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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9일 수요예배
✦ 신약성경에서 들려주는 복음 9 ✦
“에베소에 전해진 복음: 하늘 복의 유일한 열쇠인 복음”
(에베소서 1장 1~14절)
1. 천국의 섬과 에베소
한국의 전라남도 신안 앞바다에 증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증도는 여러 별명을 가진 섬입니다. 근처에 크고 작은 1004개의 섬이 있다고 해서 ‘천사의 섬’이라고도 불립니다. 그곳은 놀랍게도 주민의 90%가 크리스천인 섬이기도 합니다. 또한 금연이 엄격하게 실시되고 환경 청정 지역을 유지하는 유네스코 지정 ‘슬로우 시티(slow city)’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증도는 보물섬으로도 불립니다. 1975년 한 어부의 그물에 그릇 한 개가 걸려 나왔습니다. 그는 그 그릇을 가져다 자기 집의 개밥 그릇으로 사용했는데, 나중에 이 그릇은 중국 송나라, 원나라 때의 유물 도자기로 판명되어 3억에 거래되었습니다. 그 결과 1976년 10월부터 1984년 9월까지 대대적인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1323년대의 목선과 무려 2만 3천여 점의 보물들, 그리고 청자와 백자들이 인양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신안 앞바다 해저 보물 발굴 사건입니다. 저도 어릴 때 기억나는 것이, 뉴스만 하면 “신안 앞바다에...” 하면서 보도가 되었습니다. 무려 700년 동안 증도 해안 앞바다에 그토록 많은 보물들이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이 발굴 해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에는 보물선을 복원한 모양의 배가 설치되어 있는 ‘트레저 아일랜드’가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증도에는 그보다 더 위대한 보물이 있습니다. 문준경(1891~1950) 전도사라는 한 여인이 전한 복음입니다. 결혼하자마자 이미 애인이 있었던 남편에게 쫓겨난 생과부 여인인 그녀는, 젊은 날 절망의 벼랑 끝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신학교에 가서 공부한 후 전도사가 되어 자신을 버린 이 섬으로 다시 돌아와 복음을 전했습니다. 122개 섬에 그분의 발걸음이 닿았고, 1년에 고무신 아홉 켤레가 닳도록 전도하러 다녔으며, 갯벌에 빠지면서까지 섬마다 마을마다 찾아가 찬양을 부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 “천국의 섬” 동영상 시청 >>
https://youtu.be/JQmgyteNaLo
문준경 전도사님은 부잣집에 호소하고 아는 교회와 사역자들에게 연락해서 약품과 물품을 모아 아픈 사람, 힘든 사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며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문 전도사님은 섬 마을의 의사, 약사, 간호사, 산파 역할을 했고, 무엇보다 섬마을의 목자였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신사참배 거부로 옥고를 치렀고, 한국전쟁 중에는 무고한 섬사람들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하며 목포에 있다가, 목포에 계속 있었으면 안전했겠지만 섬으로 다시 자진해서 들어갔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북한군에게 체포되었을 때 “제발 나만 죽이고 다른 성도들은 살려 달라.” 하며 애원했지만, 북한군은 “새끼 많이 나은 씨암탉은 죽어야 한다.”라고 소리를 지르며 전도사님을 몽둥이로 때리고 죽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리고 결국 총을 쏴서 죽였습니다.
그렇게 문준경 전도사님은 죽임을 당해 순교했지만, 그녀를 통해 100여 개의 교회가 세워졌고, 부흥사이며 성결교단 총회장을 지낸 이만신 목사, 치유사역자 정태기 교수, CCC 창립자이자 전도자였던 김준곤 목사를 비롯하여 100여 명의 목회자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증도는 천사의 섬에서 천국의 섬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이것이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 역사한 복음의 힘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의 전도 모델은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녀가 매달 신발을 바꾸어가며 섬 마을을 순회한 것은 바로 바울의 제1차, 2차, 3차 전도여행을 본받은 것입니다. 그런 바울의 발걸음이 AD 53년경 제3차 전도여행 때 소이시아의 관문 항구 도시이자 새로운 로마라고 불리던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거기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여행 중 가장 긴 시간인 3년 가까이 머물며 복음을 전합니다. 에베소 전도의 영향력을 증언하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십시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19:8-10)
증도에서 문준경 전도사님을 통해 일어났던 역사처럼, 오래전 에베소에서도 미신과 우상을 섬기던 수많은 사림들이 주께 돌아와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에베소는 소아시아 복음회의 거점 도시가 됩니다. 나중에 바울은 이 에베소 교회를 향해 로마의 옥중에서 AD 62년경 편지를 보냅니다. 그들이 받은 복음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보물로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줍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3절)
우리가 주일마다 “하늘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서로 인사하며 축복합니다. 그것이 이것의 줄임말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많이 받으세요!”라고 해야 하는데, 너무 기니까 “하늘 복”으로 줄여서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준경 전도사님이 중도에 전했던 복음, 그리고 더 오래 전 1세기에 바울이 소아시아의 에베소에 전한 복음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2. 에베소에 전해진 복음
1) 성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4-5절)
비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후 깨달아야 할 가장 놀라운 일은, 그들이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과 선택의 결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어느 날 예수를 믿기로 결단한 날이 있습니다. 그 결단 뒤에는 나의 결단을 가능하게 한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이처럼 모든 구원의 체험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선택의 은혜를 보게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깨달아야 할 사실은, 우리 모두 주님을 믿기 전까지는 그분의 자녀가 아닌 것처럼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신분상으로 당당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그것을 ‘양자 됨의 교리’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에 답이 있습니다.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6절)
예수 믿은 것이 단순히 나만의 선택이고 나의 행위에 근거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구원은 공적인 일일 뿐이지 감사나 감격할 만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은 순전히 그분의 선택과 사랑 때문이기에, 우리는 그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미국 목회자 중에 한국 아이들을 세 명이나 입양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세 아이들 중 두 명은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분을 만난 사람이 이렇게 아픈 아이들을 입양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을 때, 그분은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의 죄인 됨, 우리의 비정상인 것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그의 자녀로 입양하신 것을 잊었습니까?” 그러면서 자신의 헌신은 헌신도 아니고, 단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복음으로 우리가 누리는 하늘의 복, 죄인 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시고 선택하신 성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 복입니다. 또한 바로 그것이 에베소에 전해진, 그리고 증도에 전해진 복음의 축복입니다.
2) 성자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를 속량하셨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7절)
‘속량'이라는 말은 영어로 ‘redemption’입니다. 이 단어의 원어에는 ‘값을 치르고 다시 산디’는 뜻과 ‘다시 사서 자유를 준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옛날 노예가 거래되던 시절, 누군가 폭력적인 주인에게서 친절하고 사랑 많은 주인이 나를 사준 것만 해도 감사한데, 그가 내게 자유를 주었다면 그것보다 더 극적이고 놀라운 복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일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죗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용서해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실제로 옛날 로마에는 그런 주인들이 있었습니다. 영화 <벤허>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오래 된 영화인데 최근에 다시 만들어 나온 것의 광고를 봤습니다. 전쟁할 때 배 밑에서 쇠사슬에 매여 노를 젓던 주인공 벤허가, 배가 침몰하면서 바다에 떨어진 사령관을 구출합니다. 그러자 그 사령관은 주인공 벤허에게 자유를 줄 뿐 아니라 지신의 양자로 삼습니다. 그 후 사령관은 양자 벤허를 진정한 아들로 삼고 그를 아들로서 데리고 다니며 그에게 사랑으로 대하고 그의 꿈을 이루도록 돕습니다. 그와 동일한 드라마가 속량 받고 용서 받은 우리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8-9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비밀까지 나누어주십니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종은 그의 주인이 무엇을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요 15:15, 새)
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며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쁨과 열정으로 주님의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육신의 자녀는 없었지만, 그는 수많은 영적인 자녀들을 복음 안에서 낳아서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세워 주님의 복음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님도 육신의 자녀는 없었지만 수많은 제자들을 낳고 세워 그들에게 이 복음을 위탁했던 것입니다.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들에게 문준경 전도사님은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하기를, 자신은 죽여도 자기 딸과 같은 백정희 전도사는 살려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그 소원이 정말 이루어져서, 자신은 죽었지만 자기 제자는 살아나 계속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로 이 속량, 곧 죄 사함의 복음이 에베소와 증도에 전해진 동일한 복음입니다.
3)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치시고 기업의 보증이 되셨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3절)
‘인치심'이 영어로는 ‘sealing’ 또는 ‘marked with a seal’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도장 찍는 것, 서명하는 것입니다. 인치심의 본질은 소유권 확인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소유로 인치십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잘못되면 누가 손해입니까? 하나님에게 손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며 우리 삶을 인도해주십니다. 그것을 알려주는 성경구절들이 많지만,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속량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으니, 너는 나의 것이다. 네가 물 가운데로 건너갈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하고, 네가 강을 건널 때에도 물이 너를 침몰시키지 못할 것이다. 네가 불 속을 걸어가도, 그을리지 않을 것이며, 불꽃이 너를 태우지 못할 것이다.” (사 43:1-2, 새)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14절)
여기서 바울은 또한 우리 안에 찾아오신 성령님이 우리가 누릴 기업의 보증이 되신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기업이란 본래 성도들이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누릴 모든 축복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할 때 우리 안에 거하기 시작하신 성령님의 임재 자체가 바로 우리가 누릴 기업의 보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을 사게 되면 먼저 보증금(down payment)을 지불합니다. 이 보증금은 앞으로 남은 금액도 확실하게 지불하겠다는 보증이며 약속의 표시가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의 모든 꿈이 당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니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오고 고난이 다가오더라도, 우리가 인생을 힘차고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비밀은 성령님이 우리 안에 우리의 기업의 보증으로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보증이 되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힘차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엄청난 능력은 하나님에게서 나는 것이지, 우리에게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죄어들어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고후 4:7-9, 새)
바울이 사방으로 우겨 쌈(죄어듦)을 당해도, 답답한 일을 당해도, 박해를 받아도,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고백한 이유는 바로 보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질그릇인 자신 안에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증도의 전도자 문준경 전도사님이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에 일어난 엄청난 변화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당당함입니다. 누가 생과부라고 비웃어도, 똥물을 끼얹어도, 머리채를 잡아도, 그분은 당당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이제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딸, 하나님의 기업의 보배로운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 안에 있는 보물인 예수님의 복음을 품고 그녀는 자신이 밟는 땅을 천국의 섬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 곡의 메시지가 바로 그분의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처음부터 내 삶은 그의 손에 있었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내 흐르는 눈물 그가 닦아주셨죠
그는 내 아버지 난 그의 소유
내가 어딜 가든지 날 떠나지 않죠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문준경 전도사님을 변화시킨 복음, 증도와 에베소를 변화시킨 복음, 바로 이 복음이 우리의
복음인 것을 확인하면서, 그 복음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도 하늘의 복을 충만히 받아 나누어주는 영광스러운 삶, 존귀한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