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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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쯤인가 어느 상점에 가서 물건을 보고 있는데 한 젊은 직원이 다가와 저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물으면서 몇 마디 대화가 오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말끝마다 저에게 "Sir! Sir!"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이 친구가 왜 자꾸 나를 Sir라고 부르지?' 하고 의아해하며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보니 그것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저도 이제는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서 그 직원이 Sir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밖에 나갈 때마다 스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등장하는 사람들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이제 이 세상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더 많다'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지난 2월 한국에서 졸업 시즌일 때 무심코 뉴스를 보다가 충격(?)을 받은 일도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무려 30년이나 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것입니다. 세월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버리고, 만 20세에 미국으로 이민 온 제가 어느 새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60대 이상 되신 분들은 그런 느낌이 더 강하게 드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음은 늘 청춘인데 어느덧 노년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도 30년이라는 긴 세월이 눈 깜빡 하는 사이에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30년도 빠르게 지나갈 것이고, 그 중 목회를 할 시간은 20년도 안 남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 연합부흥사경회 때 강사 목사님이 전해주신 여러 귀한 말씀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제 마음에 남았던 한마디가 있습니다. "여기서 얼마나 산다고 지금 그렇게 사는가?" 이 땅에서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외면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면서 언제까지 그분의 뜻을 거스르겠느냐는 도전이었습니다.
미국의 어느 기관에서 설문조사를 하면서 이렇게 질문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는 비율은 얼마인가?" 지난여름 한국에서 떠들썩했던 메르스(MERS)에 걸렸을 때 죽는 비율(치사율)이 7월 기준으로 19.3%였습니다. 병에 걸린 100명 중에 20명 정도가 죽었다는 말이니까, 생각보다 높은 치사율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는 비율은 100%입니다. 100명 중에 100명이 죽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이요, 그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새번역)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언젠가 하나님 앞에 반드시 서게 될 그 날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들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 나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매순간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 100% 확실한데, 그렇다면 '여기서 얼마나 산다고' 용서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얼마나 산다고' 서로 갈등하고 험담하며 인생을 허비하겠습니까? '여기서 얼마나 산다고' 육신의 쾌락만 추구하며 헛되게 살겠습니까? '여기서 얼마나 산다고' 돈 버는 데에 혈안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겠습니까? 역사상 가장 부자였다고 하는 솔로몬도 왕으로서 부귀영화를 누린 기간이 기껏해야 40년이었습니다.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가 없기에 지금 주어진 매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며 사는가?' 하고 늘 자신에게 질문하며 매일 주님이 기뻐하실 일만 하면서 살다가, 마침내 주님 앞에 서는 날 칭찬받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