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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동영상: https://www.youtube.com/live/besgBYqfa4I?feature=share&t=68

 

 

 

2023723일 주일예배

제자의 삶 산상수훈 17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마태복음 61~4)

 

[들어가는 말]

 

이 세상은 부자에게 관심이 많아서 전 세계 부자들의 랭킹을 매깁니다. 20232월 현재 미국의 포브스(Forbes)지에서 발표한 전 세계 부자 순위(The World’s Billionaires)는 다음과 같습니다. 보통 연봉이 여섯 자리 숫자이면 돈을 많이 번다고 생각하는데, 이 사람들은 12자리 숫자입니다.

 

1: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 LVMH 회장 (2,137억 달러 = 한화 약 275조 원)

2: 일론 머스크(Elon Musk) Tesla 창업주 (1,370억 달러 = 175조 원)

3: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Amazon 창업주 (1,232억 달러 = 157조 원)

4: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Oracle 창업주 (1,113억 달러 = 142조 원)

5: 워렌 버핏(Warren Buffett) Berkshire Hathaway 회장 (1,074억 달러 = 137조 원)

6: 빌 게이츠(Bill Gates) Microsoft 공동창업주 (1,059억 달러 = 135조 원)

233(한국 1):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87억 달러 = 11조 원)

 

2022년 기부 순위를 보면, 부자 순위에서는 6위인 빌 게이츠가 1위였습니다(50억 달러 = 64천억 원)였습니다. 2위는 미국의 전설적인 벤처투자가 존 도어(John Doerr)와 그의 부인 앤 도어였습니다. 부자 순위로는 196위인 그가 기부한 금액은 11억 달러(14000억 원), 자신들이 설립한 베니피커스 재단을 통해 미국 스탠퍼드대 기후지속가능대학 지원을 위해 전달됐습니다.

 

3위는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와 이혼하여 억만장자 대열에 든 매켄지 스콧으로 전미 해비타트협회, 전미 보이스카우트연맹 및 걸스카우트연맹, 전미가족계획협회에 총 99,200만 달러(12500억원)를 기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4위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을 창업한 제프 베이조스의 친모인 재키 베이조스와 그의 계부인 마이크 베이조스로, 7억 달러(9천억 원)를 세계적인 암 전문 연구기관인 미국 프레드허치슨 암연구센터에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미국의 역사와 종교적 가르침이 기반이 되어, 미국 부자들은 기부 문화의 개척자라고도 불리는 정치가이자 사업가 벤자민 프랭클린에서부터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 석유왕 록펠러를 이어 2000년대에는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그 문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중 특히 워런 버핏은 앤드루 카네기의 가진 자의 신성한 의무로서의 기부라는 정신을 대표적으로 이어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이미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선언했고, 세계의 부자들을 대상으로 죽기 전까지 자기 재산의 반 이상 기부를 목표로 하는 캠페인 ‘The Giving Pledge’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빌 게이츠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이 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백만장자들을 향해 “500만 달러로 사는 게 어렵다고 느낀다면 나는 ‘500만 달러로 사는 방법이라는 책을 쓸 것이다. 그리고 그 500만 달러는 당신의 가족들에게 쓰일 때보다 인류 발전에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에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하고 도전하며 부의 사회 환원에 대한 자기의 생각을 밝혔습니다.

 

제가 좀 장황하게 부자들과 그들의 기부 활동을 소개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세계 1위나 100위나, 200위나, 돈이 많은 것에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모두 10자리 숫자 이상의 돈이 있으니 얼마나 돈이 많습니까? 그런데 미국의 부자들은 기부 운동을 활발히 펼치며 존경받는 반면 한국의 부자들은 돈이 많아서 부러움의 대상이기는 하지만 존경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한국 기부 문화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올해 1월 대한상공회의소가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기부지수에서 119개국 중 88위로 최하위권이었습니다. 한국이 요즘 그렇게 잘산다고 하는데도 최하위권입니다. 한국은 201157위였지만 2022년에는 88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중국은 같은 기간에 140위에서 49위로 올랐습니다. 한국보다 훨씬 낫습니다. 코로나 유행이 심각했던 2021년에는 한국이 119개국 중 110위로 사실상 꼴찌에 가까웠습니다. 기부 참여율과 기부 의향도 지난 10년간 하락 추세를 보였습니다. 더 적은 사람들이 기부에 참여했고, 기부할 마음도 많이 줄어들었다는 겁니다.

 

무엇이 차이가 납니까? 간단합니다. 밖으로 내보내느냐, 안으로 갖고 들어가느냐입니다. 지난 2014년 전 세계 부자 1,000명 중 한국인이 8명이었는데, 그중 1위가 몇 년 전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이었고, 2위가 현대 정몽구 회장이었는데, 3위는 다름 아닌 고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당시 부회장이었습니다. 한국 최고 부자 1위가 아버지이고 3위가 아들이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개인적으로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의해서 볼 때, 자기 집안 대대로 부를 물려준다는 말입니다.

 

올해 발표된 것에도 이재용 회장이 1위이고, 10위 안에 어머니와 여동생 두 명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돌아가신 이건희 회장 재산이 가족들에게 다 넘겨졌다는 뜻입니다. 유산 상속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단지 삼성가만의 일이겠습니까? 대부분 우리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밖으로보다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옵니다.

 

 

1.   하나님의 상급이 걸려 있는 구제와 나눔

 

우리는 나눔이 생소한 개념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는 외식(위선)이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외식으로 하는 잘못된 구제와 나눔조차도 드문 현실이 되어버려 걱정될 정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구제와 나눔이라고 하는 경건한 삶의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나눔은 경건한 습관입니다.

 

우리 교회가 속한 미국장로교가 지난 수년 동안 자유주의의 물결 때문에 동성애 문제도 그렇고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지금은 미국연합감리교단이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 일을 겪으며 우리가 그들을 비판했습니다. 성경에서 죄라고 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뭐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 한인 교회들이 자유주의라고 비판하는 교회들이 우리보다 헌금을 더 많이 하고 기부도 훨씬 더 많이 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우리를 나눔의 삶으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복음적인 신앙을 지키려 최선을 다하려 하지만, 실제 삶의 실천에 있어서는 진보나 자유주의라고 하는 사람들이 더 잘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그것으로만 판단할 수 없고 하나님이 판단하실 일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우리가 비난하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기부나 헌금을 더 잘한다는 것입니다.

 

나눔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과 나누는 일을 그들이 더 잘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합니다. 모세의 율법에서 구제와 나눔은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

 

28 당신들은 매 삼 년 끝에 그 해에 난 소출의 십일조를 다 모아서 성 안에 저장하여 두었다가, 29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 유산도 없고 차지할 몫도 없는 레위 사람이나 떠돌이나 고아나 과부들이 와서 배불리 먹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당신들이 경영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14:28-29, 새번역)

 

구약시대 이스라엘에게 십일조도 세 종류가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가난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서 하라고 하셨습니다. 3년마다 구제를 위하여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시면서,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는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신약의 야고보서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1:27)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에만 신경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건은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을 지키고 정결함을 지키는 동시에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이 경건(믿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 당시 고아와 과부는 경제적인 면에서 사회적 약자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돌보는 것이 진정한 경건이라는 것입니다.

 

얼마 전 큐티 본문이었던 사도행전 11장을 보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당했을 때 시리아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구제헌금을 하여 보내기도 했습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을 향해 우리의 손을 펼치는 것과 같습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흐르는 곳에 우리의 가진 것을 담그는 것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사랑의 샘물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눔의 삶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2.   잘못된 나눔

 

그렇다면 어떻게 나눔에 참여해야 하겠습니까?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2)

 

예수님은 외식, 즉 위선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외식’(위선)이라는 말은 당시 연극을 하는 배우가 여러 개의 가면을 바꾸어 쓰고 나오던 것을 가리킵니다. 이때는 이 가면을 쓰고 다른 장면에 다른 가면을 쓰는 것이 외식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가면을 벗고 참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나눔의 행위를 통해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십니다.

 

1절에서 보이려고라는 표현은 영화를 상영하거나 연극을 하는 것과 어근이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의 평가와 칭찬에 생각이 집중되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람들 앞에서 의를 행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보면 좋은 일을 하고 안 보면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태복음 6장은 오늘 본문에서 구제에 대해 말씀하고, 그다음에는 기도와 금식에 대해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계속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오늘 본문에서는 구제에 대해, 그다음에는 기도에 대해, 나중에는 금식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특히 기도에 대해 아주 기가 막힌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6)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많은 회당이나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멋진 가운을 입고 하늘을 우러러 기도했습니다. 그것을 보며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거, 외식하네. 위선 떠네.’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보며 참 경건한 사람들이라고 칭찬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보이기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아셨고, 아무도 안 보는 골방으로 들어가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골방으로 들어가서 기도하는 것 자체부터 굉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남들 다 보이는 데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안 보이는 데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골방에 들어갈 뿐 아니라 문을 닫고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면서까지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 여기 있어. 여기서 이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 나 좀 봐줘.’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숨어서 한다고 하면서도 자기가 기도하는 것을 봐주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문을 닫으면 안에서 뭘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래서 그게 진짜 기도라고 하십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구에게 인정을 받으려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십니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데 믿음에 있어서는 정말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다고 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알아줬으면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눔의 행위가 잘못된 동기에 의해서 외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데 그것이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아니라 자기가 남들에게 잘 보이고 인정받으려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경고를 무시하게 될 때, 즉 사람의 영광과 칭찬을 받기 위해 나눔의 손길을 뻗는다면, 우리는 단지 물질만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분명히 내 주머니에서는 돈이 빠져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하지만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의 장부에는 그것이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안타까운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올바르지 않다고 보십니다.

 

예수님은 2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기서 받았느니라는 상업 용어로, 완전히 지불되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행위가 끝났다는 것을 말합니다. 더 이상 주고받을 것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다 끝났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주실 상이 아예 없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땅에서 이미 사람들의 영광과 칭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영원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상급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게 됩니다.

 

비록 내 주머니에서 $1,000이 나갔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으로 한 것이라면 하늘나라의 장부에는 $1도 기록에 남지 않는다는 겁니다. 오히려 잘못을 저지른 기록이 남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면 결국 물질의 손해를 보고 만 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나눔의 삶에 동참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내 돈을 투자한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진심으로 베푼 게 아니라 투자한 게 되는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면 단지 내 돈의 낭비만 아니라 신앙 인격의 낭비까지 되는 겁니다. 하늘나라의 장부에 기록되지 않을 나눔으로 우리 물질과 신앙 인격을 낭비하지 말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늘 마음의 동기와 태도에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게 아니라 올바로 하라고 하십니다.

 

 

3.   올바른 나눔

 

그래서 우리는 나눔의 자세와 동기와 목적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대해 뭐라고 하십니까?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3-4)

 

나눔의 손길을 펼치는 우리는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은밀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드러나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나누는 사실을 아무에게도 절대 알려서는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팔 불며 자랑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알리지 않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팔 불며 자랑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구제와 나눔을 자기 의를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제를 하던, 기도, 금식, 봉사, 사역을 하든 다 마찬가지입니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이웃을 세워주며 사랑을 베풀기 위해 해야 하는데, 자기가 훌륭한 사람임을 드러내기 위하여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올바른 동기와 목적으로 행해지는 나눔은 오히려 널리 알려져야 합니다. 5장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세상의 빛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5:16)

 

분명히 사람들 앞에서 착한 행실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숨기고 조용히 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드러내며 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눔은 착한 행실입니다. 구제는 착한 행실입니다. 그 구제와 나눔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고 하시는데,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가는지 아니면 자기에게 영광이 가는지 잘 구분하고 살피며 하라고 하십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초대교회가 갑자기 수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필요가 생기니까 성도들이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가져다 놓았습니다. , 교회에 헌금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의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급식 사역을 하는 일에 사용되도록 헌신했습니다. 내 것 네 것 구분 없이 물건을 나누어 쓰고, 밭과 집을 팔아 헌금하여 나눔으로 교회 내에 궁핍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로 바나바입니다. 본명은 요셉인데 워낙 위로와 격려를 잘하고 남들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사람이라 바나바’(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받았고 그것이 아예 이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는 착한 사람이었고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자기 밭을 팔아 헌금하여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보통 헌신이 아닙니다. 자기의 전 재산을 바친 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그런데 바로 다음 5장에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나오는데, 똑같이 자기들도 밭을 팔아 상당한 액수의 헌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자세와 동기와 목적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죽고 맙니다. 결국 이름이 드러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자기 것을 가지고 나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동기와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들의 이름이 드러나는 목적으로 잘못했다 죽고 말았습니다.

 

미국에는 특히 기부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습니다. 물론 세금 공제 혜택이 있기에,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버는 사람들은 세금을 엄청나게 내야 하니까 그것 때문에라도 기부하는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내는 헌금도 매년 헌금내역서를 드려서 그것을 사용하여 세금 보고를 할 때 공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들이 큰 돈을 기부하여 건물이 자기 이름으로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는 그런 것을 안 하는 게 좋겠다고 반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하느냐입니다. 나누는 사람의 자세와 동기와 목적입니다.

 

결국 나눔의 동기와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사람들이 도움을 받게 하기 위해서 사랑의 마음으로 했다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그런데 혹시라도 그것을 통해 자기가 드러나고 영광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 절대 알리지 말라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이 가도록 자기 이름을 드러내며 자랑하거나 나팔 불지 말고 조용히 하라는 것입니다. 나눔을 실천하고 나서 자기 만족감에 도취되어 봤지? 내가 이 정도야.’라고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주님의 가르침의 원리입니다. 나눔을 하고 나서 역시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자기 스스로 높이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말씀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족하며 높이게 되면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상을 다 잃어버리고 그냥 사람에게만 받고 끝난다는 겁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아까 언급했던 세계적인 거부들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부했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퍼센티지로 따져보십시오. 나도 그들 정도의 퍼센티지로 내 돈을 밖으로 내보내고 있습니까? 아마 그렇지 못할 겁니다. 사실 돈이 많다고 많이 기부하는 게 아닙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그렇게 기부를 많이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 없이 하게 되면 결국 자기 이름이 드러납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팔을 부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면, 주님을 믿는 사람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나누고 베풀어야겠습니다.

 

선한 행위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영광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잘나서 했다고 되면 곤란해집니다. 그것이 잘못 변질됩니다. 많은 재산을 기부함으로 자기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게 되고, 그러면 자꾸 잘못된 길로 나가게 됩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상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눔의 동기와 목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이고, 최종적인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실 내가 행한 나눔이라는 말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나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안 주셨으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내게 건강을 안 주셨으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이 내게 지혜와 능력을 안 주셨으면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나를 통해 그런 일을 하시기 위해서 내게 그런 것들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리스 북부의 마케도니아에 있는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등)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헌금을 모은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고후 8:5)

 

그들이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과 교회를 위해 가져다 쓰세요.’ 하며 돈만 드린 게 아니라, 먼저 자기를 주님께 드리며 기도로 헌신하고 그 헌신의 결과로 힘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한 헌금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드리고 나서 물질을 드리는 겁니다. 이러한 나눔이 곧 예배입니다. 놀랍게도 이것이 예배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배는 그저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와서 한 시간 정도 있다가 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의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드리는 공적 예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아가 개인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 나눔을 실천하는 삶, 그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배가 끝나고 가면서 예배드렸으니 할 것을 다했다. 이제 일주일 동안 내가 알아서 산다.’라고 할 게 아닙니다. 여기서 함께 예배드리고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사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예배입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손에 쥐고 계신 상을 확 빼앗아 올 수도 없습니다. 우리 자신의 자세를 살피며 예배의 표현으로서 나눔에 참여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상까지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어느 교회에 구제를 위해 헌금을 아주 많이 드리는 집사님이 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집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구제와 헌금을 많이 하십니까?” 그러자 그분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의 일부를 삽으로 퍼서 나눔과 헌금을 하고 나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또 삽으로 퍼서 채워주십니다. 그런데 제 삽보다 하나님의 삽이 훨씬 더 큽니다.”

 

참 귀한 비밀을 발견한 분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삽보다 하나님의 삽이 훨씬 더 큽니다. 그저 순수한 마음으로 드렸는데, 놀랍게도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채워주시는 것을 경험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내가 이렇게 내면 몇 배로 채워주시겠지.’라고 도박하듯이 하면 곤란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니까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잘하고 계십니다. 우크라이나, 토네이도 피해자, 지진 피해자들을 위해 우리가 힘을 모아 헌금을 했는데, 거의 모든 가정이 참여하시니 참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그것조차 체면상 하는 것인지 정말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향한 안타ᄁᆞ움을 가지고 하는 것인지 점검하며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나눔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많이 퍼주셔서 더 많이 나눌 수 있게 해주시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여러분, 제가 정말 여러번 말씀드린 것이지만, 우리는 이 미국 땅에 사는 것만으로도 세계 최상위권(5%)에 들어갑니다. 거기에 차가 두 대, 세 대 있으면 2%, 1% 안에 들어갑니다. 지금 자신이 가진 것을 한 번 적어보십시오. 집도 있고, 차도 있고, TV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스마트폰도 있고, 가진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도 가진 게 없다고 할 수가 있습니까? 옷장에 옷이 가득한데 입을 옷이 없고 신발장에 신발이 가득한데 신을 신발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주셨습니다. 나눔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나눔은 믿는 자들의 특권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으로 우리의 손길을 펼치는 것입니다. 물질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실어서 보내는 것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가 흐르는 곳에 우리의 물질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나눔은 하나님의 사랑의 샘물 안으로 우리 자신을 풍덩 빠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정말로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십니까? 그렇다면 이 나눔으로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점점 더 유혹이 많아지는 이때, 점점 더 탐욕의 삶을 살라고 부추기는 이때, ‘조금 더 좋은 것, 조금 더 비싼 것, 조금 더 고급스러운 것, 명품을 가져라, 가져라, 가져라.’라고 유혹하는 이 시대에, 나눔의 삶만이 탐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을 위해 나누는 기부나 헌금하는 것을 왜 하도록 하셨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돈이 필요해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탐욕스러운 삶, 죄악 된 삶을 살지 않도록 막아주시고 올바른 길로 가는 통로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나눔의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도 남에게 잘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순수하게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 위해, 백성을 안타깝게 여기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눌 때, 그런 놀라운 삶을 통해 놀라운 인생이 되어 놀랍게 쓰시는 우리가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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