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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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7일 주일예배
✦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산다 1 ✦
“아름다운 믿음의 가정이 되는 길”
(에베소서 6장 1~4절)
1. 신앙이 전수되는 가정 만들기
저희 교회가 가정교회를 한지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데, 저는 가정교회를 통해 정말 큰 유익과 도움을 얻은 목회자입니다. 지금도 계속되는 컨퍼런스 참석과 네트워킹과 여러 책들을 통해 도움을 얻고 있고, 그것은 저 개인적인 유익뿐 아니라 교회가 그런 방향으로 함께 도전 받으며 영혼 구원하여 제자 만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유익이 됩니다. 그 중 한 가지가 자녀 교육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부터 약 6주 동안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산다’라는 주제로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10년 전쯤 이와 같은 주제를 다룬 적이 있는데, 반복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중요한 말씀들을 계속 나누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으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다루면서, 오늘은 5월 가정의 달(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가정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지난 번 목회자 컨퍼런스에 갔을 때 휴스턴서울교회의 어린이 담당 목사님이 오셔서 강의를 해주셨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배운 내용들을 나누기 원합니다.
옛날에는 고등학교까지는 교회를 잘 다니다가 대학교 가면서 교회를 떠나는 퍼센트가 80-90퍼센트라고 했었습니다. 그것을 Silent Exodus(조용한 출애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나이가 18살이 아니고 12살입니다. 중학교에 가면서 아이들이 교회에 가기를 싫어합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꼭 이 한 가지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많은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는 아직도 자녀의 신앙을 교회에 다 떠맡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의 믿음과 신앙을 부모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책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게 맡겨 놓고는 교회에게 책임지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또 교회는 ‘우리가 책임지겠다’라고 합니다.
오해하지 마시고 잘 들어보십시오. 물론 교회가 신앙 교육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사님도 새로 초빙했고, 교사 선생님들도 애를 많이 쓰고 있습니다. 실제로 교회에서 자녀 교육이 활발해야 VIP들도 전도가 되고 교회에 더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때문에 교회에 교육 프로그램이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가정들이 자기 자녀의 믿음을 교회가 전적으로 책임져주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녀의 신앙에 대한 책임을 교회에게 다 떠넘기면서 부모와 자녀가 믿음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를 못합니다.
여러분, 교회는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교회에서 주일 하루 두세 시간 정도 가지고 아이들의 영적 성장을 어떻게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또 교회가 책임을 져서도 안 될 것입니다. 교회에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고 자녀들이 교회를 좋아할수록 많은 부모들은 자녀의 신앙 성장에 교회를 더 의존하게 되고 본인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교회 프로그램이 아주 잘되어 있고 활발하게 하고 있는 큰 교회들에서 자라는 자녀들이 의외로 믿음을 떠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추구해야 할 자녀 교육은, 부모들을 도와서 부모들이 교회 안에서 자기 자녀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자녀 교육을 다 책임지는 게 아니고, 교회는 부모님들을 도와드려서 부모님들이 자기 자녀의 신앙 교육을 책임지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겁니다.
한국 교회와 미국 교회의 지난 20년을 보면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안 했다기보다는 못했던 부분이 더 많습니다. 그 중심에 사실 교회가 있었습니다. 교회가 자녀들의 신앙을 책임지려고 했고, 부모들은 다 교회에 맡기려고 했습니다. 분명히 부모가 해야 하고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을 알지 못했고, 교회도 부모에게 자녀와의 믿음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그냥 교회로 데려오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온 아이들을 교회가 신앙교육을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수년 전부터 보고 있는 겁니다.
지금 미국이나 한국 같은 상황에서는 자녀의 신앙과 믿음을 교회가 책임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교회가 주된 책임을 져서도 안 됩니다. 교회가 해야 하는 것은 부모들을 돕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버지로써 어머니가 어머니로써 자녀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 노력하도록 돕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바로 거기에 가정교회의 목장이 있고 올리브 블레싱이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신약교회의 회복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 위에 세우겠다.”라고 하신 그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사도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 갔다가 귀신 들린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점을 치던 것이 중단되니까 그 주인들이 바울과 실라를 잡아서 넘깁니다. 그래서 때려서 감옥에 가둡니다. 그날 밤에 그 두 사람이 찬양을 하는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다 열립니다. 그때 간수가 벌벌 떨면서 와서 자기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을 수 있냐고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을 때 바로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바울과 실라가 그에게 이야기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시오, 그리하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을 것이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교회의 모습은 아버지가 주 예수를 믿어도 집안 전체가 구원을 얻는다는 보장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가정교회의 목장에서 하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올리브 블레싱을 통해서 어린이 목장을 통해서 해보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목장에 가는 것이 귀찮은데 억지로 협조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 자녀를 살리는 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이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목장이고, 그 목장 안에서도 올리브 블레싱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모든 목장식구들 마음속에 내 자녀들을 포함해서 다른 분들의 자녀들이 다 그냥 아이들이 아니라 바로 내 목장식구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목장에 잘 따라다니고 교회에도 잘 나옵니다. 그러다 청소년이 되어서 목장에 가는 것을 꺼리고 교회에도 가기 싫어하는데, 그 이유는 그 아이들 마음속에 더 이상 ‘여기는 내 목장이 아니다. 여기는 내 교회가 아니다.’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여기는 우리 부모님 목장이고 교회라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왜 올리브 블레싱을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믿음을 부모가 목장 식구가 자녀들과 공유하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과 신앙을 공유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갖는 것입니다. 그 어디에서도 목장 같은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양육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자녀의 교육을 교회에서 하려고 합니다. 물론 교회에서도 해야 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가정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목장이고, 그 중에서도 올리브 블레싱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무엇인가를 공감하고 공유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화나 음악을 보십시오. 젊은 사람들을 겨냥한 영화와 음악이 있고, 중년층이나 노년층을 겨냥한 것들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제 노년층이 어린이들보다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사업도 노년층을 타겟으로 삼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타겟 그룹이 정해져 있습니다. 세밀화 되고 세분화 되어 있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대 간에 무언가를 함께 하는 것을 참 불편해 합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우리 교회에서 부활주일, 성탄주일, 그리고 새해맞이연합예배 때 이중 언어로 같이 예배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중 언어 예배라기보다는 ‘세대 간 예배’입니다. 어린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다 같이 모여서,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같이 예배를 드리는 겁니다.
이런 것이 필요합니다. 불편하지만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얼마나 불편합니까? 그런데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 진리가 필요하고 이를 공감하고 공유해야 전수가 됩니다. 신앙은 말로 믿으라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 신앙의 전수가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에서의 세대교체라는 것이 단순히 40대가 50대, 60대, 70대가 되어 새로운 젊은이들을 전도해서 이제 20대, 30대 사람들을 전도하고 그들에게 바톤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부모님은 목자, 목녀도 오래 하고 직분도 맡아 열심히 섬기는데, 자녀들이 대학 가서 교회도 안 나가고 목장에 대해서 도리어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우리는 다시 한 번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것을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잘 전수되고 있는가? 우리 자녀들이 바로 우리의 VIP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2. 올바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이 중요합니다. 오늘 에베소서 6장 말씀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쓴 편지이고, 그 중에서도 올바른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설명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올바른 관계는 하나님과의 관계, 즉 영적인 것에서 시작됩니다. 여러분, 지금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으십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는 말입니다. 빨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풀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성령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5:18)
그러면서 그 이후부터 부부관계, 자녀와 부모 관계, 상전과 종의 관계를 설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대로 뚫려야 사람과의 관계도 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영적 차원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6:10-12)
바울이 인간관계에 대한 말을 하면서 앞뒤에 영적인 권면을 넣는 것은, 올바른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적으로 건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우리가 영적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부부 간의 관계, 또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튼튼해야 합니다. 또 직장생활에서 상사와 동료와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가정생활 규범 전후에 성령 충만하라고 하고, 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1)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를 공경하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1절)
하나님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옳기 때문입니다. 옳은 일이니까 당연히 순종해야 합니다. ‘옳다’는 말은 ‘의롭다’는 말과 어원이 같습니다. 의로운 사람,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부모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2-3절)
‘순종하라’는 말은 행동을 가리키고, ‘공경하라(honor)’는 것은 마음의 태도를 말합니다. ‘영예스럽게 하라’, 즉 어떤 사람의 가치를 정확히 판단하여 그 가치에 합당한 대우를 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높은 위치에 있는 분이라면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해드려야 하고, 부모도 부모에게 합당한 대접을 해드리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한 것을 깨닫는 것이 공경의 첫 걸음입니다. 여기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분들이 많습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가끔 “부모님이 나를 위해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것 하나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하셨고 희생을 치러주신 것입니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은 고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도 키워주신 분이 있습니다.
한 엄마가 있는데, 자기 아이가 학교를 가고 나서 보니까 책상에 청구서를 써놓았습니다. “심부름 값 50센트, 말 잘 들은 값 50센트, 피아노 연습한 값 50센트, 기타 50센트, 합계 2불.” 그것을 보고 엄마가 웃었습니다. 학교 끝나고 아이가 와서 보니까 자기 엄마가 $2을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요구한 청구서가 돈 밑에 있었습니다. “사랑해준 값 0, 옷, 장난감, 신발 값 0, 아침 점심 저녁 값 0, 방 렌트비 0, 합계 0”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은 값으로 따질 수 없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물론 부모님과의 관계가 어려웠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이미 돌아가셔서 더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잘 살아가면 됩니다.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십계명 중 다섯 번째 계명입니다. 다른 계명과는 달리 약속이 들어가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1계명부터 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이고, 5계명에서 10계명은 이웃과의 관계인데,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 가장 먼저 나오는 계명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생명이 길 것이라는 말이 3절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붙은 첫 번째 계명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이 길리라는 말은 개인적으로 오래 산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모를 잘 공경하면 그 땅에 잘 정착할 수 있는 뿌리 깊은 가정을 이룰 것이고, 그 땅에서 오랫동안 번성할 것이라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부모를 잘 공경하는 자녀들은 그 가정이 잘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에 따라 살면 안 믿는 사람에게조차 그런 하늘의 복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잘되는 축복 중의 하나는, 나이가 많이 든 다음에 자녀의 효도를 받는 것입니다. ‘효자 집에 효자 난다’는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요즘 안타까운 것은, 젊은 분들 중에 부모 공경은 소홀히 하면서 자식들에게는 공경 받을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자녀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자녀는 내가 잘못해준 것을 기억하지, 잘해준 것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해준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실제로 해준 게 없어서가 아닙니다. 사실 얼마나 많이 해줍니까? 그런데 자기가 기억을 못하는 겁니다. 해주지 않은 것만 기억을 합니다.
자녀에게 공경을 받기를 원한다면 살아 계신 내 부모님을 잘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돌아가셨다면, 꼭 추도예배를 드리시면 됩니다. 자녀들은 듣고 배우는 게 아니라 보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고려장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전에 먹을 것이 부족해서 부모가 아주 나이가 많아지면 갖다 버렸습니다. 이 풍습이 고려시대 때 생겼다고 해서 고려장이라고 합니다. 옛날 어느 가난한 집의 아들이 늙은 아버지를 갖다 버리려고 지게에 얹고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먼 길이라 돌아올 때 심심할 것 같아서 자기 어린 아들도 데리고 갔습니다. 먼 길을 걸어서 깊은 산 속 굴에 아버지를 두고 내려왔습니다.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아들이 자기가 지고 올라갔던 빈 지게를 다시 들고 내려오는 겁니다. “야, 이놈아, 왜 그걸 들고 와, 재수 없게?” 어린 아들이 대답합니다. “이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제가 쓰려고요.”
자녀들은 보고 배웁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자기가 나중에 나이가 많아질 때 자녀가 내게 해주기를 원하는 것을 지금 내 부모님께 해드리는 것입니다. 1절에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는데, 이 명령은 성인이 될 때까지, 조금 더 길게 봐서 자녀가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당이 됩니다.
2) 연로하신 부모님을 공경하는 실제적인 방법
연로한 부모님에게 보여드리는 공경은, 사실은 직접적인 순종보다는 필요를 채워드리는 것입니다. 아직 부모님이 살아 계시다면 기회가 있습니다. 그럼 부모님들의 필요가 뭔가?
첫째, 버림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드리는 겁니다. 연로한 부모님들은 버림받고 외롭게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물론 요즘 부모님들은 자신의 경제적인 부분을 해놓으신 분들도 많지만, 그래도 마음에 항상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위로의 말로서 “아버지,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라고 마음을 놓으시도록 확신을 심어드리는 것이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연로해지셨을 때 꼭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뭐라고 하실까 봐 아예 그런 말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요즘에는 부모님들이 같이 살기보다, 근처에 노인 아파트 등에서 따로 편하게 사는 것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노후는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하는 말과 태도와 마음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항상 여기 있어요.”라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위에서 내려오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면서 뭘 기대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부모님이 힘을 다 잃고 낮은 자리에서 갈 곳이 없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어차피 부모님을 모실 생각이라면, 지금부터 미리 걱정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며 마음을 편안하게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대화입니다. 저도 솔직히 너무 부족합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일주일에 한 번은 전화를 드리는데, 대화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불쑥 전화했는데 “뭐 하러 했니?”라고 야단치신 경우는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러니 야단맞을 것을 걱정하지 마시고 수시로 대화하시고 전화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에 계시면 더 자주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살다 보면, 특히 나이가 들어서 오신 분들은 아무래도 영어가 힘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손자 손녀는 영어만 씁니다. TV도 영어만 나옵니다. 물론 요즘은 한국 TV를 인터넷으로 많이 볼 수 있지만, 해드렸는데 만지다가 조작을 잘못해서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거 왜 이렇게 만져서 고장을 내요?”라고 윽박지르는 자녀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비디오를 아무리 봐도 욕구가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러한 부모님과 잠깐잠깐 수시로 대화하는 게 필요합니다. 미국생활을 잘 모르셔서 “그게 뭐니?”라고 하시면 “모르셔도 되요. 설명해도 모르세요.”라고 하지 말고 잘 설명을 해드리십시오. 집안일이 있을 때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하면 ‘쟤네들이 뭐 하나?’ 물어보면 뭐라고 할 것 같고 안 물어보자니 궁금하고, 그래서 아주 애매한 입장인데 굉장히 서운하게 해드리는 일입니다. 별 것 아니더라도 “우리가 지금 이걸 하는데요, 별 건 아니지만 알고 계세요.” 하고 대화에 참여하시도록 하며 진행 상황을 잘 알려드리십시오.
3) 연로한 부모로서 자녀를 위하는 실제적인 방법
동시에 연로하신 부모님들께도 권면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자녀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내리 사랑입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자식을 사랑해줘도 자식은 잘 모릅니다. 자식이 부모만큼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고려장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가난한 집 아들이 연로한 어머니를 지게에 싣고 깊은 산 속으로 가는데, 꼬불꼬불한 산 속을 올라갈 때 모퉁이를 돌 때마다 지게 위의 어머니가 소나무 가지를 꺾어 버립니다. 아들이 묻습니다. “어머니, 왜 소나무 가지를 자꾸 꺾어서 버리세요?” 어머니가 대답합니다. “얘, 길이 험한데 너 혹시 혼자 내려가다가 길을 잃으면 어떡하니? 내가 꺾어 놓은 이 소나무 가지들을 보고 내려가거라.”
이런 것이 어머니의 사랑,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부모님의 사랑은 솔직히 흉내도 못 냅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은 기대치를 낮추시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기대를 안 하면 속상하거나 서운하거나 화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자녀가 가대하지 않던 것을 해주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주 기쁩니다. 그러니 기대치를 낮추시기 바랍니다.
둘째가 더 중요한데, 자녀들을 위해서, 손자 손녀들을 위해서 꼭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를 양육하고 훈계하는 것은 결혼 전까지입니다. 결혼시킨 후에는 자꾸 훈계하기보다 기도로 도우셔야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10분, 20분, 30분 정해놓고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너무 비디오에 심취(?)하지 마시고 기도해주십시오.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도록,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도록, 지금 직장(사업체)에 가 있는데 거기서 사고 나지 않고 무사히 건강하게 잘 일하며 인정받는 일꾼(사업체)이 되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젊은 사람들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 기도를 잘 못합니다. 자녀들의 기도제목을 살피셔서 자녀들을 대신하여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20-30년 전에 보면 연로하신 권사님들이나 장로님들, 백발의 어르신들이 교회에 계셔서 늘 기도하는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분들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하며 옛날 분들보다 요즘 분들이 기도가 약한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요즘 분들이 너무 건강해지셔서 그렇습니다. 아직 너무 젊기 때문에, 옛날처럼 연세가 많이 드셔도 젊어서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할 시간이 좀 없으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비디오 볼 시간을 줄여서 기도해주십시오. 교회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십시오. 교회를 위해 어르신들이 기도해주신다면 얼마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겠습니까? 같이 만나서 즐겁게 먹고 놀고 즐기고 대화하는 것도 하지만, 먼저 기도회로 모여서 교회를 위해, 자녀를 위해 기도해주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기도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 앞에 갖고 가서 구하면 하나님 뜻대로 해결이 됩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것을 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기보다, 자기가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일이 꼬이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또 자녀들을 대신해서 기도해주시고, 그래서 기도의 보호막을 자녀들에게 씌워 주시는 기도의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해야 할 일
그 다음에 4절에서 부모들에게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4절)
“아비들아”라고 했는데, 물론 ‘부모’를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자녀를 양육하는 책임을 무엇보다 아버지에게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에는 “부모”라고 이야기하고 2절에서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로 말했는데, 유독 4절에서는 “아비들아”라고 따로 구분해서 말합니다. 저를 포함한 아버지들이 가정에서 책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빠들은 직장생활로 바쁘고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고 하며 자녀 교육을 대부분 엄마들에게 맡겨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부모의 삶>을 하는데, 혼자 계신 분들 외에 양부모이신 분들은 다 하셔야 하고, 특히 아버지들이 <부모의 삶>을 더욱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맡겨놓고는 잘 듣고 와서 알려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자녀 양육은 “아비들아”, 즉 아버지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아내에게 다 맡겨놓고 나는 아무것도 안 하면 하나님 앞에 갈 때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비들아”라고 하며 아버지들에게 책임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향하여 사도 바울은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각각 한 가지씩 말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해야 할 것은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입니다. 노엽게 하지 말라는 것은 짜증이나 신경질 나게 만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들에게 자녀를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셨는데,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를 양육하지는 않고 노엽게만 만듭니다.
특히 우리 한국 가정에서는 부모님이 자녀에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참 많습니다. ‘너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마, 저기 가지 마.’ 자녀 입장에서는 하지 말라는 것만 많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까 어떻게 됩니까? 노엽게 됩니다. 어린 시절부터 속에 쌓이고 쌓이다가 이게 틴에이저가 되니까 폭발하는 겁니다. 틴에이저가 반항하는 것은 어릴 때부터 쌓인 노여움이 이제는 힘이 생기니까 폭발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가장 원하는 것은 부모가 자기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사랑을 쏟아주는 것입니다. 자녀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야단맞는 것이 아닙니다. 무시당하는 게 가장 싫습니다. “네 까짓 게 뭘 하니?”와 같은 말입니다.
보통 부모들은 자녀가 잘하고 있을 때는 가만히 둡니다. 그런데 말썽을 부리면 그때부터 참견하고 관심을 쏟습니다. 자녀 입장에서는 ‘내가 문제를 일으켜야 내게 관심을 보이는 구나’ 하고 생각하고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많은 자녀가 상습적으로 말썽을 일으키는데, 너무 당연합니다. 말썽을 일으켜야 관심을 보여주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가정에 쌍둥이 남자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엄마가 <부모의 삶> 같은 자녀교육 세미나 시간에 이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실천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식사 시간에 엄마가 밥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녀야 먹여야 하는 극성스러운 쌍둥이 남자아이들이었는데, 저녁 식사 때가 되면 직장에서 돌아와 피곤한 아빠는 아빠대로 신경질 내고, 엄마는 엄마대로 속상하고 화가 났습니다.
결국 ‘이제는 내가 <부모의 삶> 세미나에서 배운 대로 해보자.’라고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밥을 안 먹고 막 뛰어다니며 난리를 피우면 가만히 두었습니다. 그러다 둘 중 한 아이가 의자에 살짝 걸터앉아서 밥을 조금 두세 숟가락 먹으니까, 그때 엄마가 호들갑을 떨면서 먹는 아이를 막 칭찬합니다. “야, 밥 두 숟갈이나 먹었구나! 대단하다! 얌전히 앉아서 잘도 먹네!” 그러니까 아이가 신이 나서 더 먹는 겁니다. 그러자 때를 쓰며 돌아다니던 아이가 가만히 보니까 자기는 무시하고 밥 먹는 아이는 칭찬하며 좋아하니까, “엄마, 나도 잘 먹어.”라고 하면서 먹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되었다는 실화입니다. 잘못 할 때는 놓아두고 잘할 때 칭찬을 하며 관심을 보여주니까 잘하는 방향으로 나가더라는 것입니다.
[나가는 말]
이번 <부모의 삶>에 여러 분들이 등록을 하셨고 예비 부모와 예비도 아닌 부부까지도 등록했는데, 바로 이것입니다. 자녀 교육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부모님들이 애를 쓰셔야 합니다. 내 마음에 안 든다고 아이에게 자꾸 이것저것을 하지 못하게만 하지 마시고, 주님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는 부모가 되어야겠습니다. 내 교훈과 훈계가 아닙니다.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주님의 교훈과 훈계입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가 먼저 말씀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회에서도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보고 배우지, 듣고 배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말해도 안 듣다가 부모가 <생명의 삶>, <새로운 삶>을 공부할 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평소에는 드라마나 보고 골프나 치던 아빠 엄마가 갑자기 책상에 앉아서 뭘 막 쓰고 공부를 하고 숙제를 하는 겁니다. 이게 뭔가 보니까 성경을 읽고 있고 외우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해라 해라 안 해도 자기가 알아서 하게 됩니다.
자녀들은 정말 듣고 배우는 게 아니라 보고 배웁니다. 자녀들이 이렇게 보고 배울 수 있도록 부모님을 공경하고, 돌아가셨다면 추도예배를 함께 드리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아이들에게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늙은 다음에 아이들에게 받고 싶은 것을 지금 부모님께 해드리시기 바랍니다.
지금 내 아이가 내 부모님께 하고 있는 것을 이 다음에 내가 내 아이의 아이에게서 받을 확률이 아주 높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제 아이를 야단 치며(?) 잘 교육시키고 있습니다. 꼭 받으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정말 하는 대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다음에 내 자녀가 이렇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그 사람이 먼저 되어 보는 겁니다. 저도 노력하고 여러분도 노력하시고,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