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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418일 수요예배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9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는 사람

(마가복음 132~39)

 

1.   예수님 사역의 기초는 기도였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사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으로 사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이 피곤할 때가 많으셨습니다. 연속되는 사역 속에서 지칠 때가 많으셨는데, 주님의 사역을 지탱해준 힘의 원천이 바로 기도였습니다. 피곤하셨지만 늘 기도하심으로 사역을 이어나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도의 필요성에는 동의를 할 겁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압니다. 그런데 실제로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지는 못합니다. 그리고 기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너무 바빠서라고 핑계를 댑니다.

 

사탄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유혹하다가 실패하면 그 다음 작전은 게으름을 통해 영적으로 잠들게 하는 것입니다. 위기인데도 괜찮다고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네가 새벽에 기도하려고 일어나면 무리야.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일하고 피곤한데 어떻게 기도할 시간을 낼 수 있겠어? 새벽에 일어나면 하루 종일 피곤해서 일도 제대로 못 해. 하나님도 너를 이해하실 거야.’

 

이런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시키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지만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가 기도하기를 기대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음으로 시험에 들었고 다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결코 한가한 분이 아니셨습니다. 예수님 곁에는 항상 구름 떼 같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예수님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며 병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지난주에 100명 조금 넘게 오셨는데도 와글와글하고 바빴는데, 수천 명, 수만 명이 따라다녔으니 그 필요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32-34)

 

그 앞을 보면 예수님은 하루 종일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시며 여러 사역들을 하셨습니다. 이제 하루가 다 지나고 해가 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 쉬어야 하는데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을 데려오니까 또 쉬지 못하고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식사하시거나 주무실 겨를도 없었고, 우물곁에서 쉬어야 할 만큼 피곤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신 중에도 주님은 결코 분주하게 살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물 흐르듯 조용하고 평안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사셨습니다. 조급해하지 않으셨고, 허둥지둥 서두르는 법이 없으셨으며, 결코 초조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군중 속에서 사셨지만, 결코 군중의 요구에 따라 휘둘리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셨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35)

 

예수님의 사역에는 눈에 보이는 부분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눈에 보이게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선포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도 엄청난 일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바쁘고 피곤하게 하루 종일 사역하시고도 늘 다음 날 새벽 일찍 일어나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혼자 기도를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가끔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뭐 꼭 교회에 가서 기도해야 하나? 집에서 해도 되지.” 물론 그렇습니다. 집에서 기도할 수 있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왜 굳이 한적한 곳에 가셔서 혼자 기도하셨겠습니까? 집에서 하실 수도 있었는데 굳이 한적한 곳으로 가신 것은 그곳이 집중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방해 없이 하나님과 조용히 만나 깊은 교제를 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굳이 교회당에 와서 새벽기도를 왜 합니까? 물론 집에서 해도 되지만, 교회에 와서 하는 것과 집에서 하는 것의 차이를 아실 것입니다. 분위기가 다르고 내 마음가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며 와서 하는 기도가 다릅니다. 내 편의 위주로 편하게 집에서 기도하는 것과, 나는 좀 불편해도 와서 기도하는 것에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6:12-13)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지만, 특히 중요한 일을 앞두고는 밤새 철야기도도 하셨습니다. 이렇게 늘 기도하는 삶을 사신 것이 공생애 기간 내내 지속된 거룩한 습관이었습니다.

 

보통 기도는 뭔가 어려움이 생기거나 능력이 부족할 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기도할 필요가 없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이 능력이 모자랍니까, 인격이 부족합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을 맺었습니다. 예수님은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고, 함께 깊은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엄청난 파워는 바로 보이지 않는 부분인 기도에서 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삶의 문제의 핵심은 바쁘거나 일이 많거나 어려움이 생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갈등과 고민과 복잡함과 목마름의 원인은 모두 기도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과 나누는 깊은 교제가 부족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진짜 능력이 하나님과 나만 홀로 있는 곳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홀로 한적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 합심기도를 당연히 해야 하는데, 주님과 혼자 만나 따로 교제하는 것을 바탕으로 우리가 함께 모여 합심해서 기도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2.   기도는 인생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인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무거운 짐을 진 채로 살아갑니다. 어릴 때는 멋모르고 살았지만, 나이가 들고 맡은 책임이 많아질수록 짐이 더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각자 남편이나 아내로서, 아빠나 엄마로서, 가장으로서, 직장에서 상사나 직원으로서 수많은 책임에 대한 걱정 근심이 있습니다. 똑똑하면 걱정이 덜할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똑똑한 사람은 문제를 더 잘 보기 때문에 오히려 염려와 스트레스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문제는 잘 보는데 해결 능력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은 너무나 복잡하고 분주하고 시끄럽습니다. 쓸 데 없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혼란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내면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도록 여러 가지 일로 우리를 옭아매고 바쁘게 만들려고 애씁니다.

 

그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는 있지만, 계속해서 목마르고 피곤합니다. 우리는 혼자 감당할 수 없고 혼자 감당해서도 안 되는 책임감과 의무를 떠안은 채 그 과도한 무게에 짓눌려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짓눌리다 보면 영원에 대한 목마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일시적인 것들에만 집중해서 살다가 영원한 것들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우리 삶에서 가장 위험한 일은 그렇게 일시적인 것들만 붙들고 살다가 영원한 가치를 가진 것들이 우리 삶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가장 좋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시간을 내어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하늘 아버지의 임재 안에서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시간을 갖는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홀로 기도하러 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기도하려고 엎드릴 때 그 무거운 책임감이 우리의 어깨에서 주님의 어깨로 옮겨갑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의도적으로 시간을 떼어 한적한 곳으로 가서 기도함으로써 삶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훈련을 해야 합니다. 실제로 기도하면 마음이 가벼워집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과도한 짐을 우리에게 지우려는 마귀의 계략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과부하가 걸려 쓰러지고 맙니다.

 

기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안 하더라도 당장 티가 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기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능력이 아무리 많고 탁월해도 기도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만 사는 사람은 언젠가 고갈되고 탈진하여 넘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능력이 뛰어나도 분노와 조급함이 나옵니다. 논리는 그럴 듯한데 삶에 열매가 없고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항상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처음엔 능력이 별로인 것 같고 시원찮은 것처럼 보여도 끝까지 가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최고급 배터리라도 언젠가는 방전되고 없어집니다. 하지만 전원에 연결되어 있으면 끊임없이 에너지가 나옵니다. 기도로 어깨 위의 모든 짐과 부담감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에게 기도는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살 힘을 공급받는 생명줄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크게 만들어 하나님의 은혜를 담게 해줍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이르는 비밀 통로이고, 하늘의 능력을 내려 받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이 기도를 포기하는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자꾸 생각만 많이 하고 회의만 많이 하면 인간적인 방법에만 의지하게 됩니다. 교회 일을 하면서도 그렇게 똑똑한 방식으로 하려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아주 똑똑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 같은데, 결국은 자기가 가진 능력 정도 밖에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 이상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처리하게 됩니다. 한 사람은 이리로 가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저리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딪치게 되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나아갑니다. 생각하고 회의하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지만, 기도를 하고 나서 생각하는 것과 회의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과 너무 다른 결과를 내고 귀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며 30분 정도만 회의를 해도 3시간 한 것 이상의 생산성과 지혜를 얻는 은혜를 맛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심각한 죄는 기도하지 않는 죄입니다.

 

나는 당신들이 잘 되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내가 기도하는 일을 그친다면,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당신들이 가장 선하고 가장 바른길로 가도록 가르치겠습니다.” (삼상 12:23, )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리더로서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말합니다. 기도를 안 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까지 합니다. 오히려 그들이 가장 선하고 바른길로 가도록 가르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리더들의 문제가 뭔가 하면, 기도 없이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려고만 하지, 기도하지 않습니다.

 

공동체의 리더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공동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나 장로와 집사 같은 교회의 리더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교회는 끝난 겁니다. 목자 목녀 목부가 기도하지 않으면 그 목장은 끝난 겁니다. 부모가 기도하지 않으면 자녀 교육은 끝난 겁니다. 결혼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그 부부 관계는 끝난 겁니다. 청년들은 철저히 기도하며 결혼상대를 선택해야 하고, 부모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자녀를 키워야 합니다. 기도하면 살고 기도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부흥이 비결은 기도이고, 승리의 비결도 기도입니다. 모든 것이 여기에 달렸습니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옵션이 아닙니다. 기도는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이지,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살고 싶으면 기도해야 하고, 부흥하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기도를 통해서 계획되어야 하고, 기도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번 목회자 컨퍼런스를 주최하면서 우리는 기도의 능력을 맛보았습니다. 오신 모든 분들이 지나칠 정도로 칭찬하면서 최고의 컨퍼런스였다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전 컨퍼런스들에 비해 그렇게 특별하지 않았고 비슷했다고 느꼈는데도 놀라운 칭찬들을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몇몇 사모님들이 가장 좋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역시 답은 기도였습니다. 우리가 합심해서 40일 특별기도회를 한 것의 응답이었고, 뒤에서 보이지 않게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가정교회사역원 123 기도요원들이 기도해주셔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가정적으로, 교회적으로, 또 국가적으로 영적 비상사태입니다. 사탄은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우리를 삼키려 하는데, 우리는 영적으로 나태합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가 하던 일을 멈추고 자신을 깨워 기도할 때입니다. 기도는 조용하지만 가장 확실하고 엄청난 혁명입니다. 기도는 상황을 변화시키기 전에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겉모습이 변하기 전에 속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교회 리더들이 기도할 때 교회가 변할 것이며, 부모가 기도할 때 자녀들이 변할 것이며, 목자가 기도할 때 목장식구들이 변할 것이며, 사장이 기도할 때 사업체가 변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세상이 변할 것이고 VIP들이 변화될 것입니다. 상처를 주지 않는 변화, 피 흘리지 않는 혁명, 파괴하지 않는 새로운 창조는 오직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우리 삶에 고통이 찾아온다면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통 가운데서 우리는 기도하게 되고, 기도를 배우게 되며, 기도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기도의 용사들 중에 광야를 통과하지 않고 기도의 습관이 몸에 밴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고통이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지만, 고통이 빨리 없어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고통스런 상황을 통해 기도의 습관이 몸에 붙는 것입니다. 기도가 몸에 붙은 사람은 뭔가가 달라도 다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에 들어가게 되고, 기도의 능력을 갖게 됩니다.

 

 

3.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라

 

1)  삶이 단순해지는 유익

 

특별히 새벽기도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생이 심플해집니다. 동물들은 해가 지면 잠을 자고, 새벽에 동이 트면 일어납니다. 죄가 들어오기 전 에덴동산에서 사람도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난 후 유독 사람들에게만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습니다. 해가 지는 것은 하나님이 불을 끄시는 것이고, 해가 뜨는 것은 불을 켜시는 것이니까, 우리도 그 리듬에 맞춰 살면 좋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려고 할 때 평소처럼 하고 싶은 것을 다 하고 야식 먹으며 TV도 볼 것 다 보고 늦게 자면 하기가 힘듭니다. 모임이나 오락생활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영적 집중력을 위해서 절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늘의 것들로 채워지려면 먼저 땅의 것들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 마음을 채우고 있던 세상의 잡동사니들을 깨끗이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삶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을 최대한 다 제거하고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밤의 문화는 죄의 문화와 직결됩니다. 작년 여름 뉴욕에 가보니까 불야성이 따로 없었습니다. 대부분 밤 문화는 죄의 문화입니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도 밤에 멀리 다녀오다가 12시가 넘어 신촌 지역을 지나가는데 불야성이었습니다. 거리에도 젊은이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대부분이 술 마시고 춤 추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죄는 대개 밤에 이루어집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건강해질 뿐 아니라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2)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는 유익

 

또한 새벽에는 하나님과 조용히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새벽은 조용하고 낮보다 맑고 깨끗하며, 집중이 잘되는 시간입니다. 영성은 거룩한 집중력인데,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집중하기에 새벽은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그 비밀을 아셨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새벽을 살았습니다. 기도의 용사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시편 곳곳에서 새벽에 기도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46:5)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08:1-2)

 

새벽에 일어나 스마트폰 검색하거나 뉴스를 보면서 시작한 사람과,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시작한 사람의 하루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새벽에 기도로 시작한 사람은 최고의 과외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 것이 됩니다.

 

미래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교제한 사람에게는 무슨 일을 만나더라도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집니다. 어떤 충격을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힘이 쌓여 내면세계가 단단해졌기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이겨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과 지혜로 일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당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들보다 더 탁월하고 담대하게 할 수 있습니다.

 

 

4.   기도의 결론

 

우리가 다른 건 몰라도 이 결심은 계속 하면 좋겠습니다. ‘나는 기도하는 사람이 되리라!’ 이 결심 하나만 해보기 원합니다. 기도가 뚫리면 하나님께서 항상 내게 말씀하실 수 있는 고속도로가 뚫리는 것이며, 그러면 다른 모든 문제들은 즉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막히면 어떤 결심을 해도 안 됩니다.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격을 바꾸시고, 인생을 바꾸시고, 인생을 보는 눈을 바꾸시고, 무너진 관계들을 회복하시고, 불가능해 보였던 상황을 바꾸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오직 기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내시는 길을 보고 그 길로 담대히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자신의 이기적인 유익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 기도 후에 무엇을 하셨는지를 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으시더라” (38-39)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을 찾아 만나 모든 사람이 주님을 찾습니다.”라고 하니까 예수님은 다른 마을에도 전도하러 가자고 하십니다. 그것이 주님이 오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었습니다.

 

우리는 착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단순히 나 자신이 잘되고 내 자녀가 잘되고 내 가족이 잘되는 것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이상하게 이기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청년들이 가장 피하는 사람이 누군가 하면 기도를 가장 많이 하는 권사님들입니다. 늘 불러서 야단만 치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냥 따뜻한 게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따뜻합니다. 보기만 하면 불편한 사람은 기도를 뭔가 잘못한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제대로 한 기도가 아닙니다. 혼자서 하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신앙생활은 언제나 공동체적입니다. 자기 혼자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우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연결되는 것이 참된 기도입니다.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고서는 공동체와 연결되지 않거나 분열시킨다면, 그런 기도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사탄이 원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신 다음에 나가셔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며,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는 이처럼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결국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막 휘둘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론에 밀리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이 우리를 보내신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사명자의 삶을 사는 것이 기도의 결론입니다.

 

우리도 매일 최선을 다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 지금 바로 여기에 우리를 두신 그 목적을 이루어드리는 사명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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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기도의 영을 부어주소서" (스가랴 12장 10절)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6 (3/07/18) kpccoh 2018.03.08 3479
140 "고통을 낭비하지 않고 축복으로 만드는 비결" (시편 119편:65-88) - 하나님이 내시는 길을 보라 5 (2/28/18) kpccoh 2018.03.01 2067
139 말씀이신 메시아 예수 (요 1: 1-3, 2:11) - 일일선교집회 (2/21/18) kpccoh 2018.02.22 329
138 "행복합시다" (살전 5:16-18) - VIP와 함께하는 말씀잔치 1: 최영기 목사 (2/16/18) kpccoh 2018.02.17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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