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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9 18 주일예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 마가복음 44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마가복음 12 13~17)


[들어가는 ]


수년째 서울시 고액 체납자 명단에 오르면서도 호화 생활 의혹을 받고 있는 어느 대기업의 부회장이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자신의 출국금지 기간 연장을 취소하라며 소송을 걸었는데, 지난 3 대법원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국세청은 부회장이 세금을 내긴 냈지만 제대로 아니라며 많은 세금을 부과했고, 그는 과세가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지만 재판에서 겁니다.


그는 10 이상 세금과 가산세를 납부하지 않아서 300 원이 넘는 가산금이 쌓였습니다. 국세청이 압류 절차를 통해 39 원을 받았지만 709 원의 세금은 징수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국세청은 세금을 냈기 때문에 법무부에 그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나는 고의적으로 국세를 체납한 것이 아니다. 모든 재산은 과세당국에 의해 압류됐고 생활 기반도 국내에 있다.”라고 하면서, 2014 10월에 출국금지 연장을 것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냈습니다. 그런데 1심과 2 모두 부회장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대법원도 하급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부회장이 세금 709 원을 내고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투자 실패로 재산이 없다고 하면서도 고급 빌라 채를 터서 만든 집에 살고, 출국금지가 내려지기 전까지 미국, 홍콩, 마카오 등을 50 차례 다니면서 500 일을 넘게 다녔다고 해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고 했습니다.


그가 출국금지 처분을 받기 전까지 4 동안 50 차례에 걸쳐 출국해 500 이상 해외에 머문 점도 지적하면서, 재산을 해외로 빼돌릴 위험이 있다는 때문에 출국금지를 겁니다. 재판부는 그룹의 자산 승계 내역을 근거로 부회장이 압류된 재산 말고 다른 재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출국을 허용하게 되면 세금의 강제 집행을 곤란하게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상하게 부회장의 다른 형제들은 그룹 계열사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그의 아내와 아들도 지분이 있는데 이상하게 사람만 없고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러한 모든 것이 결국 그가 패소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습니다.


한국에는 1 이상 지나도록 5 이상 되는 세금을 내지 않은 소위 ‘고액 체납자’가 2015 말을 기준으로 2226명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내지 않은 세금의 액수의 합이 3 7832 원인데, 1인당 평균 체납액이 17 정도가 됩니다.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세금은 내면서 호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세청의 집중 타겟이 되어서 세금을 내라고 독촉을 하지만 아직도 내는 사람들이 다수입니다. 미국 IRS ‘혹시 경찰은 피할 있어도 IRS 피할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끝까지 추적하여 세금을 물립니다. 아직 한국은 정도는 되는 같습니다.


이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사는 곳에는 세금 문제가 항상 존재합니다. 나라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세금을 많이 거두려고 노력하고, 개인은 최대한 세금을 적게 내려고 노력합니다. 요즘 사회야 민주사회가 되어서 법에 의해 정해진 대로 세금을 내면 되지만, 고대사회에서는 황제가 내라고 하면 그냥 내야 하는 겁니다. 당시에는 왕이 거두는 대로 내야 하니까 백성들의 삶이 힘들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정부의 조사를 받는 어느 대기업 총수가 말이 인상적입니다. “나는 탈세를 하라고 지시한 적이 없다. 다만 절세를 하라고 지시했을 뿐이다. 불법적으로는 하지 말고 최대한 합법적으로 하라는 말인데, 사실은 들키게 하라는 말입니다. 탈세와 절세의 기준도 굉장히 애매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 분개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이 똑같은 기준을 우리에게도 들이대신다면 하나님 앞에서 ‘나는 깨끗하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이 우리 중에 얼마나 되겠습니까? 바로 세금의 문제를 가지고 오늘 본문에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옵니다.


 

1.   마가복음 내에서 오늘 본문의 위치


오늘 본문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본문의 위치가 마가복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11장에서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실 때부터 16 끝까지 불과 1주일 사이에 벌어진 이야기인데 이렇게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마가가 특히 예수님이 주일에 입성하셔서 금요일에 돌아가시기 전까지 5 정도 되는 이야기를 굉장히 오래 하고 있습니다.


지난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밝히셨습니다. 그랬을 12 12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버려두고 갔습니다. 이제 종교지도자들은 다시 바리새인들(율법의 전문가) 헤롯당원들(정치의 전문가) 예수님에게 보내어 세금 문제를 질문함으로써, 예수님을 정치적인 위기로 몰아넣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에 의해서 생긴 논쟁이 12장에 계속 나오는데, 오늘의 본문인 13절부터 시작해서 뒤의 34절까지가 논쟁의 내용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세금 논쟁으로 시작해서, 다음 본문인 18~27절에서는 부활 논쟁이 벌어지고, 28~34절에서는 계명 논쟁이 나옵니다. 이렇게 이어지면서 본문은 주님께서 종교지도자들과의 논쟁에서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는 것으로 34절에서 결론을 내고 있습니다. “그 후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님께 덤볐는데 패하고 감히 덤비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종교지도자들이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을 보내어 세금 문제를 제기하는데,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을 하니까 물러가게 됩니다. 다시 사두개인들을 보내어 부활 논쟁을 벌이지만 주님이 지혜로운 답변을 통해 승리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서기관의 율법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도 완전히 예수님이 승리하시므로 이상 감히 묻는 자가 없게 되는 상황입니다(34).


이렇게 오늘 본문과 다음 본문들이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 사이의 논쟁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며 오늘 본문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종교 지도자들의 간교한 시험 (13~14)


이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화가 대로 났습니다. 왜냐하면 동안 자기들이 번번이 예수에 의해서 창피를 당하고, 예수의 가르침도 그렇고, 성전에 와서 청결하게 것도 그렇고, 논쟁을 벌여도 이기지 못하니까 화가 났습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초기 사역 때부터 그를 죽이려고 공모해 왔습니다(3:6).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어떻게 예수를 죽일 것인가를 연구해 왔지만 아직 죽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그들은 드디어 마침내 완벽한 함정을 준비하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3)


책잡으려 하여라고 합니다. 이들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냥 읽으면 그런가 보다 하지만, 바리새인이 누구이고 헤롯당원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보면 이것은 있을 없는 일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교를 아주 철저히 신봉하는 민족주의자이며 국수주의자, 자기들의 민족을 위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다 못해, 원래 율법보다도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지킨다고 지적을 받을 정도로 굉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헤롯당원들은 로마에 의해서 유대에서 왕이 되어 다스리는 헤롯에게 붙어서 충성하는, 유대인들이 보기에는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극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친일파가 하나가 것과 아주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동안 목적이 같았습니다.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것은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 명을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에게 보낸 것입니다.


이런 정치 아닙니까? 서로 정치적 색깔도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그래서 서로 싸우던 사람들이, 나중에 공동 목표가 생길 하나가 되어 합당한다든지 하는 일을 많이 봅니다. 이런 정치 집단과도 같습니다.


성경을 그냥 보면 지겹다고 느낄 있는데, 사실 조금만 알고 보면 사극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음모와 갈등과 흥미진진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신문이나 드라마에서 보는 내용들이 나옵니다. 그렇습니까? 인간은 원래 그렇기 때문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동서를 막론하고 인간은 그렇게 산다는 겁니다. 서로 싸우다가도 뭔가 공통된 목적이 있으면 하나가 되고, 그러다 나중에 그것을 이루게 되면 싸우고 갈라지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특히 악한 목적으로 자기의 유익 때문에 합치게 되면 결국에 가서는 서로 맞지 않아 싸우고 갈라지고 문제만 일으키다가 끝나게 됩니다. 그런 경우가 역사를 봐도 많고, 성경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별로 친하다가 어떤 이익을 같이 추구할 때는 하나가 되고, 그러다 자기의 이기적인 목적을 따라가다 보니까 갈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원들은 예수님께 오자마자 욕을 하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아주 간교한 술책을 쓴다. 자기들과는 맞지 않지만 그렇다고 자기들을 배척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교묘하게 접근을 합니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14)


물론 예수님은 그들이 바리새인이라거나 헤롯당원이라는 자체 때문에 거부하지는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구원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들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을 위해서도 예수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고 그들을 반대하신 이유는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외식과 거짓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자체를 미워하신 아니고 그들 안에 있는 외식과 위선을 미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도 우리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내 마음은 어떤가? 내가 주님 앞에 나올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나와서 예배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것에 관심을 두고 와서 주님께는 관심이 없는가?


주님께 나올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마음 상태가 뭔지 아십니까? 물론 기뻐하고 높여드리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하나님이 아주 주목해서 보시는 마음 상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한 심령’입니다.


다른 가서 호소할 데도 없고, 다른 도움을 구할 데도 없고, 오직 저는 하나님 밖에는 계십니다. 하나님 밖에 저를 도와주실 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외면하시면 저는 데가 없습니다.’라는 간절한 마음이 상한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올 하나님은 너무 안타까워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만져주십니다.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본 적이 언제인지 생각해보십시오. 지난 밤에 하다가 오늘 오셨습니까? ‘내가 내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드려야지.’라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오셨습니까, 아니면 ‘저번에 것을 몰아서 봐야지. 하고 오셨습니까? 토요일 밤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주일예배가 달렸습니다.


물론 일주일 동안 제대로 살지 못한 사람이 주일에 와서 영과 진리로 참된 예배를 드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일주일 동안 ‘열심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보려 애쓰며 살아보니까 되더라’, 아니면 ‘해봤지만 되더라’ 하며 ‘하나님, 죄송합니다’라고 하며 오는 겁니다. 그것을 들고 나와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헌금함에 돈을 넣지만 사실은 돈을 넣는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넣는 겁니다. 헌금을 하실 이렇게 하시면 좋겠습니다. 미리 기도를 하고 들어오며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부분에 성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니면 ‘하나님, 제가 말씀 하나 붙들고 그대로 해보려고 했는데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것도 드립니다. 제가 애를 써본 이것을 주님께 드립니다. 하면서 헌금 봉투 안에 마음을 넣어서 드리는 겁니다. 돈만 내는 아닙니다.


여러분, 내가 매주 때마다 하나님께 드릴 것이 있습니까? 드릴 것이 있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만약 내가 이렇게 감사한 것이나 아니면 말씀대로 살려고 struggle 것으로 드릴 없다면, 그게 무슨 뜻인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겁니다. 정말 신앙생활은 이렇게 감사와 기쁨의 생활, 아니면 해보다가 되어서 실패하고 괴로운 상태에서 주님 앞에 나오는 , 이런 것들이 있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 것들을 드리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나와서 드리는 예배는 여기 와서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오니까 졸립고 피곤하고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러나 주님께 나올 그런 마음으로 나오는 것이 ‘상한 심령’입니다. 그럴 주님의 임재하심이 느껴지겠습니까?


주님이 계신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해주십니다. 지금 자리에 함께 해주십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집에서 때도 함께 해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느끼는가?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을 느끼고 모르는가? 마음이 주님께 열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항상 함께 해주시는데 내가 주님께로부터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상한 심령으로 나와 주님께 삶을 드리며 예배할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하나님의 사랑(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나를 얼마나 care 해주시는가), 은혜, 하늘의 영광을 느끼고 회복합니다. 옆에 있는 형제자매를 보며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구나 하고 다짐하면서 문을 나가는 겁니다.


그럴 우리는 진짜 부흥을 경험하게 되고, 나가서도 진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가서 진짜 신앙생활을 하다가 여기 와서 함께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나가서 진짜 신앙생활을 하고... 그런 선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바로 그것이 크리스천의 삶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른 목적으로 나오거나, 교만하거나, 악한 마음으로 나오거나, 게으른 마음으로 나오거나, 간신히 비비며 나오거나 해서는, 주님이 함께 해주셔도 함께 해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느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위에서 비가 많이 내려도 물컵을 거꾸로 놓으면 컵에는 방울도 담기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자리에 있지만 방울도 담기지 않습니다. 물컵을 바로 놓아야 거기에 물이 담기는 것처럼, 내가 주님 앞에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폭포수를 맛보게 됩니다.


주님이 이렇게 우리를 만나주실 우리는 입에서 ‘행복하다. 기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힘들지만 기쁩니다. 힘든 아닙니다. 삶이 힘들지만 그래도 기쁘고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면서 주님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그리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종교의 전문가이며 최고 지성인인 바리새인들은 그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런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것을 계속 지적하셨습니다. 이들은 지난 3 동안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생각하며 기회를 노리다가, 마침내 자기들 나름대로 연구해서 이제는 빠져나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것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꺼내놓습니다. “가이사(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세금을 내야 됩니까, 내야 됩니까?


그런데 말을 하기 위해서 전에 얼마나 말을 많이 합니까.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아주 붙이는 말이 대단합니다. 그래 놓고 “세금을 내야 됩니까, 내도 됩니까?


이것은 아첨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이중성을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견해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 말씀하시는 율법의 참된 교사라고 뛰워줌으로써, 은근히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해 반대를 하도록 유도하는 겁니다. 그들이 말한 ‘하나님의 도’란 로마에 세금을 바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하기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합당하느냐고 질문한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로마 정책에 동조하거나 적어도 묵인한 자들로서, 자신들의 부패한 행위를 지적하며 도전하는 예수를 로마제국에 대한 과격한 저항세력으로 몰기 위해 세금 문제로 예수를 곤경에 빠뜨려 잡아 죽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당시 로마 정부에 바치는 세금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뿐이시므로 이방 임금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을 했습니다. 반면에, 헤롯당원들은 황제의 시민으로서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세금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꺼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아주 교묘하고도 악한 의도를 가진 행위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내지 말라고 하시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로마 정부 쪽에 붙어 있던 헤롯당원들이 와서 ‘이거 봐라’ 하며 예수님을 잡아갈 명분이 생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금을 내라고 하시면 ‘이거 봐라. 우리 민족의 반역자다.’라고 공개적으로 낙인찍고 잡아다가 유대인들의 법정인 공회에 세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는 예수가 이상 피할 수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아주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의기양양하고도 간교하게 질문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대답이 나오든지 잡아가겠다는 겁니다. ‘이거라고 하면 너희가 잡아. 저거라고 하면 우리가 잡을 .’라고 하고 있는 겁니다.

 


3.   예수님의 명쾌한 대답 (15~17)


다들 지켜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5절)

 

이 분위기가 느껴지십니까? 이들이 와서 음흉하고 교활하게 웃으면서 “예수님, 뛰어나시고 훌륭하시고...”라고 한참 한 다음에 “세금을 내야 합니까, 안 내도 됩니까?” 이때 예수님이 조금 가만히 계셨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바치리이까, 말리이까?”라고 재촉합니다. 얼마나 악합니까?

 

그 악한 마음을 예수님이 모르십니까? 잘 아십니다. 그들이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자들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아시고 물으십니다.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왜 나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느냐’는 책망입니다. 그리고 정말로 놀라운 대답을 하십니다.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예수께 대하여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16-17절)

 

예수님은 아주 절묘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내라, 내지 말아라’가 아니라, 데나리온 동전을 가지고 오라고 하시고, 거기에 황제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이시며,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 것이냐?” 로마 황제의 얼굴과 라틴어가 적혀 있습니다. 그것을 보이시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라고 하십니다(17).

 

이들이 “매우 놀랍게 여기더라” 했는데 이게 요즘 말로 바로 ‘멘붕(멘탈붕괴)’입니다. ‘헐~~! 이런 대답을 할 줄 몰랐네!’라고 하는 겁니다. ‘이거다, 또는 저거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대답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가끔 그런 마음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내 상황을 하나님도 모르시는 것 같아.’ 여러분, 하나님이 더 똑똑하실까요, 아니면 내가 더 똑똑할까요? 당연히 하나님이 더 똑똑하십니다. 그런데 왜 지금 내 상황은 이런가? 뭔가 뜻이 있으신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내 사정을 모르신다고 하지만, 모르시는 게 아닙니다. 너무 잘 아시기 때문에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고 그렇게 하고 계신 겁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차원이 다른 분이십니다. 사람들의 차원을 뛰어넘는 분이십니다. 이번에는 예수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나 현명한 대답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그러면 가이사의 것이 따로 있고 하나님의 것이 따로 있으니, 따로따로 알아서 하라는 것입니까? 그게 아닙니다. 사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것이 아닌 것이 뭐가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그보다 높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까웠던 일이 있습니다. 작년 4월에 한국에서 비자금 로비 의혹 사건이 있었는데, 조사를 받던 한 사람이 자살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회장이기도 하고 국회의원도 했던 분이 자살을 했습니다. 참 안타깝다고 여겼는데, 나중에 보니까 교회의 장로였습니다. 장로님인데 그런 로비 의혹을 받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돈 문제가 얽혀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또 어느 재벌 기업의 부회장 되는 분이 조사가 시작될 때 또 자살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으로 ‘이 사람도 혹시 장로 아냐?’라고 했는데 그게 진짜였습니다. 또 자살을 한 그분도 교회에서 장로였습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사람들을 섬기고 교회에서 중요한 일들을 결정하는, 기름 부음 받은 장로의 귀한 직분을 받았는데, 돈 문제, 로비, 세금, 탈세, 절세 등등 복잡한 일에 핵심적인 인물들로 있었다는 겁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봉사할 때와, 나가서 생활할 때가 완전히 두 얼굴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마음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저 사람들 못됐다. 나쁘다.’라고 비난할 자격이 있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세금을 보고할 때 속여서 하는 경우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히 나와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섬기고 교제하고 사랑하는데, 세상 법은 잘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말합니다. ‘이게 똑똑한 거다. 이게 세금을 절약하는 거다.’ 그러면서 또 세금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자기의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금을 절약해서 그 돈으로 하나님 앞에 헌금하면 더 좋지 않으냐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돈을 받지 않으십니다. 분명히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속여서 번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것은 성경적으로 옳지 않은 말입니다.

 

액수가 백만 불인 것보다, 정직하게 번 1불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돈을 원하시는 게 아닙니다. 우리 마음의 정직함을 원하십니다. 아까워서 세금을 안 내는 것이면서 말로는 헌금하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세상을 속이고 하나님도 속이고 자신의 양심도 속이는 것이 됩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서 세금을 속이더라도, 이것은 세상에 있는 동안 세상의 정부에 의무를 다하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는 것이 됩니다(롬 13:1-7; 벧전 2:13-14).

 

물론 예수님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거나 하나님께 헌금을 바치는 것을 본인이 알아서 선택하라고 하시는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두 가지 모두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두 개의 나라에 소속된 사람들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로마의 백성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로마의 법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의 법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둘이 서로 갈등을 빚을 때 무엇을 따라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둘이 다투게 된다는 것은 세상의 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어떻게 잘못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악용해서는 안 됩니다. 합리화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 믿는 자들에게 너무 중요합니다. 우리가 만약 열광주의에 빠지게 되면 이 세상을 부인해 버리고 믿음이 전부인 것처럼 과격하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과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세상 시민으로서 지탄을 받고 발붙일 곳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다 따라갈 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제대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도 부지런해야 합니다.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명의 삶>을 할 때마다 이것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사역(ministry)의 장이 세 곳입니다. 첫째, 가정입니다. 사역을 교회에서만 하는 게 아닙니다. 가정에서 사역을 합니다. 둘째, 생업에서 합니다. 그리고 셋째가 교회입니다. 가정과 생업과 교회에서 우리는 섬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직장에 나가서 일해야 하는 시간에 <생명의 삶> 숙제를 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일할 시간에는 일해야지, 그 시간에 주님의 은혜를 사모한다고 해서 기도하고 그래서는 안 됩니다. 따로 쉬는 시간에 해야지, 일할 시간에 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저 사람은 별 것 아닌 것 같은데 이상하게 잘 돼.’ ‘저 사람은 진짜 성실한 사람이야. 정말 정직해. 뭘 맡겨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말을 들어야지, ‘저 사람 안 나가나? 있으나 마나 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업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동네에서 꼭 필요한 사업체’라는 말을 들어야지, ‘여기는 언제 문 닫나?’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정말 부지런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사는 겁니다. 사실 하나님의 법을 따라 제대로 살면 이 세상에서도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 땅에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야 하지만,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우리에게 헌금 내라고 하시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온 우주만물을 만드시고 갖고 계시는 분이신데 무슨 돈이 필요하시겠습니까? 오히려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으로 드릴 줄 아는 사람이라면, 무엇으로 채워주셔도 다 manage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못 드리는 사람은 더 줘 봤자 그게 오히려 신앙에 해가 됩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다 갚아 주시고 더 큰 것으로 맡겨 주십니다. 이것은 무슨 논리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체험적인 신앙의 태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있으면 있는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또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게 되면,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시고 더욱 채워 주십니다.

 

 

[나가는 말]

 

부모님이 LA에 사시기 때문에 최소 1년에 한 번은 가 뵈려고 합니다. 몇 년 전에 부모님이 새로 지은 시민아파트에 당첨이 되셔서 그리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아파트는 수입의 하한선도 있지만 상한선도 있습니다. 너무 돈을 많이 받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처음 제가 거기 갔을 때 지하 주차장을 둘러보았더니 엄청나게 좋은 차들이 서 있었습니다. “여기 시민 아파트인데 어떻게 저런 차들이 와 있죠?”라고 부모님께 여쭈어보니까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원래 그 정도 차를 모는 사람은 그 아파트에 들어올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자기 차가 아니라는 겁니다. 즉, 자기 돈으로 샀을 수도 있고 자녀가 선물로 사드렸을 수도 있지만, 자기 돈이 따로 있는데 정부에 보고하지 않고 자기는 돈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고하여 그 아파트에 들어왔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돈이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좋은 차들을 몰고 다니는 겁니다. 그런데 그 중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닙니다.

 

여러분, 이 땅에서 우리가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정말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속이고 있지는 않은가? 내 양심을 속이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그쪽 그런 사람들 이야기일 뿐입니까? 유명한 이전 대통령 중 한 분이, 돈을 숨긴 것을 내놓으라고 했더니 “내 전 재산은 26만 원 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고급차를 몰면서도 그 시민아파트에 사는 분들도 다 분개했을 겁니다. 그런데 자기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아마 모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돈에 관계된 것만이 아닙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됩니다. 이 세상의 시민이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것 또는 저것 중 하나만을 잘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제대로 살게 되면, 이 세상 시민으로서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고, 바로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은 어디나 계시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하나님 앞에서 법을 지키며 살고, 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사는 그런 삶을 하나님이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하루도 또 이번 주도 세상의 법을 잘 지키며 나아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충실하게 살면서 드리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한 주 동안 열심히 살아보고, 다음 주에 와서 그것을 주님 앞에 헌금과 함께 드리면서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삶, 참된 믿음의 삶을 우리 모두가 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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