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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11 20 주일예배

추수감사절 메시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시편 50 1~23)


[들어가는 ]


한국 어느 중년의 부부가 있었는데, 하루는 남편이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당신에게 말해줄 중요한 소식 가지가 있소. “뭔데요? “하나는 좋은 소식이고 하나는 나쁜 소식인데, 무엇부터 말해줄까? “좋은 소식부터 말해 봐요. “그래, 오늘 우리는 부자가 됐소. 우리에게 1 원이 생겼어. “아, 그래요? , 기분 좋네. 그럼 나쁜 소식은 뭐예요? “아, 1 원이 퇴직금이라는 소식이요. 오늘 직장을 그만뒀어.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에는 좋은 소식도 있지만 나쁜 소식도 있습니다. 언제나 좋은 일만 일어날 수도 없고, 나쁜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전도서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좋은 일과 나쁜 일을 모두 허락하셔서 우리 인생을 이끌어가신다고 합니다. 좋은 일과 나쁜 , 행복과 불행, 밝은 날과 어두운 날들이 언제나 같이 있습니다. 항상 좋기만 하고 항상 나쁘기만 것이 아닙니다. 가지가 항상 섞여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우리는 밝은 쪽을 생각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할 있을 우리의 인생은 밝게 전진해 나갈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에만 감사하는 아니고, 나쁜 일에도 감사하는 겁니다. “범사(모든 ) 감사하라”라고 하셨을 , 모든 일로 ‘인하여’ 감사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가운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나쁜 일이 일어났는데 어떻게 감정이 감사하게 느끼겠습니까? 그런데 나쁜 가운데서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우리의 인생은 앞으로 나아갈 있습니다.


 

1.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감사의 제사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인물들을 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훌륭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환경이 좋고 문제가 없어서 성공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환경이 그들을 막았고 수많은 문제들이 몰려 왔지만, 심지어 죽음의 위협이 다가왔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했기에 문제를 뚫고 나갈 있었습니다.

 

그런 인물들이 많은데 다니엘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다가 망하여 십대의 나이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입니다. 비참한 인생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면에서 모범을 보이며 하나님만 의지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이 보기에도, 시대가 바뀌어 페르시아 제국이 되었을 때에도 사람들이 보기에 아주 바르게 살았던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이 너무 훌륭하니까, 종교 문제가 아니고서는 잡을 데가 없다고 보고 그를 시기한 사람들이 음모를 꾸밉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번씩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한다는 사실을 알고, 다리오 왕에게 조서를 내리게 합니다. 누구든지 이외의 다른 신에게 기도하면 무조건 사자 굴에 던져 넣는 조서를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다니엘이 계속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져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겁니다. 다니엘로서는 억울한 법이고 악법이었습니다. 그가 부정부패를 것도 아니고, 기도하는 것이 죽어야 죄가 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도합니다.


다니엘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 6:10)


다니엘은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계속해서 하던 대로 기도했습니다. 알았으면 골방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아무도 보게 기도해도 되지만, 그는 창문을 열고 남들이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죽음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감사했습니다.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감사했더니 기적이 일어난 아니라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이 막아주신 아니라, 사자 굴에 던져져서 죽을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바로 죽을 위기에서 하나님이 지켜주셨습니다. 다니엘이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셨고,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높이 올라가게 하셨습니다. 왕까지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다니엘의 승리의 비결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지금 기도한다고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밖에서 식사할 기도하는 것도 힘이 듭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다고 해도 기도했는데, 우리는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남들 앞에서 잠깐 머리 숙여 기도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감사할 인생이 풀리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감사할 정체되었던 것들과 막힌 것들이 풀리고 높은 축복을 향해 나아가게 되고 복을 나눠주는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습니까? 나의 인생은 어떤가? 막힘없이 달리고 계십니까? 이민을 왔든지, 주재원으로 왔든지, 유학을 왔든지, 연구 때문에 왔든지, 막힘없이 달리고 계십니까? 아니면 어디선가 막힌 일이 있습니까? 마치 위로 올라가는 기차가 위에 멈춰서 앞으로 수도 없고 뒤로 수도 없는 식이 것은 아닙니까?


이런 것을 있는 방법은 다른 있지 않습니다. 그냥 감사하면 됩니다. 감사가 빌립보 감옥에 갇혔던 바울의 결박을 풀었습니다. 감사할 우리를 옭아매던 삶의 결박이 풀어집니다. 감사가 능력을 가져오고, 닫힌 문을 열고, 기적의 아침을 맞게 해줍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 좋을 때만 아니라 괴로울 때도 감사할 , 그런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럴 하나님이 얼마나 뿌듯하시겠습니까? 자녀가 좋은 일이 일어났을 짜증내는 것이 당연한 반응인데, 놀랍게도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을 하고 있는 것을 부모가 본다면 마음이 얼마나 따뜻해지겠습니까? 우리가 어려운 형편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는 것을 하나님이 보시면 마음이 따뜻해지십니다. 복을 부어주고 싶어 하십니다.


세상은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 감사할 있는가? 하며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그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감사는 저절로 되는 아니라 연습이 필요합니다. 감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높여야 합니다.


감사에 대한 책들도 많습니다. 어제도 감사에 대해 목회편지를 쓰다가 전에 썼던 목회편지를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하나가 이런 있었습니다.

 

한국 MBC에서 실제로 그릇에 밥을 담아놓고 실험을 것입니다. 한쪽에는 ‘미워. 생겼어. 너는 최악이야. 나쁜 말만 하고, 다른 쪽에는 ‘최고야. 예뻐. 귀여워. 좋은 말만 하게 했습니다. 군데에 나눠주고 똑같은 실험을 했는데, 욕만 했던 밥은 시커멓고 보기도 너무 흉하게 썩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좋은 말만 해주었던 밥은 시간이 지나 상하긴 했지만 누렇고 굉장히 보기 좋게 변했습니다.


그것이 너무나 신기했습니다. 억지로라도 감사를 말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바른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2.   감사의 제사로 하나님을 높이는


오늘 시편 50편은 감사로 제사를 어떻게 드리는가를 보여줍니다. 시편은 “아삽의 시”라고 되어 있는데, 아삽은 다윗이 법궤를 다윗 성으로 옮길 역사적 순간을 함께 했던 사람입니다. 나중에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성전을 지은 다음에 회막 앞에서 찬양하는 일을 맡았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 제사의 본질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제사에 대해 뭐라고 선포하는가?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4-15)


여기서 아삽은 제사의 본질이 바로 감사라고 합니다. 그래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고 선포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제사는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감사의 향과 같습니다. 향이 성전을 가득 채울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드리는 예배뿐 아니라 우리가 드리는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됩니다. 삶의 향기가 아름다울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의 삶에서 불평의 악취가 계속 난다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지 못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정말 높여드리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에 향기가 나야 하는데, 향기가 나게 하는 방법이 바로 감사입니다. 감사의 향기가 넘쳐날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뻐하십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감사의 제사를 통해 하나님을 높일 있습니까?


1)  하나님을 바로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참된 감사는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옵니다. 예수님이 가장 중요한 계명이라고 하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최우선입니다. 거기에서 감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환경에 따라 감사를 하고 하고 그러면 하나님과의 관계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말입니다.


환경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하는 환경을 따라가면 우리의 마음도 같이 흔들리게 됩니다. 좋을 때는 좋지만 좋을 때는 좋습니다. 그러나 변치 않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무슨 일을 당하든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신뢰할 , 어떤 상황이 와도 감사를 드릴 있습니다.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하나님이로다” (7)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당연히 아는 사실인데 굳이 “나는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나, 그들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담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없으리라” (22)


말로는, 머리로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하나님에 관해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 무엇 하겠습니까? 마음 중심으로 하나님을 모시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지금 상황의 주인도 하나님이시라고 인정하며 나가는 것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상황이 좋고 괴로울 때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잊은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은 진정한 감사의 삶을 없습니다. 자신의 욕구를 따라 살기 때문입니다. 감정대로 움직일 때가 많습니다. 머리로는 아는데 감정대로 결정할 때가 많습니다. 자동차를 때도 미리 어떤 차를 사겠다고 생각하고 가지만, 가서 보면 하나씩 추가되면서 원래 생각했던 것과 차이가 나는 적이 많습니다. 감정을 살살 움직이기 때문에 감정에 따라 결정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결혼할 때도 감정에 따라 합니다. 홧김에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인생의 결정을 홧김에 해버리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인생은 어떤 인생입니까?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그런 인생은 어떤 것이 주어져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그에 대한 좋은 예가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의 40 광야 생활입니다. 그들의 삶이 힘들었던 이유가 광야라는 환경 때문이 아닙니다. 물론 광야는 힘듭니다. 실제로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광야에서 원래 광야에는 없는 물이 나왔습니다. 원래 광야에는 없는 만나가 나왔고, 원래 광야에는 없는 메추라기도 자기들 앞에 딱딱 떨어져서 먹었습니다. 이런 어디 있습니까? 반석에서 나오는 생수도 마시고, 낮에는 더우니까 구름기둥으로 시원하게 해주시고, 밤에는 추우니까 불기둥으로 따뜻하게 해주시면서 보호해주셨습니다. 광야라고 해도 그냥 광야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밤낮으로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들은 이집트에서 먹던 음식들의 메뉴를 읊으며 그런 것들을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욕구와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런 것들을 먹었더라도 다음에 다른 것으로 불평하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세상 어떤 것을 받아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욕구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기 욕구에 들어맞는 환경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던 1세대들이 죽고 1.5세대와 2세대가 가나안으로 들어왔지만 그들도 하나님을 떠나니까 조상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하다 망했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광야에서, 사실은 구름기둥, 불기둥, 만나, 메추라기도 없던 광야에서, 그것도 억울하게 도망자 생활을 했던 다윗은 광야에서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합니다. 모든 나라 중에서 주님을 찬송합니다.( 57:9)라고 고백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이스라엘 백성은 그렇게 줘도 불평했고, 다윗은 아무것도 없어도 감사했습니다. 무슨 차이입니까?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니는 상황에서, 먹을 것이 없어 제사장들만 먹는 진설병을 얻어먹는 주제에, 어둡고 칙칙한 굴속에 숨어사는 주제에, 무슨 감사할 것이 있다고 그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눈이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자기를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이신데, 그럼 지금 고통도 지나갈 것이며 여기에 분명히 뜻이 있으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이길 있었습니다. 거의 잡혀 죽을 뻔했던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다윗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고, 그분의 임재를 확신했습니다. 아니, 하나님 분이면 바랄 것이 없다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께 모든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상황에 초점을 맞추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움직이시는 하나님을 보는 겁니다. 그것은 믿음의 눈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감사의 제사를 드릴 있습니다.


나는 그분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을 매순간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가? 특별히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를 얼마나 깊이 깨닫고 있는가? 이런 것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너무 많습니다. 지금 여기에 공기가 10초만 끊어져도 우리는 죽습니다. 우리에게 숨을 쉬라고 공기를 거저 주셨습니다. 물이 있고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도 불평, 불만, 원망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인생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에 대해 조금만 눈을 들어 보면 감사할 천지입니다. 그래서 오늘 목회편지에 것처럼, 하루에 하나씩 테마를 잡아 보십시오. 저도 오늘 아침에 실제로 ‘물’이라는 테마를 잡고 실천해보았습니다. 샤워하면서 ‘야, 따뜻하고 좋다. 감사하다. 물을 마신 다음에 ‘시원하고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단어 하나를 잡고 해보시면 엄청난 신앙의 훈련이 됩니다. 아닌 같아도 훈련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감사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남이 보면 같고도 감사를 한다고 정도로 감사를 하게 됩니다.

 


2)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았다면, 그것에 합당한 보답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뭔가 선한 일을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선한 일을 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선한 일로 되는 아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라고 설명한 책이 로마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선한 일을 해라. 하는 것이 야고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야고보서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감사해서 하나님께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보답이라고 하면 흔히 수소나 염소 같은 제물을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번제가 항상 앞에 있음이로다. 내가 집에서 수소나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산의 가축이 것이며,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것임이로다” (8-11)


이미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뭐가 부족하셔서 우리의 소유를 원하시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헌금이 필요해서 헌금하라고 하시겠습니까? 무슨 우리 푼돈이 필요해서 그러시겠습니까?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것인데, 헌금도 우리 자신을 위해서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전도도 하나님이 혼자 하실 있습니다. 실제로 중동에서 수백, 수천 명에게 동시에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예수다. 나를 믿어라.”라고 하셔서 믿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혼자 하실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를 쓰신다는 것은 엄청난 특권입니다.


예배도, 우리가 나오고 나오고에 따라 하나님이 이익이 되거나 손해가 되시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이렇게 나와서 예배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특권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구약시대 때는 이렇게 마음대로 나왔습니다. 대제사장만이 1년에 대속죄일(Yom Kipur)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마음껏 있습니다. 당시에는 대제사장에게 뭔가 조금이라도 죄가 있는데 들어가면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속으로 더럽고 시커먼 모습으로 있는데도 죽지 않습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자비입니다. 우리가 받아야 것을 받게 하시고, 받을 없는 것을 주시는 겁니다. 그게 자비이고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이 뭔가?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것이니 제물이 아닙니다. 그럼 원하시는 뭔가?바로 우리의 하나님의 자녀다운 ,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입니다. 우리에게서 원하시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네가 자녀다. 그러니까 자녀답게 살아라. 삶에서 나를 나타내라. 그것이 바로 거룩한 삶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잊어버렸습니다. 이것을 놓쳤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되고, 제물만 드리면 그것이 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바른 삶을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져서 후기로 갈수록 선지자들이 많이 나옵니다. 계속 하나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계속 잘못 가니까 그렇습니다. 제사도 드리고 했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이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불의가 판을 치고, 부정부패와 악이 판을 치고, 가난한 사람을 멸시하고, 그러면서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망했습니다.


거룩하고 성결한 삶이 있어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14절에서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서원을 갚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아삽은 ‘감사의 제자’를 ‘서원’과 연결시킵니다. 서원(vow)이라는 것은 강한 약속을 말합니다.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말 이렇게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서원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실인의 서원입니다. 평생 머리에 칼을 대지 않고, 독주(소주) 마시지 않으며, 시체를 만지지 않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한마디로 구별된 삶을 살겠다는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 물론 우리가 은혜를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정말 은혜를 받았으면 거기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주님께 영광이 됩니다. 어쩌면 시대의 한국 교회와 크리스천의 문제가 여기에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은혜는 많이 받습니다. 예배가 매주 있고, 주중에도 있고, 부흥회, 공부도 있고, 교회마다 제자훈련이나 여러 프로그램들이 많습니다. 은혜 받을 기회는 많습니다. 찬양집회 때도 눈물로 결단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사람이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가 약합니다. 가르치는 것도 약하고 실행하는 것도 약합니다. 그래서 나가면 믿는 사람과 비슷하게, 또는 악하게 삽니다.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집니다. ‘저런 사람이 다니는 교회에 나는 가지 않겠다.’라는 말이 자꾸 나오는 겁니다.


인도의 유명한 비폭력주의자 마하트마 간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예수는 존경하지만, 기독교는 싫어한다. 크리스천들을 싫어한다는 말입니다. 예수는 존경하는데, 그를 따른다는 크리스천들이 그분의 교훈과는 다르게 살아서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믿지 않는 분들이 나를 ‘저 사람은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야.’라고 인정해줄 것인가, 아니면 ‘저 사람은 예수 믿어도 우리보다 못해.’라고 것인가? 두려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없습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삶을 자꾸 살게 되면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꾸 이렇게 여기서 같이 예배하고, 목장에서 사랑을 훈련하는 겁니다. 듣기 싫어도 들어주고, 보기 싫어도 보고, 참아주고, 인내하고, 섬기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그런 훈련이 되어야 믿는 사람들 앞에서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나오지, 훈련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그런 삶이 나오겠습니까? 그런 삶을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해야 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5절)

 

이 말씀은 우리의 삶 가운데 환난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사실 이 세상에 쉬운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주 어린아이도 한숨을 팍팍 쉴 때가 있습니다. 어른이든 어린이든, 다 힘듭니다. 누구에게나 어려움과 위기가 찾아옵니다.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게 인생의 현실입니다.

 

그때 우리가 부를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아버지”라고 부를 분이 계시다는 것이 정말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그럴 때 고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어설 수 있습니다. 그런 고난 중에 부를 이름이 없다면 그것처럼 막막한 게 없습니다. 그런데 아삽은 그 이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무슨 일을 당하든지 그분을 부르면 그분이 도와주십니다. 특히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 내 아버지시라는 사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은하계의 직경이 36억 광년이라고 합니다. 1초에 지구를 7바퀴 반을 도는 빠른 빛이 36억년을 가는 길이가 36억 광년입니다. 엄청나게 큰 이 은하계를 말씀으로 만드신 하나님이 어떻게 내 아버지가 되십니까? 이건 정말 너무 놀라운 은혜입니다. 이 한 가지만 가지고도 우리는 감사할 제목이 충분합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때 두려움과 염려가 떠나가고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것이 형통하고 어떤 고난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합니다. 그 말은 사실인데 어떤 복인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집니다. 이 땅의 복이라면 사실이 아니지만, 하늘의 복이라면 맞습니다.

 

예수 믿으면 이 땅에서 정말 형통하고 고난이 없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부터 너무나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떤가? 예수님과 함께 갈릴리 호수를 건너갈 때 따라갔더니 폭풍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라오지 않았으면 폭풍을 안 만났을 텐데, 순종해서 따라왔기 때문에 어려움을 만났습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데 웬 폭풍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주님은 한 번도 안전한 항해를 약속한 적이 없으십니다. 대신 안전한 항구를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그 중간에 뭔가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폭풍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주님을 신뢰할 때 그것이 그분께 영광이 됩니다.

 

요한만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다가 순교를 못하고 나중에 유배를 당했지만, 나머지 사도들은 전부 다 순교했습니다. 그럼 그들의 인생이 실패한 인생인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하늘에 그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지금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나가는 ]


전광 목사님이라는 분이 쓴 <평생 감사>라는 책이 몇 년 전부터 유명합니다. 내용이 아주 좋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한 여자 집사님이 있는데, 장밋빛 꿈을 가지고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혼 초부터 남편이 늘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어서 들어오는 바람에 원래 꿈꿨던 결혼 생활이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10년의 세월이 흘러도 남편의 술버릇은 여전했고, 그 집사님은 홀로 가슴앓이를 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밤 늦은 시간, 그날도 변함없이 남편은 술에 잔뜩 취해 만신창이가 되어 현관 입구에 와서 쿵 쓰러졌습니다. 여 집사님은 남편을 겨우 끌어다 눕혔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이렇게 술주정뱅이 남편과 씨름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왜 제가 그렇게 기도를 많이 했는데도 남편이 변하지 않을까요? 왜 아름다운 결혼생활을 꿈꿨는데 결혼생활이 이렇게 엉망이 되었나요? 하나님, 이제 저도 더 이상 못 참겠어요.”

 

그런데 10년 넘게 쌓이고 쌓인 설움에 대성통곡을 하며 기도 아닌 기도를 하다가 지난 주 들은 목사님의 설교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감사할 게 하나라도 있어야지’라고 생각하다 보니, 좀 우습기는 하지만 몇 가지 감사거리가 떠올랐습니다.

 

“옆에서 정신없이 코골며 자는 남편을 쳐다보면 한심하긴 하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다 싶어 감사합니다. 언젠가 좋은 남편이 될 가능성이 그래도 있다고 생각하니 감사합니다. 저렇게 술은 취했지만 다른 데 안 가고 항상 집을 찾아와 자니 감사합니다. 술은 좋아해도 여자라고는 나 밖에 모르니 감사합니다. 다른 남편들은 술만 먹으면 때리거나 심한 주사를 해서 식구들을 한숨도 못 자게 한다고 하는데 그런 일은 없으니 감사합니다.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도 아직까지 병원에 한번 안 갔으니 감사합니다. 술 먹은 다음 날 아직까지 하루도 회사에 못 나간 적이 없으니 감사합니다. 토요일에는 술을 더 많이 마셔서 주일날은 어김없이 잠만 자니 제가 교회에 가는 데 방해받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라고 하기엔 좀 뭣 하지만 그래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니 속이 후련해지고 기쁨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계속 떠오르는 대로 감사기도를 읊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남편이 목이 말라 잠에서 깨어 보니 아내가 표정이 안 좋아야 하는데 이상하게 웃으면서 계속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남편이 놀라서 아내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습니다.

 

“여보, 한밤중에 잠 안 자고 뭐 하는 거야. 뭐가 좋아서 혼자 싱글벙글 하는 거야?” 아내는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과 사는 것이 너무 감사해서 그래요.” 그러면서 지금까지 기도했던 감사의 내용을 모조리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의 얼굴 표정이 심각하게 변하더니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여보, 내가 술을 먹고 당신 속을 그렇게 썩였는데도 나와 사는 것이 감사하다고 하니 너무 고마워. 이제부터는 술 끊으려고 노력을 하겠소. 그리고 내가 교회 나가는 게 그렇게 소원이라면 당장 내일부터 나가겠소!” 그래서 10년 넘게 눈물로 기도해도 꿈쩍 않던 남편의 마음이 단 한 번의 감사기도로 움직이는 기적이 정말로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 집사님의 이야기처럼 지금 당장 감사기도만 하면 나의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해결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힘든 문제 속에서도 감사를 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은 나를 바꾸셔서 문제를 보는 눈을 바꾸시고 일을 해결해 주시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렇지 않더라도 더 이상 내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 여 집사님도 10년 동안 남편을 바꾸려고만 했지 자기를 바꾸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을 깨달았던 겁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해가 안 되고,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어려운 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을 가지고 인생을 살라고 하십니다. 결국 신앙의 안목으로 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것을 주님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인생길을 살아갑니다. 아니, 한 시간도 내다보지 못하고 인생길을 걸어갑니다. 사실 지금 일어나는 일도 그 뜻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왜 그때 그 일이 그랬는지 깨닫고 그제야 감사를 합니다.

 

한국말 중에 ‘뒷북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감사에 있어서는 뒷북치기 감사가 아니라 앞 북 치기 감사, 미리 감사를 해야 합니다. 뒷북치는 사람이 성공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무엇에든지 성공하려면 미리 해야 합니다.

 

감사도 나중에 하는 뒷북 감사보다(그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만), 앞 북 감사를 드리는 게 좋습니다. 그럴 때 주님이 더욱 기뻐하시고 인생의 길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이 앞 북을 치는 감사를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항상 앞 북을 치며 범사에 감사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감사는 내가 이렇게 형통했다고 과시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의 고통과 상관없는 사치품도 아닙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인생의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 속에서도, 교만하거나 비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억하며 인정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 때 우리 삶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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