의 소명

 

고대사회에서 여자의 가장 고귀한 소명은 출산이었습니다. 특히 여자는 아들을 낳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예수님이 가르치고 계실 때 한 여인이 이런 말을 합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에, 무리 가운데서 한 여자가 목소리를 높여 그에게 말하였다.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은 참으로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 (11:27-28, )

 

이것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칭찬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복이 있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자도 단순히 아이를 낳는 게 소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가장 큰 소명이라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특히 여성을 위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서 가르치실 때, 마르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 발치에 앉아 말씀에 몰입하고 있는 마리아를 발견한 마르다는 화가 나서 자기를 돕도록 해달라고 예수님께 하소연합니다. 그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까?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41-42)

 

이것을 보면서 보통은 바쁘게 활동하는 마르다보다 성경공부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하는 영적인 일에 열심이었던 마리아처럼 되라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하지만 1세기 당시 이 본문을 그렇게 읽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누군가의 발 앞에 앉는다는 표현은 그 사람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여기서 여자가, 그것도 미혼의 젊은 여자가 남자들만 있는 곳에 들어가는 것은 금기를 깨는 일이었는데, 마리아가 그렇게 한 것입니다. 마르다는 고대뿐 아니라 현대에도 여전히 통용되는 소위 여자의 일’, 즉 청소와 요리를 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당시 남자의 일을 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런 용기를 낸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로 남자를 부르시듯, 여자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간 사람들은 거의 모두 여자였고, 부활의 첫 증인도 여자들이었습니다. 초대교회에서 여자들의 수는 과반수를 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기독교 공동체에는 많은 여성들이 있었고, 거기에는 과부, 버림받은 여자, 병자, 창녀 출신도 많았습니다. 이 여성들은 새로운 공동체에서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였고, 그 공동체에 전심으로 헌신했으며, 거기서 주님을 위한 소명자가 되었습니다.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여인들이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되었고, 성경을 번역했고, 교회를 개척했고, 병자를 돌보았고, 문맹자를 교육했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만난 예수님 때문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주시고 생명을 주시며 회복시켜주셨기 때문입니다.

 

 

4.   하나님의 처방

 

혹시 부모에게서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부모 때문에 고통당하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를 우리가 받아들임으로써 거절의 상처의 대물림을 영원히 끊어버리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치유되기를 원한다면, 감정과 상황이 진리를 의심하게 만들 때에라도 진리를 믿는 법을 훈련해야 합니다. 감정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가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 진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십자가에서 인간의 죄와 상처러 인한 모든 재앙이 예수님에게 전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죄가 없으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 우리에게 내려왔다는 진리를 믿는 믿음이 거절의 상처를 치유하는 처방전입니다.

 

그런 무조건적인 은혜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당연히 없습니다. 그것은 육신의 부모의 사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과 치유와 새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우리의 가난과 질병과 죽음과 거절과 저주를 십자가에서 친히 짊어지신 것입니다.

 

제 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27:46)

 

예수님이 당하신 모든 고난 중에 가장 힘든 것은 버려짐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거절의 아픔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제자들과 자신을 따르던 무리에게서 배신을 당하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절망감을 담아 외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수치와 모욕과 배신과 절망이 바로 우리의 거절의 상처를 대신 감당하시고 해결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친히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조건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십자가에서 우리의 거절을 대신 감당하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나음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53:6, )

 

지금도 예수님을 모르는 아시아, 아프리카의 이슬람, 힌두교, 불교권에서는 여전히 일부다처제, 교육의 결핍, 여성에 대한 차별이 있습니다. 남편의 장례식 화장터에서 자살하는 인도의 과부들이 있고, 성매매로 내몰리는 아시아의 어린 소녀들이 있습니다. 그곳에 예수님의 복음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생명을 얻고 치유되며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이곳에서 복음을 전해야 하고,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바로 이렇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도구로 쓰임 받는 우리 각자와 우리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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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찬양으로 승리를 선포하라" (역하 20:13-30)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4 (5/23/18) kpccoh 2018.05.24 3312
149 "크리스천 예절 지키기" (엡 4:29-32)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3 (5/16/18) kpccoh 2018.05.17 1943
148 "나라와 민족을 위해 드리는 기도" (신 4:1-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2 (5/09/18) kpccoh 2018.05.10 2546
147 "비상 기도 네트워크 활용하기" (시 20:1-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1 (5/02/18) kpccoh 2018.05.03 1251
146 "영적 대각성을 통한 승리" (삼상 7: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10 (4/25/18) kpccoh 2018.04.26 4458
145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사람" (막 1:32-39)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9 (4/18/18) kpccoh 2018.04.19 1497
144 "십자가 주변에 있던 사람들" (눅 23:32-49) - 성금요일 메시지 (3/30/18) kpccoh 2018.03.31 1484
143 "지속적인 기도의 능력" (렘 29:11-14)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8 (3/21/18) kpccoh 2018.03.22 7057
142 "거룩함과 순결함으로 기도하라" (벧전 1:13-17)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7 (3/14/18) kpccoh 2018.03.15 2055
141 "기도의 영을 부어주소서" (스가랴 12장 10절)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6 (3/07/18) kpccoh 2018.03.08 3507
140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시편 119편:65-8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5 (2/28/18) kpccoh 2018.03.01 2073
139 말씀이신 메시아 예수 (요 1: 1-3, 2:11) - 일일선교집회 (2/21/18) kpccoh 2018.02.22 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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