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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17 주일예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36

영생을 얻기에 가지 부족한

(마가복음 10 13-22)


 

[들어가는 ]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교육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섬기던 교회에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청소년들 노래를 잘하는 명이 성인예배의 성가대원이 되어서 같이 성가대를 하고, 그것이 끝나면 Youth Group으로 자기들의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특별한 찬양을 하거나 칸타타 때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동원하여 악기를 연주하게 했습니다. 함께 합동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그렇게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들의 예배에 있다가 어른들 예배 순서가 되면 와서 겁니다.


저는 당시 전도사로서 그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같이 합동예배를 드리는 가운데 그렇게 했다면 괜찮았겠지만, 어른들이 예배를 드리는 데에 자녀들을 이용하는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점에 대해 회의 이야기했더니, 몇몇 어른 리더들이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예배에 들어와서 어른들이 예배를 어떻게 드리는지 배우는 것이 좋은 것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그러나 그것은 아이들이 정말로 어른들처럼 주님께 제대로 예배를 드리도록 가르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단지 어른들 중심으로 예배하면서 자신들의 유익을 위해, 음악을 잘하기 위해, 음악을 잘하는 아이들을 동원한 뿐입니다. 그것을 통해 정말로 아이들의 신앙이 자라는 데에 초점을 맞춘 아니고, 그냥 어른들을 위해 아이들을 동원했습니다.


심지어 당시 중고등부 회장으로서 12학년이던 학생이, 노래를 아주 잘해서 성가대에서 테너 솔로를 하는 맹활약을 하던 학생은, 나중에 알고 보니 예수님을 영접한 적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봉사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영생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니, 지금까지도 안타까움으로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영생에 관하여 아주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주십니다. 먼저는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구원의 문제를 알려주시고, 둘째는 부자 청년을 통하여 보여주십니다.


 

1.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신 예수님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3)


사람들이 자기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데,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만져주시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안수하며 기도해주시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도 어떻습니까? 자녀가 있는 분들은, 자녀를 데리고 나오실 어떤 마음으로 오십니까? 정말로 주님이 그들을 만져주시기를 원하면서 교회에 데리고 오십니까? 그러한 마음으로 매일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살고 있습니까? 주님은 교회당에만 계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매일 주님께 데려오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예배하고 계십니까?


주님이 만져주시면 삶에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 세상이 얼마나 험합니까? 자녀가 자라서 타주로 대학교를 가면 거기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심지어 같은 동네에 있어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녀가 주님 안에만 있으면 어디에 있든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가 일일이 쫓아다니며 체크하고 돌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길이 함께 해주시니 걱정하지 않고 안심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만져주시기를 바라면서 자녀의 영적 성장을 위해 교회에 데리고 나오고, 집에서도 함께 주님께 나아가게 해주고, 장성해서 떠나도 주님 앞에 머물도록 도와야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우리 자녀들을 위해 가지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시지요? 아이가 주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게 하고 싶으시지요? 그렇다면 어린이예배나 영어예배에 지각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아이를 주님이 만져주시기를 정말 원한다면, 아이들이 예배에 늦지 않게 도와주셔야 합니다. 주님 앞에 나올 처음부터 정성을 다해서 나오는 법을 어릴 때부터 몸에 배이게 해주면 나중에 커서도 주님의 손길을 스스로 찾아나갈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은혜를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부모들에게 어떻게 반응합니까? “제자들이 꾸짖거늘”(13). 예수님은 이미 “누구든지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9:37). 제자들이 말씀을 들은 것이 불과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되어 그들은 교훈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오자, 제자들은 평소에 아이들을 무시하던 버릇대로 말하고 행동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도 이유가 있을 겁니다. 나름대로 예수님이 피곤하신데 어린이들로 인해 피곤하게 되실까봐 염려해서 막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찮은 아이들이 귀찮게 구니까 막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나와서 은혜 받는 일에 어린아이들을 차별하는 경향이 혹시 없는지를 돌아봐야겠습니다. 예배 때는 그런 아이들이 없지만, 교회당에서 뛰지 말라고 밖에서는 괜찮고 강대상에서는 된다고 하면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예배 아이들이 떠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래 아이들은 시끄럽습니다. 우리가 오히려 어릴 때부터 같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이 귀하다고 생각하며 발상의 전환을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교회들은 어른 위주로 사역이 진행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조금 언급한 것처럼, 어른들의 예배를 돋보이게 하고자 아이들을 동원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통해 신앙이 자랄 수도 있지만, 원래 목적이 그게 아니라 어른들을 위해 동원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이것을 통해 자라게 될지 아닐지는 관심사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 때문에 신앙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형식만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은혜를 받게 해야 한다고 해서, 어른과 똑같은 방법으로 해서도 곤란합니다. 그들에게 맞는 방법으로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신 이유이기도 합니다. ‘눈높이 교육’이라고 하는데, 예수님이야말로 눈높이 교육을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하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들으니까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의 방식대로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우리가 알아듣는 방식대로 말씀을 전해주셨습니다. 우리도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눈높이 교육’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이 주님께 나오는 것을 방해하는 교회나 부모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들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알아가며 신앙이 자라야 하는데, 오히려 주님께 가는 것을 가게 합니다. 공부만 하라고 합니다. 한국에서도 3 되면 교회는 끊거나, 어른 예배에 가거나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능률이 떨어집니다. 놀게 하고 공부만 하게 하면 오히려 좋습니다.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우리 가운데 믿음이 연약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교회에 오래 다닌 우리가 방해해서는 되겠습니다. 나의 잘못된 모습 때문에 믿음이 연약한 지체가 주님께 나오는 것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겠습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가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린이들이 오게 제자들이 막으니까 예수님이 어떤 반응을 보이십니까?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4)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노하셨습니다. 어린이를 데리고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가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 같은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해야 간다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하고 겸손합니다. 부모는 거짓말을 하는데 아이들은 솔직하게 말해줍니다어린아이들은 잘난 하지 않고 말하는 대로 받아들입니다. 자아가 강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비판하지 않으며, 영원한 원수가 없습니다. 싸우다가도 금방 풀어져서 같이 놉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어른의 도움과 보호가 있어야만 살아갈 있습니다. , 남에게 의존해야 있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아이들만 있으면 어떻게 살겠습니까? 돌봐줘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 같이 받아들여야 있다고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15)


어린아이처럼 주님을 영접한다는 말은 아무 의심 없이, 조건을 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믿는 데에는 무슨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모셔 들이면 됩니다. 그러니까 기회를 놓치지 말고 그냥 주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오늘은 준비가 되어서 다음에 하겠습니다.’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다음’이 없으면 어떡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께 나아올 주변을 의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분들은 그것을 모르는데, 처음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교회당에 오는 자체가 굉장한 부담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분들은 목사를 만나는 것을 굉장히 부담스러워 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대개 어떻게 합니까? 다니는 분들을 자꾸 목사님과 연결시켜주겠다고 하는데, 제일 가기 싫은 데에서 제일 만나기 싫은 사람을 자꾸 만나라고 하니 오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목장을 통해 먼저 마음을 여는 겁니다. 와서 마음이 열리면 교회 예배에도 오고, 마음이 열리면 말씀 공부도 하고 예수님도 만나는 겁니다.


처음 믿는 분들도 그렇지만, 교회생활을 오래 분들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혹시 이렇게 하면 창피하게 될지 신경을 씁니다. 예를 들어, 찬양할 손들고 하는 것은 결코 창피한 것이 아닙니다. 엄청난 은혜가 임했는데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괜히 옆에 있는 사람 눈치 때문에 하고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에게가 아닌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연스럽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린 아이들을 안고 그들 위에 안수하시고 축복하시니라” (16)


예수님은 아이들을 품에 안으시고 안수하며 축복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자녀들을 향한 주님의 뜻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가장 귀한 것은 주님의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확신이 있는가? 세상에서 잘하고 성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늘이 축복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에서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정말 믿으십니까? 세상에서는 성공했는데 하나님 앞에서 실패하면 그처럼 비참한 인생이 없습니다. 우리가 땅에서 최대한 자녀가 성공하게 도와야겠지만,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성공하도록 도와야겠습니다. 우리 자신이 자녀가 또는 다른 지체가 주님께 나아오는 것을 제자들처럼 나름대로의 판단으로 막는 일이 있어서는 되겠습니다.

 


2.   재물이 많은 사람의 풀리지 않는 영적 갈증


예수님이 그곳을 떠나려고 하실 급히 사람이 달려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7-18)


사건은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의미를 알기 위해서, 먼저 그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9:22 보면 그는 청년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그는 관원이었습니다(18). 또한 부자(23)였습니다. 오늘 본문(22) 봐도, 그는 재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돈만 많고 지위만 높은 것이 아니라 아주 영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계명들을 어려서부터 지킬 정도였습니다(20).


그러니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그는 모든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입니다. 일단 모든 사람이 선망하는 엄청난 집안에서 자란 사람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이 너무 좋아서 교회학교를 매주 빠지지 않고 나가서 요절 암송이나 성경퀴즈로 상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 사이에 인기 있는 리더였고, 운동도 잘하고 음악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대학은 하버드, 석사는 예일, 박사는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받은 사람입니다.


마디로 그는 완벽한 조건을 가진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는 젊은 청년입니다. 그러니까 아직 젊은 나이에 이미 많은 것들을 성취한,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들을 가진 부모들은 그를 가리키며, “봐라, 너도 사람처럼 되어라. 하고 가르칩니다. 수많은 명문가 출신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그와 결혼하기 위해 줄을 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그렇게 훌륭한 그가 예수님께 뛰어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 앞에 앉습니다. 아무 부족한 것이 없어 보이는 대단한 사람이 초라한 행색의 예수님께 달려와서 무릎을 꿇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기에 그가 그렇게 합니까?


사실 사람에게는 좋은 점이 많습니다. 먼저 예수님 앞에 뛰어서 왔습니다. 예수님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달려온 겁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어 앞에 엎드리면서 경의를 표했습니다. 질문을 하는 것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합니다. 영적인 데에 관심이 많다는 겁니다. 또한 계명들도 어릴 때부터 지켜왔습니다(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뭔가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것을 하고 이룰 것을 이룬 엄청난 사람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적으로도 굉장히 열심인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영혼의 갈증이 풀리지 않아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온 겁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해줍니까? 세상의 것들이 아무리 좋아 보이고 그런 것들을 아무리 많이 가져도 영적인 갈증을 풀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한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끝날 것들을 우리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 성공, , 고급 자동차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우리 영혼의 갈증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날 중에서 갖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떠날 가지고 것은 우리를 채워주지 못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 자신이 모든 것들을 합친 것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뚫린 공간이 있어서, 하나님으로 밖에 채워지지 않습니다. 거짓말 같으면 해보십시오. 세상 것으로 채워 봐도, 어느 정도는 행복하고 기쁨이 있을지 몰라도 오래 가지 못합니다. 성공하면 할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갈증이 생깁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엄청나게 이룬 사람들 대부분이 불행하게 살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이룬 사람들이 오히려 자살하고 서로를 잡아먹어 안달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질문에는 그의 영생에 관한 잘못된 생각이 나타납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그러니까 ‘내가 아직 영적인 갈증이 있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직 영생을 얻은 같지 않은데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생이란 행위로써 얻을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몰랐습니다. 인간은 무엇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구원은 함으로써 얻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행위가 옳아도 구원에 이를 정도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게 선한 선생님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진정한 의미를 알고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말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요, 메시야이신 것을 선포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18)


하나님 외에는 선한 분이 없는데, 자신이 선한 선생님이라면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통해서만 영생의 문제가 해결될 있고 구원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여기서 간접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도, 신앙생활을 오래 했든지 금방 나왔든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있을까 생각하십니까?


제가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이전에 다른 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길 , 번은 구역예배를 방문했는데 그때 신앙생활을 오래 안수집사님이 성경공부 나눔 중에서 이런 말을 살짝 흘리고 지나갔습니다. “내가 조금만 하면 구원을 받을 있지. 아직은 아닌 같아. 그렇게 오래 믿고 직분도 있는데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아직 모르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리 인간의 기준으로 “저 사람은 예수 믿어도 천국 사람이야.”라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기준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턱없이 모자랍니다. 오직 예수님만 통해야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믿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걸림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입니다.


마이클 펠프스(Michael Phelps)라는 수영선수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올림픽에서 가장 금메달을 많이 선수입니다. 은퇴한 알았더니, 이번에 재기해서 베이징과 런던 올림픽에 이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도 출전한다고 합니다.


역대 최고의 수영선수인 그에게 “당신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수영선수이니 미국에서 수영으로 브라질까지 가십시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수영으로 가는 시도를 하면, 뛰어난 수영선수이니 수평선 너머로 겁니다. 그러면 이쪽에서 사람들이 환호하며 “야, 브라질로 갔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브라질에서 보면 전혀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수영 선수라도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미국에서 중국은 더더욱 말이 된다. ? 바다가 너무 넓어서 그렇습니다. 최고가 아닌 아닙니다. 세계 최고가 맞습니다. 사람보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역사상 없습니다. 그런데도 갑니다. 아무리 세계 최고라도 바다가 너무 넓기 때문에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사람은 예수 믿어도 천국에 있다’, ‘이 사람은 너무 착하기 때문에 무슨 종교를 믿어도 천국에 있다’라고 해도 그건 우리 생각이고, 하나님 보시기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죄의 바다가 얼마나 넓은지, 우리 힘으로는 수가 없습니다. 누구든지 무엇을 해서 천국을 가고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착해서가 아닙니다. 최고가 아니라서가 아닙니다. 그러나 간격이 너무 넓어서 수가 없습니다.

 


3.   영생의 (19-22)


예수님은 영생에 대한 대답으로 먼저 모세의 율법을 말씀하십니다.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19절)

 

이게 다 십계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계명을 열심히 지키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중간 단계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이 계명에는 아주 철저하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그가 알기 쉽게 일단 계명을 예로 드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가 뭐라고 합니까?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20절)

 

이 사람은 아주 의기양양하게 ‘그럼 그렇지’라고 하며 자기는 어릴 적부터 모든 계명들을 잘 지켰다고 말씀드립니다. 그는 율법을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는 은근한 자만심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계명들을 아무나 지키겠습니까? 다 잘 지킨다는 것은 아주 훌륭한 일입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자기가 그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의심이 되어 주님께 찾아왔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구원은, 영생은, 천국에 가는 것은, 무엇을 행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유전되지도 않습니다. 부모가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자녀가 자동으로 천국 가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일대일의 만남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질 때 받는 것이 영생입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말하는 이 사람에게 예수님은 이제 결정적으로 영생의 길을 말씀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1절)

 

이 말씀 속에는 세 가지가 담겨 있습니다. 명령, 약속, 초청이 있습니다. 있는 것을 다 팔아 주라는 명령이 있고, 하늘의 보화가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 있고, 그렇게 한 다음에 와서 예수님 자신을 따르라는 초청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보시면서 ‘건방지게’라고 생각하신 게 아니라 “사랑하사” 대답해 주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다 아셨습니다. ‘너 몇 월 며칠에 안 했잖아?’라고 할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 하시고 그를 사랑하십니다. 그가 정말로 잘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이 사람이 정말 영생을 얻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 사람뿐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또 주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이 다 주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그에게 재산을 다 처분하여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요구하시는가? 그러면 영생을 얻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렇게 가진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면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인가? 당연히 그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이 왜 구원을 못 받고 있는가, 왜 영생에 대한 확신이 없는가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그 자신의 돈에 대한 사랑에 있다는 것을 예수님이 정확히 지적해주시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19절에서 말씀하신 계명들은 십계명 중에서도 모두 자신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들입니다(5-10계명). 십계명에서 첫 네 계명들(1-4계명),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한 계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안 하셨습니다. 즉, 이 사람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뭔가? 이웃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라는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지키는 계명들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세워져야, 하나님을 먼저 제대로 섬겨야, 이웃과의 관계도 올바로 설 수 있다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신의 마음의 중심에 자신을 두고 있고 돈을 두고 있습니다. 그에게 하나님보다 더 중요한 것이 돈입니다. 돈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결국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구원을 얻는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것을 모른 채 그저 도덕적으로 착한 일을 하며 사는데, 안 되니까 찾아온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영생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하고 막고 있는 우상인 그의 돈을 모두 해결하고, 다 치워버리고 영생을 얻으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그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22절)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는 얼굴에 슬픈 기색을 띠고 그곳을 떠나갑니다. 자기의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단지 재물이 많았다는 것이 아니라 아직 돈을 버릴 마음이 없었다는 겁니다. 이 사람이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가 이전과 같이 그냥 살았다면 결코 영생을 얻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그의 마음은 항상 채워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본문은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줍니다. 영생과 돈, 예수님과 세상 사이에 엉거주춤하게 서서 두 가지를 다 붙들고 싶어 하는, 둘 다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우리 주님이 ‘이런 거 다 버리고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하늘 아버지께서 다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돈이 필요하고, 명예도 필요하고, 이 땅에서 안전하게 살아야 되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뭘 하라고 하십니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라.”

 

즉, 영생이냐 돈이냐가 아니라, 영생의 문제를 먼저 붙들고 하나님을 먼저 붙들면 나머지는 다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나머지를 먼저 붙드니까 영생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를 않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교훈을 두려운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선택에 따라 영원한 운명이 결정됩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현대판 부자 청년들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가지고 많은 부를 누리지만 마음속에는 남이 모르는 갈등과 불안과 아무 것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영적인 갈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 할 수만 있으면 구원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기꺼이 마음을 돈이나 성공에서 떼어내어 예수님을 선택하지는 못하는 연약함이 여전히 있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학위나 명성 등이 장애가 됩니다.

 

이런 분들이 보이면 이분들을 우리가 도와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이 길을 알려줘야 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도 살펴야 합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우리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모든 것을 가진 사람에게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그 한 가지가 모든 것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식을 초월하는 분이시지 비상식이나 몰상식한 분이 아니십니다. 무조건 희생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포기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먼저 붙들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다고 다 거지가 됩니까? 아닙니다. 헌금을 많이 한다고 쫄딱 굶는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따르기 위해 무조건 다 버린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핑계를 대면서 변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내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가? 내가 지금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데, 근본적으로 하나님보다 더 귀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없는가? 그것이 이 사람처럼 돈일 수도 있고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명예, 성공, 편안함, 안락한 생활 등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그걸 다 버리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다른 내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데에 사용이 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나가는 말]

 

요즘 미국 야구 메이저리그(Major League)에 한국 선수들이 많이 와서 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처음 이 길을 개척한 사람은 박찬호 선수였습니다. 오래 전 엘에이 다저스(LA Dodgers)에서 잘했습니다.

 

박찬호 선수가 한창 잘하고 있을 때, 어떤 젊은 부부가 박찬호 선수 때문에 부부싸움을 했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침 박찬호 선수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아내가 갑자기 말했습니다. “당신 혹시 박찬호 선수 어머니가 일본 사람인 것을 알아요?” 깜짝 놀란 남편이 대답합니다. “뭐? 그게 무슨 헛소리야?” “헛소리라니요 신문에 났어요, 신문에.” “뭐? 정신 나간 것 아니요?” “뭐? 그럼 이것 좀 봐요.” 이내 그 아내는 일간신문 한 장을 가지고 와서 스포츠 면을 펼치더니 큰 글씨로 쓰여 있는 제목을 남편에게 읽어주었습니다. “한국인 박찬호와 일본인 노모”.

 

당시 미국 프로야구 다저스에서 같이 활동하던 한국의 박찬호 선수와 일본의 노모 히데오 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제목을 보고 박찬호의 일본인 ‘노모’ 즉 ‘늙으신 어머니’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래서 벌어진 해프닝입니다.

 

이런 오해는 얼마든지 애교로 봐주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영생에 대해 결정적인 오해를 함으로써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고 맙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찬송의 작사자인 존 뉴튼(John Newton)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늘나라에 가면 세 가지 놀란다는 것입니다. 첫째, “아니, 그 사람이 여기에 없다니.” 둘째, “아니, 저 사람이 여기에 있다니.” 셋째, “아니, 내가 여기에 있다니.”

 

모든 사람은 이 부자 청년 관원을 보면서, 이런 사람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할 것입니다.

 

남들이 보면 오늘 본문의 부자 청년은 하나님과 아주 가까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주 잘 믿으며 하나님의 복을 엄청나게 받은 사람으로 당시 사람들은 다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관원은 거기에 있던 사람들 중 예수님으로부터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홀로 대화했습니다. 예수님을 긴 시간 동안 독점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제대로 결단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유를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놓지 못함으로, 결국 영생을 얻지 못한 채 근심하며 돌아가게 된 비극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정말 주님과의 관계가 어떻습니까? 나는 정말 주님을 알고 있습니까? 이 영생을 길을 알고 있습니까? 혹시 아직 주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직 이 영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먼저 가난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혹시 아직 포기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까? 주님께서 그러십니다. ‘다 버리고 나만 따르라’가 아니라 “먼저 따르라. 그럼 나머지는 다 채워준다.”라고 하십니다. 나 자신은 정말 이 천하보다 더 크고 귀한 존재입니다. 옆에 앉은 분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천하보다 우리가 더 크기 때문에, 이 세상 어느 것으로 채워보려 해도 우리 마음은 채워지지 않습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집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진정으로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가 아직도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까? 주님께 먼저 내어드리십시오. 그러면 진정한 평안과 기쁨이 우리를 채웁니다. 주 안에서 그러한 생명과 풍성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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