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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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월 19일 주일예배
✦ 땅 끝까지 이르러 - 사도행전 86 ✦
“드디어 로마를 향해 출발하다”
(사도행전 27장 1~12절)
[들어가는 말]
새해가 되자마자 지난 12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40마일 떨어진 곳의 ‘탈’(Taal)이라고 하는 화산이 폭발했습니다. 앞으로 더 큰 폭발이 발생할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하니까, 참으로 무섭고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난 2018년 5월에는 관광지로 유명한 하와이의 빅아일랜드라고 불리는 하와이 섬에서도 ‘킬라우에아’라는 화산이 폭발한바 있습니다. 산줄기를 타고 내려간 붉은 용암이 흘러내리며 숲을 태우고 수많은 주택가들을 집어삼키면서 해안으로 흘러내려가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습니다.
또 뉴스에서 계속 보도되어 아는 것처럼,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호주에서는 남동부 지방에 대규모 산불이 일어나 큰 피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코알라나 캥거루를 비롯해서 수많은 동물들이 죽임을 당했고, 특히 코알라가 느리기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서 불 속에 그냥 있다가 타 죽거나 다치는 장면을 보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이런 자연재해로 인해서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엄청난 피해를 입는 것을 보면서, 지금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해도 여전히 자연의 힘 앞에서는 인간이 무력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발전했더라도 갑자기 화산이 폭발하거나 갑자기 산불이 나면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여름에 무더위가 오거나 아니면 지금 이런 겨울에 강추위가 오면 우리는 두껍게 옷을 입고 히터를 트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게다가 전기까지 나가버리면 강추위가 몰려올 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또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다가 갑자기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이 몰아치고 파도가 집채만 한 크기로 몰려온다면,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큰 크루즈 배도 그럴 때는 흔들리는데, 작은 배나 요트를 타고 가다 그런 일을 당한다면 곧 죽음의 위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면서 계속 사림들에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에게서 심한 박해를 받고 죽음의 위협까지 받았습니다. 바울을 죽이기 전까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는 사람들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화를 벗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바울에게 시키실 일이 있으셨기 때문에 그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 바울은 또 다시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계속해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유대 땅을 떠나 로마로 가면서, 망망대해에서 엄청난 폭풍과 높은 파도가 몰려와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1. 남들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는 상황이라도 (1절)
드디어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까지 왔는데, 27-28장은 로마에 이르기까지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주고, 마침내 로마에 도착한 후의 활동 내용을 요약해서 또 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전체를 이끌어오던 주제인 ‘복음의 확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대한 요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복음이 어떻게 저 이름 없는 작은 시골 갈릴리에서부터 시작되어 예루살렘에 이르렀는지, 또 한 민족의 수도 예루살렘을 넘어 로마제국의 수도이며 그 당시 전 세계의 중심인 로마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의 전체적 그림이 이제 그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있는 장면을 우리는 바로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동안 가이사랴 총독 법정에서 지루한 법적 공방이 있었고, 또 인간들의 교묘한 계책과 간교를 헤쳐나가는 과정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위력을 뚫고 나아가는 것은 더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확장과 승리를 위해서 신실한 종들이 열심히 나아갈 때, 넓은 길을 마다하고 좁은 길을 걸어갈 때, 그들의 삶의 배후에서 보이지 않게 역사하며 일하시는 하나님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이 자연의 힘이든 인간 통치자의 권력이든, 그 아무것도 하나님의 역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27장, 28장에서 어느 다른 곳보다 더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서 그 기록이 아주 자세하다는 것, 아주 정확하다는 것, 그리고 아주 생생하다는 것을 언급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항해와 난파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경험한 표현을 빌려왔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27장부터 28장에 나오는 네 번째이자 마지막 ‘우리-단락’(we sections)이 보여주듯이, 누가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로마까지 가는 바울의 여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배가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그가 날마다 항해일지를 써 놓음으로써, 후에 그것을 참고하여 사도행전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때뿐 아니라 바울과 떨어져 있을 때에도 계속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도 기록했고, 사도행전을 2천 년이 지난 우리가 읽을 때에도 생생하다고 느낄 정도로 기록을 잘 해놓은 것입니다. 누가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의사이기도 했지만, 뛰어난 역사 기록가였습니다.
토마스 워커(Thomas Walker)라는 신약학자도 “고전 문학 전체에 걸쳐 고대의 배의 활동에 대해 이처럼 상세하게 기록해놓은 것은 없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다른 많은 기록과 문헌들이 있었지만, 누가가 기록해놓은 사도행전의 이 부분처럼 배의 움직임이나 항해에 대해 이렇게 잘 기록해놓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1절)
본문의 시기는 AD 60년으로 보기도 하는데, 더 많은 학자들이 주후 59년 가을로 추정합니다. 당시 지중해가 거칠어지는 9월 중순부터 3월까지는 지중해 항해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습니다. 뱃사람들은 그것을 다 알았습니다. 특히 크고 작은 폭풍이 계속 이어지는 11월부터 1월말까지 3개월 동안 지중해 항해는 전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에서 지중해에 11월부터 1월까지는 배를 띄울 수 없었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황제에게 상소한 바울이 지중해 항해가 전면 금지되는 11월이 되기 전에 로마가 위치한 이탈리아 반도에 도착할 수 있도록 바울로 하여금 서둘러 가이사랴를 출발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아구스도대라는 군대의 백부장 율리오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1절의 주어가 “우리가”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라는 말은 1인칭 복수 대명사인데, 그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바울과 이때 다시 합류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그 전에는 “바울이”, “그가”, “그들이”라고 하다가 “우리가”라고 했는데, 그것은 누가도 함께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26장까지는 계속 “바울이”라고 하다가 27장에서는 “우리가”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누가가 같이 떠나는 겁니다.
사도행전 16장에서부터 바울과 동행하기 시작했던 의사 누가는, 바울이 가이사랴의 헤롯 궁에 구금당해 있었던 2년 동안 그가 석방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황제에게 상소한 바울이 드디러 로마로 가는 길에 오르자, 바울과 함께 다시 동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의사 누가에게는 바울이 어디로 가든지 바울과 동행하면서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도우며, 또 바울의 행적을 기록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의사였는데, 바울은 몸이 아주 좋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고문도 많이 당했고, 파선당해서 물에도 빠지고, 등에 채찍을 맞아 곪아 터진 적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아주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습니다. 워낙 많이 다녔기 때문에 관절이라든지, 여러 부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와 동행하며 그를 돌보아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2년 전 나왔던 <바울>이라는 영화에 봐도, 누가가 끝까지 로마 감옥에서 바울의 곁을 지킵니다.
가이사랴에서의 지루한 법적 공방이 마무리되고 마침내 로마로 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데, 여기 보면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로 가기로 작정되매”라고 합니다. “작정되매”는 ‘우리가 그렇게 결정했다’는 말이 아니라 ‘그렇게 결정된 대로 우리가 따르게 되었다.’라는 수동형입니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결정에 있어서 바울은 수동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로마까지 가는 이 의미 깊은 여행에 있어서 그는 아무런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때는 항해하기가 위험해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바울이 안 가는 게 좋겠다고 권면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지만 항해하는 시기도 다른 사람에 의해 결정이 됩니다.
또 그의 신변이 호송의 임무를 맡은 ‘아구스도대’(the Augustan Cohort, 영어성경에는 Imperial Regiment)의 백부장 율리오에게 넘겨져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여기 가고 저기 가는 게 아닙니다. 율리오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또 항해 중에 배가 어디에 정박하고 출항할 것인지, 또 언제 떠날 것인지 등도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나중에 바울이 충고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결정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내려집니다.
이 모든 상황에서 바울이 스스로 결정해서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참 많습니다. 지금 내 상황을 내가 결정할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일단 미국 올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이민을 온 분도 있고, 유학을 온 분도 있고, 다른 일로 왔다가 남은 분도 있습니다. 그럼 일단 미국 대사관에 가서 비자를 받아야 합니다.
저도 가족이민으로 부모님과 동생과 함께 네 가족이 제가 대학교 때 왔는데, 서류를 내라는 대로 내고 그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가서 인터뷰 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심사를 해서 되는지 안 되는지가 결정됩니다. 우리가 미국으로 가느냐 마느냐가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굉장히 중요한 일입니다. 제 개인으로도 한국에 사는 것과 미국에 사는 것이 결정되니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그런데 나의 인생이 대사관에 있는 저 영사에게 달려 있는 겁니다.
그럴 때가 많습니다. 학생들이 학교에 지원할 때도, 지원해놓고 그분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직장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원서를 내놓고 그분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또 직장에서 프로젝트를 할 때 펀드(fund)를 따기 위해서 신청서를 내놓고 그분들의 결정을 기다려야 합니다.
벌써 6년이 되어 가는데, 6년 전 안식년 보내주는 펀드가 있어서 저희도 써서 냄으로 우리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때 지원서를 열심히 쓰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저 프랑스 파리에 가서 에펠탑을 볼 수 있느냐 마느냐, 런던과 로마를 갈 수 있느냐 마느냐,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갈 수 있느냐 마느냐는 이분들의 손에 달려 있구나.’ 물론 제가 열심히 써 내서 그분들이 보고 합격하여 우리 교회가 펀드를 받아서 안식월을 잘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삶에서 다른 사람들의 결정에 달린 일들이 너무 많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지만 결과는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이 결정하는 겁니다. 그래서 잘됐을 때 너무 기쁘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잘 안 될 때가 더 많지 않습니까? 실패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혹시 그런 상황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결코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일 때조차, 비록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분들의 결정에 의해서 내 인생이 바뀔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위에서 나의 인생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끌어가고 계시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혹시 저 사람들은 나를 불합격시키고 내가 받고 싶은 것을 안 주더라도, 그것조차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어주십니다. 거기서부터 새롭게 내 인생을 써주시고, 내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길로 오히려 인도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에 대한 모든 결정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로마로 지금 보내고 계십니다. 그것도 다른 로마 사람들의 손을 통해서. 이 관점으로 보면, 모든 것을 저 사람들이 다 결정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도권이 점점 다른 사람들에게서 바울로 바뀌는 것을 보게 됩니다.
2. 아드라뭇데노 배 - 뜻밖에 경험하는 주님의 위로 (2~5절)
바울을 호송하는 백부장과 일행들은 가이사랴에서 항해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거기에 2년 동안 갇혀 있었고, 또 총독 벨릭스와 베스도 그리고 헤롯 아그립바 2세에게 재판을 받았던 곳이 바로 가이사랴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는 항구도시였으니까 거기서 떠났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1절에 보면 배에 같이 탄 다른 죄수들이 있습니다(1). 이 죄수들은 누구였습니까? 바울은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입니다. 반면 이들은 이미 사형 선고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유대 땅에서 사형 확정 판결을 받았는데도 왜 저 멀리 로마까지 가는지 의아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이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 시민이었지만 이 사람들은 유대인이나 다른 민족 출신이었을 텐데 왜 굳이 저 멀리 로마까지 갑니까? 사실은 이것이 참 슬픈 여행입니다. 로마가 각 식민지 지방들에게 계속 요청을 했습니다. ‘여기 와서 싸우다 죽을 사람을 보내라.’
로마에 가보신 분들은 모두 콜로세움(Colosseum)에 가보셨을 텐데, 저희도 가보았습니다. 그 안에 열광하는 관중들로 꽉 찬 데서 사자나 검투사가 나오고 거기서 도망 다니다가 칼레 맞아 죽는 역할을 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 선량한 시민을 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 사형 선고를 받은 죄인들을 보내서, 그들을 거기 풀어놓고 싸우다가 죽게 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상황입니까? 겨우 로마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하고 결국은 죽게 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이들을 직접 이달리야로 호송해 가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배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로 가는 항해는 두 단계에 걸쳐 두 척의 배로 나뉘어서 갑니다. 그 두 척의 배는 각각 아드라뭇데노(2)와 알렉산드리아(6)에서 온 배였습니다.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2절)
아드라뭇데노(Adramyttium)는 터키 북서쪽에 있는 드로아(트로이 목마와 관련된 곳)에서 멀지 않은 에게 해 해안에 있었습니다. 이 배는 본 항구인 아드라뭇데노로 돌아가는 연안선이었습니다. 먼 길을 가는 큰 배들이 있었고, 또 해안을 따라 여기 서고 저기 서는 작은 배들도 있었습니다.
요즘 버스와 비슷합니다. 서울에서 저 멀리 경상도나 전라도 남쪽까지 가는 고속버스도 있고, 또 어떤 버스들은 시외버스로서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멀리 가는 큰 배들도 있었고, 해안을 따라 여기저기 서는 연안선들도 있었습니다. 이 배는 그런 연안선들 중 하나였습니다.
이때 누가뿐 아니라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리스다고는 그리스 북부 데살로니가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바울과 동행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을 시중드는 사람으로서 함께 갔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당시 에베소에서부터 바울과 동행하기 시작한 아리스다고는, 골로새서 4장 10절과 빌레몬서 1장 24절에 의하면, 로마에 도착한 바울이 죽을 때까지 바울의 곁을 지킨 사람 중의 하나였습니다. 아리스다고 역시 누가처럼, 바울 곁에서 바울을 돕는 것을 사명으로 여겼던 귀하고 신실한 형제였습니다. 바울 곁에 이렇게 주님께서 붙여주신 신실한 동역자들, 즉 누가와 같이, 아리스다고와 같이, 또 그 외의 수많은 동역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할 수 있었습니다. 결코 바울 혼자 한 게 아닙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전도도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같이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바울의 이름이 우리에게 유명하게 알려지고 있지만, 바울 뒤에는 그를 도운 수많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 전파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로마서 16장 같은 데를 보십시오. 명단이 죽 나옵니다. 우리는 그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별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우리는 그 사람들을 잘 몰라도 하나님은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 기독교계에서 알아주는 사람입니까? 우리 교회가 무슨 유명한 교회입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세계 기독교계가 아니라 이 콜럼버스에서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알아주십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우리가 주님을 아직 모르는 VIP 분을 놓고 눈물로 기도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데 주님은 우리의 눈물을 기억해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분도 예수님을 믿어야 할 텐데. 이분도 영원한 생명을 얻어야 할 텐데.’라는 마음으로 초대해서 같이 식사를 나누고 사랑을 베풀고 섬기는 것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기억해주십니다. 이런 것은 결코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같이 하는 것입니다.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3절)
첫 번째로 들른 항구는 시돈인데, ‘두로와 시돈’이라고 해서 레바논 지역의 유명한 두 도시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악한 악녀의 대명사 이세벨의 고향이 바로 이곳입니다. 이곳이 가이사랴에서 북쪽으로 약 70마일 정도 떨어진 곳인데, 여기 잠시 정박하고 있는 동안에 바울은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배려 기운데 그곳에 있는 “친구들” 즉 그리스도인들을 만나서 교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여기 시돈의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믿게 되었고 언제부터 믿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와 있지 않아서 우리가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스데반의 순교 사건 이후 박해가 일어났을 때 이곳으로 이주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배가 왜 시돈에 머물렀나 하면 비즈니스를 위함입니다. 상거래를 위해서 멈춘 것이지만, 바울에게는 몇 시간 동안이나마 그리스도인 친구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로마에 죽으러 가는 것을 자기도 알고 있는데, 이런 형제자매들을 만나 같이 교제한 것은 귀한 위로의 순간입니다.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4-5절)
하역 작업을 끝내고 다시 시돈을 출발한 무역선 아드라뭇데노 배의 최종 목적지는, 바울 일행이 이탈리아 반도로 직행하는 배를 갈아탈 수 있는 루기아 지방의 무라라는 도시였습니다. 무라는 지금의 터키 대륙 남서쪽에 위치한 항구입니다. 아드라뭇데노 배는 오늘날의 레바논과 시리아 그리고 터키 대륙의 해안을 항해하는 연안 무역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돈을 출발한 아드라뭇데노 배가 레바논과 시리아의 항구를 따라서 북상했다가, 터키 대륙 남쪽 해안을 죽 따라 서쪽으로 길리기아와 밤빌리아의 항구들을 거쳐 무라에 이르는 것이 통상적인 항로였습니다.
시돈에서 무라까지 직행하는 일반적인 항로는 구브로 섬 아래쪽을 통과하는 항로였는데, 여기 보면 ‘맞바람을 피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초가을에 접어들고 있고 항해가 위험해지는 시기가 가까웠기 때문에 맞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피해서, 저 넓은 바다로 나가기보다는 사이프러스 섬과 터키 본토 사이의 좁은 바다, 즉 바람이 적게 부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해안을 따라 항하하는 쪽을 택한 겁니다.
당시 돛을 사용하는 배였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과 항로의 결정이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은 조금 더 걸리더라도 조금 더 안전한 길을 택하여 4~5절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구브로 섬 북쪽과 아시아(터키) 대륙 남쪽 사이의 항로를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전문 항해사가 기록한 항해일지가 아닙니다. 누가가 기록한 사도행전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내용 가운데 괜히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다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의 눈으로 이때를 생각하며 본문을 보면, 이것 역시도 놀라운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시돈을 출발한 아드라뭇데노 배가 거센 맞바람를 맞지 않았더라면, 레바논과 시리아와 터키 대륙 해안을 왕래하는 그 무역선이 구브로 섬으로 밀려나서 그 섬의 해안을 따라 항해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풍이 부는 것까지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바울이 탄 아드라뭇데노 배의 항로를 구브로 섬 북쪽으로 밀어내신 것입니다.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비스듬하게 뻗어 있는 구브로 섬의 길이는 약 160마일 정도 됩니다. 꽤 긴 섬입니다. 마지막 생을 던져야 할 로마로 향하는 바울이 배 위에서 구브로 섬을 당연히 바라보지 않았겠습니까? 그리로 지나가는데 어떻게 안 보겠습니까? 예루살렘으로 갈 때도 봤고, 지금 로마로 갈 때도 또 보고 있습니다. 2년 전에도 본 구브로 섬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였습니다.
구브로가 사도 바울의 인생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곳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령께서 그 당시 사울로 불리던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우라고 하셨습니다. 안디옥 교회에서 열심히 사역하던 두 사람을 따로 세워서 복음 전파를 위해 보내셨는데, 1차 전도여행 때 첫 번째로 갔던 곳이 바로 바나바의 고향인 이 구브로 섬이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사도로서의 첫 발을 뗀 곳이 이 구브로 섬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바라볼 때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겠습니까?
게다가 그 밑에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넜다’고 하는데, 굳이 누가가 이 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냥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렀다.’라고 하면 되는데, 왜 굳이 길리기아와 밤빌리아를 언급하겠습니까?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인 다소가 있는 지방입니다. 구브로는 남쪽에 있고 길리기아는 북쪽에 있습니다. 그 사이를 지나가면서 이쪽을 보면 구브로, 저쪽을 보면 자기 고향입니다. 얼마나 마음이 뜨거워졌겠습니까?
게다가 거기를 지나 조금 더 서쪽으로 가니까 밤빌리아입니다. 1차 전도여행 때 구브로 사역을 마치고 섬에서 대륙으로 처음 닿은 곳이 바로 밤빌리아의 버가라는 곳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즉 갈라디아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갈라디아서를 그 사람들에게 쓰지 않았습니까? 바로 그 1차 전도여행 때 복음을 전했던 지역이 지금 자기 눈앞에 보이는 겁니다.
지금은 세월이 한참 지났는데, 그때 뜨거운 열정으로 복음 전파와 선교로 나갔던 바로 그 장소들을 하나님께서 다시 보여주시는 겁니다. 무엇이겠습니까? 그때 그 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가 그때 얼마나 뜨거웠느냐? 또 내가 너와 위험한 순간 속에서 동행하며 지켜주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전에 그 위험한 순간에도 지켜주신 주님께서 앞으로도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때가 온다고 해도, 또 이렇게 의외로 하나님께서 순간순간 위로를 주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뭔가를 하다가 실망되고 마음이 아픈 순간도 있지만, 그 중에도 가만히 보면 이렇게 순간순간 위로를 주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주님께 순종하며 나아가는 사람을 주님은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3. 알렉산드리아 배 - 위기 속에 임하는 주님의 손길 (6~12절)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6절)
무라에 도착했을 때 마침 이탈리아로 출항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선단에 속하는 이 배는 큰 배였고, 이집트의 곡물을 로마까지 수송하는 중요한 화물선이었습니다. 이 배들은 보통 북아프리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곧장 북상하여 무라까지 와서 재정비를 한 후에, 거기서 다시 서쪽으로 이탈리아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중해에서의 항해 시기가 대체로 9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위험 시기로 분류되었고, 11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는 완전히 금지되었다고 했습니다. 2월 초까지도 굉장히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울 일행이 타게 된 이 배는 그 해에 거의 마지막으로 이집트의 곡물을 로마로 운송하는 배였습니다. 될 수 있으면 겨울 전에 로마에 도착하여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인간의 조급한 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자연은 이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을 또 여기서 보게 됩니다.
이제 백부장 율리오는 무라에서 자기가 찾던 것, 즉 이탈리아로 가는 배를 발견했습니다. 큰 배이고 더 안전했기 때문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이 배로 갈아타게 되었습니다. 이집트는 로마의 주요 곡창 지대였습니다. 그 곡물을 나르는 배였던 것입니다(38).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7절)
무라를 출항한 알렉산드리아 배는 제대로 속도를 낼 수 없었습니다. 몰아치는 북서풍으로 인해서, 이탈리아 반도가 위치한 서쪽으로 항해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는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대로 배가 나가지 않는 겁니다. 그 결과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렀다고 되어 있습니다.
무라에서 니도까지의 거리는 약 130마일 정도여서, 순풍일 경우 약 이틀 뱃길이었습니다. 그 짧은 거리를 항해하는 데 ‘여러 날’이 소요되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아주 많은 날이 걸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북서풍이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알렉산드리아 배가 이탈리아 반도를 향해서 서쪽으로 나아가는 것을 막아버린 겁니다.
그것을 여기서는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너무 불어서 이제는 어떻게 더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그 강한 바람에 의해 남쪽 그레데 섬까지 밀려난 알렉산드리아 배는, 그 섬의 동쪽에 있는 살모네라는 곳을 돌아 남쪽 해안을 바람막이로 삼고 계속 항해를 했습니다.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8절)
그레데 섬도 역시 긴 섬이었는데, 이 섬을 바람막이로 삼았는데도 배는 여전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라새아’를 지나 또 다시 ‘간신히’ ‘미항’에 이르렀습니다. 7절에서도 ‘간신히 이르렀다’고 하고 8절에서도 ‘간신히 이르렀다’고 합니다. 얼마나 힘들게 배를 타고 갔는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제 그레데 섬 남쪽 해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작은 ‘미항’(아름다운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무라에서 갈아탄 알렉산드리아 배가 니도가 위치한 서쪽으로 나아간 것은, 가장 짧은 거리로 이탈리아에 나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심한 북서풍이 몰아침으로, 이틀 뱃길인 무라까지 간신히 여러 날이 걸려 도착했습니다. 더구나 니도에서부터는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않아 배는 전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쪽 그레데 섬으로 밀려난 알렉산드리아 배는 결국 미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이때쯤에는 드디어 지중해의 항해 금지가 시행될 때였습니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지중해가 잠잠해지는 다음 해 봄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때 이들이 어떻게 합니까?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항해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그들을 권하여,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항해가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를 끼치리라 하되” (9-10절)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다’고 되어 있는데, 이 금식 절기가 뭔가 하면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이 날을 지킵니다. ‘욤 키푸르’(Yom Kippur)입니다. 이것이 여기서의 금식하는 절기입니다.
이때는 양력으로 9월 말에서 10월 초인데, 아주 유명한 신약학자인 브루스(F. F. Bruce)는, 바울 일행이 멜리데(몰타) 섬에서 3개월을 보내고 항해가 재개된 2월 이전의 11월, 12월, 1월을 생각해볼 때, 10월에 대속죄일이 오는 해가 언제인지를 찾아보았더니 AD 59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때는 AD 59년 10월 초였다고 계산했는데, 또 다른 학자인 램지는 그 날이 10월 5일이었다고 추정해냈습니다. 대체로 맞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의 경험으로 볼 때 이 시기는 항해가 아주 위험한 시기였습니다. 고린도후서에 보면 그 동안 그는 파선한 경험이 몇 번 있었다고 썼습니다. 그는 그 위험성을 배의 결정권자들에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는 더 힘 있는 사람들의 결정에 의해 묵살되고 맙니다.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1절)
그러니까 이 알렉산드리아 배에는 선장 외에 그 배의 선주(배 주인)도 있었습니다. 바울을 호송하는 책임자인 백부장 율리오는 바울의 말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었습니다. ‘선장과 선주의 말’이 어떤 내용이었는가? 그것을 12절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항구가 겨울을 지내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쪽은 서남을, 한쪽은 서북을 향하였더라” (12절)
선장과 선주의 주장은, 현재 알렉산드리아 배가 잠시 머무는 미항은 규모가 작은 항구이기 때문에, 다음 해 봄이 오기까지 3개월 동안 겨울을 지내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큰 배인데 항구는 작고, 사람들도 2백 몇 십 명인데 그 작은 동네에서 어떻게 3개월 동안 먹고 지내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항보다 규모가 큰 뵈닉스(Phoenix)로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배에 탄 승객들 가운데에도 뵈닉스로 가자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백부장 율리오 역시 지금 항해가 위험하다는 바울의 말보다는, 뵈닉스에서 겨울을 지내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배는 이집트의 곡물을 수송하는 배라고 했습니다. 그 배에는 지금 이집트의 곡물이 가득 실려 있습니다. 왜 굳이 저쪽으로 가자고 합니까? 선주에게는 알렉산드리아 배와 여기 실린 곡물이 다 돈입니다. 만약 작은 항구인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다가 겨울 태풍에 배가 파손되기라도 하면, 그래서 배가 봄에 못 뜨면, 선주는 돈을 다 날리는 겁니다.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겁니다.
선장도 선주의 입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당시 대형 선박의 선장은 봉급제가 아니라 할당제였습니다. 그러니까 월급 받고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일한 대로 돈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항해를 통해 얻은 총이익을 선주와 선장이 일정 비율로 나누어 갖는 식이었습니다. 만약 미항에서 겨울을 지내다가 태풍이 불어 배가 깨져서 선주의 배와 곡물을 다 잃고 배가 못 가면, 선주가 돈을 못 버니까 선장도 당연히 돈을 못 받습니다.
그래서 선장과 선주는 ‘이왕 그레데 섬에서 겨울을 나야 한다면, 서남쪽과 서북쪽으로 두 개의 해안이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는 뵈닉스로 갑시다.’라고 합니다. ‘그럼 배가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돈이 안전할 것이다.’라는 계산이 나온 겁니다.
지금 이 배에는 이들뿐 아니라 다른 하물주들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지중해 세계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물건을 팔고 돈을 버는 ‘보따리 장사꾼’들입니다. 옛날 조선의 개성상인처럼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의 처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에게도 배에 실린 그들의 하물이 곧 돈입니다. 만약 배에 문제가 생겨서 자기들의 하물이 상하거나 잃어버린다면, 가만히 앉아서 돈을 날려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도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는 선장과 선주의 말에 동조합니다. “뵈닉스에 가서 겨울을 지내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라고 할 때 이들이 거기 포함되는 겁니다.
그래서 결국 그렇게 되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배의 선장과 선주 그리고 그 배에 타고 있는 하물주 즉 장사꾼들이 다 뵈닉스로 가자고 했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명을 지키거나 존중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뭡니까? 오직 자신들의 이익, 즉 돈이었습니다. 돈만 지킬 수 있다면, 더 많은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사람의 생명은 별로 상관없는 겁니다.
그런 움직임을 느낀 바울이 그들에게 이 항해가 위험하다고 수차례 권면했지만, 그러나 아무도 바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백부장 율리오도 바울보다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믿은 것입니다. 지중해 항해에 관한 한, 종교인인 바울보다는 전문가인 선장과 선주가 더 믿을 만하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명에 관한 것은 바울이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전문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또한 여기 탄 선장과 선주와 모든 하물주들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습니다. 돈을 벌려고 무리해서 항해하려고 결정한 자신들의 결정이 곧 자신들의 생명을 죽음의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금방 그렇게 될 것을 모르고 그냥 돈을 추구하여 그렇게 하자고 결정한 것입니다.
여러분, 돈을 많이 벌어 엄청나게 쌓아놓고 죽었다면, 그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엄청난 명예를 얻게 되었는데 바로 죽었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제일 유명해지려고 하다가 죽었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지금도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 결정을 내립니다. 한 치 앞의 어려움도 내다보지 못하고 지금 당장 눈앞의 이익을 따라서 결정하고 그 길로 갑니다. 그것을 가리켜 성경에서는 바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 넓은 길로 가는 것이다. 그 끝은 멸망이다.’라고 말씀해줍니다.
[나가는 말]
여러분, 오늘 본문을 볼 때, 먼저 바울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다 남들의 결정에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우리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고, 남들의 결정에 따라가야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두 번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돈의 크리스천 형제자매들을 통해 바울에게 위로를 주셨습니다. 구브로를 보며, 길리기아와 밤빌리아를 보며 바울에게 위로가 임했습니다. 우리도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순간순간 위로를 주십니다.
그런데 또 그러다가 다시 인생의 맞바람이 불어와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올 때, 또 내가 의견을 냈는데 묵살당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내 의견대로 되지 않았을지라도, 맞바람이 불어와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오히려 이것을 통해서 바울이 그 수많은 사람들, 심지어 선장과 선주와 백부장의 위에서 놀라운 권위를 가지고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로 그러한 모든 상황을 이끌어 가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 지금 나에게 닥쳐왔다 할지라도, 당장 눈앞의 이익을 따라 가는 게 아니라 주님을 신뢰하면서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